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8월 북한 달력- 한반도의 8월 & 낙동강(洛東江)

기사입력 2021.07.3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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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의 2021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북한 달력 8월! [조국의 진달래](진달래꽃과 총을 가진 여군 그림)가 전면을 장식했습니다. 사진 설명 “조국의 진달래”는 북한의 4대 혁명무용 중 하나, 1970년 초연된 현대 무용 작품으로, 1939년이 시간적 배경으로, 김일성이 함경북도 무산으로 진출해 왔을 때를 표현한 무용입니다. 달력에는 [25일]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날은 [주체 49(1960).8.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혁명무력에 대한 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시였다.]라고! 이것이 무슨 빨간 날? 작년에는 “선군날”이라고 했었는데...유구무언(有口無言)!!! / 그리고 [8.15. 조국해방의 날]도 있습니다. 또 [말복 8.15. / 입추 8.7. / 처서 8.23.]도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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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북한 달력 8월-微信搜一搜 視覺DPRK

 
한반도의 8월! 영원히 잊지 못할 1950년 8월의 ‘낙동강방어선전투(洛東江防禦線戰鬪)’! 국군과 유엔군이 1950년 8월, 낙동강 부근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 국군은 북한군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여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 선까지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부산 점령을 목표로 한 그들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낙동강 방어선에서 격퇴하게 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탱하지 못하면 우리 정부는 제주도로 이전하여 제2의 대만이 되거나 아니면 해외에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될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당시 맥아더 원수가 구상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도 낙동강 방어선이 유지될 때에야 성립될 수 있는 것! 국토의 약 10%에 불과한 부산교두보를 간신히 확보한 선(線)에서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분쇄했으니, 전범(戰犯) 김일성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영원한 전범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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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다부동 전투, 낙동강 방어선의 형성

 

김정은은 북한이 '7·27 전승절'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제6차 ‘전국로병대회’에 참석해 "우리는 총이 부족해 남해를 지척에 둔 낙동강가에 전우들을 묻고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동지들의 한을 잊은 적이 없다"며 "최강의 국방력을 다지는 길에서 순간도 멈춰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6·25 남침 한 달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갔다가 한미(韓美)의 '필사의 사수전'에 막혀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친 일을 언급하며 '국방력 강화'를 강조한 것입니다.

 

 

 

낙동강(洛東江)!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1,573m)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통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낙동강은 <동국여지승>에 ‘낙수(洛水)’로 표기되어 있으며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낙동’이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영남지방의 거의 전역을 휘돌아 남해로 들어가는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 천년 간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영남인들의 삶의 젖줄이 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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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전투에서 미군에 의해 파괴된 북한군 전차-한국전쟁 60주년 사진집

 

“8월의 강이 손뼉친다./ 8월의 강이 몸부림친다./ 8월의 강이 고민한다./ 8월의 강이 침잠한다./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 지닌/ 배암과 이리의/ 갈라진 혓바닥과 피묻은 이빨들을 기억한다.// 강은 저 은하계 찬란한 태양계의/ 아득한 이데아를/ 황금빛 승화를 기억한다.// 그 승리를, 도달을, 모두의 성취를 위하여/ 어제를 오늘에게, 오늘을 내일에게 위탁한다.// 강은 8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박두진/ 8월의 강)

 

 

 

박두진의 “8월의 강”에서 필자는 ‘낙동강’을 봅니다. 1976년 마산에 보름자리를 마련한 뒤 자주 만난 낙동강입니다. 다음은 가수 최백호가 작사·작곡한 “낙동강”입니다.-“낙동강 짙은 물/위에 구슬픈/비 내리는데/ 미움도 정이련가 울고있는 물새야/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원망을 마라/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이별인 것을/ 너 만은 죽지마라 변하지마라”- 강(江) 노래도 좋지만 살면서 만났던 ‘낙동강 7백리’는 ‘아름다운 추억’!

 

누군가는 ‘낙동강’을 ‘7백리 생명의 강’이라고 하고 “낙동강 7백리 흘러 흘러/ 하얀 모랫벌 이루고/ 뭇 생명들 뛰놀던/ 아릿따운 옛 풍경들은/ 다 어디 가고 녹조라떼냐/ 물고기도 더는/ 살 수 없이 된 강이여/ 22조원 혈세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 삶터에도 재앙을/ 부르고야 말았구나/ 하굿둑 보가 흘러야 할 낙동강물을/ 멈춰 썩게 하였네/ 인간마저 못 살게 된오늘이 뉘 탓이랴”라고 슬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파 신음하는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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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유역 현황도.

 

낙동강의 역사와 문화유적! 낙동강 유역에는 역사시대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유적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습니다.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中東) 일대는 특히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낙동강 동편의 중동 일대에서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던 돌망치 등 석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낙동강 유역의 선사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체로 한반도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를 거쳐 두만강으로부터 들어왔다면 영남지방의 신석기문화는 낙동강 유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로 대표되는 빗살무늬토기는 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서남도서(西南島嶼)·두만강 등의 여섯 군으로 나누어집니다.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낙동강 유역의 영남지방은 특히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팔월이라 한가을 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북두칠성 자루돌아 서쪽 하늘 가리키니/ 선선한 아침 저녁 가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 사이에 들리누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온갖 곡식 열매 맺고 결실을 재촉하니/ 들에 나가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온갖 곡식 이삭 패고 무르익어 고개 숙여/ 서쪽 바람에 익는 빛은 누런 구름처럼 일어난다/ 흰눈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송이/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에 맑고 밝다”(농가월령가 8월령) / “農家月令歌 八月令”은 한반도·한민족의 8월 노래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낙동강방어선전투’를 듣도 보도 못한 위원장! ‘낙동강 7백리’의 아름다움을 잘 구경하고, 한민족의 “농가월령가”를 배워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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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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