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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영화 [가을의 전설]에 대한 기억과 2021년 가을맞이
[청로 이용웅 칼럼] 영화 [가을의 전설]에 대한 기억과 2021년 가을맞이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영화(映畫)]는 주지(周知)의 설명, ‘촬영으로 필름에 기록한 화상을 스크린에 투영, 영상과 음향을 통해 보여주는 영상물’입니다. 영화는 오늘날 예술의 한 갈래이면서, 단순한 예술의 영역을 넘어선 넓은 사회 문화적인 복잡한 현상입니다. 이 영화와 필자의 만남은 [불문화사] 강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Auguste and Louis Lumière)가 제작, 파리에서 상영된 영화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La Sortie des ouvriers de l'usine Lumière〉(1895)이 최초의 영화라는 것을 가르치면서 <연극과 영화의 세계>,(李龍雄 著)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영화를 보아왔지만, 강의 후 영화에 빠졌습니다. ’영화의 종주국‘ 프랑스는 최초의 영화로 공인된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를 발명한 나라입니다. 1895년 루이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à la Ciotat, 1895)이 파리 그랑 카페(Grand Café)에서 상영된 이래, 프랑스 영화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먼저 영화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영화들 중에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니 한국 · 미국영화 등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이들 영화 중에 ’좋아하는 영화‘들이 생겼습니다. 그중 한 작품이 미국의 [가을의 전설]입니다.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1994)]은 국내에서 1995년 개봉된 영화로,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작품! 에드워드 즈윅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로, 제1차 세계 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삼 형제 집안의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만 보면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으나, 뛰어난 영상미와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이를 멋지게 소화한 배우들의 조화로 이를 상쇄하면서 재미가 상승합니다. 국내에서는 여러 차례 TV 등에서 더빙되어 방영됐었습니다. 배경은 1913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울창한 숲이 우거진 미국 몬태나 주의 농장입니다. 대령 러들로(안소니 홉킨스)는 퇴역 후 몬태나 주의 인디언들과 함께 거대한 농장지대에 살고 있었으며, 슬하에 세 아들 알프레드(에이단 퀸),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새뮤얼(헨리 토마스)이 있었습니다. 첫째인 알프레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모범생이었고, 둘째인 트리스탄은 강하고 정열적인 성격과 남성적인 매력을 가졌으며 막내 새뮤얼은 밝은 청년이었습니다. 천혜의 자연에서 숲과 들판을 뛰놀던 소년들은 자연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밝고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둘째 트리스탄은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나서며 점차 자기 안에 있던 야수성을 발견했고 곰의 습격에도 살아남으면서 곰과 피를 나누게 되었으며, 이로써 ”곰과 피를 나누면 평생 방랑을 하게 된다“는 인디언의 저주에 따라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줄거리...어느날 막내 새뮤얼은 매력적인 약혼녀 수산나(줄리아 오먼드)를 고향으로 데리고 옵니다. 수산나는 보는 순간 알프레드와 트리스탄 역시 그녀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세 형제는 모두 전쟁에 참가하나 새뮤얼은 적군의 총에 맞아 어이 없이 목슴을 잃게 되고, 알프레드는 불구가 됩니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트리스탄은 바다로 떠나버립니다. 그 후 알프레드와 수산나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어느날 트리스탄이 고향에 돌아오자...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하지만 여주인공은 권총 자살을 했습니다. 주인공 트리스탄(브래드 피트)! 그는 형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그가 사랑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는 오래오래 살아 그 자식들의 가정까지 보았다는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그가 정확히 어디서 생을 마감했고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는 추측만 할 뿐 아무도 모른다고 하며 그는 야생의 삶을 살았고, 1963년 어느 숲에서 곰과 대결을 벌이다가 다시 자연으로 영원히 돌아갔습니다./ ”가을의 전설“은 명작도 아니고 대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장드라마도 아닙니다. 이 가을에 생각나는 한 편의 인간드라마라서, 기억(記憶)을 불러일으키는 다시 보고 싶은 보통영화입니다. [불문화사]를 강의할 때, 학생들이 좋아했던 것은 프랑스 영화 보다 프랑스 가요 샹송(chanson)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고엽(枯葉/Les Feuilles Mortes)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이 노래가 ’가을맞이‘가 아니라 ’가을 이별‘이지만 ’가을‘하면 먼저 생각나는 노래’라고 했었습니다. // ”오, 네가 기억할 수 있기를/ 우리 친구였던 행복한 날들을/ 그 당시 삶은 더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더 뜨거웠지/ 낙엽이 삽으로 모아지니/ 알어? 난 잊지 않았다//..삶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 놓고/ 소음없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바다는 모래 위에서 지워/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취들을.// 이 노래는 우리를 상기시키지/ 넌 나를 사랑했고 난 너를 사랑했지/ 그리고 우리 둘 다 함께 살았어/ 날 사랑한 너, 널 사랑했던 나// 하지만 삶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아/ 아주 천천히 아무 소음 없이/ 그리고 바다는 모래 위에서 지워/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취들을...“/ 낙엽(落葉)도 좋지만, 그래도 가을은? 가을! 과거에는 가을이 되면 먼저 회자(膾炙)되던 말이 ‘천고마비(天高馬肥)! 그런데 지금은 높은 하늘 보고 말(馬)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살찌는’ 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맑고 풍요로운 가을’을 얘기할 때는 더 더욱 외면까지 합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 책을 읽음)도 ‘별로’인 세상입니다. 그래도 구추풍국(九秋楓菊/ 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 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그리고 황국단풍(黃菊丹楓/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등은 거부감이 별로 없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국단풍’은 가을을 상징합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백거이(772~846/)의 “가을밤”-“우물가에 오동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그리고 R.M.릴케의 “가을”을 노래해 봅니다. 그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계속 신규 확진자가 매일 1천400명 안팎인 지금! 가을맞이를 시작하며 희망의 끈을 꼭 잡아봅니다. 올 가을은 ‘전쟁을 치룬 폐허(廢墟)’ 속에서 다시 태어난 황국단풍(黃菊丹楓)의 아름다운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8월의 북한 소식-망언과 희한(稀罕)뉴스 & 폭우와 큰물
[청로 이용웅 칼럼] 8월의 북한 소식-망언과 희한(稀罕)뉴스 & 폭우와 큰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8월 1일]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북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로동신문>을 그대로 캡처한 사진도 가끔 언론에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8월의 북한 소식! 이 소식은 북한 수장(首長)의 여동생 김여정의 '한·미 훈련 중단 압박' 담화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8월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담화에서 북한 조선로동당 부부장에 지나지 않는 김여정은 “지금과 같은 중요한 반전의 시기에 진행되는 군사 연습은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 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을 향해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난 7월 27일, 13개월 동안 끊겨있던 남북 통신선이 복원된 뒤에 나온 헛소리입니다. 심심하면 나오는 김여정의 망언(妄言)! [8월 3일] 7월 말(末)에 '한포기의 곡식도 가물 피해를 받지 않게 하자'고 했던 <로동신문>은 8월 3일, 또 한포기도 가물 피해를 받지 않게 하자“고 했습니다. 