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23건 ]
藝鄕 고흥의 춤꾼 공정애의 創作舞踊 ‘금줄무’ 춤사위로 나래 짓하며 대한민국의 춤꾼으로 飛上(비상)하다.
藝鄕 고흥의 춤꾼 공정애의 創作舞踊 ‘금줄무’ 춤사위로 나래 짓하며 대한민국의 춤꾼으로 飛上(비상)하다.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 우와! 고흥 천지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두루두루 고흥 벌판을 품은 듯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춤판을 벌인 고흥의 딸 공정애의 創作舞 금줄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고흥문화회관 김연수 홀에서 참으로 감동적으로 펼쳐져 그날 이 무용공연을 관람했던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온 전통예술인은 물론 고흥여고를 비롯 각급 학교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공연장 가득 매운 관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구동성으로 우와! 우리 고흥의 딸 공정애 선생 대단해요. 내가 우리 고흥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워요! 이런 놀라운 국보급 창작무용의 첫 무대를 우리고흥에서 만끽하며 향유 할 수 있었다니 너무 흥분되고 감동스럽습니다. 이 기적과 같은 공연은 우리 고흥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서울의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극장 등 전국 순회공연에 올려 져도 손색이 없는 명작중의 명작이라며 이날 이 공연을 못 본 우리 고흥군민들 앞애 다시 한 번 앵콜 공연을 강력 추천추진 한다는 박진권 전남 도의원과 관객들의 엄지척이 줄을 이었고, 우리나라 판소리 분야 인간문화재 송순섭 선생은 참으로 우리 고흥에 대단한 춤꾼이 탄생했다며 극찬해 주셨고, 한국 판소리보존회의 원로 조 동준 선생은 침을 튀기며 말씀하시며 이 작은 고을 고흥땅 공정애의 무용이 꿈의 무대 미국 카네기홀 공연을 다녀오더니 그야말로 일취월장 급성장을 한 느낌을 주는데 한마디로 이작품은 특허를 내야 합니다. 특허를 내서 길이길이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고흥의 물건이 탄생했습니다. 앞으로 공정애가 분명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춤꾼으로 커 나갈 겁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필자가 현장에서 지켜 본 느낌도 이분들과 다를 바 없이 진한감동이 지금까지 느껴질 정도이기에 지금 내가 쓴 이 기사가 부디 고흥의 딸 공정애의 이 創作舞 금줄무가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로 추천하는 이 무용의 대략적인 내용을 말하자면 금줄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던 민속 신앙같은 행위인데그 옛날 병원이나 의료 시설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마을 앞 神木 곧 당산나무 앞이나 집 대문 마을 어귀 등에 금줄을 쳐놓은 주술적 줄인데,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하며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질병을 막는 민속행위를 해왔으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금줄 이였는데 그 금줄을 쳐 놓고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질병도 막고 악귀나 잡신을 막는 큰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각 지역의 산성이나, 토성, 돌담 등을 큰 고을 등에서 설치하여 방어막으로 활용했듯이 작은 마을에서는 이 금줄이 그 역할을 대신 해 왔다고 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가운데 사회적 규약이요 약속의 한 분야인데 지켜야할 것, 침범하지 말아야할 것, 등을 전통적으로 이어온 전통문화의 한 분야이기에 금번 고흥의 향토 무용가 공 정애선생이 카네기홀 공연을 마치고 오며 영감을 얻어 각고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로 창작한 이 작품 금줄 무를 선보였는데,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살아 온 방식을 세밀하게 연구해 왔고, 우리 선조들이 신앙심의 발로로 시작된 주술적 행위들을 발굴하여 절묘하게 무용으로 승화 시켜낸 창작성 예술성이 뛰어났고, 이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이 고장 고흥의 순수 아마추어 소리꾼이요 예술인들로 고흥의 국악과 전통 문화보전에 앞장서 오신 보석같은 분들인데 점암면의 별신굿 농악 중에 혼맞이 굿으로 백년이 넘는 전통예술 농악단을 이끄는 신경식 선생은 여섯 살 때부터 굿판을 따라다니며 애기상쇠로 여지껏 전통을 지켜온 귀한 분이다. 두 번째 분 김원식 선생은 축원문 낭독을 해주셨는데 40년 동안 굿판을 따라다니며 경문을 낭낭한 목소리로 독특한 소리예술로 표현해주시며 상당히 심연에 빠져들게 한 느낌을 주었고, 이어서 금줄무 예술단의 장기숙 단원 등의 당산풀이는 호남 농악놀이 중 하나로 마을사람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소리가락으로 꾸며져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76세 고령임에도 우리 전통소리를 지켜오며 이 날도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에 실려 올린다는 씻김굿 열창의 열정을 보여주신 고흥의 소리꾼 김점순 여사의 무대가 감동적이었고, 또 고흥군 예술단원으로 활동하는 고흥군 과역면 출신 송웅 선생은 북이며 장구의 능수능란한 재주로 무대를 달구었고, 國唱 임방울 선생의 ‘추억’을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렇듯이 금번 고흥의 전통예술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린 공정애 창작무용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게 된 데는 후원 고흥군, 한국국악협회 고흥군지부 한국예총 고흥군지부에서 도움을 주었다하며 이 공정애 창작무 금줄무 공연을 통하여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도전의 무대요, 같이 한 모든 분들에게는 자부심과 예술혼을 느끼게 해준 귀한 무대였고, 藝鄕 고흥을 전국에 알리는 귀한 행사였다. 藝鄕 고흥의 춤꾼 공정애의 춤사위가 지금 대한민국을 홀리며 명품 춤꾼으로 飛上(비상)하고 있다’.
藝鄕 고흥의 딸 ‘공 정애 춤’ 꿈의 무대 카네기홀을 홀리다!
藝鄕 고흥의 딸 ‘공 정애 춤’ 꿈의 무대 카네기홀을 홀리다!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예로부터 남도 고흥반도는 文化藝術의 고장이라 불리 우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藝人들이 탄생했고 한국을 대표하며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國唱 동초 김연수선생을 비롯 한국의 대표 동양화가이자 수필가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천 경자화백, 또한 한국의 서정詩를 대표하는 시인 송 수권, 그리고 한국의 대표기업 ‘現代’ 로고를 쓰셨고 월드컵 축구전사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투혼’을 쓴 한국의 대 서예가 열암 송 정희선생등 수를 열거 할 수 없는 문화예술인들이 예향 고흥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미국의 자랑 꿈의 무대 카네기홀 공연을 다녀 온 자랑스러운 한국의 전통무용가 공 정애 선생이 귀한 고흥의 藝脈을 이어 오며 더욱이 고향 고흥을 굳게 지켜오며 금번 고흥 문화회관 김 연수 홀에서 공 정애의 創作舞踊 ‘금줄무’가 무대에 오르며 많은 무용인들과 고흥 군민들에게 자부심 넘치는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이 행사는 평소 전통 문화 예술 계승 보존 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송 귀근 고흥군수의 열정적 지원 아래 고흥군, (사)한국예총 고흥군지부, 한국 국악협회 고흥군 지부의 후원으로 열리게 됐는데 화제의 創作舞 금줄무는 어떤 무용인가요? 네, 금줄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던 향토적 민속작품인데요 그 옛날 병원이나 의료 시설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마을 앞 神木 곧 당산나무 앞이나 집 대문 마을 어귀 등에 금줄을 쳐놓은 주술적 줄인데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하며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질병을 막는 민속행위를 해왔으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금줄 이였는데 그 금줄을 쳐 놓고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질병도 막고 악귀나 잡신을 막는 큰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각 지역의 산성이나, 토성, 돌담 등을 큰 고을 등에서 설치하여 방어막으로 활용했듯이 작은 마을에서는 이 금줄무가 그 역할을 대신 해 왔다고 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가운데 사회적 규약이요 약속의 한 분야인데 지켜야할 것, 침범하지 말아야할 것, 등을 전통적으로 이어온 전통문화의 한 분야이기에 금번 고흥의 향토 무용가 공 정애선생이 카네기홀 공연을 마치고 오며 영감을 얻어 국내 최초로 창작한 이 작품 금줄 무를 선보이는데, 이 무대에는 고흥군 점암면 전통 농악 단 신 경식선생 외 40여명의 혼 맞이 굿을 시작으로 축원문 김 원식선생, 당산풀이 장 기숙선생, 고풀이 김 점순선생, 단가에 송 웅 선생이 특별 출연하며, 한국국악협회 나연주 목포지부장이 맛깔스럽게 사회를 보게 된다. 화제의 이 작품 금줄무를 기획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며 눈 코 뜰 새 없는 주인공 공정애선생은 오래전부터 살풀이춤, 태평무, 승무, 입춤 등을 추어 왔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작품은 동전 즉 종이를 길게 찢어 자르는 행위인데 저승으로 떠나는 혼령들의 여비를 주는 이 춤 지전무를 오랫동안 추어 온 우리나라의 숨은 춤꾼 공 정애선생은 광주의 대표적 춤꾼 김 덕숙선생으로 부터 무용을 사사받아 왔다고 하는데 이제는 한국의 문화예술계의 巨木으로 활동 중인 열암 송 정희선생님과 한국 판소리보존회 산 증인 조 동준선생 등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전국 각 지역에서 고흥을 찾아 축사와 격려의 말씀으로 축하하고 응원하며 이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고흥의 춤꾼 공 정애선생은 우리 고흥 지역의 군민들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바란다며 앞으로도 우리나라 우리 춤 발전에 혼신을 다하여 앞장서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하는 공 정애의 연습하는 춤사위에서 천상 하늘이 내린 진짜배기 춤꾼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藝鄕 고흥에 멋진 춤꾼 공정애가 우리 것, 우리 춤사위로 나래 짓하며 飛上(비상)하고 있다’......
