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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용산공원 조성과 단절된 역사문화 계승
[기고] 용산공원 조성과 단절된 역사문화 계승
[선데이뉴스] 임오군란 이후 외국군에 내어주었던 용산 땅이 드디어 대한민국에 반환되고, 용산부지에 특별법으로 용산공원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특별법에 의해 용산공원은 민족성·역사성 및 문화성을 갖춘 국민의 여가휴식 공간 및 자연생태 공간 등으로 조성된다. 그러나 용산공원 조성에 역사와 문화의 보존과 전통의 계승에 대한 논의는 배제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용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고,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에 더 많은 역사, 문화 전문가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용산공원과 관련해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시행령’,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시행규칙’ 등이 있다. 하지만, 특별법에 각종 연관 법령이 언급되어 있으나 문화재보호법과 연관된 조항이나 언급은 없다. 특히, 용산공원법 13조에 ‘역사 문화 복합시설 등의 보존 또는 설치의 기본방향이 종합기본계획 수립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문화 시설의 보존과 설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2021년 변경 공포된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에는 독립전쟁기념관, 용산공원 역사박물관․아카이브 시설 등을 존치건축물 활용방안으로 정해 새로운 시설 건축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4점 가운데 5점이 직·간접적 불교계 문화유산으로, 전체의 1/3이나 되는 등 한국의 전통문화와 불교 문화유산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역사적으로도 용산지역에는 보광사, 운종사, 고산사 등 사찰이 존재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미군기지 편입 와중에 멸실됐다. 따라서 용산공원에는 전통문화를 복원·계승하기 위한 역사문화 공간도 필요하다. 지난 2008년 남대문이 방화(放火)로 소실됐다. 정부가 5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남대문을 복구한 이유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용산공원법이 규정하고 있는 역사 문화 복합시설 등의 보존 또는 설치를 위해 용산공원에 우리의 전통문화인 역사문화 복원·계승 시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청로 이용웅 칼럼] 문화재사랑- 2022년 3월호- 어울림의 미학
[청로 이용웅 칼럼] 문화재사랑- 2022년 3월호- 어울림의 미학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문화재(文化財)란 각 나라나 유네스코에서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특수 재산들을 말합니다. 유네스코에서는 1970년 46개국이 가입한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서 문화재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 협약에서 정의한 문화재란 고고학·선사학·역사학·문학·예술 또는 과학적으로 중요하면서 국가가 종교적·세속적인 근거에 따라 특별히 지정한 재산을 말합니다. 이 협약은 자연유산도 문화재에 포함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 제2조에서 문화재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도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시·도 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등 여러 지정문화재로 분류됩니다. 그밖에 토지·해저·건조물 등에 포장된 문화재인 매장문화재가 있습니다.] ‘문화재’하면 대부분 잘 압니다. 그런데 ‘문화재 사랑’하면 대부분 ‘사랑’이라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월간 [문화재사랑]을 발간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는 격월간(隔月刊)으로 변경,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다시 월간이 되는 것은 독자가 증가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2022년 임인년(壬寅年) 3월에 [문화재사랑 2022년 3월호(통권 제206호)]가 나왔습니다. 이 책에는 [어울림의 미학] 셋(3)이 백미(白眉)! ‘미학 셋’은 [1.멜로디에 담은 비밀스러운 연인의 모습/ 2.만물의 형상과 조화를 그린 단청(丹靑)의 아름다움/ 3.푸른 하늘 아래 분홍 바다 명승 한라산 선작지왓]입니다. [멜로디에 담은 비밀스러운 연인의 모습. // (요약 발췌) ‘수수께끼 가득한 두 사람의 밀회/ 순간의 한 장면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습니다. 선조들이 남긴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요소와 배경으로 수 많은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즐거움과 유쾌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더없는 쓸쓸함과 그리움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림 속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과 그만큼의 그리움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부잣집 자제로 보이는 남자와 밀회를 나누는 여자. 실눈 같은 눈썹과 굳게 다문 작은 입술이 다소 긴장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에서 먼저 시선이 가는 남자의 얼굴. 그런데 남자의 눈은 여인에게 향해 있습니다. 휘어진 초승달은 무언가를 안다는 듯 구름 사이에 숨어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달이 잠시 눈감아주고 나서야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며 반짝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달이 걸려 있습니다.⇒ ⇒달이 뜬 밤 풍경과 담벼락이 은밀한 만남임을 암시합니다. 어떤 사연인지 궁금해하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신윤복은 그림 속에 “달빛 침 침한 삼경 / 두 사람의 심정은 /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습ㄴ다. 반가웠던 만남도 잠시 남자의 왼발이 바깥을 향하며 헤어짐을 암시합니다. 그 순간이 더없이 슬프고 아쉽지만, 곧 헤어짐은 다음 만남을 향한 셀렘으로 바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의 형상과 조화를 그린 단청(丹靑)의 아름다움. // (요약 발췌) ‘오색 빛에 권위와 위엄을 담습니다. 궁궐이나 사찰 등 전통 건축물에는 단청(丹靑)이라는 역사가 오래된 우리의 유·무형 유산이 있습니다. 울긋불긋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일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청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해서만 아니라 목조건축물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단청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목조건축물의 수명 연장과 목재 면의 조악한 부분을 감추는 것입니다. 단청이 이뤄지기 전 상태의 목조건축물을 백골집[白骨家]이라고 하는데, 백골집 상태로 오래 두면 건축물의 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에는 되도록 단청을 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단청은 아무 건물에나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가(私家), 즉 일반인의 집에는 단청을 행할 수 없었음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왕 또는 왕실과 관련된 건축물이나 종교적 건축물, 관아 건축물 등에는 반드시 단청을 행했으며, 그것도 위계에 따른 장엄 등급을 규정해 이를 엄격히 지키며 시행했습니다. 우리나라 궁궐이나 사찰 등은 크게 중심전각과 부속전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중심전각의 단청은 화려한 장식으로, 부속전각은 중심전각보다 덜 화려한 장식으로 단청을 행합니다.] [푸른 하늘 아래 분홍 바다 명승 한라산 선작지왓. // (요약 발췌) ‘분홍빛으로 알리는 봄의 시작/ ‘선작지왓’의 ‘작지’는 자갈, ‘왓’은 벌판이란 뜻의 제주 방언입니다. ‘돌이 널려 있는 벌판’이라는 의미로 돌이 흰빛을 띠어 ‘선(설다)’을 ‘흰(희다)’으로 해석해 ‘흰 돌 이 많은 들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선작지왓의 비경은 봄에 비로소 그 빛을 발합니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 말부터 신록이 짙어가는 6월 초까지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차례로 피며 분홍빛의 바다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신이 만들어 놓은 큰 정원 같기도 합니다. 한라산의 다른 초원지대에는 제주조릿대라는 벼과 풀이 뒤덮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에는 대부분 산철쭉과 털진달래를 주요 종(種)으로 하는 관목림 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초봄에 갑자기 추위가 엄습할 때는 털진달래 꽃잎에 설화(雪花)가 입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털진달래와 산철쭉 사이에는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시로미와 눈향나무 등 키가 작은 관목류가 자라고 이 화원의 은밀한 곳에서는 계절별로 백리향, 한라구절초, 설앵초, 구름송이풀, 구슬붕이, 용담 등 이름도 아기자기한 들꽃을 피웁니다. 화산 폭발 때 백록담 분화구에서 드넓은 고원에 튀어나왔을 용암 덩어리가 듬성듬성 박혀 있고, 조릿대 사이로 진달래와 철쭉이 피면 선작지왓은 푸른 하늘 아래 분홍 바다가 펼쳐집니다.‘] [어울림의 미학] 편자는 ‘그 무엇도 하나만으로 완성할 수 없는 우리 문화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고유의 개성을 존중하며 발전’해 왔으며, ‘다름을 받아들이며 어우러진 조화로움은 우리 시대를 지탱하는 정신이자 지혜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뿌리 없는 문화, 그것은 ‘플랑크톤’의 문화라고 합니다. 대중 속에 침투하지 못하는, 그리고 민족의 혈육 가운데 섞여서 동화되지 못하는 문화는 장식으로서의 문화, 모방으로서의 문화일 뿐입니다. 우리는 ‘문화’에 대해 깊히 생긱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靑魯 李龍雄/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학년도 제1학기 ‘대학교 비대면 강의’를 시작하며!
