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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과 현충의 노래, 2020년 6월 6일의 현충원
[청로 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과 현충의 노래, 2020년 6월 6일의 현충원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현충일(顯忠日)!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대한민국의 기념일 입니다.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戰亂)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 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행해집니다. 이날이 되면 불리워지는 노래가 “현충의 노래”(조지훈 작사/임원식 작곡)입니다. -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님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 현충일이 되면 불리우는 노래입니다. 제65회 현충일을 맞아 2020년 6월 6일 오전 9시50분 강릉시 경포동 충혼탑에서 현충일 추념식을 거행되었는데, 추념식은 국민의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헌화, 분향, 추모헌시 낭독, 추모사, 현충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구시교육청은 제65주년 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 추모 헌시 낭독 및 감사인사’ 영상과 ‘현충의 노래 배우기’ 영상을 제작해 보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영상은 코로나19로 기념행사가 축소된 상황 속에서 계기교육에 대한 공백을 최소화하고 현충일의 의미와 배경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호국보훈의 정신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함양시키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현충의 노래’ 등, 두 영상은 누구나 시청할 수 있도록 대구시교육청 공식 유튜브(Youtube) 채널에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충의 노래”는 점점 망각의 세계로...!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로 약 44만 평(144만㎡)의 대지에 설립되었습니다. 국립 묘지는 나라를 위하여 공을 세웠거나 생명을 바친 분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나라에서 마련한 묘지입니다. 이 묘지에 묻힐 수 있는 사람은 전사한 장병을 비롯하여 학도 의용군 · 향토 예비군 · 경찰관 · 국가에 공이 많은 사람으로서 국무 회의의 의결을 거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립 묘지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에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서울 동작동에 설립되었던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되기 시작했고, 1976년 4월 14일 현재의 위치로 결정되었습니다. 197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고, 1985년 11월 13일 준공했습니다. 동작동 국립 묘지 정문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곳을 지나면 현충문과 현충탑, 무명용사의 비(碑)가 눈에 띕니다. 무명용사의 비는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름 모를 용사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곳입니다. 산기슭까지 펼쳐진 넓은 경내의 푸른 잔디밭에는 전사한 장병들의 묘비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묘비에는 전사한 장병들의 계급과 성명, 전사한 장소와 날짜가 새겨져 있습니다. 평소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찾지만, 특히 현충일에는 거국적인 추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2019년도 6월 6일 현충일! 국가보훈처는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오전 9시55분부터 국가유공자 및 유족,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10,000여 명이 참석한가운데 제64회 현충원 추념식이 개최하였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는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을 개최하였는데, 특히 이번 추념식에는 국외 안장된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유족 및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 고지 등에서 유해가 발굴된 6.25 전사자 유가족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이날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슬로건 하에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 추념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추모묵념을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을 하였습니다, 이날 추념식에서 “현충의 노래”는? 2020년도 6월 6일 현충일! 필자가 아침 6시에 동작동 국립묘지 정문에 들어서자 풍광이 고운 묘지 전경이 눈앞에! 이 동작동에 필자가 가끔 찾는 묘지가 있습니다. 국립묘지 파월 전사자 묘역! 젊은 영혼들, 그들은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 가 싸우다 불귀의 객이 된 한국군, 파월장병들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이 곳에 채명신 초대 주(駐)월남 한국군 사령관의 묘가 있습니다. 채명신(蔡命新/1926~2013.11.25)은 월남전의 영웅으로 손꼽히는데, 2013년 눈을 감으면서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습니다. 필자는 1966년 정부에서 마련한 제1기 파월장병위문단의 일원으로 맹호부대를 방문, 거기서 채 장군님을 만났습니다.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갔는데, 그의 인품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묘를 찾습니다. 채명신과 프랑스의 샤를르 드 골(Charlesde Gaulle/1890~1970)은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드골이 생각나는 것은...군대 경력을 거치는 동안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독창적인 사고를 갖춘 인물로 유명했던 장군, 프랑스 제5공화정을 건설한 정치가 드골, 195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드골은 정적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라고 합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인물이 없을까요? ‘채명신’은 다수의 국민들이 잘 모르니...하지만 그는 분명 존경받을만한 인물입니다. ‘채명신’에 대한 재조명을 바라는 2020년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2020년도 6월 6일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개최된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국가를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추념식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수도권 방역이 강화되면서 장소를 대전으로 옮겼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 달력⑥6월과 6·25한국전쟁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 달력⑥6월과 6·25한국전쟁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조선출판물수출입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0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 “주체 JUCHE 109 (2020)”/ “조선출판물수출입사 Korea Publications Export & Import Corporation”라는 글이 있습니다. 2020년 새 달력 ‘6월’에는 사진 “백두산 등판의 만병초”가 있습니다. / 달력 6월의 1일부터 30일 사이에는 [6일]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조선소년단 창립절” 입니다. 그 아래에는 [망종 6.5/ 하지 6.21]가 있습니다. 6월 달력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도! 다음은 6월 달력에 있는 문장들입니다. 6월 달력 : 주체 53(1964). 6.1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 June 19, Juche 53(1964):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Jung Il was started working at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 주체 105(2016) 6.29.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였다./ June 29, Juche 105(2016):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elected Chairman of the State Affairs Commission of the DPRK. // 주체 15(1926). 6.5.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였다. / June 5, Juche 15(1926): Kim Hyong Jik, an outstanding leader of the anti-Japanes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in Korea, passed away. // 누군가 ‘전쟁은 활발하고 훌륭한 역사를 만든다’ 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비참한 전쟁으로 기록된 ‘6․25’가 발발한 6월이 되어도 한국민들은 여느 때처럼 ‘6․25’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우리 국민들은 삼백육십오일 내내 ‘분단의 아픔’을 잊고 삽니다. 물론 분단의 현장에서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며 ‘활발하고 훌륭한 역사’를 추구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끝없는 전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전쟁’이란 영화는 있겠지만, 전쟁은 영화처럼 시작과 끝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병법의 손자(孫子)는 “전쟁이란 국가의 중대사로 사생(死生)의 분기점이며, 흥망의 경계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해서 ‘고스톱’도 아닌 전쟁판이 자주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만용과 피의 살육을 일삼는 아레스신(神) 때문도 아니고, 미친 듯 도륙을 한 황폐의 여신 때문도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의 소산일 뿐입니다. 