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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실화문학작품 과 한반도의 봄 진달래꽃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실화문학작품 과 한반도의 봄 진달래꽃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꽃은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꽃들은 침묵(沈黙)의 언어(言語)를 가지고 사랑을, 평화를, 인정을, 그리고 꿈을 가르쳐 줍니다. 하얀 목련 꽃은 고귀함을 말하고, 아무렇게나 벼랑에 흩어져 핀 진달래는 소박한 전원(田園)의 사랑을 말합니다. 3,4월의 벚꽃은 감정을 들뜨게 하고, 연산홍꽃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철쭉...한반도의 봄꽃!‘’ 시인(詩人)은 한반도의 봄을 노래했습니다. “꽃이 핀다/ 하늘도 감격스러워할 봄꽃이/ 오늘 눈부시게 피어난다/ 꿈결처럼 피어오른/ 저 화사한 한반도의 봄꽃이/ 영원무궁 피어나길// 천만년과도 같은 분단 육십오년 만에/ 두 정상이 군사 분계선에서 만나/ 열 두 시간이란 장 장 시간을 거쳐/ 정상회담을 하는 역사적인/ 이 감격이 하늘 높이 타올라/ 머잖은 시일 내에/ 전쟁 없는 이 나라 이 땅/ 평화로운 온 세상이 되게 하는 곱디 고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한반도의 봄꽃은 이제 이념(理念)의 땅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과거 암울한 시절, 사월이 되면 대학가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시(詩)가 있습니다. 시인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 입니다. 그 때 그 시절엔 이 시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라는 구절이 많이 회자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라일락은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 ‘봄꽃’하면 뭐니 뭐니 해도 진달래꽃 이었는데, 북녘 땅, 북한 이야기 속에 이 꽃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습니다. 북한의 국화, 즉 ‘조선의 국화’는 ‘목란’입니다. 북한에선 국화이기 때문에 ‘꽃중의 꽃’이라고 하기도 하고, ‘목란꽃무늬’가 북한 구석구석에 장식되어 있고, <목란꽃의 노래>도 널리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대표하는 꽃은 ‘김일성화’ 였고, 지금은 ‘김정일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을 한꺼번에 우상화하는 도구 같은 진달래꽃도 김정일화 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김정일화’는 “꽃 중의 꽃”입니다. 그 꽃은 문학작품 속에서 영생합니다. 북한문학에서 “실화문학은 우리의 들끓는 현실생활을 제때에 기동적으로 반영하는 가장 전투적인 문학형식의 하나”라고 합니다. 실화문학은 소설에서처럼 작가에 의하여 재창조된 인물과 예술적 허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실재한 사실과 사건, 인간을 생동하게 그려낸 높은 감동 깊게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15)>은 “실화문학”을 “실재한 사건, 사실들을 그대로 진실하게 묘사하는 서사문학형태. 실화문학은 산문으로 쓰여지며 일정한 사건과 이야기줄거리를 통하여 산 인간의 성격과 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설문학과 일정한 공통성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북한 실화문학의 대표작은 <붉은 꽃>입니다. 북한의 평론 <실화문학의 문학적 품격문제>(필자 명일식)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 세상 아름다움을 다 안고 붉게 피여난 충성의 꽃, 불멸의 《김정일화》를 깨끗한 량심과 심장으로 피운 일본의 원예학자 가모 모도데루(加茂 元照)에 대한 감동 깊은 이야기! 실화문학 《붉은 꽃》을 읽고 나면 불멸의 꽃 《김정일화》가 피여난 과정에 있은 실재한 사실과 사건보다도 꽃에 바친 주인공 가모 모도데루와 그의 안해 후미꼬, 딸 도미꼬, 조수인 이찌에, 그리고 같은 원예가인 요시에까지 다 생동하게 보이며 그들의 마음속 깊이에 자리 잡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량심과 뜨거운 심장의 고동소리...”! 1988년 2월 16일 김정일의 46세 생일 때 일본이 식물학자 가모 모토테루가 품종 개량한 꽃을 김정일에게 선물했는데, 그 꽃 이름이 김정일화! 필자 명일식은 “실화문학 《붉은 꽃》은 셈세하게 그린 인간세계와 다양한 인간관계속에서 불멸의 꽃 《김정일화》를 피우기 위하여 자기의 량심과 심장을 붉게 물들인 주인공 가모 모도데루의 형상을 진실한 화폭으로 감동 깊게 보여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김정일화’는 북한 ‘최고의 꽃’입니다. 영생(永生)할거라던 고(故) 김일성의 생일이 내일 모레인데...그 꽃이 ‘김일성화’에 버금가니 말입니다. “김일성화”는 인도네시아 보고르 식물원에서 식물학자 분트에 의해 교배 육종된 팔래노프시스(Phalaenopsis) 계열 덴드로비움(Dendrobium, 난초과 석곡속)에 속하는 원예품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1965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 국가주석이 보고르 식물원을 참관하던 중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았으며 꽃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일본 꽃, 인도네시아꽃이 국화(國花)보다 더 귀(貴)하고 소중한 북한! “불멸의 꽃재배용복합비료를 개발, 조선김일성화김정일화위원회 김일성화김정일화연구소에서 불멸의 꽃을 보다 아름답게 활짝 피우는데 효과적인 전용복합비료를 우리것으로 개발“했다고 선전하는 북한! 한반도가 만일 통일이 된다면 이 꽃들은? 그래서 한반도의 봄 진달래꽃을 생각해 봅니다. 고(故) 김정일은 《진달래는 우리 어머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만길이라는 북한의 평론가는 김정일이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어머님의 고귀한 생애와 불멸의 업적, 숭고한 념원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실 높은 뜻을 안으시고 깊고깊은 사색과 뛰여난 예술적천품으로 불후의 고전적 명작《진달래》를 창작하시였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김정일이 썼다는 《진달래》는 “해빛이 따스해 그리도 곱나 /봄소식을 전하며 피는 진달래 /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꽃송이 /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오가는 비바람 다 맞으며 / 산허리에 피여 난 붉은 진달래 / 긴긴밤 찬서리에 피고 또 피여서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 때늦은 봄에도 사연을 담아 / 해빛밝은 강산에 피는 진달래 / 못잊을 어머님의 그 모습이런가”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화 김정일화’보다는 차라리 진달래꽃이 더 사랑받는 꽃이 된다면...통일의 꽃은 ‘진달래꽃’? 진달래꽃은 지금 한반도 곳곳에 피어 있습니다. 시인 김소월이 사랑한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하지만 지금 영변은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로 유명합니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 주려고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진달래꽃! 영변에 핵이 사라지고 진달래꽃이 다시 피는 한반도의 봄이 기다려집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19년 북한 달력의 3월과 4월
[청로 이용웅 칼럼] 2019년 북한 달력의 3월과 4월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1년 365일을 순서대로 표시한 캘린더는 월 단위로 된 월력이 많지만 하루에 한 장씩 떼는 일력, 3개월 단위로 된 것, 1년을 한 장으로 표시한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탁상형과 벽에 매다는 것 등등...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외국문출판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19년 달력 표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외국문출판사(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DPRK)/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새해를 축하합니다.(Happy New Year.)"/"주체(JUCHE) 108(2019)]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표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홍보 로고(logo)와 악단 지휘자, 장고 치는 여배우, 태권도하는 청년, 5월1일 경기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 위의 글은 필자의 <[청로 이용웅 칼럼] 2019년 북한 달력의 표지, 그리고 1월과 2월>의 서두(序頭)와 동일합니다. 달력 3월에는 1,2월과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사진과 <빛나는 조국>의 홍보 로고(logo)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칩 3.6/ 춘분 3.21”과 “3월 2일 식수일 · 3월 8일 국제부녀일”라고 적혀있습니다. 달력 4월에는 1,2,3월과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와 <빛나는 조국>의 홍보 로고(logo)가 있습니다. 4월 사진은 그 무대에 출연한 어린이들의 공연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달력 4월에는 지구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다음의 활자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청명 4.5/ 곡우 4.20] 4.15. 태양절.(April. 15 : Day of the Sun.) 