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공희 감독의 <기억의 소리> - 동굴에서 벗어나려는 속죄와 치유의 몸부림

기사입력 2018.08.2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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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선정한 올해의 뉴미디어 대안 장편영화 이공희 감독의 <기억의 소리>

8월 19일 낮 5시 / 인디스페이스 상영 / 관객과의 대화

필름영화의 시도와 뉴미디어 대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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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풍우 기자]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이라는 테마로 지난 8월 15일 개최된 2018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초청된 새로운 뉴미디어 영화들이 풍성하고 다양하게 펼쳐져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 가운데 올해의 뉴미디어 대안 장편영화로 선정된 이공희 감독의 <기억의 소리>가 지난 8월 19일 낮 5시, 서울극장 내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되었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청된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국내의 마지막 35mm 필름으로 제작되었고, 대중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보완, 촬영했으며, 재편집, 재녹음, 색보정을 세심하게 공들여 디지털 확장판으로 완성되어 2016년 12월 15일에 개봉되었다.

 

뉴미디어 대안 영화는 대안적 시각이 담긴 새로운 매체 형식의 영화를 일컫는다. 몇 가지 취지와 목적이 있으나, 동일성 및 획일성의 영상문화를 해체하는 예술가의 다양한 장르와 표현의 가능성을 중요시하며, 영상을 통해 ‘대안언어’를 탐구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창의적 작품을 말한다. <기억의 소리>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이 같은 취지에 맞는 실험영화로서 올해의 뉴미디어 대안 영화로 선정되었다. 


영화 상영 후에 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이자 사회를 본 임창재 감독의 게스트와의 토크(GT)가 진행되었고, 이공희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진솔하게 답변했다. 주로 영화의 제작배경과 주제에 대해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애쓴 점, 그 과정 속에 불가피하게 생겨난 고충들이 기억의 단편들을 찾아가듯 털어 놓았다.

 

국내의 실험영화 1.5세대인 이공희 감독은 필름세대로서 처음부터 필름영화로 제작하기를 관철했으며, 상업영화가 범람하는 영화계에서 굳이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고, 순수하게 하나의 주제로 뚫고 나가려고 애쓴 점들을 피력했다.  


 <기억의 소리>는 이공희 감독의 단편 실험영화 <거울>, <착시렌즈> 영상이 부분적으로 삽입되어 완성된 장편영화이다. 최초의 제작배경은 2010년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 기획공연으로 자신이 연출했던 ‘미디어퍼포밍아트’ 속의 2부 <기억의 소리>가 모티브가 되어 영화로 제작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중편의 분량으로 시작됐으나, 청송군의 제작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장편으로 확장되었다. 시간적 제한과 갖가지 여건으로 시나리오는 변경되고 새로운 내용들이 포함되어 다층적인 주제로 넓혀졌다. 결국은 자신의 모든 사비를 털어서 제작할 만큼 끈질긴 의욕과 열정이 솟구쳐갔다. 너무도 힘겨운 여건들 속에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그녀가 처음부터 완성까지 제작, 시나리오, 감독을 맡게 된 것은 20대부터 시작한 영화에 대한 모험이자 승부였다. 단편실험영화에서 장편을 시도하게 된 기회가 드디어 모든 걸 다 내던질 계기를 준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주로 중장년층의 문화계 인사, 역사문화전문가, 문학평론가, 철학박사, 문화연대 관계자, 젊은 영화인 등으로 다양한 계층으로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자매의 질투와 애증, 무의식의 흐름을 쫓는 다층적 의미의 심리 판타지

 일반 상업영화와는 다른 형식 및 주제, 연출의도, 35mm 필름의 뛰어난 색감과 영상의 깊이감, 영화형식의 인상적인 장점들, 동굴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무의식의 흐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열띤 반응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찾아갔다. 작품 속에 내재된 오방천이 주는 샤머니즘적인 색채, 동굴 속의 어둠과 절망으로 보이는 주제들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허무감을 토로하는 관객도 있지만, 그 반대로 하얀 천을 끌고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구원의 하얀 빛줄기로 읽혀졌다는 관객의 해석도 있었다. 이공희 감독은 그동안 몇 차례의 시사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영화 속에 담긴 다층적이고 상징적 의미에 대한 이해도가 빨라졌다는 소감을 전했다. “전생이 무엇인지는 이제 모든 젊은이들이 다 알고 있거든요.”

 

<기억의 소리>는 사이코틱한 여배우의 자살에서 시작되는 기억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자매의 질투와 애증을 보여주면서,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죄의식과 우울증, 정신병리의 내면들을 드러낸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무의식의 흐름을 끈질기게 쫓아가는 미스터리 심리 판타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때문에 기존의 스토리텔링 공식을 파괴하면서 특이한 화법의 심리표현을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한 이공희 감독은 영화 속에 시적 이미지의 중층구조를 보여주면서 하나의 퍼즐처럼 전체의 이야기를 맞춘다. 동굴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들의 불안과 상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속죄 및 치유를 다룬 주제를 끈질기게 몰고 가면서 후반부에 절정의 하모니를 이룬다. 영화 속에 현대무용과 미술,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퍼포밍아트 양식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2017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이공희 감독이 기획, 연출을 맡은 융복합 공연 <영화, 탈춤과 만나다>에 초청되었다.  


신비로운 주산지 호수와 월외폭포, 주왕산 배경의 시네포엠(Cine Poem)

경북 청송군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기억의 소리>는 국내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주산지 호수와 함께, 월외폭포, 주왕산, 송소고택, 백석탄, 청송군 내 동굴 등이 영화 속의 주요 장면으로 등장되어 작품의 주제를 더욱 높이는 효과를 주었다.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경관은 대종상 2회 수상 및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최찬규 촬영감독의 뛰어난 영상촬영으로 더욱 돋보인다. 마치 한 편의 영상시로 보일 정도로 시네포엠(Cine Poem)의 성격을 지녔고, 완성도 있는 예술영화로 평가를 받아 2017년 황금촬영상 영화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기억의 소리>는 언론의 호평과 함께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개봉할 시기에 건대 KU시네마 및 경북 청송 문화예술회관에서 영화 상영과 시낭송이 있는 ‘시네포엠의 밤’으로 초청되었다. 이것은 <기억의 소리>속의 영화음악을 시와 융합시키는 퍼포밍아트를 시도한 것이다. 또한 지난해에는 부천 판타스틱 큐브 상영작으로 ‘판타스틱 인문학’ 섹션으로 영화가 시낭송과 함께 상영된 바 있다. 이 행사들에 동참했던 계간 ‘문학과 행동’ 발행인 이규배 시인은 영화 <기억의 소리>가 아방가르드 영화정신에 매우 적합한 영화로서 이 시대의 불안한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특히 주인공들의 방황의 심리로 잘 대변해주고 있으며, 속죄와 치유의 정신을 담고 있는 강한 주제를 미학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라 그동안 전국적으로 시네포엠 행사를 펼쳐갔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영화와 문학을 접목시키는 ‘시네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가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이공희 감독은 앞으로 시네포엠, 시네 에세이 장르로 뉴미디어 대안 영화의 제작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갈 것에 의욕을 내보였다.  


또한 공연분야에서도 영상감독으로 활약해온 이공희 감독은 융복합 공연으로 <기억의 소리> 및 1987년 한국창작춤의 문제작 <적색경보>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영화 외에 문학, 융복합 공연 등의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이공희 감독의 지속적인 도전정신을 기대해 본다.

[이풍우 기자 editco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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