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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슈바이처! 이돈영 박사
우리시대의 슈바이처! 이돈영 박사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 필자는 그동안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각계각층 다양한 분야의 명인들을 취재해 왔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그 가운데 가장 연세가 지극하신 대한민국의 원로 의료인 이 돈영 박사(90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 위시티 자택을 찾았다. 우리나라 굴지의 아산병원의 효시인 울산 해성병원의 초대원장 이 돈영 박사님 댁을 들어서니 마침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계셨다. 무척 인자하시고 차분한 이미지의 박사님은 첫 마디로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취재를 왔느냐고 그냥 차나 한잔 들고 놀다 가시라고 극구 취재를 사양하신다. “어르신 아니 박사님! 취재가 아니고 오늘까지 살아오신 옛날이야기나 들어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 의학계의 큰 발자취를 걸어온 대단한 집안의 유일하고 역사적인 분으로 알려져 있고 해서 그 역사적인 내용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저희 후배들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찾아 왔으니 부디 마음 문 여시고 그동안 살아오신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간청을 하자 마침내 못 이긴 듯이 서재로 들어가시더니 색이바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들고 나오시며 바로 이 분이 제 선친인데 조선왕조 마지막 왕실 주치의 이민상 박사입니다. 제 아버님은 종로구 수성동 73번지에서 태어나 일본 총독부 산하 의사 양성소를 졸업해 의사가 되었는데 이 총독부 의사 양성소가 훗날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대학 서울대학교 의학대학의 전신이라는 역사적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후로 이민상 박사는 서울 종로구 당주동 1번지에 광화의원을 개원 서울에 몇 없는 의료기관으로 서울 뿐 아니라 전국적인 의료기관으로 우리나라 양 의학 병원으로 국민 건강의료분야에 큰 명성을 떨치게 된다. 바로 이박사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이 돈영은 선친 이민상박사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생활이 어려워져서 지금의 선린상고의 전신 선린 중학에 입학 가정을 도우며 학업에 열중하여 선린 상고의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고 1등을 거듭하며 본인의 취향대로 음악공부도 게으르지 않았고, 음악대학으로 진학할까? 선친의 뜻대로 의대로 갈까? 고민 하다 경성 의대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대에 당당하게 합격한다. 그 당시 선린상고에서 서울대 합격은 유일한 쾌거를 이룬다. 서울대의대 6기생 인 이 돈영의 입학 동기생은 120명이였는데 지금 생존해 있는 동기생중 동아제약 설립자이신 강 신호회장을 비롯 30여분 정도라며 동기생 명단을 안타깝게 보여주는 이돈영박사님은 인생무상을 말하며 해마다 숫자가 줄어들어 날이 갈수록 그 시절 동기들이 그립다고 말씀 하시며, 뜻밖에도 현대그룹을 창립하신 정주영회장과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정 주영회장은 살아생전 언제나 건강관리를 의논하고 아산병원의 전신인 울산 해성병원 초대원장으로 임명하고 그 후로 전국 각지의 현대아산병원과 정읍 아산병원 등 현대그룹 모든 병원들의 개원 산파역할을 하며 정 주영회장님이 울산에 오시면 매부 되시는 김 영주회장과 이 돈영박사는 바늘과 실처럼 같이 다니며 골프장으로 조선소로 자동차공장으로 화학 정유공장으로 함께 다니며 현대그룹의 미래설계로 밤 새는지 몰랐다고 회고한다. 