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쫒겨 살지 않으려면, 돈을 알아야 한다" 청년 재무법인 컨설턴트를 만나다

자산,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몰라도 알려고 하지 않아서 없는 것
기사입력 2020.06.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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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청년 재무 컨설턴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도움의 본질’에서 시작하다

-자산,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몰라도 알려고 하지 않아서 없는 것”

-선진국 비해 ‘재무와 보험에 대한 교육’ 부족해… 막연히 부정적 인식 바꾸는 게 목표

 

*인터뷰 내용은 본인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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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법인 컨설턴트, 김영우[가명]씨)

 

Q.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우(가명, 남, 26, 서울 염창동)라고 해요. 서울 토박이에요. 도림동에서 태어났고 장남이에요. 어릴 땐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죠. 부모님은 두 분 다 회사를 다니셨는데, 제가 생기고 어머니는 주부로 전향하셨죠. 그래서 어릴 땐 늦둥이인 이모와 남매처럼 놀았던 기억이 나요.


옛날을 떠올리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많이 생각나요. 놀이동산을 자주 데리고 가셨어요. 당시 아버지께서는 1t(톤) 트럭을 타고 다니셨는데 언젠가 동생이 태어나는 날에도 그 트럭을 타고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7~8살 때 (서울) 염창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당시 그 동네는 모두 공장촌이었어요. 새로운 건물은 이마트가 하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초등학교 중학교 2학년 때쯤 아버지께서 다니던 대기업을 정리하시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자판기 관련 사업이었죠. 사업이 좀 잘 돼서 출장도 자주 다니셨어요. 저는 당시 남중 남고를 다녔는데 성격이 조용했어요. 그러다 보니 돋보이고 싶어서 (소위)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어요. 방황을 한 거죠.


어떤 날 학교 자율 활동 시간에 한 상담사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는데, 그때 집중해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강의 주제가 “내가 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라는 주제였어요. 그때 꿈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고민을 했었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했어요.

 

학교 방송실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방송, 사진 쪽에 관심을 가졌었어요. 카메라가 너무 신기했었죠. 예쁜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해서 예고(예술 전문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됐죠.


고등학교에 가서는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이 아니라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져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또 이때부터 입시에 대한 욕구도 강해져서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00대 사진학과를 희망했는데, ‘종군기자(전쟁이나 재난 지역에 가서 현장 사진을 찍고 전하는 전문 사진 기자)’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았기에 그쪽으로 진학을 하진 못했어요.


당시 그 학교에 이슈가 있었어요. 저널리즘 강의를 맡은 교수님이 성추행 사건이 휘말렸죠. 그래서 해당 강의가 사라졌어요. 충격도 컸고, 고민도 늘어났죠. “이제 나는 뭐를 해야 할까”무언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그런 점도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다시 교회에 부지런히 나가기도 했고요. 종교가 가치관에 영향을 많은 영향을 줬어요.


그렇게 사람을 돕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의사, 간호사 등 의학 쪽을 생각하게 됐어요. 아버지께서도 허리가 아프셨고요. 그래서 예고에서 혼자 이과 공부를 시작한 거죠. 수에 대한 개념도 없었는데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겨우겨우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보건과 관련된 여러 학교의 학과에 원서를 넣었어요.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저는 몰랐어요. 어느 날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에 대해 대화하시는 것을 우연히 듣고 현실을 알게 됐죠. 그리고 간호학과에 진학을 했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부모님이 힘들게 지원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학자금 대출도 스스로 받았고, 장학금도 받아야 했기에 죽자 사자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차석으로 졸업을 했어요. 머리가 좋지는 않아요. 반복학습을 미친 듯이 했죠. 노력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첫 직장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었어요. 간호사로 근무를 했죠. 그런데 지금은 재무 설계사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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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험 설계 기반의) 재무 컨설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어요. “외할머니가 쓰러지셨다"라는 거예요. 교통사고였죠. 새벽 청소를 하고 퇴근하시다가 사고를 당한 거였어요. 수술은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았어요. 알고 보니 ‘보험’이 제대로 들어있지 않았고 어머니도 모르셨더라고요. 그때 보험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느꼈어요. 그때를 계기로 아는 형을 통해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생각해보면, “살면서 항상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언젠가 ‘미생‘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주어진 현실에만 갖춰서 버티기만 하기보단, 내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그대로 꾸려 나가고 싶었어요. 저는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경험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봐야겠다고 다짐했죠.


