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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큰물’ 넘친 두만강, “눈물젖은 두만강”
[청로 이용웅 칼럼] ‘큰물’ 넘친 두만강, “눈물젖은 두만강”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두만강 하류 지역에 2019년 8월 17일 ‘홍수 특급경보’가 발령됐다고 <조선중앙방송>이 전했습니다. ‘중앙방송’은 이날 보도를 통해 "두만강 하류 큰물특급경보"를 알리고 해당 구간은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부터 두만강 하구까지"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에서는 ‘홍수’를 “큰물 : 큰비가 내려서 강이나 개울에 넘쳐흐르는 많은 물=한물”(조선말대사전)이라고 합니다. 2019년 8월 16일 두만강 하구 나선특별시 지역에 발령했던 “‘물1급경보’에서 구간을 확대하고 경보단계도 ‘큰물특급경보’로 상향 조정한 것입니다. ‘방송’은 이날 보도를 통해 “두만강 하류 큰물특급경보”를 알리고 해당 구간은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부터 두만강 하구까지”라고 밝혔습니다. 방송에서 언급된 ‘경원 지점’은 함경북도 경원군 훈융리를, ‘원정 지점’은 나선시 원정리 일대를 의미합니다. 이 지역은 중국 훈춘(琿春)과 마주하는 대표적인 북·중 접경지입니다. 2016년 9월 3일 <조선중앙통신>은 9월 2일 태풍 10호의 영향으로 함경북도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회령시에서는 15명이 실종됐다고 보도했었습니다. 북한 · 중국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 유역에서 관측 사상 최대의 ‘홍수’가 발생했고, 두만강이 범람! 북한 주재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에 대해 "50~60년 만에 최악의 수준"이라고 지적했었습니다. 북한! 1990년대 중반에 수해로 인한 최악의 대흉작으로 배급제가 붕괴되며 아사자(餓死者)가 속출. 1996년 1월 1일 북한〈로동신문〉등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모자라는 식량을 함께 나눠먹으며 일본군에 맞서 투쟁한 항일빨치산의 눈물겨운 고난과 불굴의 정신력’을 상기하자며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했었습니다. ‘큰물’ 때문에 험한 길을 걸어온 북한! 김일성 부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1984년에 태어난 수장(首長) 김정은이 알면 얼마나 알까요? 두만강! 남한에서는 ‘두만강’ 하면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떠나간 그 내 님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라는 노래! 그 가요를 부르는 남한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최근에는 TV에서 젊은 국악인이 이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러 더 알려졌습니다. 가수 김정구(金貞九/1916~1998)가 불렀던 “눈물 젖은 두만강”(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옛 노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도 이 노래 한 소절쯤은 제법 한답니다. 이 노래는 일제의 등쌀에 못 이겨 눈물의 강을 넘어가야만 했던 망국(亡國)의 시대에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눈앞에 환히 보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록 두만강은 여전히 피눈물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강(江)! 두만강은 백두산 천지의 남동쪽에 대연지봉(2,360m)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石乙水)를 원류로 하는 서두수(西頭水) 등 크고 작은 강물들을 받아가며 북동진합니다. 강의 전체 길이는 500㎞를 넘습니다. 1930년대 이 두만강 연안에는 일본군 국경수비대가 삼엄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검문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독립단 소속 열혈청년과 민족 운동가들은 두만강을 넘어 다니며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악극단 단원들도 만주 지역의 동포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는데, 반드시 이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독립투사 문창학의 부인인 김증손녀(당시30세)는 자신의 남편이 훈춘(渾春)에서 독립운동을 벌리다 체포(1921년 12월)되어 압송된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1923년 12월20일)됐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작곡가 이시우(李時雨/1914∼1975)sms 큰 충격이 받았는데, 이튿날 그는 두만강을 바라보며 나라 잃은 우리 겨례의 슬픔을 통탄했다고 합니다. 이시우가 이러한 감정을 누를 길 없어 가사에다 즉흥적인 선률을 붙인 것이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의 후렴의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목 메이는 그녀의 애절한 호곡소리는 “그리운 내님이여”라는 시어(詩語)로 승화되었고,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은유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2절에서 “추억에 목메이는 애달픈 하소”라고 표현한 것과 3절에서 “님 가신 이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라는 표현은 여관집에서 본 단풍나무에서 얻은 영감을 시어에 담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은 조국이 그리울 때 이 노래를 불렀고, 떠나간 옛 님이 그리울 때도 불렀습니다. 광복절부터 8월 16일 오후까지 함경도 동해안 지역에 최고 20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렸는데, 수장 김정은은? 북한 <로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월 16일 오전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제 정신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에게 질문을 해봅니다.“동향(同鄕)인 ‘가수 김정구’를 아는지? 그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은? 과거 북녘땅이 “큰물 넘친 두만강” 때문에 황폐해진 것을 아는지? 그가 2019년에 여덟 번 째 발사를 하필 홍수 때? 제 정신?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1735년~1826년)는 임기 때가 “나의 평생에 가장 비참한 시절”이라고 했는데, 독재자는 무슨 뜻이지 모를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알까요?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2010년&2019년의 광복절과 북한·일본·대한민국
