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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과 현충의 노래, 22년 6월 6일의 현충원
[청로 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과 현충의 노래, 22년 6월 6일의 현충원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대한민국의 기념일 입니다.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戰亂)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 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행해집니다. 이날이 되면 불리워지는 노래가 “현충의 노래”(조지훈 작사/임원식 작곡)입니다. -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님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 현충일이 되면 불리우는 노래입니다.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로 약 44만 평(144만㎡)의 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국립 묘지는 나라를 위하여 공을 세웠거나 생명을 바친 분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나라에서 마련한 묘지입니다. 이 묘지에 묻힐 수 있는 사람은 전사한 장병을 비롯하여 학도 의용군 · 향토 예비군 · 경찰관 · 국가에 공이 많은 사람으로서 국무 회의의 의결을 거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립 묘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에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서울 동작동에 설립되었던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되기 시작했고, 1976년 4월 14일 현재의 위치로 결정되었습니다. 197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고, 1985년 11월 13일 준공했습니다. 동작동 국립 묘지 정문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곳을 지나면 현충문과 현충탑, 무명용사의 비(碑)가 눈에 띕니다. 무명용사의 비는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름 모를 용사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곳입니다. 산기슭까지 펼쳐진 넓은 경내의 푸른 잔디밭에는 전사한 장병들의 묘비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묘비에는 전사한 장병들의 계급과 성명, 전사한 장소와 날짜가 새겨져 있습니다. 평소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지만, 특히 현충일에는 거국적인 추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을 2022년 6일 6일(월) 오전 9시 53분부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국가유공자 및 유족, 정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시민․학생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오전 10시 정각에 ‘전국 동시 추모 묵념’으로 추념식 시작! 국가보훈처장은 “일상에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기억·계승하는 호국보훈의 달이 되길“빈다고 했습니다. 올해 추념식은 코로나19 방역조치 완화로 국가유공자와 유족, 정부주요인사,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약 28,000여 명을 초청, 그 가운데 인터넷 참가신청자를 포함한 약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새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이번 현충일 추념식은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 정각,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전국동시 추모묵념’을 시작으로, 국민의례, 편지낭독, 국가유공자 증서수여, 추념사, 추념공연, 현충의 노래 제창 순으로 거행! 국민의례 중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육군 제1항공여단 소속 오태건 준위가 낭독하고, 애국가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미래세대와 군인․경찰․소방을 대표하는 국민 등 4명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병 8명과 함께 선도했습니다. 헌화ㆍ분향에는 2021년도 보훈콘텐츠 공모전 수상자 등 6명이 학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필자는 현충일이 되면, 국립묘지 파월 전사자 묘를 찾습니다. 젊은 영혼들, 그들은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가 싸우다 불귀의 객이 된 한국군, 파월장병들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채명신(蔡命新/1926~2013.11.25) 초대 주(駐)월남 한국군 사령관의 묘가 있습니다. 채장군은 월남전의 영웅으로 손꼽히는데, 2013년 눈을 감으면서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습니다. 필자는 1966년 정부에서 마련한 제1기 파월장병위문단의 일원으로 맹호부대를 방문, 거기서 채 장군님을 만났습니다.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갔는데, 그의 인품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묘를 찾습니다. 채명신과 프랑스의 샤를르 드 골(Charlesde Gaulle/1890~1970)은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드골이 생각나는 것은...군대 경력을 거치는 동안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독창적인 사고를 갖춘 인물로 유명했던 장군, 프랑스 제5공화정을 건설한 정치가 드골, 195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드골은 정적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라고 합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인물이 없을까요? ‘채명신’은 다수의 국민들이 잘 모르니...하지만 그는 분명 존경받을만한 인물입니다. ‘채명신’에 대한 재조명을 바라는 2022년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전국적으로 거행! 이는 국가와 국민의 영웅을 영원히 기억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실현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도록 추진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모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가슴에 안고 지냈으면 합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2022 북한 달력 6월과 50년 한국전쟁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2022 북한 달력 6월과 50년 한국전쟁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2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체 111 (2022)” / “조선 · 평양”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고층 빌딩 사진과 아름다운 장미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새 달력 ‘6월’에는 사진 평양 “장전거리의 밤”이 있습니다. 창전거리는 북한이 김일성 주석 100돌이 되는 2012년을 계기로 건설한 거리입니다. 20층에서 45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와 원통형의 인민극장, 아동백화점과 학교 및 유치원, 탁아소, 각종 편의시설과 공원이 창전거리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달력 6월의 1일부터 30일 사이에는 6일(조선소년단창립절)이 붉게 인쇄된 날입니다. 그 아래에는 [망종 6.6/ 하지 6.22]이 있습니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재미동포는 “수십층 고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 들어섰다. 창전거리였다. 하늘로 쭉쭉 뻗은 고층빌딩. 화려한 색감의 건물. 개성 있는 건축 양식. “와우! 여기 평양 맞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창전거리를 직접 눈앞에서 보며 그 위를 차로 달린다. 여기가 평양인지 서울인지 보스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과거 고난의 행군을 겪은 직후 방북했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평양은 회색 콘크리트의 침울한 도시였다고 했다. 그러나, 내 눈 앞에 펼쳐진 평양은 현대적이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시가의 모습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라고 감탄! 6월 달력 : 6월 달력 표지에는 [[주체 53(1964). 6.1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 주체 105(2016) 6.29.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였다.