한 평생 의사로 살아오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요? 나에게 환자는 어느 누구 할분 없이 다 특별했지요. 하지만 구지 말씀 드리자면 어느 날 말기 위암환자로 찾아 온 김 혜정이라는 서른 두 살의 젊은 애 엄마였지요. 갓 돌 지난 쌍둥이 엄마의 위암 진단을 하며, 도저히 위암이라는 말을 해 줄 수 없어 두 시간 여 동안을 위암입니다. 위암입니다. 차마 그 슬픈 말을 해줄 수 없어 말해주는 연습을 수없이 하여 마침내 위암이라고 말하며 의사나 환자 간호사까지 모두가 울어 버렸지만 이 돈영박사는 혜정씨 손을 붙잡고 너무 절망하지마세요 위암이라고 다 죽는 건 아니에요 우선 본인의 의지가 강해야 해요. 나는 살 수 있다.! 나는 분명하게 살 수 있다 늘 마음속으로 외쳐요!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강하고 담대해져야 해요 나도 전 세계 신 의학 기술 다 동원해서라도 혜정 씨 살려 낼 테니까 염려마세요. 같이 기도합시다. 그 당시 광림교회 장로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셨던 이 박사는 날마다 밤마다 새벽기도까지 하며 오! 하나님 김 혜정을 살려주세요. 하면서 정성을 다해 집중 치료를 했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정말 기적같이 완치가 되어 벌써 30여년이 지나 얼마 전에는 그 쌍둥이 결혼식을 다녀왔다며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며 이렇게 자신의 손으로 살려낸 환자가 가히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며 의사는 생명연장 그 보람 하나로 살아간다며 본인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아쉽지만 큰딸의 남편인 사위를 중앙대 의학박사로 두고 있고 둘째사위도 종합병원 박사로 재직 중이어서 큰 위안이 되고 있다 한다. 요즈음의 취미나 소일거리와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이제 나이가 들어 심한 운동은 못하고 집안에서 골프 퍼팅정도이고,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다고 말하며 틈만 나면 하모니카 연주에 트럼펫 연주, 색소폰연주와 클래식 음악 감상을 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 박사님 손수 하모니카 연주를 해 주신다. 실제로 집안 거실 가득 놀랄 정도로 음악테이프와 전통 클래식CD와 음향시스템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그러시다 3년여 전 세상을 떠나신 부인 오 혜선여사가 그리운지 눈시울을 적시며 아내의 사진을 어루만진다. 이 돈영 박사님께서 90인생을 살아오시며 생활신조로 삼아오신 내용은요? 하고 묻자 허허허 웃으시며 *사람을 사랑하자! 생명을 존중하자!*언제나 나 자신 앞에 떳떳 하자! *결코 남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자! 그렇게 당당하게 착하게 살아 오셨다는 이돈영 박사는 90의 한 평생을 우리국민들의 생명과 보건의료에 정진해 오시며, 틈만 나면 낙후된 오지의 의료봉사와 동남아 아프리카 등 후진국 의료봉사와 사회봉사를 셀 수도 없이 해 오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슈바이처요 히포크라테스로 멋진 인생 살아오신 자랑스러운 이 돈영박사님께 2018 올해의 사회공헌 대상을 드리고자 기쁨으로 선정합니다. *선린상업고등학교졸업*서울대 의대 6기 졸업*조선대학교 의대교수*울산해성병원개원*정읍아산병원 개원*광명 성혜 병원 원장으로 23여년 근무 은퇴. 6.25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큰 공을 세우고 호국영웅 기장을 수훈하셨다.
방송인  전원주,"인생에 2등은 없다!"