[청로 이용웅 칼럼]2010년&2019년의 광복절과 북한·일본·대한민국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의 2010년! -“8월 15일은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우리 조국과 민족이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구원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여난 날이다.《내 나라는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주체조선이며 내 조국은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조국입니다.》 일찌기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맹세를...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를 헤치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시였다."- 북한 조국해방기념일! <로동신문>의 지난 사설(社說)의 일부입니다. 이 글에서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이 “항일의 혈전 만리, 눈보라 만리를 헤치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했다는 대목은 가관입니다. 이 사설은 “조국통일은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유훈이며 민족최대의 과업.‘이라고 했습니다. 2010년 8월 15일자 <로동신문> 사설에서 "지금 미제와 남조선 괴뢰역적패당은 민족의 통일의지에 역행하며 반공화국제재압살공세와 새 전쟁도발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고 있다"면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한 조국통일"을 강조했습니다. 매년 이날이 되면 ’김일성 타령‘에 급급한 북한입니다. 한심합니다! 일본의 2010년! 8월 15일은 일본 입장에서 보면, 패전 65년째가 되는 ‘종군 기념일’, ‘패전일(敗戰日’입니다. 2009년 이날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는 현직 각료 일부와 고이즈미 전 총리, 여야 의원들이 몰려갔습니다. 태평양 전쟁 등을 주도한 A급 전범이 묻히고 전쟁 때 숨진 군인들이 합사돼 있습니다. 일본이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르는 8월 15일, 이곳에는 전쟁 당시의 군복을 입은 참배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이날 일본의 각료 전원은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당초 약속대로였습니다. 이는 80년대 이후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는 일본이 조금은 반성한 것 같았습니다. 대한민국의 2010년!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의 독립과 1948년 정부수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국경일입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하여 항복하게 되어 한반도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남한의 행정안전부는 제65주년 광복절 경축행사를 2010년 8월 15일 오전 9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했습니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고종 때 모습으로 복원된 광화문의 현판 제막식과 함께 열린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대통령 이명박은 경축사를 통해 "남북관계는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공동체', 경제 통합을 준비하는 '경제공동체', 궁극적으로 제도의 장벽을 허문 '민족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3단계 행동원칙(action plan)을 밝혔고, "통일은 반드시 온다.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감옥살이 중입니다. 2010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격랑과 긴장의 해’ 였습니다. 3월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나 46명의 용사들이 희생되었고, 11월에는 다시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하는 만행을 저질러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과 더불어 남북관계가 최대 최악으로 치달았던 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해는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1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2010년의 아베와 일본(日本)! 2006년 9월 처음 집권한 총리 아베는 1년 만에 퇴진했다가 2012년 12월 다시 총리에 올랐습니다. 그때 그는 ‘불순(不純) 세력’을 규합, 정권 장악을 위한 사조직 등을 이용했다는 전언(傳言)입니다. 결코 순수하지 못했던 그가 야수(野獸)로 돌변한 2019년입니다. 2019년의 일본(日本)! 제74주년 ‘종전 기념일’, ‘패전일(敗戰日)! 8월15일 일본 도쿄 시민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습니다.(사진) 야스쿠니 신사에는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과 전몰자 246만여 명의 위패 및 전쟁과 전투의 의미를 담은 각종 무기가 전시돼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산케이신문> 등 언론은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고 ’소녀상‘ 등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고 있고...속으로 부끄럽기는 한 모양입니다. 2019년의 대한민국! 8월15일에 누군가 “광복, 그 기쁨이 오죽했으면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노래했을까. 이미 74년 전이니 긴 세월이 지났다“라고 지난날을 술회(述懷)했습니다. 그리고 제74회 광복절을 맞아 광복절 경축식이 15년 만에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남과 북이 손잡고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하고, “북한과 함께 '평화의 봄'에 뿌린 씨앗이 '번영의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2019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8월 15일! 그들만의 ‘조국해방기념일’,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019년 8월15일, "1945년 8월15일 강도 일제를 무릎 꿇게 한 조국해방의 날을 맞았다“고 보도하고, ”뜻 깊은 8월 15일을 맞는 오늘 우리 민족 누구나 온 민족의 총동원으로 민족해방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신 해방의 은인,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2010년에나 2019년에나 똑같이 김일성이 해방의 주역이랍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2010년&2019년의 광복절과 북한·일본·대한민국!” 2010년과 2019년의 차이는? 북한은 수장(首長)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수장이 대통령 이명박에서 대통령 문재인으로 바뀌고, 경축사의 내용이 달라진 점입니다. 일본은 야인(野人) 아베가 수장(首長)이 되고, 그가 또 다른 항복(降伏)을 알지 못하고 광분(狂奔)하고 있는 것 뿐 입니다. 광복절을 맞아 한반도의 위정자들을 비롯, 모든 국민들이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대힌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靑魯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③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교예예술