// 주체 15(1926). 6.5.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였다.]] 라는 문장들이 뻔뻔스럽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전쟁은 활발하고 훌륭한 역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비참한 전쟁으로 기록된 ‘6․25’가 발발한 6월이 되어도 한국민들은 여느 때처럼 ‘6․25’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우리 국민들은 삼백육십오일 내내 ‘분단의 아픔’을 잊고 삽니다. 물론 분단의 현장에서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며 ‘활발하고 훌륭한 역사’를 추구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끝없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손자(孫子)는 “전쟁이란 국가의 중대사로 사생(死生)의 분기점이며, 흥망의 경계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해서 ‘고스톱’도 아닌 전쟁판이 자주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만용과 피의 살육을 일삼는 아레스신(神) 때문도 아니고, 미친 듯 도륙을 한 황폐의 여신 때문도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의 소산일 뿐입니다. 그러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한마디로 전쟁광들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 중에서 광적인 전사는 무수합니다. 현대사만 보더라도 히틀러, 무솔리니, 그리고 김일성 등이 있습니다. 1950년 평양의 군사신문인 <조선인민군>은 “남한이 6월 25일 이른 새벽에 38선 이북의 영토에 불의의 침공을 가해왔다”는 내각의 성명을 기사화했습니다. 그리고 사설에서 “조국통일의 날이 왔다! 모든 조선인들은 조국과 인민과 그리고 경애하는 김일성수령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며 독립과 통일을 위해 궐기해야 한다. 남조선인민들을 해방하기 위해 어서 전선으로 나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기원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북한공산군은 아무런 정당성도 갖추지 않은채 예고없이 도발적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했다”고 한 딘 에치슨의 단언이 아니더라도 증거가 명명백백(明明白白)합니다.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6․25관련 외교문서목록을 받아내면서 모든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안에는 <조선인민군>의 허위가사를 믿고 있는 무리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김일성의 남침’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는데도 말입니다. 김일성은 전쟁광이 분명합니다. 그럼 모든 전쟁광들의 최후는(?) 전쟁광 김일성! 한반도를 핏빛으로 물들인 그는 살아 생전(生前)에 ‘전 인류의 태양, 위대한 대원수’가 자기라는 망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똑똑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면서, 착한 백성들에게 자기를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태양’,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선량한 북한사람들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독재자의 폭정 속에서 잘도 참고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항상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전쟁광 김일성의 최후는?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950년 6얼 25일 한국전쟁을 일으킨 지 44년 만에 저승길로! 그가 죽으면서 6.25는 “자기가 꾸민 전쟁”이라고 실토했더라면, 지금의 한반도가 분단되지는 않았을텐데...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화했고,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11.1%에 해당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2022년 6월 북한 달력에는 아무 말도 없지만...남·북한의 모든 한민족은 전쟁광 김일성을 영원히 역사박물관 속에 특별전시하여 그의 악행(惡行)을 지구촌 사람 모두에게 하루 빨리 알려야 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삽화 예술과 삽화가 전하는 중국 이야기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삽화 예술과 삽화가 전하는 중국 이야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삽화(揷畫)’는 ‘글의 내용을 보충하거나 이해를 돕기 위해 넣는 그림.’ 입니다. 삽화는 글의 내용이나 주제를 담은 그림을 말하며 글의 이해를 돕거나 글을 시각화 할 때 사용합니다. 문장 내용에 관계되는 정경, 인문 등을 묘사하여 넣거나 글의 분위기를 고려한 추상적 그림을 넣기도 합니다. 책, 신문, 잡지 등에 있는 문장을 도와 그 내용을 직관적으로 밝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책의 첫 장이나 끝 장에 꾸미는 그림, 안내문을 장식하는 도안, 빈자리를 메우는 그림처럼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역할도 합니다. 삽화는 협의의 설명도, 사진도판 등과 구별되며 그림이 주체인 그림책의 그림도 삽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보통 ‘삽화’는 예술의 한 장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인민일보>는 ‘예술 형식’이라 해서 소개해 봅니다. <인민일보>는 “생동감 넘치고 표현이 풍부한 시각적 언어로 이야기하는 삽화는 최근 주목받는 예술 형식이다. 전통 명절이든 24절기이든 미디어상에서 이미지 표현이나 상업적으로 융용한 광고, 포장, 포스터 등 삽화의 활용은 나날이 증가하며 이미지 서사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음에서 이 글을 발췌, 소개합니다. [[리민(李旻)은 칭화(淸華)대학교 미술대학 시각전달디자인학과를 졸업했으며 중국일보사 미술부 고급편집인. 최근 리민은 9년 의무교과서에서 잡지 표지까지 미술 그림책에서 신문 타이틀까지, 상업 포장에서 패션 도안까지, 다양한 장르의 삽화를 창작하며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다.⇒ ⇒“일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제 삽화가 진·선·미를 그리고 표현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리민은 하나의 작품이 ‘진’과 ‘선’을 표현해야 독자가 ‘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삽화가 아겅(阿梗)은 광시(廣西)예술학원 미술학원의 부교수로 이미 20년째 이 분야에서 일했다. 그녀의 작품은 판타지부터 현실 장르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강자아’(姜子牙)와 ‘웅사소년’(雄狮少年) 포스터는 호방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로맨틱한 상상력을 담고 있으며 미각을 주제로 하는 시리즈 삽화는 진실되고 따뜻하며 삶이 녹아 있다. 그녀의 작품은 예쁘기도 하지만 인간성에 주목한 따뜻한 색감으로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삶도 사랑하지 않을까 해요.” 아겅은 말한다.]⇒ ⇒[전통과 유행의 연결 ; 문화적 자신감이 커지면서 궈펑(國風: 중국풍), 궈차오(國潮: 애국 소비 트렌드)가 최근 몇 년 새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삽화 창작에서도 드러났다. 많은 전통문화 요소가 삽화에 응용되었고 참신한 표현 방식으로 융합되어 전통과 유행을 연결했다.리민의 삽화를 보면 중국 공필화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시대의 숨결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예로 ‘희곡의 매력’(戲曲的魅力), ‘녠예판’(年夜飯: 섣달그믐날 저녁에 온 식구가 모여서 함께 먹는 음식), ‘한푸’(漢服)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옛것을 모방하고 전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것을 현대의 심미적 예술 표현으로 재구성하고 좀 더 독특한 표현 형식으로 인물을 조형하는 것이다. 리민은 일년간 공필화 기법을 배워 현대 삽화에 공필화 표현 기법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면 작품에 중국적 정취를 부여했다. ⇒리민은 줄곧 “전통을 전승하는 것은 복제가 아니라 혁신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옛것을 모방하지 않으면서도 동방의 품격이 스며 있으며 서양을 따라하지 않고 시대 정신을 빛내는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말을 기억했다.⇒ ⇒그녀가 보기에 좋은 삽화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전승과 혁신 등의 문제에서 독단적이지 않으며 융합의 요지를 확실히 알아야 좀 더 내실 있는 예술적 장력을 만들어 내고 오랜 생명력을 갖춘 훌륭한 작품을 창작해 낼 수 있다. 아겅은 종종 학생들과 함께 옛촌락을 찾아 민요를 수집한다. 민요 채집 과정에서 그녀는 늘 정교하고 아름다운 민간 예술품에 감동한다. 