[청로 이용웅 칼럼] 2022학년도 제1학기 ‘대학교 비대면 강의’를 시작하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992년에 필자는 경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에 대해서는 ‘김일성’은 ‘저주 받을 독재자’이고, 북한은 ‘빨갱이 나라’라고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김정일’로 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해 2월 구(舊) 소련연방의 하바로프스크 교육대학교와 경남대학교 간의 국제교류에 대한 세부규약을 확정하기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기증받은 한 권의 책은 필자의 세계를 강한 회오리 바람되어 강타했습었습니다. 그 논문집은 <문예론문집 4>인데, 논문 중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청소년 시절에 창작하신 혁명적 시가문학의 사상예술적 특성에 대해서”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기(詐欺) 논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김일성·김정일’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연구 뿐 아니라 글도 많이 집필했습니다. 다음 일간지 칼럼도 그중 하나입니다.⇒[..마침내 영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영감은 곧바로 소련의 사주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남침(南侵)을 자행했습니다. 그걸 보면 당신은 분명 ‘로스케’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잔악무도한 남침을 했겠습니까. 한반도를 핏빛으로 물들인 영감은 ”전 인류의 태양“이 자기라는 망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영감은 똑똑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착한 백성들에게 ”절세의 애국자“,”민족의 태양“,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영감은 선량한 북한사람들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되었습니다.] 윗글을 쓰게 된 이유는 ‘1992년의 충격’ 이후 오랫동안 북한의 동태를 예의 주시해 보았지만, 가면을 쓴 독재자들의 가증스런 행각만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련이 변해도 김일성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남·북한 간에 정치적․군사적 대결의 종식과 전 한국민의 의사에 따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한국문제의 공정하고 공평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남북대화의 지속을 지지한다”라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소련이 뭐라고 하든 ‘주체’만을 외치며 독불장군처럼 행동했습니다. 그후 필자는 개인적으로 迂餘曲折을 겪었고..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한의 문화예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북한문화예술]=[김일성 주체사상]이었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쓰인 것은 1967년 12월 14~16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4기 1차회의’에서 김일성이 행한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 자립, 자위의 혁명정신을 더욱 철저히 구현하자.”라는 연설에서 부터! 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강]에서 “공화국정부는 우리 당의 주체사상을 모든 부문에 걸쳐 훌륭히 구현함으로써 나라의 정치적 자주성을 공고히 하고 우리 민족의 완전한 통일독립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더욱 튼튼히 하며 자체의 힘으로 조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위할수 있도록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기위한 자주, 자립, 자위의 로선을 철저히 관철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로동당규약’ 전문(前文)에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함으로써, 주체사상은 ‘로동당’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북한의 문화예술은 반드시 ‘주체사상’라는 ‘감옥’ 안에서만 창조, 창작되어야만 했습니다. 이 ‘수치스런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 여 년 전에 대학의 사이버강좌 [북한문예산책]을 개설했고, 웹사이트-이용웅교수의 [북한문예산책]을 오픈했습니다. 이 북한 강좌는 많은 대학들들이 채택해 주어,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 <북한문화예술 현장탐방>, <북한의 문화예슐>로 다양한 강좌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의 정규 강좌 <북한의 문화예술>이 폐강되었습니다. 2020년 교육부에서 교수 1인당 강의 교과목을 줄이라는 ‘명령’에 따라 강좌 [북한의 문화예술]이 폐강되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타 대학이 채택한 교과목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과목은 [新 북한의 문화예술]로 재탄생시킬 예정입니다. 필자의 현 교과목은 북한 과목 외에 [동북아 역사와 문화], [동북아 정세(政勢)와 문화의 이해],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 [이미지메이킹과 자기관리] 입니다. 경남대학교에서 개설한 사이버강좌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은 경남대와 RUCK(한국지역대학연합), KCU(한국대학가상교육연합), SDU(서울디지털대학교)의 교과목으로, 2022년 1학기에 경남대를 비롯하여 경기대, 계명대, 울산대, 전주대, 한남대, 조선대, 창원대 학생들이 수강신청! 이 강좌 등 필자의 모든 과목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촬영, 제작됩니다. 여기서 제작된 필자의 교과목은 모두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http://cafe.daum.net/NEAsiaLYW)-7620명/ 이용웅교수의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 (http://cafe.daum.net/knuifes)-8298명/이용웅교수의 이미지메이킹과 자기관리 (http://cafe.daum.net/lywimagemaking)-12,084명/이용웅교수의 북한의 문화예술(http://cafe.daum.net/nkcywoonglee)-5,648명(2022.2.28일 회원수)] 필자는 2022년 3월 2일, 제1학기 ‘대학교 비대면 강의’를 시작! 강의 과목은 모든 대학의 정규과목(3시간/3학점)으로, [동북아 역사와 문화/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 이미지메이킹과 자기관리/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 입니다. 2022학년도 제1학기 수강대학은 필자의 경남대(경남)를 비롯하여 경기대&총신대&(서울), 중부대,성결대&안양대(경기), 부경대(부산), 계명대(대구), 한남대(대전), 조선대(광주), 울산대(울산), 전주대(전북), 창원대(경남) 등등(等等)입니다. 경남대학교 수강학생은 교육부 덕분(?)에 많이 줄었습니다. 가령 학생 500명이 정원인 강의는 최고 250명만이 수강! 교육부의 대단한 정책의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대학에는 500명이 수강할 수 있는 대형 강의실이 거의 없습니다. 부정행위 방지 때문에 500명 정원이면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바람에 학생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교육부 수장(首長)님! 고맙습니다! 필자는 온라인 강의를 20 여년 해왔습니다. 교육부에 인터넷 교육을 해본 공무원은 얼마나 되나요?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필자는 평생 ‘교육(敎育)’과 함께 해왔습니다. 교육부 수장은 대학에서 비대면 강의를 해본 적이 있나요? ★국가의 운명(運命)은 청년의 교육(敎育)에 달려 있다.-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 ★대학(大學)은 빛과, 자유(自由)와 학문(學問)만을 하는 장소이어야 한다.-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1804~1881) // 2202년 1학기에는 1,662명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합니다! 靑魯 李龍雄/ 초빙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독재자 푸친과 스탈린 · 김일성