만경대 김일성 생가 그림/ 주체1(1912) 4.1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시였다.(April 15, Juche 1(1912) :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was born.)/ 주체 21(1932) 4.2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였다./ 주체 81(1992) 4.1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를 받으시였다./ 주체 82(1993) 4.9. 위대한 수령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주체 101(2012) 4.11.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되시였다./ 주체 101(2012) 4.13.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우리 나라 녀성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강반석녀사께서 탄생하시였다. April 25, Juche 21(1932):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founded the Korean People‘s Revolutionary Army.)/ April 13, Juche 81(1992):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was honoured with the title of the DPRK Generalissimo./ April 9, Juche 82(1993):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Jung Il was elected Chairman of the Natiional Defence Commission of the DPRK./ April 11, Juche 101(2012):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elected First Secretary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April 13, Juche 101(2012):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elected First Chairman of the Natiional Defence Commission of the DPRK./ April 21,1892: Kang Pan Sok, an outstanding leader of the women's movement in Korea.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2019년 북한 달력(외국문출판사 刊)의 모든 사진(표지,1월~12월)은‘빛나는 조선’의 장면들이고,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전면(全面) 스틸사진들입니다. 그러니까 모두 공연 홍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북한 <로동신문>은 2018년 10월 31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빛나는 조국>의 폐막을 앞두고 “시대의 기념비적 대걸작과 더불어 불멸할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공연에 대한 총평을 내놓았습니다. 이 신문은 "세계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에서 새롭게 탄생한 위대한 조선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제명 그대로 세계에 찬연한 빛을 뿌리는 조선의 모습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몸소 총설계가, 총지휘자, 총연출가가 되어 창조의 전 과정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었"으며 "창작의 첫 공정으로 되는 문학대본과 장, 경들의 설정, 음악의 선곡과 편곡, 배경대 형상과 바닥 형상은 물론 3차원 화상처리와 무인기에 의한 각종 형상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도"해 주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로동신문>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은 우리 국가를 대표하는 국보적인 명작인 동시에 우리 당과 인민이 세계가 보란듯이 쌓아올린 일심단결의 기념비"라고 하면서 빛나는 조국'의 창조 과정을...인민 자신이 사회주의 문명의 창조자, 향유자가 되도록 이끌어준 우리 당 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발휘되었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 70주년을 맞아 막을 올렸던 이 공연은 2002년 김정일에 의해 제작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아리랑>을 새롭게 구성한 작품입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8년 11월 30일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2018년 공연 후 평양의 병원에 관절염이나 방광염, 신경통을 앓는 어린이(훈련 및 공연 참가) 환자가 줄을 잇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전문여행사 <고려투어>는 2019년 3월 21일 홈페이지에 "올해도 북한의 집단체조 공연이 5월1일경기장에서 개최된다"고 밝혔습니다. 만일 올해도 공연된다면 내면을 속속들이 파헤쳐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정일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아리랑>은 ‘수령숭배·선전선동·외화벌이’가 주된 목표였습니다. 김정은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빛나는 조국>은? 2019년 4월 달력을 보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독재 세습체제 선전과 주체사상 선전선동은 확실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본 칼럼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빛나는 조국>의 허실(虛實)을 정확하게 해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안중근 의사와 중국 다렌·하얼빈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
[청로 이용웅 칼럼]안중근 의사와 중국 다렌·하얼빈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9년 3월 23일! 오늘,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안중근 의사 가묘(假墓)가 있는 효창공원 (孝昌公園)에서 109주년 추모 제례(追慕 祭禮)를 가졌습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시립 공원인 효창공원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현재 공원 내에는 김구 선생의 묘와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세 의사의 묘, 안중근 의사의 가묘 등이 있습니다. 이날 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300여 명을 비롯해 수백 명의 시민이 참석해 안 의사의 충정(忠情)을 기렸습니다. 원래 안 의사 순국일은 3월 26일이지만,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바로 앞 주 주말에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앞 주말에 거행하면 시민들이 많이 참석할 거라고 했는데 고작 ‘수백명’이 참석...사업회는 안 의사의 정신을 다시 새겨보시길! 2019년 3월 26일! 그날,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인 26일 순국(殉國) 장소인 중국 랴오닝성 뤼순(旅順)에서 안 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 기차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 의사는 이후 뤼순감옥으로 압송됐고 1910년 3월 26일 형이 집행됐습니다. 26일 거행된 추모행사는 뤼순감옥 박물관 내 안 의사의 순국지점에 조성된 기념실에서 진행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안 의사께서 북한이 더욱 변화할 수 있게 해주시고, 북한 비핵화를 통해 남북 형제가 하루속히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도록 굽어살펴 달라”고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중 3개국이 합동으로 안 의사 유해를 찾아보도록 말했다. 안 의사께서 유해를 찾을 수 있도록 저희에게 기회와 힘을 달라”면서 또 “한중 친선과 우정이 옛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2019년 3월 30일! 그날, 30일부터 안중근기념관이 하얼빈역에서 30일부터 재개관되었습니다. 하얼빈역 확장공사로 임시 이전했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 기차역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얼빈안중근의사기념관은 2019년 3월 30일 중국 현지 매체 하얼빈일보 광고를 통해 "(임시 이전했던) 기념관이 하얼빈 기차역에서 오늘 개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광고는 하얼빈일보 3면 오른쪽 가장 아래에 1단 규모로 실렸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하얼빈 기차역에 2014년 1월 안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기념관이 들어섰지만 하얼빈역 확장공사 때문에 지난 2017년 3월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임시 이전했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남산 조선신궁 터에 1970년 개관한 이래 2010년 새로이 건립...전시실에는 그의 출생부터 순국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안중근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평화사상을 널리 선양하여 국민의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하고 인류 평화에 이바지하는데 그 소임이 있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생중에 남긴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전체가 보물 569호로 지정된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은 그의 우국충절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고 했습니다.