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천고마비와 황국단풍의 시월 & 시인의 국화 노래

기사입력 2021.10.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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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한민국 단풍 시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중국인들이 흉노(匈奴)라고 부르는, 말 타고 전쟁하는 것이 재주인 터키계(系)의 기마(騎馬) 민족이 있었습니다. 무적을 자랑하는 진시황(秦始皇)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주로 흉노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들의 무용(武勇)이 어떠했다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북쪽의 광대한 들판에서 봄풀, 여름풀을 배불리 먹은 말은 가을에는 살이 쪄서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긴 고사성어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의 ‘천고마비(天高馬肥)’입니다.

 

과거에는 가을이 되면 먼저 회자(膾炙)되던 ‘천고마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하늘 보고 말(馬)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살찌는’ 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맑고 풍요로운 가을’을 얘기할 때는 더 더욱 외면까지 합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 책을 읽음)도 ‘별로’인 세상입니다. 그래도 구추풍국(九秋楓菊/ 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 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그리고 황국단풍(黃菊丹楓/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등은 거부감이 별로 없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국단풍’은 가을을 상징합니다. 가을! 지금이 시월! 가을의 정점입니다. 이때쯤이면 읊조려보는 백거이(772~846)의 “가을밤”-“우물가에 오동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 그리고 R.M.릴케의 “가을”을 노래해 봅니다. 그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필자는 프랑스 샹송가수 이브 몽땅(Yves Montand/1921~1991)의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를 가끔 읊조립니다./ “Oh! je voudrais tant que tu te souviennes Des jours heureux ou nousetions amis/ En ce temps-la la vieetait plus belle//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a la pelle. Tu vois, je n'ai pas oublie..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a la pelle// 오! 나는 그대가 기억하기를 간절히 원해요./ 우리가 정다웠었던 행복한 날들을 / 그때 그 시절 인생은그렇게도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더 작열했었지요./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제가 잊지 못했다는 것,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 그는 필자의 영원한 ‘그리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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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이브 몽땅.

 

단풍(丹楓)! 고엽(枯葉)도 좋습니다. 그래도 단풍이 곱습니다. 단풍이 고운 가을 산을 흔히 삼홍(三紅)이라 합니다. 단풍으로 산이 붉으니 산홍(山紅)이 첫째요, 단풍으로 계곡이 붉게 물들었으니 수홍(水紅)이 둘째입니다. 산과 물이 모두 붉게 물들었으니 산에 들어간 사람마저 붉게 물들어 인홍(人紅)을 이루기에 이 셋을 삼홍(三紅)이라 부릅니다. 아름다운 단풍을 노래한 시인은 많습니다.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2000)도 그중 한 시인 입니다.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서정주의 “가을비 소리”입니다. 이 시와 “국화 옆에서”는 황국단풍(黃菊丹楓)의 계절에 어울리는 시인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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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집-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256나길 4.

  

서정주 (1915∼2000) 시인의 “국화 옆에서”는 1947년 11월 9일 <경향신문>에 발표되었으며 1956년 발간된 <서정주 시선>에 수록되었습니다. 국화는 9, 10월이 개화 시기로 이 시는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1연의 소쩍새, 2연의 천둥, 4연의 무서리 등으로 계절에 따라 나열하고 오랜 방황과 번민을 통해 지난날을 자성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으로 표현하여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인격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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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국화옆에서.

 

관악산 자락에 자리한 필자의 보금자리와 [서정주의 집]은 지척(咫尺)입니다. 그 ‘집’은 필자가 오가며 만나는 시인의 집입니다. 산책 때에는 앞마당에 들어가 앉아서 쉬거나 전시된 시화(詩畵)와 함께 하기도 합니다. 생활 속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휴관(休館)! 언젠가 서울대사대부고(師大附高) 15회 절친 동기가 다음 카톡 글을 보내주었었습니다. [이 교수! 가을 하면 은은한 국화차 생각 나는 계절 아닌가! 문득 시인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나네. 이 교수가 낭송 녹음하여 보내주면 잔잔한 음악에 이 교수 시낭송 영상으로 만들어 볼께! 잊지마시게! (방준영)]/ 올 가을에 친구의 말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가을 국화(菊花)! 역시 산국화(山菊花), 들국화가 곱습니다. “산 비탈에 한 뼘도 못대는대에 한 송이만 피어서 푸른 하늘과 마른 풀을 배경으로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흰 산국화!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국화의 왕은 이것”!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의 들국화 예찬(禮讚)입니다. 미당(未堂)도 춘원(春園)도 훌륭한 문인(文人)! 비록 그들은 ‘숙명적(宿命的) 낙인(烙印)’이 찍혔지만,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삶의 멘토’가 아닐까요!?

 

경남대학교 정은상 교수가 서정주 시인을 흠모(欽慕)해온 것은 과거 대화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미당 이외의 천재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한 정 교수는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가을바람 맞아 그렇게 괴로이 읊었건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내 뜻 알아주는 사람 이 세상에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 경우/ 창밖에 비 흩뿌리는 이 한밤중)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을 앞에 두고 마음은 만 리 저쪽)“라는 글을 보냈었습니다. 정 교수!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와 황국단풍(黃菊丹楓)의 계절! 서울 관악산 중턱 [서정주의 집]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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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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