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반법치의 일그러진 세상 풍경
[선데이뉴스=윤석문 기자]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법치국가이다. 법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이다. 결코 어느 특정의 힘이나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다. 국회는 입법부이니 좋은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대로 법을 잘 집행하고, 사법부는 법을 입법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해석하고, 국민은 법을 잘 지키는 선순환구조를 이루면 세상은 평화가 넘치고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고, 살아가는 맛이 나는 법치주의가 만개한 선진사회가 될 것이다.
법은 특별히 정의와 공정,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세워주는 기능을 한다. 법은 특별히 상대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서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며, 반대로 세상의 주류이며 세상을 선도하는 지도적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추상같은 엄정함으로 나타 날 때에 진정한 공정과 공평이 싹트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어떤가? 법이 잘 만들어 지고, 그 법이 잘 집행되며, 또한 그 법이 잘 해석(판단)되고 있는가? 정반대는 아닌가? 우리나라 국민의 법치의식은 후진국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 또한 형편이 없다. 의외로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국화가 너무 심하여, 서로 상종하지 않는 한국판 카스트제도가 요소요소에 정서적으로 깔려 있다.
현대판 음서제도의 존재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으나 사실은 절대다수가 차별사회라고 익히 알고 있으며, 사실상 사회 구석구석에서 인권침해, 차별대우, 불공정거래, 도덕적 해이가 다반사이며, 그 피해는 절대적으로 사회적 약자 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차별이 당연시 되고 반칙과 불법이나 위법이 판을 치는 세상은 공정한 사회도 아니고 정의로운 세상도 아니다. 특별히 기득권층, 특권층, 경제적 부자만 잘 사는 나라라면 그건 선진국의 그림이 아니다. 내가 상대를 차별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감각도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차별은 심하다. 특히 가진 자, 갑의 독선과 횡포가 심하다. 그들이 잘 나서 그렇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사회에서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늘 그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환경에서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식의 양극화가 심화된 계급사회 속에서 가진 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더욱 권력자가 되는데, 상대편의 못가진 자들은 공허감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희망 없는 삶, 상대편에 대한 적개심을 안고 살아가니 그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권력이든, 명예든, 빵이든, 더 가진 자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솔선수범을 기대하는 것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없는 무망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이고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더 이상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비아냥으로 세상을 굴절되게 바라보는 그런 사회분위기가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런 부정적 생각들이 대충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서글프다. 귀족(?)도 기회의 평등구조 속에서 공정한 경쟁대열에 기꺼이 참여해야 한다. 상당수의 가진 자들의 특징적 삶의 패턴은 거의 일관되게 편법과 반칙을 당연시 한다는 점이다. 참 이상하다. 왜 가진 자와 그 아들은 징병신검 때가 되면 모두가 그렇게 고질병에 걸렸다가 병역면제판정을 받은 다음 날부터 멀쩡하단 말인가? 요즈음과 같은 대명천지에도 사회지도층 자녀들의 병역기피(면제)의 통계수치는 늘 상한가(?)이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그거야말로 비법 중에서도 비법이다. 지금 세상도 왕조시대처럼 양반은 글만 읽고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들만 전쟁터에 나가야 한단 말인가?
국회의원들은 어떠한가? 의원 임기 중에 불법을 저질러 형사처벌을 받아 영어의 몸이 되었거나 현재 감옥에 있는 숫자가 결코 만만치 않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불신이 심한 직역이 국회의원, 정치인으로 나타난 바가 있다. 국회의원이 이권에 개입하거나 법도 아닌 법을 만들어 놓고 돈을 챙기는 악습은 없어져야 한다. 행정부는 더 간이 크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이 정부로 이송되면 그 시행을 위한 구체적 내용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으로 행정입법을 하게 되는데, 이 행정입법이 상위법과 충돌하며, 안하무인의 ‘마음대로법(?)’을 만들어 세상의 소통을 막는 우를 고의로 범하게 된다. 사법부의 법해석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도적 지위에 있는 자들이 법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힘으로 원칙을 뒤집는데 그들에게서 무슨 시민과의 사이를 가교할 수 있는 소통의 힘이 있기나 할까?
