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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방선거 후보 검증, 엄격할수록 좋다...35개 정당과 18년 만에 수작업 촌극
[사설] 지방선거 후보 검증, 엄격할수록 좋다...35개 정당과 18년 만에 수작업 촌극
월간 선데이뉴스 신민정 국장 [사설-월간 선데이뉴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기간은 4월 2일 자정부터 선거일 전일인 4월 14일 자정까지 이며, 선거일은 4월 25일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그러기에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검증하여 한 표를 찍어야 한다. 20대 국회는 꼼수와 꼴사나운 싸움으로 서로 간에 고소・고발하는 촌극을 연출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국회에 노동자와 서민,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반영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비례성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선거제 개혁은 민주주의 성숙을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 중 하나였다. 이에 지난해 12월 범여권의 ‘4+1 협의체’(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더불어민주당)를 통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밀어붙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범여권에 의해 패스트트랙에 태워져 처리됐던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 됐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말과 달리, 느리고 답답한 시간이었는데 우여곡절을 거쳐 통과된 개정안은 누더기에 가까웠다. 비례의석을 늘리지 않은 채였고 30석만 연동시키는 지극히 부족한 내용이어서 만족할 수 없었지만 성숙을 위한 작은 발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기에 소수의 목소리 역시 국민 여론의 한 부분인 만큼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수렴되는 것이 당연하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통해 오히려 소통과 통합의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이 취지와는 달리 군소정당이 국회에 입성하는 길은 멀어지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거대 양당은 의석수를 늘리고자 갖가지 꼼수가 동원되다보니 기형적인 위성정당이 탄생하고 말았다. 이 위성정당에 의원 꿔주기라는 해괴한 행태를 서슴지 않았던 양당은 마지막까지 꼼수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원내에 진입하고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정당이 우후죽순 만들어진 정당이 35개, 정당인 지역구 투표용지 외에 지지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가 무려 48.1㎝이다. 기계가 감당할 수 없는 길이여서 전자개표 도입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해야 한다니 한심한 촌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보니 정당의 정체성을 꼼꼼히 검토도 못할 분만 아니라 많은 정당으로 인해 당명까지 헛갈리는 현상으로 원치 않은 당에 투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뿐이다. 지역구는 우리 고장 살림은 우리 손으로 일꾼을 뽑아 하자는 것이다. 정당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진 곤 한다.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있으나 이는 웬만해서는 힘겨운 싸움이기 때문에 당선되기가 어렵다. 때문에 유력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 고지에 다다를 수 있는 첩경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공천과정에서 금품제공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천싸움이 치열했던 것이 지금까지 우리 지방선거 실태였다. 선거가 끝난 후에 선거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또다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보궐선거 등을 치러야 했다. 그때마다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곤 했다. 공천이 중요하다. 과정이 공평하고 절차가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느 당 할 것 없이 후보들이 공천관리위원회의 검증이 잘못되었다고 반발해 탈당을 예고하며 거센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번 공천 결과가 총선에 얼마나 득이 될지는 모르지만, 공천에 대한 ‘후폭풍’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 당내 경선불복과 함께 탈당 후 타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로 나선 인사에 대해 영구제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매번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민주당 공천 진흙탕 싸움은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오만함이 불러온 참사다. 지방자치의 참 일꾼을 뽑자는 지방선거가 퇴출돼야 할 정치적 정상배(政商輩·정치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와 모리배(謀利輩・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만 양산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구태정치인 후보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후보 빼내가기, 공천 불복, 공천 헌금 장사, 관권선거 시비 등은 사라져야할 것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후보의 공약과 정책 그리고 이력과 전력을 꼼꼼히 살펴보고 현미경 검증을 하다 보면 참 일꾼이 누구인지를 알 것이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인만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 달력 ④4월과 4월의 태양절 & 김정은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 달력 ④4월과 4월의 태양절 & 김정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조선출판물수출입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0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 “주체 JUCHE 109 (2020)”/ “조선출판물수출입사 Korea Publications Export & Import Corporation”라는 글이 있습니다. 2020년 새 달력 ‘4월’에는 사진 “천지의 해빙기”가 있습니다. / 달력 4월의 1일부터 31일 사이에는 [15일(태양절)]이 인쇄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청명 4.4/ 곡우 4.19]가 있습니다. 날찌[4]는 적자(赤字)인데 ‘청명’이란 글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4월 달력에는 김일성은 물론이고,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강반석(康盤石/김일성 母/1892~1932)까지 등장했습니다. ‘태양절’ 사진도 있습니다. 다음은 4월 달력에 있는 문장들입니다. 4.15. 태양절.(April. 15 : Day of the Sun.) 만경대 김일성 생가 그림// 주체1(1912) 4.1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시였다.(April 15, Juche 1(1912) :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was born.)// 주체 21(1932) 4.2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였다./ April 25, Juche 21(1932):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founded the Korean People‘s Revolutionary Army.)// 주체 81(1992) 4.1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를 받으시였다./ April 13, Juche 81(1992):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was honoured with the title of the DPRK Generalissimo.// 주체 82(1993) 4.9. 위대한 수령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April 9, Juche 82(1993):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Jung Il was elected Chairman of the Natiional Defence Commission of the DPRK.// 주체 101(2012) 4.11.