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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2021 북한 달력⑥ 6월과 6·25 한국전쟁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 2021 북한 달력⑥ 6월과 6·25 한국전쟁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2021년도 북한 달력 6월! [처녀시절](꽃과 여인의 그림)가 전면을 장식했습니다. 숫자가 赤色인 날은 없습니다. 그리고 [망종 6.5. / 하지 6.21]도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달력 6월에는 1일 ‘국제아동절’과 6일 ‘조선소년단창립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달력 속 문장들만 없으면 대한민국의 달력이라고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문장은 [주체53(1964) 6. 1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 주체 105(2016) 6.29.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였다. / 주체15(1926) 6. 5.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 성생님께서 서거하시였다. ]입니다. 아니! 김정은의 아버지가 취업해서 첫 출근한 날이 여기서 왜 나와?! 有口無言! 북한의 ‘국제아동절’! 북한은 지난 1일 국제아동절을 맞아 전국 육아원 등 아동시설들을 조명하며 '愛民 사상'을 집중 부각했습니다.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이날 “위대한 태양의 빛발이 있어 내 조국의 미래는 밝고 창창하다”는 특집 제목 아래 김정은 당 총비서의 어린이 사랑 일화들과 발언들을 전하는 다수의 기사와 사진을 두 개면에 걸쳐 배치하며 국제아동절을 대대적으로 기념했습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날! 그런데 ‘북한의 어린이’하면 과거 필자가 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출연 어린이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暴炎 속에서 연습하는 불쌍한 어린이들! 누군가 ‘전쟁은 활발하고 훌륭한 역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비참한 전쟁으로 기록된 ‘6․25’가 발발한 6월이 되어도 한국민들은 여느 때처럼 ‘6․25’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우리 국민들은 삼백육십오일 내내 ‘분단의 아픔’을 잊고 삽니다. 물론 분단의 현장에서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며 ‘활발하고 훌륭한 역사’를 추구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끝없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전쟁’이란 영화는 있겠지만, 전쟁은 영화처럼 시작과 끝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병법의 손자(孫子)는 “전쟁이란 국가의 중대사로 사생(死生)의 분기점이며, 흥망의 경계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해서 ‘고스톱’도 아닌 전쟁판이 자주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만용과 피의 살육을 일삼는 아레스신(神) 때문도 아니고, 미친 듯 도륙을 한 황폐의 여신 때문도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의 소산일 뿐입니다. 그러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한마디로 전쟁광들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 중에서 광적인 전사는 무수합니다. 현대사만 보더라도 히틀러, 무솔리니, 그리고 김일성 등이 있습니다. 1950년 평양의 군사신문인 <조선인민군>지는 “남한이 6월 25일 이른 새벽에 38선 이북의 영토에 불의의 침공을 가해왔다”는 내각의 성명을 기사화했습니다. 그리고 사설에서 “조국통일의 날이 왔다! 모든 조선인들은 조국과 인민과 그리고 경애하는 김일성수령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며 독립과 통일을 위해 궐기해야 한다. 남조선인민들을 해방하기 위해 어서 전선으로 나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기원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북한공산군은 아무런 정당성도 갖추지 않은채 예고없이 도발적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했다”고 한 딘 에치슨의 단언이 아니더라도 증거가 명명백백(明明白白)합니다.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6․25관련 외교문서목록을 받아내면서 모든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안에는 <조선인민군>의 허위가사를 믿고 있는 무리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김일성의 남침’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는데도 말입니다. 김일성은 전쟁광이 분명합니다. 그럼 모든 전쟁광들의 최후는(?) 전쟁광 김일성! 한반도를 핏빛으로 물들인 그는 살아 生前에 ‘전 인류의 태양, 위대한 대원수’가 자기라는 망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똑똑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면서, 착한 백성들에게 자기를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태양’,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선량한 북한사람들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독재자의 폭정 속에서 잘도 참고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항상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전쟁광 김일성의 최후는?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950년 6얼 25일 한국전쟁을 일으킨 지 44년 만에 저승길로! // 대한민국 <나무위키>: “김일성의 이 무식함을 증명하는 일례가 바로 6.25 전쟁이다. 김일성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군세를 잃고 평양마저 함락 당한 끝에 강계까지 도망쳤는데 만약 펑더화이와 쑹스룬 등이 이끄는 중공군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완벽하게 망할 뻔했다.”// 그가 죽으면서 6.25는 “자기가 꾸민 전쟁”이라고 실토했더라면, 지금의 한반도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화했고,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11.1%에 해당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2020년 6월 북한 달력에는 아무 말도 없지만...남·북한의 모든 한민족은 전쟁광 김일성을 영원히 역사박물관 속에 특별전시하여 그의 惡行을 지구촌 사람 모두에게 알려야 할 것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6월 6일 현충일(顯忠日)과 현충원의 蔡命新
[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6월 6일 현충일(顯忠日)과 현충원의 蔡命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대한민국의 기념일입니다.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戰亂)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 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행해집니다. 이날이 되면 불리워지는 노래가 “현충의 노래”(조지훈 작사/임원식 작곡)입니다. -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님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 현충일이 되면 불리우는 노래입니다. 6월 6일은 제66회 현충일입니다. 우리 모두 태극기(弔旗)를 게양하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태극기(조기)는 다음과 같이 답니다. 조기는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세로길이) 만큼 내려서 답니다. 그리고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세로길이) 만큼 내려 답니다. 단, 차량이나 보행자의 통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거나, 깃대가 짧아 조기로 게양할 수 없는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최대한 내려 게양합니다. 조기는 현충일 당일에만 게양합니다. 가로기와 차량기는 국경일 등 경사스러운 날에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게양하고 있으므로, 현충일에는 게양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그는 취임 이래 매년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왔고 이번이 다섯 번째 참석입니다. 이날 추념식은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정부·국회·군·18개 보훈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현충일 추념식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부산 UN기념공원을 화상으로 연결해 자유, 평화, 민주, 인류애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을 기리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로 약 44만 평(144만㎡)의 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국립 묘지는 나라를 위하여 공을 세웠거나 생명을 바친 분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나라에서 마련한 묘지입니다. 