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악 할머니의 숭고한 기부

기사입력 2010.03.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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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김순악 할머니는 중국 각지의 위안소를 돌며 참담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기억했지. 다 얘기해 줄라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1928~2010)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구술해 책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 카이’를 2년 전 펴낸 역사의 증인이었다. 지난 1월 암으로 타계한 김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전재산 1억 826만원을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내놓았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경북 경산의 소작농 집안에 태어난 할머니는 열여섯 살 때 방직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집을 나섰다가 중국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시절을 짓밟혔다. “방문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으로 주인이 요만한 주먹밥 서너 개 넣어준다. 그럼 그걸 먹고 하루 종일 상대한다니 말이다. 일본 놈들한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으로 알면 그렇게 몬한다.” 할머니는 광복 이듬해 돌아왔어도 신산한 삶이 계속됐다. 식모살이와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잇다 일흔을 넘긴 2000년에야 정부·지자체에서 생활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일평생 우리 사회로부터 위로는커녕 상처만 가득 받고도 오히려 큰 선물을 베풀고 떠난 할머니의 숭고한 뜻 앞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또한 “눈감기 전에 일본의 사죄를 받고 싶다.”던 간절한 소원을 이뤄 드리지 못한 점 죄스럽기만 하다. 할머니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2003년 일본 강연회, 2008년 자서전 출간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일본 정부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는 것만이 피해자들의 짓밟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평소 “전쟁이 모든 고통을 만들었고, 전쟁이 없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야만 해결된다.”며 “일본 민간기금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고 감명 받았다.”고 말해왔다. 할머니들은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월 13일 수요집회는 900회를 돌파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4명 중 생존자는 이제 85명에 불과하다. 이들도 대부분 80~90대의 고령인인 데다 노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김 할머니의 기부는 ‘20세기 최대 인신매매죄’를 공식 사죄와 법적 보상 없이 민간 기금으로만 청산하려는 일본 정부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 할머니는 자신을 암흑의 길로 내몰았던 가난이 사무쳐 재산 절반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내놓았다. 나머지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잘못을 죽어서도 증언하려고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기부했다. 일본은 할머니 유언에 담긴 무언의 꾸짖음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2007년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 2009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그사이 점점 더 많은 할머니들이 삶을 마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발뺌만 하지 말고 해야 할 도리를 다하라. 우리 정부도 미온적 대응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일제의 만행과 가난 때문에 여자의 몸으로 평생 한 맺힌 일생을 살아오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나눔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한 번쯤 되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것도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인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빈다!


[나경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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