신문은 ”지금 동해지구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은 가물피해를 기어이 막고 올해 농사에서 통장훈을 부르기 위해 나날이 더욱 기세를 올리며 헌신분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신문은 각 도들의 인민소비품 생산 현황을 조명하고 “모든 잠재력을 동원하여 8월3일 인민소비품 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자”라고 촉구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생필품 질 제고 위한 ‘품질감독 구루빠’ 조직…공장들 ‘노심초사’]입니다. [8월 7일] 희한(稀罕)한 뉴스! 북한 <로동신문>은 7일 김정은이 수해현장을 찾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찾은 지 1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는 기사를 실었었습니다. 2020년 8월 7일 방문했는데, 그때 김정일은 ”몸소 운전대를 잡으시고 험한 진창길을 헤치시며 큰물 피해를 입은 이곳에 오시어 피해 상황을 직접 료해하시면서 수재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피해를 하루빨리 가시기 위한 중대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고 합니다. 1년전에 수해현장을 방문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낫리굿! 북한 주민들이 불쌍합니다. [8월 10일] 김여정은 이날 오전 8시2분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이번 한·미연합군사연습은 “우리 국가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며 우리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조선반도의 정세를 보다 위태롭게 만드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한 뒤,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미훈련은 사전연습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이 10~13일에, 본 훈련인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21-2 CCPT)은 16~26일 진행! [8월 10일] <조선중앙통신>은 10일 “폭우와 큰물로 발생한 피해를 하루 빨리 가시기 위한 국가적인 긴급대책들이 시급히 강구되고 있다”며 “피해복구전투를 중앙에서 강력하게 지원할 데 대한 당 중앙의 뜻을 받들고 내각과 성, 중앙기관 일군(간부)들로 '큰물피해복구중앙지휘조'가 구성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달 초 함경남도에 큰 물난리가 나면서 ‘지휘조’라는 수해복구 전담 조직을 신설한 북한은 지난해 8월에도 홍수가 발생하자 큰물피해복구중앙지휘부를 신설하고 각 부문이 지휘부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었습니다. 농업성 등이 식량과 부식물, 기초식품 보장 대책을 마련했다고! [8월 15일] 북한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침략적 정체를 드러낸 자멸적 망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우리 공화국을 기어이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며, 우리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조선반도의 정세를 보다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북침전쟁연습”이라고 비난! 또 매체는 “전쟁연습과 평화는 양립될 수 없다”며 “남조선 당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 온 평화와 신뢰 타령이 한갓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8월 21일] 북한 <로동신문>은 21日 字, “김정은 동지께서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 건설 사업을 현지지도하셨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의 독창적인 수도 건설 구상과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을 빛나게 관철하기 위한 충성의 돌격전, 치열한 철야전을 벌이고 있는 건설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해 보통강 기슭에 현대적이면서도 특색 있게 건설되고 있는 인민의 이상거리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자기의 웅장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고 밝혔습니다. [8월 25일] <로동신문>은 25일 1면에 ‘선군절’ 기념 논설을 싣고 “군력이자 국력”이라며 “군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길에 강국도 있고 인민의 안녕과 행복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문은 “군대가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쳐부술 수 있는 불패의 전투대로 위용을 떨치자면 정치 사상적으로뿐 아니라 군사 기술적으로도 튼튼히 준비돼야 한다”며 “우리 국방공업은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무장 장비도 척척 만들어내는 현대적이며 자립적인 공업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은 8월 1일부터 25일까지의 북한 소식입니다. 요약하면, 김여정의 망언(妄言), ‘쇼’ 같은 인민소비품 생산, 작년 김정은의 ‘수해지구 방문 1년 기념’한다는 희한(稀罕)한 뉴스, 홍수를 뜻하는 ‘큰물’, ‘위험천만한 북침전쟁연습’이라고 몰아친 ‘한미연합훈련, 김정은의 주택 건설현장 방문, 그리고 ’선군절 뉴스...북한 <로동신문> 2021년 8월 16일자 1면을 장식한 기사 4개는 [김정은, 김정일, 김일성, 조국해방76돐] 뿐! 결국 북한의 8월 뉴스는 ‘선군(先軍)’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김정일을 비롯한 그의 부친과 아들에 대한 우상숭배와 광복절을 왜곡(歪曲)한 ‘조국해방76돐’ 자랑 뿐입니다. 2021년 8월! 지금의 북한은? 6~7월의 기록적 폭염과 가뭄, 이어진 폭우와 ‘큰물(홍수)’에 북한 주민들은 허기진 배를 잡고 ‘죽기살기’인데...‘우상숭배’나 하라고 하고...북한 위정자들은 참으로 나쁜 자(者)들? 이번 태풍 12호 오마이스 때문에 우리의 피해 농민들도 큰 고통 속에 있는데, 우리 정부는 적당히 넘기는 것은 아닌지...우리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고,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고 했습니다. 태풍이 또 오면? 모두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서로서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교육부 & 2021학년도 제2학기 ‘온라인 강의’의 새 출발
[청로 이용웅 칼럼] 교육부 & 2021학년도 제2학기 ‘온라인 강의’의 새 출발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우리 교육부는 “사람중심 미래교육”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협력과 공존이 살아 숨 쉬는 교육, 학생의 성장이 중심이 되는 교육, 생애주기 전체를 고려한 맞춤형 교육, 개인의 소질과 적성이 존중받는 교육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 중심의 미래교육계획을 구체화하여 사회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부모의 소득격차가 교육기회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국민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육을 실현하겠습니다. 항상 국민의 눈높이와 현장의 목소리를 존중하며 겸허하게 교육정책을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유은혜 장관] 이상은 [교육부] 홈페이지의 [열린장관실]에 있는 [장관소개]→[인사말] 입니다. 다음은 “[교육부] 홈페이지의 [K-MOOC]에 있는 [K-MOOC?]→[소개]입니다 : “무크(MOOC)란 Massive, Open, Online, Course의 줄임말로 오픈형 온라인 학습 과정을 뜻합니다. 이 것은 강의실에 수용된 학생만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서 청강만 가능한 온라인 학습동영상으로 변화하고 현재는 질의응답, 토론, 퀴즈, 과제 제출 등 양방향 학습을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또한 국내 우수한 명품 강의 콘텐츠를 개발하여 글로벌한 브랜드로써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교육부] 대학 강좌의 온라인 공유를 넘어 변화하는 미래사회를 주도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학습자 중심 K-MOOC 2.0” 추진/ ㅇ(사업기간) ’15년 ~/ ㅇ(주요내용) ①학습자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강좌 제공 ②학습자/ 친화적인 학습환경 구현 ③K-MOOC활용 활성화 ④참여기관 지원 강화...세대별 한국인 필수시리즈 강좌 등 다양한 강좌 신규 개발// 이상은 교육부의 [2021년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 기본계획]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의 온라인 강좌를 참작해서 결정한 것이지? 조사 연구는 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 각 대학에서 K-MOOC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은? 한마디로 아직 미흡합니다. 하지만 필자의 2021학년도 제2학기 사이버 강의는 다음의 각 대학 학생들과 함께 새롭게 출발합니다. [SDU-8월24일]·[경남대·KCU-9월1일] 개강! 필자의 2021학년도 제2학기 ‘온라인 강의’를 시작! 교과목은 [동북아 역사와 문화/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의 이해/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 이미지메이킹과 자기관리/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 입니다. 수강대학은 필자의 경남대를 비롯하여 경기대&성신여대(서울), 아신대(경기), 한국해양대(부산), 계명대(대구), 한남대(대전), 울산대(울산), 조선대(광주), 전주대(전북), 안동과학대&동양대&유원대(경북), 중부대(충납), 인제대&창원대(경남), 등(等) 입니다. 교과목은 경남대학교의 정규 교양과목(3학점), 한국대학가상교육연합과 서울디지털대학교의 정규 교과목(3학점)들입니다. 