그러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한마디로 전쟁광들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 중에서 광적인 전사는 무수합니다. 현대사만 보더라도 히틀러, 무솔리니, 그리고 김일성 등이 있습니다. 1950년 평양의 군사신문인 <조선인민군>지는 “남한이 6월 25일 이른 새벽에 38선 이북의 영토에 불의의 침공을 가해왔다”는 내각의 성명을 기사화했습니다. 그리고 사설에서 “조국통일의 날이 왔다! 모든 조선인들은 조국과 인민과 그리고 경애하는 김일성수령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며 독립과 통일을 위해 궐기해야 한다. 남조선인민들을 해방하기 위해 어서 전선으로 나가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기원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북한공산군은 아무런 정당성도 갖추지 않은채 예고없이 도발적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했다”고 한 딘 에치슨의 단언이 아니더라도 증거가 명명백백(明明白白)합니다.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6․25관련 외교문서목록을 받아내면서 모든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안에는 <조선인민군>의 허위가사를 믿고 있는 무리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김일성의 남침’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는데도 말입니다. 김일성은 전쟁광이 분명합니다. 그럼 모든 전쟁광들의 최후는(?) 전쟁광 김일성! 한반도를 핏빛으로 물들인 그는 살아 生前에 ‘전 인류의 태양, 위대한 대원수’가 자기라는 망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똑똑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면서, 착한 백성들에게 자기를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태양’,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선량한 북한사람들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독재자의 폭정 속에서 잘도 참고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항상 ‘인류가 낳은 전설적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전쟁광 김일성의 최후는?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950년 6얼 25일 한국전쟁을 일으킨 지 44년 만에 저승길로! // 대한민국 <나무위키>: “김일성의 이 무식함을 증명하는 일례가 바로 6.25 전쟁이다. 김일성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군세를 잃고 평양마저 함락 당한 끝에 강계까지 도망쳤는데 만약 펑더화이와 쑹스룬 등이 이끄는 중공군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완벽하게 망할 뻔했다.”// 그가 죽으면서 6.25는 “자기가 꾸민 전쟁”이라고 실토했더라면, 지금의 한반도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화했고,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11.1%에 해당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2020년 6월 북한 달력에는 아무 말도 없지만...남·북한의 모든 한민족은 전쟁광 김일성을 영원히 역사박물관 속에 특별전시하여 그의 惡行을 지구촌 사람 모두에게 알려야 할 것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靑魯 이용웅 칼럼]“序詩, 3.15 예순 해”와 馬山, 詩人의 月影 合浦바다
[靑魯 이용웅 칼럼]“序詩, 3.15 예순 해”와 馬山, 詩人의 月影 合浦바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신마산 문화동 연애다리에/ 향기로운 벚꽃잎들 개울 따라 합포바다로 돌아가는 이유를/ 그대는 아시는가/ 꽃잎이 찾아가 마산바다 다 덮는 이유는/ 오직 그 눈물의 영혼 따뜻이 덮어주는 일/ 마산중앙부두에 청춘을 묻은 그를 위해/ 삼월에 꽃은 피고/ 사월에 꽃은 진다/ 구마산 부둣가에서 시인 백석이 사랑을 찾아 통영 가던 배를 타던/ 시의 바다, 시인의 바다, 마산 바다여/ 이루지 못한 그대의 꿈은 얼마나 푸르렀을까/ 피지 못한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붉었을까/ 오동동, 오동동 타령이 아니어도/ 그리운 사람, 뜨거운 노래/ 지금은 사라진 신마산, 북마산, 구마산역이 살아나 기적이 우는/ 가슴 뛰는 마산, 아아 우리의 마산이여/ 돌아보면 꽃잎이 떠난 자리/ 영혼의 눈빛 닮은/ 새잎, 연초록 새잎마다 눈이 부시다” 정일근의 詩 “그리운 사람, 뜨거운 노래ㅡ서시, 3.15 예순 해” 입니다. 정일근(1958/진해) 시인!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1984년 <실천문학>에 “야학일기>” 등 7편의 시를 발표하고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詩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현재 경남대학교 석좌교수로,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 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詩人과 筆者! 필자가 경남대 불어불문학과에 재직하고 있을 때, 시인은 국어교육과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불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수강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졸업할 때 까지 여러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그리고 학생 시위를 주동하기도 했던 시인과 필자는 학생운동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둘은 여수 여행 등을 하면서 삶을 얘기했고,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등에서 만나 예술세계를 함께 섭렵하기도 했습니다. 詩 “그리운 사람, 뜨거운 노래ㅡ서시, 3.15 예순 해”는 시인과 필자의 과거이기도 합니다. “신마산 문화동 연애다리에/ 향기로운 벚꽃잎들 개울 따라 합포바다로 돌아가는” 시냇가의 가로수들은 정겨웠고, 합포바다는 望鄕의 그리움이었습니다. 그 문화동은 필자의 주민등록 주소 중 하나였습니다. 집에서 바라보는 무학산은 수채화처럼 고왔습니다. 합포바다는 ‘가고파’ 였습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김동진 작곡/이은상 작사) 작사가가 친일파인들 이제 와서...합포(合浦)는 영원한 그리움입니다./ 마산 바다! 합포(合浦)! 마산이란 명칭은 고려 시대에는 보이지 않고 <신증 동국 여지 승람> 창원 도호부조에 합포와 아울러 마산포란 명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현 마산시 지명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그 후 1899년 5월 1일 마산포는 개항장으로 발족되고, 1906년 영사관은 이사청으로 개편되고 1914년 부제 실시로 마산부가 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6월 29일 개항장으로 지정되고 그 해 8월 15일 부를 시로 개편한 이래 마산이란 지명이 사용되었습니다. 합포(合浦)는 마산의 옛 이름으로서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 합포현이 설치되었고, 고려 시대인 1282년(충렬왕 8) 회원현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90년 통합 이전의 마산시에 합포구와 회원구가 설치되었다가 2001년 폐지되었으며 2010년 마산·창원·진해가 통합되면서 옛 지명을 살려 마산의 남부 지역을 마산합포구로, 북부 지역을 마산회원구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누군가는 마산시가 창원시에 속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직도 ‘마산’을, ‘합포’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수 하춘화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리워서 찾아온 고향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 돝섬으로 나를 데려다 줘 그 님을 만나야 한다/ 사랑 사랑 한다고 말이나 하지 말지/ 추억이 맴도는 갈매기만 맴도는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 무학산아 너는 알겠지 용마산아 너도 알겠지/ 내 목숨처럼 사랑한 사람 그 님은 지금 어디에 사랑 사랑 한다고 말이나 하지 말지 가포에 있을까 만날재에 있을까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작사 하춘화/작곡 이호섭) 詩 “그리운 사람, 뜨거운 노래ㅡ서시, 3.15 예순 해”를 쓴 정일근도,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를 노래한 하춘화도 경남대학교 출신입니다. 경남대학교(慶南大學校)!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는 2020년 4월 20일 본관 4층 대회의실에서 ‘개교 74주년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박 총장은 “그동안 경남대의 성장과 발전에 힘써온 한마가족과 개교 74주년을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며 “코로나19의 글로벌 팬데믹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대학 구성원 모두가 일치단결한 자세로 서로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 나간다면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詩人과 筆者은 사제(師弟)로 만나, 지금도 인연(因緣)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수 앞바다에서 여수시인들과 밤새 정담을 나누기도 했고,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최참판댁에서 하동녹차를...지난해에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영화감독 진모영(님아,그 강을 건너지 마오-연출)과 뜻 깊은 시간을 가졌고, 현재는 주로 글 주고 받기를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인 정일근의 길에 동행하면서 그가 아직도 다 쓰지 못한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의 진실 규명 등을 지켜볼 것입니다. “시인이란 먹구름 타고/ 비바람을 쫓으며/ 사수(射手)를 비웃는 황제라 할까/ 땅 위에 귀양 오면 뭇사람의 비웃음을 온몸에 받고/ 큰 날개에 걸리어 걸음도 못 걷는데..”(보들레르/Baudelaire/1821~1867/Paris) // 이제부터의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계속 정진(精進)해 주리라 믿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먹구름 속 2020년 五月의 희망! 그래도 보이네!
