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먹을수록 배고픈 꽃” 진달래꽃, ‘영변 약산’ 진달래꽃

기사입력 2018.04.0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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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과거 암울했던 시절, 봄이 되면 대학가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시(詩)가 시인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 입니다.

 

그 때 그 시절엔 이 시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라는 구절이 많이 회자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라일락은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 ‘봄꽃’하면 뭐니 뭐니 해도 진달래꽃이었는데, 북녘 땅, 북한 이야기 속에 이 꽃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1985년에 발표된 리종렬의 소설 <충성의 한길에서>(1~5부)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제5부가 《진달래》입니다. 이 소설의 한 대목을 보면 《김정숙은 최정덕, 서영순과 함께 진달래를 한 아름 꺾어 김일성을 준다. 그러자 김일성은 기뻐 말한다. “조국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소. 정숙동무,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이 진달래꽃에 관한 시를 쓰겠소. 진달래는 우리 빨찌산 녀대원들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김정일은 “진달래는 우리 어머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만길이라는 북한의 평론가는 김정일이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 어머님의 고귀한 생애와 불멸의 업적, 숭고한 념원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실 높은 뜻을 안으시고 깊고 깊은 사색과 뛰여난 예술적천품으로 불후의 고전적 명작《진달래》를 창작하시였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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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김소월 시집

 

김정일의《진달래》는 “해빛이 따스해 그리도 곱나/ 봄소식을 전하며 피는 진달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꽃송이/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오가는 비바람 다 맞으며/ 산허리에 피여 난 붉은 진달래/ 긴긴밤 찬 서리에 피고 또 피여서/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때늦은 봄에도 사연을 담아/ 해빛밝은 강산에 피는 진달래/ 못잊을 어머님의 그 모습이런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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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평양 거리의 시민들

  

위처럼 북한이 진달래꽃을 국화보다 더 소중한 꽃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김정일의 생모(生母)인 김정숙을 우상화하는데 아주 좋은 ‘사상적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선 김소월의 시(詩),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지고, 꽃 자체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지만, 북한의 진달래는 그런 꽃이 아닙니다. 김일성 가(家)의 ‘우상숭배화(偶像崇拜花)입니다. 그것은 다음의 《일화 5호물동 진달래》에서 확인됩니다.

 

“진달래, 봄날의 상징으로만 일러오던 이 꽃은 오늘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조국에 대한 사랑의 상징으로 깊이 자리잡혀있다. 주체28(1939)년 5월 18일 이른 아침, 김일성주석의 명령을 받고 조국진군의 길에 오른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 땅, 5호물동에 이르렀다. 자기의 끌끌한 아들딸들을 반기는 듯 강기슭에는 진달래가 붉게 피여있었다.

 

얼마나 그려보던 조국 땅인가! 조국해방을 위한 길을 헤쳐온 피의 험산준령은 또 얼마였던가! 진달래를 그러안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두 볼로는 격정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흘려내렸다. 김정숙녀사께서 정히 꺾어올리는 진달래꽃가지를 받으신 주석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습니다!》라고 감회 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날에 녀사께서 안으시였던 조국의 진달래는 조선인민의 마음 속에 천만년 붉게 붉게 피여있을 것이다.” // 죽은 김정숙 녀사...생존하는 이설주 녀사는 진달래꽃을 좋아하는지...

 

‘진달래’를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잎 두잎 따먹는 진달래에 취하여/ 쑥 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 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 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 조울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 진달래는 먹는 꽃 /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라고 노래한 詩人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북한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우리가 진달래꽃을 보고 소월(素月) 김정식의 시(詩)를 떠올린다면,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숙 부부(夫婦)을 연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 시민들이 손에 들고 흔들던 것은 진달래꽃(사진)입니다. 평양 한 가운데 세워진 개선문에도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업적을 찬양하는 개선문의 아치형 테두리에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상징하는 70개의 진달래꽃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진달래꽃은 ‘김정숙 꽃’으로도 불리웁다. 김정숙이 김일성에게 진달래꽃을 바치며 항일투쟁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는 북한 문학과 예술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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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한반도의 진달래 바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모자(母子)가 좋아한 꽃이라서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진달래가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지만, ‘먹는 꽃’이라서 좋아할 것입니다. 남한에선 과거에나 존재했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4월에 북한 주민들이 진달래꽃을 먹고라도 삶을 잘 이어가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사라졌을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전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이별의 꽃길이 더욱더 아름다운 사랑의 꽃길이 되는 기적, 이 참다운 사랑의 기적이 시인의 <진달래꽃>의 진수(眞髓)라고들 합니다.

 

4월 들어 한반도 곳곳에서 진달래가 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봄에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쫒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라고 읊조립니다. 하지만 북녘에선 진달래꽃이 김일성 생일(태양절)에 장식용으로 쓰일 것이고, 많은 서민들이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을 찾아 헤매일 것입니다. 최근 웃으며 공연무대에 등장해 괜찮은(?) 지도자처럼 처신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님! 이번 할아버지 생일, 태양절에는 행사비 대폭 줄여, 백성들에게 베푸세요! 복(福) 받을 겁니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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