쉽게 말하면, 이 일은 ‘보험 변호사’ 로 생각하면 돼요. ‘보험’ 또한 ‘금융’이거든요. 내가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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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을 하면서 내가 얻었거나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음...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사람 대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것 같아요.


예전에 간호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손 씻기’였어요. 손 씻기는 위생의 가장 기초, 예방단계예요. 저는 이 보험도 재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손 씻기’라고 생각해요. 혹시 모를 일을 예방하기 위해 삶에서 최소한의 보장을 채우는 거죠.


간호는 그다음 단계, 실제 치료죠. 보험은 그 사람이 재무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게 예방해 주는 단계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부분이에요.


원래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도 했고, 지금도 이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도움을 통해 사람을 얻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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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내에서는 ‘보험설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있는데, 일을 하면서 오해를 받은 적은 없었는지?


정확하게는 재무 법인 개인 사업자이지만, '보험 설계 기반'의 재무 컨설팅이다 보니까 오해를 받았을 때도 있죠. 감수하고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험’에 대해서는 국내는 아직까지도 인식이 좋지 않아요. 저희는 그런 인식을 바꾸는 직업이에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보험설계사가 굉장히 되기 어렵고,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직업이에요. 국내와 인식이 다른 거죠. 예전에 국내에 처음 보험이 보급됐을 당시, 설계사분들 중에 전문성보다 지인과 눈대중으로 일을 했던 것이 업계에 독이 된 거죠. 잘못된 방법이 전통으로 이어지다 보니 인식이 나빠진 거죠.


미국이나 유럽 지역에서는 보험·재무 설계사가 아주 인정받는 직업이고, 아무나 될 수도 없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금융·보험에 대한 교육을 꼭 해요. ‘돈을 관리하고 쓰는 법’에 대해 일찍부터 가르치는 거죠. 돈을 쓸 때 먼저 보험(보장자산)을 준비해 자산의 안정성을 갖추고, 그다음으로 저축을 하고, 그 뒤에 남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실용적인 부분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배울 수밖에 없어요. 부모님이 아는 선에서 밖에 알려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님이 모르면 올바른 경제관념을 가질수도 없고, 돈을 모으는 법도 모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부자가 부자를 낳고 가난이 가난을 낳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돈도 내가 관리할 줄을 알아야 돈에 끌려다니며 살지 않게 돼요.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해야지, 내가 돈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허비하게 될 테니까요.


금융을 알아가다 보면 더 알아갈수록 신기해요. 보험을 아까워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는 보장 자산에 대한 관념이 없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거죠. 재무에 대한 정의가 없이 당장 나에게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만 끌려다니는 거예요. 그러니 돈에 쫓겨서 살게 되죠.


어떤 분들은 재무 얘기를 하면 무조건 싫다는 식으로 회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돈과 재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회피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야 내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재무 설계, 교육, 보험 등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이 정말 중요한 거죠.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르면 전문가에게라도 배워서 알아야 하는데 알려고 조차하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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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씨의 개인 사진) 

 

Q. 삶의 목표가 있다면?


영업을 통해 결국은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팀을 꾸려야 하거든요, 간호 관련 사업에 관심이 있어요. 초고령화 시대가 왔기에 점점 아픈 분들이 늘어날 거예요, 노인분들은 건강에 대한 욕구가 아주 큰데, 이를 국가에서 받쳐주지 못하면 안 되니까요. 전문 간호 기업을 만들고 보험도 연계해서 그분들이 안정적이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돕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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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좌우명이나 문장이 있나요?


"기어가든, 걸어가든, 뛰어가든, 날아가든, 도착지가 있다면 문제없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무조건 도착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곽중희 기자 rhkrwndgm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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