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대한민국의 광복절(光復節)과 북한 ‘조국해방의 날’

기사입력 2020.08.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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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조국 광복을 환영하는 인파. 1945.8.15.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771년(영조 47) 장한철(張漢喆)이 폭풍으로 표류하다 귀국한 경험을 쓴 기록인 <표해록(漂海錄)>에는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는 비록 살상만하고 표독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라고 했고, 뱀은 간악하나 약제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저놈의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라고 했습니다.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 사람들을 악질 ‘왜인’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만행(蠻行)을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한국영화 <군함도>는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했던 ‘지옥섬’ 이야기인데, 이것만 가지고도 답은 충분합니다. “쪽발이 왜인‘이라고 卑下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패망(敗亡)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 우리 한국인들은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라고 노래했습니다.

 

광복절-천안-독립기념관에서-74주년-기념식-2019.8.jpg
광복절-천안 독립기념관에서 74주년 기념식-2019.8.15

 

 

광복!(光復)! 광복은 문자 그대로 “빛(光)을 되찾음(復)”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을 원년으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광복절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통해 전개된 한국의 군정기에 따라 한반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으며, 이후 양측 모두 이날을 기념하지만 구체적인 의미가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고, 1948년 같은 날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과정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45년의 ‘민족 해방’만을 기념하며 정권 수립은 다른 날짜에 이루어졌으므로 따로 ‘인민정권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광복절(光復節)!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국경일로 법제화함으로써 매년 양력 8월 15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광복(光復)'에서의 '광(光)'은 '빛'을 의미하는 명사적 표현이 아니라 "영예롭게(光) 되찾음(復)”이라는 부사적 해석으로 쓰입니다. 즉, 영예롭게 주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년도인 1945년을 광복절 원년으로 계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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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서울 마포형무소 앞. 1945.8.16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통해 전개된 한국의 군정기에 따라 구 대한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과 공산주의 체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으며, 이후 양측 모두 이날을 기념하지만 구체적인 의미가 크게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과정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번도의 광복 주역은 모든 한민족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오로지 김일성(金日成) 뿐이라고! 그의 원래 이름은 김성주(金成柱 or 金聖柱)이고, 만주 빨치산 시절인 1938년 무렵부터 이후 소련군 시절 8.15 해방 때까지 한자로 ‘金日成’이란 이름을 쓴 것이 확인되었으며, 해방 직후 평양에 온 초기에는 김영환(金英煥)이란 가명을 쓰다가, 1945년 10월 14일 대중 앞에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이름으로 처음 나섰던 인물! 그가 갑자기 ‘광복’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후일 “소련이 세워 둔 꼭두각시 지도자”, “사이비 종교 교주 & 희대의 독재자”로 까지 평가된 김일성! 북한은 광복절을 그의 업적이라고 하며, ‘조국해방의 날’이라고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 대리자’에서 ‘일인 독재자’로 변신한 김일성! 2012年 8月 15日字 <로동신문>은 “백두산의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라는 기사에서 김일성을 우상화하는데 김철의 서사시 <백두산>과 김일성이 ’친필‘로 썼다는 <반일전가>를 이용했습니다. “백두산”은 창작 과정에서 김일성이 시인을 직접 불러 고주알 메주알하면서 수정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작품입니다. <반일전가>는 <조선문학사>에서도 김일성 친필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라고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광복절에 시(詩)를 통한 김일성 우상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다음은 그 기사의 일부 입니다.

 

-“백두산의 눈바람아 이야기하라!영명하신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민족의 대 경사, 조국해방을 맞으며 남녀로소가 모두 떨쳐나 해방의 기쁨에 울고 웃으며 목 놓아 부르고 부른 환호성이 오늘도 이 땅우에 메아리치는 것만 같다...오늘도 천만군민의 가슴을 더욱 불타게 하는 것은 백두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잃었던 나라를 찾아주신 절세의 애국자,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고마움의 정이다...간악한 원쑤들을 부셔버리며, 가혹한 설한풍의 울부짖음소리를 짓누르며 울려퍼진 불후의 고전적명작 《반일전가》, 정녕 그것은 백두산총대로 기어이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을 이룩하시고야 말려는 백두산장군의 신념의 선언이였다...”조국해방의 력사적 위업 실현! 그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장장 20성상 항일의 피어린 길을 헤치시며 총대로 이룩하신 민족사적인 사변이다.”-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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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광복절 노래-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

 

<광복절 노래>를 불러봅니다. -1.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꿈 엔들 잊을건가 지난 일을 잊을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힘써 나가세 힘써힘써 나가세-(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 8월은 분명 ‘광복의 달’ 입니다. <8월의 강>!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에 지닌...”(박두진 지음)// 한민족의 비극을 생각나게 하는 8월의 시(詩) 입니다. 

 

 

그리고 시인(詩人)은 “팔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 민족은 쉼 없이 평화를 위해 항해(航海)를 계속해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찬 ‘광복절’은 미래의 통일을 위해 순항(順航)을 할 것입니다. 김일성도 죽고, 김정일도 떠난 지금, 북한의 ‘조국해방의 날’이라는 배는 미구(未久)에 좌초(坐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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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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