유자 골 고흥 석류의 계절을 엮어가는 농촌 가수 김여종의 '인생아리랑'
유자 골 고흥 석류의 계절을 엮어가는 농촌 가수 김여종의 '인생아리랑'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우리나라 대한민국 254개 시 군 지방자치 고장 가운데 유난히도 이 가을에 빛나는 황금빛 고장이 있다 그야말로 유자 골로 유명한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찾아가본다. 황금 들녘의 고흥 천하에 마을마다 황금빛 찬란한 노오란 유자나무가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故鄕의 情 가득한 돌담 넘어 유자나무가 유자 香을 내 풍기며 “나가 말이요 고흥의 열매요 어째 여그 까지 오셨오? 잘 오셨오. 이리 오쑈이 막걸리 한잔 하시고 가셔라 하며” 반기는 고흥 농심을 말하는 듯하다. 고흥을 상징하듯 수백 수 천 개씩의 유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요즈음 유자 보러가세! 고흥 관광하러가세! 하며,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오늘은 제1회 유자 석류 축제가 열리고 있고, 또 11월1일 오늘은 ‘고흥 군민의 날’ 이라 더 더욱 고흥군으로 오는 관광버스와 각종 차량 행렬이 줄을 잇는다. 필자가 오늘 고흥을 찾는 목적은 유자도 유자지만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노랫말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아주 특이한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을 기획 취재하고 있는데, 오늘 서울에서 천리 먼 길 고흥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촌놈, 자칭 고흥 촌놈, 한 사람의 인생을 찾아 고흥군 두원면 꼬불꼬불 길을 한참 달려 아주 그림같이 풍광 좋고 아름다운 바닷가 예회 마을을 찾아 고흥 촌놈 김 여종씨를 만나본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멕시코 사나이들의 상징 카우보이모자가 잘 어울린 촌놈 김 여종씨는 오매오메 이 멀리까지 뭔 일 이다요? 언능 오쑈이 오메오메 어디라고 환한 미소로 반갑게 촌스럽게 맞이하는 여종씨는 태양식품이라는 유자와 석류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필자가 많고 많은 전국의 인생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이 천리 먼길 고흥까지 달려온 것은 유자향보다 더 찐한 사람냄새가 가득한 이 사람 김 여종의 노래가 얼마 전 KBS한국방송의 라디오 ‘세월 따라 노래 따라’에 김 여종 촌놈이 부른 노래 ‘인생아리랑’ 이라는 노래가 전국 방송을 타며 수많은 청취자들의 가슴을 적시며 화제가 되었고, 때 마침 라디오를 듣고 있던 필자도 우연히 이 노래 ‘인생아리랑’이 내 가슴에 이 노래 뭐야 하며 찡하게 와 닿으며 계속 더 듣고 싶어 평소 잘 알고 있는 KBS의 40년 전설 무려 40여년 장기근속하며 이 ‘세월 따라 노래 따라’ 코너의 전속 작가인 주 경희작가님께 부탁하여 어렵게 CD를 구해, 요새는 시도 때도 없이 이 노래와 이 CD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노래 ‘고흥 어머니’라는 노래를 부른 김 여종의 펜이 되어버려 벼르고 벼르다 작심하고 오지 중의 오지, 고흥군 두원면 예회마을까지 찾아와 가수 김 여종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본다. 아따 이 촌놈가수가 뭔 인생 스토리가 있다 요? 이리 빼고 저리 빼다가 결국은 입을 연 가수 김 여종은 출세 했지라. 이 노래가 방송을 탈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얼마 전 우연히 고흥군의 팔영 체육관에서 열린 모 행사장에서 부른 제 노래 ‘인생아리랑’을 듣고 만난 KBS 주 경희작가님께서 아 이 노래 좋은데요, 느낌이 오는데요. 하며 방송 약속을 하고 얼마 후 방송을 타게 되어 요새 저는 저기 보이는 팔영산 구름타고 있는 느낌이라니까요. 우리 고흥 우리 동네 멋있지요? 서울에서 큰 사업을 했었지요. 건설업에 조경건설을 제법 크게 했었지요. 그러나 제가 낳고 제가 자란 이 마을의 정이 그리워 고향 그리움에 사무쳐서 또 늙으신 어머님의 병간호를 위해 가족들을 서울에 두고 15년 전 온전히 고향으로 내려와 인생 2막을 살고 있습니다. 그전 36여 년 전부터 고향마을에 유자나무를 5천여 주 심고, 또 대한민국 최초 석류와 블루베리를 보급하여 현재는 고흥의 명품 석류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라는 김 여종씨가 가수로 데뷔한 지는 1975년도 이고 나훈아의 ‘너와 나의 고향’을 작곡한 유명한 정진성선생의 곡을 받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취입하고 가수로 활동하다 군 입대 하는 바람에 그 인생 운명이 달라지게 되어 군 제대 후 조경건설분야에 뛰어들어 인천 길병원 조경사업, 광주신학대조경사업.그리고 수많은 고속도로 조경건설을 해오며, 큰 사업을 일구어 오던 차 고향 고흥에 유자나무와 석류나무 심기에 선구자 격으로 일해 오다 때 마침 병석에 눕게 된 어머니를 위해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무려 3년 동안이나 어머님 기저귀를 갈아 주며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해 온 이 시대의 효자로 마을주민들과 고흥 군민들 앞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고향바닷가 드넓은 땅을 일구어 ‘태양 식품’이라는 석류농장을 경영하며 TV홈쇼핑 등을 통하여 전국적인 판매를 하고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흑 석류로 유명한 김여종표 명품석류 주문이 쇄도하고 있단다. 이소프라본 등 온갖 약성이 뛰어나 여성 건강에 최고라는 석류 전문가로 ‘6시 내고향’ '만물상' '전국은 지금'등 방송활동도 다양하게 하고 있고, 그러면서 틈틈이 노래도 부르며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태양식품 농장에는 인기가수 장윤정 김성환김종환 가수 유지나 전 원주선생 세계적 사진작가 백남식 선생이 방문했고, 또 팜띠엔반 베트남대사도 와서 하룻밤을 같이 자며 코리아석류 원더풀을 외쳤노라 자랑한다. 이제 나이 65세 노객으로 접어들지만 40대 초반의 왕성한 체력으로 농장을 경영하고 드넓은 고흥바다를 무대삼아 수 많은 갈매기 떼를 관객삼아 ‘인생아리랑’ ‘진또백이’ ‘백세인생’ ‘고흥어머니를 노래하고 있는 농부가수 김 여종은 오늘 고흥군민의 날 축제장 큰 무대서 또 ‘인생아리랑’ ‘고흥 어머니’를 부른다는 김 여종 가수의 마음에는 늘 서울의 아내와 2남 1녀의 자녀들과 같이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또 하나의 자연인으로 오늘을 멋지게 살아가며 고향을 지키는 농촌 가수 김 여종의 이 아름다운 노래가 전국적인 TV방송과 특히 ‘전국노래자랑’등에 나와 전국의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 날을 기약해본다. ▷석류신품종 개발 흑석류▷고흥석류 모델▷인생아리랑 노래▷75년도 5월 오아시스 레코트사 영원한마음 취입▷78년도 부터 중동 사우디 이라크 리비아 ▷현대·대우·유원·미륭건설 취업
세계적 명문 위스콘신대학교 한국AMP과정 제1기 국회에서 둥지를 틀다.
