[청로 이용웅 칼럼] 고향(故鄕) · 실향(失鄕) · 타향(他鄕) · 망향(望鄕) · 애향(愛鄕)의 노래! (‘제1회 종로 송…

기사입력 2017.09.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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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대구(大邱)가 고향(故鄕)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 시인(詩人)이 노래한 나라 잃은 설움과 실향(失鄕)의 아픔입니다.

 

이때쯤, ‘추석(秋夕)’이 가까이 오면 떠오르는 낱말들은 고향(故鄕) · 실향(失鄕) · 타향(他鄕) · 망향(望鄕) · 향수(鄕愁) · 나그네 등 입니다. 추석이 뭔지도 모르는 ‘악성(樂聖)’ 베토벤도 “고향이여 , 아름다운 땅이여, 내가 이 세상의 빛을 처음으로 본 그 나라는 나의 눈앞에 떠올라 항상 아름답고 선명히 보여 온다. 내가 그곳을 떠나온 그 날의 모습 그대로!” 라고! 그에게 고향은 조국(祖國)이었습니다.

 

추석이 아니더라도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구촌에 베토벤처럼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특히 실향민들은 매일 매일 고향을 그립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 때 월남한 사람들은 특히 그리워합니다. 필자는 원 고향이 충청도 청양이라서 잘 모르지만, 주변에 ‘타향살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작고한 소설가가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오발탄-작가-이범선“청등 홍등 두 등대가 포구 안에 길게 댕기를 풀어 드리웠다. 파도가 베개를 흔든다. 밤은 깊어가고 잠은 안 온다. 여기가 어데냐?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는가? 내가 이제 몇 살인가? 자꾸만 외롭다. 자꾸만 그립다...하루가 또 흘러간다. 진정 인생이란 흘러가는 것”이라고 한 소설가! 평안남도 신안주(新安州)에서 태어나 거제도까지 흘러갔었던 <오발탄>의 이범선(李範宣, 1920~1982) 작가는 고향을 무척 그리워했습니다.

이상화-시인술자리에서는 늘 ‘고향·실향·타향·망향·애향’의 노래를 읊조렸습니다. 필자의 첫 딸이 태어났을 때, 축하의 술잔과 작명(作名)까지 해주어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이름은 ‘미리내’ 입니다. ‘은하수(銀河水)’의 우리말이어서 망설여졌지만, 지금 주민등록증의 성명은 ‘미리내’ 입니다.
 
그는 <오발탄>에서 한국전쟁을 전후로 월남한 실향민들의 궁핍한 생활과,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히는 험난한 현실 속에서 피해 의식과 윤리적 번민에 빠져든 주인공의 내면을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묘사해, ‘195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라는 평가를 받은 애향의 실향민이었습니다.

 

‘고향·실향·타향·망향·애향’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 황해도 재령 출생으로 해주에서 학교를 다닌 송해(宋海) 씨도 고향 중독자입니다. 그가 ‘전국노래자랑’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삼천리 방방곡곡(坊坊曲曲)을 헤매는 것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민족의 명절에 앞서 ‘마음의 고향 잔치’를 벌립니다.

 

송해와 필자9월 17일(일) 오후 5시 ‘제1회 종로 송해 가요제’가 광화문 특설무대에서 펼쳐집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무대입니다. 송해 씨는 가요제의 출범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평생을 보냈지만, 오늘 같이 흥분하고 초조한 적은 처음”이라고 설렘이 가득한 소감을 밝히면서, “활동을 통해 받은 관심을 보답하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했었다.”며 ‘송해 가요제’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그가 이 축제의 주인공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당사자와  대회장 등이 일부 언론으로부터 기획사의 ‘들러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만 90세의 예인(藝人)은 순수합니다. 가까이에서 그를 더럽히는 자(者)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아시아 최고령 MC 송해‘라는 칭찬은 사실 한 TV의 가요 프로 덕분입니다. 그가 코미디언이지만 구봉서 씨보다 낫다는 평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12장의 앨범을 낸 가수라지만 ’진짜 가수‘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고향(故鄕) · 실향(失鄕) · 타향(他鄕) · 망향(望鄕) · 애향(愛鄕)의 노래>로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그리운 ’마음의 고향‘을 찾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송해 씨의 장수(長壽)와 가요제의 성공을 기원해 봅니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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