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칼럼]제주 4·3의 특별법

기사입력 2018.04.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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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공자가 제자 자로로부터 “선생님에게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름을 바로 세울 것이다.” 제자들이 실망하자 부연 설명했다. “명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나 악도 일어나지 않으며, 예와 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형벌이 통하지 않으며, 모든 형벌이 통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사건·사물의 성격 규정을 바로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국민들이 따르는 정치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름이 중요하기에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정명을 얻으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았다. 동학농민운동은 동학난과 동학혁명을 거쳐 1990년대부터 동학농민운동으로 불린다. 동학이라는 종교집단의 반란쯤으로 치부되었다가 연구에 의해 외세에 맞선 반봉건 민중항쟁의 성격이 조명되면서 100년만에 정명을 얻었다.

 

5·18 민주항쟁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아무런 가치가 부여되지 않은 ‘5·18’ 또는 ‘광주사태’로 불리다 30여년 만에 불의한 신군부에 맞서 싸운 민주항쟁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에는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제주 인구의 10%가 희생된 이 참극은 여전히 4·3 ‘사건’이나 ‘사태’일 뿐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제주 4·3 특별법도 성격 규명은 미룬 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의 희생당한 사건’으로 무미건조하게 정의한다.

 

4·3이 제 이름을 얻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념적 접근 때문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 폭력에 대한 사과를 계기로 4·3은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 방식으로 해결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보수단체들이 4·3을 다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면서 꼬였다. 4·3은 7년 넘게 이어진 데다 한 동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나온 경우다. 누구는 정의로 부르고, 누구는 불의라고 하는 상태에서는 하나의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제주 평화공원에서 열린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 권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고 했다. 4·3 사건 희생자는 노무현 정부 때 신고 된 숫자만 5만 4000명이다. 군경이 대한민국에 반란을 일으킨 남로당 무장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사과는 현대사의 비극을 매듭 짓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추모사에서도 막대한 피해자를 낳은 4·3 사건을 일으킨 남로당과 배후 세력인 북한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세계 어느 나라든 무장 반란이 일어나면 군과 경찰이 진압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진압이 지나쳐 관계없는 민간인이 피해를 본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대통령은 4·3 당시 전사한 군인과 경찰, 사복청년단 등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주최한 ‘4·3 70주년 특별전’은 남로당 폭동을 ‘무장봉기 항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의원 60명이 발의한 4·3 특별법 개정안엔 ‘4·3 위원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이 포함됐다. 위원회 결정으로 인정된 4·3 사건의 진실을 부정·왜곡하여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이게 민주화 투쟁했다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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