[청로 이용웅 칼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독재자 푸친과 스탈린 · 김일성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최근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이성을 잃고 미쳤다’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푸틴을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다뤄야 한다”며 “그는 그냥 미쳤다. 우크라이나인을 죽이려고 이곳에 온 악일 뿐”이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왜 푸틴은 세계 평화를 서슴치 않고 버렸을까요? 우크라이나가 그렇게 대단한 나라입니까? 우크라이나 한 시민의 목소리가 퍼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인가요? 우크라이나는 서구(西歐) 강국과 러시아 갈등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1·2차 세계대전 등 글로벌 세력 재편으로 이어지는 전쟁이 발발할 때도 주요 열강(列强)들이 결코 놓치지 않으려 했던 핵심 영토로 꼽혔습니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수성과 러시아와의 태생적 유사성 등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군사적·경제적 중요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1991년 옛 소련의 품에서 벗어나기까지 1100년의 세월과 냉전 종식 후 30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수난의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대륙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나라입니다. 882년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건립된 키예프 루스 공국은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일대에 거주했던 루스인들이 세운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였습니다. 이후 1240년 몽골의 침략을 피해 주민들이 동북부 지역으로 대거 이주한 곳이 지금의 모스크바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서로 자신이 키예프 루스 공국의 역사를 계승한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18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약 120년 동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둘로 쪼개져 주변국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영토의 약 80%는 러시아 제국에, 나머지 약 20%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분할됐습니다. 이 무렵부터 러시아 제국 치하의 우크라이나는 점차 러시아의 일부로 전락한 반면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한 우크라이나는 서유럽 영향권에 들면서 상대적으로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두 개의 문화권으로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1853~56년 크림 전쟁은 우크라이나 땅에서 러시아 제국과 유럽 열강이 본격적으로 맞붙은 싸움이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크림반도 내 러시아의 흑해 함대 주둔을 둘러싼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충돌이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저지하려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군 형태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지원 사격하면서 전쟁은 국제전으로 번졌습니다. 그런데 구(舊) 소련은 1991년 15개 구성국이 각각 독립하면서 제국의 위용을 잃었습니다.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는 2004년 나토에 가입했습니다. 우크라이나도 나토 가입을 추진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분노’를 샀습니다. 앞서 푸틴은 러시아의 제헌절인 2021년 12월 12일 국영방송에 출연해 “소련 해제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었다. 러시아는 40%의 영토를 잃었다. 나도 경제난에 (직접) 택시를 몰아야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옛 소련에 대한 푸틴의 향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러시아는 나토 가입을 추진하던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2014년 강제 병합했습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친러 성향 반군도 암암리에 지원! 우크라이나는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부와 2000㎞에 가까운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동부 돈바스는 2014년부터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통제하면서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교전이 여전히 이어지는 곳입니다. 서쪽으로 국경을 맞댄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는 모두 나토 회원국입니다. 이러니...러시아의 푸친은 자신이 정통 후계자임을 확실히 하려고 마침내 우르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이제 그는 스탈린에 버금가는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1922~53)을 지냈던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1950년 6월 25일 04시 김일성은 스탈린을 설득, 한국 전쟁을 일으켰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인민군을 지휘! 그러니까 한국전쟁의 주범은 스탈린! 김일성은 그의 “똘마니”였습니다. 필자는 일간지(논설위원 겸직)에 김일성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김주석, 최근 발견된 문서를 보면 주석은 “31년부터 40년까지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 토벌작전에 밀려 소련으로 들어가 42년 7월 적군(赤軍), 즉 소련극동군에 가담한 것”이 확실하더군요. 김주석은 그때부터 45년 시월까지 소련만을 위해 싸운 덕분에, 소련의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게 된 ‘친자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주석이 조국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 결국 당신은 소련만을 위해 산 ‘로스케’의 앞잡이며 꼭두각시였던게 아닐까요(?)]⇒ ⇒ [얼마 전, 당시의 군사령관 레베데프가 소(蘇) 군정의 정책이 “전 인류의 태양, 위대한 스탈린 대원수가 이끄는 영광된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이었다고 증언하면서,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김일성(金日成)만 지도자로 부각시켰다”고! 그때 레베데프의 고민이 “엉터리 장군의 영웅화”였다고 하니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김일성을 항일 민족 영웅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회상을 했습니다.] 1950년 4월, 모스크바 스탈린의 집무실! 스탈린과 김일성의 비밀회담! 다음은 이 회담의 주요 내용(요약)!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더 많은 부대를 창설하고, 더 많은 무기, 기계화된 이동, 전투수단을 보유하는 등으로 철저한 전쟁준비를 강조했으며 “인민들에게 남한이 먼저 공격하고 그에 대한 반격을 가했다고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강조! 그리고 공격을 시작하기에 앞서 다음 3단계에 따른 준비과정을 설정하는 것을 조언! [1.먼저 38선 방면으로 부대를 집결시킨다./ 2.북한 정부 명의로 평화통일 제안을 한다. 다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워 남한 쪽이 무조건 반대할 수밖에 없게 한다./ 3.남한은 당연히 이를 거부할거고, 그 때 공격하면 된다.] //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스탈린! 2022 비극의 땅 우크라이나와 저주받을 러시아!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 // [사진: 불타는 러시아 장갑차- 우크라이나 제2도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교전] // 어제도 오늘도 전쟁 중. 서로 전과(戰果)를 자랑! 하지만 이 시간에도 폴란드로 향하는 난민(難民)들이 장사진(長蛇陣)! 이 모두가 푸친의 정신병 때문! 그를 히틀러에 비유하고 있는 일부 세계인들은 독재자 ‘스탈린·김일성’보다 더한 파렴치(破廉恥)한 인간이라고! 푸친! 지구를 떠나라!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백두산호랑이를 생각하며 호랑이해를 보낸다.