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되시였다./ April 11, Juche 101(2012):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elected First Secretary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주체 101(2012) 4.13.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April 13, Juche 101(2012):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elected First Chairman of the Natiional Defence Commission of the DPRK.// 1892. 4.21. 우리 나라 녀성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강반석녀사께서 탄생하시였다. / April 21,1892: Kang Pan Sok, an outstanding leader of the women's movement in Korea.// 2020년 4월에도 북녘 땅에는 어김없이 ‘태양절(太陽節)’이 찾아옵니다. 북한의 태양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에서 1912년 4월 15일에 김일성이 출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기념하는 북한의 최대의 명절! 북한은 1974년 4월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통해 북한 최대의 명절로 지정하였고, 1997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3주기에 이 날을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의 5개 기관이 주체연호 사용과 함께 격상시키기로 공동결의했습니다. 북한은 1992년 김일성의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했고, 김일성은 대원수(大元帥)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994년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의 [질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는 “겹쌓이는 정신적인 과로로 하여 1994년 7월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였다. 즉석에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쇼크가 증악되여 1994년 7월 8일 2시에 사망”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2020년 태양절, 금년 들어 계속해서 태양절 선전을 해온 <로동신문>은 3월 19일 “공공 교통수단을 통한 전파를 막자면”이라는 글을 통해 “승무원들은 운행 시 신형코로나비루스(코로나19) 감염증 예방에 대한 선전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들은 태우지 말아야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려객 렬차, 장거리 뻐스에서는 개찰구나 출입문 앞에서 승객들의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면서 “열이 나는 사람(37℃ 이상)은 절대로 태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코로나19 북한 현황]에 대해서는 일체 침묵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로동신문>(2020.2.29.)은 김정은이 2월 28일 인민군 부대의 합동 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는데, 그를 제외한 모든 참모와 지휘관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김정일 생일(2월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한 후 13일 만에 행보였습니다. 김정은은 3월에는 약 보름 동안 함경도, 강원도 등 동해안 일대 군사 훈련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다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가했습니다. 3월 29일에는 올해 네 번째로 미상(未詳)의 발사체를 쏘아 올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정신 좀 차리시요! 북한의 4월! 김정은이 아직 이실직고(以實直告)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가 퍼진 수도(首都)! 평양 2020년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취소 확정! ‘태양절’이라는 할아버지 생일잔치들은 모두 취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부지(扶支)할 수 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없는 뿌리를 일깨운다.”(엘리어트/황무지)- 이제 4월입니다! 김정은은 우선 ‘태양절’을 맞아 코로나19 백서(白書)를 내놓기 바랍니다. 김일성부자도 살아있으면 수락했을 겁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칼럼]완장시대와 준 자발적 줄서기의 슬픔에서 벗어나자
[칼럼]완장시대와 준 자발적 줄서기의 슬픔에서 벗어나자
[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칼럼] 요즘 세태(世態)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갑자기 예전 MBC 베스트극장에서 윤흥길의 소설 "완장"의 주인공인 종술의 역을 맡은 조형기와 노란 완장이 생각난다. 동네 저수지의 관리를 맡은 동네 건달 종술(조형기) 팔에 두른 노란비닐 완장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의 위력은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가 보다. 고작 동네 저수지 관리인의 완장을 차면서부터 가지는 그 작은 완장의 권력을 가지고 오만방자 함이 극을 달할 때 선한 사람들은 당하는 환경에 숙달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환경이 살벌한 세상이 되면 수동적인 대다수 사람들은 본인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버리게 되고 순식간에 수동형 인간이 되고 만다. 이러한 환경의 ‘완장문화’ ‘군림문화’에 기죽은 국민들의 슬픔에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생겨난 줄서기의 슬픔이다. 언제 우리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며 줄서기를 해야 된다는 사실에 생각이나 해 본적이 있는가! 언제나 가계나 마트에 가면 무슨 물건이든 구매할 수 있는 자유민주국가에서 어쩌다가 사회주의적 배급형 줄서기를 시험하는 국가가 되는듯하여 더 슬프다. 내가 원해서 공공의 패행를 주지않기 위해 자발적 줄서기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직접 자신이 약국에 나가 나의 신분을 밝히고 그것도 한정된 개수만 구매할 수 있는 준자뱔적 줄서기를 해야 하다니 정말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도 완장이 하나 늘어났다. 정말 갑자기 변한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은 머리라 혼돈에 가득 차 있다. 인정 많던 민족이 점점 각박해지고, 하나의 민족이라 자부하던 민족이 이젠 좌와 우로 갈라지고 이젠 남을 믿을 수 없어 경계하는 눈초리, 신고와 고소, 고발이 쉽게 입에서 나오는 세상에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문화를 접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세상이, 사람이 무섭다. 길거리에서 만나 사람들은 정말 편안하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걷다 보면 주위에는 온통 완장을 찬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본다. 무슨 시민단체(NGO)는 왜 그리도 많은가! 원래의 시민단체의 정의는 사회 공공의 이익과 보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갖고 그 목적에 따라 활동하는 모임이면 실제로는.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수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모임이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의 활동영역에 따른 분류로 보면 정말 다양하다. 이들 단체에도 장이 있고 완장이 있다. 이들의 완장은 실제고 알고 보면 공공의 목적, 자발적인 모임, 비정부, 비영리가 아니다. 다들 완장문화에 편성한 군림문화로 변해 있다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다. 대다수의 단체들은 활동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금, 혹은 보조금을 원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관변단체화 되길 원한다. 그래야 완장에 급여를 받고 생활해 간다는 사실은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의 단순하게 분야별만 보면 환경 NGO, 인권 NGO, 여성 NGO, 복지 NGO, 소비자권리 NGO, 교육/연구 NGO, 청소년 NGO, 의료/보건 NGO, 주택 NGO, 개발 NGO, 노동 NGO, 국제원조 NGO, 빈곤구제 NGO, 교통 NGO, 평화 NGO, 문화/예술/체육 NGO, 권력감시/부정부패방지 NGO, 모금 NGO, 경제정의 NGO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정말 많다. 