[靑魯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③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교예예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朝鮮語辭典>에는 ‘곡예(曲藝)’, ‘교예(巧藝)’, ‘곡마(曲馬)’라는 어휘가 없습니다. 1946년에 발간된<조선어사전>(문세영,조선어사전간행회)에는 “곡마”만 들어 있습니다. 해방 후 간행된 남한의 사전에는 ‘곡마’는 어느 사전에나 있고, 대부분 ‘곡예’가 들어 있습니다. <국어대사전>은 ‘곡예’를 “연예(演藝)의 한 가지. 줄타기․공타기․곡마 등 보통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여러 재주를 부림”(278쪽)이라고 했고, <우리말 큰사전>은 “주로 사람들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묘한 기술로 부리는 여러 가지 재주. 곡마, 요술, 재주넘기, 줄타기 따위.”(326쪽)라고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은 ‘곡예’를 “고도의 훈련으로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흥행적 연예(演藝). 신체의 유연성이나 민첩성 등을 응용하여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동작을 취하거나, 도구나 동물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능을 총칭한다. 전통적인 것으로 줄타기․장대타기․죽방울받기․공놀리기․접시돌리기․마상재(馬上才)․불토하기․굴레엮기․굴레빼내기․무동(舞童) 등이 있고, 현대의 공중그네와 동물곡예 등이 있다.”(699쪽)고 했습니다. 남한의 사전과 백과사전 대부분에선 ‘교예’라는 말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279쪽)은 ‘교예’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백과사전은 “북한에서 단순한 서커스와는 달리 곡예의 체육 문화적 측면과 무용․연극 등의 예술적 측면을 적절히 결합한 군중예술의 하나. 북한은 남한에 없는 ‘교예’라는 독특한 공연종목을 발전시켜왔는데, 교예는 문예 및 대중오락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군중노선에 입각하여 대중예술로서 자리를 잡아 온 것으로 알려진다. 곡예는 조선시대에 유랑예인집단에 의한 묘기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서커스가 들어오고, 전래의 곡예들은 전통이 단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백과사전은 용어풀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군중예술’입니다. ‘군중예술’은 남한과 북한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없는 용어입니다. 북한에서도 ‘군중예술’은 과거에 사용하던 말입니다. 연간(年刊)인 <조선중앙년감>에선 1963년판부터 ‘군중예술’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북한에는 ‘군중무용’, ‘군중문학예술’등의 단어가 있습니다. <조선말대사전(1)>은 ‘군중문학예술’을 “전문 작가, 예술인들이 아닌 광범한 대중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는 문학예술.”(343쪽)이라고 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3)>도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는 문학예술”(289쪽)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에서의 ‘교예’는 일반 백성들이 창조하고 연희하는 예술이 아니라, 음악예술이나 무용예술처럼 예술인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연희되는 문학예술의 한 분야입니다. ‘교예’라는 용어의 어원은 중국어입니다. <漢韓大辭典>(제4권)을 보면, “巧藝 ① 재주. 기예(技藝). 《晉書, 載逵傳》 少博學, 好談論, 善屬文, 能鼓琴, 工書畵, 其他巧藝, 靡不畢綜. ② 세설신어(世說新語)의 편명(篇名)”(945쪽)이라고 기술했습니다. 일본에서 발간된 <大漢和辭典>(卷四)도 《漢韓大辭典》과 동일하게 기술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은 ‘교예’를 “육체의 기교동작을 기본적인 형상수단으로 하여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하는 예술. 고도의 부단한 숙련으로 이룩한 기교로써 인공적으로 조성해놓은 장애를 극복하거나 요술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또는 동물을 길들여 재주를 부리게 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최대한의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예술”(642쪽)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예술>이란 문예전문 월간지에 ‘교예’라는 어휘가 처음 쓰인 것은 1972년 4월호입니다. 이 책에 “어버이사랑의 품속에서 태여난 교예”라는 글이 수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북한에서 쓰인 ‘곡예’나 ‘교예’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지금도 똑같이 ‘circus’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18)>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문학예술→교예)를 보면, ‘교예예술의 진정한 발전’은 김일성이 1945년 9월 19일 소련 함정 푸카초프 호를 타고 원산항에 내린 뒤부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10 여 년간의 <조선중앙년감>들을 보면, ‘문학예술’편(1945~1956)에 ‘교예’나 ‘곡예’에 대해 전혀 거론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선중앙년감(1957)>에 ‘곡예 및 대중예술’이 처음 수록되었는데, “1956년 년간에 민족 곡예 예술의 발전과 평이하고 다양하며 대중에게 친근한 예술 쟌르 발전에서 현저한 전진을 보았다. 국립 곡예 극장에서는 민속 잡기와 기타 민족 곡예 유산을 발굴 계승하여 이를 현대 곡예에 광범히 도입 적용함으로써 4월 공연에서 조형 곡예―1인 탁상, 3인 탁상, 그네 재주―원형 그네, 삼중 그네, 동물 곡예―말 재주, 개 재주, 곰 재주, 발 재주― 사람 다르기, 우산 돌리기, 사다리 재주 그 밖에 상모와 법고, 단지 꼽기, 공중 비행등이 새로 보충되였으며 제10회 공연에서는 4월 공연의 레빠또리들을 더욱 완성시키는 한편 장 대 오르기, 줄 돌리기, 의자 비행, 이중 사다리, 이마 재주, 회전 그네, 대 그네 등이 새로 보충되였다.”