[청로 이용웅 칼럼] 백두산호랑이를 생각하며 호랑이해를 보낸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호랑이해 입니다. 우리나라 호랑이하면 백두산호랑이 입니다. 우선 ‘백두산’을 보면, 단군 신화가 서린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최고봉인 장군봉의 높이가 해발 2,750m 입니다. 한반도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까지 이어집니다. ‘머리가 하얀 산’이란 뜻의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흰색 부석(浮石)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1년 중 겨울이 230일 이상으로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기간이 길어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중국인들은 백두산을 ‘창바이 산(长白山)’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관광하는 산는 중국땅 ‘장백산’입니다. 북한 <로동신문>에 실린 ’“백두산의 사계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기사는 <백두산에는 8월에도 깊은 골짜기마다 흰눈과 얼음이 남아있어 겨울을 방불케 하지만 만병초가 꽃이 피여 백두산의 경치를 더 아름답게 하여줍니다.>라는 말이 김일성의 ’교시‘라고 했습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김일성은 백두산이 ’항일운동의 본산‘이라고 하고,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김정은은 ’백두혈통‘이라며 말타기로 산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담긴 고귀한 산인데 백두산이 죽울 노릇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백두산이 김일성 부자(父子)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지만, 백두산이 백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역사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백두산의 진짜 수장(首長)인 ‘백두산호랑이’가 건재합니다. 백두산호랑이! “량강도 삼지연군, 대홍단군, 백암군 일대에 있는 천연기념물. 우리 나라 특산아종으로 국제보호대상동물로 되어있습니다. 주체69(1980)년 1월 천연기념물 제357호로 지정되여 보호되고있다....이 지대는 범의 살이터조건, 먹이를 얻기 위한 사냥조건이 유리하여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범살이터로 되어있다...”-<조선대백과사전(12)>의 “백두산조선범”에 대한 설명 입니다. ‘백두산조선범’이란 북한에서 쓰는 말로, 한국 호랑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백두산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東北虎(동북호랑이), Амурский тигр(아무르 티그로)가 비슷합니다. 백두산호랑이는 중국의 동북호랑이(만주호랑이)나 시베리아 호랑이에 비해 다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한국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에 비해 다리가 다소 짧으면서 아름다운 황금색털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19세기 중엽의 동북아시아 일대의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한국호랑이가 가장 용맹하기로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습니다. 과거 만주의 청(淸) 민족은 ‘백수의 왕인 호랑이야말로 산령(山靈)의 신(神)이며 그 출생지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고 간주하고 백두산은 영산으로 숭앙’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백두산 반쪽은 ‘중국의 장백산으로 둔갑했고, 남한에서 백두산을 가려면 중국을 거쳐야 합니다. 중국 길림일보(吉林日報)는 북한이 멸종 위기에 처한 백두산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와 협약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길림일보>는 지린(吉林)성 동식물보호처의 발표를 인용,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이 최근 야생 백두산 호랑이 보호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으며 야생 호랑이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생태 보호구역을 지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백두산을 삼킨 중국은 대국 답지 않았습니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는 2010년 8월 중국 동북부 지린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 국경지대에 백두산호랑이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공동으로 밀렵행위를 단속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백두산호랑이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최적지로는 백두산 일대와 중국 흑룡강성 일대와 러시아 접경지역이라면서 이 일대에 중국 등과 함께 호랑이 인공번식을 위한 노력을 함께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남한에서는 1921년 경북 경주시 대덕산에서 사살된 것이 한국호랑이의 마지막 공식 기록입니다. 하지만 최근 민간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남한에서도 경상남북도에 4마리, 강원도 남부에 2마리,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에 4마리 총 10 여 마리의 호랑이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백두산 호랑이는 과거 한반도에 실제 서식한 한국 호랑이입니다. 시베리아 호랑이, 아무르 호랑이, 동북아시아 호랑이라고도 불립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와 둥근 머리, 작고 동그란 귀가 특징이며, 앞발과 어깨의 근육이 매우 발달했으며 힘도 셉니다. 북한 지역에서는 지난 1993년 자강도 낭림산에서 호랑이 일가족 3마리가 생포됐는데, 이때 생포된 호랑이 중 한 마리가 1999년 1월 서울대공원에 반입됐습니다. 북한에서는 1959년 이후 호랑이를 수렵동물에서 제외했고, 2018년 현재 백두산 지역, 자강도 와갈봉 일대, 강원도 고산군 추애산 일대의 호랑이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백두산호랑이는 한민족의 상징 같은 동물입니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불리우며 예로부터 공포와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해가 되면 범에 대한 관심이 크곤 했습니다. 그래서 2022년 임인년 호랑이해를 힘찬 ’비상(飛翔)의 해‘로 여겼는데, 연초부터 북한이 백두산의 관문인 삼지연시에서 ’정치 쇼“를 벌렸습니다. 삼지연(三池淵)은 북한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백두산 주변에서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 앞으로 북한이 제발 여기서 독재자 생일잔치를 말았으면...백두산은 한민족의 영원한 명산(名山)입니다. 靑魯 李龍雄/ 초빙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2월에 생각나는 의사 안중근과 시인 윤동주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2월에 생각나는 의사 안중근과 시인 윤동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대한민국의 한 시민단체는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비통하고 슬픈 날이다”며, 코로나 확진자가 5만여 명에 이르는 엄혹한 시기이니 만큼 자제하자"고 청소년 신세대층에 발렌타인 데이라는 국적 불명 기념일을 즐기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이 단체는 연인에게 주는 초코렛 선물이 팔리는 '발렌타인 데이'는 일본 초코렛 기업이 민족의 영웅 안 의사 흔적을 국민 기억 속에서 지우려는 술수인데도 "청년층이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고 한심하고 또 착잡하다"고 서운함을 토로했습니다.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에 무심한 한국 언론! 본 칼럼은 여기서 ‘의사 안중근’을 돌아봅니다./ 안중근(安重根/1879~1910)은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여 처단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1906년부터 계몽운동을 벌였고, 1907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1909년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가 회담을 마친 뒤 환영 군중 쪽으로 갈 때 권총 3발을 쏘아 사살, '대한만세'를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 사형을 언도받아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여기서 안중근 모자(母子)를 만나봅니다.