또한 거버넌스(협치)는 정부와 시민단체 또는 민간기업 등이 서로 협력함으로서 국가 및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협치의 기구라고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꼭두각시화 되어 이들이 더 큰 완장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 이들은 무슨 목적 때문인가! 정말 사회 정의를 위해, 남을 위한 희생은 진심인가! 이들의 활동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완장을 버리고 원 취지대로 활동했으면 하는 적극적인 요구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정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인권이면 북한의 인권에 대해 최우선적인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장을 벗어 던지고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바꿔가야 한다. 원래의 취지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준자발적, 수동적인 활동으로 완장을 찰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어야 아름답다. 공공을 위한 줄서기 얼마나 아름다운가! 차를 기다리는 자발적인 줄서기, 표를 사기 위한 줄서기,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줄서기는 자발적이다. 공공을 위한 자발적, 본인의 정보도 없이 기다리는 아름다운 모습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식 줄서기이다, 마스크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본인의 신분(정보)까지 밝혀야 하는 사회주의적 준줄서기의 시험은 아름답지 못하다, 정말 이것은 국민을 바보형, 수동적 준자발적 줄서기라서 더 서글프다. 작든 크든 권력을 쥐면 업무를 벗어난 부분까지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만키우는 사회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망한다. 진정한 완장은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성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 자리자체를 자기 개인의 것으로 착각하여 개인이 즐기고 사용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 완장문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군림문화 안 된다. 완장을 찬 세력들이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통치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수단을 장기적으로 만들어가려는 수작일 수밖에 없다. MBCTV에서 미니시리즈 완장에서와 같이 완장시대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때늦은 후회는 하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필요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청로 이용웅 칼럼] 대학의 원격수업 개강과 미래에 대한 단상(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 대학의 원격수업 개강과 미래에 대한 단상(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 국회교육희망포럼 등과 함께 2019년 2월 28일(목)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새로운 교육 100년과 국가교육위원회”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주제가 훌륭합니다. 그러데 필자는 이런 교육부의 지시 때문에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날 29일 경남대학교 교수학습센터는 “사이버강좌 시험을 오프라인으로 실시...2019학년도 1학기부터 교육부의 새로운 기준에 따라 한 차시가 반드시 50분이 되도록 구성하여야 합니다”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 후 필자는 수긍하기 힘든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경남대학교의 교수학습센터 김병수 선생님은 이번 지시가 첫 학기니까 철저히 지시대로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사이버강좌의 특성이 무시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교육부 지시를 따랐습니다. 사이버강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강의실에서 실시했습니다. 물론 교육부가 심층적으로 연구한 결과이겠지만, 일선 교육현장에서 가르쳐온 교수의 생각은 일단 모두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 시험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강 정원도 50% 줄였습니다. 2019년 4월 19일 <조선일보>는 “규제 줄인다더니…교육부, 대학들 요구엔 귀 막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기사 내용(요약)은 “교육부, 혁신 과제 70건 심의/ 등록금 동결·온라인 강의 비율 등 대학이 폐지 요구한 핵심사항 빠져/ 최근 들어 대표적 '구시대 규제'로 꼽혀온 '온라인 강의' 지침도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온라인 강의가 전체 수업의 20%를 넘으면 안 된다'고 대학에 지침”을! ‘신문’은 서울 지역의 한 대학교수가 “교육부가 규제를 혁신할 의지가 있으면, 담당 과를 따질 게 아니라 현장에서 가장 불만 많은 규제부터 논의해야지, 지금은 위에서 하라니까 할 수 없이 자잘한 규제 몇 가지 건드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필자는 대한민국 대학(大學)은 ‘빛·자유·학문’ 만을 추구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교육부는 코로나 19 확산 우려가 지속되면서 초, 중, 고교도 대학처럼 개학 후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가 확산될 경우 등교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온라인 개학'과 '온라인 수업'을 통해 개학 후 학생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벌어질 학교폐쇄 등에 대비하겠다는 복안입니다. 교육부는 2020년 3월 25일 '원격교육 지원계획'을 발표하고 온라인 수업을 위한 수업기준 등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2020년 1학기 전국의 대학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학사운영대책본부는 2월 26일 [개강 2주 원격수업 시행 안내]를 통해 “3월 16일 개강부터 2주간 전체 강좌에 대한 원격수업”을 결정하고, [원격수업 수강 방법]을 공지했습니다. <경남신문>(2020.3.16.字)은 “경상대, 온라인 강의 첫 날 서버 다운/ 수강 신청·정정 접속자 몰려/ 학교 "순차적 강의 접속" 당부/ 창원대·경남대는 정상 진행”되었다고 전했습니다. <경남신문>에 따르면, 경상대가 3월 16일부터 ’부산 울산 경남권역 대학 이러닝지원센터‘를 통해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으나 오전 접속자가 몰리면서 서버 접속이 지연되더니 마침내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접속자가 몰려 수강 페이지에 접근 자체가 안 되면서 수업을 못 들은 학생들은 “실시간 강의를 듣고 있는 친구들이 서버가 터졌다는 얘기를 했다”며 “서버 오류인데 결석 처리가 되면 어떻게 하냐”며 불안해 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교육부가 온라인수업을 결정한 지 2주가 넘었는데 학교가 지금까지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일부 수업의 경우 영상 없이 수업자료만 올린 채 과제 제출을 요구해 “방문 학습만도 못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상대 관계자는 “수강신청·변경을 하는 메인서버와 비대면 강좌를 하는 e캠퍼스 서버가 학생들 접속 폭주와 맞물리면서 서버가 다운되거나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면서 “불편을 겪은 학생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학 당국이 몰매를 맞았지만, 사실은 교육부가 맞아야 했을 ‘매’ 였습니다. 경남대는 이날 아무런 장애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온라인 강의가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교수학습센터 김민영 씨는 “개학이 연기되는 시점부터 인터넷 강의를 위해 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수진들도 수업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한 만큼 잘 진행되고 있다”며 “장기화 될 경우에 대비해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년간 필자와 함께 동행해온 경남대학교 교수학습센터가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창원대학교도 이날부터 홈페이지, e클래스(가상강좌)사이트, 수업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는데 서버 과부하 없이 강의가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창원대 학생들은 한국대학가상교육연합(KCU)을 통해 필자의 사이버 강의 [무대화술로 푸는 취업성공전략]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원대는 “가상강좌(온라인[원격]수업”라고 했습니다. 