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백두산에 울려퍼진 <진도아리랑>과 북한의 아리랑 전설

기사입력 2018.09.2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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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문경 새제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 치어다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려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만경 창파 둥둥 뜬 저 배야/ 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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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2002년)

 

<진도아리랑>! 창작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되는데, 이 때는 유교적 전통문화와 개화문명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나고, 외세의 침탈로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시대였습니다. 사설 중에는 유성기·윤선·자동차·자전거 등의 개화문물이 나타나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세태가 풍자되어 있습니다. 사설에 대한 기원설화는 두 가지가 전하는데, 하나는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설 내용에 욕·상소리·한탄·익살 등이 응집되어 부인네들의 야성을 거침없이 노출시키고 있으며, 또한 도서 지방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런 남도 민요가 북한 땅 백두산 천지에 울려퍼지다니...2018년 9월 19일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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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진도아리랑을 열창하는 가수 알리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9월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백두산 천지에서 남측 특별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남한 땅의 가수 알리(34)가 노래하는 진도 아리랑을 들었습니다. 알리는 두 정상 앞에서 천지를 배경 삼아 무반주로 '진도 아리랑'을 들려줬는데, 정상들은 R&B 창법과 판소리 발성이 묘하게 뒤섞여, 천연스럽고 구수하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을 부르는 알리를 넋 놓고 쳐다봤습니다. 특별수행원에 포함됐던 알리는 "어릴 때 배운 판소리가 이렇게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판소리’는 김정은의 조부와 부친이 싫어해서 북한 땅에서 자취를 감췄었습니다.

 

“판소리 음조와 발성법의 기본이 여유롭고 긴 시조의 음조와 탁성(쐑소리)이었으므로 그것은 아름답고 유순하고 우아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노래 음조와 자연스러운 발성법에 맞지 않는다. ⪡판소리는 남녀 성부가 갈라져있지 않고 쐑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리 시대 인민들의 사상 감정과 비위에 맞지 않습니다.⪢(<김정일선집> 2권, 59페지). 지난날 판소리가수들은 쐑소리를 내는 것을 마치도 자기들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질로 간주하면서 탁성을 창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탁성은 가수들의 발성에서 남녀 성부가 구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목소리마저 상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판소리는 우리의 민족성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민족악기의 음색에서 탁성이 나게 한데도 적지 않은 작용을 하였다.”(<조선의 민속전통 6> 민족음악과 무용, 202쪽)

 

이런 북한 ‘판소리’의 내막을 보면, 알리의 노래가 완전한 판소리는 아니더라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한민족 고유의 민요가 불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위 ‘민요의 재형상’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재형상한 민요’에는 조선로동당의 ‘방침’에 따라 “민요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준 것과 가사와 선률의 일부를 개작하여 재형상한 것이 있다.”(조선의 민속전통 6)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책들은 ‘민요의 재형상’을 논할 때, “《민요를 시대적미감에 맞게 재창조, 재형상하여야 한다. 지난날의 민요에는 가사에 어려운 한문투가 섞여있는것도 있고 표현에서 고티가 나는것도 있다.》(<음악예술론>)”는 김정일의 ‘지적’을 인용합니다. 해방 후 재형상한 민요는 <아리랑>, <도라지>, <양산도>, <성주풀이> 등의 개작입니다. 여기서 <진도아리랑>도 포함된 “아리랑 전설”의 글을 읽어봅니다.

 

<조선민족음악전집>(민요편 3)은 한반도 전역의 ‘아리랑’ 50곡을 수록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비율은 거의 반반입니다. 이처럼 많은 아리랑에 대해, <민요따라 삼천리>(최창호/평양출판사)는 “《진도아리랑》,《본조아리랑》,《신조아리랑(신아리랑)》,《밀양아리랑》,《영천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해주아리랑》, 《서도아리랑》을 비롯하여 《열두 아리랑》에 《열두 고개》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이에 깃든 전설들도 각이하나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님과의 리별이 어렵다는 뜻에서 《아난리(我難離)》라고 부른 것이 오늘에 와서는 《아리리》로 되였다는 점과 고생의 한계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여 《고계(苦界)》라고 부른 것을 오늘에 와서는 《고개》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아리랑의 전설들에서 일치하게 찾아볼수 있는 공통점.”(14쪽)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이 책에 기술된 “아리랑 전설”의 말미(末尾)이다.

 

“...리랑이 넘어간 고개마루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던 성부는 너무도 억이 막혀 가슴에 칼을 대고 그 자리에 엎어졌던 것이다. 한편 집을 떠난 리랑은 성부는 자기를 배반할 녀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발길을 돌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집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든 리랑은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가슴에 칼을 박고 쓰러진 성부를 발견하였다. 그는 성부를 부여안고 몸부림치며 땅이 꺼지도록 통곡하다가 그의 시체를 고개마루에 묻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가버렸다. 그후 사람들은 성부의 무덤이 있는 고개를 《아리랑고개》로 부르게 되였고 성부가 온밤 리랑을 찾으며 부르던 노래를 《아리랑》으로 부르게 되였다고도 전해온다.”(1986년 인민배우 김진명의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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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2018년)

 

북한은 2002년부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홍보와 외화벌이를 톡톡히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 김일성의 90주년 생일을 기념해 부친이 만든 작품으로.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으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2018년 “빛나는 조국”을 선 보였는데, ’그 나물에 그 밥‘ 같습니다. ”조국’보다는 ‘아리랑‘이 낫지 않을까요? 김정은 위원장! 더 이상 예술을 ’선전선동‘에 이용하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아리랑‘을 영원한 한민족의 상징이 되도록 해 주기 바랍니다.

 

김정은 위원장!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라는 작품은 당신의 할아버지를 위해 당신의 아버지가 온 정성을 다해 제작한 작품입니다. 아버지가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공연을 계속해왔는데...예의상 관람한 노무현 전(前) 대통령을 비난받게 한 그런 작품이지만 예술작품으로 개작(改作)하면 홍보도 되고 외화벌이도 될 겁니다. “빛나는 조국”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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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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