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김명철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강남 서초사옥으로 직행, 미래전략실 임원진과 회의를 진행했다. 총수 구속이라는 그룹 최악의 위기를 피한 상황에서 향후 대책 논의를 나눈 것으로 파악된다.
19일 서울중앙지법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전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중이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6시15분쯤 구치소에서 나와 미리 준비한 차량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구치소에 인치된지 약 15시간 만이다.
이 부회장은 오전 6시40분쯤 그룹 미래전략실이 있는 서울 서초사옥에 도착해 곧바로 주요 임원들과 회의를 열고 향후 대책 등을 논의했다. 미래전략실 소속 팀장(사장·부사장)들은 전일 전원 사무실에 대기하면서 수시로 특검과 법원 상황을 보고받는 등 비상시를 대비했다.
전일 법리 다툼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는 것은 물론 향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어서 장기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삼성 그룹이 총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되면서 향후 경영 리더십을 어떻게 회복해 나갈지도 함께 구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이날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짧은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법원이 1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은 일제히 "매우 유감스럽다"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재벌공화국임이 다시한번 증명됐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번 일로 특검 수사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며 "필요하다면 더 엄중한 보강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고 밝혔다고 대변인격인 김경수 의원이 전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실망스럽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이 내려진 것은 아닌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특검의 의지와 결기가 꺾여서는 안된다"며 "특검의 뒤에는 국민의 성원이 있다. 용기를 잃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법원이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편에서 봐주기 판결을 해선 안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이 정경유착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적극적으로 권력과 부당거래를 하게 된 데는 공정하지 못한 사법부도 책임이 있다"며 "정경유착에 대한 특검의 수사는 엄정하게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이의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올려 '법률적 다툼 여지가 있다'는 법원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런) 판결한 사법부였기에 국민들은 멘붕에 빠졌다"며 "'국가 경제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특검의 영장청구 사유는 여전히 국민들의 명령"이라며 "영장 재청구를 통해 부패척결, 재벌개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이 삼성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된 것과 관련, "부패에 관대한 나라의 경제가 잘 된 예가 없다"며"대한민국이 재벌공화국임이 다시한번 증명됐고 법이 정의를 외면하고 또다시 재벌권력의 힘 앞에 굴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실에대해 19일 새벽(한국 시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며 로이터 통신, AFP통신, 블룸버그 통신등 주요 외신들은 이를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판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한 직후 서울발 긴급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내보냈다. 이 통신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로 이어진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삼성그룹 총수(head)를 상대로 신청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거부됐다"면서 "이번 판결은 한국의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과, 2014년 아버지(이건희 회장)가 심장마비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공백을 메우려는 이 부회장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AFP통신도 서울발 기사를 통해 판결 소식을 지체 없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 횡령,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중앙지법이 거부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삼성그룹 후계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거부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했다. 이 통신은 법원의 이번 판결에 따라 이 부회장은 앞으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한국 최고 영향력 있는 회사의 최고 자리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부회장을 사실상의 삼성그룹 수장이라고 부르면서 삼성 자회사 간 합병을 승인받는 대가로 박 대통령의 친구에게 수천만 달러를 준 의혹을 받고 있다고 혐의 내용도 소개했다.
AP통신도 "삼성그룹 후계자를 구속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고 법원이 판결했다"면서 "대통령 스캔들을 조사하는 특별검사팀에는 차질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통신은 "한국 국민들은 삼성그룹 일가의 승계 계획을 돕도록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에 분노하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은 나왔지만 아직도 '비상대기중'이다.
박영수 특검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19일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삼성은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비상 태세를 유지했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을 다시 불러 보강 조사한 뒤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 승마협회장을 맡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에 대한 기소 방침을 밝힌 상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