그녀는 이 작품들에는 수백 수천 년의 민간의 지혜가 녹아 있으며 현재에도 전위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제 문화 교류 ;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삽화가가 국제 무대에서 연달아 수상하며 그 실력이 주목받고 있다. “삽화는 신흥 예술의 일종으로 중국 삽화가와 외국 삽화가가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것은 국제 삽화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진청(金城) 중국미술가협회 애니메이션예술위원회 부주임은 “삽화는 언어의 제한 없이 국내외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게 중국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내는 국제 문화 교류의 언어”라고 밝혔다.⇒ ⇒이 점은 리민의 신문 삽화 디자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실크로도 신어’(絲路新語)는 천녀의 이미지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표현했다. 화면의 주체는 비파를 연주하며 하늘을 나는 선녀로 상서로운 구름과 모란, 평화의 비둘기가 그 사이를 수놓는다. 천녀는 다양한 문화를 융합한 이미지 및 실크로드 문화의 명함으로 공동 비즈니스, 공동 건설, 공동 향유의 글로벌 거버넌스 가치관을 예술적으로 전달했다. ‘설화원무곡’(雪花圓舞曲)은 눈꽃 이야기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축원했다.⇒ ⇒화면에는 크고 작은 눈꽃이 어우러져 ‘나’와 ‘우리’의 전환과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의 비전을 담았다. 내달리는 설호(雪虎)는 용기와 힘을 나타내는 호랑이 해를 대표하며 중국인의 낭만과 시적 예술적 표현으로 해외 독자들에게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매력을 나타낸다. “중국의 문화는 ‘뼈에 새겨진 것’으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화면을 통해 드러난다.” 리민은 중국 문화와 중국 정수, 중국 기질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각 언어로 창작하며 삽화는 중국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중국 문화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靑魯 李龍雄/ 초빙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스승의 날-제자의‘은사님께 올리는 小考’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스승의 날-제자의‘은사님께 올리는 小考’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우리말 대사전(한글학회 지음]“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여 주는 사람” / “스승의 날 : 스승의 길을 다짐하는 뜻으로 정한 날. 해마다 5월 15일. 1963년에 은사의 날로 시작되었으며 1973년에 없앴다가 1982년에 되살렸다.” // 스승! 현대사회에서는 뜻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스승의 날!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고 명맥(命脈)을 이어온 기념일입니다. 백과사전에는 그날을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교권 존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초기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으며, 1982년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켜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청소년적십자 단원이었던 충청남도 지역의 강경여고 학생들이 현직 선생님과 은퇴하신 선생님, 병중에 계신 선생님들을 자발적으로 위문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의미 있게 여긴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 21일을 충청남도 지역의 '은사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실시했습니다. 1964년부터 '스승의 날'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해에 날짜도 5월 26일로 변경되었습니다.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1966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방송 매체에 보급하면서, 노래와 함께 행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 1973년 3월 모든 교육관련 기념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로 통합되면서 '스승의 날'은 1981년까지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1982년 5월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9년만에 부활했고,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날에는 “스승의 날 노래”(작사:윤석중/작곡:김대현)도 있습니다. // 1절/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 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그 수고 무엇으로 덜어 드리랴/ 그 은혜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2절/ 오월에도 보름 날로 날을 받아서 세종날을 스승의 날 삼았습니다/ 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안끼쳐/ 기쁘게 해드리자 우리 선생님/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또 “스승의 은혜”(작사:강소천/작곡:권길상)도 있습니다. // 1절/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절/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면은 잊기 쉬운 스승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3절/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 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아생전에/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하오리다/ [후렴]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교육자의 상징인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1746~1827)의 비명(碑銘)-“1746년 1월 12일 쥬리히에서 태어나 1827년 2월 17일 부르크에서 숨진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여기에 잠들다. 노이호프에서는 가난한 자의 구조자. 라인하르트와 게르트루트에서는 인민에게 가르친 사람. 슈탄스에서는 고아의 아버지. 부르크돌프와 뮌헨 부후제에서는 초등학교의 창시자. 이벨돈에서는 인류의 교육자. 인간! 그리스도교도! 시민! 모든 것을 남을 위해서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그 이름은 페스탈로치! 스승의 날! 보잘 것 없는 스승인 필자에게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이용웅은사님께 올리는 소고(小考)] 보내준 제자가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장문(長文)인데 여기서 발췌(拔萃)해서 함께 합니다. // [따지고 보면 선생님의 평생직장인 경남대학교에서 지난 40년 동안 한결 같이 우리들과 동행하는 인연(因緣)의 삶을 추구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제자들과의 어울림을 늘 기쁘게 여기시면서 제자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항상 더 나은 미래로 성장하는 제자들을 응원하셨다. 고마운 선생님의 심성(心性)이 우리 제자들의 마음과 인연(因緣)이라고 하는 것으로 쭉 이어져 있는 그런 삶을 살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글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워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다 - ’경사이우 인사난조(經師易遇 人師難遭)’는 말이 바로 우리 이용웅선생님께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이 말은 후한기(後漢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기록되어 있는 말이다. 여기서 경사(經師)란 전공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을 말한다. 반대로 인사(人師)란 덕행을 구비하여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스승을 뜻한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반 동창들이나 독자들도 눈치를 챘겠지만 결국 전공적인 지식을 잘 가르치는 실력 있는 선생님을 만나기는 쉬워도 이용웅선생님처럼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참다운 스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된다...⇒ ⇒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기원 드리면서 - 선생님께서는 다 큰 제자들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인생 100세 시대에 제자들과 오랫동안 동행하고자 하는 사랑이 가득 담긴 당부의 말씀이셨다. 