이 묘지에 묻힐 수 있는 사람은 전사한 장병을 비롯하여 학도 의용군 · 향토 예비군 · 경찰관 · 국가에 공이 많은 사람으로서 국무 회의의 의결을 거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립 묘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에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서울 동작동에 설립되었던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되기 시작했고, 1976년 4월 14일 현재의 위치로 결정되었습니다. 197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고, 1985년 11월 13일 준공했습니다. 동작동 국립 묘지 정문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이곳을 지나면 현충문과 현충탑, 무명용사의 비(碑)가 눈에 띕니다. 무명용사의 비는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름 모를 용사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곳입니다. 산기슭까지 펼쳐진 넓은 경내의 푸른 잔디밭에는 전사한 장병들의 묘비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묘비에는 전사한 장병들의 계급과 성명, 전사한 장소와 날짜가 새겨져 있습니다. 평소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지만, 특히 현충일에는 거국적인 추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2021년도 6월 6일 현충일! 필자는 아침에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았습니다. 정문 옆에서 김밥 파는 노파가 “지난 10년 동안에 오늘처럼 사람 보기가 힘든 날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정문에 들어서자 풍광이 고운 묘지 전경이 눈앞에! 바로 찾은 파월 전사자 묘역! 젊은 영혼들, 그들은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 가 싸우다 불귀의 객이 된 한국군, 파월장병들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채명신 초대 주(駐)월남 한국군 사령관의 묘가 있습니다. 채명신(蔡命新/1926~2013.11.25)은 월남전의 영웅으로 손꼽히는데, 2013년 눈을 감으면서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습니다. 필자는 1966년 정부에서 마련한 제1기 파월장병위문단의 일원으로 맹호부대를 방문, 거기서 채 장군님을 만났습니다.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갔는데, 그의 인품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묘를 찾습니다. 채명신과 프랑스의 샤를르 드 골(Charlesde Gaulle/1890~1970)은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드골이 생각나는 것은...군대 경력을 거치는 동안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독창적인 사고를 갖춘 인물로 유명했던 장군, 프랑스 제5공화정을 건설한 정치가 드골, 195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드골은 정적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라고 합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인물이 없을까요? ‘채명신’은 다수의 국민들이 잘 모르니...하지만 그는 분명 존경받을만한 인물입니다. ‘채명신’에 대한 재조명을 바라는 2021년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追伸] 정은상 박사가 보내온 글/ “전사하신 친구분이 계신다고 하셨지요? 저는 친동생이 대전현충원에 있고요, 할아버지도 6.25 전사자시고, 아버지는 함양군 보훈지회장을 30년 가까이 역임하신 보훈가족 입니다.”/ 故人들의 冥福을 빕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2.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2.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1.>에서 계속. 정은상 박사의 “동북아시대의 러시아 극동과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계속>⇒ ⇒[오늘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인근지역의 현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는 과거 재정러시아 시절 극동의 얼지 않는 부동항을 개척하기 위해 추진한 동진남하(東進南下)정책의 결과물입니다. 연해주를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해서 1860년 러시아와 베이징조약(북경조약)을 체결하여 연해주의 땅을 러시아로 넘겨주게 됩니다. 그 이전인 1858년 아무르강 연안의 아이훈에서 러시아제국과 청나라는 불평등조약인 아이훈조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은 러시아어로 된 합성어입니다. 사전적으로는 블라디(지배하다, 정복하다)+보스토크(동방, 동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860년 제정러시아 시절에 도시가 탄생하였기 때문에 올해로 161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까지만하더라도 매년 20만명 이상의 한국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찾은 관광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두 시간의 거리에 위치한 유럽의 도시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시의 메인스트리트인 ‘스베틀란스카야’거리 좌․우측의 즐비한 건물들은 프랑스 파리의 건물들과도 유사한 고틱이나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입니다. 또한 시 관광정책에 따라서 도심을 재정비하고 모스크바시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여 조성한 ‘아르바트’거리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도심과 바다가 잘 어우러져 있고, 과거 동서진영의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긴장감도 한국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억의 관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즉,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잠수함인 잠수함박물관, 태평양함대사령부, 전망대에 포진한 대포, 꺼지지 않는 불꽃 등은 분명 한국과는 다른 이국적인 유럽의 풍경들입니다. 여기에는 과거 한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가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심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신한촌’이 그곳입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역할과 한인 교육의 메카역할을 톡톡히 내낸 곳입니다. 현재 신한촌에는 위령탑이건립이 돼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애국심과 역사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전당이기도 합니다. 행정단위로 ‘서울거리’가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시를 관광하는 우리나라 관광객은 저마다 가슴에 애국자라는 훈장을 하나씩 달고 다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 도시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도 당당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아직까지 한인 5세대, 6세대들이 전통시장에서 김치와 콩나물, 고사리나물 등을 팔고 있는 역사적인 전통계승의 현장이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992년 개방도시가 되었습니다. 과거 군사항의 역할을 위한 특수한 목적의 도시였습니다. 개방도시 이후 우리나라는 총영사관을 비롯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문화원 등이 일찍부터 자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에서는 제일의 교육기관인 극동연방대학(FEFU)이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대학은 우리에게 전 세계에서 한국학연구와 교육이 가장 먼저 시작된 대학으로 유명합니다. 한․러수교 이전인 1989년에 경남대학교 박재규총장은 민간외교협력 차원에서 이 대학의 전신인 극동국립대학교(FESU)와 1989년 자매교류협정을 맺었던 역사적인 행사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외교도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이 도시를 방문함으로서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지리적으로 남,북한, 중국, 일본, 몽고, 러시아와의 협력이 용이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대한 이해와 상호교류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국회 정치의 현장을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서 다양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일명 철의 실크로드 탐방프로그램 등은 양국을 보다 더 친밀하게 해 준 밀착 외교이기도 합니다. 국제심포지엄은 21세기 동북아시대를 구상하고 평화번영과 남북동반시대를 조속히 앞당기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의 구상을 실천하고 남북 동반 평화번영을 위해 남・북・러 핵심 공통 관심사인 동북아 물류외교, 에너지외교, 과학기술외교, 문화외교 등을 앞당기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제심포지엄을 여러 차례 개최하였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 평화번영을 위한 남북동반정책」을 위해서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시베리아의 자원개발과 남북한 상호 전략 이해’, ‘동북아 시대 남북동반정책과 협력 방안’ 등의 현안에 대해서 양국의 학자들이 모여서 수차례 국제학술행사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한 바가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극동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개발에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이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이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푸틴 3기 정부의 주요정책으로 2012년부터 추진한 동북아시아 경제 포럼계획입니다. 