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인성의 힘으로 미래’를 엽니다

기사입력 2020.11.0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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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순흥면 선비촌.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영주시]의 자료에 따르면,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市! 인구는 2020년 4월 기준으로 10만 4천여 名입니다. 시의 동부에는 봉화군, 남부에는 안동시, 서부에는 예천군이 있으며 북부는 죽령을 경계로 충청북도 단양군, 마구령을 경계로 강원도 영월군과 맞닿아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처음엔 백제 내기군(奈己郡)이었다고 합니다. 파사 이사금이 정복하고, 이후 삼국을 왔다갔다 하다가 신라 경덕왕 때 나령군(奈靈郡)이었습니다. 9주 5소경 중 삭주 소속이었습니다. 통일신라에서 삭주/한주/명주 3주는 고구려 지역으로 간주했는데, 실제로 영주는 경상도 지역에서 드물게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순흥 벽화 고분이 존재합니다. 고려시대에 강주(剛州)가 되었고, 이때부터 경상도에 속했습니다.

 

영주시! 고려시대에 강주(剛州)가 되었고, 이때부터 경상도에 속했습니다. 원래는 영천군(榮川郡)이었습니다. 1980년 영주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어, 남은 영주군 지역이 영풍군(榮豊郡, '영'주와 '풍'기에서 한 글자씩 따서 새로 지음)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특이한 점은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습니다. 자연 영주 사과는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영주의 최고 기온은 46°C! 이 기록은 1944년 세워져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안동에 다소 가려있지만, 영주 역시 전통 문화의 향수가 짙게 배인 곳! 순흥면에는 선비촌이라는 한옥마을이 존재하고, 한국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이 이곳에 위치합니다. 부석면의 봉황산 자락에는 부석사가 있습니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 문화재인데, 이 좌상은 향토색이 강조되고 인체 비례적 아름다움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저퀄 고려 불상과는 달리 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해 균형미를 갖춘 불상으로 평가됩니다. 또 부석사 앞으로는 영주 남부의 넓은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어 낮은 산들이 겹겹이 겹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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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필자가 ‘영주’에 대해 이렇게 장황(張皇)하게 설명한 것은 ‘영주’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 부석사 기행 한번, 관광여행 몇 차례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최근 좋아하는 후배(김영하/영주 영광고 윤리교사)가 부석사 풍경 사진과 영주 사과·한우 사진을 보내줘서 영주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선비도시 영주, 인성을 말하다/‘인성의 힘으로 미래를 열다’ 주제. / 11월 11일부터 제2회 세계인성포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주에서 과거 수많은 선비들이 배출됐습니다. ‘선비’의 사전적 정의는 “1.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2.재물을 탐내지 않고 의리와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학식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옛날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입니다. 영주는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安珦)과 조선을 세운 혁명가 정도전(鄭道傳)을 배출해 낸 유학과 선비정신의 중심지입니다. 영주시는 이와 같은 역사성을 살려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성회복과 인성교육에 주력해 인성교육 중심 도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지역 내 모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등 ‘인성도시’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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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겨울 소백산.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는 영주에서 인성(人性)을 주제로 한 의미 있는 포럼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번 포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신 가치인 선비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의 가치관과 역사 속에서 현대사회가 가진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이를 배우려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이 포럼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낸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져 도덕적 해이와 물질만능주의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병폐가 늘어나는 가운데, 도덕과 공동체 의식, 효행사상 등이 점차 사라져 가는 중요한 정신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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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세계인성포럼 포스터.

 

포럼 첫날인 11일에는 개막식에 이어 [미래 인재상과 인성 교육]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 그리고 [인성교육의 실제]를 주제로 특별강연이 진행됩니다. 주제발표는 한국인의 선비정신, 세계 속의 인성, 인성의 시대적 의미 등 3개 주제로 포럼 기간 내내 진행됩니다. ‘한국인의 선비정신'을 주제로 [‘선비정신 : 감화(感化)의 리더십], [‘성공하는 삶과 인성교육 참선비상 정립을 위한 시도’], [‘인성은 행복한 미래를 창조하는 힘이다’]가 발표됩니다.

 

끝으로, 통일신라시대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浮石寺!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있는 부석사를 찾아봅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입니다. 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 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석사 원융국사비에는 지엄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의상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법하여 원융국사에까지 이른 것과 원융국사가 법손이 된 뒤 부석사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부석사의 생김을 정리한 역사적 기록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비석에 쓰인 몇 문자나 절을 재건한 기록 ‚ 보수한 기록 등만이 전합니다. 부석사가 세워지기까지에 관해 <삼국사기>에는 高僧 의상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전하며 <삼국유사>에는 “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고 전합니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逸話! / 일찌기 후고구려의 시조 궁예(弓裔)가 부석사에 이르러 벽에 그려진 신라왕의 초상화를 보고 칼을 뽑아 쳤습니다. 그 피어린 자국이 고려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은 궁예가 평시에 신라왕에게 버림을 받은 앙갚음이라고 합니다./ 서울 출발의 경우, 강남센트럴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모두 영주행 고속버스가 있습니다. 기차의 경우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 하차는 영주역과 풍기역 모두 가능합니다. 풍기역에서 하차하면 역 바로 앞에서 부석사행 버스이 탑승 가능합니다. 선비의 고장 영주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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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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