건강에 대한 강조로 ‘노각인생 만사비(老覺人生 萬事非), 우환여산 일소공(憂患如山 一笑空) -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이다’라는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권력욕이나 명예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 아무리 탐스럽고 붉은 꽃이라도 열흘 넘게 피는 꽃도 없고, 십년 가는 권력도 없다’라는 말씀도 전해 주셨다. 은사님께서 교단의 첫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으신 마지막 수업의 훈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마음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용웅선생님께서도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시고 보살피시는 일에만 40년간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질주해 오셨다. 당신의 건강을 위한 삶 그리고 사모님을 비롯한 가족을 잘 보살피고 사랑하는 행복한 제2의 인생길이 활짝 열리길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五月 희망 斷想과 정교수의 희망 禮讚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五月 희망 斷想과 정교수의 희망 禮讚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어두운 나의 마음 속에서/ 난 모든 게 아름답게 보여/ 그러나 내가 그저 태양빛을 느낄 수 없을 때는/ 아무 것도 이뤄 놓은 것이 없겠지/ 그러므로 봄의 계절이란/ 어둠의 계절이란거야// (엘리어트/荒蕪地) T.S 엘리어트(Eliot/1888~1965)의 4월은 분명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희망의 달‘이라는 5월에 그의 “대성당의 살인”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파멸의 봄은 우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처참한 여름은 시내 밑바닥까지 태워버릴 것“이라고! 우리의 2021년 봄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봄이 파멸의 문턱에서 서성이기도 했지만, 희망의 계절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2021년 내내 헛된 망상(妄想)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난 해 어린이 날 ·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가정의 달’에 희망을 얘기해 보았지만, 절망(絶望)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옛 시인 노천명(盧天命/1911~1957)은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지만 ‘코로나’ 덕분에 어느 누구도 ‘여왕’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던 같았습니다. 모두 ‘코로나’ 덕분에! 2021년 오월! 우리는 오월을 ‘잎의 달’, ‘태양의 달’이라고 했고,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도 사랑한다고 했으며, 절망도 체념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권태로운 사랑 속에서도, 가난하고 담담한 살림 속에서도 우유와 같은 5월의 공기를 미시며 건강한 희열(喜悅)을 맛보았기도 했습니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는 “온갖 싹이 돋아나는/ 아름다운 시절 5월에/ 내 가슴 속에서도/ 사랑은 눈을 떴소/ 온갖 새가 노래하는/ 사랑하는 시절 5월에/ 사랑을 참다 못해/ 임께 나는 호소했소”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5월이 되어 꽃 봉우리 싹틀 때/ 내 가슴도 사랑의 그리움이 싹트다”고 했습니다. 어느 작가는 “5월, 오월은 푸른 하늘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希望)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희망(希望)! 공자(孔子) 왈(曰)! 안연(顔淵)과 자로(子路)가 옆에 있었습니다. 공자 “너희들의 希望을 말해 봄이 어떨까?”/ 자로 “저는 거마(車馬)와 가벼운 털옷을 친구와 공유하다가 상하여도 유감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원합니다.”/ 안연 “저는 착한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또 공로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할까 합니다.”/ 자로 “선생님의 希望을 듣고자 하옵니다.”/ 공자는 “나는 늙은이를 평안케 하며 친구에게 믿음 있으며, 연소자를 사랑으로 감싸 주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곰곰이 공자의 ‘희망’을 생각해 봅니다. 2022년 오월! 관악산(冠岳山) 자락 보금자리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과제 채점을 하고 있는 필자의 희망은 1학기 성적 평가를 정확하게 마치는 일입니다. 물론 필자의 큰 희망은 후손들! 인천 사는 7세의 친손주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이지한 올림!”이라는 카드를 받았을 때 확인한 필자가 희망을 생각했습니다. 먹구름 이 거치기 시작한 2022년 五月의 최고의 희망은 자랑스런 나의 후손들입니다, 가족이 최고의, 최상의 희망입니다. 희망! ‘5월의 희망! 글을 쓰려는 순간에 필자가 사랑하는 정은상 박사(경남대교수/ 언론출판원 원장)의 글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쓴 글 보다는 정은상 박사의 글이 더 빛났습니다. 그래서 정박사의 ’오월 예찬‘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정 박사의 [5월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 반 동안 대면이 어려웠던 친구들의 안부와 모임이 제일 궁금해진다. 마치 저 건너 북한산 기슭에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활짝 피어 붉게 타오른 진달래꽃이 친구가 되어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2022년 봄은 엔데믹(Endemic)이란 희망이 있어서 그 어느 해보다 저자의 마음이 청년시절 연애하던 시절처럼 설렌다. 이런 기분을 흔히 ‘희망’이라고 하지 않나 싶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는데, 정말 지리한 지난 시절 코로나19와 어깃장을 끼고 살아냈다. 그럼에도 상생과 공존을 위해서 기도해 왔던 우리들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우리들은 2022년 임인년의 호랑이처럼 영웅이 되어 ‘계절의 여왕’을 맞이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에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땅의 기운을 깨워서 수분을 공급하여 살아있는 생태 숲처럼 대자연을 녹색으로 물들게 한다. ‘화려한 오월의 자태’가 바로 여왕인 셈이다. 화사한 봄날, 계절의 여왕을 대신하여 너와 나, 우리에게 ‘5월의 희망 메시지’를 감히 전해보고자 한다. 우선, 대자연의 섭리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노자의 사상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빌어본다.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나라와 나라 간에 저 푸른 오월의 싱그러움만이 가득한 사회가 되어 대자연에 순응하고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오월의 희망이 있기에 새로 출범하는 대한민국호에 기대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리고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전쟁이 조만간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의 씨앗을 다함께 ‘계절의 여왕’인 오월에 심어보았으면 한다. 그 열매는 우리 후손의 후손 그리고 그 다음 세대들이 풍성한 가을의 열매로 수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기 위해선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낙천주의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희망은 우리가 함께 상황이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낙천주의는 수동적인 미덕이고, 희망은 능동적인 미덕이다. 낙천주의자가 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희망을 가지기 위해선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조너선 색스 / <차이의 존중>) // ”무슨 일에서든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절망하는 것 보다 낫다. 가능한 것의 한계를 측정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J.W.괴테 / 격언과 반성>)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 북한달력 5월과 5월에 시작되는 백두산의 봄