(115쪽)고 기술했습니다. <조선중앙년감(1958)>에는 “곡예 및 대중예술-1957년에 민족 곡예를 개척 발전시키며 평이하고 다양한 예술 쟌르 발전에서 현저한 전진을 보았다. 국립 곡예 극장에서는 민족 잡기와 기타 민족 곡예 유산을 발굴 계승하여 이를 현대 곡예에 광범히 적용 도입하는 창조 사업과 공연 활동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였다. 1957년에 새로 창작 공연된 우수작으로서는 널뛰기, 류동 그네, 공중 조형, 2중 발사다리와 동물 곡예로서 곰 권투, 곰 장해물 넘기, 기타 개, 원숭이 재주가 있으며 기마술로서는 선거함, 만물상자, 병안의 수건 없애기, 오리 나오기, 물색 변하기 등 일련의 작품등이 있다. 그중《줄타기》《널뛰기》《그네》등은 위대한 사회주의 10월 혁명 40주년 기념 각국 친선 무대 곡예 공연에 참가하였다.”(147쪽)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교예’ 와 남한의 “서커스‘ 모두가 동일하게 ’서커스.circus' 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의 평양랭면·평양온면, 그리고 한반도 대표국수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의 평양랭면·평양온면, 그리고 한반도 대표국수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기자]“삼복(三伏) 허리의 햇발은 불길을 머리에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웠다. 반 시새의 길바닥에서도 훅훅 더운 기운이 풍겨 올라왔다. 양쪽 길섶에 무성한 아카시아 잎도 후줄근하게 늘어져 있었다. 달착지근한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아카시아 잎에서 풍기는 초록과 더위의 냄새였다. 늙은 소나무에는 송진이 끓어 올라 햇볕에 번쩍이고 있었다.”-[<조선총독부> 등을 집필한 작가 유주현(1921~1982)의 <태양의 유산> 중에서] 1820년 자동기록식 온도계가 발명된 이후 기록된 최고의 더위는 1922년 9월 13일 멕시코의 ‘포트시·산·루이스’라는 곳에서 기록된 섭씨 58도입니다. 이에 비하면 한반도의 폭염경보는 ‘새의 가느다란 발에서 나오는 피’에 지나지 않을까요? 하지만 말복(末伏)이 코 앞에 다가온 지금의 더위는 ‘태양의 유산’이 아니라 ‘태양’ 그 자체처럼 뜨겁습니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도 더위를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합니다. 그러러면 무엇보다 맛깔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 최고입니다. 한반도에도 이런 음식들이 아주 참 많습니다. '2018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의 수장(首長) 김정은이 모두(冒頭) 발언에서 “대통령께서 편한 맘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날 "4월 27일, 냉면데이 지정"하자는 ‘헛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뒤 최근 1년 여(餘) 동안 남·북 통틀어 화제가 된 음식은 ‘평양랭면=평양냉면’일 것입니다.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의 민속전통(1)-식생활 풍습>을 보면, “예로부터 평양지방의 특산음식물으로 이름난 평양랭면은 오늘에 와서도 뛰여난 맛과 높은 영양가, 민족적 풍미와 입맛을 돋우는 여러 가지 고명 등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음식으로 되고 있다. 평양 옥류관을 비롯한 이름 있는 식당들에서 널리 장려되고 있는 평양랭면은 닭고기, 돼지고기의 비률을 적당히 하고 통무우를 넣어서 산뜻하면서도 향기롭고 구수한 나게 한 닭고기 육수국과 메밀의 고유한 맛을 살리기 위하여 껍데기채로 갈아서 만든 메밀가루를 가지고 만든 국수”라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 단행본 <이름난 평양음식>에는 "평양랭면은 촉감이 부드럽고 향기가 독특하며 입맛이 구수한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입니다. 국수오리가 지나치게 질기지 않아서 먹기에 알맞춤하며 국수국물과 꾸미, 국수그릇과 국수말기가 특별하여 예로부터 소문이 났습니다. 때식("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음식")음식으로도 좋지만 술 마신 뒤에 먹는 음식으로 더욱 어울립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냉면은 시원하지만 사시사철 즐기기도 합니다. 반대로 따뜻하지만 사계절 즐기는 “평양온반”도 ‘랭면’만큼 유명합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온반(溫飯) ①<더운밥>을 달리 이르는 말. ②=장국밥”이라고 했고, 남한의 <우리말큰사전>은 “온반 ①=더운밥. ②=장국밥 (溫飯)”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온반’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별로 없습니다. 이젠 주로 북한의 음식 이름에 ‘온반’이 붙는 것입니다. 이 북한의 온반 중에서 대표적인 음식이 ‘평양온반’입니다. 북한의 월간 <조선>은 “평양의 4대음식 평양온반”이라는 제목으로 이 온반을 소개, “평양에서는 예로부터 자랑할만한 민족음식들이 많다. 그중에는 랭면과 숭어국, 녹두지짐과 함께 평양의 이름난 4대음식의 하나인 평양온반도 있다. 밥과 국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방식에서 유래된 평양온반은 영양가가 높고 사람들의 구미에도 잘 맞는 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졌다."고 했습니다. 북한에는 평양온반에 대한 유래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평양관가에서 한 총각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추운 겨울날에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때 그를 사랑하고 있던 한 처녀가 뜨거운 국을 붓고 지짐을 덮은 밥그릇을 치마폭에 몰래 감추어가지고 총각에게 안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던 총각은 그 따끈한 밥을 달게 먹었는데, 더운밥이라는 뜻이 담긴 이 온반은 그 총각이 옥에서 나와 처녀와 함께 결혼식을 할 때에도 잔칫상에 올랐으며 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자주 만들어 먹는 과정에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 평양지방에서는 결혼잔치를 할 때마다 신랑신부가 이들처럼 뜨거운 정 속에 살라는 의미에서 온반을 만들어 잔칫상에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국수가 ‘북한의 시원한 평양랭면과 따뜻한 평양온면’ 뿐이겠습니까! 과거 일간지 <중앙일보>는 “조상들의 국수 사랑”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인용해봅니다. -“찰기가 느껴지는 혀 맛, 끊을 때 치아에 전해지는 쾌감, 식도를 통과할 때의 상쾌함은 물론이고 빨아들일 때 입술을 통과하는 최대의 감칠맛까지. 