[청로 이용웅 칼럼] 먹구름 속 2020년 五月의 희망! 그래도 보이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어두운 나의 마음 속에서/ 난 모든 게 아름답게 보여/ 그러나 내가 그저 태양빛을 느낄 수 없을 때는/ 아무 것도 이뤄 놓은 것이 없겠지/ 그러므로 봄의 계절이란/ 어둠의 계절이란거야// (엘리어트/荒蕪地) T.S 엘리어트(Eliot/1888~1965)의 4월은 분명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희망의 달‘이라는 5월에 그의 “대성당의 살인”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파멸의 봄은 우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처참한 여름은 시내 밑바닥까지 태워버릴 것“이라고! 우리의 2020년 시인의 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봄이 파멸의 문턱에서 서성이기도 했지만, 절망의 계절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2020년 여름이 ’처참한 여름‘이 되면 어쩌나 하는 헛된 망상(妄想)에 잠시 빠졌습니다. 2020년의 五月! 예년 같으면 희망(希望)을 주었던 어린이 날 ·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가정의 달’에 희망을 얘기해 보았지만, 절망(絶望)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옛 시인 노천명(盧天命/1911~1957)은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2020.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코로나’ 덕분입니다. 2019년의 오월! 우리는 오월을 ‘잎의 달’, ‘태양의 달’이라고 했고,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도 사랑한다고 했으며, 절망도 체념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권태로운 사랑 속에서도, 가난하고 담담한 살림 속에서도 우유와 같은 5월의 공기를 미시며 건강한 희열(喜悅)을 맛보았습니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는 “온갖 싹이 돋아나는/ 아름다운 시절 5월에/ 내 가슴 속에서도/ 사랑은 눈을 떴소/ 온갖 새가 노래하는/ 사랑하는 시절 5월에/ 사랑을 참다 못해/ 임께 나는 호소했소”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5월이 되어 꽃 봉우리 싹틀 때/ 내 가슴도 사랑의 그리움이 싹트다”고 했습니다. 어느 작가는 “5월, 오월은 푸른 하늘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希望)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희망(希望)! 공자(孔子) 왈(曰)! 안연(顔淵)과 자로(子路)가 옆에 있었습니다. 공자 “너희들의 希望을 말해 봄이 어떨까?”/ 자로 “저는 거마(車馬)와 가벼운 털옷을 친구와 공유하다가 상하여도 유감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원합니다.”/ 안연 “저는 착한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또 공로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할까 합니다.”/ 자로 “선생님의 希望을 듣고자 하옵니다.”/ 공자는 “나는 늙은이를 평안케 하며 친구에게 믿음 있으며, 연소자를 사랑으로 감싸 주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곰곰이 공자의 ‘희망’을 생각해 봅니다. 희망(希望)! 어휘의 의미보다 공자의 ‘희망’을 되새셔 봅니다. 관악산(冠岳山) 자락 보금자리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과제 채점을 하고 있는 필자의 희망은 1학기 성적 평가를 정확하게 마치는 일입니다. 그리고 21세의 외손주가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 유학 중인데, 귀국해서 “할아버지, 자기 격리 끝나고 집에 다시 왔어요”라는 메시지를 주었을 때, 필자가 희망을! 인천 사는 6세의 친손주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 해요!”라는 카드를 받았을 때 확인한 필자가 희망을 생각했습니다. 먹구름 속 2020년 五月의 희망이 이 메시지들 속에서도 보입니다. 희망! 서울사대부고 15회 동기 윤계섭 박사(서울대 상대 명예교수)와의 카톡/ [尹]“..코로나 세월을 보냈구려. 밤낮 혼자 지내던 습관은 새삼 다를 게 없어 잘 지냅니다. 과거 섭지코지에서 찍었던 사진 벌써 추억 속에 있네요.../ [李]”비가 오네요! 윤 박사의 새벽 메시지는 나에게 희망의 여명과 같았소. 나는 관악산 자락에 있는 보금자리에서 학생들 과제 채점하면서 더럽혀진 세월을 잘 보내고 있소. 코로나가 죽으면 우리 인사동 찻집에서 정담을 나누기로 해요.”/ [尹]“약속합니다./ 먹구름 속 2020년 五月의 희망이 이 대화 속에서도! 희망! “답답한 마스크에 미소를, 해피 스티커 붙이세요”-2020년 5월 19일 字 <중앙일보>의 코로나 극복 캠페인 '해피마스크' 기사의 제목입니다. 신문은 ['마스크 꼭 쓰자, 재미있게' 메시지 담아/ 디자이너 '어벤져스' 9인 스티커 재능 기부/ 전국 독자·의료진·소상공인·교사에게 배포] 했습니다. 신문은 디자이너 9명의 ‘해피마스크’ 스티커를 무료 배포하고, 의사협회를 통해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 선 전국 의사·간호사에게도 전합니다. 거대 언론이 작은 희망을 쏘아 올린 것! 먹구름 속 2020년 五月의 희망이 이 스티커 속에서도 보입니다. 희망! [수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보내는 희망가…“안녕, 미누”]-영화 “안녕, 미누” 줄거리- 정부의 묵인 하에 80년대 말부터 이주노동자가 대거 한국의 산업현장에 투입됩니다. 1993년 미누 씨는 1세대 이주노동자로 1992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는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가스 벨브 공장을 거쳐 창신동의 봉제공장의 재단사로 일했습니다. 2003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으로 단속·추방을 벌였습니다. 열흘 만에 1233명이 연행됐고, 606명이 강제 출국되었습니다. 이에 저항하다 11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3년 당시 미누씨는 이주노동자 권리에 눈을 뜨고 동료들과 모여 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에 모여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국말 구호를 따라 하지 못하는 동료 농성 단원들을 위해 한국 최초 다국적 밴드 '스탑 크랙다운'을 결성, 보컬로 활약했습니다. 이 영화는 제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8) 개막작으로 선정됐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입국이 번번이 무산된 미누씨는 이때 영화제 관련 장소에 머무는 조건으로 2박3일간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여 후 그는 10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지혜원 감독은 “미누 씨가 한국에 있을 때 법적 문제는 컸습니다. 그래도 사회 온정은 남아 있었습니다. 아프지 말라거나 아프면 나에게 오라거나, 사장으로 부르지 말고 밥 같이 먹자고 말하는 온정”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먹구름 속 2020년 五月의 희망이 이 영화 속에서도 보입니다. “안녕, 미누”는 2020년 5월 27일 개봉합니다./ “希望은 강한 勇氣이며, 새로운 意志”(M.루터/1483~1546).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스승의 날-문재인 대통령-“이 땅의 모든 스승을 존경”
[청로 이용웅 칼럼]스승의 날-문재인 대통령-“이 땅의 모든 스승을 존경”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우리말 대사전(한글학회 지음]“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여 주는 사람” / “스승의 날 : 스승의 길을 다짐하는 뜻으로 정한 날. 해마다 5월 15일. 1963년에 은사의 날로 시작되었으며 1973년에 없앴다가 1982년에 되살렸다.” 스승! 현대사회에서는 뜻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스승의 날!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고 명맥(命脈)을 이어온 기념일입니다. 백과사전에는 그날을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교권 존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초기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으며, 1982년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켜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청소년적십자 단원이었던 충청남도 지역의 강경여고 학생들이 현직 선생님과 은퇴하신 선생님, 병중에 계신 선생님들을 자발적으로 위문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의미 있게 여긴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는 1963년, 9월 21일을 충청남도 지역의 '은사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실시했습니다. 1964년부터 '스승의 날'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이해에 날짜도 5월 26일로 변경되었습니다.