세계적 명문 위스콘신대학교 한국AMP과정 제1기 국회에서 둥지를 틀다.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 2019년 7월이 시작되는 날 1일 국회 본관 귀빈식당에서 80여명의 내외 귀빈들과 입학생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1부 입학식에 이어 2부 국회 로텐다 홀로 이동 위스콘신과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며 합동 기념 촬영을 하고 3부에는 아주 특별하게 구성된 연예인 축하공연과 함께 성황리에 입학식을 가졌다. 미국 5천여 개 대학 중 15위 세계 27위의 명문대이며, 노벨상 수상 23명에다 퓰리처상 수상39명 배출한 세계적 명문 대학 위스콘신 대학교와 협약하여 *대통령리더십과정*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과정은 이름 그대로 아주 독특하고 이채롭다. 그냥 리더십이 아니고 대통령리더십이라 입학식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과연 어떤 분들인가?하고 면면을 살펴보니 참으로 우리나라 각계각층에서 다양하게 활약하시는 분들이 참여하고 또 지극히 평범한 주부로부터 젊은 청년회사원까지 이르러 우리나라의 참된 정치를 원하고 또 나아가 차기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으로 국민 앞에 서야 하는가? 하는 깊은 관심을 가진 아주 평범한 분들이 많이 입학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우리 국민들 앞에 낯이 익은 대중 연예인들이 많이 보였다. 우선 국보적 원맨쇼의 달인 남보원 선생이 84세 고령의 나이에도 내 나이가 어때서 배움에 나이가 문제며 끝이 없지 않은가? 열심히 듣고 배우겠다며 왕성한 학구열을 불태우며 영원한 메니저요 내조의 여왕 주 길자 여사와 함께 부부동반 입학을 했고, 하하하 호탕한 웃음의 전원주선생도 80의 청춘을 자랑하며 미녀스타 서 우림 탈렌트와 함께 우리인생 마지막 학교다. 하하하 열심히 공부하고 차기 대통령 감 찾기에 몸소 나섰노라 입학소감을 밝혔고, 여기에다 지방 공연관계로 입학식에 참여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가요 황제 남진씨와 행사의 여왕 가수 김혜연씨도 이학교의 입학 동기생이 되었고, 행사 없는 날 틈틈이 학교수업에 참여 하겠다는 다짐을 피력했고, 특히 ‘사랑이 뭐 길래 희노 애락 남기고 가나’ 전국적 인기스타 가수 최영철씨도 세계적명문 위스콘신대학교 학생이 되어 기쁘다며 열심히 공부하겠노라 입학소감을 밝혔고,여기에다 우리나라 권투의 영웅 세계챔피언 장정구씨와 동양챔피언 철권 황 충재 선수도 이제는 인기스타 가수가 되어 ‘끝까지 간다’ 라는 요즈음 한창 방송가에 뜨고 있는 노래를 열창하며 노래도 열심! 공부도 열심히 하는 인생의 멋진 챔피언이 되겠다며 권투 폼을 잡으며 입학소감을 밝혔고, 그리고 국악인이며 이번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서도소리 명창 박정욱선생도 같이 참여했고, 그리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음악 박사학위를 받은 KBS열린 음악회 등 다양하게 방송 출연중인 최고의 크로스오버 성악가 김정 상명대교수도 이날 꾀꼬리 같은 노래 한곡 선보이며 독특한 이 학교의 신입생이 되었다. 그리고 경제인으로는 한국 경영인협회 회장 이 홍재박사도 축사를 하며 한국을 빛낸 최고의 명사들이 모인 이 학교가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갈 명품 대통령을 찾아내는 귀한 배움터가 되어 달라고 주문했고, 여기에다 정치인으로는 김 호일 전 국회의원이 이 학교의 교육원 원장으로 최선을 다해 이 학교를 전국 최고의 AMP과정으로 반드시 만들겠다며 의욕이 불타는 인사말을 했고, 그리고 끝까지 자리를 같이 한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5선의 정 갑윤 의원도 내가 국회를 살리고 우리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일등 일꾼이 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기에 이때다! 여기다! 국회에서 하는 이 학교 이건 기회다 생각하고 만사백사 제쳐놓고 끝까지 잘 다녀 졸업식 날 우등상 받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입학 소감을 밝혔으며, 청주의 큰 일꾼 4선의 오 제세 의원과 100만 안산 윤 화섭 시장도 입학원서를 냈으며, 아름다운 서해 안면도의 가세로 태안군수도 열심히 댕기겄시유 하며 강한 의욕을 보였고, 그리고 이밖에도 국제변호사요 회계사로 널리 활동 중이며 특히 며칠 전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 스포츠 중재 재판관으로임명받고 돌아온 자랑스런 한국인 주정대 변호사도 위스콘신대학교와 같이 하게 되어 영광스럽다며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다짐을 하며 환한 미소로 답을 했다. 또한 I&P문화갤러리 유병인 회장이 이 학교 출범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고 특히 초대 원우회장으로 최선을 다해 이 학교와 원우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봉사하고 노력하겠노라 입학식 답사에서 밝혔고, 그밖에도 멀리 경북 구미에서 서울전설이라는 전기 공사 업을 한다는 조성대 대표는 아무리 멀어도 거리가 문제 아닙니다. 이 학교의 교육 취지가 좋고 내용들이 마음에 들어 입학하게 되었다는 조 대표와 함께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자기분야 최고를 자랑하는 명사들 70여명이 제1기생의 명예와 설레임으로 같이 출발을 했는데 앞으로 매주 월요일 저녁 5시30분부터 국회 귀빈식당의 최고의 만찬과 함께 밤9시까지 공부하게 되는데 앞으로 15주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강사들의 품격 있는 고차원 강의와 무엇보다도 대통령리더십과정 특성 그대로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차기 대선후보들을 초청 강의를 들어보고 질의응답까지 해나가는 토론 형 수업을 진행하겠으며, 대통령후보가 아닐지라도 지난 대통령의 가족들과 주변인물 들에게도 강의의 기회를 주어 다양한 방법으로 대통령리더십을 전해 배우는 이 과정이 될 것이라 말하며, 차기 대통령후보들의 적극적인 강의참여와 용기 있는 도전과 협조를 구한다고 이 과정을 최 일선에서 기획하고 이끄는 이 계춘 주임교수는 말한다.
