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

기사입력 2019.01.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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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렌 뤼순 감옥-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제-필자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8년 7월 3일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한완상 전 통일교육부총리)가 문화역 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출범식을 갖고,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 주년 기념사업의 추진방향과 종합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2018년 1월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에 대해 언급하며 “기념관에는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의 삶과 정신을 하나하나 충실히 담아낼 것”이라며 “중국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 복원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내년 4월을 목표로 중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는 2019년! “지금 3·1운동과 임시정부(임정) 100년을 기념하려는 건, 지난 100년간 우리가 겪은 강대국 ‘갑질’의 고통, 일제 강점 36년에 대한 분노, 분단 73년을 통탄하는 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일제 잔재 청산, 분단 극복, 평화 통일의 문을 여는 일과 직결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국내 언론매체들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필자는 많은 주제 중에서 떠오르는 사건을 집필하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이 난 사건은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의거(義擧)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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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선정 인물과 주요공적

 

우선 뤼순(여순) 감옥이 있는 중국의 다렌을 찾아봅니다. 위진 시대에는 삼산이라 불렀고, 후일 고구려에 속하였습니다. 당나라 때는 삼산포, 명청 시대에는 삼산해구, 청니와구라고 칭했습니다. 1880년대에 청조가 다롄만 북쪽 해안에 포대를 쌓아 올려,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청일전쟁 후 1898년, 삼국 간섭의 대상으로서 청으로부터 관동주(다롄, 뤼순 등)를 조차한 러시아가 동청철도의 종착역을 마련해 「따르니」(Дальний; 「멀다」)라고 명명했습니다. 뤼순에 있는 함대와 요새의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또 무역의 거점 항구로 정비하여 파리를 모델로 한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에 의해, 동년 5월 말에는 일본군이 무혈 입성하여, 전후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을 맺어 일본에 조차권을 양도했습니다. 일본은 고지도의 중국어의 지명 「다롄만」에서 나온 「다롄」을 도시명으로 했습니다. 이것은 러시아명의 다리니와 발음이 비슷하게 연관됩니다.

 

다렌의 뤼순(여순) 감옥에 도착! 입구는 러일전쟁과 안중근, 신채호 선생님 등 일제 강점기의 수많은 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으러 온 사람들로 있었습니다. 뤼순(여순) 감옥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러시아 야전병원을 증·개축하여 조선 청나라 러시아의 독립투사와 정치범을 수용할 목적으로 만든 감옥입니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먼저 저장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다 보니 감옥의 입구가 보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감옥의 축소모형, 머리말과 죄수복이 있었고, 더 안쪽에는 죄수들의 수용소와 안중근 의사의 감방이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수감을 했던 독방은 감옥을 경비하는 간수부장 사무실 옆에 있으며 감방에는 안 의사가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붓과 벼루 먹 등 문방사우(文房四友)가 놓여있었습니다.

 

중국-다렌-뤼순감옥.jpg
중국 다렌 뤼순 감옥

 

감옥의 내부를 보고 나서, 강제노역 공장 15곳을 보았습니다. 더 들어가자 교형장이 나왔고, 그 옆에는 작은 쪽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은 죽은 시체들만 드나든다고 해서 ‘시구문’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 추모관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났습니다. 추모관에는 안 의사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 어머니가 안 의사에게 보낸 편지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매년 추모제가 열립니다. 필자가 갔을 때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제’!

 

[북한 <조선대백과사전 26>] “안중근(1879.9.21.-1910.3.36) : 일제의 조선 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한 애국렬사.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하는 한편 말타기와 총쏘기를 련습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다. 일제의 조선침략책동이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 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이 극도에 이르러 망국의 위협이 짙어 가고 있던 정세에서 안중근은 나라의 독립을 지켜 싸울 방책을 모색하고 해외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1903년에 중국 상해와 치프 등지를 돌아보았다. 일제침략자들이 1904년 로일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고 1905년에는 침략적인 <을사5조약>을 날조해 내자 애국적 의분을 참지 못한 안중근은 반일구국투쟁에 용감히 나섰다...1909년 10월 26일 만단의 준비를 갖춘 후 일제와 로씨아 군경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환영> 군중 속에 끼여 홈으로 들어갔다. 이또가 예정대로 할빈역에 도착하자 안중근은 권총으로 그자에게 조선민족의 원한이 서린 복수의 총탄을 안기여 사살하였고, 그자를 구원하려고 모여 온 일제의 가와시마 령사, 모리 서기관, 다나까 만철리 사장을 차례로 쏘았다. 그리고 쓰러진 원쑤들 앞에서 통쾌하게 <조선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518쪽)

 

안중근 의사에 대한 남한의 기록! 그는 1909년 우덕순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 역, 지야이지스고 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 시 암살을 준비하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森泰二郞), 남만주 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관동주 뤼순 감옥(뤼순형무소)에서 사형(교수형) 집행되었습니다.

 

필자는 본(本)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에 이어 ②하얼빈 역과 안중근”을 추후 집필할 예정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순국(殉國)를 비롯한 그의 삶을 재조명할 것입니다.

 

※사족(蛇足) : 지금 한 여당 국회의원 부친이 독립유공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정가(政街)를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친이 총 6차례에 걸쳐 보훈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가 2018년 광복절에 훈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유공자가 틀림없으니까 수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데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요? 문득 ‘한출첨배(汗出沾背)’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등에 진땀이 흐른다’ 함이니 지극히 부끄럽다는 뜻입니다. “수치심(羞恥心)은 모든 도덕(道德)의 원천(源泉)”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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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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