2015년 9월부터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코로나19 이전까지 매년 1회씩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포럼이 단 3개인데, 그 중에 하나가 2015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창설한 ‘동방경제포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3차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를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현 정부의 신북방정책 선언은 우리나라가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교량국가로 변모를 하고자하는 숙원사업입니다. 북방 국가의 대표 격인 러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경제적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합니다. 한인 경제촌 형성, 한인공단건설사업, 극동한인경제 메가 클러스터 형성 등은 실질협력의 성과를 위한 조치들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러 혁신 플랫폼 기술 포럼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부품 및 장비, 독창적 기술개발을 위해 양국 실무 팀들이 공동투자 펀드 조성 작업을 진행하고, 양측에서 10억불을 모아서 한․러 펀드 간 공동 투자 계약을 체결해 양국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펀드를 사용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이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속담처럼 바로 우리 코앞에 가까이 다가온 이웃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양국의 협력 중심에 바로 극동의 심장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시를 발판으로 북방정책의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조각가 문신 탄생 100周忌와 後繼 임형준 초대전
[청로 이용웅 칼럼] 조각가 문신 탄생 100周忌와 後繼 임형준 초대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조각가 문신(文信/1923~1995)! 그는 조각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추상 조각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한국 미술·조각의 세계 진출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일본으로 밀항해, 니혼미술학교 양화과에서 공부했습니다. 광복 후 귀국해 마산·부산·서울 등지에서 10여 차례 개인전을 갖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주로 회화에 물두했었으나, 프랑스로 유학을 가 파리 북쪽의 라버넬 성 보수작업을 맡으면서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화와 조각을 병행해 일찍이 현대 미술에 종합 장르 개념을 도입했고, 작품에 있어서 크기의 감각과 생명적 이미지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특히 동양인 최초로 헝가리 등 동유럽 순회전시를 했습니다. 필자가 그를 만난 것은 필자가 프랑스 파리7대학 교환교수로 파리에 체류할 때 였습니다. 그때 그는 본인의 작품이 전시될 갤러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작품을 아주 정성스레 닦고 있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그가 모든 작품을 정성스레 닦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반평생 갤러리 일을 하면서, 자기 작품에 열정을 다하고 몰두하는 작가는 난생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필자는 그때 경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마산의 문신’을 잘 몰랐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彫刻 大家였습니다. 그는 스위스 발르 국제예술시장전, 파리 현대미술관 살롱드메, 팔기 크라반 화랑 개막전 등에 참여했고 서독 함부르크 개인전(1974), 이탈리아 국제 야외조각전을 비롯해, 파리 알베르 화랑 개인전, 유럽 순회 회고전(1990~92)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순수추상 조각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혔으며, 프랑스 예술문화영주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야외조각을 많이 제작했고 올림픽 조각공원에 대형조각물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94년에 사재를 털어 경상남도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개관했습니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대한민국 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지금 최근 마산에서는 2022년 문신 탄생 100주기를 앞두고 본격적인 기념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이 열렸습니다. 창원시와 창원문화재단, 문신미술상 운영위원회는 최근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야외전시장에서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 및 제19회 문신미술상 시상식을 개최했습니다. 오는 2022년 1월 16일 기념식에 앞서 약 1년간 문신의 예술을 조명하는 각종 사업의 포문을 엽니다. 기념사업 내용은 △문신예술 국제심포지엄 △100주년 기념 문신학술상 시상 △국내·외 문신조각 특별기획 전시회 △문신과 함께하는 2022년 창원조각비엔날레 개최 △문신 헌정 음악회 △문신예술 전집 및 문신 동화 만화책 제작 △문신아트창작센터 운영 △문신예술 벽화사업 등입니다.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 미술교육과 임형준 교수는 2020년 5월 11일 창원시가 주관하는 ‘제19회 문신미술상’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임 교수는 ‘소리’라는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로 악기, 신체 또는 신체와 악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등 개성 있는 작품을 창작해 왔습니다. 또 나팔을 소재로 한 조각 작품을 많이 창작해 ‘나팔작가’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임 교수는 “40여 년간 ‘소리’라는 주제로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닌 마음으로 보는 소리’에 대한 작품을 창작해왔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욱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었습니다. 조각가 임형준(林亨俊): [학력] 용산고등학교 졸업/ 경남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학사)/ 프랑스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졸업(학사)/ 프랑스 파리8대학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졸업(석사)/ 부산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박사 졸업(박사)// [경력] 개인전 20회(국내외)/ 문신미술상 수상(문신미술관)/ 중앙미술대상전 대상 수상(중앙일보사)/ 20C 경남미술-V(경남도립미술관/창원)/ 익산국제돌조각심포지움(미륵사지/익산)/ 경남국제조각심포지엄(경상남도 도청)// 마산 합포구 천주교 마산교구 월영본당 사제관 앞에 남북 조각가들이 공동으로 만든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임형준 교수와 평양미술대학 출신 만수대창작사 소속 조각가들이 제작한 작품입니다. 임 교수가 아리랑 태림합영회사를 통해 방북, 평양미대 출신의 교수들, 만수대 창작사의 조각가들과 함께 질감 좋은 용정 화강석으로 공동 제작한 작품입니다. 3달여 기간에 걸쳐 제작된 성모자상은 개성 봉동에서 육로를 통해 판문점 도라산역을 거쳐 운반됐습니다. 그리고 성모자상은 남녘땅 마산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임 교수는 그때 "북녘 땅 개성 봉동에서 판문점을 거쳐 마산까지 성모자상을 모셔오면서 얼마나 감개무량했는지 모른다"며 "성모님과 예수님이 이 땅의 분단선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오셨다"고 했었습니다. 필자와 조각가 임형준과의 만남! 필자가 경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담당:불문학 3과목+교양불어)로 재직하 있을 때 ‘학칙’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 학생은 학과목 [제2외국어]를 반드시 수강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미술교육과 학생은 ‘불어’, 음악교육과 학생은 ‘독일어’를 이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미술교육과 학생은 불어 학점을 못 따면 영원히 졸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술교육과 졸업생(일정 기간)들은 모두 불어 과목 이수 학생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프랑스 畫壇에서 중진으로 활동하는 제자들도 있고, 임형준 학생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임 교수와는 그가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公私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임형준 교수의 전시회가 한창입니다. 