이제 모든 대학이 ‘사이버 강의’든, 온라인수업‘이든, '원격수업‘이든, 통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때마침 <조선일보>(2020.3.23.字)는 “코로나19가 앞당긴 미래 대학가 온라인 강의 자리 잡을까”라는 기획기사를 냈습니다. 기자는 3월 16일에 ”국내 4년제 대학 193곳 중 175곳은 '온라인'으로 개강! 영상제작업체를 서둘러 섭외해 온라인 강의를 찍은 대학도 있고, 교수가 직접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실시간 온라인 강의에 나선 경우도 있는 등, 대학마다, 교수마다 방식은 천차만별! 그러나 첫 주 성적표는 신통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한 대학교수는 “온라인 강의 하나를 만들기 위해 교수는 스토리 보드를 대학과 논의해서 짜고, 수업과 관련한 각종 참고자료를 학생과 공유하며 준비해야 한다”며 “실시간 강의나 동영상 녹화도 교수의 선호가 아니라 전공과 과목의 특성에 맞는 방식을 택해야 함을 인식하고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별도의 연구도 필요합니다. 교육부가 온라인 강의를 전체 수업의 20% 이하로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규제와 동영상 강의 재생시간이 25분을 넘어야 한다는 규제를 하는 것은 교육부의 무능(無能)의 소치(所致)입니다. 한 대학 당국자는 교육부가 우선 올해 1학기에 한해 한시적으로 온라인 강의 관련 규제를 해제했지만, 앞으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온라인 강의가 중점을 이루는 방식으로 점차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공문이 왔습니다“-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전용 강좌 중간고사 방식 및 일정이 변경/ 오프라인 시험→온라인 시험으로 변경 (중간고사)”- 앞으로 코로나 19가 끝나도 사이버강의 시험은 반드시 온라인 시험이어야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 대학(大學)은 ‘빛·자유·학문’ 을 추구하는 전당이 되길 소망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교육부가 온라인 강의의 시험을 오프라인으로 보라고 협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19]NOM! 물러가라!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선데이 칼럼] 준연동비례제가 만든 꼼수 정당, 유권자는 낯설고 이해하지 못해
[선데이 칼럼] 준연동비례제가 만든 꼼수 정당, 유권자는 낯설고 이해하지 못해
[월간 선데이뉴스=신민정 국장] 지난해 12월 범여권의 ‘4+1 협의체’(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더불어민주당)를 통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밀어붙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범여권에 의해 패스트트랙에 태워져 처리됐던 선거법 개정안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선거 제도였다. 이번 총선에 처음으로 도입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유권자들에게 낯설고 어려워,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투표하는 경우도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 선거제도 하의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너무 복잡하고 기형이다. 전체 국회의원 의석 300석 중 지역구 의석은 253석, 나머지 47석은 비례대표제에 의해 선출된다. 비례대표제에 의해 선출되는 47석 중에서 30석은 준연동형, 나머지 17석은 기존의 병립형 방식으로 선출된다. 준연동형 방식은 정의당의 오랜 연동형 요구, 이에 대한 거대양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미래통합당(통합당)의 반대, 결국엔 중간지점에서 호응한 민주당의 절충안이다. 이렇게 복잡한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유권자 중 이해하고 투표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위 준연동형 계산방식에서 이미 획득한 지역구 의석을 배제하는 것 때문에 아예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제(준연동형과 병립형)에만 참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기발한 꼼수가 바로 통합당이 만든 미래한국당이다. 지역구에서 100석 이상을 획득할 수 있는 거대양당은 정당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지 않는 한 준연동형에서 한 석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유령정당은 정당투표에서 획득한 득표율에 따라 준연동형과 병립형 모두에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든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당은 통합당에 과반수를 뺏길까 두려워 당원들의 의사까지 물으며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민주당은 이미 확정한 비례대표 후보 25명을 파견할 예정이다. 여기에 이름도 생소한 원외정당까지 참여하면 제대로 검증이 안 된 비례대표 후보들까지도 국회에 진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정당투표용지에서 위성정당이 앞 번호를 받을 수 있도록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을 ‘더불어시민당’에 파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용 정당인 미래한국당에 의원을 보낼 때는 황교안 대표를 고발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더 노골적으로 의원 꿔주기를 하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미래통합당은 설마 설마 했는데 '설마'가 배신의 정치로 돌아왔다. 황교안 대표는 미래한국당 창단 축사에서 "범자유민주세력의 전위부대"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 확보용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내놓은 추천명단은 통합당 입장에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통합당이 영입한 인재들 대부분이 당선권에서 멀어진 후순위로 배치되자 재조정을 둘러싸고 옥신각신 끝에 미래한국당 한선교 당대표와 공병호 공천관리위원장 등 당직자들이 일괄 사퇴했다. 새로 당 대표와 공천위원장을 교체했다. 사실상 통합당 비례대표인데도 미래한국당이 멋대로 공천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다만 '다른 당'의 공천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분노를 쏟아내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한다. 현실적으로 '개입'할 근거도 방법도 없다. 이렇게 꼼수·묘수로 만들어진 정당은 선거 후 당선자들은 모정당으로 돌아가고 위성정당은 소멸할 것이다. 정의당이 유령정당에 참가하지 않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나 선거결과는 참담할 가능성이 크다. 근본적으로 군소정당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양당정치의 경향이 큰 대통령제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불안정이 심한 내각책임제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것도 한국적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선거제도 직전으로 되돌아가되 비례의석수의 확대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성’과 청년·여성·노인 등 ‘직능 대표성’을 가진 인물들, 또 ‘소외계층’ 출신의 인물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기 용이하게 만들자는 제도가 거대정당 지휘부가 자기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으로 변하는 것을 이번 총선 후 최대한 빨리 비례대표제의 모순된 점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⑤북한의 교향악단과 [우리식 교향곡]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⑤북한의 교향악단과 [우리식 교향곡]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립교향악단(State Symphony Orchestra of DPRK) - ‘조선국립교향악단’은 북한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으로, 북한에서는 '평양 국립 교향악단' 또는 '국립교향악단' 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1946년 8월 8일에 '중앙교향악단' 이라는 명칭으로 첫 공연을 가졌고, 1947년 1월에 단원을 보강해 ‘2관 편성’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국립예술극장 산하의 연주 단체로 편입되었고,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본격 오페라인 김순남의 “인민유격대”를 비롯한 여러 무대 작품의 공연에 참가했습니다. 