밥이나 빵에서는 이런 자극을 느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부산 밀면, 고기국수, 어탕국수, 들깨국수 등을 소개했습니다. ‘신문’은 또 “조선시대까지 즐겨 먹던 국수는 흔히 떠올리는 밀가루로 만든 면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밀이 나던 지역이 극히 드물었던 탓에 구하기 쉬운 메밀이나 감자를 활용한 메밀국수·감자국수 등이 많았다. 이에 다산 정약용은 어원연구서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우리 조선 사람들은 재료를 따지지 않고 그저 긴 걸 국수라고 부르는데 그건 잘못됐다. 엄밀히 말하면 밀가루로 만들어야 면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조선료리전집>1권에 ”고려시기에 쓴 책인 <룡비어천가>에 고려사람들이 손님들을 대접할 때 국수를 많이 썼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국수가 고려시기는 물론 그 이전시기에도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에 리용되였다. 우리 선조들은 국수를 일상음식으로 뿐아니라 오리가 길다는데로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없어서는 안될 별식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잔치상이나 생일상에 국수를 내는것을 하나의 풍습으로 삼아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은 남·한 사람들 모두의 선조입니다. 한반도 한민족이 모두 ‘평양랭면’·평양온면, 그리고 한반도 대표국수와 함께 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靑魯 이용웅 칼럼]통일전략포럼-“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靑魯 이용웅 칼럼]통일전략포럼-“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일본제철 주식회사(日本製鐵株式會社)는 철강업을 하는 일본의 기업. 2012년 10월 1일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 금속공업이 합병하여 신일철주금주식회사(新日鐵住金株式会社)가 새롭게 태어남. /// 신일본제철 상대 /// 2012년 5월 24일 대한민국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는 다른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춘식, 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이 신일본제철(신일본제철, 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재판에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2013년 7월 19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9부(재판장 유성근)는 파기 환송심에서 이춘식 등 4명에게 각각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는 이춘식 등 4명(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의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 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피해자 각각에게 1억원씩 배상금을 내라고 한 원심 판결을 받아들여 확정했습니다. 2019년 7월 1일, 일본의 총리(總理)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과 필요에 의해서,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발표한 것이라는 방송과 언론보도가 잇따랐습니다./ 2019년 8월 2일 일본이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출 심사를 면제해 주는 국가 명단,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서 15년 만에 한국을 빼기로 한 겁니다. 아베 내각이 이날 오전 10시, 27개 수출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했습니다. 지난 2004년 한국을 우대국가로 지정한 지 15년 만입니다. 일본이 한번 지정했던 나라를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본 관방장관 왈(曰) “이번 결정으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적용했던 우대 조치를 철회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은 지금까지의 포괄 허가가 적용되지 않게 됩니다.”라고 지껄였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9년 8월 2일 오전 우리의 국무회의 격인 각의를 열어 화이트 리스트 27개국에서 한국만 제외하도록 한 정령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오는 8월 7일 공포되고, 그날로부터 3주 뒤인 8월 28일 시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베! 그는 <표해록(漂海錄>에 등장하는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놈”? 설마! 아베 신조! 2006년 9월 1일에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할 것을 발표하고, 일본국 헌법의 개정과 교육 개혁, 재정 건전화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후 일본 자유민주당의 21대 총재로 선출되어, 9월 26일 국회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제90대 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습니다. 아베 부부는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는데, 부인 아베 아키에는 수기에서 자신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이후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으면서도 교묘히 일본을 장악, 2019년 다시 일본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장기 집권! 그런데 그를 ‘독재자’라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김정일로부터 독재 권력을 계승한 김정은보다 더 한 독재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아베에게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고 묻는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만 존재합니다. 그래도 해법(解法)을 찾아야만 하니...정부, 각종 단체, 개인 등등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도 그중 하나입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관세)는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를 주제로 2019년 8월 8일 제64차 IFES 통일전략포럼을 엽니다. 주목되는 것은 직전 주일대사를 역임한 이수훈 경남대 교수가 주제를 발표하는 것입니다. 포럼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한·일 외교(外交)! 