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상이 왜 이래” 세월에 끌려가는 세상의 내일은 두렵고 불안해.

행복한 내일은 오직 올바른 판단의 사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
기사입력 2020.11.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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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국장

 

 

[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칼럼] 가수 나훈아씨가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왜 또 저래’ 란 곡조를 뽑아내자 답답한 그동안 막혔던 국민의 마음을 뚫어주고 말았다.

 

부동산의 정책의 잘못으로 집값, 전세 값은 오를 대로 오르고 건물 곳곳에 임대란 문자와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습니다.” 란 문자가 창을 도배하고,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가게는 장사가 안 되어 빈자리만 보인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새벽이 되면 일용직 일자리 찾는 사람들이 일용직 용역사무실 앞에 줄을 잇는다.

 

먹고 살기가 힘든 세상에 코로나마저 닥쳐 마스크 없이는 하루도 생활할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이 됐다. 이래저래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하는 한 가수의 노래에 잠시나마 가슴이 터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하소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가수는 이를 대신하고 자신도 아파하는데 동참하고 내일의 우리와 나라를 함께 걱정했다. 아니 코로나 사태와 같은 지구적 재앙이 계속되어질 내일이 두렵고 불안해하는 다음 세대가 더 걱정이다. 란 그의 진솔한 메시지에 더 열광했을 것이다. 정말 시원하다.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권과 지도자들은 나밖에 네 욕심만 채우는 그들에 대한 경고의 매세지일지도 모른다.한 유명한 가수가 노래 가사에서 삶의 고통을 '테스형'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인생과 사랑, 죽음의 문제까지도 제기했다. 돈과 명예, 사랑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을 듯한 삶이 더 힘들고 내일 더 두렵다고 했다. 오늘과 내일은 쉬는 시간이 없다. 잡는다고 잡히지도 않고 내일은 온다. 그래서 내일이 더 두렵고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이전의 정권 탓으로 빈죽거리며 그 오만한 권력으로 궤변을 일삼는 어용 지식인과 궤변자에게 명쾌한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오만한 자기만족에만 귀착된 그들이다. 내편과 적을 구분한 그 머릿속에는 한 쪽은 없어져야 한다. 내편은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 낸다. 암흑이 빛도 덮는다는 궤변에 달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해수부 공무원 북한군에 피살과 시신이 훼손되어져도 상관없다.

 

하나로 뭉치려는 생각보다 오히려 하나을 둘로 갈라놓는다. 이런 위정자들이 지금은 그렇게 반대하던 고속도로를 달리고, 호화주택에서 온갖 문화 혜택은 다 누리고 살아간다. 기원전 500년 전의 소크라테스는 지성인의 역할이 권력에 아부하며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기보다 거리에 넘쳐나는 인간의 마음에서 지혜를 찾아야한다고 설파했다.

 

삶을 먼저 떠나간 소크라테스에게 오늘날의 불안한 세상의 인생과 세월, 죽음을 묻는다. 그의 진정한 심정은 쓰레기 정치권, 기득권과 놀아나는 언론, 권력에 빌붙어 국민의 삶에는 관심 없는 기생충 같은 위정자, 정치판사들을 나무란 것은 아닐까. 그는 "국민을 위해 목숨을 버린 '위정자'는 없고 우리가 잘하면 '위정자'도 필요 없다"고한 그의 뼛속 깊은 고뇌가 우리와 동감함에 그의 혜안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의 아전인수적 해석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진실 앞에서 일말의 각성과 반성은 진실의 양심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실이 너무 잿빛이어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어 현실과 내일이 너무 슬프다.

 

이런 버릇에 익숙한 이들의 정치가 내일까지 지속될까 너무 두렵기만 하다.이런 정치를 일삼는 위태로운 정치를 일삼는 권력을 가진 '위정자(危政者)'의 머릿속에는 과연 무엇의 사고로 가득 찬 것인지가 정말 궁금하다. 편 가르기로 불안과 갈등만을 일삼는 정치권, 코로나19로 무너지는 경제, 계층. 지역. 세대 간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초개인주적 사고와 펑펑 쓰는 나랏돈으로 국민을 바보로 세뇌시키고 있으니 오직 나훈아 가수 뿐 아니라 세상의 내일은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당연해 질 수밖에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뭉치면 죽는다.’는 코로나19를 이용한 이들은 정치가 얼마나 유지될까? 또 부정선거로 얼마나 유지나 될까?

 

세월의 흔적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역사는 언제나 진실의 기준에서 판단됨은 어리석은 인간들은 알고도 행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칭호를 얻었던 소크라테스를 그 타이틀로 내세운 이유일 지도 모른다. 스스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는 것,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똑똑한 인간만이 다 안다고 자만심에 차 있었던 것을 말한 것 같다.

 

오늘날의 모든 가치의 평가는 인간을 중심으로 물질만능주의와 실용주의적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가치 평가의 대상일 뿐인데 이것이 진실이고 현실에 행복이란 그 착각에서 비극이다. 정치권력자들 권력을 이용하여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통제할 수도 있다는 확신에 자기 뇌에 위험한 바이러스가 고착되는 사상이 거대한 나라를 국민을 대상으로 행동으로 시험하는 데서 크나큰 비극이 시작된다. 이런 못된 그들의 몸속 바이러스가 함께 끌려 나오는 새로운 숙주가 인간이 스스로 겁 없는 행동으로 실행되어 스스로를 파괴해가고 있는 현실이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에 깨우침의 일침을 가한 가수의 노래가사에 공감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역시 인간의 무절제한 생태계 파괴가 인간을 스스로 파멸시킬 위협을 경고했다. 우리는 이제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새겨서 진지하게 성찰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어려운 세상, 내일이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 시간은 쉬지 않고 흔적을 남기고 가는 세상에 내일을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희망의 신념을 가지는 국민을 생각할 줄 아는 정치인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세상이 왜이래, 세월에 끌려가는 내일이 두렵고 불안한 세상 절대 안 된다. 지금의 이 어지러운 현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판사가 없고 정치언론이 없는 세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길의 핵심이기에 사법부의 양심의 저울만을 희망과 신념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다만 서러울 뿐이다.

[권오은 기자 kwon78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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