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달항아리 속 명화를 담다, 김중식 청평아트인갤러리 방문기

산장의 화백 ‘김중식 서양화가’ "배운 건 그림 뿐이에요"
기사입력 2021.01.1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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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박민호 기자] 

 

겨울의 한기가 조금 잦아든 지난 15일. 지인의 소개를 받고 한 화가의 미술관을 찾아갔다. 경기 청평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높은 산 비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흰 외벽과 원목으로 된 지붕은 고전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내부는 마치 산속 산장 같이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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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중식 청평아트인갤러리 전경) 

 

차에서 내리자 대문 앞으로 선홍색 니트를 입은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바로 김중식 화백이었다. 미술관은 총 3층으로 돼 있었다. 3층은 거주공간, 2층은 전시 및 미팅실, 1층은 화가의 작업실이었다. 


기자가 본 김중식 화백의 첫인상은 조금 날카롭고 무뚝뚝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따뜻함과 순수한 정이 느껴졌다. 우리는 3층에서 북한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함께 오손도손 차를 마셨다. 


그리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Q. 안녕하세요. 화백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중식입니다.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어요. 40년 정도 됐죠. 선화 예술 고등학교를 나왔고 군대는 공군으로 다녀왔습니다. 이후 대학을 복학해서 85년도에 프랑스에 가게 됐죠. 지금까지 쭉 그림 그리는 사람, 화백으로 한 길을 걸어왔어요. 생각해보면 힘든 일도 정말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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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중식 화백)

 

Q. 살아 온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어디부터 해야할까…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프랑스에 가서 많은 화가들을 만나게 됐죠. 김창렬, 이우환, 박서보, 백남준 화백 등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90년도에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죠. 결혼도 파리에서 했고요. 제가 예전에는 정말 잘 살았어요. 그 당시 살던 동네에서 최고로 잘 사는 축에 속했으니까요. 당시 금액으로 500~1000만원 정도를 송금 받었어요. 파리 연예인들이 사는 아파트에 살았었죠. 아마.  


생활이 힘들어지게 된 계기는 형님의 보증을 서면서부터였어요. 그때 돈이 없어서 집안이 기울게 됐어요. 그 이후부터 많이 고된 길을 걸었죠. 


원래 잘 살다가 갑자기 무너졌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버스 정류장에서 잤던 기억도 있어요. 낮에는 노가다를 4년 정도 하고, 식당에서 주방장으로도 몇 년 동안 일을 했어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때도 그림은 혼자서 계속 그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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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시 화가로서 일어서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느 날 한식집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대 학장이었던 김봉구 선생님이 식당에 찾아왔어요. 그분이 식당 벽에 걸려 있던 제가 그림을 본 거죠. “이 그림을 누가 그렸냐’고 물어봐서 종업원들이 주방장이 그렸다고 했죠. 그런데 그분이 보통 실력이 아니라면서, 여기에 있기는 너무 아깝다고 했었죠. 


이후에 식당에서 번 돈으로 1톤 트럭을 사서 전국을 돌자고 마음 먹었어요. 각 갤러리를 찾아가서 제 개인전을 하게 해달라고 했죠. 그때 5천 800만원짜리 창고를 사서 밤이고 낮이고 그림을 그렸어요. 진짜 목숨 걸고 작업을 했죠.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당시엔 힘들었던 작가들이 모여서 그 안에서 먹고 자며 지냈던 기억이 나요. 한호 작가라고 있어요. 그 분과 오래 같이 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작업실을 20번 이상 옮겨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회사 회장님이 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이 “내가 땅은 있는데 돈은 없다. 그러니까 공간을 마련해서 그림을 한번 걸어보자”고 황당한 제안을 했죠. 처음엔 “이상한 사람 아닌가?” 생각했는데, 진짜 “등기까지 다 해주는 거냐”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땅이 있으니까 원하는 곳으로 딱 찍으라고 했어요. 그렇게 이 공간이 탄생한 거예요, 정말 신기하죠. 감사하기도 하고…  


저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요. 만약 옛날처럼 부유했으면 지금까지 그림을 안 그렸을 거예요. 저는 이 미술관을 만들게 된 것에 큰 감사함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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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에는 판화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을 하게 된 동기는?

제가 다니는 교회의 LED광고를 본 게 시초였어요.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뒤에 LED전광판에 광고 문구가 계속 옆으로 움직이는 게 눈에 띄었어요. LED판이 점자로 돼 있잖아요. 그래서 ‘달항아리’와 연관지었죠. 달항아리의 뜻이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의미거든요. 항아리 안에 사물이 들어가면 아름다워질 수 있고, 재탄생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항아리 안에 인물을 집어넣게 된 거예요. 


사실 처음에는 국내 유명인물들을 그렸는데, 국제 페어에 나가려고 보니까 아무도 알아보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인사들의 얼굴을 그리게 됐어요. 누군가 제 그림에 관심을 가져야 소통도 할 수 있으니까요. 10년 넘게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은 걸 이뤄냈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나, 작품이 있다면? 

