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스승의 날 & ‘애제자의 스승의 날 감사편지’

기사입력 2021.05.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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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작사 윤석중. 작곡 김대현-청소년적십자 제정.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우리말 대사전(한글학회 지음]“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여 주는 사람” / “스승의 날 : 스승의 길을 다짐하는 뜻으로 정한 날. 해마다 5월 15일. 1963년에 은사의 날로 시작되었으며 1973년에 없앴다가 1982년에 되살렸다.” // 스승! 현대사회에서는 뜻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스승의 날!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고 명맥(命脈)을 이어온 기념일입니다. 백과사전에는 그날을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교권 존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초기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으며, 1982년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켜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청소년적십자 단원이었던 충청남도 지역의 강경여고 학생들이 현직 선생님과 은퇴하신 선생님, 병중에 계신 선생님들을 자발적으로 위문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의미 있게 여긴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 21일을 충청남도 지역의 '은사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실시했습니다. 1964년부터 '스승의 날'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해에 날짜도 5월 26일로 변경되었습니다.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1966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방송 매체에 보급하면서, 노래와 함께 행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 1973년 3월 모든 교육 관련 기념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로 통합되면서 '스승의 날'은 1981년까지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1982년 5월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9년 만에 부활했고,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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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은혜-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

 

“스승의 날 노래”(작사:윤석중/작곡:김대현). // 1절/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 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그 수고 무엇으로 덜어 드리랴/ 그 은혜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2절/ 오월에도 보름 날로 날을 받아서 세종날을 스승의 날 삼았습니다/ 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안끼쳐/ 기쁘게 해드리자 우리 선생님/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스승의 은혜”(작사:강소천/작곡:권길상)도 있습니다. // 1절/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절/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면은 잊기 쉬운 스승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3절/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 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아생전에/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하오리다/ [후렴]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스승! 조선전기 학자 최세진이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1527년에 간행한 교재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면 불교의 중을 ‘스승’이라 하고 있고, 근세까지만 해도 중을 높여 부르는 말로 ‘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스님은 곧 ‘사(師)님’이었고, 스승은 ‘사승(師僧)’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일찍이 불교가 왕성했던 고려시대 부터 쓰인 말이며, 중을 존경해서 부를 때 ‘한자승(師僧)’이라는 호칭을 썼던 것인데, 이것이 변해서 스승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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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미지 사진.

 

필자는 2021년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한 제자(경남대 졸업)로부터 長文의 [스승의 날 감사편지]을 받고 부끄러웠습니다. 과찬(過讚)의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자랑삼아 本 칼럼에 소개합니다. 부끄럽습나다. // [40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이용웅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천직인 교육자 본연의 역할로 교단의 자긍심과 활기를 불어넣어 ‘살맛나는 학교’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봉직해 오셨다. 우리나라에는 교직자들의 수가 20만 명이 넘는다. 그래서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정말 다사다난하게 많이 일어나는데, 성과주의라든가 실험주의적 정책 등이 난무하여 교단의 분열과 교권 침해요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 선생님은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 흔들림이 없이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셨다.


글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워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다. ’경사이우 인사난조(經師易遇 人師難遭)’는 말이 바로 우리 선생님께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이 말은 후한기(後漢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기록되어 있는 말! 여기서 경사(經師)란 전공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을 말한다. 반대로 인사(人師)란 덕행을 구비하여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스승을 뜻한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반 동창들이나 독자들도 눈치를 챘겠지만 결국 전공적인 지식을 잘 가르치는 실력있는 선생님을 만나기는 쉬워도 이용웅 선생님처럼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참다운 스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선생님이란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코 존경 받는 직업만은 아닌 사회로 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나 학부모들은 선생님들로부터 인사(人師)이면서 경사(經師)인 선생님 상(像)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매우 크다 하겠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용웅 선생님께서는 참 교육자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지식, 교양, 덕성도 지닌 이 시대의 참 스승이시며, 현 사회가 요구하는 목소리에 정확히 일치하는 참 교육자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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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대학에서 바라본 경남대학교 전경.

 

선생님께서는 다 큰 제자들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인생 100세 시대에 제자들과 오랫동안 동행하고자 하는 사랑이 가득 담긴 당부의 말씀이셨다. 건강에 대한 강조로 ‘노각인생 만사비(老覺人生 萬事非), 우환여산 일소공(憂患如山 一笑空) -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이다’라는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권력욕이나 명예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아무리 탐스럽고 붉은 꽃이라도 열흘 넘게 피는 꽃도 없고, 십년 가는 권력도 없다’라는 말씀도 전해 주셨다. 은사님께서 교단의 첫 제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으신 마지막 수업의 훈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拔萃)/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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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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