묘수(妙手), 해법(解法), 아베의 사과(謝過)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외교”의 ‘외’자도 모르는 것 같은 그에게 옛날 중국 고사(故事)나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물론 그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하지만 그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놈”이 아니라면 좀 알아듣지 않을까요? 중국 제(濟) 나라 선왕이 “이웃나라와 사귀려면?”하고 묻자 맹자(孟子)가 “있습니다. 오직 인자(仁者)라야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사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湯) 임금이 갈(葛) 나라를 사귀었고, 문왕이 곤이(昆夷)를 사귄 것입니다. 오직 지자(智者)라야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사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왕(太王)이 훈육을 사귀었고 구천(句踐)이 오(吳) 나라를 섬긴 것입니다.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사람은 하늘의 도리를 즐기는 사람이고,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사귀는 사람은 하늘의 도리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도리를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보전할 것이고, 하늘의 도리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보전할 것입니다.”(孟子/ 梁惠王·章句下)라고 했습니다. 아베는 “외교는 조국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행위”(A.G.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라는 말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O.E.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가 말한 “정직은 가장 좋은 외교 정책”이란 말을 모르는 것이 확실합니다. 누군가는 “외교의 요체(要諦)는 다음의 한마디로 요약됩니다-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량강도(兩江道)의 90여과(科), 840여(種) 식물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량강도(兩江道)의 90여과(科), 840여(種) 식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량강도 : 우리 나라 북부내륙지대에 있는 도. 동부는 함경북도, 남부는 함경남도, 서부는 자강도, 북부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서로 접하고 있다. 량강도는 지리적으로 북위 40゚ 25ﹶ(김형권군 평산로동자구)부터 북위 42゚ 0ﹶ6(대홍단군 삼장로동자구)까지, 동경 126゚ 55ﹶ(김형직군 로탄로동자구)부터 동경 129゚ 0ﹶ4(백암군 동계로동자구)까지의 사이에 놓여있다. 면적은 1만 3,880여㎢로 우리 나라 면적의 6.25%를 차지한다...김일성동지의 일가분들의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81년 8월에는 신파군을 김정숙군으로, 1988년 8월에는 후창군을 김형직군으로, 1990년 8월에는 풍산군을 김형권군으로 고치였다.”(북한 <조선대백과사전(7)>,325쪽) “량강도(兩江道)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부의 도이다. 양강도청 소재지는 혜산시이다. 도의 이름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흐르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1954년 10월 30일 함경남도 혜산시, 운흥군, 보천군, 삼수군, 신파군, 갑산군, 풍산군, 풍서군, 부전군과 함경북도 삼사군 및 자강도 후창군 등을 합쳐서 양강도가 신설되었다...이후 김일성의 가족에서 이름을 따와 1981년 8월에 신파군이 김정숙군으로, 1988년 8월에 후창군이 김형직군으로, 1990년 8월에 풍산군이 김형권군으로 각각 개칭됐다. 김정숙은 김일성의 아내, 김형직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권은 김일성의 숙부이다.” (대한민국 <위키백과>) ‘량강도’라는 행정구역이 새롭게 태어난 것이 “김일성동지의 일가분들의 혁명업적” 때문...<조선대백과사전(7)>은 “량강도는 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력사와 투쟁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태여나신 백두산밀영을 옹위하여 높이 솟아있는 정일봉을 함께 가진 유서깊은 혁명전적지이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도(道)!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당시의 북한의 행정 구역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고, 북한이 개편한 행정 구역을 절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현재 북한이 개편한 행정 구역에는 경기도가 없으며(모두 황해남도로 편입), 우리나라가 인정하고 있는 행정 구역에는 황해도 밖에 없지만 북한이 개편한 행정 구역에는 황해남도, 황해북도가 존재합니다. ‘량강도’, 자강도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는 행정 구역에는 존재하지 않는 도(道)입니다. 우리 지도에 없는 량강도! 죽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김정일선집 1권>에서 “량강도는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전적지와 사적지가 가장 많은 도입니다, 백두산과 압록강을 비롯한 량강도 안의 산발들과 강줄기마다에는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20성상에 걸쳐 진행하신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피어린 자욱이 아로새겨져 있으며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에도 항일혁명선렬들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부자 얘기를 빼면 량강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자연을 간직한 곳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북한전문언론매체 <데일리 엔케이>는 [북부지방 들쭉보다 맛있다는 매저지 수확 한창…“주민 먹여 살리는 건 산”]이라는 기사에서 “양강도 등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매저지 수확이 한창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7, 8월이 되면 매저지나무(들쭉나무와 유사한 종자식물)에서 열매를 수확해 중국에 수출하거나 시장에 직접 내다 팔아 돈벌이를 한다. 매저지는 양강도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여름이면 장마당 입구에 매저지를 파는 상인들이 진을 칠 정도”라고 했습니다. <데일리 엔케이>는 “요즘 양강도 대부분 지역에서 매저지 수확을 정말 많이 한다”면서 “개인들을 동원한 무역회사의 매저지 확보경쟁도 치열하다”고 전했습니다. “매저지나무(들쭉나무와 유사한 종자식물)”? 북한 <조선대백과사전(7)>는 “량강도에는 피나무. 