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하 시사칼럼] 6월은 호국보훈의 달, 6·25전쟁으로 산화한 넋을 추념(追念)

평화만큼 존귀한 것은 없다. 평화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평화는 인류가 나가야 할 길이다.
기사입력 2019.06.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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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하  부의장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우석대학교 교수/의학박사

 

[선데이뉴스신문]싱그러운 향기가 더하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 6일은 현충일,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온 6·25 전쟁 발발 69주년이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혼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제정된 날이다.

 

공공기관과 가정에서는 태극기도 조기(반기)로 게양하고 죽음도 불사한 순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당시 눈부신 활약상을 되 새겨 선양하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 조의를 표하는 매우 뜻 깊은 날이다.

 

현충일(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 (1145호로 정함) 당일 오전 10시 정각에 전국적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1분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의 시간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대 선진국으로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영광 뒤에는 그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있었기에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헛되지 않도록 더욱 힘써 나라를 가꾸고 국가 안보에 앞장 서야 한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69주년이 된다. 당시의 동족상잔의 비극 그 참상이 채 아물기도 전에 세월이 지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 잊혀져 가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국가의 존립이 풍전등화 앞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귀한 목숨을 초개 같이 바친 참전용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동족상잔 전쟁의 아픈 상혼 앞에 하늘도 울었던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들의 희생과 명예를 선양 후세에 길이길이 빛 날 수 있게 안보의식을 더 높이여야 나라가 더욱 부강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6.25전쟁 당시 어려서 총칼을 들고 직접 전쟁터에 나아가 싸우지는 아니했지만 성장하면서 전쟁의 처절한 비극을 학교에서 배우고 당시 직접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과 마을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듣고 하여 생생하게 잘 기억하고 있다.

 

특히 제 고향이 6.25전쟁의 최대 격전지 낙동강과 가까운(경북 김천시 개령면) 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 참상의 피해는 더욱 컸다고 한다. 그래서 보훈의 달과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안보의 중요성과 전쟁 없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이러한 비극이 한 반도에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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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측) 헌충일을 앞두고 4일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회원들이 무명용사 묘역에서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사진 우측) 유치원 어린이들이 서울국립현충원을 찾아 무명용사들의 묘역을 찾아 현장체험을 하고 있다.

 

펜 대신 총을 들고 죽음도 불사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된 소년병 학도의용군

 

세계 전쟁사에 동족상잔 6.25전쟁 만큼 비참한 전쟁은 없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기습남침 시 남한은 마침 공휴일이라 대부분 장병들이 외출하여 병영이 비어 미처 대항할 전투력을 상실하였고, 남침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되고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와 대한민국의 존립이 풍전등화 앞에 놓이자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학도의용군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어린학생들이 용감하게 펜 대신 총을 들고 군번도 없이 일주일간 기초훈련만 받고 바로 전투에 투입되어 미쳐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소년병들의 희생은 세계 전쟁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이다. 남한 전역을 휩쓸며 갖은 만행을 자행한 북한군, 그해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 성공으로 전투력을 잃고 북으로 퇴각하기까지 학도의용군(징집대상이 아닌 14세부터 17세까지의 소년병도 포함)활약은 대단했다.

 

국방부 군사 편찬연구소 자료와 용산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기록을 보면 학도의용군은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비롯하여 영천, 안강 등 여러 전투에 투입되어 대구와 부산을 사수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지난 2010년 이재한 감독의 영화 “포화 속으로”는 당시 서울성동중학교 3학년 16세 소년병 이우근 군이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피묻은 그의 속옷에서 발견(어머니 어쩌면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된 어머니에게 미쳐 보내지 못한 편지를 주제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 전투에 학도병 71명이 북한 정규군과 치열한 교전으로 48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23명은 부상이나 행방불명 또는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해 맑게 웃고 장난치며 뛰어 놀아야 할 소년들이 나라를 지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쳐 하늘에 별이 된 학도의용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현충일과 6.25를 맞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지난해 4월 27일 남북간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남과 북 둘로 나누워 진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숨결을 불어 넣는 계기로 삼아 다시는 6.25전쟁과 같은 참혹한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남과 북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 한 반도의 미래에 희망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탄생 새 역사가 기록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당시 국방부군사 백서에 휴전 시까지 군인들에 극한되지 않고 한반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각종 피해를 입었다. 국군전사 14만여 명, 부상자 45만여 명, 실종, 포로 등 포함 약 62만여 명에 달하고, 민간인 사망 24만여 명, 학살 13만여 명, 부상자, 납치, 행방불명 등 모두 100만여 명에 이른다. 또 1천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산가족과 전쟁고아 10만여 명 등 그 피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양성현 기자 ysh0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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