‘동경아트페어’도 기억에 남고, 중국에서 초대를 받아서 했던 전시도 생각나요. 그리고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마우쩌둥 수양딸인 강림 주석이 여기에 왔던 거예요. 그는 전세계 화교 연합회의 총재에요. 그분이 우연히 와서 ‘마우쩌뚱’ 작품과 오드리햅번 작품을 주문해서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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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작품을 독자 분들이 참 좋아해주셔요. 이 작품은 아트 상품으로도 많이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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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중식 화가가 가장 애정하는 자신의 작품 중 하나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Q.(사진기자의) 친언니도 미대를 갔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미대를 접은 상태거든요. 미술을 준비하는 젊은 2030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교과서처럼 얘기해줄 수도 있어요. 열심히 그림만 그리라고요.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고… 만약 취미로 그린다면 상관이 없지만 솔직히 전업으로 하고 싶다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듯해요. 미술업계가 전체적으로 녹록치 못해요. 특히 전통 동양화 같은 경우는 수요가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아무리 유명해도 작가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 요즘 젊은 세대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겠죠… 


Q. 미술업계 구조의 틀이 바뀌어야 하는 걸까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정부 지원도 한계가 있고요. 외국처럼 작가의 수준이 단계별로 나눠졌으면 좋겠어요. 평생을 그림에 목숨을 건 사람과, 취미로 그림을 그린 사람은 다르겠죠. 실력이 없어도 아무나 페어에 나갈 수 있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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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교체도 시급해요. 물론 나이가 드신 화백들 중에도 깨어있는 분들도 있지만 이미 오래된 분들은 옛날의 사고방식을 쉽게 바꾸질 못해요. 사고방식의 변화가 쉽지 않아요. 작가는 마지막 장식을 잘해야 하거든요. 계속 시대에 맞춰 발전해 나가야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요즘은 작가가 작업실에 박혀서 그림만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 홍보도 할 줄 알아야 해요. 저도 서울역 LED 광고판에 3개월간 광고비를 주고 광고를 했었어요.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독자와 어떻게든 만나려 노력을 해야죠.    


또한 다작을 해야 해요.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작품이 한 달에 하나 나오면 독자들과 자주 소통하기가 어렵겠죠.  


저는 여유가 좀 생기면 작품을 많이 만들어 전국에 있는 카페 매장에 전시하고 싶어요. 작품은 대중들에게 알려져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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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장 힘든 부분이 있으시다면?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작품을 팔 때가 가장 힘들죠. 얼마나 노력을 해야겠어요. 예를 들어 어머님들 입장에서 돈이 있으면 김치 냉장고를 바꾸지, 그림을 사서 집에 걸어놓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요. 매일매일 200명에게 인사 메시지를 남겨요. 그렇게 하루에 20~30명. 쌓이면 한 달에 600명 정도가 되잖아요. 그렇게 제 그림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늘어난다는 게 뿌듯해요.  


Q. 가슴에 새기고 다니시는 문장이나 격언이 있다면? 

“거만한 가슴에는 우정이 싹트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또…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도 좋아하고요. 

          

만약 저를 좋아했던 어떤 여자분이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날 때가 얼마 안남았다고 해서 병문안을 갔는데, 그분이 “야, 나 사실 옛날부터 너 좋아했었다”라고 하면 얼마나 어이없고 화가 나겠어요. 좀 미리 얘기해주지. 그래야 뭐 표현을 하든 진전이 있었을 것 아니에요.  


이게 저희 아버님을 통해 얻은 교훈이었어요. 아버지가 표현도 없고 방목형이셨어요. 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염을 하러 갔는데 눈물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참이 지나고 나서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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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생을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있다면? 

보람이라고 하면, 그래도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게 감사하죠. 또 김중식 후원회를 기업체에서 만들어 주셨어요. 매달 1번씩 후원의 날을 정해서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눌 수 있게 됐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기업체와 함께 그림 경매를 하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화랑’과 상관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작품 경매도 하고 홍보도 할 수 있겠죠. 


저는 복이 많아요. 참 감사한 일이죠. 만약 제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고 기회가 된다면 이 작업실을 다른 후임 작가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신년에는 외국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벨기에 관계자들과 추진하고 싶어요. 제가 좀 세계적으로 나가기 위해서 만들어 놓는 거예요. 미래를 위한 하나의 준비인 거죠.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공간을 또 만들어 봐야겠죠.


코로나 때문에 조금 차질이 있긴 했는데, 이제 또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진행해야죠. 


Q. 힘든데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려서부터 배운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게 삶이었으니까. 이번에 시리즈 작품으로 연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가는 언제든 작품이 준비돼 있어야 해요. 언제 누가 오더라도 보여줄 작품이 있어야 하고, 홍보할 거리도 있어야 하는 거죠. 항상 준비가 돼 있는 것. 그게 프로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또 나에게 언제 찾아올 지 어떻게 알겠어요. 기회를 붙잡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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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화백님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 가치는? 

제가 아는 대가 분들 중 남자 화백들을 보면 그 분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건 대부분 옆에서 그분을 보필하는 사모님이더라고요. 화가는 세상 주는 사람이지만 화가의 부인은 하늘이 준 사람이래요. 옆에서 그 화가보다 더 고생하잖아요.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래서 주변의 소중한 인연, 관계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가들끼리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에만 안주하지 말고 시야를 넓게 보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다 같이 함께 끝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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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찾아오세요. 맛있는 양고기 구워줄게요. 와인도 같이”


인터뷰를 끝내고 가는 길, 산 비탈을 내려오는 내내 차창 위를 자꾸 올려다봤다. 산 속의 미술관에 사는 화가라… 마치 동화에 나오는 듯한 느낌.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한번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끝까지 그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김중식 화백. 더욱 찬란할 그의 여생을 기대해본다. 


[곽중희 기자 rhkrwndgm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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