[청로 이용웅 칼럼] 2022 북한달력 5월과 5월에 시작되는 백두산의 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2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체 111 (2022)” / “조선 · 평양”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고층 빌딩 사진과 아름다운 장미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새 달력 ‘5월’에는 사진 평양 “통일거리의 야경”이 있습니다. / 달력 5월의 1일부터 31일 사이에는 붉게 인쇄된 날이 없습니다. 그 아래에는 [립하 5.5/ 소만 5.20]이 있습니다. // 통일거리! 1980년대 말 평양시 낙랑구역 충성의 다리에서 낙랑다리까지의 구간에 새롭게 조성된 신시가지! 고층건물 등이 위치해 있어 평양의 대표적인 대외 선전지역! 원래 명칭은 낙랑거리였으나, 1990년 6월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통일거리에는 폭 1백 20m, 길이 5km의 주도로를 중심으로 아파트·학교·병원·상점 등의 각종 문화후생시설과 서비스시설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입체교차로가 건설되어 있고, 평양에서 개성, 원산으로 이어지는 2개의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5월 달력에는 또 [주체 25(1936). 5.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광복회를 창건하시였다.// 주체 105(2016). 5.9.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였다.”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김일성의 조선광복회 창건은 ‘믿거나 말거나’ 이고...김정은!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청소년기에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박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12월 17일에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겸 조선로동당 위원장 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고, 공화국원수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5월에서 “백두산(白頭山)의 봄이 가장 가고 싶은 곳입니다.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 실린 ’백두산의 사계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기사는 <백두산에는 8월에도 깊은 골짜기마다 흰눈과 얼음이 남아있어 겨울을 방불케 하지만 만병초가 꽃이 피여 백두산의 경치를 더 아름답게 하여줍니다.>라는 말이 김일성의 ’교시‘라고 했습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그래도 ‘백두산’ 이야기를 이어봅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담긴 고귀한 산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백두산이 김일성 부자(父子)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지만, 백두산이 백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역사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모두, 특히 남ㆍ북한 위정자들은 ‘힘겨루기’에 연연하지 말고 남ㆍ북한 국민 모두가 쉽게 백두산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로동신문>의 “백두산의 사계절”(拔萃) 입니다. [“백두산의 경치는 매 계절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백두산의 봄은 5월 상순부터 시작됩니다. 이때 기온이 령상으로 올라가면서 봄우뢰가 울고 눈사태가 쏟아지며 골짜기마다 두텁게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5월 말부터 6월 상순까지도 비와 눈이 엇바꾸어 내리는 현상이 계속됩니다. 백두산의 눈석이는 5월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여 6월 중순까지 기본적으로 진행됩니다. 국부적으로 눈이 두텁게 쌓인 곳에서는 다시 눈이 내릴 때까지도 눈석이가 완전히 끝나지 못하는 현상도 볼 수 있습니다.⇒ ⇒눈석이가 급속하게 진행될 때 곳곳에 물줄기와 폭포들이 형성됩니다. 깊은 밤 백두산 눈석이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는 더욱 이채로운 정서를 자아냅니다. 겨울동안 극도로 랭각되였던 산체에서 눈사태가 일 때 돌사태가 잇달아 쏟아져 내리기도 합니다. 5월말-6월초이면 호반에서 먼저 얼음이 녹으면서 천지물이 드러납니다. 천지얼음은 6월 중순경에야 완전히 풀리지만 떠다니는 얼음덩어리들은 7월 상순에도 볼수 있습니다. 봄 계절에 들어서면서 백두산의 식물들이 움터나고 동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만병초, 돌꽃, 백두산의 봄을 먼저 알린다는 의미에서 <천지진달래>라고도 불리우는 좀참꽃을 비롯한 각종 식물들이 눈이 녹으면서 땅 겉면이 드러나는 차제로 본격적으로 움트고 꽃을 피웁니다. 더운 지방으로 갔던 새들이 앞을 다투어 백두산으로 날아들고 겨울 전기간 굴속에 박혀있던 우는토끼도, 얼음 밑에서 한해 겨울을 난 천지산천어들도 본격적인 먹이활동을 벌립니다. 백두산의 봄철에 보게 되는 또 하나의 풍경은 다른 곳에서 날려온 꽃가루가 천지얼음과 물면우에 쭉 깔려 쌓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산천어의 중요한 먹이로 됩니다...“] 백두산(白頭山)의 사계(四季)! 백두산에서는 여름철에도 맑게 개이는 날이 드뭅니다. 그러나 백두산일대는 다른 지대에 비하여 자외선복사량이 많으므로 기온은 높지 않으면서도 따스한 감이 나고 식물의 잎이나 꽃 색이 특별히 선명하고 진합니다. 백두산의 가을은 8월 하순부터 10월 상순까지 약 50일간 입니다. 백두산에서 겨울은 년중 제일 길어 200일 이상 입니다. 겨울계절은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 하순까지 계속됩니다. 한민족 누구나가 백두산의 ‘사계’를 함께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북한 김정은은 백마를 타고 가끔 백두산에 오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동행한 지휘성원들과 함께 백두광야에 뜨거운 선혈을 뿌려 조선혁명사의 첫 페이지를 장엄히 아로새겨온 빨치산의 피어린 역사를 뜨겁게 안아보시였다”고 보도했습니다. 할아버지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은 백두산을 겁 없이 뛰어다니다니...성스러운 우리 민족의 땅을 맘대로 다니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 백두산은 김정은이 맘대로 뛰어다닐 놀이터가 아님! 가더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닐 것!!!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希望에 斷想과 인류의 희망 인물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希望에 斷想과 인류의 희망 인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희망(希望)! “희(希)-점괘를 가리키는 육효(六爻)의 효(爻)와 수건 건(巾)이 합쳐진 글자” 입니다. 미래의 운수를 알려줄 점괘를 수건이 가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점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란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망(望)-바깥에 나가고 없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달을 바라보며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어 ‘바란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희망! ‘코로나19’는 지구촌 곳곳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절망(絶望)’을 심었습니다. 물론 끝없는 절망은 아닙니다. 누군가 아름다운 행복 속에도 절망은 둥지를 틀고, 모든 노력의 배후에는 정신적인 절망에의 짐이 더해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우리 민족은 숱한 절망을 겪으면서 ‘희망가’를 불렀습니다. 최근 젊은 트롯가수들이 옛 “희망가‘를 불러 코로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보통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리/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1964년, 종신형(終身刑)을 선고 받고 절해(絶海)의 고도(孤島) 루벤섬 감옥(監獄)으로 투옥(投獄)된 사람! 간수(看守)들은 걸핏하면 그를 끌어다가 고문(拷問)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加)했습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은 그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계단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존경(尊敬)을 표했습니다. 그가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1918~2013)입니다. 만델라는 1964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2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것입니다. 그는 남아공( 南阿共) 흑백(黑白) 분리정책(分離 政策)을 철폐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선된 뒤, 그는 자기를 박해(迫害)하고 고통과 치욕을 주었던 정적(政敵)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삶을 ‘절망(絶望)과 희망의 교과서’라고 했습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1769~1821)의 희망! 