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생샷에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어딜가나 인생샷… 숲 속 서점에 적힌 한 마디 “인생샷 말고 인생책 고르시길”
기사입력 2020.07.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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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지난 24일 룸메이트와 한 카페에 들렀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인스타그램 인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카페를 나서자 룸메이트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렸다. 


“좀만 더 아래로, 이렇게 다리가 길게 나와야 돼” 


기자 또한 한 컷을 남겼다. 요즘 우리의 ‘인생샷’은 이렇게 하나 둘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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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충북 단양에 위치한 '새한서점')

 

지난 27일 단양 외할머니 댁을 방문한 겸 새한서점에 들렀다. 충북 단양 적성면 현곡리... 주소만 들어도 두메산골일 것 같은 느낌, 맞다. 새한서점은 깊은 산속에 위치한 목재로 지어진 오래된 책방이다. 단양에서는 꾀 유명해 많은 관광객들이 직접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거나 혹은 걸어서 찾아오는 명소다. 


서점 주인에 따르면, 이 서점에는 13만 여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 절판도서부터 족히 30~40년은 된 전공서적들까지. 가희 숲 속의 문화유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군다나 영화 ‘내부자들’의 촬영지로 알려진 후에는 찾아오는 방문객도 부쩍 늘었다. 


그런데 찾는 손님이 늘었음에도,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의 시름은 자꾸만 늘어가고 있다. 이유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책을 읽고 구매하기보다, 책과 함께 ‘인생샷’만 남기고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서점 곳곳에는 “새한서점의 책들은 소품이 아니라 읽는 책들입니다. 사진만 찍는 소품으로 사용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내용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 온 한 문장. 


“인생샷보다 인생책 고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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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새한서점 내부에 적혀있는 문구들)

 

이승준 새한서점 매니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메모를 붙여놓게 된 지는 약 2년 정도 됐다. 서점 주인인 아버지께서도 사진촬영만 하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신다. 물론 새로운 장소에 와서 예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책과 서점을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한 소품과 배경으로만 이용하는 분들이 늘어나니까, 사진을 찍기 위해 책을 꺼냈다가 제자리에 꽂아놓지 않거나, 바닥에 놓고 찍는 등의 경우가 많아져 서점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쪽지를) 붙여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사지로 선정을 해놓고 사진촬영을 목적으로 오는 단체 분들도 많았다”며 “예전에는 사진 찍는 것을 좀 자제해 달라고 직접 얘기했지만, 대부분은 뒤돌아서서 다시 몰래 찍고 SNS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또한 “처음에는 사진도 좀 찍고 책도 좀 살려고 왔다고 하셔서, 사진은 자제해달라고 하니 그냥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다”며 “이런 경우 목적 자체가 사진을 찍기 위함이니 서점으로서 새한서점을 좀 더 알리고, 서점으로서의 가치를 찾고 싶은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부분이 컸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물론 출사나 촬영하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점 관리, 인력 문제 같은 운영부분에서 감당이 되지 않기에 지금은 최소한의 에티켓을 지켜달라고 말씀드리고 있다”며 “추후 서점 운영이 좀 더 잘 돼서 인력충원이나 운영이 용이해지면, 입장료를 받고 그에 대한 문화 서비스도 제공하고, 사진촬영에 대해서도 더 자유롭게 개방할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방문한 27일 오후 3시에도 새한서점은 인생샷을 찍기 위한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서점에 방문한 A씨(여, 50)는 “SNS를 통한 공유와 소통이 일상화된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점의 본질이 어디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서점 주인의 간곡한 부탁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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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스타그램 유저들이 게시한 새한서점 관련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어떻게 깊은 산 속에 이렇게 큰 서점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호기심과 인생책을 골라가겠다는 집념보다도, 예쁜 사진을 한 컷 남겨야 한다는 의지만이 방문객들에게는 더욱 큰 가치가 된 것이다.


이처럼 ‘인생샷’ 찍기는 주로 10~30대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40대 이상의 세대도 자신의 일상을 가볍고 편하게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인생샷’ 문화가 ‘보여주기’와 ‘과시하기’에만 집중해 공간이나 활동의 본질을 흐리고 품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2일 MBC 뉴스에 따르면, 멕시코 한 생태공원에서는 한 여성에서 곰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셀카로 찍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포착됐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셀카로 인생샷을 남긴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한 아버지가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가파른 절벽에 어린 아들을 매달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란 말도 맞지만, 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메라에 찍히는 대상의 '생명과 가치’라는 점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예쁜 인생샷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남기기를”


[곽중희 기자 rhkrwndgm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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