대한민국 歌謠의 傳說이요 國寶 같은 歌皇 남진 高興에 새 둥지를 튼다.
대한민국 歌謠의 傳說이요 國寶 같은 歌皇 남진 高興에 새 둥지를 튼다.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사람 찾아 인생을 찾아 전국의 명인 명사들을 찾아 방랑하듯 유람하는 필자는 그야말로 우리시대 명사중의 大 名士 우리나라 가요의 전설! 오빠부대의 원조이자 국보 같은 가요계의 皇帝 가수 남진을 만나본다. 아따, 형님 오랜만입니다. “오메 우리 동상 잘 지냈는가. 형님 제 고향 고흥군에 남진가요기념관을 짓기로 하셨다면서요? 잉 그래 부렀어! 고흥 좋아! 아 진짜 좋아!”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고 얼매나 아름다우면 고흥을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부르게 됐을까? 그 미술관 자락 남열 리라는 나로 우주선 발사대 전망대 근처 멋진 바닷가에 나의 가요 일생을 같이했던 모든 소품, 음악자료 등을 전시하고, 남진노래 전문 노래방도 많이 만들어 놀라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다음 세대까지도 남진 생각나면 이 고흥으로 찾아와서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 많은 없었을 것을......하며 ‘가슴 아프게’ 를 부르다가 또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하며 ‘님 과 함께’를 열창하다보면 오메! 오메! 허기져서 나로도로 건너가서 끝내주게 맛있는 자연산 회 무침 특히 나로도 서대 회에 고흥 특산품 유자 동동주 막걸리 한잔 크 흐! 침이 자동으로 넘어 가네요 우리 고흥의 남진가요 기념관에 형님의 펜들이 엄청 몰려오시겠네요! “그러니까 남진가요의 전반전은 고향 목포에서 싹이 트고 꽃 피웠지만, 남진의 가요 후반전은 고흥에서 찬란하게 열매 맺게 되는 셈이네요.” 형님하면 떠오르는 게 그 옛날 원조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며, 전국의 극장가를 휩쓸던 남진 리사이틀이 생생하게 생각나는데요?오늘 날 남진을 있게 한 분을 꼽자면 요? 오빠 부대의 원조는 나이지만 ‘리사이틀’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것도 나였다. 한 사람이 공연 전체를 책임지는 독창회 격인 리사이틀이란 개념은 1960년대까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는 여러 가수가 함께 공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리사이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네.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의 역사에서 ‘쇼’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옛 동양방송(TBC) 황정태 PD인데 그분이 연출한 ‘쇼쇼쇼’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고 쇼쇼쇼는 춤과 노래 코미디가 결합한 버라이어티쇼였는데 희극 인이자 훗날 미국 뉴욕의 한마음침례교회 목사가 된 고 곽규석씨가 진행을 맡았는데 곽씨는 성대모사와 원맨쇼의 개척자로 코미디계의 큰 어른이셨고, 내가 리사이틀 가수로 서는 데는 황 PD와 곽규석씨의 역할이 컸다. 그가 나를 쇼하는 가수로 만들어 주었다. 황 PD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1971년 가을 서울 종로구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남진 귀환 리사이틀’은 황 PD의 작품이었다. 안무는 한 익평씨가 맡았다. 이후 ‘남진 시대’는 그 리사이틀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조영남도 황 PD가 직접 찾아 방송에 출연시키며 스타로 만들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가요계는 그에게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남진도 그 분들이 만들었고 리사이틀도 그 분들 작품이고 나는 시킨 대로만 했었지. 오메 또 그 양반들 생각나네.그라고 ‘토요일 토요일 밤에’를 연출한 MBC 고 전 우주 PD도 최고로 꼽을 수 있다. 전 PD는 대한민국 PD의 상징으로 불렸고 실력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였어. 작품을 진짜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많은 선후배 음악인들이 말하지 전 PD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바뀌었을 것이라고도 말하며, 오늘 먼 산 바라보는 歌皇 남진은 그 오래 전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는지 그의 두 눈에 이슬이 맺힌다. 지금 저 우리시대의 영웅 남진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저 천재가수 歌皇하고 한 시대를 같이 살아 왔고,지금도 같이 호흡하고 있다니 기적이다!나도 우리도 그 옛날 오빠부대 누님들도 그래서 다 행복하다. 우리 손꾸락 걸고 약속하자 머지않아 남쪽나라 아름다운 고흥에 남진의 가요기념관이 문을 열면 같이 달려가서 저 푸른 초원위에서 손에 손을 잡고 남진과 함께 많이 노래하자! 저녁내 부르자 그라고 또 부르자! 아침에 또 남진을 노래하자!나에게 애인이 있다면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 하고
1200만 전 세계 호남 향우회를 이끄는 호남의 큰 산맥 이 영호회장
1200만 전 세계 호남 향우회를 이끄는 호남의 큰 산맥 이 영호회장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사람 찾아 인생을 찾아 8도 강산 유람하는 필자는 오늘 경기도 양주 시 그 옛날 태조 이성계가 부인 강씨와 함께 회암사 가기위해 넘나들었다는 어하고개 자락 양지바른 언덕배기 9만 여 평 드넓은 대지에 펼쳐진 루이 힐스 골프장을 찾아 그 주인장 이 영호 회장을 만나본다. 골프클럽 4층 회장 집무실을 들어서자 마치 방송국 자료실을 찾은 것 같이 수천 장이 넘는 비디오테이프와 방송장비가 방안 가득하고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표창장과 사진 그리고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각종 상장과 표창장들이 즐비하고 전자드럼 그리고 대형 북과, 안데스 산맥 산하의 감동의 선율 펜 플룻 등 각종악기와 음향장비들을 보며 와! 이 영호회장 이 분이 대체 뉘시여? 하며 우선 놀란 가슴으로 어렵게 인터뷰를 시작한다. 참 온화한 표정과 편안한 인상이 마치 시골 외삼촌을 만난 듯하다. 이 영호회장님! 우선 이 악기들과 이 방송장비들은 무엇인지요?아따, 성질도 급 하요 잉! 우선 차나 한 잔 합시다. 하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요것이 보이차라고 건네며, 이 모든 방송장비들은 나의 과거이고, 이 악기들은 나의 현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 찬란한 과거 현재 이야기는 잠시 후 듣기로 하고요, 국내 최대 조직인 전국 아니 전 세계 호남향우회를 창립한 주인공이시고, 초대 2.3대 회장을 역임하셨다는데 그럼 태어난 고향은 어디시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면요?네 제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바닷가 작은 시골마을 정말 가난한 농부의 2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그 당시 고향 고흥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오매 내가 말이여! 시방은 가난한 고흥 촌놈이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고향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을 전 세계에 자랑하고 살 것이여! 하고, 어린 시절에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남달랐다고 한다. 그 후로 서울에 와서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청년시절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1977년도에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해 중앙일보 역사에 없는 모범사원이요, 눈부신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다, 이후 큰 뜻을 품고 KBS방송국 방송사업 단 사장으로 취임하며, 바로 서울 아시안게임 방송자료 판권을 취득하고, 이때 탁월한 리더십과 마케팅능력, 창의력을 발휘하여 교육콘텐츠 다큐멘터리를 비디오 영상으로 만들어 이 사업이 크게 성공을 하여 2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최고경영자 반열에 들어섰고, 전국케이블TV협회를 창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 속에 41세 약관의 나이에 재경 고흥군 향우회장으로 취임, 고향 고흥군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는데 영남중학교 (현)남포미술관에 과학 기자재와 도서기증을 시작으로, 사재를 출현해 장학기금과 고흥군 발전기금 모금에 앞장서는 가하면 남열리 수 만평 옥태도 섬을 통째로 매입, 태양의 섬으로 섬 이름을 바꾸어 수많은 영화촬영장소로 활용을 하고 있다. 그 후 전국 호남 향우회를 창립하여 전국에 흩어져있던 향우회를 하나로 통합, 초대 2대 3대까지 회장을 하며, 그야말로 호남향우회가 전국최대의 사회단체로 발돋움하는데 산파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큰 리더십으로 호남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단합과 화합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법제처로부터 국민법제관으로 임명 받아 법률개정 등에 자문역할을 하고 있으며, 양주경찰서 경찰위원장과 한국자유총연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또 며칠 전에는 세무의 날 국세청 납세자의 날 시상식 시상자자로 까지 활동하는 등 이 영호회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행동력은 마치 광야를 달리는 천리마 같은 기상을 느낀다. 아! 그러니까 지금까지 말씀 들어보니 저 수 많은 방송장비들과 비디오테이프가 이 영호 회장님을 만들어 준 성공의 추억 장들이요 과거였다면, 저 아름답고 드넓은 골프장과 다양한 악기들이 현재고 미래가 되겠는데, 좀 더 자세한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네 이 골프장 ‘루이 힐스’는 옛날 루이왕 이름에서 따왔고 이곳이 옛날 임금님이 넘나드시던 고갯길이라 왕과 관련해 ‘루이 힐스’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골프장은 18홀의 아담하게 조성하여 찾는 이들이 부담 없이 저렴하게 운동하도록 운영하고 있고, 현재도 국내외 프로선수들과 아마츄어 선수들의 연습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한다. 또 저 많은 악기들은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고, 이 영호 회장 스스로가 틈틈이 직접 연주하고 다양한 손님들을 초대하여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하며, 드럼 앞에 앉아서 잠시 연주를 해보는데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파워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어서 펜플룻 연주는 마치안데스 산맥의 영혼을 적시는 듯 감동을 안겨주는 등 악기 하나하나 연주 하는 것을 보며 와! 이영호회장이야 말로 이 시대가 나은 만능 엔터테이너로다. 참 부럽다. 멋지다! 자랑스럽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함이 없는 이 시대의 귀한 리더! 그는 정말 대단한 우리시대의 명사가 맞다 고 그날 같이 자리 했던 김 회장의 친구요 국민가수‘타타타’의 주인공 김 국환씨도 이영호회장의 천재적 음악성에 놀라 버렸다 한다. 또 얼마 전 3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그 옛날 중앙일보 재직시절 직계 상사였던 권 오경회장은 증언한다. 이 영호 저 양반이야말로 대단한 성공인생이요, 입지전 적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극구 칭찬하고 자랑한다. 이 영호 저사람 진짜 법 없이 살 착한 양반이고 멋진 사나이라고 한참 동안 칭찬한다. 그렇다 필자가 봐도 이 영호회장의 끝없는 예술적 감각과 능력 그리고 이 세상과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친화력과 명품 리더십 앞에 박수를 보낸다.
