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자강도 강계시와 강계정신, 그리고 김정일과 김정은

기사입력 2017.11.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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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대한만국의 지도에는 북한의 행정구역인 량강도(兩江道)와 자강도(慈江道)가 없습니다. 량강도의 서쪽에 위치한 자강도의 동쪽은 함경남도, 남쪽은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에 접해 있으며, 서쪽과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해 있습니다. 1949년에 평안북도의 일부 지역과 함경남도의 장진군을 통합하여 새롭게 신설하면서 이 지역의 중심지역인 자성군(慈城郡)의 ‘자’와 강계군(江界郡)의 ‘강’자를 따서 ‘자강도’라고 명명했습니다. 

자강도의 중심에는 강계가 있습니다. 강계시(江界市)는 자강도의 도청 소재지인데, 과거엔 지형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조선(1392년~1910년)시대에는 이곳이 군대 집합처였으며, 강계읍성은 압록강 연안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였습니다. 강계시는 4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장자강이 흐릅니다. 

장자강(將子江)은 독로강(禿魯江)을 개명한 이름이며, 자강도 룡림에서 발원하여 만포를 거쳐 위원에서 압록강에 합쳐집니다. ‘독로’는 강계의 옛 이름인데, 여진족의 말이어서 쓰지 않고, ‘장자(將子)’는 원래 있던 ‘장자산’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는데, 김정일이 한국전쟁 때 장자산에 피신했다고 혁명사적지로 기념하는 것과 유관하다는 후문(後聞)입니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압록강의 지류인 장자강은 강계시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을 감돌아 흐른다. 물매가 급한 산악하천인 장자강은 오늘 전력생산기지일 뿐 아니라 관개용수와 공업용수, 음료수 그리고 떼길과 배길로도 리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이곳을 ‘선군팔경(先軍八景’ 중 하나로 선정하는 해프닝을 벌렸습니다. 바로 “장자강의 불야성(不夜城)”입니다. 소형 발전소들을 건설해 놓고, 거기다가 선전선동용 ‘문화주택’을 세우고 밤새 불을 밝혀놓은 꾸며진 경치입니다. 
강계 공연

강계는 미인(美人)이 많은 고장으로 알려졌지만, 국가가 정책적으로 중요시한 도시였습니다. 이 전략적 요새에도 유명한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1436년에 축조된 ‘남산을 포괄하고 장자강과 북천강의 절벽을 돌아 강계 중심부를 성 안에 아우르고 있는 평산성 형식의 석성’인 강계읍성, 강계읍성의 남장대인 망미정(국보 65호), 그리고 ‘관서8경(關西八景)’의 하나로 유명한 인풍루(국보 64호), 옛 강계부의 관청 건물였던 강계 아사(국보 66호)등 입니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서 강계의 꽃은 ‘강계정신(江界精神)’ 입니다. ‘강계정신’은 1990년대 체제붕괴까지 거론되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요구했던 당대의 시대정신이자 경제회생의 기치를 의미하며, ‘고난의 행군’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강도가 가장 모범을 보였다 하여 도(道)의 대표 도시인 강계와 이곳 주민들의 투쟁정신을 하나로 묶어 ‘강계정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강계 공연
강계정신은 김정일이 1998년 1월 자강도 인민경제 여러 부문을 현지지도한 것을 계기로 고창(高唱)된 경제선동의 구호입니다. 경제난이 최악이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8년 1월 16∼21일,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강계시를 현지지도, 중소형발전소 등을 자체 건설해 경제난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강계정신’으로 규정, 주민동원을 위한 구호로 ‘강계정신’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김정일은 강계를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로동신문>은 그 때를 “지난 세기 90년대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공장들이 숨죽고 불빛마저 꺼져 자강도의 어딜 가나 어둠이 가셔질 줄 몰랐다. 바로 이러한 때 김정일 령도자께서는 자강도를 여러 차례 찾으시여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길을 밝혀주시고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 주시였다. 하여 자강도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어났다.”고 하고, “오늘 장자강은 자기의 손으로 가꾼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락원의 밤을 지새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비껴 흐르는 것으로 하여 그 모습 더욱 유정하게 안겨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로동신문>은 김정일이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을 정보화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발전계획을 똑똑히 세우고 이 사업을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계속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가 “튼튼한 물질적 토대와 기술 력량이 갖추어진 자강도전자업무연구소는 발전전망이 대단히 크다고 하시면서 전체 종업원들이 꾸준히 노력하여 연구소를 끊임없이 번영하는 기업소로 전변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전했습니다. 
강계 김정은 연설

독재자 김정일은 죽어가는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강계정신’을 내세웠고, 나름대로 경제 살리기에 애를 쓴 흔적이 강계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2012년 조선노동당 창건 67주년을 맞아 북한은 자강도 강계시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나란히 건립했습니다. 2013년 7월 김정은 제1비서는 자강도 강계시의 강계트랙터공장 등을 방문했는데, 이 공장은 군수공장으로써 김일성 주석이 30차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3차례나 방문하였습니다. 이 공장에서 깅정은은 현지지도에서는 최초로 근로자들 앞에서 연설을 했고,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공연을 지시했습니다. 
강계-자강도

그런데, 그가 강계정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론 알겠지요! <로동신문>은 최근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전원회의 관련 공훈국가합창단, 모란봉악단, 왕재산예술단의 예술인들이 강계시에서 첫 공연을 진행했다며 보도했습니다. 김정은이 4년 만에 또 ‘쇼(?)’를 벌인 것입니다. 죽어가는 경제를 생각하면 강계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해야 마땅한데...김정은은 2017년 7월 28일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사일 1발을 발사했습니다. 그가 핵(核)의 늪에서 나와, 백성을 더 이상 도탄(塗炭)에 빠뜨리지 말기 바랍니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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