매저지, 들쭉을 비롯하여 40여종의 꿀 원천식물들이 도처에 퍼져있다. 특히 김형권군 일대는 피나무를 비롯한 주요 꿀 원천식물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 있을 뿐 아니라 그 성장률이 좋으므로 우리 나라 주요 꿀 산지”라고 했습니다. <데일리 엔케이>는 “이 지역 주민들이 ‘부지런하면 굶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은 산나물과 약초, 산열매처럼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이 많기 때문”이라며 “매저지 수확이 끝나고 보름 정도 있으면 들쭉 수확이 있어서 주민들은 계속 열심히 산을 오르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자연을 간직한’ 량강도의 “식물(植物)”! <조선대백과사전(7)>은 "량강도에는 “90여과(科)에 840여(種) 식물들이 분포”되어 있다고 하고, “온대, 아한대, 한대 지방에 일르기까지 퍼져있는 식물들이 분포”되어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종합해보면 량강도의 천연자연 특히 식물자원은 다른 도(道)보다 월등하게 풍부하다는 사실입니다. ”꿀 원천식물“민 보더라도 아주 풍부합니다. 김일성 부자(父子)의 소유물같은 량강도가 베일을 벗어햐 할 때가 아닐까요? 김일성 부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 그는 2019년 7월 31일 새벽 그의 고향인 원산 갈마 일대에서 또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동해로 발사했습니다. 지난 7월 25일 호도반도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두 발을 쏜 지 엿새 만입니다. 최근 수년간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는 것처럼 싱가폴, 베트남 등지를 오가며 평화 ‘운운’하고 다니더니 미사일 발사라... 북한 소식통은 량강도 주민들이 ‘부지런하면 굶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은 산나물과 약초, 산열매처럼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이 많기 때문”이라며 “매저지 수확이 끝나고 보름 정도 있으면 들쭉 수확이 있어서 주민들은 계속 열심히 산을 오르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주민들과 함께 산을 오른다면? 북한 경제는 반드시 기사회생(起死回生)할텐데...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靑魯 이용웅 칼럼]7월 27일! 북한 “전승절-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靑魯 이용웅 칼럼]7월 27일! 북한 “전승절-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 시찰을 통해 신형 잠수함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9년 7월 23일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돌아보시며 함의 작전전술적 제원과 무기전투체계들을 구체적으로 요해했다”면서 “잠수함은 동해 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만의 “전승절” 나흘 전에! 북한은 7월 27일을 ‘우리 인민의 제2의 해방날’인 ‘전승절’이라고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7월 25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 지도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통신’은 이번 사격과 관련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지역에 첨단공격형 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연습을 강행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남조선군부호전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을 조직하시고 직접 지도하셨다”고 밝혔습니다. 그들만의 “전승절” 이틀 전에! 북한의 7월 27일! 홍보 월간지 <조선>은 과거 “위대한 령도, 승리의 7.27”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이 글은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인 7월 27일을 맞을 때마다....미제가 조선전쟁에 저들과 남조선괴뢰군만이 아닌 일본과 15개 추종국가의 무력까지 동원하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는 ‘허위사실 유포’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장본인인 미국대통령 트루맨의 신세도 달리 될수 없었고 제2차세계대전시기 련합군의 총사령관이였던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신공세> 기도도 박살났다. 결국 미제는 전쟁에서 패배를 자인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고 하고, “김정일령도자의 선군령도와 더불어 빛나게 계승되고 있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앞으로도 오직 백승의 한길로만 줄기차게 전진해 나갈 것이다.”로 끝을 맺었습니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과거 “오늘 우리 인민은 전승절인 7. 27을 맞고있다. 이날은 창건된지 불과 몇해밖에 안되는 우리 공화국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타승하고 영원한 승리의 빛나는 페지를 장식한 력사적인 날이다. 반면에 이날은 미국에 있어서 력사상 가장 쓰디쓴 참패의 수치를 맛본 비극적인 날이다. 지난 조선전쟁에서 미국이 당한 참패는 결코 실수나 우연이 아니였다. 그것은 달리 될수 없는 력사의 필연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이후는 ‘우물쭈물’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7월 27일! 김일성이 소련군을 업고 삼팔선을 넘어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남침한 한국전쟁! 한국전쟁(1950.6.25.~1953.7.27)에서 미군 54,246명이 목숨을 잃은 미국!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2018년 7월 27일을 “한국전쟁 참전용사 정전기념일”로 선포했습니다. 