이들 대학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경남대 : 현재보다 미래를 만들어가는 대학 문화의 중심 경남대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여, 독립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건학이념으로 경남대학교를 세웠습니다. 경남대학교의 “건학이념”은 [실천궁행(實踐躬行) · 구국독립(救國獨立) · 이교위가以校爲家)] 입니다. 2021년 개교 75주년! 기념식에서 박재규 총장은 “개교 80주년 향한 새로운 도약 위해 학생 성공 및 교육 환경 첨단화 힘쓸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14만 명의 인재를 배출! 현재 7개 단과대학과 4개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KCU : 한국대학가상교육연합! 1997년부터 현재까지 70만명의 가르친 노하우가 있는 최고의 사이버강좌 컨소시엄입니다. KCU는 경남대 등 전국 명문 80여개 대학이 회원교로 참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원격교육기구입니다. 지난 1997년에 출범하여 대학생들이 인터넷과 위성을 통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KCU는 원격매체를 이용하여 수준 높은 강의를 제공하고 회원교 간의 학점교류를 도입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원격교육의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강좌와 위성강좌를 통한 다양한 교과목 제공! ◆SDU : 서울디지털대학교는 사이버 대학교!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2000년 11월 30일 서울디지털대학교 설립/ 2001년 3월 1일 개교/ 학생 수 10,933명/ 9개 학부와 교양과정으로 구성./ 2021학년도 신설전공(6)-국방융합인재·외식조리경영·군경소방상담·보건의료행정·뷰티미용·탐정/ 서울디지털대학교는 사이버대학 중에서는 아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사학으로,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의 온라인 대학으로 발전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이버 전문 대학교입니다. ◆RUCK: 한국지역대학연합(韓國地域大學聯合)은 대한민국의 대학연합체의 중 하나입니다. 대학교육의 국제화와 개방화에 대비하여 중남부지역 사립 대학 간의 상호 호혜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각 대학의 지리적 위치로 인한 인적, 물적 자원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교육의 질 향상과 대학운영의 효율성을 모색코자 설립되었습니다. 영문 약칭은 RUCK! 1995년 2월 14일, 경남대학교, 계명대학교, 울산대학교, 전주대학교, 한남대학교, 호남대학교 총장들이 울산대학교에서 가칭 중남부대학연합을 결성, 1995년에 관동대학교와 아주대학교가 회원대학으로 가입, 1995년 11월 30일에 명칭을 한국지역대학연합으로 변경했습니다. 2019학년도 수강학생이 교육부 덕분(?)에 줄었었습니다. 가령 정원 500명 학생이 정원인 강의는 250명이 되었습니다. 교육부의 대단한 정책의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대학에는 500명이 수강할 수 있는 대형 강의실이 거의 없습니다. 부정행위 방지 때문에 500명 정원이면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이 필요한 것입니다. 장관님! 고맙습니다! 필자는 온라인 강의를 22년 이어왔습니다. 필자는 평생 ‘교육(敎育)’과 함께 해왔습니다. 장관 님은?/ 새롭게 새 학기를 출발합니다. 격려 부탁드립니다! // ★[국가의 운명(運命)은 청년의 교육(敎育)에 달려 있다.-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 대학(大學)은 빛과, 자유(自由)와 학문(學問)만을 하는 장소이어야 한다.-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1804~1881)] ★[필자의 홈페이지 회원수 : ★이용웅교수의 [이미지메이킹과 자기관리] 12,201명/ ★이용웅교수의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 8,243명/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7,562명/ ★이용웅교수의 [북한의 문화예술] 5,777명/ ★이용웅교수의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2,849명// 2021년 8월 23일 현재]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문화재사랑]의 아리랑과 한민족의 아리랑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 [문화재사랑]의 아리랑과 한민족의 아리랑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대한민국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문화재사랑] 2021년 8월호의 “겨레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은 향토민요 또는 통속민요로 불리는 모든 아리랑 계통의 악곡을 일컫는다.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반복되는 구절을 두고서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의 가사가 더해지는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전라남도의 〈진도아리랑〉, 경상남도의 〈밀양아리랑〉 등 지역별로 특유의 음악어법을 사용해 다양한 곡조로 불리고 있다. 아리랑의 노랫말에는 사랑, 연인과의 이별, 시집살이의 애환, 외세에 맞선 민족의 투쟁 등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겨 있다...어느 시대 할 것 없이 위기와 고난의 상황에서 민중과 함께한 아리랑은 삶의 고달픔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극복해 내려는 갈망을 담고 있다. 오늘날 아리랑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전승되고 있다.] ‘아리랑’이라는 말의 유래에 관한 설로는 ①아리랑 :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②아이농설 :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 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③아랑전설 :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④알영성 :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습니다.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재창조되어 온 한국의 전통 민요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아리랑”을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른바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멀리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가요들을 토대로 하여 주로 강원도 일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정선아리랑>, 호남지역의 <진도아리랑>, 그리고 경상남도 일원의 <밀양아리랑>을 묶어서 삼대아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민족의 노래 ‘아리랑’ 중에서 “정선아리랑‘을 소개합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 정선(旌善)에서는 ‘아라리’ 또는 ‘아라리타령’이라고도 합니다. 이 민요의 고향 정선은 강원도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에 한강의 상류인 조양천이 흐르고, 동쪽, 서쪽, 북쪽의 세 면이 산으로 에워싸인 고읍(古邑)입니다. 정선골! 옛날 이 고을에 스무 살 처녀가 열 살도 채 안된 어린 신랑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 신부는 어린 신랑의 시중만 들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할 것을 결심했는데, 물레방아를 도는 광경을 보고 훗날 신랑도 어른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되돌아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2)>은 “정선골 : 정선골 물방아 물레바퀴 돌 듯 ; 정선골 물방아의 물레바퀴가 빙빙 돌아가듯이 ‘좋은 처지가 어려운 처지로, 어려운 처지가 좋은 처지로 엇바뀌는 모양’을 비겨 이르는 말”(1354쪽)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의 민속전통(6)-민속음악과 민속무용>은 ‘아리랑’을 “사랑와 리별, 상사의 괴로움을 다 같이 반영한 대표적인 련정 민요”라고 하면서 ‘정선아리랑’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정선아리랑’은 정선 고을에서 태어난 노래라고는 하지만, 태백산맥의 동쪽 전역과 남·북한강 유역에 고루 분포하는데, 이 넓은 지역을 ‘아라리 권역(圈域)’ 또는 ‘메나리토리 권역’이라 하여, 타(他) 지역과 구별 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아리랑은 강원도는 물론 그 인접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불려지며, 그 분포 지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습니다. 그리고 ‘아라리’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곧 가장 늘어지게 부르는 긴 아라리, 이보다 경쾌하게 부르는 자진 아라리, 앞부분을 긴 사설로 엮어나가다가 나중에 늘어지게 부르는, 곧 아라리의 가락으로 되돌아가는 엮음아라리가 있습니다. “세계대한민국 아리랑대축제 및 정선아리랑제”! 매년 9월-10월 경 강원도 정선군 일대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개최하는 마을축제. 지역축제! 1976년부터 2015년까지 제40주년을 맞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축제입니다. 강원도의 민요 정선아리랑을 중심으로 아라리 공원과 정선군 일대에서 치러집니다. 이 외에도 ‘아리랑’ 행사는 “밀양아리랑대축제” 등등! ‘밀양아리랑’은 경상도의 통속민요의 하나! 밀양 영남루에 얽힌 비극 전설인 ‘아랑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들 하지만,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아랑 설화’란 옛날에 밀양 부사에게 아랑이란 딸이 있었는데, 아름답고 마음도 어진 그 딸을 관아의 심부름꾼인 통인이 사모하여 유모를 시켜 아랑을 끌어내어 욕보이려 했으나 반항하자 칼로 찔러 죽였다는 것입니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진도아리랑”은 전라남도 진도 지방의 민요로, 부요적(婦謠的) 성격이 강한 서정민요입니다. 