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시 촛불 속으로... 민주화는 끝나지 않았다, 송운학 촛불계승연대 상임대표 인터뷰#2

퇴색된 촛불... 개헌과 공익감시단체 설립이 절실하다
기사입력 2020.10.2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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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한국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지만, 가슴의 외침을 따라 3번의 징역과 중정(당시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탄압 아래 파묻힌 청춘. 하지만 다시 촛불로 꽃피운 그 삶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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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운학 촛불계승연대 상임대표) 

 

Q. 아이고... 참 파란만장했네요. 그래서 시민운동권으로 나오신 건가요? 


86년 석방되었지만,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약 1년간 휴식을 취했어요. 87년 민주대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각각 잇달아 전개되었어요. 그 이후 김영삼 선생과 김대중 선생이 분열했을 때 저는 실생활에서의 진보를 목표를 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 이름으로 독자적인 대통령 후보를 내자고 주장했어요. 또, 김영삼 정당이건 김대중 정당이건 민주연합정부를 만드는데 동의한다면, 공동실천최소강령을 만들어 함께 정권교체를 이루고 민주개혁, 민생복지 등을 실현하자고 제안했어요. 처음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시간이 부족하여 제가 백기완 선생을 직접 대통령 후보로 호명하여 추대했어요. 


기적처럼 무소속후보로 등록이 되었어요. 유세과정에서 큰 주목도 받았어요. 특히, 후보단일화진영과도 연대했어요. 그리하여 김영삼 후보가 민주연합정부를 만드는데 동의한다면서 공동강령을 만들기 위한 협상장에 나오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백기완 후보 진영 내부의 다양한 의견차이 등으로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어요. 게다가 87년 대선시기 활동으로 88년 4월경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약 20일 정도 모진 고문을 당했어요. 74년과 88년 두 차례 당했던 고문에 대한 기억이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도 없어요.  


약 10개월 후 석방되어 1989년에는 전국민족운동연합, 90년에는 민중당에 동참했고, 94년부터 약 2년간 경실련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96년 꼬마민주당에 동참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도저히 돈이 없어서 정치를 계속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96년부터 정계에서 손을 뗐어요.

 

이후 전국소기업연합에 동참하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상담을 시작했어요.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6~7년 동안 경영 상담 회사를 운영했죠. 민족‧노동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잘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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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군요... 2016년부터 운동권에 다시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 또 다시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해요.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보면,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확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자꾸만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니까 시민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달리 사회를 바꾸고 싶은 열망이 큰 편이에요. 96년부터는 후원회원으로 만족하면서 활동욕구를 억누르고 살았는데 열정과 의지가 남아 있으니까 또 하게 됐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2016년 박근혜 前(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큰 감동을 느낀 것이었어요. 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새로운 감회로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뜨거워졌어요. 약 30년 동안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바람을 맞고 실패한 줄 알았던 장면들이 스쳐가면서 이러한 시행착오와 희생 끝에 “민주화가 조금씩 오고 있구나. 진정으로 우리 사회와 국민이 변하기 시작했구나. 대격변기가 도래했구나.”라고 느꼈어요.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들도 저를 부추겼어요.  

 

그래서 역사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민운동을 시작했어요. 2017년 3일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된 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했죠. “그때 박근혜 대통령을 공천한 이들에게 책임을 져라”고 촉구했어요.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개혁연대민생행동을 만들었어요.


개혁연대민생행동의 제안으로 2017년 대선시기부터 2018년 지방자치선거까지 국민개헌운동에 앞장섰어요. 이 과정에서 약 25개 단체가 국민주권개헌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어요. 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운동도 핵심적 요구는 개헌이었어요. 그 결과, 절차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됐지만, 실질적 민주주의 또는 내용적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직접민주주의의 3대 핵심요소인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 등이 이뤄져야 해요. 개헌안과 법안 등을 국민 스스로 발의할 수 있고, 이들 안건은 국민이 직접 투표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또, 숙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 등도 정착시켜야만 해요, 


우리 사회는 모두 함께 공존해야 하거든요. 이를 위해 지방자치선거 이후에는 약 100여개 단체가 사안별로 연대하는 단체인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이 만들어졌어요. 촛불계승연대는 국민개헌, 적폐청산, 남북평화를 위해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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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운학 대표의 시민단체운동 활동 모습) 

  

Q. 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 시민운동권과 정치권의 이질감이 크잖아요. 왜 만리장성처럼 서로 담을 쌓고 있으려고 할까요? 낮에는 시민운동을 하고, 밤에는 유력한 정치인을 남몰래 따로 만나 로비를 하는 등 각자도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어요. 부패한 담합과 거래 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나라 만들기, 정의 등을 위해 정치인과 시민운동가가 투명하고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왕래하고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나라에 필요한 인재라면 정치로 떳떳하게 입문할 수도 있어야 하고요.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저조해요. 전체노동자 대비 노조원 수자가 작다는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기업에 고용되어 있어야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요. 법적으로 강제된 기업주의 노조의 한계죠. 그러다보니 노조가 대기업과 정규직 위주로 조직되었어요. 대기업 이하의 중소‧하청기업 노동자와 특수고용자, 비정규직, 영세소상공인 분들의 이익은 대변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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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 공익과 관련된 모든 일을 감시하는 단체를 만들 생각이에요. 공익감시는 민권으로 보장되어야만 하고, 민권을 행사하는 행위이자 민권을 회복하는 의무이기도 해요. 인권이 개인의 권리라면, 민권은 개개인이 일정 규모 이상 모였을 때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권리죠. 일정 이상의 인원이 모여야 가능한 일이죠. 공익감시권리 역시 일정 이상의 인원이 모여야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촛불정부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거든요. 현 정부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국회, 대법원 등 거의 모든 걸 다 장악했는데 개헌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까 시민과 국민이 나서서 정부와 지자체가 공익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감시를 해야만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서울과학기술대학원 공공정책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했고, 학위논문을 작성해야만 하는 시간이 1년 정도 남았어요.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해서 심사를 받아야만 하는지 여부에 대해 현재 고민하고 있어요.   


Q.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등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어 있었을까요? 그밖에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만약 제가 아버님 말씀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는 상고라도 다니면서 독학했다면, 아마도 지금쯤 법조인이 돼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또, 학생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대학자는 못 되었을지 몰라도 대학교수는 돼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저 스스로를 훈련시키며, 성찰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늘 올바른 길을 걸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올바른 일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정의(正義) 편에 서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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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밝게 웃고 있는 송운학 대표) 


오늘 말을 참 많이 했네요. 하지만, 워낙 파란만장했던 삶이라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내용이 많네요.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에 또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종료)

[곽중희 기자 rhkrwndgm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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