제19회 문신미술상(2020년) 수상작가 임형준 초대전(5.27~7.31/문신미술관) 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작가의 신작과 구작이 함께 전시되고 있는데, 그 연대는 1990년대 초에서 부터 올해 제작된 신작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 중입니다. 그가 줄곧 지향하고 있는 주제는 '소리'이다. 작가의 소리⇒[소리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자신 내면의 소리이기도 하며, 우리의 잊혀진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소외된 삶들의 아우성이거나 침묵이기도 하다. 나의 관심사는 ‘소리’ 자체라기보다는 ‘소리’로 상징되는 상황과 대상이 지니고 있는 본질에 맞춰져 있다. 메인 작품으로 제작된 대형작품 소리-bruit21은 문신 선생님의 석고원형사랑을 추모하며 오마쥬하는 뜻으로 석고와 같은 백색으로 제작하여 선생님의 창작 열정을 알리고자하였다.] 그의 부인 김경미 관장(삼진미술관)도 중견 미술작가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I.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I.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홈페이지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는 대학강의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와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의 이해]의 교과서입니다. 이 강좌는 15주 총 45시간으로 강의 됩니다. 그런데 ‘극동 러시아’, ‘몽골’, ‘대만’의 강의 시간은 ‘1시간’ 뿐입니다.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비중이 커서 어쩔수 없는 배정이었지만, 강의를 하면서 ‘극동 러시아·몽골·대만’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차후 구체적으로 개선 방법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을 위해 세 지역의 이야기를 ‘칼럼’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오늘은 ‘극동 러시아’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과거 경남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홍보부장·국제학술교류위원회 총간사를 겸했었는데, 1991년 2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주립대학교(現 극동연방대학교)와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교(現 하바로프스크 국립 인문대학교)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방문 목적은 두 대학교와 맺은 자매결연 및 학술교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때 직항로(直航路)가 없어 일본 니가타공항에서 소련항공을 타고 하바로프스크로 들어갔습니다. 하바로프스크에서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교 로마노프 총장 · 교수들과 두 차례 협의회를 가졌고, 하바로프스크州 부지사 접견 등등. 그리고 박춘식 교수와 방문한 극동주립대학교에서는 여성 부총장 · 교수들과 두 차례 협의회를 가졌는데, 부총장은 안중근 의사 등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연해주 독립운동 거점 신한촌’ 등을 꼭 가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경남대학교는 한ㆍ러 수교 전인 1989년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와 자매관계를 맺었으며, 현재의 극동국립연방대학교와 2014년 9월 새로운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고히 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경남대학교와 극동국립연방대학교는 앞으로 두 대학 간 교류ㆍ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1989년, 경남대학교가 주관한 ‘대한민국 대학생 1기 소련연수단’이 결성되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18개 대학의 24명이 선발되었습니다. 연수단의 총학생회장으로는 경남대학교 경영학과 정은상 학생이 선발되었습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주립대학교(現 극동연방대학교)에서 현대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경남대학교로 교양융합대학 교수 재직하면서 언론출판원장을 맡고 있고 러시아어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국내 최고의 러시아통”이 本칼 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를 위해 “동북아시대의 러시아 극동과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내주었습니다. 필자의 체험은 오래되어 과거인데, 마침 玉稿를 보내줘 학생들에게 조흔 교재가 될 것 같습다. 이 칼럼에서는 序頭를 소개하고 다음 칼럼에서 全文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極東 러시아’는 ‘러시아 극동’과 같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큰 나라는 단연 러시아로서 지구 영토의 1/4이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이 광활한 영토의 제국인 러시아 극동을 알아보기에 앞서 러시아연방의 행정단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 행정구역은 2000년 푸틴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7개의 행정단위로 권역을 나눴습니다. 이는 과거 복잡한 행정구역을 간소화하여 중앙집권적인 행정을 펼치고자하는 러시아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의 반영입니다. 러시아의 행정구역은 7개의 연방관구, 22개 공화국, 46개의 주, 9개의 지방, 3개의 연방시, 4개의 자치구, 1개의 자치주로 이뤄져 있습니다. 러시아의 연방관구는 극동, 시베리아, 우랄, 볼가, 북서부, 남부의 7개로 구분하고 있으며, 각 관구마다 푸틴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전권대표를 파견하여 행정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전체 인구가 약 1억4천만 명이고, 유럽 쪽 관구에 비교적 인구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7개의 관구라는 행정구역은 인구밀도가 낮은 러시아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러시아는 유럽국가지만 영토가 아시아대륙과 맞물려 있어서 흔히 유라시아대륙의 영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좌측은 유럽, 우측은 아시아지역이라고 인식합니다. 시베리아, 극동지역이 그곳입니다. 유럽지역 관구는(중부, 북서부, 남부, 볼가) 러시아 전체국토의 약 25%를 차지하며, 아시아 지역관구는(우랄, 시베리아, 극동) 국토의 75%를 차지합니다. 이에 반해서 인구는 아시아지역관구가 전체의 23%이고, 유럽지역관구가 77%입니다. 유럽지역이 아시아 지역보다 경제력이 월등히 높은 이유는 인구수가 많이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인구수에서는 세계12위, 인구밀도는 233위권입니다. 이제 러시아 극동관구의 주와 주도현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총11개의 주가 있고 인구는 약 8백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영토는 7개 관구 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요지역과 주도를 살펴보면, 아무르주(블라고베첸센스크), 브랴티야공화국(울란우데), 유대인자치공화국(비로비드잔), 자바이칼지방(치타), 캄차트카지방(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트스키), 마가단주(마가단), 프리모리예지방(블라디보스토크), 사하-야쿠티야공화국(야쿠츠크), 사할린주(유즈노사할린스크), 하바롭스크지방(하바롭스크), 추코트카자치구(아나디리)가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입니다. 러시아는 2010년 이후로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극동개발청을 설립했고, 인구유입정책의 일환으로 극동 이주를 희망하는 개인에게 소득세감면 등의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 10월 자유항프로젝트(Free Port)가 발효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자유지역 혹은 경제자유지구와 같은 개념입니다. 연해주, 하바롭스크, 사할린, 캄차트카주, 쿠코트카 자치구에 있는 22개의 지자체가 자유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특별통관지역입니다. 외국인은 무비자로 72시간을 체류할 수 있습니다.] <다음 칼럼에서 계속>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몽골 독수리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몽골 독수리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홈페이지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는 대학강의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와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의 이해]의 교과서입니다. 이 강좌는 15주 총 45시간으로 강의 됩니다. 그런데 ‘몽골’, ‘극동 러시아’, ‘대만’의 강의 시간은 各 ‘1시간’ 뿐입니다.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비중이 커서 어쩔수 없는 배정이었지만, 강의를 하면서 ‘몽골·극동 러시아·대만’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차후 구체적으로 개선 방법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을 위해 세 지역의 이야기를 ‘칼럼’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오늘은 ‘몽골’ 이야기입니다. 동북 아시아 내륙에 있는 국가이며, 수도는 울란바토르입니다. 러시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몽골은 평균 고도가 해발 1,585m에 이르는 고지대 국가이며, 고지대 초원, 준사막,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입니다. 