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칼럼]수사권 쟁탈전

기사입력 2018.04.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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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0월 국회 검경 수사권 조정 공청회 때 일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전·현직 경찰관 4500명으로 회의장 주변이 북새통을 이뤘다. “국회 공청회에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처음”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들의 집단행동에 놀라 경찰 수뇌부에 자제를 요청한 사람이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2011년 6월 국회 공청회에는 2000여명의 현직 경찰관이 몰렸다.

 

경찰관을 옹호하는 발언에는 환호를, 검찰을 옹호하는 발언에는 야유를 퍼부었다. 당시 경찰 수뇌부는 수사권 독립을 반대하는 신문 필자들에게 항의성 댓글을 올리라고 전국 경찰에 지침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한 여경 간부가 검사에게 경찰에 나와서 조사받으라면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경찰청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한 것이 이 무렵이었다. 경찰이 이번에는 야당과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찰을 ‘미친개’에 비유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경찰 내부망이나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닙니다”라고 찍힌 피켓 사진을 찍은 인증샷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 지구대에는 “돼지 눈으로 보면 세상이 돼지로 보인다”며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이번 사태도 한 커풀 벗겨보면 결국 수사권 독립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은 과거 수사권 문제로 검경 갈등을 빚을 때 늘 과격한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고, 경찰 수뇌부들도 언제나 그를 정면에 내세웠다. 그런 그가 야당 소속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들에 대한 수사 착수 직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민주당 예비 후보를 2차례 만나서 경찰 수사권 독립을 협의했다는 것은 의혹을 살 만하다.

 

야당의 공격에 그는 “모욕감으로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사람은 무릇 스스로를 욕되게 한 후 남에게 모욕을 받는 법이다. 야당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이나 막말에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명하복이 철저하고 집단행동이 금지된 경찰이 야당 의원의 발언에 말꼬리를 잡고 조직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욕설과 조롱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 국민은 경찰을 개, 제1야당을 돼지로 둘 만큼 후진적이지 않다. 경찰이 목을 매는 수사권 문제는 절차를 지키면서 풀어야지 집단행동이나 기싸움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사실상 폐지하고 경찰이 자체 판단으로 무혐의 처분 등을 할 수 있는 수사종결권도 갖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정안에는 검찰이 경찰 송치사건에 대해선 보완수사 요청만 할 수 있고, 검찰이 동일 사건을 다룰 경우 먼저 수사한 쪽에 우선권을 준다는 내용도 담겼다. 검찰이 그간 권력에 영합하는 수사를 하고 그 대가로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형집행권 등 세계 어느 검찰도 갖지 못한 무소불위 권한을 누려온 게 사실이다. 검찰을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신설 논의엔 그런 배경이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경찰을 검찰 못지않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면 곤란하다. 경찰도 정권 충견처럼 행동하고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무시해온 전력이 있다. 최근 검찰이 야당 울산시장 후보측을 압수수색하면서 선거 개입 의혹을 받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예다.

 

2016년 경찰의 인지 수사 사건 120만건 가운데 나중에 무혐의로 끝난 경우가 17만건이다. 17만명의 죄 없는 사람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는 뜻이다. 검경의 권한 쟁탈전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숟하게 나올 수 있다. 수사는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책무이지 무슨 권력이나 권한 같은 것이 아니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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