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의 탄생일인 5월 15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1966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방송 매체에 보급하면서, 노래와 함께 행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 1973년 3월 모든 교육관련 기념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로 통합되면서 '스승의 날'은 1981년까지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1982년 5월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9년만에 부활했고,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날에는 “스승의 날 노래”(작사:윤석중/작곡:김대현)도 있습니다. // 1절/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 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그 수고 무엇으로 덜어 드리랴/ 그 은혜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2절/ 오월에도 보름 날로 날을 받아서 세종날을 스승의 날 삼았습니다/ 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안끼쳐/ 기쁘게 해드리자 우리 선생님/ 스승의 가르침은 마음의 등대/ 스승의 보살핌은 사랑의 손길/ 또 “스승의 은혜”(작사:강소천/작곡:권길상)도 있습니다. // 1절/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절/ 태산같이 무거운 스승의 사랑/ 떠나면은 잊기 쉬운 스승의 은혜/ 어디간들 언제인들 잊사오리까/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 3절/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사랑/ 갚을 길은 오직 하나 살아생전에/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나라 위해 겨레 위해 일하오리다/ [후렴]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2020년 5월 15일 스승의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 다음은 대중가요 “봄비-“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에헤헤~ 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뜬금없이 왠 봄노래냐구요? 사랑하는 제자가 이 노래와 함께 “스승의 은혜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정 교수는 러시아학계의 巨木입니다. 금융계의 중진 사랑하는 심 상무는 ”이교수님! 건강하시죠?^^ 오랜 세월동안 늘 지표가 되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열정만큼 건강도 늘 잘 관리하고 계시죠?^^ 오늘은 교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뜻 깊은 날 되십시오.“라고!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님이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들과 만남을 준비하고 계실 이 땅의 모든 스승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자들과 만남이 연기된 가운데 제자들을 응원하고 그리움을 달래온 스승들께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은 온라인 개학이라는 낯선 미래에 먼저 도착해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고 격려했고, "선생님들은 학교 방역에 팔을 걷어붙이고 원격수업을 준비하며 새로운 배움의 여정으로 제자들을 이끌었다"면서 "샘물처럼 자신이 채운 것을 제자들에게 나눠주는 선생님들은 국민 모두에게 용기가 됐다"고 적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원격수업 시스템과 정보통신 인프라를 발전시키겠다”며 “전국 모든 학교가 에듀테크를 활용한 원격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선생님들의 정보통신기술 활용역량을 강화하고, 행정업무 부담을 더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겠다고 했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대통령 님! 아주아주 조그만 것이니만...대학의 원격교육에서 교육부장관이 사이버 강좌 정규시험을 반드시 강의실에서 봐야 한다고 지시! 지금의 이런 逆行은? 물론 대통령 님의 뜻에 따라 교육의 정상화는 반드시 될 것입니다. 믿어 봅니다! 그는 “삶의 중요한 순간 스승의 말 한마디를 떠올리며 선택의 발걸음을 내딛는다”며 “‘스승과 제자는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우리의 오랜 지혜와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오늘 세계가 경탄하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모두 가르치며 배우며 미래를 열어온, 이 땅의 모든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이룬 성취”라고 평가! 교육자의 상징인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1746~1827)의 碑銘-“1746년 1월 12일 쥬리히에서 태어나 1827년 2월 17일 부르크에서 숨진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여기에 잠들다. 노이호프에서는 가난한 자의 구조자. 라인하르트와 게르트루트에서는 인민에게 가르친 사람. 슈탄스에서는 고아의 아버지. 부르크돌프와 뮌헨 부후제에서는 초등학교의 창시자. 이벨돈에서는 인류의 교육자. 인간! 그리스도교도! 시민! 모든 것을 남을 위해서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그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 1986년 감사하여 마지않는 아로가우주(州)!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교육부장관도 알아야 할 원격교육의 개념과 특성 等
[청로 이용웅 칼럼] 교육부장관도 알아야 할 원격교육의 개념과 특성 等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19년 4월 19일 <조선일보>는 “규제 줄인다더니…교육부, 대학들 요구엔 귀 막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기사 내용(요약)은 “교육부, 혁신 과제 70건 심의/ 등록금 동결·온라인 강의 비율 등 대학이 폐지 요구한 핵심사항 빠져/ 최근 들어 대표적 '구시대 규제'로 꼽혀온 '온라인 강의' 지침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콜로나19가 교육부를 허둥대게 만들었습니다. ”허둥대는“는 ”어찌할 줄을 몰라 갈팡질팡하며 몹시 급하게 서두르다“라는 뜻입니다. 전국의 대학들은 ‘저항 없이(?)’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사이버강의를 해보지 않은 교수들도, 대학 구성원들도 전력을 다해 강의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대면 온라인 강의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지금 온라인 강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래의 대학교육을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할텐데...온라인 강의가 궁여지책(窮餘之策)? 아니겠죠!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2017년 인터뷰 [4차 산업혁명과 교육] "4차 산업혁명 대비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최근 대학 구조개혁은 경쟁력 강화보다 구조조정 측면이 강합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대학 사회의 사기 저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학 구조개혁은 인구감소라는 현실적인 상황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미래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고려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원격교육에 대해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교육부장관도, 누구도 대학 원격교육을 잘 모릅니다. 당연지사(當然之事)! 이제라도 원격교육의 개념과 특성 등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원격교육이란 교수자와 학습자가 분리된 상태에서 교육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상호작용적 원격통신 수단을 활용함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학습 자료를 공유하도록 하는 교육형태를 말합니다. 원격교육은 1833년 스웨덴의 신문사에서 통신교육이 시초가 되어 발전하여 왔지만 1970년대까지 원격교육에 대한 별다른 이론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시기에 여러 학자들이 원격교육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였습니다. 프랑스법(1971)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했는데, “원격교육은 교육이 일어나는 곳에 정해진 교사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것을 당연시 하지 않는 교육, 혹은 선택된 경우나 과제에 대해서만 교사가 현존하는 교육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마이클 무어(1973)는 “원격교수는 교수행위가 학습행위와 떨어진 곳에서 실행되는 교수방법들의 군으로써 정의될 수 있다. 