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상 캐스터와 코로나19 캐스터

기사입력 2021.09.2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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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국장]

 

[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칼럼] 기상 캐스터는 사전적 의미로 텔레비전 보도 프로그램에서, 바람, 구름, 비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해설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기상 캐스터는 날씨 예보와 기상의 정보를  종합해서 매일 전달하는 직업이라는 전문성의 직업이다. 기상청으로부터 예보지를 받아 작가가 써준 대본을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잘 설명하고 얼마나 잘 전달하는 가보다는 언제부터인가 날씨예보와 기상정보 전달을 보다는 ‘육감적인’ 몸매와 의상이 더 부각됐다.

 

시청자들은 청각보다 시각적인 것에 더 예민해져 버렸다. 비가 내린다는 이유와 강수량이 많은 이유 등을 취재하고 분석을 해야 하는 기상상식의 바탕마저 없는 듯한 직업 아나운서 같은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기상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하는 기상캐스터가 하나의 인기 연애인 못지않은 직업인으로 인식되었다 " 즉 단순히 전달하는 직업이면서도 전문성 성격의 인기직업으로 변했다. 어떻게 보면 국민에게 더 신선한 의미의 인기 시청 코너 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전달한 내용인데도 시청자들은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앞을 미리 보는 예지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신선미가 찌들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화 하는 듯하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기상 캐스터와는 조금 다르다. 외국의 경우는 "날씬하지 않고 외모가 빼어나지 않아도 전문직 그 자체로 인정받고 메인 앵커급 대우를 받는 반면 우리나라의 기상 캐스터는 전문성과 빼어난 외모가 인기 있는 방송사 쪽으로 채널을 고정하게 한다.

 

결론은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기상정보를 전달하는 시간대에 지루하지 않고 산뜻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각인되기에 인기 있는 시청 코너가 됐다. 시간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해져 있다.

 

반면 코로나19에 관련된 정보를 텔레비전 보도 프로그램에서, 발생인원과 사망자의 정보, 발생지, 대처상황, 병원, 교회, 학교 등의 다중시설에 대한 불길한 정보만 마구 쏟아낸다. 아나운서와 국민보건건강 관련 업무 종사와 책임자들 등은 매일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시도 때도 없이 방송한다. 이들을 코로나19 캐스터라 약칭해도 무난할 것이다. 이들 중 노란 옷을 입은 다수는 엄숙하면서도 강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사실들을 전하는 아나운서들 역시 언어의 톤은 다소 높고 조급한 모습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젠 이들도 국민에게 전달하는 전문성의 직업이 됐다. 코로나19 정보를 전하는 이들은 보다 정확하게, 보다 전문적인 언어와 통계를 국민들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직 전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듯하다.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국민은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톤과 화면 그리고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의 방송을 원한다. 이젠 코로나19와 관련된 숫자만의 전달은 관심이 없다 방송이 지겹기까지 하게 됐다. 발생된 명수와 지역 그리고 화면으로만 뇌리에 각인 시키는 꼴이 되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몇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몇 명이 사망했다는 것과 거리두기 단계를 전하는 방송은 모든 방송사마다 심각하게 전하는 세상이 됐다. 이젠 심리적으로도 통제와 복종에 찌들어 있다.

 

자유에서 복종의 쪽으로 심리적 부동호가 토착화 되어져 있다. 착한 대한민국 국민은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부족으로 난생처음 줄서는 법도 배웠다. 자영업자들의 자살은 20여 명을 넘어섰다. 대안 없이 전하는 데에만 열심인 이들은 그야말로 코로나19 캐스터에 불과하다. 코로나19를 극복해가는 대만, 이스라엘, 영국, 국민의 자유를 누리는 미국들의 사례를 좀 더 많은 방송의 할애가 필요하다. 영국의 축구경기장, 미국의 야구장 등의 관중들 이들에 관련된 정보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 이상 정부는 국민들은 자유를 억압한 정치적 억압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너무 지겹도록 방송하는 공포분위기의 코로나19 방송으로는 안 된다. 마치 국민을 심리적 노예순응화로 만들어가는 모습인 것 같아 미래가 슬퍼진다. 그래서 다수의 국민은 심적 반발의 발동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하다. 또 확진자가 늘어난 방송이네. 또 방독면 같은 마스크에 하얀 방균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끌고 가는 비닐차단 이동식 침대로 이동되는 환자 모습의 영상들은 싫다. 규제와 통제로 세뇌되어가는 자신들이 불안하다. 이제 싫증을 낼만도 반발할 만도 하다. 매일 눈만 뜨면 어느 지역에서 단순하게 확진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코로나19 방송으로 전하는 단순한 정보보다는 대안 및 대처방법 등이 더 절실하기에 방송의 질과 횟수는 분명 조정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를 국복해 가는 국가들을 분석 취재하여 필요하면 ‘밴치마킹’을 해볼 필요성이 있다. 그래야 정치적 방역이란 오해를 받지 않을 게 아닌가?

 

키상 캐스터와 코로나 19캐스트의 차이는 분명 구분된다. 같은 보도의 방송전달 이지만 방송을 듣고 보는 국민들의 마음의 자유와 신선함이 구분된다. 기상 개스터의 방송은 선택과 판단은 국민에게 있다. 기상 개스터의 방송을 듣고 보는 과정에서 여유로운 자유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 예보된 기상 정보에 따라 행동은 국민 자신이 대처하고 실행하면 된다. 기상 개스터의 전달 표현도 맑고 시원하다. 반면 코로나19 개스터가 전달하는 정보는 뒤죽박죽이다. 노란 의상에 마스크를 한 해당 공무원이 전달하기도 하고 전문 아나운서가 전달하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다. 오직 확진자의 수의 증감 보도이다. 늘고 줄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 대안에 관한 방송은 거의 없다.

 

코로나19를 잘 극복해가는 나라의 사례는 거의 없다. 국민은 확진자 수의 정보보다도 이를 잘 극복해가는 국가의 사례를 홍보해 갈 필요가 있다. 영국 축구 경기에 참가한 관중들을 보고, 미국 프로야구 경기의 관중들을 보고, 대만과 이스라엘 국민들의 사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없다. 왜 정부는 코로나19를 잘 극복해 가는 나라에 관한 홍보는 왜 없는가? 국민은 이것을 원한다. 규제와 억압의 법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인들과 자영업자. 청년들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독감으로 사망한 수의 확률보다 낮은 코로나19를 위드(With)로 하자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진다. 정치적 방역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는 더 이상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오은 기자 kwon78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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