몽골! 1206년 테무진이 몽골 지방의 동부를 흐르는 아무르 강의 지류인 오논 강변에서 부족연합의 군장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면서 통일제국의 성립을 보았습니다. 칭기즈 칸 이후, 원제국을 수립한 민족의 후예로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초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어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1992년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채택한 이후 정치, 경제적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북한과의 蜜月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몽골은 1997년 WTO에 가입했고, 1999년 한국과 1985년의 투자 보험에 관한 서울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밖에도 경제·문화협력 협정(1956), 과학기술 협정(1960), 영사 협정(1969), 국경무역 협정(1985), 과학기술 협정(1986), 투자의 상호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1991), 이중과제방지협정(1993), 외교협조에 관한 합의(1996), 에너지 및 광물자원분야의 협력에 관한 협정(1999), 한-몽 관광협력협정(2003), 사회보장 협정(2006), 수형자이송조약(2007), 출입국 간소화에 관한 교환각서(2009), 한-몽 보건의료협력 약정(2011), 한-몽 사증 간소화 협정(2012), 대몽골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차관(2011~2015)에 대한 기본약정 연장을 위한 교환각서(2015) 등이 체결돼 있습니다. 할트마 바툴가(Khaltmaa Battulga/1963~) 몽골 대통령은 최근 한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진작 만나서 신북방 정책과 양국 우호 협력,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빨리 코로나가 잦아들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연간 20만명 규모까지 늘어난 양국 간 인적 교류 규모를 언급하며 “포괄적 동반자 관계인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면서 경제 파트너”라고 했습니다. 몽골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경제 개발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의 신북방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전했습니다. 몽골이 북한보다는 한국과 동행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 몽골은 2018년 6월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뻔했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미·북 정상회담 장소 후보지로 거론됐기 때문입니다. 회담 장소는 최종적으로 싱가포르로 결정됐지만, 한반도 정세에 관해 관심이 컸던 바툴가 대통령이 수도 울란바토르를 회담 장소로 제안해서 관심을 모았었습니다. 바툴가 대통령은 몽골 유도협회장 시절부터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던 친한파 정치인입니다. 그러면서 2014년에는 산업농업부 장관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양(兩)다리 걸치기?!! 몽골의 정치 체제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고 있습니다. 바툴가 대통령은 원내 2당인 민주당 소속이고, 내각은 원내 1당인 몽골인민당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오는 6월 후임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있는데, 최근 몽골 대통령 선거법 개정으로 현직 대통령의 연임이 금지되면서 그의 재선 도전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바툴가 대통령 측은 “총리가 소속된 원내 1당이자 공산 정권 시절 집권 세력 후신 몽골인민당이 정권을 장악하려 무리하게 주도한 일”이라는 입장입니다. 바툴가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전에 한국이 거쳐갔던 각종 혼란상을 지금 몽골이 겪고 있는 중”이라며 이웃 국가의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몽골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한반도와의 미래도 전망하기 힘듭니다. 몽골, 북한,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게 있어 북한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의 위협을 줄이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한국 및 일본과의 경제적 이슈와 연결되며 나토의 팽창, MD와 같은 미국의 안보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몽골은 중-러 관계에 있어 러시아의 손을 들어 주어 러시아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도록 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러시아와 몽골은 최근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하였습니다. 중국을 경계하는 몽골과 북한에게 러시아는 군사, 정치,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한국과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니까 한국과 몽골에 대한 뉴스도 드뭅니다. 그런데! 경남 고성군에서 지난 겨울에 방사된 독수리 ‘고성이’와 ‘몽골이’가 이달 초에 건강하게 고향인 몽골에 도착했습니다. 날개에 NS라는 표지를 단 독수리들이 겨울 동안 고성에서 머물다 기수를 돌려 북으로 향했습니다. 고성군에 따르면 ‘고성이’와 ‘몽골이’는 지난해 경남에서 탈진해 쓰러진 것을 경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 고성에서 방사한 독수리입니다. 이들 독수리는 고성의 먹이터에서 다른 독수리와 어울려 먹이를 먹고 건강해져서 봄이 되자 고향인 몽골로 떠난 것입니다. 지극히 조그만 뉴스지만, 이것도 몽골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과거 몽골의 전통음악에 심취했었습니다. 몽골 음악 ‘허미’는 두 가지 음성을 동시에 연결하는 창법으로, 독특한 호흡 방식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기술입니다. 하나의 소리는 호흡을 조인 다음 목으로 숨을 밀어 넣어 휘파람 소리 같게 높은음이 나오고, 다른 소리는 낮은음을 냅니다. 엄밀히 말해 노래는 아니지만, 사람의 목을 악기처럼 쓴다는 면에서 음악의 영역에 포함합니다. 허파로부터 숨을 내쉬는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알타이 산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주변에 거주하는 몽골 유목민들이 노래할 때 사용하는 창법입니다. 필자는 몽골 음악인들과 한동안 교류하면서 몽골의 문화예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몽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강의 수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진모영의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청로 이용웅 칼럼] 진모영의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는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진모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대명문화공장과 CGV아트하우스의 공동배급으로 2014년 11월 27일 개봉되었습니다. 480만 명 관객 수를 기록하였고, 영화사상 독립예술영화 전 부문 흥행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개봉된 지 한 달 만인 2014년 12월 20일을 기준으로 개봉 24일 만에 관객 수 200만 명을 넘어 <워낭소리>를 제치고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상 가장 빨리 관객 수 200만 명에 도달한 흥행 기록도 세웠습니다.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관객상 수상, 제16회 올해의 영화상-올해의 독립영화상(2015) 수상을 비롯해, 제21회 로스앤젤레스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 수상, 제37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다큐멘터리부문 관객상 수상, 이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수상 등, 그리고 수많은 해외 영화제로 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또한 2018년 10월에는 ‘에미상 2018/ 다큐멘터리 공식경쟁’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5월 22일 강원도 원주의 어느 음식점에서 95세 할머니의 생일잔치가 열렸습니다. 역대 독립영화 흥행사를 새로 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 강계열 할머니! 강원도 횡성 산골 마을, 잉꼬부부로 소문난 당시 89세의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로맨티시스트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연을 담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많은 관객을 울렸습니다. 진모영 감독은 누구? 2014년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드라마 <미생>의 원작 만화, 영화 <명량> 등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을 연출한 진모영, 해남 출신으로 문성고와 전남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독립영화 PD! 그는 현재 ‘영화사 님아(주)’ 대표이기도 합니다.