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 등으로 일제시기 민족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개관하게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 남산에 있는 기념관에 대해 국민들은 얼마나 알까요? 필자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 300명에게 물었습니다. 남산 기념관을 아는 학생은 불과 52명이었습니다. 2019년 4월 1일! 그날, 그래도 2019년 ‘안중근 추모‘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시장은 1일 "25년 만에 되찾은 안중근 의사 숭모비 보존·건립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는 "전국 최초로 1961년 광주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숭모비로서 역사적 보훈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가하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그분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관련 실국에서는 국가보훈처와 학계 등의 전문가들과 협의해 조속히 숭모비 건립과 보존 방안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자치단체들도 ’안중근 알리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제 ’안중근 알리기‘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확산될 전망입니다. 2015년 영화 <영웅 안중근>은 출정식까지 하면서 크게 선전되었는데, 오늘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영웅 안중근 (2015)/ 시대극 한국/ 감독 주경중 / 누적관객(자료없음)]입니다. 영화 <영웅 안중근>(감독 주경중, 제작 즐거운상상)이 8월15일 남산 백범광장에서 서울시민 1만여 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이 영화의 출정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행정자치부, 국가보훈처, 서울시가 공동주최“한 출정식은? 지금 영화 <영웅 안중근>은? 오리무중(五里霧中)? 지금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집중 조명해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의 면모와 운명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으로, 2009년 초연 이래 대한민국 대표 창작 뮤지컬로 꼽히는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성화 등의 캐릭터 포스터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영웅>은 3월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0주년 기념공연을 개막되었는데, 4월 21일에 서울 공연을 마칩니다. 이어서 전국순회공연! 지금 드라마 <의군-푸른 영웅의 시대>(이하 의군)는? 2019년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대작 역사드라마 <의군>이 올 하반기 KBS 2TV에서 방송됩니다.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의군>은 ‘후천적 영웅, 대한의군 참모장 안중근’으로 각성해가는 휴먼 성장 드라마로 총 300억대의 역대급 제작비와 중국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됩니다. 이들 뮤지컬과 드라마를 계기로 안 의사의 공적이 널리 알려지기 바랍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일은 유해 발굴입니다. 안 의사가 "내가 죽은 뒤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고 했는데...하얼빈과 뤼순 곳곳을 샅샅이! 2019년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견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경극(京劇)과 오페라의 만남! 창극(唱劇)-패왕별희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경극(京劇)과 오페라의 만남! 창극(唱劇)-패왕별희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최근 중국 <인민일보>는 “고전 스토리가 혁신 요소와 융합해 완전히 새로운 예술 체험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중국의 경극(京劇)을 주목하게 될 것 같다. 경극은 정말 오래된 신기한 무대 예술.”이라고 전제하고, 이탈리아 볼차노시립극장에서 초연한 중국-이탈리아 합작 실험 경극 <투란도트(Turandot)>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중국 국가경극원과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극장 재단이 공동 제작한 실험 경극 <투란도트>는 이탈리아 오페라 <투란도트>를 개작한 것으로, 여러 명의 중국,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출연했습니다. 중국과 서양의 연극, 음악 요소를 융합해 ‘중국 공주’의 감동적인 전설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 실험 경극 <투란도트>는 2019년 이탈리아 초연인데, 페라라, 로마 등 6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가졌습니다. 오페라 <투란도트>! 〈마농 레스코〉·〈라 보엠〉·〈토스카〉·〈나비부인〉 등을 작곡한 푸치니(Puccini.1858~1924)는 라인하르트가 연출해서 무대에 올린 카를로 고치의 동명 희극에 감명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지만 4년이 지나도록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죽었고, 프란코 알파노가 마지막 장면을 완성했습니다. 1926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같은 제목으로 된 부조니의 2막 오페라도 마찬가지로 카를로 고치의 동명 희극을 기초로 했으며 작곡가 자신이 대본을 썼습니다. 1917년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습니다.〈투란도트〉는 중국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3막 구성의 오페라입니다. 경극과 오페라의 만남! 중국과 이탈리아의 민심 소통 등 여러 가지로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2015년 실험 경극 <파우스트(Faust)>에 이어 중국과 이탈리아가 합작한 중국과 서양 예술이 녹아 있는 2019년 작품 <투란도트>는 이탈리아 관객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스토리에서 중국 경극 예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중국과 이탈리아의 문화 교류에도 기여했습니다. 오페라(opera)의 기원은 중세 예배극인데, 이 전통 형식은 16세기 피렌체에서 그리스 고전비극에 대한 당시의 개념과 결합되었습니다. 야코포 페리, 야코포 코르시, 프란체스코 카발리,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같은 초기 작곡가들은 다프네·율리시스·오르페우스 등 옛 신화에서 소재를 찾았으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 L'incoronazione di Poppea〉은 로마의 실제 인물 네로와 포페아를 다루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국민주의적 성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중국의 경극(京劇)은 우리에게 장국영(張國榮), 장풍의(張豐毅), 공리(鞏俐)가 주연한 영화〈패왕별희(霸王別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경극은 ‘북경에서 행해진 연극’을 의미하며,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1790년 건륭제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극단이 북경에 들어와 새로운 형태의 극을 공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경극은 초패왕과 우희, 제갈공명,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 중국 역사를 수놓은 역사적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인생의 보편성을 노래합니다. 〈패왕별희〉는 그중 진나라 말기 천하 패권을 두고 유방(훗날의 한 고조)과 다툰 초패왕과 그의 애첩인 우희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경극은 4대 행당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 주축이 됩니다. 전통적으로 하나의 배역을 평생 연기하는 배우로 남자 역할을 하는 생(生), 여자 역할을 하는 단(旦), 군인·무뢰배·정치가·신(神) 역할을 하는 정(淨), 우스갯소리를 하며 공연에 활기를 불어넣는 어릿광대 역할을 하는 축(丑)입니다. 인물의 성격이나 선악 구도는 배우들의 분장을 통해 구별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집합된 종합예술로서 한국의 창극, 일본의 가부키와 같이 전통과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수입된 영화나 스포츠 등에 밀려 소외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극을 지원하며 문화 수출의 첨병으로 삼고 있습니다. 창극을 비롯한 마당놀이 등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눈여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북한의 <조선의 민속전통(6)>(민속 음악과 무용)은 “창극/창극의 발생발전”에서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민속극음악분야에서는 판소리 명창에 의하여 근대적 음악극 양식인 창극이 발생하였다. 