대영제국 육군원수였던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공작님은 나폴레옹을 워털루에서 이겼는데, 공작님의 군사적 재능이 나폴레옹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웰즐리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재에도, 과거에도, 언제라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일 뿐이오."("In this age, in past ages, in any age, Napoleon." 라고 / 그는 “종교는 영혼의 지배력이다. 그것은 삶의 희망이고 안전의 닻이며 영혼의 구제”라고 했고, “지도자란 희망을 파는 상인” 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1917~1963)는 1961년 1월 20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을 선서하며 취임 연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설은 가장 유려한 연설로 사람들의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리게 됩니다. 케네디는 이미 두 달 전부터 지인과 조언자들에게 의견과 자문을 구하며 연설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서 빌려온 두 구절 "무거운 짐을 내려주고... 억압받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라" (이사야서 58장 6절), "희망 속에서 환호하고 고난 속에서 인내하라"(로마서 12장 12절)을 제외하면 나머지 연설문은 모두 케네디가 직접 썼습니다. 그는 “우리들은 공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들의, 희망을 추구하는 것을 억제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최근 지인이 보내준 글 중의 일부입니다. / [그 오랜 세월(歲月) 어떻게 절망(絶望)의 세월(歲月)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對答)하였습니다. "나는 위대(偉大)한 변화(變化)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Azwie), 희망(希望)을 한 순간(瞬間)도 포기(抛棄)한 적이 없습니다." / 사람이 죽는 것은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백성(百姓)들에게 희망(希望)을 주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指導者)입니다. 보스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지만 리더는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희망!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희망은 선한 것, 미래에 있는 것,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과 관련될 뿐입니다. 희망이 그 목적을 성취하고 나면, 희망은 더이상 희망으로 존재하지 않고 소유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사랑은 끝이 없지만, 희망은 이 세상에서 유한한 인생살이에 국한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호하고 끝이 열린 미래와 관련시켜 희망(elpi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리스도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 용어에 적극적인 대망(待望)과 도덕적인 특성을 부여했다고 봅니다. 끝으로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1882)의 “인생찬가”를 읊어봅니다. / “슬픈 노래로 내게 말하지 마라/ 인생은 단지 헛된 꿈이라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고/ 사물은 외양과는 다르기에./ 인생은 현실이고, 진지하다! 그러기에 무덤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란 말은/ 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나 가는 길은/ 기쁨만도 아니요 슬픔만도 아니다./ 그러니 행동하라/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키케로 /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가 없으며 희망 없이는 인간생활이 영위될 수 없다.“-헬렌 켈러 /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볼 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진다."-아리스토텔레스 // 1922년의 ‘희망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요? 靑魯 李龍雄/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문화재사랑- 2022년 4월호-[교류, 창조의 원천]
[청로 이용웅 칼럼] 문화재사랑- 2022년 4월호-[교류, 창조의 원천]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문화재(文化財)란 각 나라나 유네스코에서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특수 재산들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에서는 1970년 46개국이 가입한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서 문화재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 협약에서 정의한 문화재란 고고학·선사학·역사학·문학·예술 또는 과학적으로 중요하면서 국가가 종교적·세속적인 근거에 따라 특별히 지정한 재산을 말합니다. 이 협약은 자연유산도 문화재에 포함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 제2조에서 문화재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도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시·도 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등 여러 지정문화재로 분류됩니다. 그밖에 토지·해저·건조물 등에 포장된 문화재인 매장문화재가 있습니다.] ‘문화재’하면 대부분 잘 압니다. 그런데 ‘문화재 사랑’하면 대부분 ‘사랑’이라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월간 [문화재사랑]을 발간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는 격월간(隔月刊)으로 변경,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다시 월간이 되는 것은 독자가 증가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2022년 임인년(壬寅年) 3월에 [문화재사랑 2022년 3월호(통권 제208호)]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격월간이던 [문화재사랑]이 3월에 이어 [문화재사랑 2022년 4월호(통권 제209호)]가 나왔습니다. 박수! 이 책에는 [교류, 창조의 원천] 이라는 묶음 안에 [1.나를 움직이게 한 ‘너그러운 열어둠’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2.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로 통한 교류의 역사], [3.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가야의 흔적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이 있습니다. [1.나를 움직이게 한 ‘너그러운 열어둠’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 (요약 발췌) // 청자, 독보적인 단아한 아름다움 / 평소 작업을 대하며 중요하게 여기는 화두 중 하나는 ‘제 빛깔’에 관한 것이다. 혼돈에 맞서 의지로 이루어 낸 승리의 소산과 같은 작품을 만나면 숙연한 마음에 압도되지만, 나는 어쩐지 본연의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나를 새롭게 각성시키는 아름다움을 자꾸만 좇게 된다.⇒ 청자에 내가 지닌 각별한 애정의 이유도 그랬다. 나는 줄곧 청자를 소금구이 요리에 비유해 왔다. 최소의 가공으로 재료의 신선한 풍미만 충분히 살려도 더 바랄 것 없는 맛이 나오듯, 환원소성으로 기물 속 산소를 충분히 끌어내 주기만 해도 유약의 철분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푸른 빛, 그 단순한 원리로 만들어진 가장 유려하고 깊이 있는 빛깔. 자연히 나는 비색(翡色)이 절정의 미를 이루는 고려청자에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비색의 순청자는 별다른 장식 없이 단순하고 균형 잡힌 형태미에 청자의 유색만으로 검소 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기법이나 기형에서 중국의 영향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새롭게 받아들인 기술을 한국의 흙과 한국의 재료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려청자만의 푸른 비색은 독보적으로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고려청자의 아이콘은 단연 국보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상감청자’일 것이다. 어딘가 이미 심드렁한 내 마음속 고정관념의 장벽을 뛰어넘어 상감청자의 실체와 직관적으로 공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2.