방송인 전원주,"인생에 2등은 없다!"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 항상 우리국민에게 호탕한 웃음으로 즐거움을 주는 연기자 전원주 선생은 1939년 8월8일생으로 어느덧 인생 80의 우리사회의 친근한 원로 방송인으로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시다. 방송하랴 8도 강산 방방곡곡을 다니며 강의강연도 하며 또 틈틈이 사회봉사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야기랑 구구절절 말도 못하게 힘들게 살았던 어린 시절로부터 명문 숙명여대 국문과를 나와 한 때 학교 선생님을 하다 키가 너무 작아서 칠판에 글씨 쓰기 어려워 교직을 그만 두었다는 웃자고 한 이야기가 있고 동아 방송 성우로 시작해 30여년 무명연기자의 비참한 생활에서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도 다 알아보는 국민 탈렌트가 되기까지 구수한 입담으로 엮어낸 인생 경험과 삶의 지혜와 또 국가대표 짠순이로 소문날 정도의 근검절약의 여왕으로 살아와 이제는 수십억 자산가로 재테크의 달인으로 국민 들 앞에 알뜰한 모범시민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경북 청송 군 초청 아카데미 특강에서도 한바탕 웃음 속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가슴 찡하게 감동까지 주었다고 한다. 2018 한해를 보내며 가장 보람 있고 인상 깊었던 일은?지난여름에 저 멀리 남쪽 반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평생을 눈물과 한으로 살아 온 한센인 들 앞에서 노래로 춤으로 깔깔깔 코미디언식 웃음 이야기로 달래며 어떻게 해서라도 재미있게 해 주어 보려고 애를 쓰며 남들은 옆에 다가가는 것조차 꺼리는 나환자들 아니 한센인들 한 분 한 분 만져주고 안아주며 힘내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진땀을 뺀? 위문공연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시울을 적시며 “아! 좋았어요. 오늘 정말 좋았어요. 다른 어떤 봉사 활동보다 보람 있고 뜻있는 소록도 행사였어요.” “정말로 저분들의 한을 풀어주고 기쁨을 줄 수만 있다면 이 천리 먼 길 고흥 가는 길이 결코 멀지 않지요. “앞으로는 동료 연예인들과 더 짜임 새있는 공연 팀을 꾸려 와서 저분들의 눈물을 닦아 드려야겠다.” 며 씩 웃는 모습의 전 원주 선생님은 타고 난 방송연기자이고 사회봉사자이고 이 시대를 빛과 소금처럼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작은 천사로 멋진 인생 살아가고 계신다. 그는 일을 만든다. 일을 좋아한다. 전 원주는 전국 어디를 가도 현지에서 꼭 일을 만든다. 사람을 만든다. 인맥을 쌓고 평소에 그 인맥을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연기자로 유명하다. 돈보다도 사람이 재산이라니까? 아니 나의 소중한 자산 이지요. 하며 소록도를 나와 그날도그 바쁜 와중에도 고흥에 왔으니 한 군데 꼭 들려야 한다며 전 세계 권투 챔피언 류 제두 선수의 출생지로 잘 알려진 고흥군 두원면으로 달려간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어촌마을 예회바닷가에 자리 잡은 ‘태양 식품’이라고 간판이 걸린 석류농장 겸 가공공장으로 달려가서 웬 남자를 와락 껴안는다. 아이고! 내 동생아. 카우보이모자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호감 가는 인상의 김 여종이라는 이 사나이도 버선발로 뛰어 나와 아이고! “우리 누님 오셨네.” 마치 이산가족상봉이라도 하는 듯 반가이 만나는 두 사람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고흥 쪽에 오면 반드시 들러 남매의 정을 나누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 ‘태양식품’의 대표인 김 여종대표는 그 옛날 문익점이 붓 대롱 속에 목화씨를 숨겨 왔듯이 지금으로 부터35년 전 저 멀리 터키를 여행하며 석류 씨를 몰래 가져와 이곳 고흥 땅에 석류를 뿌려 오늘날 고흥의 유명한 특산품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여성들의 건강에 필수적인 건강식품을 생산하고 보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숨은 일꾼이자 보배 같은 분이고 또 