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김상근,"나도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아나운서에서 작가 까지

언론학 박사,KBS사우회 부회장
기사입력 2015.06.12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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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박희성 기자]인터뷰를 가면서 살짝 마음이 설레였다. 내가 좋아하는 “개그맨 김준현”아버지를 만나러가기 때문이었다. 김상근 박사를 만나는 순간 김준현이 나이를 먹은 모습이었다. 너무나 꼭 둘은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아나운서, PD, 교수, 작가, 누구나 한번쯤 꿈꿔온 직업을 모두 가져본 행복한 김상근 박사를 만나 보았다.

@ 어린 시절 꿈? @ KBS 아나운서가 된 동기?

아나운서는 젊었을 때부터 내 동경의 직업이었다. 마이크를 들고 남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게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시절엔 아나운서 흉내를 많이 냈다. 신문을 읽어도 아나운서가 뉴스를 낭독하는 것처럼 소리 내 읽었다. 친구들이 모이면 ‘내 아나운서 소리 들어보라’며 그들 앞에서도 아나운서처럼 소리내어 신문을 읽었다. 야구중계도 흉내내 보기도 했다. 그러면 주변에서 ‘아나운서 같다’고 추켜 세웠다. 대학을 졸업 후 아나운서에 공채에 응모했다. 그러나 보는 족족 떨어졌다. 그런데 꼭 마지막 면접까지 가서 떨어졌다. 그러니 애가 더 탈 거 아니겠는가? 결국 5번 떨어지고 6번 만에 붙었다. 말 그대로 5전 6기의 집념으로 아나운서가 되었다. 내 인생을 되돌아 볼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나운서가 아무나 되는 직업이 아니지 않은가?

@ 아나운서에서 PD가 된 동기?
지방에서 3년을 근무하면 서울로 발령을 받기로 했는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아무리 서울 하늘을 쳐다 봐도 서울 갈 소식이 없다. 선배 아나운서가 내려 와야 하는데 “무의촌의 의사”처럼 사명감을 가지라는 선문답만 하고,,,,

당시 지방에서는 PD 숫자가 부족해 아나운서가 PD 업무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나운서를 "아나듀서(아나운서+프로듀서 / Anna+ducer)"라고 했다. 현장 취재는 물론 웬만한 DJ 프로그램은 아나운서가 원고 쓰고, 음악 고르고 출연자까지 섭외를 했다. 또 현장 취재와 다큐멘터리 제작도 했다. 당시 나는 라디오 다큐멘터리 <춘천 안개>, <이 시대 최고의 학승, 탄허 스님 다비식장을 가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송해 KBS 사장이 주는 우수프로그램상을 수차례 수상했다. 정작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PD들은 한번도 수상 못한 상을, 나는 만들었다 하면 상을 탔다. 주변에서는 아나운서도 잘 하지만, PD를 해도 잘 할 거라고 했다. 그러던 중, 본사에서 TV PD가 될 생각이 없냐 해서 내가 사랑하던 아나운서로서 대성할 꿈을 접고, 아나운서가 된지 거의 8년만에 PD로 전직했다.

@ 22년의 PD생활을 희 노 애 락 으로 정리 한다면?
PD로의 전직은 새로운 직장 생활의 시작이었다. 새까만 8년 후배 PD의 AD 생활을 하면서부터 나의 PD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편집을 할 줄 몰라, 남들 다 집에 가고 간 밤중에 기계가 쉬는 틈을 타 연습하기도 했고, 남들은 어떻게 TV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편집을 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옛날 테입을 샅샅히 모니터했다. 밤 늦은 시간, 왜 집에 안 가느냐고 주변에서 물으면, “어떻게 나온 집인데 벌써 들어가느냐” 반문하면서 당시 힘들었던 일을 웃음으로 넘기면서 힘든 고비를 넘겼다. 퀴즈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고는 전 세계 퀴즈 프로그램을 몽땅 입수해서 퀴즈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한 연후에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갔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나? TV 프로그램에 대해 눈이 뜨이고, 귀가 뚫리기 시작했다. PD가 된지 3년도 안 되어 <11시에 만납시다>, <문화가 산책>,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또 PD로 전직한 지 7년만에 차장이 되었고, 10년만에 부장이 되었다. 초고속 승진이었다. 부장이 되던 해에 <체험 삶의 현장>을 만들었고, 그 이듬해 <TV는 사랑을 싣고>를 만들어 드디어 “스타 PD"라는 명성을 듣기도 했다. 또 "교양"과 "쇼"가 융합된 프로그램(전문용어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Infortainment = Information+Entertainment)을 최초로 크게 성공켜,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KBS TV 2국(지금의 예능국), 교양국 주간(국장급)과 위성방송국장을 역임하면서 50여개의 새 프로그램을 만들어 ”새 프로그램 제조기“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 나에게 교수란 직업은?
KBS를 정년퇴임 하기 3년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퇴직 후 교수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주경야독하여, 3년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는 여러 대학에 교수 공개채용에 응모하였다. 마치 대학 졸업후 취직 시험 보러 다니는 것 같았다. 매 채용 시험 때마다 책 한 권 분량의 지원 원서를 써가며.. 돌이켜 생각하니 당시 60가까운 나이에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는지 내 스스로 불가사의하고 대견하다. 지금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방송현업출신 우대“라는 말에 속아, 끊임없이 교수 채용에 응모했으나, 항상 마지막 면접에서 떨어졌다. 들러리라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우여곡절 속에 천안의 한 대학교수가 되어 KBS 퇴직후 7년여간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대학교수라는 직업, PD와는 또 다른 매력있는 직업이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학생들 앞에서 가르친다는 방식을 통해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다. 학생들을 놓고 강의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청자 앞에서 폼 잡는 것과 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많은 사람 앞에서 폼 잡고 싶은 욕구를 갖고 태어났나 보다.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 자기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서 폼 잡고, 목사는 신도들 앞에서 설교로 폼 잡고 싶고,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갖고 유권자 앞에서 폼 잡고... 또 내 말을 통해, 내 가르침을 통해 젊은 학생들이 뭔가를 깨우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은 참 흐믓하다. “가르치는 것 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경험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책도 많이 보고, 논문을 통한 글도 많이 써보고, 또 그것이 바탕이 되어 책을 쓸 수 있었다. <유머커뮤니케이션> 책은 교수 시절 써서 강좌를 만들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다시 교수가 되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 교수 정년이 너무 짧다.