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조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는 살아서 너와 상봉하기를 기망하지 않노라./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망설이지 말고 죽으라” 의사 안중근! 그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한 바로 그 자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얼빈 역 확장 공사로 기념관이 기차역에서 3km 떨어진 곳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토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지목된 인물입니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결행하기까지 하얼빈에서 보낸 11일 동안의 행적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일목요연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유필, 흉상, 그리고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 전 남긴 유언이 인상 깊습니다. 기념관은 서울 중구 소월로 91번지에도 있습니다. 이곳은 ‘안중근’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최소한 사형선고를 받은 2월, 순국(殉國)한 3월만이라도 기념관을 찾는 우리가 되었으며 합니다. 이 하얼빈과 함께 안 의사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곳은 중국 다롄! 시내에서 45km 떨어진 뤼순(旅顺) 지역은 랴오둥 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중국의 주요군항으로 해군 기지와 잠수함이 떠 있어 불과 몇년 전까지 외국인은 출입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롄을 찾은 한국인들이 잊지 않고 방문하는 도시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항일 지사들이 갇혀 있던 뤼순 감옥을 방문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옥은 총 275개의 감방에 2,0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항일 지사를 사상범이라는 명목으로 닥치는 대로 잡아 이곳에 수감했고, 1906~1936년 사이에는 수감자가 연간 2만여 명에 달했다고 하며, 그중 700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뤼순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습니다. 가까운 이곳을 찾는 우리가 되었으며 합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독립운동가! 윤동주(尹東柱/1917~1945년)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으로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필자가 그를 사랑하게 해준 곳은...망덕포구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의 망덕산 아래에 자리한 강어귀로,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와 갈사리를 끼고 흘러온 섬진강(蟾津江)이 끝나는 곳입니다. 강(江)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팔공산 북쪽 천상데미로 불리는 봉우리 기슭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50리를 흘러 이곳 포구에서 여정을 마칩니다. 이곳에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존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있습니다. 광양의 향토시인들과의 만남이 이어준 인연입니다. 윤(尹) 시인의 기일(忌日)이 2월 16일입니다. 필자는 그의 “서시”를 애송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를 쓰기 반년 전쯤 윤동주는 시 “십자가”에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읊었습니다. 그가 피를 흘렸다면 무얼 바라고 그랬을까요?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노래했습니다. 시인은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습니다. 시신은 화장된 뒤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른 후 중국 지린성 룽징시에 유해가 묻혔습니다. 향년 28세! 그의 조부의 비석으로 마련한 흰 돌을 그의 비석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를 가지러 오라”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습니다. 부친과 당숙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습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은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윤동주문학관(尹東柱文學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문학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문학관입니다.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문학관! 청와대 옆길을 지나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한양 도성 4소문(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이 있습니다. 한양 도성 4소문이란 동북쪽 홍화문(弘化門), 동남쪽 광희문(光熙門), 서남쪽 소덕문(昭德門), 서북쪽 창의문(彰義門)을 가리키는데, 창의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흰색 건물이 윤동주 문학관입니다.// 2022년 2월에 생각나는 독립운동가들!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靑魯 李龍雄/ 초빙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정약용의 리더의 자질과 2022 대선(大選) 후보자들
[청로 이용웅 칼럼] 정약용의 리더의 자질과 2022 대선(大選) 후보자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사전에서 “카오스(chaos)”라는 용어는 [1.(때로 a chaos) (형편없는) 무질서/ 2.(천지 창조 이전의) 혼돈/ 3.(C-) 카오스/ 4.카오스/ 5.혼란 (상태)]로 풀이됩니다./ “카오스”는 “그리스인의 신비적, 신화적 우주 개벽설에서, 만물이 나타나기 이전의 혼돈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카오스 이론(理論)”은 “무질서하고 혼돈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들 속에도 질서와 규칙성을 지배하는 논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입니다./ “카오스-적”은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로 있는. 또는 그런 것.“을 뜻합니다. ’카오스‘를 서두에 운운(云云)하는 것은 2022년 2월을 보내면서 한반도의 정치판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말입니다. ’무질서하고 혼돈의 상태‘처럼 보이는 2월의 한반도에서 ’카오스‘와 함께 떠오른 것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 입니다. 때맞춰 지인이 보내온 글을 소개합니다. 그는 [”삶이 힘들 때는 다산 정약용에게 배운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생이 힘들다고 하지마라ㆍ다산은 경상도 포항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유배지에서 살았다./ 성공에 집착하지 마라.ㆍ다산은 벼슬길에 있던 때보다도 벼슬에서 멀어졌을 때 큰 이룸이 있었다. 인생의 깨달음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크게 배운다./ 사람을 의심하지도 말고 너무 믿지도 마라. ㆍ다산은 같은 조정에서 국사를 논하던 사람들에 의해 유배되었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에 회자(膾炙)되는 [정약용(丁若鏞)의 리더의 자질]도 여기서 소개합니다. [1.말을 많이 하지 말며 격렬하게 성내지 마라 / 2.스스로 직위를 구하지 마라 3.청렴은 목민관 본연의 자세다 / 4.절약하되 널리 베풀어라 / 5.궂은 일도 기쁜 마음으로 행하라 / 6.대중을 통솔하는 길은 위엄과 신용뿐이다 / 7.실제적인 배움을 중시하라 / 8.유비무환의 자세로 재난에 대비하라 / 9.세력자의 횡포를 막아라 / 10.청렴하게 물러나라] 입니다. 정약용!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經世遺表> ·<牧民心書> · <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의 업적 중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보기로 합니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정약용이 집필한 책으로, 48권 16책으로 된 필사본입니다. 