창극이 발생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민속극음악은 한사람의 연창자가 부르던 판소리의 전통적인 독연방식으로부터 여러 배우들에 의하여 상연되는 무대극적 상연방식으로 전환되였으며 근대적인 음악극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말~20세기 초 김창환, 송만갑, 리동백을 비롯한 판소리 명창들은 앞선 시기에 성행한 판소리공인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근대적인 극예술 형식인 창극 양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 기술했습니다. 중국의 경극〈패왕별희>! 한국의 창극〈패왕별희>! 한국의 창극〈패왕별희>는 대만의 경극 배우 우싱궈(吳興國 Wu Hsing-kuo)가 연출하고, 한국의 ‘항우_정보권 / 유방_윤석안 / 우희_김준수 / 여치_이연주 / 범증_허종렬 / 장량_유태평양 / 맹인노파_김금미 / 한신_최용석 / 팽월_이시웅 / 번쾌_이광원 외 국립창극단원’들이 출연합니다. 대한민국 국립창극단은 “슬픈 운명의 패왕 항우, 그의 아름다운 연인 우희와의 마지막 이별...우싱궈 연출이 마침내 창극 연출을 맡아 창극이 가진 강력한 힘과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킬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공연은 2019년 4월 5일(금)부터 4월14일(일)까지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한국의 창극〈패왕별희>를 연출한 우싱궈는 특유의 화려한 의상과 뛰어난 미장센을 가감 없이 선보일 예정이며,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적 결합으로 지루할 틈 없이 작품을 꽉 채워 동양을 아우르는 완성도 높은 또 한편의 창극이 탄생할 것이라 자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과 이탈리아의 문화예술 교류는 양국의 소통과 융합의 가교를 세웠을 뿐 아니라 양국 관계의 전면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강한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중국·대만과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교류는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알차고 더 예술적인 교류가 될 것이고, 韓·中 문화예술의 비약적 발전을 예견케 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로 이용웅 칼럼]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다음은 사전적(辭典的) 정의(定義)입니다. 개성공업지구(開城工業地區,Kaesong Industrial Region, KIR)는 흔히 개성공단(開城工團)으로 불리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합작으로 추진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특구입니다.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발합의 당시에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읍(봉동리)·삼봉리·전재리 지역이었는데, 개성공단사업 직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개성공업지구와 판문점 인근이 개성특급시 관할이 되었습니다.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주)와 북한과의 합의로 시작되었고, 2003년 6월 30일부터 1단계 330만 제곱미터가 개발이 착수되었으며, 2007년에는 1단계 분양 및 1단계 1차 기반시설이 준공되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개성공단 1단계 사업은 현대아산(개성사업단)과 한국토지주택공사(남북협력사업처)가 남측의 사업 주체로, 지도총국과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가 북측의 사업 주체로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2007년 5월 25일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09년 12월에는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를 완공하였으며, 2010년 9월에는 개성공단 북한근로자를 위한 탁아소를 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2017년 12월 28일, 이 중단 조치는 박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하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은 초법적 통치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날 당국자는 “정부가 지난해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이 외교안보수석을 통해 전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공식 의사결정 체계의 토론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두 지시로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이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는 2017년 8월 개성공단 내 남측 입주기업 차량 100여대가 사라졌다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보도에 "개성공단 차량이나 물건은 우리 소유이기 때문에 무단사용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내 19개의 의류공장을 은밀히 가동해 내수용 의류와 중국에서 발주한 임가공 물량 등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통일부는 2019년 3월 12일 ‘2019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지난달 24일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에게 서면으로 보고된 내용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개성·금강산 재개를 위한 한미 협의’를 언급하기에 앞서 이미 정부 내에서 관련 준비를 주요 업무계획에 포함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실제 배포된 2019년 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남북공동체 추진 기반 조성’이라는 주요 추진 과제 하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에 대비해 사전 준비하고 환경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담았습니다. 북측이 2019년 3월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돌연 철수했습니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북측은 오늘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 연락대표 간 접촉을 통해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북측 인원들은 이 같은 통보 이후 전원 철수했고, 현재 잔류 인원은 없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통일부는 이번 북측의 결정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북측이 조속히 복귀해 남북 간 합의대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정상 운영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과 북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으로 설치에 합의했고, 서울 ・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의 성격입니다. 남북은 1992년 고위급회담부터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를 논의했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2005년 개성공단에 남북경협사무소가 마련돼 사실상 연락사무소 역할을 했지만 2010년 5・24 조치로 폐쇄됐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공동연락사무소를 다시 열기로 했습니다. 본 칼럼은 세 장의 사진과 함께 합니다. 첫째는 개성공단 內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 전경 사진, 둘째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합의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 그리고 셋째는 2018년 9월14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개소식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연락사무소 구성, 운영 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본 ‘문 대통령 · 김정은 · 조명균 · 리선권’은 필자에게 겉으로는 신뢰감(信賴感)을 줍니다. 2019년 3월 23일 북한은 대남매체를 통해 "남조선은 자주성도 없이 강도나 다름없는 미국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3월 25일 아침 8시 10분 쯤 북측 인원 4~5명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출근해 근무 중이라고 통일부가 밝혔습니다. 북측이 지난 22일 개성연락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한 지 사흘 만에 복귀했다는 것입니다. 북측은 철수 및 복귀 이유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속어(俗語) 중에 “장난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측 직원들에게 “장난하세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1월 1일)에서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직원들의 철수와 복귀를 김 위원장은 아는지? 수장님! 장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시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한반도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 詩人 윤동주 · 길손의 광양 망덕포구(望德浦口) 그리고 詩·울림문학동인