여기에는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교사와 학습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포함되며,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인쇄매체, 전기, 기계 혹은 다른 장치들에 의해 촉진되어야 한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오토 피터스(1973)는 “원격교수/교육은 노동 분업과 조직 원리의 응용 그리고 기술적인 매체의 광범위한 이용들이 정당화되는 지식, 기술, 태도를 전수하는 방법으로써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수의 학생들에게 동시에 수업이 가능하도록 양질의 교재를 생산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원격교육은 산업화된 형태의 교수와 학습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보리에 홈버그(1977)는 “원격교육이란 용어는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으면서 계속적이고 즉각적인 형태로 학생들을 지도하지는 않지만, 교육기관의 기획과 안내 그리고 개인지도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충위에서 일어나는 교육형태를 포괄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간략히 요약해보면 원격교육은 “교수자와 학습자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매체를 통해 중재되는 교수-학습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키간(Keegan)은 앞에서 언급된 대표적인 정의들에 녹아있는 원격교육에 대한 특성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키간이 추출한 여섯 가지 요인들은 원격교육 분야의 연구주제와 핵심적인 쟁점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교수자와 학습자의 분리로 전통적인 면대면 교육과 구분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둘째는 기관에 의해 조직된 형태의 교육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학습과 구분이 됩니다. 셋째는 기술매체의 이용입니다. 기술매체는 교사와 학습자 그리고 교육내용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넷째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제공입니다. 학생들이 학습을 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혹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간헐적 모임의 가능성으로 교수적 혹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목적으로 모임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산업화된 형태의 교육입니다. 원격교육과 다른 형태의 교육을 구분하여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 됩니다. 원격교육에서 자율성이론과 독립성이론은 전통적인 면대면 교육과 원격교육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특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격교육은 면대면 수업과는 달리 학습자의 개별적인 환경에서 단독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육의 성패는 학습자의 자율과 독립에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학습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원격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원격교육은 1950년대 초 라디오를 활용하는 원격교육이 도입된 이후, 꾸준히 발전,, 1995년 이후 초고속 인터넷 기반으로 원격교육이 급격히 보편화 되었습니다. 현재 일반대학에서는 온라인교육을 통한 원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이버 강의를 학점으로 인정하고, 이러닝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교수학습 지원체제의 도입하였습니다. 1995년 경남대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한국지역대학연합(RUCK)는 회원교 소속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학점교류 온라인 강의를 수강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필자의 경남대학교는 2002년 교수학습센터를 설립, 교수들의 교수역량강화를 위한 효율적인 교수법 프로그램과 학생들의 효과적인 학습법 프로그램 개발 운영하고 있으며, [사이버전용강좌]을 개설하여 원격교육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이에는 한 연구원의 열정과 연구가 숨어 있습니다. 연구원 김병수 박사는 센터 설립의 주역입니다. 이런 구성원들의 노력이 오늘의 경남대 원격교육을 비상(飛翔)하게 했습니다. 또 다른 비상을 기원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달력 ⑤5월과 5월이 시작인 백두산의 봄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달력 ⑤5월과 5월이 시작인 백두산의 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조선출판물수출입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0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 “주체 JUCHE 109 (2020)”/ “조선출판물수출입사 Korea Publications Export & Import Corporation”라는 글이 있습니다. 2020년 새 달력 ‘5월’에는 사진 “천지의 5월”이 있습니다. / 달력 5월의 1일부터 31일 사이에는 [1일]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근로자의 날’인데, ‘5.1절’이라 했늗데 달력에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 아래에는 [립하 5.5/ 소만 5.20]이 있습니다. 그런데 5월 달력에는 김일성과 김정은이 등장했습니다. 다음은 5월 달력에 있는 문장들입니다. 5월 달력 : 주체 25(1936). 5.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광복회를 창건하시였다./ May 5, Juche 25(1936):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founded the Associa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Fatherland. // 주체 105(2016). 5.9.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였다.”/ May 9, Juche 105(2016):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elected Chairman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 김일성의 조선광복회 창건은 ‘믿거나 말거나’ 이고...김정은!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청소년기에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박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12월 17일에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겸 조선로동당 위원장 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고, 공화국원수이기도 합니다.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이 사용하는 공식 칭호는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 입니다. 영어권에서는 'Chairman Kim'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북한 2020 5월 달력에서 볼만한 사진은 “천지의 5월” 입니다. 이번 달에는 독재자들 얘기 빼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에 실린 ’백두산의 사계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기사는 <백두산에는 8월에도 깊은 골짜기마다 흰눈과 얼음이 남아있어 겨울을 방불케 하지만 만병초가 꽃이 피여 백두산의 경치를 더 아름답게 하여줍니다.>라는 말이 김일성의 ’교시‘라고 했습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그래도 ‘백두산’ 이야기를 이어봅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담긴 고귀한 산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백두산이 김일성 부자(父子)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지만, 백두산이 백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역사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모두, 특히 남ㆍ북한 위정자들은 ‘힘겨루기’에 연연하지 말고 남ㆍ북한 국민 모두가 쉽게 백두산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로동신문>의 “백두산의 사계절”(拔萃) 입니다. “백두산의 경치는 매 계절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백두산의 봄은 5월 상순부터 시작됩니다. 