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칼럼]‘대한민국 광복’

기사입력 2018.09.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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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35년래의 폭염이 밀어닥친 7월의 마지막 주말, 도시 농촌 할 거 없이 전국은 온통 용광로처럼 들끓어 올랐다.’ 기록적 폭염이 이어진 올해 여름의 얘기가 아니다. 1977년 8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1940∼80년대 날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혹한’이었다.

 

 ‘동장군’이란 말이 1950년대 주요 키워드로 꼽혔을 정도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무더위를 더 겁내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신문 지면에서 ‘혹한’보다 ‘폭염’이란 단어의 사용이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기록적 폭염을 보인 1977년, 1994년, 2012년에 빈도수가 급증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아 발표된 이번 조사는 우리나라의 변화상을 다방면에 걸쳐 생생하게 보여준다. 돌고 도는 패션도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은 가수 윤복희. 1967년과 1968년 그가 짧은 치마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미니스커트’ 단어의 언급도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도 ‘미니스커트’의 언급은 대략 5년을 주기로 크게 늘어났다. 미니스커트 유행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났다는 의미다. 외식 트렌드도 시대별 차이가 뚜렷했다. 1960, 70년대 인기 외식 메뉴는 단연 불고기였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햄버거와 피자가 불고기를 추월했으나 오래 정상을 누리지 못했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스턴트 음식에 대한 언급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술 문화의 변화도 흥미롭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지면에서는 ‘소주’가 빈번하게 언급되더니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맥주’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예전에는 명품이란 단어에 ‘청자’가 연관어로 등장했으나 1990년대 이후 ‘백화점’이 그 자리를 대체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신문을 통해 돌아본 정부 수립 70년, 한국 사회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독립된 나라에서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의 대규모 주둔지가 있는 경우는 세계사에 유일하다. 역설적으로, ‘금단의 땅’이었기에 개발독재의 개발 광풍에서 비켜서 녹색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올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을 떠나 경기 평택기지로 이전하면서 용산기지 땅은 이제야 ‘광복’되었다.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이 된 것이다. 114년 전, 러일전쟁을 앞둔 일본은 용산 일대에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병영을 지었다.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지역의 부지 300만평을 강제수용, 이 중 115만평을 군용지로 사용했다. 용산기지의 태생이다.

 

일본은 이곳에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2만명의 병력을 주둔시켜 대륙 침탈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용산기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미육군총사령부가 남한에 군정을 선포하고 7사단 1만5000명이 용산에 진주하면서 일본군 병영을 접수했다. 용산기지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내걸린 것이다.

 

한국전쟁 후에 다시 용산에 들어온 미군은 이후 주한미군사령부(1957년), 한미연합사령부(1978년)를 창설하면서 용산기지를 지배했다. 용산기지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한국 국민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사실상 ‘용산합중국’으로 존재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용산기지 반환’은 우여곡절을 거쳐 2017년 주한미군 병력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8군사령부가 평택기지로 이전하고,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도 평택기지로 옮기면서 완료 단계다.

 

용산기지 땅은 일제 강점, 전쟁과 냉전, 분단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114년 만에 ‘광복’된 용산은 실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비로소 “침략과 지배,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과거로 보내고, 자주와 평화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공원” 꿈꾸게 된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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