틈틈이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가수로 활동하기에 오래전 행사로 만나 전 원주선생님의 패밀리가 되었고, 또 전국에 석류를 알리는 홍보 대사 역을 맡고 있으며, 그날도 석류와 전원주의 홍보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왔다 한다. 2억 정도 들어가는 석류상품 CF모델료와 상품마케팅과 홈쇼핑 방송출연을 무료로 봉사하겠다고 자청하는 전 원주선생님은 이렇게 전국 어디를 가도 지역과 중소기업과 농촌경제를 살리는 장하고 귀한 사회봉사와 재능기부에 땀을 흘리고 있으며 방송할 때나 강의할 때마다 우리국민들과 젊은 후배들에게 던져주는 전원주의 메시지는 있을 때 아껴라! 돈 떨어지면 아낄 것조차도 없어진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 건강을 잃으면 다 잃어버린다. 인생에 2등은 없다 무얼 하든 1등 하려고 노력해라!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라! 누구에게나 핸디캡은 있다. 나를 보아라! 키도 작고 얼굴도 못 생겼지만 이제는 누구나 알아보는 1등 스타가 되었지 않는가! 내가 가난과 무명시절의 한과 이 신체적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겠는가?.................. 전원주 선생이 던져주는 삶의 이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자극을 주며 다시 일어나 도전하게 한다. 전원주 선생의 저서로는?전원주가 한다면 나도 한다. 와 짱 아줌마 전원주의 딱 열흘 만에 졸업하는 증권학교 외 다수가 있고 수상은1998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수상2016년 대한민국 성공대상 수상 에너지절약부문 산업포장 수상 방송부문 문화예술대상 수상 2018년 한국을 빛낸 사회발전대상 올해의 방송연예대상 수상 등 다수가 있다.
가수 김국환, "타타타와 달래강의 歌客, 이시대의 진정한 藝人!"
가수 김국환, "타타타와 달래강의 歌客, 이시대의 진정한 藝人!"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필자는 우리나라 수많은 가수들 중 유난히도 가수 김국환을 좋아한다. 필자가 어린 시절 영등포에서 자전거배달을 하고 시장 상점 판자대기 위에서 잠을 자며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하며 고생하던 그 시절 유일하게 힘이 되고 그 가사와 멜로디가 좋아 늘 즐겨 부르던 노래가 김국환의 ‘꽃순이를 아시나요’ 였다. 그 꽃순이는 3년 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라 생각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내 사랑 꽃순이..... 꽃순이.....수도 없이 불러댔다. 그 후로도 내가 힘들 때마다 김국환의 새 노래는 나의 애창곡이 되었고 나에게 그래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는 큰 힘이 되었다. 아마 나 뿐 아니라 우리시대의 사람들 모두가 그랬을 거다. 은하철도999, 매칸더 브이, 미래소년코난, 검정고무신, 이런 노래를 우리 집 아이들도, 훗날 내가 유치원을 경영할 때 우리유치원 아이들은 마치 학교 교가 부르듯 불러댔다. 이런 내 인생, 내 사연? 의 심장 같은 주인공 김국환을 만나 본다. 시골 아저씨같이 털털하고 구수한 이미지의 타타타의 국민가수를 내가 오늘 이렇게 만나다니 얼마 전 TV인생다큐 마이웨이에 방송되어 그렇잖아도 국민들과 시청자들의 가슴에 많은 감동을 주었던 터라 더 존경스럽고 반가웠고 또 개인적으로 평소 형님 아우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국환이 형님의 얼굴은 여전히 패기가 넘치고 젊고 그야말로 멋진 신사 그대로였다. 와! 우리 국환형님 반갑습니다. 형님! 방송 잘 봤습니다. 그래 아우야 너도 건강하구나. 우리 둘은 와락 껴안았다. 형님의 모든 노래는 참 남다른 특징이 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고 요동치게 하는 놀라운 마력이 있어서 어린이 만화 주제가로부터 타타타 같은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짙고 애잔한 호소력도 있고, 목소리자체도 청아하고 맑은 음색을 갖고 있지요. 그런 음악의 특성 때문에 어린이로 부터 온 국민이 김국환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우리나라 어떤 가수도 어린이 만화 주제곡부터 성인가요까지 섭렵하고 정복한 가수는 형님 김국환밖에 없잖아요? 