현지에서는 ‘아리랑타령’이라고도 부릅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발생한 노래이지만 전국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설은 기본적으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남한을 대표하는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과 북한의 “해주아리랑”, “서도아리랑” 등등! ‘아리랑’ 풍년입니다. 이처럼 많은 ‘아리랑’에 대해, 북한의 <민요 따라 삼천리>(최창호, 평양출판사)는 “《본조아리랑》, 《신조아리랑(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영천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해주아리랑》, 《서도아리랑》을 비롯하여 《열두 아리랑》에 《열두 고개》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이에 깃든 전설들도 각이하나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아볼수 있다. 사랑하는 님과의 리별이 어렵다는 뜻에서 《아난리(我難離)》라고 부른 것이 오늘에 와서는 《아리리》로 되였다는 점과 고생의 한계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여 《고계(苦界)》라고 부른 것을 오늘에 와서는 《고개》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아리랑의 전설들에서 일치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14쪽)라고 했습니다. ‘아리랑’은 남한과 북한이 따로 없습니다. 북한은 “강성부흥아리랑” 등으로 ‘아리랑’에 먹칠을 하고 있지만. 아리랑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무더위에 “밀양아리랑‘을 불러보면...”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정든 임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 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제 곧 9월! 올 초가을 한국 대표 민요 ‘아리랑’과 전통 무예 ‘택견’을 소재로 한 공연이 무대에 올려집니다. ”아리랑, 택견과 만나다“입니다. 이제 아리랑은 앞으로 새롭게 변신할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 모두의 ‘아리랑’에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희망의 광복절(光復節)과 절망의 ‘조국해방의 날’
[청로 이용웅 칼럼] 희망의 광복절(光復節)과 절망의 ‘조국해방의 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771년(영조 47) 장한철(張漢喆)이 폭풍으로 표류하다 귀국한 경험을 쓴 기록인 <표해록(漂海錄)>에는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는 비록 살상만하고 표독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라고 했고, 뱀은 간악하나 약제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저놈의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라고!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 사람들을 악질 ‘왜인’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만행(蠻行)을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영화 <군함도>는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했던 ‘지옥섬’ 이야기인데, 이것만 가지고도 답은 충분합니다. “쪽발이 왜인‘이라고 비하(卑下)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패망(敗亡)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 우리 한국인들은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광복의 노래> 제1절)라고 노래했습니다. 일본(日本) 종전기념일(終戰記念日)! 일본의 한 언론은 ”오늘은 종전기념일(今日は終戦記念日)입니다. 우리 일본 제국은 귀축영미를 상대로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그리고 평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우리 제국은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패전이라는 형태로 치욕스럽게 전쟁을 끝냈습니다. 귀축영미를 상대로 용감하게 맞서싸운 우리들의 조상들과 수많은 영웅들을 위해 묵념과 애도를 표합니다.“라고! 일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자(者)들의 가증스런 말! 광복!(光復)! 광복은 문자 그대로 “빛(光)을 되찾음(復)”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을 원년으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광복절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통해 전개된 한국의 군정기에 따라 한반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으며, 이후 양측 모두 이날을 기념하지만 구체적인 의미가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고, 1948년 같은 날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과정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으나, 북한은 1945년의 ‘민족 해방’만을 기념하며 정권 수립은 다른 날짜에 이루어졌으므로 따로 ‘인민정권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광복 주역은 모든 한민족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오로지 김일성(金日成) 뿐입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성주(金成柱 또는 金聖柱)이고, 만주 빨치산 시절인 1938년 무렵부터 이후 소련군 시절 8.15 해방 때까지 한자로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을 쓴 것이 확인되었으며, 해방 직후 평양에 온 초기에는 김영환(金英煥)이란 가명을 쓰다가, 1945년 10월 14일 대중 앞에 김일성 장군의 이름으로 처음 나섰던 인물! 그가 갑자기 ‘광복’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후일 “소련이 세워 둔 꼭두각시 지도자”, “사이비 종교 교주 & 희대의 독재자”로 까지 평가된 김일성! 북한은 광복절을 그의 업적이라고 하며, ‘조국해방의 날’이라고! ‘소비에트 연방 대리자’에서 ‘일인 독재자’로 변신한 김일성! 2012年 8月 15日字 <로동신문>은 “백두산의 눈바람아 이야기하라!”라는 기사에서 김일성을 우상화하는데 김철의 서사시 <백두산>과 김일성이 ’친필‘로 썼다는 <반일전가>를 이용했습니다. “백두산”은 창작 과정에서 김일성이 시인을 직접 불러 고주알 메주알하면서 수정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작품입니다. <반일전가>는 <조선문학사>에서도 김일성 친필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라고 자랑하는 작품이다. 광복절에 시(詩)를 통한 김일성 우상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다음은 그 기사의 일부입니다. -“백두산의 눈바람아 이야기하라!영명하신 조국해방 만세…민족의 대 경사, 조국해방을 맞으며 남녀로소가 모두 떨쳐나 해방의 기쁨에 울고 웃으며 목 놓아 부르고 부른 환호성이 오늘도 이 땅우에 메아리치는 것만 같다...백두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잃었던 나라를 찾아주신 절세의 애국자,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고마움의 정이다...간악한 원쑤들을 부셔버리며, 가혹한 설한풍의 울부짖음소리를 짓누르며 울려퍼진 불후의 고전적명작 《반일전가》, 정녕 그것은 백두산총대로 기어이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을 이룩하시고야 말려는 백두산장군의 신념의 선언...조국해방의 력사적 위업 실현!그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장장 20성상 항일의 피어린 길을 헤치시며 총대로 이룩하신 민족사적인 사변이다.”- 유구무언(有口無言)! 북한은 이제 쓸데없는 헛소리 그만하고, 차라리 남한에서 벌이고 있는 “통일 염원 벽돌쌓기‘를 흉내 내보기라도 했으면! <광복절 노래>를 다시 불러봅니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8월은 분명 ‘광복의 달’입니다. <8월의 강>!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에 지닌...”(박두진 지음)/ 한민족의 비극을 생각나게 하는 8월의 시(詩)입니다. ‘비극’이 생각나는 달이지만, 미래가 찬란한 ’희망의 달‘입니다. 박두진 시인(詩人)은 “팔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 민족은 쉼 없이 항해(航海)를 계속해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 찬 ‘광복절’은 미래의 통일을 위해 순항(順航)을 할 것입니다. 김일성도 죽고, 김정일도 떠난 북한의 ‘조국해방의 날’이라는 엉터리 배는 미구(未久)에 좌초(坐礁)할 것입니다. 바로 영원한 ‘절망(絶望)의 날’! 국가보훈처는 제76주년 광복절을 기해, 독립기념관 등과 공동으로 제작한 독립운동 관련 5편의 ‘통화연결 영상(V 컬러링)*’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이 콘텐츠는 총 5편으로,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 편, 대한독립만세:광복의 의미 전달 편, 김구 선생의 명언 등 독립운동가들의 메세지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외 독립운동사적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역사를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상기(想起)하자, 광복절!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한 여름밤에 들어보는‘급난지붕(急難之朋)’이야기