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로 통한 교류의 역사], // (요약 발췌) //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타국의 문화 / 동서 문명의 교류를 상징하는 단어인 ‘실크로드’는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중국의 비단 교역로를 독일어 ‘Seidenstrasse, 비단길’로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긴 세월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통해 비단 등 교역품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문물과 문화가 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왕래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 우리나라 또한 각종 유물을 통해 실크로드 교류의 한 축임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유물은 경주시 황남동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 된 보물 경주 계림로 보검이다. 1973년 경주 시가지에 자리한 고분 공원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보물 경주 계림로 보검의 장식은 금, 은, 동을 사용해 구획 하고 그 안에 보석과 유리를 감입(嵌入)하는 클루아조네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발달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된 기법이다. 금립(金粒)을 사용하는 누금기법은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스키타이1) 금제품에 보이는 것과 같으며, 중국 신장 지역의 키질 석굴 69호굴 벽화에서도 이 형태의 보검을 찬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카자흐 스탄 북부 지방의 보로보에호수(Borovoe lake) 주변 훈족2)의 묘에서도 같은 형태의 보검이 출토되었다. 이 같은 사실로 봤을 때 필자는 이를 계승한 훈족이 양자를 결합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해 본다. // [3.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가야의 흔적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 // (요약 발췌) // 철의 강국, 동북아시아로 나아가다.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낙동강 유역에 존재했던 연맹체 형태의 왕국이다.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중심지가 바로 김해이며 가락국(駕洛國)은 금관가야의 전신을 일컫는다. 약 500년간 존속했던 가야는 1,500여 년 전 신라에 멸망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삼국유사》에만 언급되어 있을 뿐 가야의 후대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 당시 가야는 김해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철을 이용해 수준 높은 철기 문명을 꽃피운 동북아의 선진국이었다. ‘김해(金海)’라는 지명 역시 ‘철의 바다’라는 뜻으로 철기 문명을 기반으로 중국, 일본과 활발히 교류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63번길 50(봉황동)에 자리한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은 해상 강국으로서 가야의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김해 회현리 패총(金海 會峴里 貝塚)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가 합쳐져 2001년 2월 5일 사적으로 확대 지정됐다. 회현리 패총은 가야시대 대표적인 조개무지로 1907년 대한제국 시기,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 고고학 조사를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조개껍데기뿐 아니라 ‘김해식 토기’로 이름 붙여진 회청색 경질 토기와 각종 철기, 일본계 수입품이 발굴되었고, 중국 신나라 시대 동전이 출토되며 당시의 국제교역 상황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김해시 중심가에 자리한 봉황대(鳳凰臺)는 동남쪽 회현리 패총과 연결된 유적지이다. 가락국 최대 생활유적이기도 한 이곳은 예로부터 가라대(伽羅臺), 망해대(望海臺), 여의현(如意峴), 독현(獨峴), 회현(會峴) 등으로 불렸다. // 靑魯 李龍雄/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2022 북한 달력 ④4월과 4월의 태양절 & 김정은 남매
[청로 이용웅 칼럼]2022 북한 달력 ④4월과 4월의 태양절 & 김정은 남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2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체 111 (2022)” / “조선 · 평양”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고층 빌딩 사진과 아름다운 장미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2022년 새 달력 ‘4월’에는 사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저1``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명 4.5 / 곡우 4.20”이 있고, ‘빨간 색 숫자’는 일요일과 “태양절”이 있습니다. 2202년 달력 4월의 1일부터 31일 사이에는 [15일(태양절)]이 적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월 달력에는 김일성은 물론이고,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강반석(康盤石/김일성 母/1892~1932)까지 등장했습니다. ‘4.15 태양절’(적색) 사진과 글자도 있습니다. 다음은 4월 달력에 있는 문장들입니다. 4.15. 태양절// 만경대 김일성 생가 그림// 주체1(1912) 4.1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시였다.// 주체 21(1932) 4.2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였다.// 주체 81(1992) 4.1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를 받으시였다.// 주체 82(1993) 4.9. 위대한 수령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주체 101(2012) 4.11.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되시였다.// 주체 101(2012) 4.13.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1892. 4.21. 우리 나라 녀성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강반석녀사께서 탄생하시였다.// 2022년 4월에도 북녘 땅에는 어김없이 ‘태양절(太陽節)’이 찾아옵니다. 북한의 태양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에서 1912년 4월 15일에 김일성이 출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기념하는 북한의 최대의 명절! 북한은 1974년 4월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통해 북한 최대의 명절로 지정하였고, 1997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3주기에 이 날을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의 5개 기관이 주체연호 사용과 함께 격상시키기로 공동결의했습니다. 북한은 1992년 김일성의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했고, 김일성은 대원수(大元帥)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994년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의 [질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는 “겹쌓이는 정신적인 과로로 하여 1994년 7월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였다. 즉석에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쇼크가 증악되여 1994년 7월 8일 2시에 사망”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2022년 4월의 북한! 수장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등장했습니다. 김여정은 4월 5일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며 "남한을 무력의 상대로 보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한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한다면 "핵전투무력이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재차 위협도 가했습니다. 그는 4월 3일 서욱 국방부 장관의 '사전 원점 정밀타격' 관련 발언을 비난한 담화를 낸지 이틀 만인 5일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통해 다시 담화를 내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발도 쏘지 않을 것이다"라며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여정(金與正/1987년 9월 26일-)은 조선로동당 제2대 총비서이었던 김정일의[2][3] 3남 4녀 중 4녀! 2011년 전까지 공개 석상에 보이지 않았으나, 2011년 1월 14일에 싱가포르 공연장에서 김정일의 차남인 김정철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자동차에 타는 모습을 KBS가 포착 하였습니다. 또한 친아버지인 김정일 사후 영결식장에서 포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최근 “남조선을 겨냥하여 총포탄 한 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런 안하무인(眼下無人! 