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라고 풀이되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영화는 모든 영화의 원조(元祖)입니다. 1896년 뤼미에르 형제Les frères Lumière가 만든 단편영화라고들 하지만, 일종의 다큐멘터입니다. 그리고 현대적인 다큐멘터리는 1922년 처음으로 상영한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가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보다 현실을 보다 더 밀접하게 다루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리얼리티를추구하게 하고, 감성적으로 관객과 공존하지만 상업 극장에서의 상영은 ’하늘에서 별 따기‘! 우리는 한글을 “우리 민족이 세운 찬란한 문화의 금자탑(金字塔)이라 하는데...그렇다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금자탑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영화사(映畵史)에서는 크게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님아>의 역사는 영화사 <님아>가 새롭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10월 3일 개봉된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Free My Soul, Free My Song>(감독 현진식)도 새 역사의 한 장(章)입니다. 여기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의 인터뷰 기사(2021.4.30.)를 소개, 인용합니다. [인류 고민의 최전선엔 늘 사랑”이라고 말한 진모영 감독(51)이 또다시 노부부의 사랑을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이하 님아)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년)에서 영감을 받아 긴 시간을 함께해온 미국 스페인 일본 한국 브라질 인도 등 여섯 나라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사랑과 감동의 순간을 담았다. 진모영 감독은 넷플릭스와 손잡게 된 과정에 대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팀이 제안을 해줬다. 그 당시엔 지금의 가입자 숫자와는 다르지만, 전세계 관객들에게 제가 생각한 러브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옳다구나 싶었다. 원작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살리면서 전 세계의 개성 있는 버전을 만들자고 했다”며 “어떻게 하면 원작은 살리면서 개성 있게 만들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2017년 9월부터 이야기를 나눴고, 2018년에는 각국의 감독과 출연자를 섭외하면서 ‘님아’ 시리즈를 만들기 위한 설계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촬영은 2019년 시작했다. 나라마다 1~2개월 정도 촬영을 했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 촬영을 마쳤다. 진모영 감독은 제작 총괄로서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진모영 감독은 먼저 넷플릭스와 ‘님아’ 시리즈를 함께할 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을 찾았다. ‘님아’ 시리즈의 흐름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또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디렉터들을 뽑은 것. 이후 자료 조사와 테스트 촬영을 거쳐 지금의 여섯 커플을 뽑았다. 그는 커플 선정 기준을 묻자 “시리즈 통일성은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출연자들을 노년까지 오랫동안 사랑으로 살아가는 부부로 잡았다. 45~60년 부부로 산 사람들이 등장한다. 스펙터클한 것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큰 서사를 봐야 했다. 이 커플의 일상을 잘 관찰해야 했고, 하루에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이 들었지만 자기 일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사랑하는 커플이어야 했고, 그 사랑을 우리도 느낄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퀄티리틀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장비, 더 많은 사람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더 많은 스태프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각 나라 현장에서 많아야 3~4명의 스태프들이 그들의 일상을 헤치지 않는, 최소한으로 영향을 미치는 한도 내에서 작업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상적인 행동이나 습관을 담으려고 했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렇고, 아기들도 그렇고, 순수하거나 영혼이 맑은 사람들은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또 제작팀이 그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끌어낼 수 있게 진행해줬다. 경험있는 제작팀의 능력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진모영은 다른 나라 감독과 협업에 대해 “다들 기분 좋게 이 작업에 동참했고, 연대감이 생겼다.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수용하고 개선하면서 만들었다. 나라마다 자연이나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우리 이야기의 핵심은 러브스토리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도 부부의 사랑을 베이스로 해달라고 부탁했고 모든 나라의 연출자들과 협업 과정을 거쳤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5월 19일, 불기(佛紀) 2565년 ‘부처님오신날’
[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5월 19일, 불기(佛紀) 2565년 ‘부처님오신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온 지구촌이 거년(去年·작년)부터 코로나 질병으로 죽음의 공포와 고통 속에 빠져있습니다. 이는 ‘인간우월적 사고’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자연과 인류는 상생하는 존재입니다. 이 자연은 우리의 조상들이 건강하고 깨끗하게 보존하기를 기원하며 물려준 것이며, 우리도 미래의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코로나 질병으로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5웡 19일)을 맞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봉축 메시지를 발표.] 천태종 종정 도용 스님은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목표이니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의 추구보다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데에 해탈의 평안한 길이 있습니다. 사바에 오신 부처님을 지극히 찬탄하며 귀한 인연, 성불(成佛)을 향한 정진(精進)으로 이어나가 국태민안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회향합니다.”라고 했고,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은 “마음이 부처이기에 천지만유가 부처님으로 보이고 바람에 날아가는 나뭇잎 하나라도 부처님 법문으로 들리지만 오늘 태어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면 이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우리보다 먼저 부처님이 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의 꽃인 ‘연등(燃燈) 행렬’!, ‘연등회(燃燈會)’!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2020년 12월 1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온라인으로 개최한 제15차 회의에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인 ‘연등회(燃燈會)’를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했습니다. 2019년 5월 4일 연등(燃燈) 행렬이 서울 동국대에서 동대문을 지나 조계사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그런데 2021년에는 온라인을 활용한 ‘언택트 연등회’로 봉행됐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와 연등회 보존위원회는 2021년 5월 15일 ‘불기2565(2021)년 연등회’를 서울 종로 조계사 일원에서 봉행했습니다. 조계사 앞마당 특설무대에서 봉행된 연등법회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연등회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습니다. 2021년 5월 19일, 불기(佛紀) 2565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누구나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성인(聖人)입니다. 이날 오전엔 서울 조계사와 전국 사찰에서 봉축 법요식이 거행됩니다. 사전은 ‘불교(佛敎/Buddhism)’를 BC 6세기말에서 4세기초경 동북인도에서 창시된 종교이며, 기독교,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서 전 아시아인들의 정신적·사상적·문화적·사회적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쳐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창시자는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인데 그는 수행을 통해 '부처'(Buddha 佛陀), 즉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기원전 7세기경, 히말라야의 남쪽 기슭에 있는 카필라 성에 석가족(釋迦族)이 살고 있었습니다. 성주(城主)는 정반왕(淨飯王)이고, 부인은 콜리야 족 선각왕(善覺王)의 딸 마야였습니다. 정반왕은 부인이 40여 세인데도 태자를 낳지 못한 것을 늘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야는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후 태기를 느꼈습니다. 