[청로 이용웅 칼럼] 한 여름밤에 들어보는‘급난지붕(急難之朋)’이야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고려 후기 문신 추적이 중국 고전에 나온 선현들의 금언과 명구를 모아 엮은 교재 <명심보감(明心寶鑑)>에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급(急)하고 어려울(難)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朋)라는 뜻입니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술 먹고 밥 먹을 때 형, 동생하는 친구는 천 명이나 있지만,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정말 요즘 현실이 그러하기에 이 말이 더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을 때는 후하게 선심 쓰며, 그렇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내 앞에서 그렇게 잘하던 사람이 내가 막상 큰 시련을 맞았을 때 나를 외면한다면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들까요? 예전에 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직장 그만두고 1년 공백기 동안 진실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히 재정리가 되더라. 정말 값진 1년이었다.”고...나의 친구들이 주식형제(酒食兄弟)인지,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또한 나는 그들에게 진정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친구의 잘못은 모래 위에 적는 답니다. 밀물에 지워지라고! 친구의 고마움은 바위 위에 새긴답니다. 비바람에 견디면서 영원히 기억하라고! 친구의 눈물은 구름에 올려 놓는답니다. 힘들면 비가 내릴 때 같이 울어주라고!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섭섭한 일도 생기고, 고마운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마움은 빨리 잊고, 서운한 감정은 오래 남겨 두는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마움은 오래 오래 기억하고, 섭섭함과 서운함을 빨리 잊고 삽니다. 내 자신이라도 급난지붕(急難之朋)이 되어 대인(大人)으로 한번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은 한 여름밤에 들어보는‘급난지붕(急難之朋)’이야기입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들은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며 날만 새면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대접하느라 돈을 낭비하는 것을 예사로 알았습니다. 아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가 어느날, 아들을 보고 타일렀습니다. “얘야, 너도 이제 집안일을 돌볼 생각을 하거라. 어째서 날이면 날마다 밖으로만 돌아다닌단 말이냐?”- “아버지, 제가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친구들이 모두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여러 친구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버지.” “그건 그렇지, 하지만 친구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다. 웃는 얼굴로 어울리는 친구는 많아도 마음을 열수있는 진정한 친구는 드문 법이니까...혹시 네 친구들이 너를 좋아하는 것은 너에게 받는 것에 재미를 들여서 그러는 것은 아니냐?”- “아버지는 제가 아직 어린애인 줄 아시는군요. 제 친구들은 모두 진실한 친구들입니다.”- “그렇다면 네가 친구를 사귐에 참으로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이 애비가 시험해 보아도 되겠느냐?”- “아이 참, 아버지! 아버지는 평소에 친구가 많지 않으셔서 저희들의 우정을 이해하실 수가 없으신 거예요. 하지만 좋습니다. 이 기회에 저희 친구들이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밤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이렇게 약속한 아버지는 그날 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거적에 쌌습니다. 그리고 지게에 지게하고 맨 먼저 아들과 가장 친하다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친구 집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보게 실은 내가 조금 전에 실수를 하여 사람을 죽였네. 그래서 여기 시체를 가지고 왔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좀 도와주게.”- “뭐라고! 시체를 가지고 왔다고? 나는 그런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 내 집에서 냉큼 사라지게.”- 아들은 이렇게 가까운 친구의 집을 연달아 찾아가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모두 다 냉정하게 거절만 당한 것입니다. -“자, 이번에는 내 친구를 찾아가 보기로 하자.” 두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아버지의 친구는 두 사람을 집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날이 샐 것이네. 이 시체를 지금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야. 그러니 당분간 저 나무 밑에 내려놓고, 자네는 내 옷으로 갈아입게나. 그리고 수습책을 함께 생각해 보세.”- 아버지의 친구는 거적에 쌓인 것을 번쩍 둘러메고 자기 집 안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친구여! 미안하네. 그 거적에 쌓인 것은 시체가 아니라 돼지고기라네. 내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왔네 그려!”-“뭐야? 에이 짓궂은 친구 같으니!”-“자, 우리 돼지고기 안주해서 술이나 싫건 마시세!”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알았을 것이다. 친구가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요, 친구를 날마다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형편이 좋을 때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많으나 위급한 처지에 있을 때 도와주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니라. 그것은 참된 우정을 나눈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이 있으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과연 나는 진정한 벗이 얼마나 있을까요?..<명심보감 교우편>에 나오는 이야기! 거기에 ”불견자화(不見子花)는 휴요종(休要種)이요, 무의지붕(無義之朋)은 불가교(不可交)“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의리가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니라 .- 그러니까 술이나 먹을 것이 있을 때 같이 즐길 수 있는 친구는 얼마든지 있으나, 위급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친구는 극히 드물다는 뜻입니다. 한 여름밤에 들어보는 ‘급난지붕(急難之朋)’이야기! 친구하면 생각나는 오성(鰲城)과 한음(漢陰)! 선조(宣祖) 때 충신으로, 영원한 우정으로 유명했든 오성-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1556-1618)과 한음 이덕형(李德馨1561-1613)! 대나무에 말처럼 머리와 꼬리를 붙이고 말타는 것처럼 사타구니에 끼고 뛰어다니던 죽마희(竹馬戱)를 함께 한 친구라는 의미의 죽마고우(竹馬故友)! [열자(列子) 6.역명편(力命篇)]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이야기! 한국영화 <친구>도 생긱납니다. 필자는 현재 카톡 등으로 소통하고 있는, 서울사대부고 15회 동기 친구 방준영·조해석·이용이·이상은·정두경·조황래·강융길·최원명·김덕자 등등과 친구같은 제자인 정은상·임형준·심종철·이민희·성봉경·백창준 등등, 그리고 선데이뉴스 가족 신민정·양성현 등등, 박찬동 등(等)이 참 좋습니다! 귀한 친구들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세계유산 탐방 & 우리 문화재청과 ‘문화재사랑’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세계유산 탐방 & 우리 문화재청과 ‘문화재사랑’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가 개최한 제4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취안저우(泉州): 송원(宋元) 중국의 세계 해양 비즈니스센터’가 중국의 56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취안저우는 중국 동남 연해에 위치해 바다와 더불어 살아오며, 수천 년 간 해외 교통역사를 가지고 있고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10세기~14세기, 당시 중국 송원 시기 취안저우 항구는 ‘츠퉁강’(刺桐港)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도 이름을 떨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항구와 견주는 ‘동방 제일의 항구’였다. 천년 간, 송원 중국 세계 해양 비즈니스센터는 취안저우에서 정성껏 보존된 동시에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방안이 이들 유적지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해 취안저우에 새로운 기회를 불러왔다.] 윗 글은 최근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에 게재(揭載)된 기사 [중국 해양문명 재발견-중국 ‘취안저우 세계유산 탐방](全文)입니다. 사진자료도 16매 수록되었는데, 이 칼럼에서는 2매만 게재합니다. ’제4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7월 16일 중국 푸젠(福建) 푸저우(福州)에서 열렸는데, 푸저우는 2200년이 넘는 도시 역사를 가진 국가 역사문화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푸저우 선언’(福州宣言)을 채택하고 세계유산 보호와 국제 협력의 중요성 및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동 노력의 필요성을 천명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문화관광부(中華人民共和國 文化和旅游部)는 중국의 문화와 예술, 관광 업무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소속 기관!.