이런 철면피(鐵面皮)!! 그는 조선로동당 비서실에서 비서로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느 보통 관리인데, 어떤 때는 수장!首長) 같습니다. 곧 망할 나라입니다. 곧 망해야 되는 나라입니다. 김여정의 오빠! 김정은!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정권을 장악, 2011년 12월 30일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이제 김정은(金正恩,1984년1월 8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입니다. 김정일의 사망 이후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로동당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입니다. 보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는 ‘조선로동당과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 령도자’라고 부릅니다. 본관은 전주. 스위스 유학 중 사용된 가명은 '박운' 입니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령도자"로 칭해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은 결코 될 수 없는 인물이...부끄러운 한반도의 인물, 백성들의 적(?)! 2022년! ‘태양절’이라는 김정은 자매의 할아버지 생일잔치들은 모두 취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부지(扶支)할 수 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없는 뿌리를 일깨운다.”(엘리어트/황무지)- 이제 4월입니다! 애숭이 남매들이 광분하는 ‘태양절’을 맞아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는 인간들이 되길 바랍니다.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봄꽃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봄꽃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꽃들은 침묵(沈黙)의 언어(言語)를 가지고 사랑을, 평화를, 인 정을, 그리고 꿈을 가르쳐 줍니다. 하얀 목련 꽃은 고귀함을 말하고, 아무렇게나 벼랑에 흩어져 핀 진달래는 소박한 전원(田園)의 사랑을 말합니다. 3,4월의 벚꽃은 감정을 들뜨게 하고, 연산홍꽃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철쭉...한반도의 봄꽃!‘’ 시인(詩人)은 한반도의 봄을 노래했습니다. “꽃이 핀다/ 하늘도 감격스러워할 봄꽃이/ 오늘 눈부시게 피어난다/ 꿈결처럼 피어오른/ 저 화사한 한반도의 봄꽃이/ 영원무궁 피어나길// 천만년과도 같은 분단 육십구년 만에/ 두 정상이 군사 분계선에서 만나/ 열 두 시간이란 장 장 시간을 거쳐/ 정상회담을 하는 역사적인/ 이 감격이 하늘 높이 타올라/ 머잖은 시일 내에/ 전쟁 없는 이 나라 이 땅/ 평화로운 온 세상이 되게 하는 곱디 고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한반도의 봄꽃은 이제 이념(理念)의 땅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2022년 봄! 벌써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봄꽃 중에서 ‘유채꽃’을 얘기합니다. 그건 제주도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봄꽃’하면 먼저 개나리, 진달래 등을 떠올렸는데, 이제 ‘유채꽃’이 봄꽃 서열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재배품종은 미유기 · 유달 · 아사히 · 전남재래 · 용당 · 영산유채 · 내한유채 · 목포29호 등이 있고, 꽃말은 “명랑, 기분전환” 입니다. 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꽃들은 침묵(沈黙)의 언어(言語)를 가지고 사랑을, 평화를, 인정을, 그리고 꿈을 가르쳐 줍니다. ‘유채꽃’은 십자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봄에 피는 노란 꽃으로 유명합니다. 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고, 씨에서 짜낸 기름을 카놀라유라고 합니다.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봄꽃! 유럽 지중해 원산으로 전 세계에 분포합니다. 꽃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 심거나 씨에서 나오는 기름을 추출할 목적으로 대량 재배하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중국 명나라 시대, 어린 잎과 줄기를 먹기 위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잎 모양이 케일과 닮아 ‘시베리안 케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제주도의 ‘유채꽃’은 ‘희망’ 입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해도 진달래! ‘진달래’를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잎 두잎 따먹는 진달래에 취하여/ 쑥 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 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 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 조울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 진달래는 먹는 꽃 /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라고 노래한 詩人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북한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우리가 진달래꽃을 보고 소월(素月) 김정식의 시(詩)를 떠올린다면,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숙 부부(夫婦)을 연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 시민들이 손에 들고 흔들던 것은 진달래꽃 입니다. 평양 한 가운데 세워진 개선문에도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업적을 찬양하는 개선문의 아치형 테두리에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상징하는 70개의 진달래꽃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진달래꽃은 ‘김정숙 꽃’으로도 불리웁니다. 김정숙이 김일성에게 진달래꽃을 바치며 항일투쟁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는 북한 문학과 예술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모자(母子)가 좋아한 꽃이라서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진달래가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지만, ‘먹는 꽃’이라서 좋아할 것입니다. 남한에선 과거에나 존재했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4월에 북한 주민들이 진달래꽃을 먹고라도 삶을 잘 이어가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사라졌을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전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이별의 꽃길이 더욱 더 아름다운 사랑의 꽃길이 되는 기적, 이 참다운 사랑의 기적이 시인의 <진달래꽃>의 진수(眞髓)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진달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북힌 김정일이 자기 엄마가 좋아했던 꽃이라며 백성들에게 좋아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1922년 봄꽃들이 확실히 곱습니다. 한반도의 봄꽃은 지구촌의 백미(百媚)입니다. 필자에게는 광양의 매화, 구례의 산수화가 참 꽃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타계한 후배 시인의 안내로 그 꽃들에 취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도 가고, 코로나가 그 꽃들 조차 빼앗아 버리고...뜬금 없이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생각납니다. [원문]“지금은 남의 땅―ᄲᅢ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해살을 밧고 푸른한울 푸른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가튼 논길을ᄯᅡ라 ᄭᅮᆷ속을가듯 거러만간다.// 입슐을 다문 한울아 들아 내맘에는 내혼자온 것 갓지를 안쿠나 네가ᄭᅳᆯ엇느냐 누가부르드냐 답답워라 말을해다오.//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넘의 아씨가티 구름뒤에서 반갑다웃네.// [현대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인의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은? 그의 ‘푸른 설음’조차도 코로나 때문에 잊혀지는 것 같고...하루 빨리 코로나가 박멸되어 한반도와 한민족의 ‘푸른 웃음’이 한반도의 봄을 장식해주길 빕니다. ⇒친구야! 몸소식 전해줘서 고맙네- “어느 덧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국 곳곳에서 매화, 목련 등 봄꽃이 꽃망울을 터트려가고 있습니다./ 봄이 왔다고 속삭이며 가지가지마다 꽃망울 터트리는 봄꽃들 처럼 ‘靑魯’의 봄날도 따뜻하게 피어나시길~~”(서울사대부고 동기 방준영)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