천성이 착한 DNA를 가진 봉사단장 전북의 큰 일꾼  김광섭
천성이 착한 DNA를 가진 봉사단장 전북의 큰 일꾼 김광섭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사람 찾아 인생을 찾아 오늘도 8도 강산 유람하는 필자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전통과문화 예술 그리고 따스한 情이 살아 숨쉬는 藝鄕 전라북도 전주의 名士를 찾아 나선다. ‘김광섭회장’ 이분이야말로 전주가 자랑하고 전라북도를 이끌어가는 몇 분 안 되는 귀한 분이라 소문나서 참으로 어렵게 만나 그 멋진 인생노트를 펼쳐본다. 전국 아니 세계 각국의 1200만 대 식구를 자랑하는 사단법인 국. 내외 통합 호남향우회 총 연합회 상임 수석부회장이시고, (주)삼화엔지니어링부회장 등등 기타 이 분의 직함을 다 열거하자면 이 지면이 다 차야 할 것만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는 김 회장님의 고향은 어디이며, 또 어린 시절 환경은 어떠셨는지요? 그의 초반인생이 궁금해 먼저 물어 보았다. 누구나 고향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 환경을 말해 달라 하면 그렇듯이 김 회장도 금방 눈시울이 적셔지는 느낌에 얼굴까지 붉어진다. 아따, 거시기 글씨요, 나는 촌놈중의 촌놈 이였어요. 그라니까 거시기 저 어디냐? 전라북도의 장수군 첩첩산골 외딴마을에서 태어났지요? 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역사적인 해인 1948년 10월 전북의 장수에서 당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계시던 가난한 농부 부모님 슬하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북에서도 낙후의 대명사가 되다 시피 한 무진장의 고장 장수의 산골인지라 먹고사는 것조차 어려워 학교가기 전에 나무 한 짐 학교 갔다 와서 또 나무 한 짐 해다 놓고 나서야 하루일과가 마치는 그야말로 나무꾼이요, 촌놈으로 자라났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성실하시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착하디착한 부모님 밑에서 정직과 근면, 우애와 행복과 사랑을 배우며 우리 7남매는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공부는 사치스럽게만 여겨졌기에 진짜 대학진학도 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동생들 가르치고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착한 마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 하였을 만큼 천성이 착한 장수의 착한 사나이 김광섭은 그렇게 착한 촌놈으로 청년 시절을 보낸다. 사회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고, 기억에 남는 활동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1972년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이 한진그룹입니다. 1972년 입사하여 2009년 퇴임할 때까지 37년을 근무하면서 회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였습니다. 전북 지역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전국 최초로 고속버스 요금을 30% 할인하여 낙후된 전북 도민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요금 할인을 12년 동안 계속해서 적용했으니 지역에서는 당연히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월매출이 7억4천만에 연간 9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감안할 때 27억 정도의 할인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12년으로 환산하면 324억 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 전북 도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노력의 대가로 지역주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이 이어졌고, 전주시장 표창 등 많은 상들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저의 타고난 성품이 남 먼저 이롭게 하자는 利他精神을 갖고 태어났기에 지역을 위해 남을 위해 늘 즐겁게 봉사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그 보람하나로 살고 있습니다. 정치권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되었는지요?한진그룹 전북지역본부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당시 선거구가 무진장 임실 지역구인 정 세균 전 국회의장님과 인연이 되어 정치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낙후된 농촌에서 天刑처럼 여겨지던 농사로 인해 농민들이 빚에 허덕이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미래농촌연구회 조직국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진장지역은 전북의 동부 산악 권으로 해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고령화가 가속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대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농촌지역에는 일할 수 있는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수확할 때면 일손이 부족해 발을 동동거리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고령화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면서 지역경제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미래농촌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하였습니다. 농촌이 살아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고부가가치 농업을 통해 농촌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이 되고 부자농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면서 귀농인구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끊겼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간간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저는 제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추후도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정치가 변해야 나라가 살고 지역이 산다는 것입니다. 지난 우리나라 정치사를 뒤돌아보면 지역적 편차가 너무 심했던 영남정권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호남은 차별을 받아왔고 낙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박 근혜 정부를 보면서 나라를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으로 2017년 넥스트 전북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대통령을 세워야 나라에도 미래가 있고 지역의 균등발전에도 보탬이 된다는 확신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앞장섰던 것입니다. 지금은 호남향우회에서 활동 계시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시는지요?2017년 기회가 되어 사단법인 전국 호남 향우회 상임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는 호남향우회원들이 1,2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석부회장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회원들을 만나면서 회원들의 단합과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서라도 호남향우회원들의 단결이 지역발전과 정치발전을 위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바로서고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호남향우회가 충실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뒤에서 일하고자 제 마음 중심의 심장에는 늘 호남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호남향우회 활동에 큰 사명감을 갖게 한데는 우리 호남인의 큰 리더 초대 회장 이영호회장님의 지도 편달이 있었기에 늘 감사와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삼화엔지니어링에서 현재 근무하고 계시는데 어떤 회사인가요?삼화엔지니어링은 지난 3년 전부터 근무하고 있는데 냉동 저온창고 제작 설치 전문업체입니다. 이 회사를 시작하게된 것도 지역농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찾다보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일 년 내내 힘들여 지어놓은 농작물이 판로가 없어 제값 받기조차 힘든 실정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된 농작물을 보관하고 유통기간을 늘려 수급조절을 통해 농민이 필요한 시기에 출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요즘 농가에서 대부분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고장 전북은 농민이 살아야 미래가 있는 지역입니다. 농사짓기 좋은 지역 환경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한진그룹 전북지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검찰청과 경찰청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십 수 년 간 활동하였습니다.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이 안심하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전주에 있는 고려병원과 함께 장수군지역 의료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농사짓는 시간조차 부족하고 찾아갈 병원조차 없는 농촌의 척박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건강한 농민이 건강한 농촌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병원관계자들과 지역을 순회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을 빛낸 경제발전 대상 사회공헌대상을 수상하셨는데 소감과 함께 앞으로 활동계획이 있으시다면?지역을 위해 그동안 조용히 일 해왔던 것들이 인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것 같습니다. 자격 없는 저에게 과분한 상이며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낙후된 지역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뛰고 노력하며, 보다 나은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일할 것이며, 전심을 다해 열정을 바쳐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 봉사할 것입니다.