이때 기온이 령상으로 올라가면서 봄우뢰가 울고 눈사태가 쏟아지며 골짜기마다 두텁게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5월 말부터 6월 상순까지도 비와 눈이 엇바꾸어 내리는 현상이 계속됩니다. 백두산의 눈석이는 5월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여 6월 중순까지 기본적으로 진행됩니다. 국부적으로 눈이 두텁게 쌓인 곳에서는 다시 눈이 내릴 때까지도 눈석이가 완전히 끝나지 못하는 현상도 볼 수 있습니다. 눈석이가 급속하게 진행될 때 곳곳에 물줄기와 폭포들이 형성됩니다. 깊은 밤 백두산 눈석이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는 더욱 이채로운 정서를 자아냅니다. 겨울동안 극도로 랭각되였던 산체에서 눈사태가 일 때 돌사태가 잇달아 쏟아져 내리기도 합니다. 5월말-6월초이면 호반에서 먼저 얼음이 녹으면서 천지물이 드러납니다. 천지얼음은 6월 중순경에야 완전히 풀리지만 떠다니는 얼음덩어리들은 7월 상순에도 볼수 있습니다. 봄 계절에 들어서면서 백두산의 식물들이 움터나고 동물들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만병초, 돌꽃, 백두산의 봄을 먼저 알린다는 의미에서 <천지진달래>라고도 불리우는 좀참꽃을 비롯한 각종 식물들이 눈이 녹으면서 땅 겉면이 드러나는 차제로 본격적으로 움트고 꽃을 피웁니다. 더운 지방으로 갔던 새들이 앞을 다투어 백두산으로 날아들고 겨울 전기간 굴속에 박혀있던 우는토끼도, 얼음 밑에서 한해 겨울을 난 천지산천어들도 본격적인 먹이활동을 벌립니다. 백두산의 봄철에 보게 되는 또 하나의 풍경은 다른 곳에서 날려온 꽃가루가 천지얼음과 물면우에 쭉 깔려 쌓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산천어의 중요한 먹이로 됩니다...“ 백두산(白頭山)의 사계(四季)! 백두산에서는 여름철에도 맑게 개이는 날이 드뭅니다. 그러나 백두산일대는 다른 지대에 비하여 자외선복사량이 많으므로 기온은 높지 않으면서도 따스한 감이 나고 식물의 잎이나 꽃 색이 특별히 선명하고 진합니다. 백두산의 가을은 8월 하순부터 10월 상순까지 약 50일간 입니다. 백두산에서는 8월 중순이면 선기가 나면서 첫서리가, 9월 상순이면 첫눈이 내립니다. 백두산에서 겨울은 년중 제일 길어 200일 이상 입니다. 겨울계절은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 하순까지 계속됩니다. 한민족 누구나가 백두산의 ‘사계’를 함께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만델라·나폴레옹·케네디와 희망(希望)에 대한 단상(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만델라·나폴레옹·케네디와 희망(希望)에 대한 단상(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964년, 종신형(終身刑)을 선고 받고 절해(絶海)의 고도(孤島) 루벤섬 감옥(監獄)으로 투옥(投獄)된 사람! 간수(看守)들은 걸핏하면 그를 끌어다가 고문(拷問)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加)했습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은 그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계단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존경(尊敬)을 표했습니다. 그가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1918~2013)입니다. 다음은 최근 지인이 보내준 글 중의 일부입니다. [그 오랜 세월(歲月) 어떻게 절망(絶望)의 세월(歲月)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對答)하였습니다. "나는 위대(偉大)한 변화(變化)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Azwie), 희망(希望)을 한 순간(瞬間)도 포기(抛棄)한 적이 없습니다." / 사람이 죽는 것은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백성(百姓)들에게 희망(希望)을 주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指導者)입니다. 보스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지만 리더는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만델라는 1964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2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했는데,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것입니다. 그는 남아공(南阿共) 흑백(黑白) 분리정책(分離 政策)을 철폐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선된 뒤, 그는 자기를 박해(迫害)하고 고통과 치욕을 주었던 정적(政敵)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삶을 ‘절망(絶望)과 희망의 교과서’라고 했습니다. 희망(希望)! “희(希)-점괘를 가리키는 육효(六爻)의 효(爻)와 수건 건(巾)이 합쳐진 글자” 입니다. 미래의 운수를 알려줄 점괘를 수건이 가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점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란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망(望)-바깥에 나가고 없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달을 바라보며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어 ‘바란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희망! ‘코로나19’는 지구촌 곳곳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절망(絶望)’을 심었습니다. 물론 끝없는 절망은 아닙니다. 누군가 아름다운 행복 속에도 절망은 둥지를 틀고, 모든 노력의 배후에는 정신적인 절망에의 짐이 더해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우리 민족은 숱한 절망을 겪으면서 ‘희망가’를 불렀습니다. 최근 젊은 트롯가수들이 옛 “희망가‘를 불러 코로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보통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리/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희망의 지도자’입니다. 이번 총선을 치루면서 ‘희망’의 지도자도 간혹 보였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오만하고 지저저분한 당선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절망의 부산시장’이 뉴스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했는데...우리나라에는 그런 지도자가 없나요? 문득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미국의 케네디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1769~1821)의 희망! 대영제국 육군원수였던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공작님은 나폴레옹을 워털루에서 이겼는데, 공작님의 군사적 재능이 나폴레옹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웰즐리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재에도, 과거에도, 언제라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일 뿐이오."("In this age, in past ages, in any age, Napoleon." 라고 / 그는 “종교는 영혼의 지배력이다. 그것은 삶의 희망이고 안전의 닻이며 영혼의 구제”라고 했고, “지도자란 희망을 파는 상인” 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1917~1963)는 1961년 1월 20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을 선서하며 취임 연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설은 가장 유려한 연설로 사람들의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리게 됩니다. 케네디는 이미 두 달 전부터 지인과 조언자들에게 의견과 자문을 구하며 연설문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서 빌려온 두 구절 "무거운 짐을 내려주고... 억압받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라" (이사야서 58장 6절), "희망 속에서 환호하고 고난 속에서 인내하라"(로마서 12장 12절)을 제외하면 나머지 연설문은 모두 케네디가 직접 썼습니다. 그는 “우리들은 공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들의, 희망을 추구하는 것을 억제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희망의 지도자’는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뉴스도 아닌 뉴스! 경남 함안군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지쳐 있는 지역민들을 위해 군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코로나19 군민 희망 릴레이'를 이어갔습니다. '힘내라 함안, 코로나 함께 극복해요'를 주제로 진행된 희망 릴레이는 군민들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담아 코로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따뜻한 사회분위기를 조성코자 마련됐다고 합니다. 군수는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발휘해 함께 한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며 감사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참 지도자 아닐까요? 끝으로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1882)의 “인생찬가”를 읊어봅니다. / “슬픈 노래로 내게 말하지 마라/ 인생은 단지 헛된 꿈이라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고/ 사물은 외양과는 다르기에./ 인생은 현실이고, 진지하다! 그러기에 무덤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란 말은/ 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나 가는 길은/ 기쁨만도 아니요 슬픔만도 아니다./ 그러니 행동하라/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평양의 단군릉(陵)은 력사적 국보인가. 檀君의 虛와 實