1956년에 독자적인 단체로 독립했지만, 1969년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관현악단과 통합되어 영화음악의 녹음을 위주로 활동했습니다. 1971년에는 피바다가극단 산하 연주 단체가 되었고, ‘북조선’에서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으로 손꼽는 “아리랑”, “내 고향의 정든 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그네 뛰는 처녀”, 피아노 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바이올린 협주곡 “사향가”, 교향곡 “피바다” 등의 작품을 초연했습니다. 1980년에 다시 독립해 현재의 명칭으로 고쳤고, 1982년에는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했습니다. 1986년 폴란드 순회공연 중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 참가했고,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교향곡 제 1번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2000년 8월에는 북한 예술단체 최초로 서울을 방문해 각각 두 차례씩의 단독 공연과 KBS 교향악단과의 합동 공연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북한과 ‘윤이상’을 살펴봅니다. 북한은 1992년 평양에 윤이상음악당(재독음악인 윤이상의 이름을 딴 음악연주와 연구시설을 갖춘 음악전용시설)을 설립했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의 북한 내 음악활동을 지원하고,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것입니다. 이곳은 윤이상의 북한 내 음악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음악연주 전용극장으로 윤이상음악회를 비롯하여 윤이상 관련 행사가 진행되는 곳입니다. 그의 음악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로 연주홀과 전속관현악단의 연습실과 연구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윤이상음악회와 음악연구토론회, 사진전시회 등을 개최해 왔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1991년 3월에 착공되어 1992년 10월에 개관하였으며, 평양시 중구역 영광거리 연화2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연건평 17,000㎡의 300석 규모의 2개의 연주홀과 200여 개의 방이 있고, 200여 개의 방중에서 60여개가 윤이상음악연구소 전속 관현악단의 단원 연습실, 연구실, 국제회의실과 강의실, 음악감상실, 녹음실, 문헌자료실, 민족악기 전시장 등이 있습니다. 참고! 대한민국 통영시 도천동에 윤이상기념관(2010년 개관)이 있습니다. 191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성장한 윤이상은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으며, 귀국 후 교사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59년 독일 베를린음악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쇤베르크 12음계 기법과 우리나라 궁중음악을 결합시킨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며 세계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서독으로 추방된 윤이상은 1971년 독일에 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도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으로 활동했고,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추후하기로 합니다. 겉으로 보면 남한의 국립교향악단의 역사와 크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교향곡발전의 갈피마다에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의 손길이 뜨겁게 어려있다. 우리 식 교향곡의 발전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 밑에 수행된 교향악 혁명과 잇닿아 있다.”고 합니다. 북한 월간 <조선예술>에는 “20세기에 이르러 교향악은 온갖 잡다한 형식주의 음악조류들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감정과 동떨어진 퇴폐적인 음악으로 전락되였다. 우리 나라와 세계 교향악발전의 이러한 상황은 음악예술부문 앞에 우리 인민이 사랑하며 즐겨 듣는 우리 식의 진정한 교향악을 창조할 것을 제기”했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우리 나라 교향곡을 하는 경우에 다른 나라의 교향곡을 본따서 누구의 교향곡 1번이요, 2번이요 하면서 우리의 것인지 다른 나라의 것인지 알수 없게...우리 식의 교향악을 창조하기 위한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고! 북한 교향악은 기본적으로 3관 편성의 서양 관현악단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4관 편성으로도 확대가 가능하며 저대나 단소, 장새납 등 북한에서 개량한 민족관악기 연주자들도 정식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북한은 ‘주체적 배합관현악’ 이라고 합니다. 북한 <로동신문>은 2020년 1월 26일 “3관 편성 관현악단 조직 50돌 기념 국립교향악단 음악회가 모란봉극장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는데, ”공연 무대에는 협주곡, 관현악, 현악합주 등이 올랐다“고 하고, 특히 피아노 협주곡 ”김정일 동지께 드리는 노래“는 ”3관 편성 관현악단을 꾸려주시고 조선의 넋과 정서가 흐르는 우리식 교향악 발전의 새로운 장을 펼쳐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에 대한 회억으로 관람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었다"라고 했습니다. <로동신문>은 ‘3관 편성 관현악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1970년 1월 26일 조직’됐다고 하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교향악은 사대와 교조에 오염되어 인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극장 무대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형편에 놓여있었다”면서 김정일이 "교향악을 우리식으로 하여야 한다고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라고 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 교향악단! <로동신문>은 김정은 2019년 7월 27일 “전승절에 즈음하여 국립교향악단의 7.27기념음악회를 관람했다”고 전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교향악단은 평창 동계올림픽 때 강릉·서울에서 공연한 북한예술단 삼지연 관현악단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안에 존재합니다. 김정은의 작품(?)입니다. 그는 물론 ‘주체적 배합관현악’을 잘 알겠죠? 북한의 진짜 ‘교향악단’은 퇴조(退潮)하고, [우리식 교향곡] 조차도!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실천하려면, 북한의 교향악단과 [우리식 교향곡]을 더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④北韓演劇과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④北韓演劇과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짜 맞추어 꾸며 내는 일’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연극(演劇)’이라는 예술용어를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朝鮮語辭典>은 “俳優の 演技”(605쪽), 즉 ‘배우의 연기’라고 풀었습니다. 해방 후 첫 우리말 사전인 <조선어사전>(문세영, 1946년)에는 “연극(演劇): 배우가 극본에 의하여 여러가지 치장을 하고 여러가지로 행동하는 예술”(1109쪽)이라고 풀이 했습니다. 이후 남한에서 발간된 우리말 사전들은 대부분 문세영의 뜻풀이와 유사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말 큰사전>(지은이․한글학회/어문각/1992.)에는 “연극 ①배우가 각본에 의하여 분장하고 음악, 배경, 조명, 그밖의 여러 가지 장치의 힘을 빌어서 어떤 사건과 인물을 구체적으로 연출하는 예술”(2937쪽)이라고 기술했습니다. 북한의 사전들을 살펴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에서 1962년에 펴낸 <조선말 사전>에 “연극(演劇): ①무대 예술의 한 형태. 극작품에 의거하여 배우들이 해당된 인물로 분장하고 무대 우에서 극작품에 묘사된 현실 생활을 재현하는 예술”(4599쪽), <조선문화어사전>(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1973.)에 “연극: ①인간생활을 극적형식으로 반영하며 배우의 말과 행동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는 무대예술의 한 형태”(974쪽), <조선말대사전(1)>(사회과학출판사/1992.)에 “연극: ①배우의 말과 행동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여 극작품에 묘사된 생활을 관객을 상대로 무대 우에 재현하는 무대예술의 한 형태. 