양자치료와 한방요법으로 암을 치료한다.
양자치료와 한방요법으로 암을 치료한다.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시대가 바뀌며, 식습관도 바뀌며, 건강관리 방법도 바뀌고 있다. 우리네 사람이 한평생 건강하게 잘 살다가 큰 병 큰 고통 없이 백세까지 장수하며 편안하게 이 세상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 3개월 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백세한의원에서 그 가능성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 자신 10여년 넘게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증상이 있었기에 그동안 나는 3개월여 동안 거의 매일 꾸준히 치료를 받아온 나는 나의 주치의 격으로 당뇨관리를 해주며 늘 고혈당에 당뇨 합병증 등 큰 걱정해주던 모 양방 의사가 어느 날 깜짝 놀라며 어떻게 된 거냐? 며 합격이라고 기뻐해줄 때 또 나와 더불어 너무 많은 환자분들이 저마다의 치료효과를 말해 줄 때 김 지환박사와 백세한의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암 치료와 각종 난치병, 당뇨병치료에 대한 확신이 와서 여기저기 만나는 사람마다 백세한의원과 김 지환박사를 자랑하며 나도 모르게 백세건강 전도사로 자연스럽게 활동하고 있으며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왜냐하면 병은 자랑하라 했고, 좋은 약이나 치료방법을 자랑하는 것은 어떤 물건 판매하는 차원이 아니요, 사람을 살리는 그야말로 생명연장과 직결된 너무나도 절박한 문제일 수도 있기에 그렇다. 김 지환원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석,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연구에 전념하다 48세에 늦깎이 한의사로 데뷔해 한방암연구회 회장역할을 수행하면서 암의 치료에 새 장을 열어가며 양자치료를 통한 임상적 치료 중심으로 특별한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김 원장으로 부터 몇 가지 들어본다. 한의학과 양자 치료를 하게 된 동기는? 제가 한의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뇌종양에 걸려서 그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을 42살의 나이에 20살 이상 어린 학생들과 같이 수능을 보고 한의대에 입학했고, 남들이 은퇴할 나이인 48세에 한의사가 됐습니다. 항상 긍정적사고와 스마일 표정으로 웃으면서 환자를 대하는 김 원장은 저는 돈 벌라고 한의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암을 반드시 정복하여 현대의학의 한계 앞에서 대책 없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그 귀한 생명들을 구하겠다는 일념하나로 뒤늦게 한의학을 하게 됐다는 김 원장의 백세한의원에는 평일은 물론 토요일 일요일 임에도 환자들이 가득하다. 우리나라 어느 한의원에 이렇게 문전성시를 이루며 환자들이 몰려들까? 세계 최초로 한의원에 양자 치료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바로 얼마 못가 비좁아서 이전 확장하여 성수역 3번 출구 쪽에 최첨단의 의료시설이라는 느낌이 들고 뭔 가 정감이 가고 신기한 느낌이 들었고 많은 환자들이 와! 여기 너무 좋다. 각 치료실 벽면 천정마다 특수 진주암 광물 발포재로 부착되어 있기에 거기서 파생되는 원적외선 양자 에너지 파장이 내 몸 깊숙이 침투 뼈 속부터 뜨거운 온열로 치료되니 혈압이 내려간다. 그러나 일반 사우나는 피부 살갗부터 데워주니 혈압이 상승되는 부작용 때문에 고혈압 환자는 입장이 불가 되나 백세한의원 양자치료 방은 고혈압환자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양자치료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 해 주신다면?암은 몸의 체온이 내려가면 발생합니다. 체온 35도에서 암이 가장 잘 자랍니다. 그런데 몸의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이 10배 가까이 올라가고 백혈구가 암세포를 처리합니다. 실제로 암환자의 아침 체온을 재보면 35도 초반입니다. 저희 양자치료를 받으면서 체온이 높아지면서, 면역력이 높아지고,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봅니다. 체온이 올라가는 것은 결국 생명력이 올라가는 것이고, 암세포는 저절로 사멸하게 됩니다.” 양자치료의 원리에 대해서 말하는 원장님의 눈에 자신감이 보인다. 양자치료에 쓰는 중심 소재는 양자보드입니다. 이 보드는 진주암이라는 암석과 기타 광물질을 분체해서서 2천도 가깝게 가열하여 소성시켜서 만듭니다. 이 보드에 열을 가하면 보드에서 열뿐만 아니라, 아주 고밀도의 원적외선 및 근적외선 영역의 양자 ‘빛’이 나오게 됩니다. 이 빛, 곧 양자가 우리 몸속 깊은 곳에 침투하여서 세포를 활성화 합니다. 특히 물 분자의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2마이크로와 6마이크로의 원적외선 파동이 물의 운동을 활성화 시킵니다. 우리 몸의 70%에 달하는 물을 활성화시키면, 온 몸이 따뜻해지고, 세포들이 살아납니다. 따라서 이 원적외선 영역의 양자치료는 특정한 질병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질병에 근본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암에 관련해서는 체온을 직접적으로 높임으로써 암세포는 바로 사멸합니다.” 원적외선, 가시광선, 약침, 발효한약 등 종합치료 병행, 양자치료 받으면서 체온. 면역력 높아져 환자 상태 호전되어 폐암 환자뿐만 아니라, 췌장암, 혈액암 등에서도 놀라운 효과가 임상적으로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국내 대형병원에서 포기한 암환자가 양자치료를 받고 좋아지는 것을 보고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더욱 자신감이 생깁니다. 전립선암이 골수로 전이되어서 포기한 암환자가 1개월 후에는 통증이 사라지고, 병원 검사 상 호전되고 있다고 마치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병사들의 승전보처럼 치료되고 호전되어 기뻐하는 환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김 원장이 암 치료 외에 자신 있는 분야는? 안구 질환, 아토피 치료 등이다. 현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안구 건조 증부터 시작해 녹내장, 백내장, 황반변성 등의 난치성 환자들이 많이 내원한다고 한다. 한편 아토피는 몸속에 독이 많기 때문에 해독이 가장 최우선이에요. 대장 치료를 기본으로 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염증들을 치료해 줘야 하죠. 이때 효과적인 게 발효한약이에요. 발효한약은 유산균이 살아있어서 장을 해독시켜줄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한약보다 효과가 강력해요. 아토피가 양자치료와 발효한약 치료와 결합되면 효과가 훨씬 빠른 것을 보고, 의외로 많은 청소년 환자들이 좋아지는 것을 봅니다.” “질병은 단순합니다. 몸에서 기혈순환을 잘 시켜서 몸을 따뜻하게 하면 됩니다. 한의학은 과학이고 철학입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땀이 납니다. 그러면 이런 매운 약들을 쓰게 되면, 온몸의 기혈 순환이 잘 되고, 고추도 최고의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마늘을 최고의 항암제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의사들도 있습니다. 화학적 합성에 의한 양약이 아니라, 자연에 기초한 한약과 그 이론은 현대 과학이나 의학에 비해서 조금도 열등하지 않습니다. 제가 물리학 박사이지만, 한의학의 정교함에 대해서 가끔씩 놀랍니다.” 한국에서 1년에 20만 명의 암환자들이 생겨나고, 8만 명 정도가 암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몇 년 안에 우리나라의 암환자 숫자가 200만 명이 이를 것이고, 사망률 1위의 질병은 암이라고 한다. 미래의 암 치료는 점점 단순해 질 것입니다. 온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이 암 치료의 최종 목적지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길목에 원적외선 양자 치료법이 하나의 중요한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꿈과 소망을 들어본다. 아직도 인류가 고혈압과 당뇨 같은 질환조차도 속수무책이고, 암에 이르러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치료의 중심은 한의학에 기반을 둔 치료법이 더 각광받는 시대가 오면 좋겠습니다. 현재 암 공부와 치료연구에 푹 빠진 김 원장은 향후 서울과 가까운 강원도 원주 지역에 암 치유 센터, 요양병원, 실버타운을 두루 갖춘 대규모 복합의료시설을 만드는 것이 최종 꿈이다. 미래에는 한의학이라는 최고의 전통의학이 최첨단의 과학과 만나서 수많은 난치병들을 치료하는 백세건강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김지환(구,선국) 원장 프로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사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석사 & 박사(물리학)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겸임교수 한국물리학회 정회원 한국광학회 정회원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 (전)압구정한의원 원장 (현)백세한의원 원장 대한한방암연구회 회장