[청로 이용웅 칼럼] 詩人 윤동주 · 길손의 광양 망덕포구(望德浦口) 그리고 詩·울림문학동인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고려말/ 광양땅 섬거마을에 살던 금두꺼비 수만 마리가/ 강물에 들어갔더라// 망덕리 배알도/ 달 밝은 동네 해안으로 기어와서는/ 놀랍게도/ 백합 한 무더기/ 싸질러 놓고서는// 그 뒤, 한참 뒤로/ 쇳섬 한 가운데/ 역사役事 벌어진 후로는/ 아예 종무소식이더라.”(섬진강.蟾津江-금두꺼비 전설) / 시인 ‘길손 안삼현’의 시(詩)입니다. 길손 안삼현! 지금은 경남 양산에 보금자리 친 길손은 광양·여수에서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했던 시인입니다. 필자는 그와 함께 남해안을 오랜 동안 두루두루 찾았습니다. 남녘 바닷가! 이 때 쯤엔 광양만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 봄을 곱게 맞는 곳은 망덕포구(望德浦口) 입니다. 풍경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해변(海邊)·포구이지만, ‘벚굴’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있는 마음의 무릉도원(武陵桃源) 입니다. “봄에 취한 섬진강이 벚굴을 품었다 한다/ 굴맛 봄맛 꿀맛이라고 한다/ 목마른 거북이 한 마리 벚굴을 찾아/ 이 마을로 찾아든 광무 2년/ 그 표석 옆에 또 거북 새긴 돌/ 세월 거꾸로 흘러서야 초석 세워 놓은/ 이 마을 재력가의 고택을 둘러보다/ 손부의 민원 같은 하소연을 들었다/ 벚굴이 자라는 섬진강 모래밭 이 자리는/ 자연의 특급 비밀”(안삼현/돈탁 마을에 가서)을 간직한 곳입니다. 망덕포구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의 망덕산 아래에 자리한 강어귀로,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와 갈사리를 끼고 흘러온 섬진강(蟾津江)이 끝나는 곳입니다. 강(江)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팔공산 북쪽 천상데미로 불리는 봉우리 기슭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50리를 흘러 이곳 포구에서 여정을 마칩니다. 이곳에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존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있습니다. 올 봄에 생각나는 시인 윤동주(尹東柱/1917~1945년)과 섬진강(蟾津江), 그리고 광양만(光陽灣) 시인들! 윤동주는 대한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 윤동주가 24세 때인 1940년 4월 광명학교 중학부 후배인 장덕순이 연전 문과에 입학했고, 경남 하동 출신의 정병욱까지 가세하여 교분을 맺었습니다. 윤동주는 정병욱의 2년 선배였고 나이도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정병욱은 훗날 윤동주의 필사본 “바람과 구름과 별과 시”를 보관했다가 유족들에게 전했고... 정병욱!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에 있는 정병욱 가옥’은 1925년에 건립됐고, 윤동주 시인의 친구인 백영(白影), 정병욱씨(鄭炳昱,1922~1982·전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와 그의 가족에 의해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온전히 보존됐던 곳입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이 원고를 정병욱에게 맡겨 그의 집에서 보관돼 오다가 광복 후 1948년에 간행돼 빛을 보게 됐습니다. 전라남도 관계자는 “이 가옥은 고 정병욱 교수가 기거하던 고택이라는 점,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해 온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사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한글로 작성된 시고가 두 분의 우정과 신뢰로 보존됨으로써 건축적·국문학사적인 의미가 크다”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윤동주가 시(詩)가 흐르는 섬진강과 시(詩)의 고장 광양만(光陽灣)에서 1925년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품었을 뿐이고, 윤동주와 국문학자 정병욱의 문우(文友)의 정(情)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가 그 집 앞에서 떠올린 것은 ‘윤동주’가 아니라 ‘길손 안삼현’을 비롯한 <詩 울림 문학동인>(공공로·민점기·박행신·이상인·이정운·정은주)시인들 입니다. 윤동주의 시(詩)가 갇혀(?)있는 동안 광양에 ‘詩의 빛과 볕’을 준 것은 윤동주가 아니라 ‘공공로·민점기·박행신·안삼현·이상인·이정운·정은주’ 등 鄕土 시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막은 두꺼비 전설에서 유래되어 명명된 섬진강과 일제 강점기 때인 1908년 어업권을 찬탈한 일본인을 처단하기 위해 황병학(1876~1931)이 의병을 일으킨 망덕포구! 벚꽃이 아름답게 피고, 벚굴이 싱그러운 2019년 봄에 향토 시인들이 제대로 대접받았으면 합니다. 이 봄에 길손이 2015년 교직에서 정년퇴임하면서 펴낸 <나의 百人譜>를 꺼내봅니다. 공공로(섬진강-쌀쌀한 바람/알몸으로 흔드는 아침/섬진강 둑길 다가서면/보이지 않던 일상들/곡선으로 너부러진다) · 민점기(구름공장-삼천포 앞바다 창선대교 아래에/구름공장이 차려졌다...한 쌍의 무희가 너울너울 마주보기 춤을 추다가/한데 엉크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박행신(할머니의 꽃밭-할머니께서 이른 봄을 달래며/포트에 소복소복 거름흙을 담으셔다) · 이상인(시인의 말-아무 생각 없이 꽃이 핀다/이내 꽃이 진다/ 생의 행간에서/보너스처럼 새가 울어준다) · 이정운(도깨비바늘꽃-어리고 작은 꽃 무더기/누구의 눈길 한 번 받아본 적도 없는 것들이/노랗게 길섶을 흔들고 있다) · 정은주(봄날-길 모퉁이 오수에 젖은 벚나무들/꽃잎은 봄꽃처럼 가벼이 사방으로 흘러간다) - 이 시인들은 2018년 12월 17일 <2018 詩·울림문학동인 제24집 몸 푼 자리에 꽃잎 가득하고>를 펴냈습니다. ‘詩의 빛과 볕’으로 광양만을 밝혀준 快擧를 이룬 것입니다. 이 시인들 중 ‘길손 안삼현’이 있습니다. 그는 시집 <나의 百人譜>에서 “참 많이 떠돌아다녔다. 쪽빛 고향 바다를 두고 이곳저곳. 아마도 해안선을 따라서만 헤집고 다닌 여정이 아닌가. 그래서 간밤에는 어느 날 먼저 떠나버린 이들의 모습이 문득 내 꿈속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한 줄의 글을 제대로 이어갈 줄 모르는 천학비재, 많은 분의 고마움에 손톱만큼이나마 보답하지 못한 채 나는 아직 섬진 하단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름대로 걸어온 내 발자국. 살아가면서 작은 점 하나 찍으려 했다면 그 또한 욕심일까. 낡은 집을 고쳐 그냥 살기로 하였다. 오래 전 쓰다 남은 촛불을 다시 밝혀 두고 정신을 가다듬고 살기로 하였다.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을 듣고 ‘겸재’와 ‘도겸’의 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더불어, 함께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시집 <나의 百人譜> 발문(跋文)에서 “훌륭한 평교사 선생님 안삼현! 선인의 삶을 노래한 시인 안삼현! 그는 고향이 네 곳이나 되는 행운아이다. 그는 시인 같지 않은 사람, 시인답지 않은 시인으로 살아온 작가이다. 이제 ‘안쌤’은 새로운 마음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에게미국작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가 노벨상 시상식에서한 연설문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시인은 지금 진정한 시인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邁進)하고 있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온라인 교육 이용자 수 2억 명 돌파! 대한민국은?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온라인 교육 이용자 수 2억 명 돌파! 대한민국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3년 1월 15일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은 중국 인터넷망 정보센터(China Internet Network Information Center, CNNIC)가 ‘제31차 중국 인터넷망 발전현황 통계보고’를 발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말까지 중국에서 인터넷 검색엔진 사용자의 규모는 4억 5,100만 명으로 2011년 말에 비해 4,370만 명 증가했습니다. 2012년 12월 말까지 중국의 네티즌 수가 5억 6400만 명이며 인터넷 보급률은 42.1%로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모바일 네티즌 수가 급격히 늘어나 2012년 중국의 모바일 네티즌 이용객 수가 4억 2000만 명으로 연간 증가율이 18.1%에 달해 인터넷 네티즌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증가세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중국 <人民日報>는 2019년 3월 11일에 “온라인 교육 이용자 수 2억 명 돌파”라는 기사를 게재(揭載)했습니다. 최근 발표된 제43차 ‘중국 인터넷 발전현황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온라인 교육 이용자 수는 2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중국 학생들이 온라인 교육 수강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위챗 등의 앱(App)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는 지난해보다 63.3% 증가했고, 이는 이용자 전체에서 약 96.5%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인민일보>는 “앞으로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온라인 교육도 한층 더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8 중국 온라인 교육 업종 백서’는 2020년까지 중국의 온라인 이용자 규모는 2억 9600만 명, 시장규모는 433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베이징에서 열렸던 2019년 중국 양회(中國 兩會)에서 많은 대표와 위원들이 중국의 온라인 교육의 발전을 위한 묘안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맞춤형 학습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켰다. 