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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 김종권 기자] 뮤지컬을 보기 전까진 그녀가 누군지 잘 몰랐다. 보고 나니 그녀 아픔과 상처가 느껴졌다. 격정적인 선율 노래와 소박한 무대, 1인 다역을 연기하는 배우들(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까지. 대학로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라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서사가 좋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국 여류 시인 '실비아 플라스' 연대기를 영상과 그녀 또 다른 자아 '빅토리아'(원래는 필명)가 등장해 보여준다. 이 방식이 신선했다. 결말이 슬픈 이야기지만 작품 분위기가 밝아 새로웠다. 배우들 재치 있는 대사(재미있는 대사와 상황들), 가슴을 울리는 노래들(넘버가 좋다), 6명 배우들 호흡이 잘 맞아 기억에 남는 창작 뮤지컬이다.
'실비아'와 그녀 자아 '빅토리아' 연대가 슬프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런 방식은 뮤지컬 '마리 퀴리', '리지' 등에서 봤었지만 '실비아, 살다'는 조금 특이했다. 가상 인물 '빅토리아'와 실존 인물 '실비아'가 계속 대화를 나누며 연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슬펐다. '실비아 플라스'가 살던 시대(1950년대 미국)와 2022년 한국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게 다가왔다. 계속 말하지만 대한민국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차별받는 일이 많다. 사회에 나와서도 임금, 승진 등에서 밀린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따뜻하게 위로한다. 두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한국 여성들이 처한 상황과 작품 속 '실비아 플라스'가 처한 상황이 무척 비슷하고, 그래서 더욱 공감갈 것이다.
7월 31일 관람하면서 대부분 여성 관객들(남자는 나 포함 10명 정도)이 공감하는 듯했다. 2남 중 장남이고, 아직 미혼이라 여성들 심리 잘 모르지만(이건 대부분 한국 남자들도 마찬가지) 작품 속 '실비아 플라스' 아픔과 상처가 강하게 느껴졌다. 여가부 폐지 논란 같이 여성들 삶을 흔드는 문제가 계속 터져 그런 듯하다. 이런 여성 서사 작품들이 무척 반갑다. 나처럼 무지(?)한 남성들을 깨어나게 하는 순기능이 분명 있다.
이 작품은 결말이 슬프지만 내용은 밝은 편이다. 미국 여류 시인 '실비아 플라스'와 그녀 남편 영국 시인 '테드 휴즈' 열정적인 사랑(나중엔 이혼하지만)을 바로 앞에서 보는 느낌은 새롭다. 지금까지 영화, 연극, 뮤지컬을 보면서 앞자리에서 보긴 처음이다. 맨 앞에서 보니 이해가 잘 되는 느낌이다. 배우들 표정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어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다.
여성 서사를 그린 작품들이 꾸준히 나왔으면 한다. 여자 배우들이 설 무대가 많지 않은 지금, 이런 작품들이 계속 나오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섬세하고 세밀한 여성 서사 작품들을 보는 재미가 새롭다. 코로나19로 지친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신선함을 느꼈으면 한다. 더운 여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처럼.
창작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8월 28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관객을 만난다. 김주연, 최태이, 주다온(박소현), 최미소, 이아름솔, 문지수, 이규학, 신진경, 장두환, 이민규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