이 시대의 빛과 소금으로...AD농어촌방송선교회 차재완 최수민 부부
이 시대의 빛과 소금으로...AD농어촌방송선교회 차재완 최수민 부부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며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눈만 뜨면 스마일! 해피바이러스를 발산하며 언제나 웃으면서 우리네 인생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근심 없이 어둔 모습 없이 늘 밝게 살아가는 그런 아름다운 인생이 어디 있을까?그런데 어렵지 않게 그런 사람 그런 멋진 인생 찾아 낼 수 있었다. ‘영화제작자로 활발한 활동 중인 차지현 대표와, 이리보고 저리보고 아무리 살펴봐도 흠잡을 구석 없고 안티 없는 국민배우요 최고의 방송인으로 알려져 있는 배우 차태현’의 부모님으로 불리 우는 차재완 장로, 최수민 권사 부부를 만났다. 얼마 전 부부는 패밀리합창단 ‘남자의 자격’에서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입담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노래했다. 아름다운 노부부 모습은 세대를 뛰어넘어 참 아름다운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시청자들과 국민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시청자들은 ‘저 분들처럼 부부가 아름답게 노년을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우였던 차재완 장로는 음향감독으로 변신해 2005년 KBS에서 정년을 마치고 현재는 AD농어촌방송선교회에 집중하고 있다. 최수민 권사는 베테랑 성우다. 아차부인 재치부인으로 최고의 성우로 ‘영심이’ ‘달려라 하니’ 등에 출연해 50여년 넘게 성우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두 사람은 어디든 항상 같이 다닌다. 차재완 장로는 “서로 의지하다 보니 두 나무가 하나의 나무가 되어버렸어요”라고 말한다. 부부는 항상 유쾌하고 행복하다. 또한 로맨틱하다. 부부 사랑의 비결은 슬픈 일, 힘든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서로의 손을 잡고 멘토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의 최고 기념일은 결혼기념일이다. 최수민 권사는 세상에서 제일 감사한 일이 “남편을 잘 만난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부부는 사랑으로 똘똘 뭉쳐 보석보다 소중한 두 아들을 키웠다. 국민해피바이러스요 보석 같은 인생 차태현집사의 모습도 아버지 차재완 장로가 원조다. 차 장로는 “태현이보다 더 개구쟁이는 큰아들 지현”이라며 매일 시트콤을 찍으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두 아들도 어엿한 가장이 돼 부모님의 삶에서 배운 대로 대를 이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차 장로가 KBS방송국 근무시절 몰래 화장실에 수건을 빨아다 매일 걸어놓은 일은 ‘TV동화, 행복한세상’의 소재가 돼 감동을 주기도 했다. 부부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많은 이들에게 나눠준다. 35년 전부터 AD농어촌방송선교회를 창립해 농어촌 미 자립교회 목회자를 돕고 이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서울 친구’로 지내고 있다. 최수민 권사도 농어촌선교를 하면서 믿음이 많이 자랐다고 한다. “기도를 하면 많이 울어요. 저는 그저 소원하고 주님께 맡기면 다해주세요. 제 모든 생활이 예수님 안에서 평강이에요” 차재완 장로는 “남은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녹아져서 물처럼 살고 싶어요. 낮은 데로 흐르고 돌을 만나면 비켜가고 땅에 스미면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되고 싶어요”라며 소망을 전했다. AD농어촌방송선교회 사역 전에 하셨던 사업(푸른동산주식회사)이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방송국 직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셨을 텐데, 사업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건가요? 돈 벌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당시에 선교는 돈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아서 돈 벌어서 선교하는 일에 쓰고 싶었어요. 결혼 후에 하나님께 축복을 많이 받았고, 형제들도 방송 일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방송기술을 사용하면 사업이 될 것 같았죠. 그래서 1978년 성경을 주제로 한 상품을 개발 제작(성경 전체 녹음, 성경 드라마, 비디오프로덕션)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더니만 실패했어요. 6년간 했는데 빚이 3억이나 되었고 있는 것을 다 팔아도 빚 청산의 길은 멀어보였죠. 집도 없어서 형님 집에 얹혀서 살아야 할 정도로 참담했어요. 사업 실패 후에 너무 암담하여 어느 날은 주님께 제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도 그날 같은 기도를 했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문제는 죽음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러던 중에 마태복음 15장 귀신들린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하는 가나안 여인의 부분을 묵상하게 되었는데, 21절 말씀에서 “부스러기”라는 말이 제 마음에 와 닿았어요. 방송효과로 유명했던 차재완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없는 신세가 되어 부스러기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친구가 기독실업인회(CBMC)모임이 있다며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초청했어요. 이미 저와 제 아내의 돈을 이미 지불했다면서요. 억지로 참석하게 되었지만 실패한 사업가였기에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죠. 하지만 그분들이 방송인도 전문인사업가라며 붙잡으셨고, 그렇게 그분들과 함께하게 되었죠. 농촌에서 자라서 더 마음이 갔는지,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계실 농어촌 목사님들을 섬기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 같았죠. 그렇게 이곳(AD농어촌방송선교회)을 세우고 농어촌 목회자들에게 필요할만한 정보들을 수집, 정리하고 녹음하여 4시간짜리(목사님을 위한 정보 1시간, 사모님을 위한 정보 1시간,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정보 1시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1시간) 테이프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돈이 없었기에 라면박스를 오려가며 꼼꼼히 포장하여 임의로 50교회를 선정하고 등기로 목회자님들께 보냈죠. 보낸 후에 반응이 좋지 않을까봐 불안했는데 감사하다는 편지가 40통 넘게 왔어요. 그것에 힘입어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고 시작한지 10년 후에는 회원수가 1,700명으로 늘어나기도 했어요. 인터넷이 생긴 후로 인터넷 상의 정보를 활용하시는 분들로 인해 현재는 500교회 정도를 섬기고 있어요. 