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2020년 여름과 가을 사이의 팔월(八月)을 보내며

기사입력 2020.08.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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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여름- 8월의 천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누군가는 여름은 개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닫혀진 창(窓)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밖으로 열려진 여름 풍경은 그만큼 외향적이고 양성적 입니다. 그 여름의 숲은 푸른 생명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音響)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은폐(隱蔽)가 없고 침묵(沈默)이 없는 여름의 자연(自然)은 나신(裸身)처럼 싱그러웠습니다.

 

또 누군가는 여름은 비밀(秘密)을 간직하기 어려운 계절(季節)이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수줍은 소녀들이 여름의 더위 앞에서는 흉한 우두 자국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고독을 취미로 삼고 있는 우울한 철학도는 복중(伏中)의 무더위 속에서 밀실(密室)의 어둠을 버렸습니다. 육체도 사색도 모두 개방시켜야만 했던 지난날의 여름입니다. 지금은?

 

그 여름을 시인(詩人)들이 노래했습니다. 서양(西洋)의 소설가·시인 R.L.B.스티븐슨은 “겨울이면 어두워서 일어나/ 누우런 등불에 옷을 입는데./ 여름은 아주 달라/ 밝아서부터 자지 않으면 안된다.”(여름 잠자리)라고! C.벤은 “여름이 끝나는 날”에서 “여름이 끝나는 날/ 마음 그곳에도 기치는 떨어진다/ 화염(火焰)은 어디로 실려가고/ 분류(奔流)도 유희(遊戲)처럼 사라져갔다.”고 노래했습니다.

 

중국(中國)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사람들은 모두 더위에 괴로워 하는데/ 나는 여름 해가 긴 것을 좋아하노라”라고 했고, 이백(李白)은 “백우선(白羽扇)을 부치기도 귀찮다. 숲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건(巾)을 벗어 석벽에 걸고/ 머리에 숲바람이나 쐬자.”(하일산중/夏日山中)고 노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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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8월-최고기온 33도-폭염주의보-서울 광화문-2020년8월19일.

 

한국(韓國)의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1901~1981)는 “삼복 한 더위! 담묵(淡墨)을 풀어 놓은 듯한 회색 구름이 한 점 두 점 시뻘건 해를 가리고 지니간다. 해는 성난 듯이 회색 구름을 흘겨보았다. 또다시 회색 구름이 뭉게뭉게 빈정거리며, 성난 해를 놀리고 달아났다. 한때, 또 한때 양털 같은 회색 구름은 끊일새 없이 태양을 지근거리고 달아났다. 해는 화가 하늘 끝까지 뻗쳤다. 안간힘은 ‘쿵’하고 최고의 열을 내어 구름을 물리치려 한다. 그러나 구름은 어느결에 바다같이 하늘에 가득찼다.”라고 썼습니다.

 

서양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문인(文人)들은 아주 다양하게 ‘여름’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여름을 글로 쓴 문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코로나의 여파(餘波)가 문인들의 ‘熱情’을 식혔을 수 있습니다. 시인들의 여름 노래는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수들의 여름 노래는 그나마 울려 퍼지기도 했습니다. [2020년 여름과 가을 사이의 팔월(八月)을 보내며] 여름을 노래한 시(詩)가 지금이라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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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천주봉 –김원식 作, 금강산의 가을(201cmx96cm)

 

2020년 팔월이 벌써 종착역 앞에 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목숨과 8월을 사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른 시인은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에 지닌...팔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쉼 없이 가을을 향해 항해(航海)를 계속해 왔습니다.

 

이제 곧 ‘가을’이 곧 찾아옵니다. 벌써 가을 노래가 그리워집니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대중가요! 먼저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그리고 패티킴의 다음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 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시인(詩人)들의 가을 노래! 먼저 프랑스 국민들이 애송(愛誦)하는 뽈 베를렌느(Paul Verlaine)의 ”가을의 노래“를 불러봅니다.-”가을날 바이올린 가락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쓰려라./ 종소리 가슴 메여 나 창백히, 지난날 그리며 눈물 흘리네./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낙엽 같아라.“-

 

일제강점기 ”메밀꽃 필 무렵“ 등을 저술한 소설가 이효석(李孝石/1907~1942)은 ”落葉을 태우면서“에서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이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땅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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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가을 단풍.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가을 하늘이 맑고 말이 살찜), 등화가친(燈火可親/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까지 책을 읽음), 구추풍국(九秋楓菊/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황국단풍(黃菊丹楓/가을을 상징하는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각로청수(刻露淸秀/가을의 맑고 아름다운 경치) 등 수식어가 많습니다. 그 가을을 시작하는 ‘9월’이 곧 우리 곁에 옵니다.

 

2020년 9월! 코로나 세상이지만 9월은 옵니다. 그러나 9월을 맞는 우리는 마냥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올 가을엔 ‘즐거운 여행’도 하기 힘들고, ‘신명 나는 놀이’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문학작품의 세계는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것입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2020년 9월! 2020년 가을! 구추풍국(九秋楓菊)가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에서 코로나가 추풍낙엽(秋風落葉)과 함께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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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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