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黃菊丹楓의 금수강산

기사입력 2018.10.2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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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천축산 불영사 입구- 필자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중국인들이 흉노(匈奴)라고 부르는, 말 타고 전쟁하는 것이 재주인 터키계(系)의 기마(騎馬) 민족이 있었습니다. 무적을 자랑하는 진시황(秦始皇)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주로 흉노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들의 무용(武勇)이 어떠했다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북쪽의 광대한 들판에서 봄풀, 여름풀을 배불리 먹은 말은 가을에는 살이 쪄서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긴 고사성어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의 ‘천고마비(天高馬肥)’입니다.

 

과거에는 가을이 되면 먼저 회자(膾炙)되던 ‘천고마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하늘 보고 말(馬)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살찌는’ 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맑고 풍요로운 가을’을 얘기할 때는 더 더욱 외면까지 합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 책을 읽음)도 ‘별로’인 세상입니다. 그래도 구추풍국(九秋楓菊/ 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 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그리고 황국단풍(黃菊丹楓/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등은 거부감이 별로 없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국단풍’은 가을을 상징합니다. 가을! 지금이 가을의 정점입니다. 이때쯤이면 읊조려보는 백거이(772~846/자는 낙천(樂天)의 “가을밤”-“우물가에 오동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 그리고 R.M.릴케의 “가을”을 노래해 봅니다. 그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1875년)하고 스위스 발몽에서 사망(1926년)한 독일 국적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경상북도 양양에서 출생(1920년)하고 서울에서 사망(1968년)한 한국 국적의 조지훈(趙芝薰)은 릴케와 같은 시(詩)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江山)에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매년 시월이면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전통적 생활에 깃든 미의식을 노래한 조지훈을 찾습니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위치한 주실마을은 1630년 호은공 조전 선생이 가솔들을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며, 한양 조씨(趙氏)의 집성촌을 이루게 된 곳입니다. 이 마을에 조지훈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습니다. 필자는 2018년 시월 그곳에서 “민들레꽃”을 만났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럽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냐/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별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2018년 양양의 들녘에는 봄에 피는 민들레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불리는 노란 구절초가 산야(山野)에 곱게 피어있었습니다. 계곡에도 노란 국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특히 예로부터 울진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우는 불영계곡(佛影溪谷)에는 노란 빛 뿐 아니라 붉은 빛도 선명했습니다. 내장산 단풍보다는 못하지만 황국단풍(黃菊丹楓)이 아주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길이가 12m나 되는 기암절벽을 수놓은 황국단풍!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절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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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양양군 주실마을 조지훈문학관 시비 민들레꽃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월성정(越松亭)! 봉화군 청량산(870m)에는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 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양군 수비면 신원리의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과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의 백암온천(白巖溫泉)! 신라 시대에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뒤쫓다가 날이 저물어 이튿날 다시 찾았으나 그 행방이 불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괴상히 여긴 사냥꾼이 그 부근을 탐색하던 중, 발견한 사슴이 누었던 자리의 지하에서 온천이 솟고 있음을 보고 약수탕(藥水湯)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 뒤 백암사(白巖寺)의 승려가 욕탕(浴湯)을 지어 병자를 목욕시켰더니, 그 효험이 현저하였다는 백암온천! 그 외에도 봉화와 울진, 그리고 양양에는 관광자원이 많습니다.

 

2018년 시월 필자는 관광버스와 함께 했습니다. 필자는 매년 ‘봉화·울진·양양’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곳이 참 많습니다. 경관이 수려한 곳이 일본보다 더 많습니다.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미(美)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봉화 한약우 불고기와 송이버섯, 동해 바닷가 붉은 대게, 산채 비빔밥 등 먹거리가 꽤나 구미(口味)가 납니다. 관광회사의 서비스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곳곳이 한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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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세코 콘부온천 츠루가벳소우 "모쿠노쇼우"

 

일본(日本)!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차로 산길을 2시간 달리면 나오는 니세코 마을은 인구 감소 등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관광 산업 위기를 맞았지만, 지금은 '롱 스테이(장기 투숙)'의 성지로 꼽히며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의 노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관광청 출범 이후 고령화로 인한 내수 감소를 관광으로 극복하겠다며 각종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한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1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관광 전략 실행 추진회의에서 아베는 회의에 참석한 장관급 20여명에게 "2020년까지 '외국인 여행자 4000만명 방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는 또 "홋카이도 지진 때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재해 정보 안내가 미흡했다. 대책을 강구하라"고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해 두 차례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열었는데, 회의는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가 주재했습니다. 혁신적인 정책은 없었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우리 강산은 금수강산(錦繡江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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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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