희곡, 연출, 연기, 무대미술, 연극음악 등은 연극예술을 이루는 중요한 형상요소.”(1484쪽)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말대사전(1)>에는 “연극예술: 연극작품이나 연극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1484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문예소사전>은 김일성의 ‘교시’, “《우리가 그전에 항일무장투쟁을 할때에는 작가가 따로 없었지만 연극 각본 같은 것을 훌륭히 써서 연극을 만들었습니다.”(327쪽)를 인용하면서,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의 전 기간에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혁명연극 《성황당》,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피바다》, 《3인 1당》 등을 몸소 집필”하고 “창조공연사업을 지도”함으로써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조국광복의 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으며 혁명연극의 빛나는 전통을 마련”(327쪽)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영광스러운 당중앙의 현명한 지도밑에 《성황당》식 혁명연극을 새롭게 창조하여 20세기 혁명연극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놓았다.”(327쪽)고 했습니다. 이런 역사는 대부분 조작된 것인데, 김일성 치하(治下)에서 북한의 문학평론가·작가였던 ‘한효’가 <조선 연극사 개요>에서 사실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끝까지 ‘불후의 고전적명작’의 작가로 행세했습니다. 김정일의 <연극예술에 대하여>가 북한연극의 지침서인데, 위의 <성황당>은 김정일이 북한연극을 전면 수정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작품입니다. 이것이 북한이 말하는 ‘우리 식의 새 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며, ‘《성황당》식연극은 새형의 연극’ 입니다. 이 같은 새로운 정책과 이론을 구체적으로 밝힌 자료가 김정일의 <연극예술에 대하여> 입니다 <연극예술에 대하여>는 김정일이 1988년 4월 20일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입니다. 김정일은 서양연극에 대한 사대주의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연극예술인들이 연극이라고 하면 의례히 서양식으로 되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다른 나라 연극을 숭상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연극예술부문작가, 예술인들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와 같은 낡은 사상 잔재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좋은 연극을 창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은 많은 연극인들을 숙청해 버렸습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의 ‘진정한 연극’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김정일의 <연극예술에 대하여>의 “우리 식의 새 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을 보면, ‘우리 식의 새 연극을 창조하기 위한 연극혁명’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연극혁명은 연극예술부문에서 부르죠아사상, 봉건사상, 수정주의,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동적이며 이색적인 사상을 쓸어버리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 속에서 수행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혁명의 결실은 ‘<성황당>식 혁명연극’이 ‘5대 혁명가극’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경희극’이라는 극(劇)을 만들었는데, 출연자들은 유명 영화배우들로 채워 본래의 연극을 서서히 퇴출시켰습니다. 김정일은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혁명연극 <성황당>, <혈분만국회>, <딸에게서 온 편지>, <3인 1당>, <경축대회>를 ‘성황당 식 연극’이라고 하고, ‘5대 혁명연극’이라고 했습니다. 김일성 부자 우상화의 ‘본보기’들인 혁명연극, <연풍호>, <승리의 기치따라>, <편지>, <한드레벌의 새전설>, 미국과 남한을 비판한 <승냥이>,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 등이 집필되었습니다. 여기서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를 소개합니다.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 : 1960년 자유당 정권이 전례 없는 사전 부정행위를 자행했던 정․부통령선거를 3월 15일로 앞당겨 실시한다고 공고하자, 남한은 규탄 데모의 물결로 넘쳤습니다. 그 진원지가 마산이었습니다. 북한은 이 사건을 대남 비방의 호재로 삼아 문학예술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 희곡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는 1960년 6월에 발행된 <조선문학> 6월호에 실렸으며, 12장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북한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송영이 1960년 5월 14일에 탈고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이 이승만의 하야 성명 발표(1960년 4월 26일) 18일 뒤에 탈고되었다는 것은 북한문학예술의 정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은 <분노의 화산은 터졌다>의 ‘사람들 ․ 제7장(발췌)’ 입니다. [때 ; 1960년 4월 19일 전후/ 곳 ; 남조선/ 사람들- 최승원(고려 대학생)·최승진(그의 아우, 마산 고등 학교 학생)·최재춘(그의 아버지)·리씨(그의 어머니)·김주렬(그의 이종 사촌 동생)·기타] // [김 주옥 (주렬의 사진을 산 사람 같이 어루만지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오빠, 나 여기 왔소, 나 주옥이요, 왜 말이 없소, 오빠 오빠(느낀다.) (적은 사이) 오빠 지금도 눈에 선하구료. 어머니께서 입학금을 마련하여 주실 때 오빤 그것을 받아 들고 춤까지 추었었지―그 때 오빠는 《엄마 나 이번에 마산 가면 꼭 붙을 테야 정말 공부 잘 할테야, 졸업하고 나면 엄마 호강시켜 드릴테야, 정말이야 엄마!》(목이 멘다.) 그리고 오빠, 오빠는 내 손을 붙잡고 《주옥아 미안하다, 나 공부시키기 위하여 넌 공장 가지 정말 고생하겠다. 그러나 조금만 참아라 나 졸업하고 나면 너 공장 안 다녀도 된다》(적은 사이) 오빠 나 그 때 얼마나 울었는지 아우, 오빠 몰래 말이요,..] (<조선문학> 1960년 6월호, 22~38쪽)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③봉산탈놀이와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③봉산탈놀이와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봉산탈놀이 《민속》 황해북도 봉산지방에서 성행한 탈놀이. 재치있는 대사와 춤과 노래가 결합된 탈놀이의 하나로서 다채롭고 개성적이다. 미신적 요소와 시정인적인 기분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 있으나 춤동작은 약동적이며 활달한 것으로서 인민적인데가 있다. =봉산탈춤.”// “봉산탈춤[명]=봉산탈놀이”(<조선말대사전(2)>,280쪽) / 이미 揭載된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②황해북도 봉산탈놀이와 평양 봉산탈춤>을 다음에서 요약합니다. “[봉산탈놀이] 지난날 황해북도 봉산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탈놀이. 무용, 노래, 재담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놀이는 여러가지 형태로 진행되였는데 그 가운데서 12개 장면으로 구성된 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고, 사용되는 가면은 상좌, 목중, 사당, 로장, 사자, 량반, 소무, 신장수, 취발이, 말뚝이, 미얄, 덜머리, 원숭이 등”입니다. 윗 글은 북한이 ‘봉산탈놀이’를 소개하고 정의(定義)를 내린 용어 해석입니다. 황해북도 봉산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탈놀이로 북한 민속예술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는 “12개 장면”의 ‘탈놀이’가 많이 알려져 있다고 했지만, <조선의 민속전통(민속음악과 무용)>에는 “11과장”이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 봉산탈춤의 명맥(命脈)을 잇는 황해북도예술단은 “민속가무극”이라고 하면서 원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로동신문>은 1910년 봉산읍이 사리원으로 옮겨간 후에는 경암루 앞마당에서 진행되었고, 이전의 봉산탈춤대본은 ‘7과장, 11과장, 12과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 민속무용>은 봉산탈춤놀이가 “11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화보 <조선>(주체90(2001)년 3호)에는 “12개 장면으로 구성된 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야외에서 연희되는 봉산탈춤놀이(<조선>, 35쪽, “봉산탈놀이”)가 무대에서 공연되는 “민속무용 <봉산탈춤>”으로 탈바꿈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야외의 ‘봉산탈놀이’, ‘봉산탈춤놀이’ 그리고 무대의 ‘봉산탈춤’입니다. <로동신문>은 북한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류만혁 박사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김일성이 “해방 후 건국사업의 바쁘신 속에서도 친히 봉산탈춤을 예술공연종목의 하나로 지정해주시고...