해산할 때가 가까워지자 마야는 고향의 풍습에 따라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으려고 콜리야 족이 살고 있는 데바다하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룸비니(lumbinī) 동산의 무우수(無憂樹) 아래서 태자를 낳았습니다.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왕은 아들의 이름을 싯다르타(ⓢsiddhārtha)라고 지었고, 성(姓)은 고타마(Ⓟgotama)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불교(佛敎/Buddhism)-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敎祖)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므로 불교를 불법(佛法)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佛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내용은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달마(達磨, dharma: 진리)를 깨침으로써 불타(佛陀, Buddha: 깨친 사람)가 된 뒤, 80세에 입적할 때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말한 교설”이라고 했습니다. 불교(佛敎)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종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석가(釋迦)는 “지상의 왕자보다 빛나고, 승천보다 아름답고, 세계의 지배보다 놀라운 것, 그것은 해탈의 최초의 단계를 갖는바 법열”이라고 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독일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는 “불교는 이미「죄에 대한 싸움」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현실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면서 「고뇌에 대한 싸움」을 말한다. 불교는-이것이 불교를 기독교에서 크게 구별 짓는 점인데 도덕개념(道德槪念)의 자기만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내 말을 빌리면 선악(善惡)의 피안에 서 있는 것이다.”라고! 종교라는 말은 원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어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입니다. ‘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의례 등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고대 유럽에서는 기독교권의 성립과 함께 교의(敎義)와 의례의 체계를 갖춘 종교 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고, 중세에는 비세속적인 수도원 생활까지도 이 개념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종교의 자유’와 ‘북한의 종교’를 생각해 봅니다. 명목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종교가 금지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의 종교 시설들이 있으나 실질적인 종교 기능을 하지 못하며 조선로동당으로 부터 승려나 성직자로 위장한 당원들로 인해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는 “안국사”! 북한 월간 <조선>(2007년 5월호)를 보면, 2쪽 모두 ‘절’이 아닌 “유적소개 안국사”(사진)입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 “인간적 행위의 자유가 없는 곳에는, 어떠한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다.(S.클러어크/그의 신조)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스승의 날 & ‘애제자의 스승의 날 감사편지’
[청로 이용웅 칼럼] 2021년 스승의 날 & ‘애제자의 스승의 날 감사편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우리말 대사전(한글학회 지음]“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여 주는 사람” / “스승의 날 : 스승의 길을 다짐하는 뜻으로 정한 날. 해마다 5월 15일. 1963년에 은사의 날로 시작되었으며 1973년에 없앴다가 1982년에 되살렸다.” // 스승! 현대사회에서는 뜻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스승의 날!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고 명맥(命脈)을 이어온 기념일입니다. 백과사전에는 그날을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교권 존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초기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으며, 1982년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켜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청소년적십자 단원이었던 충청남도 지역의 강경여고 학생들이 현직 선생님과 은퇴하신 선생님, 병중에 계신 선생님들을 자발적으로 위문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의미 있게 여긴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 21일을 충청남도 지역의 '은사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실시했습니다. 1964년부터 '스승의 날'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해에 날짜도 5월 26일로 변경되었습니다.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1966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방송 매체에 보급하면서, 노래와 함께 행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 1973년 3월 모든 교육 관련 기념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로 통합되면서 '스승의 날'은 1981년까지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1982년 5월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9년 만에 부활했고,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 노래”(작사:윤석중/작곡:김대현). // 1절/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 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그 수고 무엇으로 덜어 드리랴/ 그 은혜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2절/ 오월에도 보름 날로 날을 받아서 세종날을 스승의 날 삼았습니다/ 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안끼쳐/ 기쁘게 해드리자 우리 선생님/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스승의 은혜”(작사:강소천/작곡:권길상)도 있습니다. // 1절/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절/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면은 잊기 쉬운 스승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3절/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 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아생전에/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하오리다/ [후렴]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스승! 조선전기 학자 최세진이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1527년에 간행한 교재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면 불교의 중을 ‘스승’이라 하고 있고, 근세까지만 해도 중을 높여 부르는 말로 ‘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스님은 곧 ‘사(師)님’이었고, 스승은 ‘사승(師僧)’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일찍이 불교가 왕성했던 고려시대 부터 쓰인 말이며, 중을 존경해서 부를 때 ‘한자승(師僧)’이라는 호칭을 썼던 것인데, 이것이 변해서 스승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필자는 2021년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한 제자(경남대 졸업)로부터 長文의 [스승의 날 감사편지]을 받고 부끄러웠습니다. 과찬(過讚)의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자랑삼아 本 칼럼에 소개합니다. 부끄럽습나다. // [40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이용웅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천직인 교육자 본연의 역할로 교단의 자긍심과 활기를 불어넣어 ‘살맛나는 학교’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봉직해 오셨다. 우리나라에는 교직자들의 수가 20만 명이 넘는다. 그래서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정말 다사다난하게 많이 일어나는데, 성과주의라든가 실험주의적 정책 등이 난무하여 교단의 분열과 교권 침해요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 선생님은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 흔들림이 없이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셨다. 글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워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다. ’경사이우 인사난조(經師易遇 人師難遭)’는 말이 바로 우리 선생님께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이 말은 후한기(後漢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기록되어 있는 말! 