[청로 이용웅 칼럼]평양의 단군릉(陵)은 력사적 국보인가. 檀君의 虛와 實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04년 북한은 화첩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발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조선화보사가 발행한 월간 화보 <조선> 2004년 4월호는 "단군은 조선민족의 원시조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와 공화국정부의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하여 주체82(1993)년에 평양시 강동군에서 조선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그 안해의 유골이 발굴됨으로써 단군이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전에 실재한 인물이라는 것이 확증되였다. 단군민족통일협의회는 김일성주석께서 단군릉발굴을 발기하시고 개건사업을 이끌어주신 10돐과 김정일령도자께서 이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여주신 9돐을 맞으며 단군의 자료들을 보여주는 화첩<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만들어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단군릉'의 '개건' 과정을 보면 1)1993년 1월 김일성이 발굴 방법 제시. 2)1993년 2월 단군 유골과 유물 발굴. 3)1993년 9월 27일 김일성이 능터 결정 및 설계 방법 제시. 4)1994년 7월 6일 김일성이 '최종형성안' 검토(7월 8일 김일성 사망) 5)1994년 10월 11일 ‘단군릉개건준공식’의 순(順) 입니다. 이 ‘성역’에는 '단군릉, 단군릉개건기념비,단군릉기적비, 단군의 네 아들상(부루.부소.부우.부여), 단군의 측근신하상(팽우.고시.해월.비천생.신지.치우.주인.여수기), 망부석, 문기둥, 상돌과 돌향로, 돌범' 등이 있습니다. ‘릉’(陵)의 안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 안치된 무덤칸" 등이 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5)>의 “단군신화” 설명 중에는 "단군은 평양을 도읍으로 삼아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는 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때 나이가 1,908살이였다고 한다. 최근 평양시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고 그 년대가 밝혀짐으로써 단군이 신화적인물이 아니라 실재한 력사적인물이라는것과 함께 반만년에 걸치는 조선민족사의 유구성이 뚜렷이 확증되고 그에 따라 신화의 유산적가치도 력사적사실들에 기초하여 확인하게 되였다."라는 문장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인용문의 사실 여부는 구태여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한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단군과 단군의 안해(남한:아내)'의 '유골'이 평양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민족의 발상지 평양>(사회과학출판사,2000년)에는 "단군은 평양에서 태생한 실재한 력사상의 인물"이고, "민족의 성지로서의 평양의 력사적 지위는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의 발상지, 우리 겨레의 동질성을 이룩한 중심지, 민족문화의 발원지"(4쪽)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북통일이 되면 수도는 자동적으로 평양?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 '단군릉'의 '개건' 의의에 대해, 북한은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1993년 현재) 5011년전에 태여난 실재한 인물이였다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고 했습니다. 과연 '단군릉'에 안치된 시신이 진짜 '단군 할아버지'일까? 김일성 사망(1994.7.8) 이후 1994년 10월 29일 개건된 ‘단군릉’ 선전은 특히 매년 11월이면 가관입니다. 북한은 이 글의 맨 아래에 있는 <조선중앙통신> 기사 등을 통해 끝없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단군릉’의 진짜 진실을 북한 역사학자들이 밝혀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음은 <조선중앙통신> 기사입니다. // “력사적 국보 단군릉 (평양 10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의 단군릉은 력사적국보이다.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단군릉은 단군릉개건기념비구역과 석인상구역 및 중심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 석인상구역은 단군의 아들과 측근신하들을 형상한 조각상들이 배치되여있는 구역으로서 돌계단 좌우에 전개되여있다. 중심구역의 안에 한단을 높인 기단이 있고 이 기단우에는 무덤무지를 중심으로 하고 돌상과 돌향로, 돌범상과 망주석이 배치되여 있다. 무덤무지는 정4각추형으로서 밑단에서부터 우로 올라가면서 차례줄임하여 높이 쌓은 돌무덤무지이다. 무덤무지의 네모서리에는 각각 한쌍씩의 돌범상이 있다. 중심구역의 제일 바깥네모서리에는 고조선시기의 전형적인 무기였던 비파형단검을 형상한 검탑이 세워져있다. 무덤칸바닥에는 2개의 관대가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놓여있고 그 우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 있는 관이 각각 놓여있다. 무덤칸 정면에는 단군화상이 걸려있다. 단군조선시기의 발전된 문화와 정치, 경제, 군사적위력을 보여주는 단군릉은 민족의 전통적인 무덤양식에 연원을 두고있는것으로 하여 민족성이 매우 짙은 문화적재보로 되고 있다.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 발굴고증되여 반만년의 민족사를 되찾게 된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구월산과 묘향산에 깃든 단군전설과 평양시 강동군의 단군릉에 관한 자료를 깊이 료해하시고 단군릉발굴을 발기하시였으며 단군릉발굴사업이 진행되여 그 자료들이 과학적으로 고증된 이후에는 몸소 단군릉을 찾으시여 유물들을 일일이 보아주시면서 학자들과 일군들이 단군과 고조선의 력사를 옳바로 연구체계화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연구사업이 현대과학의 토대우에서 진행되도록 온갖 조건을 보장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1993년 현재) 5011년전에 태여난 실재한 인물이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83(1994)년 10월 29일 개건된 단군릉을 돌아보시면서 력사적 국보인 단군릉을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단군릉은 조선인민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귀중한 문화적재부로 전해지고있다.“// 단군왕검에 얽힌 고조선의 건국신화!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건국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단군신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이며, 그 이후에도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응제시주>,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지금의 평양 “단군릉”은 없습니다. 북한 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또한 평양 “단군릉”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살아져야 마땅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⑦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김정은