봉산탈춤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봉산탈군들로 <봉산탈춤보존회>를 결성하여 봉산탈춤을 보존하도록 국가적인 조치”도 취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 ‘봉산탈춤보존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김일성의 ‘령도’ 때문에 ”지난날 야외에서만 진행되던 봉산탈춤이 무대에 오르고 봉산탈춤의 원형에 기초하여 탈춤의 다양한 형상이 창조되여 여러 극장들에서 공연“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봉산탈춤은 실내 무대에서만 공연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봉산탈춤’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봉산탈춤의 대표적 연회본은 1936년 8월 백중날 사리원읍 경암산 아래에서 공연된 봉산탈춤을 오청, 임석재, 송석하 등이 연희자 이동벽, 김경석, 나문석, 이윤화, 임덕준, 한상건 등의 구술에 의해 채록한 연회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수정 보완을 통해 각자의 채록본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이동벽 구슬본, 김수정 구슬본( 김일출<조선민속탈놀이>), 권택무 수록본(조선의 민간극)이 채록되어 있고, 남한에서는 월남한 김진옥, 민천식 등의 구술을 바탕으로 1965년 8월에 이두현이 대본을 채록했습니다. 황해도에서 성행했던 봉산탈춤은 뜻밖에 남한 땅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의 ‘봉산탈춤’ 입니다. 남한에 ‘봉산탈춤보존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 홈페이지 메뉴-봉산탈춤 소개]입니다. "봉산탈춤은 오래전부터 황해도 여러 고장에서 추어오던탈춤의 하나로서 '해서탈춤'의 대표격이 되는 탈춤이다. 봉산탈춤은 원래봉산구읍 경수대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옮기고 경의선도 개통하게 되어 이 놀이도 그후 사리원 경암산 아래에서 놀아왔다. 해방 후 월남한 몇 분의 연희자들에 의해 1958년 이래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고 했습니다. 봉산탈춤은 1967년 6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김진옥(1894~1969,첫목중·노장역), 이근성(1895~1978, 목중·취발이·사자역), 김용익(1902~79, 목중·마부·거사역), 양소운(1924~2008, 사당,미얄할멈역), 최경명(1912~85, 말뚝이·취발이역), 김선봉(1922~97, 상좌·소무역), 윤옥(1925~2004, 상좌·덜머리집·무당역), 오명옥(1906~87, 피리·해금·악사)등 8명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 현재 모두 타계하였고, 김애선(1937년생, 소무·상좌·목중역)은 1989년에 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습니다. 김기수(1936년생, 노장·목중역)는 1987년에 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는데, 2020년 2월 6일(목) 별세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 ‘봉산탈춤 전승 교육’, ‘봉산탈춤 강습회’ 등이 중요 사업입니다. 그리고 정기공연, 미국 전 지역 순회공연, 유럽, 벨기에 외 6개국 순회공연, 미주 카나다 지역 순회공연, 인도 뭄바이 등 해외공연, 단오제 등 국내 초청공연, 기획공연 “고3 수험생과 함께하는 봉산탈춤”, 등을 계속해 왔고, 미국 뉴욕 국제훼스티발 · 중국 남풍현 가면축제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에 참가했습니다. 남한의 봉산탈춤보존회는 북한의 탈춤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민속예술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제 봉산탈춤보존회]의 [보존회 연혁]에는 "2020.01.18. (가칭)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보존회 창립 총회"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남한에서는 ‘봉산탈춤보존회’가 ‘봉산탈춤’을 주도합니다. 북한에는 분명 ‘봉산탈춤보존회’가 존재합니다. ‘봉산탈춤’의 고향은 분명 황해북도이고, 남한의 ‘봉산탈춤’은 한민족의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왕래하며 해법을 찾기 바랍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大邱의 봄봄봄! 이라다 보면 봄이 안 오겠습니꺼?
[청로 이용웅 칼럼]大邱의 봄봄봄! 이라다 보면 봄이 안 오겠습니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우얍니꺼, 봄은 오겠지예" 할머니는 팬지꽃을 심었다] / 2020년 3월 7일 字<조선일보>의 1면 제목입니다. [사투 속에 피어나는 희망...문화부장 대구 르포]입니다. 문화부장은 “칠십은 족히 돼 보이는 인부 예닐곱이 코를 땅에 박고 호미로 작은 꽃모종을 심었다. 흰색, 분홍색, 파란색...꽃말이 '나를 기억해주세요'라는 팬지꽃 수천 송이. "이렇게 나와서 일해도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마스크 위로 눈만 내놓은 할머니가 흙을 고르며 말했다. "집에만 있으려니 숨통이 멕혀서. 자슥들한텐 운동 간다 거짓말하고 나왔지. 꽃을 이래 심으니 싱싱한 흙냄새도 맡고. 우얍니꺼. 버티야지. 이라다 보면 봄이 안 오겠습니꺼?" 그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현장 “대구에도 봄은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보통사람들을 만나고 비극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가 만난 택시기사는 "우린 지금 3차 세계대전 중이라예.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한다 아입니꺼"라며 씁쓸히 웃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나와야지예. 전시(戰時)엔 목숨 걸고 싸운다 안합니꺼. 정부요? 포기한 지 오랩니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임금님은 백성이 등 따숩고 배불러서 임금이 누군지도 잊고 살게 하는 사람이라카데예."라고 했습니다. 대구(大邱)! 바이러스와 사투(死鬪)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그곳에서 정부와 정치인들은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었고...하지만 여기저기서 미담(美談)도 꽃 피고 있었습니다, 문화부장은 "페스트균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는 프랑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족의 숨죽인 흐느낌은 우리 모두의 고통이자 흐느낌이었다. 화장터 너머 붉게 물든 저녁 하늘로 새들이 날아올랐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작가의 말을 인용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때 필자는 우연히 북한의 <조선문학개관1>의 “리상화와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조선문학개관1>를 읽고 있었습니다. 대구(大邱)! ‘리상화’는 바로 대구 출신의 ‘이상화’입니다. 필자는 잠시 바이러스 이야기를 멈추고 대구의 시인을 북한에서 만나봅니다. 시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 일제강점기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을 발표한 시인! <조선문학개관1>에는 ‘리상화’는 3.1운동 이후, 모색과 방황의 세계에서 벗어나 건전한 창작의 길로 걸었는데, 《백조》파에서 뛰쳐나왔으며 《파스큐라》를 거쳐 《카프》에 망라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시문학은 1925년경부터 새로운 질적 내용을 가지고 현저한 발전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런 ‘리상화’의 시문학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의 하나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입니다. 이 시는 아름다운 언어와 풍부한 정서를 가지고 빼앗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의 서두에서 시인은 이러한 수사학적 질문을 제기하고 결구에서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네.”라고 노래함으로써 조국을 빼앗긴 백성에게는 자연의 봄, 생활의 봄이 찾아올 수 없다는 절통한 심정, 조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리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마음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시는 가리마 같은 논길,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가웁다 웃는 종조리, 고맙게 자란 보리밭, 살진 젖가슴같은 부드러운 흙, 마른 논을 안고 적시며 흐르는 물...