그리고 곧 우리 회원들끼리의 이야기들을 담아 인터넷 방송(영상)을 하려고 준비 중인데, 각 지역의 목사님들을 기자로 모셔서 중계방송도 하려고요. 지금은 영상은 아니지만 AD광장이라고 우리 회원들 이야기만 해서 녹음하고 보내드리고 있는데, 우리끼리의 이야기라 재미있다고들 하세요. 선교사님 몇 분에게도 발송해드리는데 본인의 이름을 불러주는 라디오방송 같다며 좋아하시죠. 또한 20년 넘게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기도회를 갖고 있어요. 각 지역의 회원 목사님들의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는 것인데, 점차 돌아다니면서 기도모임을 가질 생각이에요. 그밖에도 어느 목사님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그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찾고, 연결시켜드리는 중계역할을 하고 있어요. 농어촌 목사님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분들이잖아요. 예전에는 농어촌으로 목사님들이 가려고 하지도 않아서 목사님이 없는 교회도 많았어요.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분들이 어깨 피시고 더욱 신나게 사역하시어 궁극적인 목적인 주님께 영광 돌리고, 복음 전파에 힘쓰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섬기는 목사님들 모두가 “이제 그만 하세요”하면 모를까, 필요가 있는 이상 끝까지 할 거예요. 그러면서 농어촌 목회자들이 더욱 격려 받아 그들이 속한 마을과 농어촌 지역을 바로 세우길 원한다고 했다. 그의 농어촌 목회자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선교에 대한 그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요즘의 상황을 보면, 이단과 거짓 세력으로 더욱 분별력이 필요하고, 다문화와 고령화 등으로 더욱 다양한 사역이 필요한 곳이 농어촌지역인 듯싶다. 그러한 곳에서 자신의 욕심을 뒤로한 채 주님이 맡겨주신 그 지역을 위하여 오늘도 힘을 내야 하는 분들. 그들을 기억하며 자신의 것을 내어드리는 차 장로와 같은, 가지고 있는 달란트로 그곳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는 차 재완장로 부부를 바라보며 아! 한평생을 이토록 아름답게 살아가며, 날이 갈수록 공동화, 고령화 되어가는 우리 농어촌에 활기, 생기, 하나님의 향기를 불어 넣어주며 국가대표비타민 같은 인생 살아오며 이제는 고향 당진으로 귀향하여 호연지기를 즐기며 이 시대의 진정한 천사로 모범부부로, 모범부모로, 오늘을 살아가는 차재완 최수민 부부의 명품 인생 앞에 박수를 보내며 아! 나도 우리도 이웃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빛과 소금처럼 살아가는 이 멋진 두 분처럼 착하게 멋지게 살아가며, 그 그림자 밟으며 따라가리라! 하며 우리 사회 우리 농어촌을 빛낸 귀한 공로를 인정하며 2019대한민국을 빛낸 사회공헌 대상 수상자로 선정한다.
김원기 경기도의회 부의장,“부드러우며 강한 리더십의 경기도 일꾼”
김원기 경기도의회 부의장,“부드러우며 강한 리더십의 경기도 일꾼”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경기도의회 부의장인 김원기 도의원(더불어 민주당, 의정부4)이 지난 12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한국 언론연합회와 국회출입기자단클럽이 주관한 2018한국을 빛낸 사회발전대상 시상식에서 영예로운 올해의 의정혁신대상을 수상하였다. 김원기 경기도의회 부의장은 3선 의원으로서 그동안 낙후된 경기북부와 의정부시의 발전을 위해 경기도의 마당발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불철주야 노력해왔을 뿐 아니라 경기북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북부지역 소방관 인력 확충과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와 의정부 소방서 합동청사를 금오동 행정타운에 유치하였으며, 또한 시민의 휴식 공간 마련을 위해 서울시청 광장보다 2.3배가 넓은 경기북부청사 광장 조성을 위한 상임위 예산을 확보하는 등 그간 경기북부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었다. 금번 이 2018한국을 빛낸 사회발전대상 시상식의 선정위원장 이계춘 코리아산타학교교장은 김원기 의원이 예산 확보뿐만 아니라 2015년 1월 발생된 의정부 3동 화재로 인해 피해를 본 주민들의 보상을 위해 전국 최초로 재난사고피해자를 보상하기 위한 조례 제정과 청원경찰 복무 조례 개정 등 경기북부와 남부의 심한 개발 격차를 줄이고 오랜 시간 소외된 경기북부를 대변하며 "합리적 대화와 설득, 강함과 부드러움을 아우르는 포용력으로 경기도의회 혁신과 단합에 앞장서 경기도와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 해온 공로를 인정하여 이 상을 주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 의원은 또한 평소에도 소외계층을 두루 다니며, 추위에 홀로 외롭게 지내시는 독거노인 돕기에 몸을 아끼지 않고 그들을 품고 안아주며 같이 울고 같이 웃고 두 손 잡고 기도하는 사랑의 배달부로 최근에는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연천군 전곡읍과 기타 여러 곳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마다 각각 연탄 300장씩을 손수 나르며 새까만 얼굴의 김원기 부의장은 “연탄은 아직도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겨울나기 필수품인데 가격이 올라서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고 안타까웠다”면서 “창고에 쌓이는 연탄을 보면서 흐뭇해하시는 분들을 뵈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이 무겁다”고 말하는 김 의원은 이같이 부드럽고 때로는 불같이 강하고, 그리고 겸손함과 부지런함의 리더십으로, 의정부 주민들과 경기도민의 절대적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한 주민은 김원기 도의원만 보면 이름그대로 원기가 넘쳐 보여 늘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고 말한다. 또 김원기 의원은 19일 경기도 북부 청에서 실시한 복지 여성실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특화사업인 ‘찾아가는 영유아 인성 예절버스’ 본격적인 운영을 통하여 영유아들의 인성교육 확대 및 내실화를 주문하며 전국 유일의 특화사업인 ‘영유아 대상 인성예절 교육’은 수요가 많은 것에 비해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되고 있어 실수요자의 욕구충족을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에 대한 만족도와 문제점, 현황을 면밀히 검토·분석하여 시의 적절하게 보완하고 예산편성에 반영하는 등 만전을 기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경기북부 10여개 시군에 노인인구 및 저소득인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려 북부 청만의 자체사업으로 ‘군인가족 맞춤형 취업교육지원’이나 ‘실버건강관리사 양성과정’은 적합하지만, ‘북한이탈주민 대상사업’은 남부에도 이탈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점을 고려할 때 남부와 북부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 함께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는 등 이토록 바삐 뛰어 다니는 김 의원에게 이번 상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특유의 밝은 미소로 제가 일한 것도 없는데 너무 과분한 상입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고 또 뛰어라! 고 때리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일하는 머슴이요 심부름꾼으로 앞만 향해 곧 의정부 시민만 보고 경기도의 발전만 보고 달려가겠으며, 이 모든 영광을 함께 수고하고 땀 흘리는 경기도의원 모두에게 돌리겠다는 김 원기부의장의 겸손하고 당당한 그 모습에 왠지 정이 가고, 의정부와 경기도가 더욱 편안하고 풍요로워지고 행복해 질 것만 같은 느낌이 오는 김 의원은 얼마 전 ‘기다림이 있어 행복해 보인다.’ 는 시집을 발간한 문인으로도 알려져 있고, 사회복지사이기도 하다. 김원기 의원은 건양대학교 박사과정을 졸업하고2016 도전 한국인대상 리더십부문 수상2016 자랑스러운 경기인 광역의원부문 대상수상2017 의정활동 우수의원에 선정되는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