그런 깊은 내공이 바탕 되어 머지않아 타타타를 훨씬 능가하는 김국환의 국민가요가 탄생할거 같은 예감이 떠오릅니다. 그 옛날 이 순신장군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었듯이 형님 김국환에게는 미래 소년 코난, 은하철도999를 목이게 외치던 800만의 어린이 군단이 이제는 이 시대를 구성하는 주역 4. 50대가 되어 있고 또 하나의 히트곡 ‘접시를 깨트리자’ 노래에 매료 되었던 800만 대한민국의 주부 펜들이 잠재적 응원단으로 편재되어 있으니 곧 대박 노래가 예상됩니다. 했더니 그래 아우야 정말 고맙다. 그건 아우의 단순한 칭찬과 덕담이 아니라 국민들과 펜들이 김국환 다시 일어나라고 나에게 크게 휘두른 사랑과 응원의 채찍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잖아도 지금 방송에서 또 전국의 노래교실마다 ‘달래강’이라는 신곡이 엄청 히트되고 있어! 이 노래는 둥지, 봉선화연정, 네 박자, 신토불이 등 히트곡의 대명사 KBS전국노래자랑의 심사위원 김 동찬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인데 가사내용부터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곡이라네. 어쨌거나 다시 한 번 멋진 노래! 불후의 명곡 한번 만들어 보자며 마치 도원의 결의 하듯 굳게 두 손을 잡아 본다. 이날 얘기 가운데 화제는 단연 TV방송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이 시대의 가요계의 전설이요, 황제 남진과의 만남 이야기였다. 이날 김국환은 디너쇼 포스터를 찍는 남진을 찾았다. 오메 우리 국환이 와 부렀는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국민가왕 남진은 마치 백년의 친구를 만난 듯 진심으로 아우 김국환을 반갑게 맞아 주는 정 넘치는 모습을 나와 우리 시청자들은 단박에 알아보고 두 가왕의 뜨거운 우정을 보고 모두가 흐뭇하게 지켜보았고, 이 자리에는 국민들의 사랑받는 인기가수 현당도 박수로 응원하며 대 선배가수 두 분의 우정의 조우를 부러운 듯 지켜보았다. 남진은 그 옛날을 회고하며 아따 그날 말이여 “라디오를 굉장히 늦은 시간에 무심코 틀었는데 너무 멋진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가 누구 노래여? 하며 뛰는 심장 추스르며 그 노래를 흥분하며 들었노라고 후배 김국환의 ‘타타타’를 언급했다. 이날 남진은 “그때 그 무렵은 김국환이 방송에 거의 안 나오던 때였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한 번씩 나올 때인데 타타타 그 노래 듣자마자 ‘아 때가 왔구나.” 드디어 우리 동상 김국환의 노래가 대박 나겠구나! 마치 내 노래 ‘님과 함께, 가슴 아프게’가 히트 되듯이 내 일처럼 기뻤다. 라고 생각하며 진짜 너무 좋았었다고 흥분하듯 말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6개월 지나니까 난리가 나더라. 진짜 멋있었다. 와! 국환이 노래 너무 잘부르더라.” 며 김국환의 타타타 대박 기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남진은 “‘타타타’를 다른 사람이 불렀으면 히트가 안됐을 것이다. 임자가 따로 있다. 그건 하늘이 주신 복이다”며 “아주 한 성격 하는데 잘 버텼다”고 말했다. 이에 가수 현당 역시 “감당하기 쉽지 않다. 형수님이 눈물어린 뒷바라지 했다”고 거들었다. 또 남진은 “우리 제수씨가 복덩어리다. 아우님이 이만큼 스타가 된 것도 하늘이 주신 복이지만 훌륭한 아내 만난 것도 복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방송에서 김국환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한편, 어머니를 기렸다. 이날 김국환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사진과 함께 “이때 고등학교 다니면서 문제 일으켰을 때죠. 꼴통, 꼴통”이라며 “남을 때리고 그런 게 아니고 (음악) 그룹을 했는데 어머님의 지독한 반대 속에 진짜 꼴통 자식이었노라”라고 회상했다. 그래도 음악성은 천부적 소질이 있어서 스무 살 충청도 보령 촌놈 김국환의 음악은 많은 음악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김국환은 “학교 다닐 때는 트로트를 좋아했었는데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가수가 되겠다고 작심하고 김희갑 악단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희갑 악단에서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한 김국환은 1977년 ‘꽃순이를 아시나요’ 주제곡을 부르며 눈도장을 찍었다.