조국의 대지 위에 존재하는 그 모든 정답고 소중한 것을 매혹적인 화폭으로 펼쳐 보입니다. <조선문학개관1>은 “서정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풍부한 예술적 형상수법과 세련된 시어, 아름다운 운률을 다양하고 적중하게 구사하여 땅을 빼앗겨 봄마저 빼앗긴 조선 농민들의 비통한 심정과 애국적 지향을 시적으로 일반화한 우수한 작품의 하나이다. 리상화의 시문학은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과 항거정신으로 일관된 주제사상적 내용과 세련되고 완미한 형식이 조화롭게 결합된 높은 사상예술성으로 하여 조선시문학의 발전 풍부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칭찬하는 일제강점기 작가는 드뭅니다. 이당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을 쓴 작가는 김성주(金成柱), 훗날 주석이 된 김일성(金日成) 뿐이기 때문입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 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大邱의 봄봄봄! 이제 대구에 봄이 안 오겠습니꺼?- 졸속(拙速) 행정을 자랑(?)하는 정부와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아직 우왕좌왕(右往左往)하고 있고, 총선을 앞두고 일부 정치인들은 탐욕(貪慾)에 눈이 멀어가고 있지만...대다수 국민들은 대구를 열렬히 돕고 있고, 사랑과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도 학생들과 함께 응원하고 있습니다. 대구 계명대학교 학생들은 아주 오랫동안 필자의 사이버강좌와 함께 해왔습니다. 계명대와 경남대 등 8개 대학은 ‘한국지역대학연합(RUCK)’의 한 가족입니다. 분명 봄은 오고 있습니다! 大邱의 봄봄봄! 곧 대구에 봄이 안 오겠습니꺼?- 틀림없이 봄은 오고 있습니다. 봄! 봄! 봄! 봄은 확실하게 오고 있습니다. 곧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종식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빠른 시일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전 국민의 올 봄 나들이는 대구로! 이 참에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두류공원에 있는 동상, 여러 시비(詩碑)들도 보고, 발전한 대구의 자랑스런 면면(面面)도 보고 또 보고! 이제 곧 대구에 봄이 올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칼럼] 코로나19 ‘누적된 한일갈등’ 또 터져
[칼럼] 코로나19 ‘누적된 한일갈등’ 또 터져
[월간 선데이뉴스=신민정 칼럼] 일본 정부가 5일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한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는 2주간 격리할 방침이라고 발표하자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설명을 요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발표에 여러가지 불분명한 점이 있어 설명을 해달라고 부른 것”이라고 말했다. 2주간의 격리는 비자 효력정지, 무비자 입국중단, 한국발 항공기 착륙지 제한, 한・일간 선박 여객 운송 정지로 사실상 한국 전역에서의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가 무비자 입국을 중단할 경우 일본을 방문하려는 한국인은 관광 목적이라 하더라도 별도로 비자를 취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달 27일부터 14일 이내 대구와 청도를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만 금지해 왔다. 아베 총리는 아울러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항공편의 경우 수도권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과 서 일본 관문인 오사카 소재 간사이공항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4월로 예정했던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일 연기가 발표된 직후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해 이뤄졌다. 이번 조치로 일본인이 90일 이내의 단기 체류 시 무비자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제도도 중단된다. 또한 일본에서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누적된 한일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한국의 주요 교역국이면서 인적교류가 활발한 일본이 입국 규제를 강화하고 나서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국가다. 지난해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 갈등 여파에도 558만명이 일본을 찾았다. 2018년보다는 25.9% 감소한 수치이다. 입국 제한이 장기화될 경우 수출입 교역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며, 일본 수출규제 대책을 총괄해온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오후 KBS에 출연해 “사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과감하게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1만 3000명의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데, 일본이 우리만큼 투명할까, 이 부분은 의심스럽다”며 “일본이 그런 과격한 조치를 한 데 대해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본이 발표한 입국 규제 강화책에 대한 상응조치로 오는 9일부터 일본에 대한 사증면제 조치와 이미 발급된 사증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했다. 이는 우리 정부의 이번 조치는 국익을 감안할 때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방역 실패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위기에 처한 일본 정부가 한국인에 대해 먼저 방역을 이유로 장벽을 만든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우리 국민들도 일본의 과잉 조치에 상당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즉각적 대응은 상호주의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설프다. 무엇보다 중국 지방정부가 빗장을 걸고 우리 국민을 격리했을 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키던 정부가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대응은 당연한 것이지만 모양새가 안 좋은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국제고립이 한·일 간 ‘특수한 관계’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인 입국금지’를 발표 직전에야 통보해 온 호주, 비행 중인 한국 국적기까지 돌려보낸 베트남, 초기부터 냉랭했던 이스라엘의 조치를 외교부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물론 더 큰 문제는 중국에서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수모다.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17개 성(省)과 시(市)에서 한국발 입국자를 격리하고 있다. 외교부는 그동안 한국 방문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격리 조치하는 국가들이 가파르게 늘어나자 주한 외교단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입국 제한 최소화에 주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처럼 특정 지역 입국 금지에 이어 한국 전역에서 오는 방문객 격리 등 이중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는 나라들이 나타나자 당혹해하는 분위기이다. 이날 오후 8시 기준으로 한국 방문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국가는 100곳에 육박했다. 이러하듯 여러 나라가 한국에 입국 제한 조치를 하는 동안 방관하다시피 했고, 중국의 지방정부들이 잇따라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고 한국인 거주자들을 격리하는 모욕과 불이익을 주는데도 애써 외면했던 정부가 유독 일본에만 맞대응하는 결과가 됐다. 일본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냉정함을 되찾아야 하며 방역과 국익만을 바라보면서 실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정부가 파국을 피하려면 방역에 총력을 기울여 코로나19의 기세를 꺾는 게 급선무다. 이번 충돌로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해진 뒤까지 한일관계가 악화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또 다른 악재로 한・일 무역 전쟁이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