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윤범철 지도교수와 김유신박사(오른쪽)>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재활과학전공 김유신 박사는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가 지원하는 ‘2014년도 한미 보건의료 인력교류지원사업(Korean Visiting Scientist Training Award)'을 통해 미국국립보건원(NIH) visiting fellow(방문 연구원)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국립보건원 내 연수, 훈련의 기회 및 개인 연구 환경을 지원은 물론 연구비도 지급받게 된다. 이 사업은 2013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시행된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보건의료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에 박사 후 연구원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연수를 지원하는 보건의료분야 전문가 인력양성사업이다. 올해에는 국내에서 한 차례 이상 학사 또는 석사, 박사학위를 수여 받고, 박사학위 취득이 5년 경과하지 않은 7명의 지원자를 최종 선발하였다.
김유신 박사(30세)는 연구주제의 창의성과 흥미도, 사회적 파급력을 인정받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사업의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고려대 물리치료학과 윤범철 교수의 지도아래 10편의 SCI급 국제논문을 발표하였고, 미국 매릴랜드대학 등 다양한 협력연구에 참여하였다. 앞으로 2년간 김박사는 미국국립보건원 임상센터(NIH Clinical Center) 재활의학과 내 Functional & Applied Biomechanics 연구진과 함께 뇌손상 환자의 공동운동 매커니즘을 규명하고 바이오피드백을 통한 재활훈련 프로토콜을 연구할 예정이다.
교과서에 없던 전문 지식의 추가
스포츠 선수 재활전문병원의 도수치료실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면서 빠른 재활과 이차 손상 예방을 위해 일차적 손상 부위만을 고려하지 않고 보다 폭넓게 인체를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한 관절의 손상이 인체의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주며,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확인했다. ‘만일 이러한 패턴을 예측하고 미리 대응할 수 있다면 보다 성공적인 재활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전문 자료들을 어떻게 접근할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그저 경험적 근거에 의존해야 했다. 이와 같은 지식적 갈증과 함께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일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였고 다음과 같은 연구들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연구는 코어 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체 좌우 비대칭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나타나며 특히 한쪽 방향으로 활동을 자주 할수록 그 정도는 증가하게 된다. 임상에서 한 쪽 허리가 아픈 환자의 경우 체간(몸통) 좌우 비대칭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치료사는 약한 쪽의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좌우 불균형과 체간 안정성을 동시에 노려야 하지만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김유신박사는 직접 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검증하고자 1년간 근력 측정, 근전도, 동작분석에 대한 기술을 학습하였다. 실험을 위해 체간 비대칭이 흔히 발생하는 중학교 여자 농구선수들을 대상자로 모집하였고, 보다 자연스러운 운동조절 패턴을 이끌어내기 위해 체간 동요 유발 장치를 고안하였다. 8주 간 기존 단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두 가지 비대칭적 편측 체간 운동을 집중적으로 실시한 뒤 운동 전후 근력, 근활성도, 체간 안정성에 관한 측정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훈련 후 갑작스러운 신체 흔들림 유발 시 약한 쪽 근활성도가 증가하면서 체간 안정성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교과서에 없던 지식을 창출한 저의 첫 번째 성과였다.
기존에 없던 실험 방식 : 심부 복부 수축 패턴 초음파 촬영
좌우 비대칭 훈련에 이어 같은 연구실 동료 연구원은 바깥쪽 근육만을 관찰 할 수 있는 기존 표면 근전도 기기의 한계를 넘기 위해 초음파 영상의 활용을 제안하였다. 사실 김박사는 체간 안정화 과정을 초음파 영상으로 촬영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 이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예비 실험 결과 체간 안정화 과정에서 심부 근육의 수축 상황을 촬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동작 분석기와 함께 새로운 실험이 진행하였다. 그 프로젝트에서 제가 맡은 부분은 신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체간을 안정시키는 동안 복부 근육의 변화 패턴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좌우 비대칭 패턴에 관심이 많았던 김박사는 갑작스럽게 체간이 흔들리면 심부 복부근육이 바깥쪽 근육에 비해 좌우가 대칭적으로 수축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패턴의 발견은 우리 몸의 체간 안정화 과정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복부 근육의 깊이에 따라 그 역할이 다르다는 기존 이론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였다. 물론 처음 논문 원고를 제출했을 때 리뷰어로부터 데이터의 신뢰도에 대한 검증을 요구 받았지만, 자세한 측정 자료 제시를 통해 게재를 허가 받을 수 있었다. 기존에 없던 실험 방법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물리치료사협회 연구상을 수여받고 있는 김유신박사(30세)>
파급력 있던 하이힐 연구
하이힐에 관한 연구는 학부생의 논문 지도과정에서 발생한 주제였다. 지금껏 하이힐은 마치 담배와 같은 백해무익한 취급을 받아왔다. 건강엔 좋지 않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이 하이힐을 김박사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발목 부상은 불안정성에 의한 인대 손상이다. 임상에서는 발목의 안정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불안정한 지지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훈련을 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하이힐을 보면 일반 신발보다 지지면이 좁기 때문에 착용 시 높은 수준의 발목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예상하였다. 그리고 하이힐이 오히려 발목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두 가지 실험을 계획해보았다.
