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정몽주의 시가(詩歌)와 <로동신문>의 “백두산의 이름”

기사입력 2018.05.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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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백두산 천지 (사진자료 : 북한 월간 홍보지 <KOREA>)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비공개 환담)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백두산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나는 백두산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며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백두산(白頭山)! 백두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삼지연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걸쳐있는 화산으로, 중국에서는 창바이 산,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에서는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異名)으로 불리었고, 현대에는 '장백산'이라고 통일되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오르기가 불편한 한반도의 백두산, 중국이 자랑하는 장백산! ‘백두산의 이름’이 장백산으로 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가 펴낸 <백두산 고전작품선집>은 서문에서 김일성의 교시 “백두산은 우리 나라 조종의 산으로서 조선의 상징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민족사의 발상지이다.”를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고려 충숙왕 때 뛰어난 외교가이자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었던 정몽주(1337~1392)의 ‘시가(詩歌)’ 중 하나인 “지도를 보며”를 첫 작품으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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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백두산의 봄 (사진자료 : 북한 월간 홍보지 <KOREA>)

 

“일찌기 들어왔노라 / 돌살촉을 선물로 보냈다던 이야기 / 옛적의 그 후예들 / 이 고을에 살고 있었다오 // 흰눈 덮인 백산은 / 남쪽으로 멀리 뻗어내리고 / 아득할사 흑수 물은 / 북쪽으로 길길이 흘러간다네 // 드세찬 그 위용은 / 이웃나라들을 진감시켰고 / 찬란한 문화는 / 전례없이 번창했도다 // 앉아서 지도를 보니 / 도리여 탄식만 솟구치누나 / 예로부터 호걸들은 / 험준한 곳에서 배출되곤 했었지”

 

위 “지도를 보며”에서 ‘백산’은 백두산이고, ‘흑수’는 오늘의 송화강입니다. 이 시는 정몽주가 1360년 동북면 도지휘사 한방신의 종사관으로 전투에 참가했을 때 쓴 작품입니다. 이 시를 읽어보면 ‘반쪽 백두산’을 침묵으로 방관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쪽 장백산’에 대해서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로동신문>은 “백두산의 이름에 대하여”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다음은 “백두산의 이름에 대하여”(발췌 정리)입니다.

 

김일성은 “백두산은 우리 나라 조종의 산으로서 조선의 상징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민족사의 발상지이다.”라고 했습니다. <로동신문>은 “백두산은 우리 혁명의 력사적 뿌리가 마련된 혁명의 성산인 동시에 우리 민족사의 발상지이며 우리 나라 강과 산의 시원으로 되는 조종의 산이다. 산의 이름도 력사의 흐름과 시대적 미감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이 산이 백두산으로 불리우기 전에는 시기에 따라 태백산, 불함산, 개마대산, 도태산 등으로 불리웠고 또한 백두산과 같은 시기이거나 얼마간 후시기에는 백산, 장백산으로도 불리웠다. 백두산의 가장 이른 시기의 이름은 태백산(큰 흰산)이였다.

 

13세기 고려의 중 일연(1206-1289년)이 쓴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고기》의 단군전설기록에서는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세계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곳과 단군이 출생한 곳이 태백산이라고 했다. 일연은 이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해석했으나 그보다 앞선 《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시조 주몽전설에서 압록수와 함께 보이는 태백산은 백두산이였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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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첩 <백두 풍경> (사진자료 : 북한 월간 홍보지 <KOREA>)

 

그리고 “《통전》(8세기말~9세기초 편찬)에서 《마자수(압록강)는 동북쪽의 말갈 백산에서 흘러내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백산은 곧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다. 머리에 흰눈을 이고 있다는 뜻의 백두산이라는 이름도 백산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이름으로 인정된다. 즉 《괄지지》가 편찬된 7세기 전반기 훨씬 이전인 고구려중엽에 백산과 백두산 이름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백두산의 다른 이름인 장백산이라는 이름은 백두산이라는 이름보다 얼마간 후에 생겨났다. 다른 나라의 력사책 《신당서》(1060년 편찬)의 압록수(압록강)에 대한 주석에서 두우(735-812년)는 《압록수는 평양성의 서북 450리에 있다.

 

수원은 말갈의 장백산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다른 나라의 력사학자 리심전(1166-1243년)도 《압록수는 동북에 있는 장백산에서 흘러내린다.》고 하였다. 력사 기록에서 백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보이는 것은 8세기초이고 장백산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는 것은 9세기 초이므로 각각 기록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장백산이라는 이름보다 100년은 앞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했습니다.

 

위 “백두산의 이름에 대하여”의 집필자는 북한의 역사학자 박영해 박사입니다. 그는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장백산보다 “100년은 앞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는 “력사책 《신당서》”에서 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신당서》(新唐書)는 북송 인종이 《구당서》(舊唐書)의 내용이 왜곡된 것이 많고 너무 부실하다고 하여 구양수 등에 명하여 1044년~1060년에 걸쳐 완성한 당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산에 깃들어있는 절세의 위인들이신 백두산3대장군의 위대한 애국애족의 력사,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혁명 력사를 줄기 줄기마다에 심오하고 풍부하게 담고 있는 혁명의 성산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 우리 인민은 백두산을 우리 겨레, 우리 나라의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으로 영원히 사랑하며 긍지 높이 자랑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자가 할 말은 아닙니다.

 

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학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 백두산3대장군(김일성·김정숙·김정일)에 대한 우상화는 북한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도 “백두산의 이름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은 ‘장백산’이 아니고 ‘백두산’입니다.

 

(명함판사진)이용웅님-e.jpg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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