[청로 이용웅 칼럼]北韓藝術 巡禮-⑦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김정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11년 12월 17일! 북한에서 국방위원장,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등을 역임한 김정일이 그날 아침 8시 30분 현지 지도 방문차 탑승한 열차에서 사망한 날입니다. 이틀 뒤인 12월 19일 <조선중앙방송>은 과로로 인한 중증급성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2010년부터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한 김정은(金正恩/1984.1.8)은 3대 세습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뜻밖의 횡재(橫財)라고 할까요? 그에게 ‘공화국 원수’ 자리는 생각도 못했을 텐데...그에게 ‘김정일’은 ‘태양’이었을 것입니다. 2013년 7월 27일 <로동신문>은 김정은이 “전승절에 즈음하여 26일 김일성상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시였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맞으며 성황리에 개막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위대한 당의 령도밑에 백두산대국의 리상을 현실로 꽃피워가는 조선군대와 인민에게 태양민족의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있다.”고 했습니다.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주석단관람석에 나오시였다. 순간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고 경기장은 선군조선의 자주적 존엄과 강대성을 온 누리에 떨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의 정으로 끓어번지였다. 배경대에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 최대의 경의를 드립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최대의 영광을 드립니다》,《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 만세!》라는 글발들이 련이어 새겨지고 여러가지 빛률동 효과와 조명, 불꽃축포 등으로 황홀한 밤하늘에 영웅전사들에게 안겨주는 조국과 인민의 축복인양 장쾌한 축포의 불보라가 터져올랐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에게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불멸의 주체예술’이었을 것입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북한 주체문학연구소 연구사 김주현은 <로동신문>(2012.6.10.字)에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탄생 90돐에 즈음하여 민요 《아리랑》을 종자로 하여 우리 민족의 력사를 대서사시적화폭으로 펼쳐보여주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훌륭히 창조공연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이때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해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성황리에 진행되여 민족의 슬기와 기상을 떨치고 세상사람들을 경탄시키였으며 이 작품은 기니스 세계기록에도 등록되였다.”고 했습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북한의 월간 홍보지<조선>2005년 8월호는 “집단체조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기사(22~23쪽)에서 이 아리랑’은《인간의 정신력과 창조력의 극치!》,《한번 보면 두번 보고 싶고 두번 보면 자신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걸작품이다!》이라고 했습니다. 이 잡지는 “조선의 집단체조를 본 관중들의 평”이라면서 위의 두 문장을 서두에 놓았습니다. 이 기사를 살펴보면 1945년 8월 15일부터 "집단체조가 광범히 진행"되었으며 "당시 중요 기념일을 계기로 평양과 지방에서 진행된 집단체조에는 청소년들이 출연하였는데 행진식"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경대가 도입된 것은 주체44(1955)년부터'이고, "주체50(1961)년 집단체조《로동당시대》가 창작되면서 크게 성장“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과 집단체조! <김정일선집>(9권)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집단체조창작단은 집단체조작품을 창작하고 보급하며 우리나라 집단체조를 전망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사업을 책임지고 조직지도하는 전문기관입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20)>에는 "집단체조창작단은 주체60(1971)년 11월 1일에 창립되였다.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자리잡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집단체조’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첫 번째 ‘체조대’ 입니다. 단행본 <조선의 집단체조>에는 ‘체조대는 가장 중요한 형상수단’으로 “집단체조가 체육예술작품으로 되자면 체조대, 배경대, 음악, 이 세 형상수단 중에서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것들이 서로 동격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집단체조에서는 집단체조라는 말 그대로 체조대가 가장 중요한 형상수단으로 되고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체조대는 무용화하지 않으며 “체육의 모든 갈래에는 자기 고유의 동작과 률동이 있다. 집단체조 역시 례외로 되지 않는다. 집단체조에 자기의 동작이 많아야 집단체조가 되지, 무용동작이 많으면 집단무용이 된다.”고 했습니다. <조선의 집단체조>에는 ‘집단체조-배경대’에 대해서, ‘배경대라는 처녀지의 개척’이라면서 “조선의 집단체조창작가들은 고심어린 탐구의 길에 들어섰고 마침내 배경대라는 새로운 구성요소를 착상해 내였다. 배경대의 도입으로 집단체조는 아름답고 훌륭하게 장식되였으며 내용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가지게 되였다.”라고 했습니다. 배경대의 형상은 “몇개의 마분지 통판으로 시작하였던 배경대는 1960년대에는 70여매, 1970년대에는 130여 매에 이르렀으며 2000년대에는 170여 매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배경대와 미술’에 대해서는 ”배경대미술은 다른 종류의 미술과 일련의 특징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조선의 집단체조>는 ‘집단체조-음악’에 대해서 “음악은 체조대, 배경대와 함께 집단체조의 3대 구성요소의 하나로 된다. 집단체조에서 수많은 인원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체조동작들과 대형변화의 일치성은 구령이 아니라 반드시 음악에 의해 담보된다. 집단체조음악은 체조대와 배경대에서 표현하기 힘든 사상정서적 감정을 보충해 주며 집단체조의 형상수준을 높여준다. 체조대가 아무리 다양한 동작과 대형구도의 변화로 그 내용을 형상하려해도 결국은 그 자체가 체육운동인 만큼 사상정서적 표현에서의 구체성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집단체조창작단’ 산하 ‘청소년체육학교’도 설치했습니다. <조선의 집단체조>에는 “수만명이 출연하는 집단체조에서 체조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고급동작을 할 수 있는 체조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작품은 훌륭해진다”면서 “해마다 이런 방법으로는 체조수 문제를 완전히 풀수 없었다. 그리하여 집단체조창작단 산하에 청소년체육학교(1983.1.28)가 나오게 되였다...기계체조, 예술체조, 교예체조 등 여러 종목의 기술동작이 창작단 창작가들과 20여명의 학교지도교원들에 의하여 련습 완성된다. 학생수는 1,500여 명에 이르며…”라고 했습니다. 김정일에게 ‘집단체조’는 주체예술의 핵(核) 입니다. 김정일에게 ‘집단체조’는 ‘예술작품에서 노린 창조집단의 사상예술적 목적을 실현하는 실천과정’이며 ‘창조집단이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기본형태’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예술공연은 “예술을 수단으로 하여 진행하는 선동활동. 근로자들을 당과 로선과 정책으로 무장시키고 그 관철에로 불러 일으키는 힘 있는 선동사업형식”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장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항일유격대식 예술선동은 근로자들을 당정책 관철에로 힘있게 불러”(<김정일선집>7권) 일으킨다고! 2018년 9월 19일!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릉라도 5·1경기장에서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은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5년 만에 공개한 체제선전용 예술공연이었습니다. 이 작품도 김정은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다가 ‘꽃단장’하고 ‘채색’을 해서 그럴싸한데...아버지 작품의 탄생 배경과 목표는 고려하지 않은, 단지 정권 홍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외화벌이가 된 것도 아니고...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할아버지 생일인 태양절 행사도 많이 축소되고...앞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서 만큼은 아버지의 업적을 잘 연구해야만 할 것임! 김정일이 독재자이지만 북한 ‘문화예술의 아버지’임을 알아야 할 것임!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