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후인 1970년 6월 22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문화부의 해체를 결정, 국무원문화조 수립...2018년 문화부를 문화관광부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관의 한 부서의 업무-[무형 문화 유산 보호 정책 초안 관련 법률과 규정의 개발, 계획을 대신하여 국가 무형 문화 유산 보호 프로젝트의 개발, 무형 문화 유산 보호 작업, 계약자보고 및 국가 무형 문화 유산 항목 대신 작품의 리뷰를 조직, 조직 탁월한 보편적 일 국가 문화 유산의 구현]! 우리 문화재청과는 규모가 아주 다릅니다. 대한민국 [문화재청]! 문화재의 보존·관리·활용·조사·연구 및 선양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으로, 1999년 5월 24일 문화재관리국을 개편하여 발족하였으며,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정부대전청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문화재청 검색! [문화재 종목별 검색]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체-시도유형문화재·시도무형문화재·시도기념물·시도민속문화재·시도등록문화재·문화재자료.이북5도무형문화재-14605 자료], [국보-350 자료], [보물-2263 자료], [사적-519 자료], [명승-120 자료], [천연기념물-464 자료], [국가무형문화재 150 자료], [국가민속문화재 305 자료], [국가민속문화재 904 자료]- [우리지역 문화재]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재청애서 <문화재사랑>을 발간하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무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신청, 구독 추천! 조금 지난 <문화재사랑> 제6월호에서 ‘개’ 얘기가 나와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사 제목은 “한반도의 토종 견공 둘 풍산개 vs 경산의 삽살개”, 부제는 “범 내려오다 ‘풍산개’ 보고 도로 올라간다”! 전문을 요약(발췌) 소개하고자 합니다 ‘호랑이 잡는 개’로 알려진 풍산개는 북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사냥개로 사육되어 왔던 견종입니다..풍산개는 오래전부터 전문 수렵견으로 육성되어 왔기에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 여러가지 동물을 사냥하며 사냥개로서 뿌리 깊은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그 사냥 실력 또한 수많은 견종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옛말에 “풍산개 3마리를 풀면 호랑이도 잡아온다“라는 속설이 있는데, 실제로도 풍산개는 민첩하고 용맹할 뿐 아니라 담력이 강해 어떤 맹수가 앞에 있더라도 겁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 표적으로 삼은 사냥감은 뛰어난 후각과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끝까지 추격해서 어떻게든 사냥을 마치는 뛰어난 근성도 있습니다. 풍산개는 북한의 대표적인 동물 천연기념물! 북한은 자연유산을 명승지와 천연기념물로 관리하며 그 법제는 ‘명승지·천연기념물 보호법(1995)’과 ‘민족유산보호법(2015, 2019)’에 따릅니다. 북한의 <천연기념물도감> 2005~2010년 자료를 보면 북한은 488건의 천연기념물이 지정되어 있으며 그중 동물이 106건입니다. 북한의 천연기념물 지정 기준에서 동물은 풍산개와 같이 북한 고유의 집짐승 또는 씨원종으로 순종 보존에 의의가 있는 종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풍산개는 한국 특산종으로 일제강점기인 1942년 조선총독부가 함경남도 풍산군 원산의 풍산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북한에서는 1965년경부터 국가천연기념물로 등록해 고유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69년 광덕리에서는 풍산개를 모아 기르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전문적인 풍산개 목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자 같은 외양, 군자 같은 성품의 ‘경산의 삽살개’! 삽살개는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널리 서식한 우리나라 토종개입니다. ‘귀신과 액운을 쫓는 개’로 알려진 삽살개는 이름 자체도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가사와 민담,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개입니다. 신라시대에는 주로 귀족 계층에서 길렀고, 통일신라가 망한 이후 일반 백성들이 키우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에는 1960년대부터 30여 마리의 삽살개를 수집하고 보존을 시작했으며, 특히 경산의 삽살개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든 우리 민족의 고유개로서 고유 혈통을 인정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습니다. 삽살개 또한 풍산개처럼 중형견이고, 사냥개 기질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반려견으로서는 우수한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는 가히 반려견(伴侶犬)의 시대!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1903~1989)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풍산개도 삽살개도 우리 민족의 진정한 반려동물입니다. 프랑스의 근대철학자이며 계몽사상가인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일반적으로 인간은 개를 닮고 있다. 다른 개가 먼 데서 짖는 것을 듣고 자기도 짖는다.”고! 중국에는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인 풍산개와 삽살개가 인간과 함께 남북을 오가며 뛰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한 여름의 폭염·열대야·초열대야(超熱帶夜)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한 여름의 폭염·열대야·초열대야(超熱帶夜)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7월 30일은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오르는 등 폭염이 이어졌습니다. 민간기상기업 ‘케이웨더’에 따르면 이날 한반도는 일본 규슈 부근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었습니다 계속되는 폭염(暴炎)!. 수도권은 계속되는 열대야(熱帶夜)! 7월 31일! 지금까진 강렬한 햇볕에 의한 ‘불볕더위’였다면, 앞으론 끈적한 공기로 체감온도가 높은 ‘찜통더위’! 입추(立秋/8.7)가 있는 팔월(八月)! 그런데 8월 첫 주일 주간 날씨 일주일 예보 : 내내 최저 26도 내외, 최고 33도 내외! 그러니까 계속 열대야이고 폭염(暴炎)! ‘열대야“란? 지긋지긋한 열대야(熱帶夜)! 열대야는 본래 일본 기상청 용어로 야간의 최저 기온이 25℃ 이상인 밤을 뜻합니다. 일본의 기상 수필가 구라시마 아쓰시(倉嶋厚)가 만든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 기상청이 통계로 하는 것은 야간 최저 기온에 의한 열대야가 아니고 하루(0~24시) 중 최저 기온이 25℃ 이상인 날이며 이에 관련해서 특별한 명칭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기상청에서는 2009년 7월 24일부터 밤 최저기온(오후 6시 1분~다음날 오전 9시)이 25℃ 이상인 날을 열대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우리 기상청에서도 열대야를 일본기상청과 마찬가지로 일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날로 정의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아직 좀 낯선 ‘초열대야(超熱帶夜)’는? 열대야(熱帶夜) 보다, 훨씬 더 더운 밤! '초열대야'도 구라시마가 작명한 용어로, 밤 사이의 최저 기온이 30℃를 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초열대야는 '밤 사이 최저기온이 30℃ 이상인 날'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상청에서는 초열대야에 대해서는 사전에서 '열대야보다 훨씬 더운 아주 무더운 밤' 정도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초열대야 수준으로 기온이 올라간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8월 8일 강원도 강릉의 밤 사이 최저기온이 30.8℃를 기록하면는 이상 고온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해 초열대야 현상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2018년 여름에는 국내 111년 기상 관측 역사상 폭염 일수가 두번째로 길었던 2016년과 같은 무더위가 화두에 올랐었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7월 27일(현지시각)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러시아의 동부 시베리아 야쿠티아(사하공화국)가 불타고 있다”는 글과 피해 지역 위성사진을 올렸습니다. 이 불의 피해 면적은 우리나라 강원도의 90% 정도인 1만5000㎢에 이른다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에도 이상 고온과 산불을 겪었지만 올해는 전례 없는 규모라고 외신들은 전했습니다. 이곳이 지역구인 페도트 투무소프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불길”이라고 말했습니다. 불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사하공화국은 주요 도시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한편, 항공편을 중단시켰습니다. 세계기상기구는 올해 여름 지구촌의 기상이변 상황을 총괄한 “극한의 여름”이라는 제목의 긴급 보고서에서 올여름의 기상이변이 갑자기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자연재해의 빈도가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올해 여름 북미지역의 폭염과 산불, 유럽과 아시아의 폭우와 홍수에 이어 동토(凍土)로 불리는 시베리아까지 평균 기온보다 25도 상승하며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등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전 세계 곳곳을 강타하며 대규모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의 극한 기후현상들은 독일처럼 인프라 등이 갖춰진 ‘잘 사는 나라’들이나 ‘못 사는 나라’들이나, 큰 나라나 작은 나라나 거의 같습니다. 