하지만 학교 경영의 질이 천차만별인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업계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발전에 도전을 던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양회”는 ‘중국 양회’를 말합니다. ‘중국 양회’는 “중국에서 매년 3월 진행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를 이르는 말”입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1954년 출범한 중국의 헌법상 최고 국가권력기관! 의사기관이자 집행기관으로 헌법과 법률의 제정과 개정, 국가 경제계획과 국가 예산·결산의 심의 등 한국의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흔히 약칭으로 ‘전인대(全人大)’라 하며, 매년 3월 5일 개최합니다. ‘전인대’는 각 지역과 소수민족 등에서 선출된 약 3,000명의 대표자로 구성되며 대표자들의 임기는 5년입니다. 이 2019년의 ‘양회’에서 “많은 대표와 위원들이 중국의 온라인 교육의 발전을 위한 묘안을 내놓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인민일보>는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 업무요점은 정보기술과 교육을 심층적으로 융합해 전국 초·중등학교 인터넷 접속률을 97% 이상, 해외 사이트 접속 속도를 100Mbps(초당 백만 비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업무요점은 또 디지털화 자원 학교 도입 모니터링 제도를 구축하고, ‘인터넷+교육’ 플랫폼 건설을 추진할 것이며, ‘온라인 개방수업 건설과 응용 관리 방법’을 출범해 더 많은 대학 커리큘럼이 국제 유명 커리큘럼 플랫폼에 접속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서 신문은 “온라인 교육 업계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술 혁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인공지능(AI), 인터넷 생방송 등 모바일 인터넷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온라인 교육 업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공지능+교육’이 온라인 교육 업계의 기술 기반으로 점차 자리를 잡고 스마트 숙제 검사, 안면인식 기술, 맞춤형 추천 등 AI 기술이 온라인 교육 현장 곳곳에 침투하면서 이용자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앞으로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온라인 교육도 한층 더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8 중국 온라인 교육 업종 백서’는 2020년까지 중국의 온라인 이용자 규모는 2억 9600만 명, 시장규모는 433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고 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교육부는 ‘2019년 업무요점’을 발표했습니다. ‘업무요점’은 디지털화 자원 학교 도입 모니터링 제도를 구축하고, ‘인터넷+교육’ 플랫폼 건설을 추진할 것이며, ‘온라인 개방수업 건설과 응용 관리 방법’을 출범해 더 많은 대학 커리큘럼이 국제 유명 커리큘럼 플랫폼에 접속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교육부는? 교육부에는 “온라인 소통 교육공간. 온-교육-들어가기”가 있는데 별 내용이 없고, 중국의 ‘2019년 업무요점’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중국의 ‘양회’같은 최고 국가권력기관이 대한민국에 있는지? 있다면 우리나라도 ‘온라인 교육’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그러면 우리나라 교육부는? 있습니다! 2018년 5월 19일 전격적으로 교육부에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일반대학의 원격수업 운영 기준’ 조항을 신설하여 다음과 같이 공표했습니다. -“제14조의 3(방송.통신에 의한 수업)/ 1. 법 제22조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원격대학이 아닌 대학에서 방송.통신에 의한 방법으로 수업을 실시하는 대학은 원활한 수업운영을 위해 적정수 준의 각종 서버, 통신장비 및 콘텐츠 개발 설비 등을 갖추어야 한다./ 2. 법 제22조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원격대학이 아닌 대학에서 방송.통신에 의한 수업을 통해 이수할 수 있는 학점은 졸업에 필요한 학점의 5분의1을 초과할 수 없다./ 3. 제1항 및 제2항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수업 운영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교육부장관이 정한다”- 정말 대단히 큰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부 대단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대학 사이버교육과 함께 걸어온 필자는 이번 1학기에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일반대학 1,181명(원격대학 2,249명)의 학생들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육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정책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필자는 앞으로 이 시행령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선 단 한 가지, 딱 하나만 교육부에 묻고 싶습니다. 왜 모든 사이버강의 시험은 반드시(절대적으로.무조건.꼭) 강의실(강당 포함)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교실로 국한한 것이 오랜 연구의 결과인지 묻고 싶습니다. 2019학년도 1학기부터 사이버강좌 개설 및 운영은 교육부 “일반대학의 원격수업 운영기준”이 엄격히 적용된다는 것이 교육부의 협박(?), 강압(强壓)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교육부처럼‘2019년 업무요점’을 발표했는지? “일 잘하는 대한민국의 교육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청로 이용웅 칼럼]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⑦3·1운동 100년 기념 DB와 “3.1인민봉기”
[청로 이용웅 칼럼]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⑦3·1운동 100년 기념 DB와 “3.1인민봉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3.1운동(기미독립만세운동, 기미독립운동, 삼일만세운동) :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거국적인 독립만세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중 서울에 있던 20여 명은 2월 28일 밤 재동 손병희의 집에서 최종 회합을 가지고 거사 계획에 대한 마지막 검토를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선총독부의 헌병·경찰의 정보망도 사전에 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3월 1일 정오경부터 민족대표 33인 중 29인(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 등 4인은 지방에 있었으므로 불참)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泰華館)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한편 최린은 태화관 주인 안순환(安淳煥)에게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 일동이 여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나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게 하였다. 이 통고를 받은 일본경찰대 80여 명이 즉각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하였다. 이 때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를 들은 후,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의연하게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8년 7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남북이 함께 3·1 운동 100주년(2019년)을 기념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 건국(建國) 시점을 1919년 임시정부로 규정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3·1운동으로 분출된 민족의 역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인 7월 4일,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100주년을 맞는 2018년 3·1절에 맞춰 남북 대표단이 함께 열차로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지난 3일 3·1절 100주년 행사를 위한 위원회(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식 발족함에 따라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며 “관련 부처에서 공동 방중 계획을 연초부터 검토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남북관계 진전에 맞춰 남북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1단계 검토를 이미 마쳤다”며 “남북한의 대규모 대표단이 함께 열차를 타고 국내외에서 진행했던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3월 1일은 이미 지났습니다. 최근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는 [3·1운동 100년 기념 데이터베이스 구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database.DB)에는 1919년 3·1운동 당시 발생한 시위는 1692건이며, 참여 인원은 79만9017∼103만73명이라는 연구 결과가 포함돼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소요사건 관계 서류, 일본 외무성 기록, 경성지법 검사국 문서, 3·1운동 관련 판결문, 재한 선교사 자료, 한일관계 사료집에서 3·1운동 관련정보 2만1407건을 추출했습니다. 