@ 2권의 책을 쓰셨는데 앞으로 저술활동 계획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두 권 다 유머에 관한 책을 썼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보면, 정보를 인식하고 지각하고 처리하기 전에 권투의 ‘쨉’에 해당하는 좋은 표정 교환, 농담, 잡담등 정서 소통을 먼저 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유머를 한다. 그래서 유머 책을 먼저 썼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다. 아나운서로 다중 앞에서 말을 하고, 출연자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시키는 일을 30여년간 해왔다. 한 마디로 나는 방송국이라는 말공장에서 말을 갖고 벌어 먹은 사람이다. 말 전문가이다. 나 만큼 말에 대해서 경험하고 말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잘 할 방법이 될 “스피치”에 대한 책을 쓸 것이다. 또 드라마 <미생>에서 나타난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착안하여, 어떻게 하면 직장(조직)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의 스킬에 대한 책 - 조직커뮤니케이션의 기술에 대해 쓸 것이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왜? +@ 마지막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 왜?
저술 활동이 내 마지막 할 일이고 직업이 될 것이다. 우선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내 능력과 노력만 들이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둘째, 책을 쓰는 일반적 목적과 똑 같다. 명성과 부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까지 살아야 하므로 계속 돈을 벌고 할 일이 있어야 한다. 두 권 다 재미있게 잘 쓴 책이라 자평을 하는데, 책은 안 팔렸다. 그래서 아직 돈도 못 벌었다. 앞으로 단기적으로 10권 쓰는 게 목표이다. 아무리 타율이 낮은 타자도 언젠가는 안타를 친다. 또 언젠가는 홈런 한 방이 있다. 10권 쓰다 보면 분명 안타는 나온다고 확신한다. 누가 아나, 홈런 한 방. 그것도 만루 홈런 나올지?!! 무엇보다도 책을 쓰는 즐거움을 알았기에 책 쓰는 일로 내 여생을 보내려 한다.

@ 가족관계 그리고 소개?+@ 아들 김준현(개그맨) 에게 아버지로써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리고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 준현이가 개그맨 할 때는 저러다 그만 두겠지, 또 저걸로 밥먹고 살겠나 했는데, 어느 듯 세월이 흘러 이젠 인기인의 반열에 들어 대중의 스타가 되었다. 장가도 가고 생활도 안정 되었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인생을 관조해 가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더불어 늘 겸손하고 신실한 자세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지속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김상근교수 프로필

1. 학력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사)
* 동국대학교 정보산업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문학석사)
* 한국외국어대학교대학원 언론정보학부 졸업(언론학박사)
2. 경력
*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
* 한국방송공사(KBS) PD
* 한국방송공사(KBS) TV제작부장, 주간, 국장급프로듀서, 위성방송국장.
*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강사 / 동아방송대학 영상제작계열 초빙교수
* 호서대학교 영화방송학과 / 나사렛대학교 방송미디어학과 교수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자문위원 (2014 ~ )
* KBS 사위회 부회장 (2015 ~ )
*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 (2015 ~ )
3. 대표 TV프로그램 제작작품Ⅰ(연출 프로그램)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 1TV, 1985)
* ‘88서울올림픽 특집 - 모두가 금메달(KBS 1TV, 1988)
* 11시에 만납시다(KBS 2TV, 1989)
* 문화가 산책(KBS 1TV, 1990)
* 신 전국일주(KBS 1TV, 1991)
*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KBS 2TV, 1992)
4. 대표 TV프로그램 제작작품Ⅱ(새로 만든 프로그램)
* 체험 삶의 현장(KBS 1TV, 1993)
* TV는 사랑을 싣고(KBS 2TV, 1994)
* TV 교육위원회(KBS 1TV, 1995)
* 그 때 그 사건(KBS 2TV, 1995)
* 이것이 인생이다(KBS 1TV, 1995)
* TV 데이트(KBS 2TV, 1996)
* 나의사랑 나의가족(KBS 1TV, 1998)
* 작전타임 스포츠퀴즈(KBS 2TV, 1999)
* 좋은 나라 운동본부(KBS 1TV, 1999)
* 휴먼다큐 - 노래로 여는 세상(KBS 1TV, 1999)
* 코리아 특급 - 가족환상곡(KBS 2TV, 2000)
* 서바이벌 역사퀴즈 (KBS 위성TV, 2002)
* 인물탐구 - 조영남이 만난 사람(KBS 위성TV, 2002)
* 리얼토크 -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 위성TV, 2002)
* 이시형박사의 『내가 만난 프로이드』(KBS 위성TV, 2002)
* 행복한 밥상(KBS 2TV, 2004) 외 다수.
5. 저서
* 유머커뮤니케이션 (내하출판사, 2010)
* 나도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미래지식, 2015)
 
 

 

 

 

 

 

 

 

 

 

 

[박희성 기자 phspkc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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