수범을 보여야 할 국가기관의 구성원들이 이러할진대, 일반 서민들이야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갈급해서 귀찮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던데, 지금처럼 수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나 기관이 더 엉망인 동물농장식 전횡과 전단으로 불통을 양산한다면 그건 안될 일이다. 지도충의 방만과 불법이 도를 넘고, 거기 질 새라 사회각계각층이 분화를 거듭하며 반통합의 정서를 만들어 나간다면, 통합은 물론이고 멀리 보이는 통일을 위한 길에 절대적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너도나도 가릴 것 없이 적법 보다는 떼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추세는 반법치, 몰법치, 역법치의 극치이다.
가진 자의 독선과 독단에 장단을 맞추어 덜 가진 자가 함께 난장판의 세상을 유도한다면 정말 그건 구제불능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첩경이다. 3%의 소금기가 바닷물을 짜게 하듯이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서야 한다.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 상대를 탓하며 함께 더러 누우면 세상은 숨을 멈춘다.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져야 한다. 객관적으로는 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면 극단적인 그룹이 서로 쟁투면서도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의 이권을 나누어 챙겨 가며 공생한다. 이념으로 극단적 싸움을 하는 자들을 보면, 저 사람이 진정 보수인지, 저 친구가 진실로 진보인지 의심스러운 사이비 보수와 진보가 양 진영의 대표선수인양 경기장에 나와서 몸을 풀고 게임을 하는 식이다. 진정한 보수나 진보는 끼어 들 공간이 없다, 극단적 대립으로 사생결단을 하면서, 오로지 자기 진영의 이익만 챙기려 들고, 판 자체가 깨지는 것도, 절대다수의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국익이나 국격이 훼손되는 것도 관심이 없다. 죽기살기로 싸우다 서로 갈라 먹는 갓바치(?)인가 보다. 왜 절대다수의 중도적 보수나 진보, 또는 진정한 보수나 진보는 발을 디딜 공간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가? 이 땅이 극단주의자들의 소유란 말인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절대다수의 선한 중도보수나 중도진보, 또는 진정한 보수나 진보가 엉터리 보수와 진보에게 쫓겨나 동구 밖에서 서성이듯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사이비 보수와 진보가 흥정해 가며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앵벌이형 무리들이 세상을 주도 한다면 결국은 분열, 갈등, 불신, 불통을 부추겨 비극의 종말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기회도 시간도 없다. 반듯한 세상으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함께 가야 한다. 먼저 권력이건 명예건 돈이건 가진 자측에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를 해체하고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공정한 룰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가진 자에게도 가진 것이 있을 것이다. 베풀 것이 있을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베풀어야 한다. 나누어 가지면서 공통의 자산을 축적해야 남북통일이 되면 나누어 줄 양식(?)이 있을 것 아닌가? 통일 이전에 이웃끼리 나눔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을 생활화 하자. 작은 것부터 지켜나가는 지혜로움을 터득하자. 작은 소통이 큰 통합을 이루며, 작은 통합이 큰 통일을 이룰 것이다. 소통과 신뢰, 통합과 연합을 통하여 개울물이 큰 강을 이루고 나아가 큰 바다에서 하나가 되듯이 하나됨으로 마음을 모으자. 상생과 상통을 위해 조금씩 양보하자. 가진 자가 조금 더 손해보고 조금 더 양보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지혜를 모으자. 어려운 때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가르침을 얻자. 다산 정약용과 도산 안창호의 통합을 향한 위대한 사상과 철학을 배우자. 백성사랑에 평생을 바친 인간으로서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세종과 이순신의 정신을 실천하자. 내가 먼저 가진 것을 내려놓아 활짝 웃는 법치의 세상 풍경을 함께 그려 나가자.
정용상 교수(동국대학교 법과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