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지만 긴 무명생활이 계속되었고 그에게 어느 날 운명처럼 찾아온 기회는 만화 주제곡이었다. ‘은하철도 999’주제곡을 부른 이가 바로 김국환. 이 일을 계기로 30여곡 만화 주제곡을 불렀다. ‘메칸더V’, ‘미래소년 코난’, ‘축구왕 슛돌이’ 등이 그가 이런 만화 영화 주제가를 부르며 반전의 기회를 노리던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곡이 타타타 그 당시 65%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리던 인기드라마 ‘사랑이 뭐 길래’의 삽입곡으로 뜬 이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김국환은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가 돼 있더라’ 그 말 그대로 제가 몸소 체험한 사람”이라고 당시 인기에 대해 전했다. 그가 가수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부모님의 믿음이 있었다고. 이날 방송에서 김국환은 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다. 아부지 엄니! 국환이 왔슈 지 노래 좀 들어 보셔유! 지 노래를 이제 국민들이 다 불러유.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건졌잖소....어허허 허허.... 그런데 불행이도 김국환의 이 노래 ‘타타타’가 세상에 나오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우리 아버지가 ‘타타타’ 히트되는 거 보고 돌아가셨으면 제가 진짜 마음이 편안할 텐데 그게 좀 안타깝죠” 라며 아쉬워했다. 그 후로 3년 후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크다는 김국환은 “제일 한이 되는 게 어머니의 눈”이라며 아들이 ‘타타타’ 부르면서 아침, 저녁으로 TV에 시도 때도 없이 나오니까. 우리 동네가 나무장터였거든요. 그러면 동네 할머니들이 문 앞에 와서 ‘나무장터 할머니 아들 또 나왔슈’ 그런대요.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봐야 하는데 그 당시 백내장 녹내장 수술로 인해 나를 못 보셔서 귀로 보다가 돌아가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어머니가 제일 불쌍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는 “항상 신곡이 나오면 부모님 산소에 가서 크게 틀어드리고 ‘아버지, 어머니 신곡 나왔어요.’하고 큰절 한 번 하고 와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참아냈다. 이날 방송에서는 동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던 김국환의 아내 이 옥희씨도 등장했다. 김국환은 “제가 옛날엔 반찬투정도 좀 하고 그랬었는데 한 십여 년 전부터는 절대 그런 말 안 해요. 아버지가 어머니 속 썩이듯이 저도 우리 아내 속 많이 썩혔어요. 라고 말하자 아내 이 옥희씨는 진짜 아주 징그러울 정도로 속 썩혔는데 지금은 정말 잘해요”라고 말했다. 달라진 김국환은 아내와 다정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국환은 지금 한국 불자 가수 회 회장, 또 사랑봉사회 회장으로 각종 행사장과 산사 음악회 등에서 다양한 사회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고향 보령 머드 축제 홍보대사로 맹활약하며 이 시대를 건전가요로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이시대의 진정한 모범시민이요 藝人으로 살고 있다. 수상경력으로는? *2008장한 한국인상 문화대상 수상*한국 방송가요 대상 수상*KBS 가요대상 수상*SBS 서울가요대상 수상*MBC 올해의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타타타의 그해 연말 각종 가요대상을 휩쓸었다.*음반대상 *노랫말 대상 등 다수 수상*2018년 한국을 빛낸 사회발전대상 올해의 방송가요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