위원회는 이 정보를 분석해 1919년 3∼5월에 시위 1692건, 철시 25건, 파업 3건, 휴학·휴교 61건, 계획 350건, 기타 활동 333건 등 일제에 저항한 사건 2464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수치는 일제가 발표한 시위 건수 800여 건보다 월등히 많고, 독립운동가 박은식이 1920년 펴낸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한 1542건보다도 약간 더 많습니다. DB를 보면, 지역별 시위 건수는 서울·경기가 427건으로 최다였습니다. 이어 황해도 177건, 평안북도 148건, 경상남도 140건, 경상북도 118건, 충청남도 117건, 평안남도 112건 순이었습니다. 국외에서도 시위 99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한 시위는 모두 174건으로 집계됐으며, 사망자 수는 725∼934명이었다. 일제는 3·1운동 사망자를 약 550명으로 추정했습니다. 여기서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13)>의 “3.1인민봉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3.1인민봉기 :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주체8(1919)년 3월 1일에 폭발한 우리 인민의 전민족적 반일봉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만세!>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면서 강도 일제를 반대하여 전 민족적 투쟁을 전개한 날이며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준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 민족이 자기의 자유를 위하여 고귀한 피를 흘린 날입니다.⨠(<김일성전집> 3권, 185페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야만적인 무단통치로 말미암아 쌓이고 쌓인 조선인민의 민족적 울분과 사무친 원한은 마침내 주체 8년 3월 1일에 전만족적 반일투쟁으로 폭발하였다...⪡그때 여덟살이었던 나도 다 꿰진 신발을 신고 시위 대렬에 끼여 만세를 부르면서 보통문 앞에 까지 갔다...어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 나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김일성 저작집> 45권, 36~37페지). 평양시민들의 시위대렬은 삽시에 10만여명으로 늘어났다...”(<조선대백과사전(13)>) “...일제 살인귀들은 3.1인민봉기 초기에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치떨리는 대중적 학살 만행을 감행하였다. 3월 초순에 맹산에서 독립만세 시위투쟁이 벌어지자 일제 헌병들은 총칼로 위협하면서 수많은 시위참가자들을 체포 구금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참가자들이 헌병주재소로 밀려가 체포 구금한 사람들을 당장 내놓으라고 들이대자 일제 교형리들은 그들에게 마구 사격을 가하여 60여명을 무참히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 살인마들은 또한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 무고한 부락민들을 교회당에 모이게 해놓고는 교회당 건물에 석유를 뿌린 다음 불을 질렀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에게 기관총 사격을 가하여 마구 죽이였다. 일제 야수들의 잔인무도한 만행으로 이날 제암리에서 300여명의 주민들이 일제 살인귀들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품은 채 집단적으로 학살당하였다. 일제는 1919년 3월 하순 평안북도 정주에서 5,000명의 평화적 시위대렬에 집중사격을 퍼부어 120명의 사상자들을 내였다. 실로 반일인민봉기의 전기간 일제의 총칼에 맞아 쓰러진 조선 사람의 수는 10여만명에 이르렀다. 한편 일제침략자들은 전국 도처에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켜 수많은 애국자들을 검거 투옥하였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의 기간에 국내에서만 하여도 약 4만 6,700명에 달하는 애국적 인민들이 체포 투옥되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일제의 이러한 탄압 만행을 적그 지지하고 부축였으며 저들이 <선교사>, <의사> 등을 내세워 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반일항쟁의 기운을 갈아 앉히려고 책동...” (<조선대백과사전(13)>) 북한 <조선대백과사전(13)>의 “3.1인민봉기” 등이 국사편찬위원회의 DB에서 활용되었는지...비록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되긴 했지만 “1919년 3.1인민봉기 주요지역도”와 “중국 동북 및 로씨야 연해주지방 동포들의 3·1인민봉기 주요지역도” 등은 중요한 데이터인데...북한에는 이외에도 많은 자료들이 있을 것입니다. [3·1운동 100년 기념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북한의 관련 자료들은 계속 발굴되어야 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북한 수장들의 쌀밥과 고깃국
[청로 이용웅 칼럼]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북한 수장들의 쌀밥과 고깃국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남한의 <우리말 큰 사전>(한글학회)을 보면 '남새'를 "무우, 배추, 아욱 따위의 심어서 가꾸는 나물."(752쪽)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은 '남새'를 "부식물로 먹기 위하여 심어 가꾸는 밭작물 곧 ≪배추, 무우, 오이, 가지, 고추, 호박, 마늘, 파 같은것≫을 통털어 이르는 말. 잎남새, 열매남새, 뿌리남새가 있다. // ~를 심다. ~를 가꾸다. △ 겨울~, 고급~, 저장~, 줄기~, 풋~, 햇~, 뿌리~, 양념~, 얼갈이~, 열매~, 온실~, 잎~, 여름~, 봄~."(567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선 '의식주'를 '식의주(食衣住)'라고 합니다. 뜻도 남한의 "사람 생활의 세 가지 요소인 옷과 음식과 집." 보다 넓은 의미, 즉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위 사전,1909쪽)이라고 합니다. 이 풀이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집'을 '쓰고 사는 것'이라고 한 것과 '식(食)'이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 점만 가지고 북한에선 먹는 것이 삶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쌀밥에 고깃국'은 고(故) 김일성 주석이 1962년 10월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처음 언급한 말입니다. 하지만 1994년 그가 사망 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후 북한은 수십만~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한 '고난의 행군'을 겪었습니다. 이후 '쌀밥에 고깃국'이란 표현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2010년 1월 재등장했습니다. 당시 아들 김정일은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야 한다는 수령님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했습니다. 월북 문인 김동석이 1946년 쓴 수필을 보면 "아내는 강냉이밥을 푸면서, 배가 고파 상(床)에 덤비는 네 살 된 놈을 보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북한의 '강냉이밥'은 우리 주변에서 건강식으로 먹는 옥수수밥과는 다릅니다. 옥수수 낱알을 말려 정미소에서 쌀과 비슷하게 가공한 '강냉이쌀'로 지은 밥입니다. 탈북자 출신 식품학 박사 이애란씨는 강냉이쌀을 본 적이 없는 남한 학자들에게 그게 뭔지 설명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인민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흰 쌀밥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동신문>이 전했습니다. 김정일은 그전에도 김일성의 '흰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 유훈(遺訓)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강냉이’는 남한의 ‘쌀’과 같았습니다.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강낭밥=강냉이밥’은 “쌀과 강냉이를 섞어서 지은 밥 또는 강냉이만으로 지은 밥.”, 그리고 ‘강냉이 가공’는 “강냉이를 가공하여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드는 일. 가루, 물엿, 포도당, 전분, 단백질, 옥쌀기름, 항생제, 집짐승먹이 등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흰쌀밥에 고깃국’이 꿈이었던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1993년 12월에 행해진 제3차 7개년 경제 계획의 총결산을 통해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한 김일성은 ‘경제 살리기’에 안간 힘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1992년 신년사에서 ‘이팝과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은 채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직접 현장에 나가 ‘일꾼’들을 다그쳤습니다. 김일성은 기근에 대한 공포 때문에 1994년 상반기에만 50여 차례의 현장지도에 나섰습니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는 옛말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7월 25일의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도 ‘죽어 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7월 9일 정오 북한은 방송을 통해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2시에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음을 보도하였습니다. 