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③봉산탈놀이와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기사입력 2020.03.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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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봉산탈춤 제67회 정기공연-길놀이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봉산탈놀이 《민속》 황해북도 봉산지방에서 성행한 탈놀이. 재치있는 대사와 춤과 노래가 결합된 탈놀이의 하나로서 다채롭고 개성적이다. 미신적 요소와 시정인적인 기분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 있으나 춤동작은 약동적이며 활달한 것으로서 인민적인데가 있다. =봉산탈춤.”// “봉산탈춤[명]=봉산탈놀이”(<조선말대사전(2)>,280쪽) / 

 

이미 揭載된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②황해북도 봉산탈놀이와 평양 봉산탈춤>을 다음에서 요약합니다. “[봉산탈놀이] 지난날 황해북도 봉산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탈놀이. 무용, 노래, 재담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놀이는 여러가지 형태로 진행되였는데 그 가운데서 12개 장면으로 구성된 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고, 사용되는 가면은 상좌, 목중, 사당, 로장, 사자, 량반, 소무, 신장수, 취발이, 말뚝이, 미얄, 덜머리, 원숭이 등”입니다.

 

윗 글은 북한이 ‘봉산탈놀이’를 소개하고 정의(定義)를 내린 용어 해석입니다. 황해북도 봉산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탈놀이로 북한 민속예술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는 “12개 장면”의 ‘탈놀이’가 많이 알려져 있다고 했지만, <조선의 민속전통(민속음악과 무용)>에는 “11과장”이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 봉산탈춤의 명맥(命脈)을 잇는 황해북도예술단은 “민속가무극”이라고 하면서 원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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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지도

 

<로동신문>은 1910년 봉산읍이 사리원으로 옮겨간 후에는 경암루 앞마당에서 진행되었고, 이전의 봉산탈춤대본은 ‘7과장, 11과장, 12과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 민속무용>은 봉산탈춤놀이가 “11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화보 <조선>(주체90(2001)년 3호)에는 “12개 장면으로 구성된 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야외에서 연희되는 봉산탈춤놀이(<조선>, 35쪽, “봉산탈놀이”)가 무대에서 공연되는 “민속무용 <봉산탈춤>”으로 탈바꿈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야외의 ‘봉산탈놀이’, ‘봉산탈춤놀이’ 그리고 무대의 ‘봉산탈춤’입니다. 

 

<로동신문>은 북한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류만혁 박사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김일성이 “해방 후 건국사업의 바쁘신 속에서도 친히 봉산탈춤을 예술공연종목의 하나로 지정해주시고...봉산탈춤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봉산탈군들로 <봉산탈춤보존회>를 결성하여 봉산탈춤을 보존하도록 국가적인 조치”도 취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 ‘봉산탈춤보존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김일성의 ‘령도’ 때문에 ”지난날 야외에서만 진행되던 봉산탈춤이 무대에 오르고 봉산탈춤의 원형에 기초하여 탈춤의 다양한 형상이 창조되여 여러 극장들에서 공연“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봉산탈춤은 실내 무대에서만 공연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봉산탈춤’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봉산탈춤의 대표적 연회본은 1936년 8월 백중날 사리원읍 경암산 아래에서 공연된 봉산탈춤을 오청, 임석재, 송석하 등이 연희자 이동벽, 김경석, 나문석, 이윤화, 임덕준, 한상건 등의 구술에 의해 채록한 연회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수정 보완을 통해 각자의 채록본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이동벽 구슬본, 김수정 구슬본( 김일출<조선민속탈놀이>), 권택무 수록본(조선의 민간극)이 채록되어 있고, 남한에서는 월남한 김진옥, 민천식 등의 구술을 바탕으로 1965년 8월에 이두현이 대본을 채록했습니다. 황해도에서 성행했던 봉산탈춤은 뜻밖에 남한 땅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의 ‘봉산탈춤’ 입니다. 남한에 ‘봉산탈춤보존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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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북한 황해북도 예술단 무대공연.

 

다음은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 홈페이지 메뉴-봉산탈춤 소개]입니다. "봉산탈춤은 오래전부터 황해도 여러 고장에서 추어오던탈춤의 하나로서 '해서탈춤'의 대표격이 되는 탈춤이다. 봉산탈춤은 원래봉산구읍 경수대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옮기고 경의선도 개통하게 되어 이 놀이도 그후 사리원 경암산 아래에서 놀아왔다. 해방 후 월남한 몇 분의 연희자들에 의해 1958년 이래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고 했습니다.    

 

봉산탈춤은 1967년 6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김진옥(1894~1969,첫목중·노장역), 이근성(1895~1978, 목중·취발이·사자역), 김용익(1902~79, 목중·마부·거사역), 양소운(1924~2008, 사당,미얄할멈역), 최경명(1912~85, 말뚝이·취발이역), 김선봉(1922~97, 상좌·소무역), 윤옥(1925~2004, 상좌·덜머리집·무당역), 오명옥(1906~87, 피리·해금·악사)등 8명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 현재 모두 타계하였고, 김애선(1937년생, 소무·상좌·목중역)은 1989년에 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습니다. 김기수(1936년생, 노장·목중역)는 1987년에 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는데, 2020년 2월 6일(목)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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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보존회-서울 국가무형문화재 교육관 805호.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 ‘봉산탈춤 전승 교육’, ‘봉산탈춤 강습회’ 등이 중요 사업입니다. 그리고 정기공연, 미국 전 지역 순회공연, 유럽, 벨기에 외 6개국 순회공연, 미주 카나다 지역 순회공연, 인도 뭄바이 등 해외공연, 단오제 등 국내 초청공연, 기획공연 “고3 수험생과 함께하는 봉산탈춤”, 등을 계속해 왔고, 미국 뉴욕 국제훼스티발 · 중국 남풍현 가면축제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에 참가했습니다. 남한의 봉산탈춤보존회는 북한의 탈춤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민속예술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의 [보존회 연혁]에는 "2020.01.18. (가칭)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보존회 창립 총회"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남한에서는 ‘봉산탈춤보존회’가 ‘봉산탈춤’을 주도합니다. 북한에는 분명 ‘봉산탈춤보존회’가 존재합니다. ‘봉산탈춤’의 고향은 분명 황해북도이고, 남한의 ‘봉산탈춤’은 한민족의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왕래하며 해법을 찾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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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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