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칼럼] 역사 정치 무기화

기사입력 2019.07.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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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인천시의회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한 월미도 주민피해 보상을 추진키로 했다.

 


전쟁 69년 만에 국가가 주민 피해를 보상하자는 유래없는 일이다. 그러나 형평성 논란과 함께 자칫 사회적 갈등만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천시의회는 안병배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과거사 피해 주민 생활안전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 돌격 등으로 피해를 입는 월미도 원주민 또는 상속인에게 생활안전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ㅇ이 골자다. 월미도에서는 당시 주민 100여명이 목숨을 잃고 30~40세대가 탈출했으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다. 조례제정의 법적근거는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월미도 원주민에게 합당한 보상’을 권고한 것이다. 인천시의회는 2011년, 2014년에도 각각 조례 안을 마련했으나 ‘지방자치단체 업무가 아닌 국가업무’라는 이유로 무산됐다.

 

올해 법제처가 ‘지자체 업무’로 유권해석 해 조례 제정에 이르게 됐다. 조례를 통과시킨 기획행정위원회는 70명 전원이 만주당이다. 월미도 원주만 귀향대책위원장은 “70여년간 고향을 찾지 못한 억울함이 일부 해소됐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실제 월미도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고원이 조성되는 등 원주민의 귀향길이 막혔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국토가 초토화됐고 피해를 보지 않는 국민이 없다는 점에서 과도한 피해보상 적용이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연합군의 군사작전으로 나치 독일군에 점령됐던 벨기에, 네덜란드, 폴란드가 쑥밭이 됐지만 이 때문에 피해보상을 했다는 기록은 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전 국민이였는데 유독 인천상륙작전 과정에 대해서만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앞서 문체부 소속 ‘도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 가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유족 등록사업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활동을 시작한 심의위는 1만야 유족을 등록하고 2009년 활동을 종료했다. 그러다 2017년 특별법 개정과 함께 활동을 재개했다. 호남 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동학혁명 희생자가 20만~30만명에 이르는데 1만여명 등록은 너무 적다“며 등록기간 제한을 해제한 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당시에도 120여년 전 조선왕조에서 벌어진 일을 현 정부가 세금을 써가며 명예 회복하는 것이 합당이냐는 비판이 많았다. 인터넷에는 ”이런 접근이라면 한강다리 끊겨 피난 못간 서울시민이나 임진왜란 유족들도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이 다수다. 거기에 과거 역사를 현실에 소환해 정치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만드는 국민에 대한 우려도 크다.

 

최근 잇따른 ‘친일논쟁’ ‘공영방송의 이승만 폄훼 발언’ ‘근 현대사 바로 세우기’ 등도 마찬 가지다. 작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주 4·3집회에선 ‘화해와 평화’ 대신 4·3학살 주범 미국은 사과해라”는 반미 구호가 넘쳤다. 4·3과 여순 사건의 배후는 공통점으로 ‘남도당’이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서훈자 1만 5180명을 전부 조사해 ‘친일파’를 가려내고 좌익은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문쳅 소속위원회가 120여년 전 동학농민운동 참가자 ‘명예 회복’을 한다며 유족 등록 사업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당시 사형을 선고받고 사망한 피고인들에 대한 첫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사건 71년만에 ’다시 재판하라‘는 것이다. 국군도 법원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혼란한 시절이었는데 무슨 기록이 잘못됐다고 다시 재판하나. 이런 식이면 당시 모든 사건이 재심되야 할 것이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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