여기서 경사(經師)란 전공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을 말한다. 반대로 인사(人師)란 덕행을 구비하여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스승을 뜻한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반 동창들이나 독자들도 눈치를 챘겠지만 결국 전공적인 지식을 잘 가르치는 실력있는 선생님을 만나기는 쉬워도 이용웅 선생님처럼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참다운 스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선생님이란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코 존경 받는 직업만은 아닌 사회로 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나 학부모들은 선생님들로부터 인사(人師)이면서 경사(經師)인 선생님 상(像)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매우 크다 하겠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용웅 선생님께서는 참 교육자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지식, 교양, 덕성도 지닌 이 시대의 참 스승이시며, 현 사회가 요구하는 목소리에 정확히 일치하는 참 교육자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바이다. 선생님께서는 다 큰 제자들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인생 100세 시대에 제자들과 오랫동안 동행하고자 하는 사랑이 가득 담긴 당부의 말씀이셨다. 건강에 대한 강조로 ‘노각인생 만사비(老覺人生 萬事非), 우환여산 일소공(憂患如山 一笑空) -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이다’라는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지나친 권력욕이나 명예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아무리 탐스럽고 붉은 꽃이라도 열흘 넘게 피는 꽃도 없고, 십년 가는 권력도 없다’라는 말씀도 전해 주셨다. 은사님께서 교단의 첫 제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으신 마지막 수업의 훈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拔萃)/ 고맙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말씀 ‘山은 산이로다’- 山·숲과 山林, 그리고 山林廳
[청로 이용웅 칼럼] 말씀 ‘山은 산이로다’- 山·숲과 山林, 그리고 山林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산은 산이로다 물은 물이로다/ 두렷이 깨달음 널리 비치니/ 고요함과 없어짐이 둘 아니로다./ 보이는 만물은 관임이요/ 들리는 소리마다 묘한 이치로다./ 보고 듣는 이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여기 모인 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이로다.// 말이 있고 말이 없는 것이 큰 나무를 의지한 것 같음이여/ 입니 벽에 걸렸으며/ 나무가 자빠지고 또한 말랐으니/ 칼 밑에 쪼개진 몸이로다. 알겠는가 따라오너라.]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지도자 성철(1912~1993) 스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속경덕전등록(續景德傳燈綠) 권22>에 나와 있는바, 고려 말기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참선(參禪)하면서 제자들에게 말한 유명한 화두(話頭)이며, 선지식(善知識)이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오도(悟道)의 명구를 담은 직지 심체 요절(直指心體要節)을 펴내게 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활자(金屬活字)를 만들게 하였던 동기가 된 것입니다. ’山‘의 깊은 뜻..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말입니다. 필자는 여기서 그냥 좋은 ’산‘을 생각해 봅니다. 산(山)! 산지가 평야에 대비되는 개념이라면 엄밀한 뜻의 ’산‘은 산지 지형 중에서 구릉이나 봉우리를 제외한 정상부가 있는 돌출 지형을 지칭하며, 브리태니카백과사전(Encyclopedia Britannica)에서는 ’언덕보다 높은 고도의 것을 산‘이라 했는데...우리는 그 뜻을 개의치 않고 그냥 산을 좋아합니다. 마냥 좋아합니다. 필자는 아예 산자락에서 삽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늘이 완전 하늘색이고, 산·숲은 완전 푸른색입니다. 박두진(朴斗鎭/1916~1978) 시인(詩人)은 “山”에서 “산, 산,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산이여! 누워 있는 산이여, 언제까지 그냥만 앉아 있는 산이여!/ 늙어빠진 산은 페루다.”라고 했고, “山이 좋아”에서 “산은 늘 그리운, 산은 늘 너그러운,/ 산은 늘 따스한,/ 여인의 품, 어머니의 품, 아버지의 품”이라고! 숲! 삼림(森林)! 숲은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숲에 대한 정의는 기준에 따라 다양합니다. 식물 공동체인 숲은 지구 전체 면적의 약 9.5%, 육지 면적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물의 순환, 토양의 생성과 보존에 영향을 주고 많은 생물의 서식지로서 기능합니다. 때문에 숲은 지구의 생물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숲은 임야(林野), 삼림(森林)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임야는 숲과 들을 함께 부르는 말이며 주로 법률이나 임업, 생태학 등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산림은 산에 있는 숲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뜻을 개의치 않고 그냥 산을 좋아합니다. 마냥 좋아합니다. 숲! 숲은 봄·여름·가을·겨울, 四季 내내 신비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시인 박두진은 “숲”에서 “숲은 쓸쓸하여, 숲은 한숨을 짓곤 하였다./ 부우연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고, 눈 위에 바람이 일어/ 눈보래가 휩쓸고/ 카랑카랑 맵게 칩고,/ 달이며, 별도 떨고, 부엉이가 와서 울고 하면,/ 숲은 웅성거리며,/ 오도도 떨며, 참으며,/ 하얀 눈 위에서,/ 한밤내 울었다.”고! 산림(山林)! “산림(山林)”의 으미늠 “(1)수목이 집단적으로 생육하고 있는 산이나 숲. (2)학식과 도덕은 높으나 벼슬은 하지 않고 속세를 피해 숨어사는 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림(山林)2: (1)출가 승려의 수행과 거주가 이루어지는 장소. (2)사원에서 보시물로 받아서 관리하는 사령의 하나.”입니다. [산림(山林)2]도 확실하게 와 닿는 말은 아니지만, 산림청(山林廳)도 친밀한 단어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산림청’이 우리 가까이에 있지 않다고 한다면 산림청 관리들이 섭섭하다고 할까요?! 산림청(山林廳)! 산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의 중앙행정기관 입니다. 산림자원의 증식, 산림의 보호육성, 임산물의 이용개발, 산지의 보전 및 산림경영의 연구와 개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합니다. 1967년 1월 1일 농림부에 소속되어 있던 산림국이 산림청으로 승격하면서 발족했으며, 현재 농림수산식품부 소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산림청이 현재 GIS 기반 산불확산예측시스템을 가동 중이라고 합니다. 첨단 장비가 탑재된 지휘차를 도입해 현장 지휘를 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산불 예방 드론감시단도 운영 중인 산림청은 등산로·탐방로·국가지도 데이터를 GPS와 빅데이터 분석 기술로 융합한 등산로 앱 서비스도 개발했고, 인공위성이나 드론을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 등을 산림데이터로 융합하는 ‘디지털 산림관리 플랫폼’을 이르면 2023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산림청이 최근까지 가꾼 숲은 410만㏊에 달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2018년 기준으로 집계한 한국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221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숲가꾸기 시행 이전인 1987년 숲의 공익적 가치는 20년 만에 12.5배로 성장한 것입니다. 숲의 공익적 가치를 분야별로 보면 ‘온실가스 흡수·저장’이 75조원(34.2%)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산림경관(28조4000억원·12.8%), 토사유출방지(23조5000억원·10.6%), 산림휴양(18조4000억원·8.3%) 등의 順입니다. 국민 1인당 숲으로부터 받은 혜택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428만원에 이릅니다. 우리 국민들도 산림청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산림청의 업적을 칭찬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우리에겐 ‘말씀’도 소중하고, 산과 숲도 귀중하고...산림청에도 애정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의 法語를 되새겨 봅니다. “산과 강은 좋은 이웃”이라는 말도 가슴 속에 담아봅니다. 산림청의 나라·국민 사랑도 기대해 봅니다. [말,말,말] ★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움직이고 인자는 조용하다.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장수한다.”(孔子·論語)/ ★ “강 위에 천산(千山)은 시름 속에 첩첩/ 공중에 뜬 푸른 이 내는 운연(雲煙)과 같아라/ 산이냐 구름이냐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연기 맑아지고 구름 걷힐 적엔 산만 우뚝하다.”(蘇東坡)/ ★ “원산(遠山)은 첩첩, 태산(泰山)은 주춤하여 기압은 층층, 장송(長松)은 낙락, 에이 구부러져 광풍에 흥겨워 우줄우줄 춤을 춘다. 층암 절벽상에 폭포수는 콸콸,”(遊山歌)//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