기후위기 앞에선 아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잇따라 폭염이 발생해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 언론인은 “지구촌 폭염 공포..이러다 2100년까지 계속된다”고 걱정했습니다. 올해 여름 북미지역의 폭염! 캐나다는 계곡되는 불볕더위로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719명이 돌연사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자수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불도 150건 넘게 발생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북동쪽 소도시 리턴은 최근 기온이 49.6℃까지 치솟는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에서는 폭염으로 95명이 숨졌고, 워싱턴주는 불볕더위에 따른 사망자를 30여 명으로 집계했습니다. 북극권도 최근 기온이 30℃를 넘을 정도로 치솟았으며 이라크는 50℃가 넘는 고온과 전기 시스템 붕괴 등으로 주민들이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디. CNN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폭염 사태는 매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폭염은 2100년까지 매년 나타날 수 있다고 영국 기상학자 니코스 크리스티디스는 덧붙였습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했습니다. 수도권 폭염·열대야는 7월에 평년 기록 넘었습니다. 8월 첫 주일에도 계속! 폭염(暴炎)! 폭염의 기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 상공을 덮은 고기압은 중국과 일본에 각각 비를 뿌린 6·8호 태풍 세력 사이에 끼어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날씨 전망! 폭염과 열대야!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당분간 낮 기온은 34도 내외로 올라 매우 덥겠으며, 특히 오늘(4일)부터 체감온도가 35도 이상 오르는 지역이 많아지면서 중부내륙과 전라권에는 폭염주의보가 폭염경보로 강화될 가능성이 있겠다는 예보!. 당분간 이어질 폭염과 열대야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요? 자동기록식 온도계가 발명된 이후 기록된 더위는 1922년 9월 13일 멕시코의 ‘포트시·산·루이스’라는 곳에서 기록된 섭씨 58도입니다. 최근 캐나다는 폭염에 수백 명 사망했고,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곳곳이 폭염에 몸살을 앓으며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럴 때는 각자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피서가 되지 않을까요! 필자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끝으로, 미국 H.D.소로우( Henry David Thoreau,1817-1862)의 “더위”를 읽어봅니다.-“오 바람아 더위를 활짝 식혀버려라/ 더위를 멀리 몰아내라/ 산산히 식혀버려라/ 이런 무더위 대기 속에서/ 열매는 꼭지가 물러날 수 없고-/ 치밀어 받치는 더위/ 배 꼭지를 둔하게 하여 주는 더위/ 포도의 알알을 동그랗게 하여 주는 더위/ 더위를 둘로 쪼개내라/ 갈아버려라/ 그대 길 위/ 좌우편으로”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8월 북한 달력- 한반도의 8월 & 낙동강(洛東江)
[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8월 북한 달력- 한반도의 8월 & 낙동강(洛東江)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의 2021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북한 달력 8월! [조국의 진달래](진달래꽃과 총을 가진 여군 그림)가 전면을 장식했습니다. 사진 설명 “조국의 진달래”는 북한의 4대 혁명무용 중 하나, 1970년 초연된 현대 무용 작품으로, 1939년이 시간적 배경으로, 김일성이 함경북도 무산으로 진출해 왔을 때를 표현한 무용입니다. 달력에는 [25일]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날은 [주체 49(1960).8.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혁명무력에 대한 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시였다.]라고! 이것이 무슨 빨간 날? 작년에는 “선군날”이라고 했었는데...유구무언(有口無言)!!! / 그리고 [8.15. 조국해방의 날]도 있습니다. 또 [말복 8.15. / 입추 8.7. / 처서 8.23.]도 적혀 있습니다. 한반도의 8월! 영원히 잊지 못할 1950년 8월의 ‘낙동강방어선전투(洛東江防禦線戰鬪)’! 국군과 유엔군이 1950년 8월, 낙동강 부근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 국군은 북한군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여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 선까지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부산 점령을 목표로 한 그들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낙동강 방어선에서 격퇴하게 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탱하지 못하면 우리 정부는 제주도로 이전하여 제2의 대만이 되거나 아니면 해외에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될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당시 맥아더 원수가 구상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도 낙동강 방어선이 유지될 때에야 성립될 수 있는 것! 국토의 약 10%에 불과한 부산교두보를 간신히 확보한 선(線)에서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분쇄했으니, 전범(戰犯) 김일성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영원한 전범 김일성! 김정은은 북한이 '7·27 전승절'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제6차 ‘전국로병대회’에 참석해 "우리는 총이 부족해 남해를 지척에 둔 낙동강가에 전우들을 묻고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동지들의 한을 잊은 적이 없다"며 "최강의 국방력을 다지는 길에서 순간도 멈춰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6·25 남침 한 달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갔다가 한미(韓美)의 '필사의 사수전'에 막혀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친 일을 언급하며 '국방력 강화'를 강조한 것입니다. 낙동강(洛東江)!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1,573m)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통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낙동강은 <동국여지승>에 ‘낙수(洛水)’로 표기되어 있으며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낙동’이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영남지방의 거의 전역을 휘돌아 남해로 들어가는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 천년 간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영남인들의 삶의 젖줄이 되어왔습니다. “8월의 강이 손뼉친다./ 8월의 강이 몸부림친다./ 8월의 강이 고민한다./ 8월의 강이 침잠한다./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 지닌/ 배암과 이리의/ 갈라진 혓바닥과 피묻은 이빨들을 기억한다.// 강은 저 은하계 찬란한 태양계의/ 아득한 이데아를/ 황금빛 승화를 기억한다.// 그 승리를, 도달을, 모두의 성취를 위하여/ 어제를 오늘에게, 오늘을 내일에게 위탁한다.// 강은 8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박두진/ 8월의 강) 박두진의 “8월의 강”에서 필자는 ‘낙동강’을 봅니다. 1976년 마산에 보름자리를 마련한 뒤 자주 만난 낙동강입니다. 다음은 가수 최백호가 작사·작곡한 “낙동강”입니다.-“낙동강 짙은 물/위에 구슬픈/비 내리는데/ 미움도 정이련가 울고있는 물새야/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원망을 마라/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이별인 것을/ 너 만은 죽지마라 변하지마라”- 강(江) 노래도 좋지만 살면서 만났던 ‘낙동강 7백리’는 ‘아름다운 추억’! 누군가는 ‘낙동강’을 ‘7백리 생명의 강’이라고 하고 “낙동강 7백리 흘러 흘러/ 하얀 모랫벌 이루고/ 뭇 생명들 뛰놀던/ 아릿따운 옛 풍경들은/ 다 어디 가고 녹조라떼냐/ 물고기도 더는/ 살 수 없이 된 강이여/ 22조원 혈세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 삶터에도 재앙을/ 부르고야 말았구나/ 하굿둑 보가 흘러야 할 낙동강물을/ 멈춰 썩게 하였네/ 인간마저 못 살게 된오늘이 뉘 탓이랴”라고 슬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파 신음하는 낙동강! 낙동강의 역사와 문화유적! 낙동강 유역에는 역사시대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유적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습니다.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中東) 일대는 특히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낙동강 동편의 중동 일대에서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던 돌망치 등 석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낙동강 유역의 선사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체로 한반도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를 거쳐 두만강으로부터 들어왔다면 영남지방의 신석기문화는 낙동강 유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로 대표되는 빗살무늬토기는 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서남도서(西南島嶼)·두만강 등의 여섯 군으로 나누어집니다.