그의 ‘흰쌀밥에 고깃국’ 꿈이 깨저버린 것입니다. 1990년대에 천재지변이 계속되자 김정일은 '비공개 연설'에서 “배고파 일하러 나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불러 일으켜 풀 먹는 집짐승과 버섯 같은 것이라도 기르게 하면 식량보탬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다큐멘터리 김정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고 했던가. 계속되는 물난리와 가뭄(북한에선 보통 가물이라고 함)에 '나랏님'인들 어찌 했겠습니까. 2011년 12월 19일 정오, <조선중앙방송>은 이틀 전인 12월 17일 김정일이 현지 지도 방문을 위해 탑승한 열차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도 ‘흰쌀밥에 고깃국’ 때문에 저승길? 북한은 1993년부터 역사적으로 유래 없는 자연재해와 공산주의권 나라들의 붕괴, 그리고 서방세력의 경제봉쇄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 및 식량난을 겪었는데, 이를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릅니다. 약 6년간의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북한은 이제 강성대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주민 33만 여 명이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굶어 죽었습니다. 2003년에 발표된 국제앰네스티의 리포트에서는 북한 인구의 절반을 넘는 1,300만 명이 기근(饑饉)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9년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혹한 시련과 난관'을 언급하며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월 9일 보도했습니다. 김정은은 또 '북한의 영원한 경제 목표'로 불리는 '흰쌀밥에 고깃국' 표현도 집권 이후 처음으로 썼습니다. 그가 이를 언급한 것은 3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書翰)에서입니다. 김정은은 서한에서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과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은이 ‘수령님(할아버지)과 장군님(아버지)의 평생 염원(念願)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요? 부자 나라 수장(首長)과 만나 이름을 날린다고 해결? ’비핵화‘는 굶주림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백성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려면 무엇보다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입니다.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은 <生活의 發見>에서 “민중이 굶었을 때, 몇 개의 제국(帝國)은 붕괴하고, 여하한 강력한 정권도 공포정치도 사라져 갔다.”고 했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詩“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반도의 봄
[청로 이용웅 칼럼] 詩“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반도의 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필자가 매년 3·1절이 되면 그리는 일제 강점기의 시인(詩人)! 시인이며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했던 상화(尙火, 想華)! 이상화(李相和, 1901년~1943년)! 1919년 대구에서 3·1 운동 거사를 도모하다가 모의가 발각되어 피신하였으며, 1921년 잡지 백조의 동인이 되어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이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이후 시와 소설 등 작품 활동과 평론 활동, <개벽>, <조선문단>, <문예운동>, <여명>, <신여성>, <삼천리> 등에 동인 활동을 했습니다.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 교남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는 1938년에는 교남학교 권투부를 창설,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26년 6월에 <개벽(開闢)> 70호에 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습니다. 국권 상실의 아픔과 국권 회복에의 염원과 의구심을 암시한 작품이었습니다. 다음은 원문(原文) “ᄲᅢ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지금은 남의ᄯᅡᆼ―ᄲᅢ앗긴들에도 봄은오는가? // 나는 온몸에 해살을 밧고 푸른한울 푸른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가튼 논길을ᄯᅡ라 ᄭᅮᆷ속을가듯 거러만간다. // 입슐을 다문 한울아 들아 내맘에는 내혼자온 것 갓지를 안쿠나 네가ᄭᅳᆯ엇느냐 누가부르드냐 답답워라 말을해다오. //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넘의 아씨가티 구름뒤에서 반갑다웃네. // 고맙게 잘자란 보리밧아 간밤 자정이넘어 나리는 곱은비로 너는 삼단가튼머리를 ᄭᅡᆷ앗구나 내머리조차 갑븐하다. // 혼자라도 갓부게나 가자 마른논을 안고도는 착한도랑이 젓먹이 달래는 노래를하고 제혼자 엇게춤만 추고가네. // 나비 제비야 ᄭᅡᆸ치지마라 맨드램이 들마ᄭᅩᆺ애도 인사를해야지 아주ᄭᅡ리 기름을바른이가 지심매는 그들이라 다보고십다. // 내손에 호미를 쥐여다오 살ᄶᅵᆫ 젓가슴과가튼 부드러운 이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어도보고 조흔ᄯᅡᆷ조차 흘리고십다. // 강가에 나온 아해와가티 ᄶᅡᆷ도모르고 ᄭᅳᆺ도업시 닷는 내혼아 무엇을찻느냐 어데로간냐 웃어웁다 답을하려무나. // 나는 온몸에 풋내를 ᄯᅵ고 푸른웃음 푸른설음 어우러진사이로 다리를절며 하로를것는다 아마도 봄신령이집혓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ᄲᅢ앗겨 봄조차 ᄲᅢ앗기것네. // 현대어(現代語)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로 시작하여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로 끝이 납니다. 이 시(詩)에 대한 연구나 글은 아주 많습니다. 누군가는 이 시에 대해,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정신없이 봄 들판을 배회하는 화자가 들 뿐 아니라 봄까지 빼앗길지도 몰라도 아름다운 여인 같은 국토를 빼앗긴 마음을 통해 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화 시인은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발간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화는 남한 뿐 아니라 북한도 인정한 시인입니다. 북한의 <조선문학개관1>에는 “리상화와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는 “초기 프로레타리아문학에서는 산문문학과 더불어 시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놀았으며 그 선두에는 시인 리상화가 서있었다. 리상화(1901-1943)는 서울에서 중학생으로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출학당하였고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일정한 기간 시 창작을 하였다...3.1인민봉기와 그 이후에 급속히 발전하는 현실, 맑스-레닌주의의 보급 등은 그로 하여금 모색과 방황의 세계에서 벗어나 건전한 창작의 길로 나가도록 추동하였다. 그리하여 리상화는 《백조》파에서 뛰쳐나왔으며 《파스큐라》를 거쳐 《카프》에 망라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발전과 창작적전환을 보여준 작품으로는 《금강례찬》과 《원시적읍울》(《어촌애경》) 등을 들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상화의 시문학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의 하나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이다. 이 시는 아름다운 언어와 풍부한 정서를 가지고 빼앗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이러한 수사학적질문을 제기하고 결구에서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네.》라고 노래함으로써 조국을 빼앗긴 인민에게는 자연의 봄, 생활의 봄이 찾아올 수 없다는 절통한 심정, 조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서정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풍부한 예술적형상수법과 세련된 시어, 아름다운 운률을 다양하고 적중하게 구사하여 땅을 빼앗겨 봄마저 빼앗긴 조선농민들의 비통한 심정과 애국적지향을 시적으로 일반화한 우수한 작품의 하나이다. 리상화의 시문학은 비록 시대적 및 세계관적 제한성에서 오는 일련의 약점과 미숙성을 나타내고는 있으나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과 항거정신으로 일관된 주제사상적 내용과 세련되고 완미한 형식이 조화롭게 결합된 높은 사상예술성으로 하여 조선시문학의 발전풍부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였다.”고 했습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해인 2019년 2월 27~28일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그때 일부 한국인들은 ‘한반도의 봄’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담이 결렬되자 ‘한반도의 들에도 과연 봄이 올까?’라고 다시 회의를 품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들녘에 진정한 봄은 몇 번이나 있었던가”라고 회상하면서 “서로 다른 사상으로 아직도 총칼을 겨누고 있는 불행한 민족, 이 같은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꼬.”라고 슬퍼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시인의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은? 그의 ‘푸른 설음’이 잊혀지고, 한반도과 한민족의 ‘푸른 웃음’이 한반도의 봄을 장식해주길 빕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