이 책은 부임(赴任)·율기(律己 :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 관원을 면직함) 등 모두 12편으로 구성되었고,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었습니다. 그의 저작 연표(著作年表)에 의하면, 강진 유배 생활 19년간의 거의 전부를 경전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얻은 학문적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문제에 마지막 정열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1817년(순조 17)에 <경세유표(經世遺表)>, 1818년(순조 18)에 <목민심서>, 1819년(순조 19)에 <흠흠신서(欽欽新書)>를 계속 펴냈습니다. 정약용의 목민에 대한 구상과 계획은 오래 전부터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는 16세부터 31세까지 아버지가 현감·군수·부사·목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임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힌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도 33세 때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상을 생생히 목도하면서 근민관(近民官)으로서 수령의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근민관으로서 수령의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가“...<목민심서> 중 공직자의 자세에 대한 글귀들-[常存畏 無或恣肆(상존외 무역자사)-공직자가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공직에 임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방자함이 없을 것이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염자 목지본무 만선지원 제덕지근)-청렴이란 공직자의 본질적인 임무다. 모든 착함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다.],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불렴이능목자 미지유아)-청렴하지 아니하고는 고위공직자 노릇할 사람이 없다.] 청렴(淸廉)! 고위공직자(및 직계가족)의 조건은 오직 청렴! 지금 한반도에서는 고위공직자 중 하나인 ’대통령‘을 뽑는 일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대선(大選)‘ 레이스가 본격적입니다. 후보의 자질에 대해 설왕설래(說往說來)하고 중! 그런데 국민들 대부분은 ’모두가 자질 부족‘이라고들 합니다. 그것은 후보 모두가 서로 자질 부족이라고 ’아우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첫 번째 자질이 ’청렴‘이라고 하는 후보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명 정치학자는 이번 선거를 ”황당한 공약으로 도박판이 된 정치판“이라고 하고, 후보 중에는 ’청렴‘이라는 말을 모르는 후보도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을 뜻하는 영어 '프레지던트(president)'는 원래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영국 식민지의 일부 지사들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영국 식민지의 '프레지던트'는 식민지 의회에서 선출된 행정 지도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미국 독립혁명(1776)이 시작된 후 주정부들이 들어서자 주정부의 몇몇 수반들이 '프레지던트'라는 직함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도 대통령제인데, 어느 나라나 ’대통령‘은 고위공직자일 뿐입니다. [목민심서“他官 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타관 가구 목민지관 불가구야)“-다른 벼슬은 내가 구할 수 있으나 목민관은 내가 하겠다고 구할 수 있는 벼슬이 아니다. 임금과 지방관은 규모가 다를 뿐 행정행위의 본질은 같다. 자신의 능력보다 벼슬이 크면 눈을 가리게 되어 국민들을 불행하게 함으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목민관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안 된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의 말말들! ”모든 주장, 모든 제안, 모든 예언, 모든 대안(代案), 그리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양심적으로, 마치 기도를 올리는 마음으로 음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아이젠하워)/ “4년 동안의 임기는 나의 평생에 가장 처참한 시절”(애덤즈)/ “솔직히 말해 나의 대통령 시절은 고급 노예 생활이라고 할수 있다.“(잭슨)// 요즈음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과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습니까? 후보자도, 유권자도 거듭 심사숙고!!! 靑魯 李龍雄/ 초빙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북한 달력 2월과 한반도의 2월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 2022년 북한 달력 2월과 한반도의 2월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2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체 111 (2022)” / “조선 · 평양”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고층 빌딩 사진과 아름다운 장미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2022년 새 달력 ‘2월’에는 사진 “산간문화도시 삼지연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립춘 2.4 / 우수 2. 19”가 있고, ‘빨간 색 숫자’는 일요일과 “1일 설명절”, “8일 건군절”, “15일 정월대보름”, “16일 광명성절” 입니다. 달력에는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밀영 고향집’(그림)→[“2.16 광명성절(주체 31(1942) 2.1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탄생하시였다.)] 그리고 [“주체 37(1948) 2.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인민군을 창건하시였다.] / [주체 101(2012) 2.1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를 받으시였다.] / 또 [2.1. 설명절], [2.15. 정월대보름(민속명절)]이 사진 ‘삼지연시’ 바로 밑에 있습니다. 북한 매체나 언론이 ‘삼지연시’를 다룰 때, 대부분 [김일성+김정일+백두산]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3월의 삼지연시’의 사진처럼 어두운 도시 풍경 사진은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북한은 ‘삼지연’ 하면 먼저 ‘리명수 폭포’하면 선전합니다. 높이 15m-폭 27m...보기 드문 '지하수폭포'! 리명수폭포(鯉明水瀑布)는 량강도 삼지연시 이명수동에 있는 폭포로 이명수역에서 700m 떨어져 있습니다. 1980년 1월 북한 천연기념물 제345호로 지정됐습니다. 이 폭포는 부석층 밑으로 숨어 흐르던 물이 바위 벼랑 중턱에서 떨어지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지하수 폭포입니다. 천지에서 녹은 물이 수 십 킬로미터 땅속을 흘러 나타나 신비감을 자랑합니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수증기를 뿜어 폭포 주변 나무들이 하얀 서리꽃을 피우는데 다섯 줄기의 폭포물이 흘러내립니다. 북한은 이 폭포를 백두산이 김정일의 출생지로 강조하고, 김정은의 정통성은 ‘백두혈통’을 이어 받았다고 선전하는데 사용합니다. 우리는 ‘달(月)중의 달’을 ‘정월대보름달’이라고 합니다. 우린 ‘그 달’을 대부분 조금 알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 달’을 ‘기아’ 때문에 그나마 잊고 산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시세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한(漢)나라 때부터 정월 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입니다. 일본(日本)에서도 대보름을 소 명월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2022년 2월 15일 같은 ‘정월대보름날’이면 시절 음식과 나물, 오곡(찹살 찰수수 팥 차조 콩 )등을 섞어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풍습입니다. 조상들은 아홉 가지 나물에다, 아홉 번 다른 사람집의 밥을 얻어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부름 깨물고 오곡밥에다 귀밝이술도 한잔하고 올 한해는 건강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족(蛇足)을 달면, 이 음식들은 모두 훌륭한 건강식들입니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 약밥, 마른나물 반찬, 국수 등의 명절음식을 만들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오곡은 지방에 따라 달리 꼽기도 하였으나 전국적으로 다같이 이날 오곡밥을 지어 먹은데는 모든 곡식이 다 풍년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있었다. 