첫 번째는 하이힐을 신으면 발목 안정성을 많이 요구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고, 두 번째는 장기간 하이힐 착용자와 비 착용자의 발목 안정성을 비교해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실험 결과 예상대로 하이힐은 발목 주변 근육의 높은 근 활성도를 요구하였는데, 흥미롭게도 오르막길에서는 오히려 하이힐이 플랫 슈즈에 비해 발목 근육을 덜 피곤하게 만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실험 결과 역시 예상대로 하이힐을 오랫동안 신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발목 바깥쪽 근육의 힘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 생각해볼 점은 발목 바깥쪽 근육이 발목 안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이힐이 발목 안정성을 훈련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외국 잡지에 소개되었고 이후 한 언론사 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은 이후 국내 방송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모두들 하이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다라는 것에 흥미를 가진 것이라 생각했다. 하이힐 관련 실험을 하면서 김박사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처음 실험을 계획했을 때 첨단 연구 장비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연구 주제도 상대적으로 가벼웠기 때문에 동료 연구자들이 무시하진 않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아무리 단순한 실험이라도 기존에 편향된 생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뒤집는다면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각운동 시스템 연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상에서도 감각보다는 운동 능력 회복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감각이 연구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이유는 주관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상 경험이 많은 치료사들은 감각이 운동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많은 연구들 역시 감각 능력이 감소하면 운동 능력 역시 감소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피부 감각과 운동 협응력에 관한 연구가 메릴랜드 대학과 함께 공동으로 진행되었다. 김유신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피부 감각이 감소하면 전반적인 운동 신경 활성이 감소하는지, 아니면 특정 운동 신경만 감소하는지 알아보고 감각과 운동 신경간 연결 회로 구조를 유추해보고 싶었다.
감각 능력을 실험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마취 주사를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손가락은 감각-운동 실험을 위한 최적의 신체 부위로 선정하였다. 손가락에는 근육이 없기 때문에 마취 주사액을 주입해도 근육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감각 능력 상실로 인하여 힘이 감소할 때 주 운동 신경의 활성도가 감소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협력 운동 근육들의 활성도가 감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감각-운동 회로가 단순하지 않으며 복잡한 병렬 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 많은 고민과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 평소 즐겨보던 저널에 논문이 게재되어 깊은 고뇌에 대한 큰 보람을 느꼈고, 운동 조절과 뇌 신경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기 고조되기 시작했다.
부정적 결과의 가치를 알게 된 고강도 초음파 치료 연구
고강도 초음파는 80년대 초반에 소개된 기술로, 초음파를 통해 근막통증을 유발시키고 이를 치료하는 기술이다. 2003년 처음 임상 연구가 실시되었고 저 역시 임상에서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높은 치료 효과와 환자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가 많지 않아 물리치료사로서 치료적 근거를 마련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치료 목표는 마치 경혈과 같이 근육의 특정 부위에 통증을 유발하는 통증유발점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이전 연구는 활동성 통증유발점에 이 기술을 적용하여 효과를 규명하였는데, 제 임상적 경험 상 적용 강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정상 검증된 방식의 적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행 연구 방식 그대로 잠재적 통증유발점에 한 달간 치료를 적용해 보았다. 김박사는 기존 초음파 치료 방식보다 더 빠른 통증 감소 효과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음에도 기존 방식보다 치료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고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지만, 왜 이러한 연구를 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인정받는다면 부정적인 결과 역시 의미가 있다는 연구방법론의 내용을 믿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관련 저널에서는 이 부정적인 결과 게재를 허가해 주었다. 이러한 저의 경험은 긍정적인 연구 결과만을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연구의 당위성과 필요성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좋은 사례로 남게 되었다.
김유신박사는 치료 효과가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뛰어나지 않았던 문제점이 낮은 초음파 강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반복적인 통증 노출이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낮춘다는 선행 연구 결과를 사실로 가정했을 때 기존 방식은 반복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이후 김박사는 고강도 초음파의 적정 강도를 위한 후속 예비 실험을 진행하였고 기존 초음파보다 높은 치료효과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두 번의 초음파 치료 관련 실험은 김박사에게 문제 개선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 좋은 경험이 되었다.
숨겨진 운동 능력 : 운동 협응력(motor coordination)
아직까지 협응력 또는 협조력이란 단어는 일반 대중에게 매우 생소한 단어이다. 협응력은 의식적인 한 동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다른 신체 부위에서 무의식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컵에 물을 마실 때 우리는 손가락으로 컵을 잡는 것에 집중하지만, 팔꿈치와 어깨 움직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상에는 협응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아직까지 협응력에 관한 정량적인 측정이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힘 측정 센서를 사용하여 간편하게 환자의 손가락 협응력을 측정하고자 노력하였다.
감각-운동 손가락 협응력 실험 이후 일시적 신체 변화가 아닌 뇌 손상으로 인한 실제 환자의 변화된 운동 조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실험을 위해 직접 병원에서 뇌졸중 환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손상된 운동 조절 능력들을 확인하였다. 실험 결과 뇌졸중 환자는 기존 연구대로 손가락 힘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손가락 힘 조절이 어렵고 본인이 사용한 손가락만을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존 임상적 관점에 의하면 환자의 상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정량화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김유신박사에게는 ‘그때그때 다르다’란 말이 학문의 발전성과 체계성 면에서 부족하다란 것으로 느껴졌다. 본 연구를 통해서 뇌 손상 환자의 증상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분명 공통적인 특징이 있고 그 밑에 각 능력들을 세부 정의하여 카테고리로 묶는다면 환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유신박사는 전 세계의 학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연구하고 싶어 하는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으로 임용되었고 자신의 꿈과 이상을 연구에 담에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소유하게 되었다. 여러 분야의 연구 중 특히,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란 질문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세상의 주목을 끌 수 있는 흥미롭고 파급력 있는 연구들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