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낙동강 유역의 영남지방은 특히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팔월이라 한가을 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북두칠성 자루돌아 서쪽 하늘 가리키니/ 선선한 아침 저녁 가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 사이에 들리누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온갖 곡식 열매 맺고 결실을 재촉하니/ 들에 나가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온갖 곡식 이삭 패고 무르익어 고개 숙여/ 서쪽 바람에 익는 빛은 누런 구름처럼 일어난다/ 흰눈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송이/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에 맑고 밝다”(농가월령가 8월령) / “農家月令歌 八月令”은 한반도·한민족의 8월 노래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낙동강방어선전투’를 듣도 보도 못한 위원장! ‘낙동강 7백리’의 아름다움을 잘 구경하고, 한민족의 “농가월령가”를 배워보길 권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무형문화재 민족무예 ‘본국검(本國劍)’에 대한 단상(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무형문화재 민족무예 ‘본국검(本國劍)’에 대한 단상(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에는 ‘검도’가 없고 ‘칼쓰기’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사전들을 보면, ‘검도’를 “일제 때, 앞이 보이게 만든 탈 같은 것을 얼굴에 쓰고 갑옷 비슷한 것을 가슴에 대고 참대로 만든 칼로 몸의 일정한 부분을 치거나 찔러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조선말사전>,66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도(劍道)=격검’이라고 하고, 그 ‘격검’을 “긴 칼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 안에 상대방의 몸의 일정한 곳을 빨리 찌르거나 베는 정도에 따라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조선말대사전(1)>,14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1)>은 ‘격검경기’를 “18세기 중엽부터 격검이 완전히 경기화 되였으며 경기에서 보호면이 리용되고 검 끝에 단추를 붙여 안전성이 보장되게 되였다. 격검경기는 1896년 제1차 올림픽경기대회 때부터 정식 올림픽종목으로 되였다.”(619쪽)라고 했습니다. ‘격검’은 ‘펜싱’을 말합니다. 현재 북한에는 ‘펜싱’만 있고, ‘검도’는 없습니다. 검도’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사전에서 ‘검도장’(“검도훈련을 하도록 마련되여 있는 장소”), ‘검도복’ (“일본에서, 검도를 할 때 입는 옷”)을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북한엔 ‘칼쓰기’라는 용어는 존재합니다. 북한의 <조선의 민속전통 5>의 ‘민속놀이’편을 보면, “칼쓰기는 삼국시기의 고구려무덤들의 벽화를 통하여 생동한 장면을 엿볼수 있다...리조 시기 무기로 사용된 칼을 크게 나누어보면, 긴 칼(장검)과 짧은 칼(단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 시기 구체적인 칼 종류는 6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도, 제국검, 본국검, 쌍도, 월도, 협도 등 이였습니다. 예도는 칼날의 길이 3자 3치, 자루의 길이 1자로서 우리 나라 봉건시기 칼 가운데서 칼날의 길이가 제일 긴 것이였다. 제독검과 본국검은 예도와 비슷하였다...칼쓰기의 구체저인 방법은 <교전총도>, <예도총도>, <제독검총도>, <본국검총도> 등으로 구분하여 그린 몇 십 가지의 전법에 대한 그림에 전하여온다.”고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체육출판사가 펴낸 <동방격투술 이야기>에 기술된 “우리 나라 중세무술체육”에는 ‘칼쓰기’가 빠져 있습니다. 이 장(章)에선 ‘활쏘기ㆍ창쓰기ㆍ격구ㆍ힘쓰기와 달리기ㆍ돌팔매ㆍ합전 (合戰)과 사냥경기’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104쪽과 105쪽에 [그림 24. 칼쓰기동작(<무예도보통지>중에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검도복’을 “일본에서, 검도를 할 때 입는 옷”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에 ‘검도’가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의 민속전통 6>의 ‘민속 무용’편을 보면, “신라사람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민속무용가운데는 또한 탈을 쓰고 칼을 휘두르면서 추는 ‘가면검무’가 있었다. ‘가면검무’의 유래는 황창의 얼굴을 본 딴 탈을 쓰고 긴 칼을 비껴들고 추는 ‘황창무’와 결부되여 있다. 기록에 의하면 황창랑이 나이 열일곱살 때 백제에 들어가서 저자에서 칼춤을 추었더니 구경군들이 담을 쌓을듯이 많았다.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다가 왕앞에서 칼춤을 추게 하였는데 황창이 왕을 찔렀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이 그를 죽이였다. 신라사람들은 그를 슬퍼하면서 황창의 얼굴을 형상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는 장면을 형상하였는데 지금까지 전한다.(《동경잡기》권1 풍속)고 하였다.”고 기술했습니다. 평양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조선민속무용>은 다산 정약용(1762~1836) 의 <칼춤>을 소개하면서, 이 시에 나오는 ‘진주성안’은 “지난 시기 전라도의 큰 성”, ‘보라빛쾌자’는 “지난 봉건사회 때 군대들이 입던 겉옷, 소매는 없고 두루마기처럼 길다. 보랏빛 쾌자는 보랏빛갈의 쾌자”, ‘푸른색전립’은 “지난 시기 군대들이 쓰던 모자, 벙거지, 푸른빛갈의 전립”라고 주석(104쪽)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칼춤’은 고구려의 전투적인 칼춤의 전통을 이었으며 전기 신라 때 류행되였던 ‘황창무’ 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수 있다. 특히 시 <칼춤>에도 있는바와 같이 ‘황창무’의 수법을 전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황창무’의 호탕하고 힘있는 률동과 실전과도 같은 칼싸움수법이 보존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기록했습니다. 남한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제10권에 ‘본국검(本國劒)’을 그림 ‘본국검<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본국검 32가지 기본동작’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1권의 ‘검도(劍道)’에서 “우리나라 본국검은 신라 때부터 화랑에 의하여 전수되었다 하여 신라검(新羅劍) 또는 신검(新劍)이라 일컫는다. 고려 말기의 화약발명과 조선시대의 천무사상(賤武思想)으로 쇠퇴하였다가 임진왜란 뒤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작함으로써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무예 중 본국검 수련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그 뒤 고종 때에 이르러 구미식 군사훈련을 개시한 뒤 자취를 감추었으나, 1896년 경무청에서 경찰훈련과 육군연무학교의 군사훈련과목에 검술과목이 채택되면서 일본식 검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위 ‘백과사전’ 제1권의 ‘검도’에 대한 설명(777쪽)에는 “광복 후 검도는 일제의 잔재라고 인식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1948년 6월 3일 재경유단자(在京有段者)들이 모여 대한검사회(大韓劍士會)을 조직 명맥을 유지...1953년 11월 20일 대한검도회(大韓劍道會)의 창립과 동시에 대한체육회에 가입...”이라는 문장도 함께 쓰여 있습니다. 남한은 해방 후 우리의 민족무예인 ‘본국검’을 외면, 아니면 무지(無知)해서 일본식 검도를 대한체육회 종목으로 채택했던 것입니다. ‘본국검’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큰 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남한 사회에선 이 귀중한 무형문화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북한 땅에선 매몰되어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필자가 본국검을 시작했던 ‘대한본국검협회’ 등 본국검 관련 단체들이 있고,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본국검에 정진하는 검도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왜 본국검은 150개 국가무형문화재 안에 없는 걸까요?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하지 않았겠죠! 혹시 단체나 검도인들의 갈등 때문?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활쏘기’, ‘씨름’, ‘택견’‘ ’장 담그기‘, 막걸리 빗기’ 등은 되고, ‘본국검’은 불가! 오히려 문화재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본국검’은 국가무형문화재!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본국검’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어 우리의 고유한 민족무예를 계승 발전시키고, 본국검사(本國劍士)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꾸준히 더 더욱 정진한다면, 머지않아 남한과 북한의 민족무예 검객들이 한 자리에서 본국검술을 겨루고, 한민족의 고유한 춤인 ‘황창무’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민족무예로 승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