정월대보름의 명절음식들 중에서 특이한 것으로는 점심에 국수를 눌러 먹는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에는 기아의 고통 속에서 겨우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여기서 <로동신문>의 다음 기사를 소개(발췌)합니다. 김정일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속에서 민속적으로 전해오는 좋은 관습들에는 민족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신적풍모와 정서가 반영되여있습니다.》 우리 인민이 오랜 력사적 기간 전해오는 민속명절들가운데는 음력 1월 15일 보름달이 뜨는 것과 관련하여 쇠는 정월대보름도 있다. 옛 문헌인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인민들은 벌써 삼국시기부터 약밥을 만들어먹으며 정월대보름을 쇠였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옛 기록에 의하면 정월대보름의 명절풍습에는 낟가리대세우기, 대보름달맞이, 두엄져내기, 홰불놀이, 과일나무시집보내기 등 여러가지 명절놀이가 있었다. 낟가리대세우기는 뜨락에 목화와 여러가지 곡식이삭을 매여단 장대를 세워서 풍년 로적가리를 형상해놓고 아이들이 그 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불러 풍년을 축원하는 의례행사였는데 정월대보름전날인 14일에 진행하였다. 또한 이날 낟가리대를 세우는 것과 함께 아침 일찍 퇴비를 논밭에 내는 풍습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풍습에는 다음으로 바줄당기기, 홰불싸움, 연줄끊기, 바람개비놀이와 같은 여러가지 명절놀이들이 있었다...우리 인민들은 새해의 행운과 풍작, 풍어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안고 대보름명절을 유쾌하고 흥미있게 다양한 민속놀이로 장식하면서 인상깊게 보내였다. 오늘도 우리 인민들은 우리 당의 은혜로운 사랑속에서 전통적인 민속명절풍습을 적극 살려나가면서 시대의 감정에 맞게 정월대보름을 즐겁게 쇠고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김정일 생일이 “민족 최고의 명절”입니다. 북한의 2월은 ‘김정일 세상’! 2월 내내 북한의 언론 매체는 김정은의 부친 ‘광명성(光明星) 김정일’ 생일 관련 기사가 홍수를 이룰 것입니다. ‘광명성’은 1965년에 발행된 <조선어사전>에는 없는 어휘인데, <조선어대사전>(1992년)에는 “① 환하게 빛나는 별 ② 항일혁명투쟁시기; 환하게 빛나는 별이라는 뜻으로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높이 우러러 이르는 말. 최근에는 ‘백두광명성’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2022년 2월! 한국의 한 연구단체는 ‘국제정세 전망 2022’ 보고서에서 “북한은 2022년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사거리가 대폭 늘어난 신형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나 2차 극초음속 활공체 시험발사 혹은 신형 잠수함 진수 등 새로운 도발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반도의 2월은 결국 대한민국의 막바지 대선 레이스, 김정일의 생일 파티와 김정은의 미사일 쇼로 장식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中國)의 춘절(春節)과 한반도(韓半島)의 음력 설날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中國)의 춘절(春節)과 한반도(韓半島)의 음력 설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22년 1월 18일 중국 재신망(财新网)은 중국 국무원연합방역메커니즘(联防联控机制)이 발표한 데이터를 인용해 춘윈 첫날 1월 17일 전국 이동객이 2489만 명으로 전년도 동기 대비 2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습니다. 교통수단 별로 보면, 철도 수송객이 525만 명, 고속도로 1850만 명, 수로 36만 명, 항공편 78만 명입니다. 전국 고속도로 예상 유동량은 2940만 8200대로 수로를 제외한 나머지 교통수단 모두 일제히 전년도보다 상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데 지난 1월 15일 교통운수부는 올해 춘윈 기간 전국 예상 이동객은 11억 8000만 명으로 전년도 동기 대비 35.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연휴 기간 이동객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로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세 곳이 꼽혔습니다. 교통부 예측에 따르면, 베이징 지역의 예상 철도 이동객은 898만 6000명으로 전년도 동기 대비 1.13배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하이 철도의 경우 910만 명으로 전년 대비 66.5%, 광저우 지역의 철도, 도로, 항공편, 수로 이동객은 3118만 9000명으로 전년 대비 15.5%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지금 중국은 춘절(春節∙중국설)과 함께! 중국의 춘절 기간 고향 방문은 1979년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40 여 년 동안 여객 이동량은 1억 명에서 30억 명에 가까이 되며, 이동 속도 또한 시속 40km에서 350km까지 빨라지고 있습니다. 기차는 매일 4,860편 편성 예정이며, 춘절 기간 동안 비행기 53만 여 편, 버스 81만 여 편, 선박 2만 여 척이 투입되어 춘절기간 동안 여객 운송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의 설 고향 방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국에서는 설을 춘절(중국어 간체자: 春节, 农历新年, 정체자: 春節, 農曆新年, 병음: Chūnjié, Nónglì xīnnián 춘제, 눙리신녠)이라고 합니다. 민족 대이동은 한반도와 유사하지만 땅이 엄청 넓어 보통 1주일 이상을 휴일로 정합니다. 옛 풍습으로는 마당에 폭죽을 터뜨려 악귀를 쫓기도 하고, 문에 닭이나 다른 형상을 그려 붙여 놓았습니다. 임금과 부모에 절하고, '초백주'라는 술을 바칩니다. 정월 7일은 인일(人日)이라 하여, 7가지 채소로 국을 끓이고, 사람 형상을 병풍에 붙이기도 합니다. 춘절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2000여 년 전 어느 하루 순(舜)이 임금의 자리를 물려받자, 하인들을 거느리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데서 기원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날을 세수(岁首)로 여겨왔고 순의 천자 계승설이 음력 새해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설날! 음력으로 1월 1일! 구정, 정월 초하루, 음력설로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원일(元日), 원단(元旦), 원정(元正), 원신(元新), 원조(元朝),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신일(愼日), 달도(怛忉), 구정(舊正) 등으로 불립니다. 우리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고 하고, 북한은 ‘양력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음력 1월 1일을 ‘설날’이라 하고, 북한은 ‘설명절’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명절은 민속명절과 사회주의 사회에 맞추어 새롭게 생성·발전된 명절이 공존하고 있는데, 민속명절은 단오·추석·설날·한식 등이며 이 가운데 추석은 1988년, 설날과 단오는 1989년에 공휴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면 북한은 설날을 어떻게 말할까요? <로동신문>은 다음과 같이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향취가 짙게 어려 있는 설맞이풍습은 크게 설맞이준비, 설옷, 설인사, 설음식, 민속놀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설명절을 하루 앞둔 섣달 그믐날에는 집 안팎을 깨끗이 정리하고 설옷과 설음식을 준비하였다. 설명절 옷차림을 설빔이라고 하였다...세배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인사법인 조선절로 하였다. 세배풍습은 우리 민족이 웃사람을 존경하고 례의를 귀중히 여겨온데서 생겨난 것이다. 세배가 설명절의 가장 중요한 례식이였으므로 설명절날부터 보름 남짓한 기간에 먼 곳에 있는 웃어른들에게도 찾아가 세배를 하기도 하였다. 설명절날 명절음식을 차려놓고 가족, 친척들과 이웃들끼리 나누어 먹는 것이 제일 이채로왔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찰떡, 설기떡, 절편과 같은 여러가지 떡류와 지짐,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등 이였다. 그 가운데서 제일 손꼽히는 것은 떡국이였다. 떡국은 흰가래떡을 얇게 썰어서 팔팔 끓는 장국에 넣고 잠간 끓이다가 꿩고기나 소고기볶은것을 넣고 양념을 친 것이다. 꿩고기를 아무때나 쉽게 구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하여 민간에서는 일반적으로 닭고기를 꿩고기 대신으로 쓰기도 하였다. 바로 이러한 생활풍습으로부터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유래되였다고 한다. 우리 인민들은 설을 쇨 때마다 떡국을 반드시 끓여 먹는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흔히 애들의 나이를 물을 때면 《떡국을 몇 그릇 먹었느냐.》라고 묻기도 하였다. 설명절을 특별히 장식하게 한 것은 여러가지 민속놀이였다”] 이어서 <로동신문>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설명절 풍습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적인 생활풍습, 아름다운 정서가 어려 있다.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설맞이풍습은 오늘 당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빛나게 계승 발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북한 주민들이 설날은 즐겁게 향유(享有)하고 있는지...북한 당국이 최근 ‘설명절’을 앞두고 “체제수호를 위해 경각성을 높이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촉구하는 지시문을 하달”했다고 합니다. 과연 북한 땅에 지금 ‘진정한 설날’이 존재하는 것인지...한민족 모두가 함께 즐기는 2022년 임인년 ‘설’을 기대해 봅니다.// “까치 까지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란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 [음력 설날-2022년 구정(舊正)-필자의 인사말 : 호랑이의 해-임인년(壬寅年) 2월 첫날은 우리의 전통 설날(舊正)! 설 연휴 동안 건강한 명절 보내시고 기족의 소중함을 듬뿍 느끼는 날이 되시길! 소망하는 일 모두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靑魯 李龍雄/ 명예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고(故) 김정일의 [광명성 2호]와 김정은의 미사일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고(故) 김정일의 [광명성 2호]와 김정은의 미사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 고(故) 김정일 시대!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인공지구위성《광명성2호》를 성과적으로 발사 :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국가우주개발전망계획에 따라 운반로케트 《은하-2호》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를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은하-2호》는 주체98(2009)년 4월 5일 11시 20분에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되여 9분 2초만인 11시 29분 2초에 《광명성2호》를 자기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광명성2호》는 40. 6°의 궤도경사각으로 지구로부터 제일 가까운거리 490㎞, 제일먼거리 1,426㎞인 타원궤도를 돌고있으며 주기는 104분 12초이다. 시험통신위성인 《광명성2호》에는 필요한 측정기재와 통신기재들이 설치되여있다.⇒ ⇒위성은 자기 궤도에서 정상적으로 돌고있다. 지금 위성에서는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김정일장군의 노래》선률과 측정자료들이 470㎒로 지구상에 전송되고 있으며 위성을 리용하여 UHF주파수대역에서 중계통신이 진행되고 있다. 위성은 우주의 평화적리용을 위한 과학연구사업을 추진하며 앞으로 실용위성발사를 위한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는데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진다. 운반로케트 《은하-2호》는 3계단으로 되어있다. 우리의 지혜와 기술로 개발한 운반로케트와 인공지구위성은 나라의 우주과학기술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된 자랑찬 결실이다.] [주체98(2009)년 4월 6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찾으시고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발사과정을 관찰하시였다 :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4월 5일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찾으시고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발사과정을 관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전병호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1부부장 주규창동지가 동행하였다.⇒ ⇒인류공동의 재부인 우주개발과 그의 평화적리용이 세계적추세로 되고있는 현시기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로동계급은 1998년 8월 31일 선군조선의 자랑스러운 창조물인 첫 시험위성 《광명성1호》를 쏘아올려 단번에 우주궤도에 진입시키였다. 이들은 그후 지난 10년간 나라의 우주과학기술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 위성개발과 발사분야에서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우주기술을 세계적수준으로 올려세웠다. 이번에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와 운반로케트 《은하-2호》는 설계로부터 제작, 조립, 발사장과 발사후 관측에 이르는 모든것이 100%국산화된 선군조선의 자랑스러운 창조물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어 인공지구위성발사와 관련한 해설을 들으신 다음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의 발사전과정을 관찰하시였다. 오전 11시 20분, 자력갱생의 자랑스러운 창조물인 《광명성2호》가 지구를 박차고 거세차게 솟구쳐오르는 운반로케트 《은하-2호》에 실려 우주공간으로 날아올랐다.《광명성2호》는 발사후 9분 2초만에 드디여 운반로케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궤도에 순조롭게 정확히 진입하였다. 순간,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라 장내를 진감하였다.] 오늘의 북한 김정은 시대! 김정은은 제3차 핵실험(2013.2.12)에 이어 제4차 핵실험(2016.1.6), 제5차 핵실험(2016.9.9.)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17년 9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대응해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에 대한 사상 초유의 초강경 대응조치를 고려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북한 통치자가 세계를 향해 직접 성명을 발표한 것은 김정은·김정일 집권 시기를 통틀어 최초의 일이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 등 관영매체는 2017년 9월 22일 “김정은 동지께서 미 합중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과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했다”면서 “최고 령도자 동지께서는 9월 21일 당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하면서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특히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7개월 뒤인 2018년 4월 21일 남한 언론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열린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6.15 선언’ 이후 표출된 이념갈등에 대한 남한의 말글들을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합니다. 특히 중대(重大)한 일이 있을 때에는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이 ‘유언비어(流言蜚語) 입니다. 남북문제가 말글들 때문에 “불난 강변에 소가죽 오그라지듯”(「조선속담」, p.286 ; “일이 펴이지 못하고 자꾸만 꼬여나감을 이르는 말=불탄 개가죽 오그라지듯”) 꼬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북한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미국에 대해 선결적으로 취했던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취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라는 '모라토리엄' 선언의 철회를 시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날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 같이 말하며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결'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2022년 1월 20일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1면에 보도했습니다. 김정은의 속셈은 뻔합니다. 언제나 정신을 차릴는지...임인년(壬寅年) 한반도의 정세가 걱정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