트럼프는 포고문에서 "올해는 정전협정 서명 65주년 기념일로, 잔혹했던 3년동안 우리의 군대와 동맹들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한반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정전협정 체결 66주년인 2019년 7월 27일 "1950년대의 조국수호 정신을 뼛속 깊이 쪼아 박고 사회주의 강국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동신문>은 1면에 게재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승업적을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비약적 성과로 빛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는 "전화의 용사들이 발휘한 조국수호 정신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역에서 일대 비약의 폭풍을 일으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설은 "오늘 우리 당이 해마다 전승절을 크게 경축하도록 하는 중요한 목적도 1950년대 조국 수호자들의 투쟁정신으로 전체 인민을 무장시켜 사회주의 건설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키자는데 있다"면서 "식량증산과 전시수송, 전선원호에 모든 것을 바친 전화의 그 정신과 기백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목표를 반드시 점령하며 자력갱생의 승전포성을 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문은 또 군(軍)에 대해서도 "현대전의 능수, 진짜배기 싸움꾼으로 준비하고 사회주의 건설에서 불가능을 모르는 기상을 힘있게 떨쳐나가야 한다"며 "군민 협동작전의 위력으로 성과를 이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7월 27일은 6·25전쟁이 정전된 날입니다. 또한 유엔군 참전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 기념일도 있었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엔군 참전의 날은 우리나라의 법정기념일로서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국가기념일입니다. 그런데 묵한은 1973년 정전협정 체결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정했고, 1996년에는 국가 명절인 '전승절'로 제정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은 남침을 인정하고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전승절”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내년부터 남‧북한 모두 한국전쟁 정전일(Korean War Armistice Day)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1953년 7월 27일은 결코 남‧북한 모두 ‘승리의 날’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북한이 잘못을 사죄하고 6.25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추모해야 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②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연극예술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②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연극예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朝鮮語辭典>은 “俳優の 演技”(605쪽), 즉 ‘배우의 연기’라고 풀었습니다. 해방 후 첫 우리말 사전인 <조선어사전>(문세영, 1946년)에는 “연극(演劇) : 배우가 극본에 의하여 여러가지 치장을 하고 여러가지로 행동하는 예술”(1109쪽)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후 남한에서 발간된 우리말 사전들은 대부분 문세영의 뜻풀이와 유사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말 큰사전>(1992년)에는 “연극 ①배우가 각본에 의하여 분장하고 음악, 배경, 조명, 그밖의 여러 가지 장치의 힘을 빌어서 어떤 사건과 인물을 구체적으로 연출하는 예술”(2937쪽)이라고 기술했습니다. 북한의 사전들을 살펴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에서 1962년에 펴낸 <조선말 사전>에 “연극(演劇); ①무대 예술의 한 형태. 극작품에 의거하여 배우들이 해당된 인물로 분장하고 무대 우에서 극작품에 묘사된 현실 생활을 재현하는 예술”(4599쪽), <조선문화어사전>(1973년)에 “연극; ①인간생활을 극적형식으로 반영하며 배우의 말과 행동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는 무대예술의 한 형태”(974쪽), <조선말대사전(1)>(사회과학출판사, 1992년)에 “연극; ①배우의 말과 행동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여 극작품에 묘사된 생활을 관객을 상대로 무대우에 재현하는 무대예술의 한 형태. 희곡, 연출, 연기, 무대미술, 연극음악 등은 연극예술을 이루는 중요한 형상요소이다.”(1484쪽)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말대사전(1)>에는 “연극예술; 연극작품이나 연극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1484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생문예소사전>(1982년)은 “연극; 희곡에 기초하여 배우들이 무대우에 창조해놓은 예술. 연극을 창조하려면 우선 희곡과 배우, 무대의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에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혁명연극 《성황당》,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피바다》, 《3인 1당》 등을 몸소 집필”하고 “창조공연사업을 지도”함으로써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조국광복의 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으며 혁명연극의 빛나는 전통을 마련”(327쪽)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영광스러운 당중앙의 현명한 지도밑에 《성황당》식 혁명연극을 새롭게 창조하여 20세기 혁명연극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놓았다.”(327쪽)고 했습니다. 여기서 ‘당중앙’은 김정일입니다. 2001년에 발간된 <조선대백과사전(27)>은 “연극; 인물의 대사를 기본형상수단으로 하여 생활을 무대우에서 보여 주는 극예술”(176쪽)이라 하고, 김정일의 ‘지적’, 《연극은 오랜 력사를 가진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인류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발전하여 온 연극은 이러저러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끊임 없는 발전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김정일선집》9권, 155페지)를 인용하고, “연극이 발전하면서 연출, 무대미술, 장치, 효과, 소도구, 분장, 환등 등이 더 늘어 났으며 음악, 무용, 교예, 민속놀이와의 력사적인 관계도 점차 변화하였고 민족과 시대에 따라 여러 구성요소들의 결합상태도 다양하였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27)>은 ‘연극’을 설명하면서, 김정일의 ‘지적’, “《영화가 행동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대사의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김정일선집》9권, 210페지)”를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습니다. /“연극은 미학적내용에 따라 정극, 희극, 비극과 그것들을 다양하게 결합한 여러가지 양상의 작품으로 분류되며 생활반영의 범위와 용량에 따라 장막극, 중막극, 단막극, 토막극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리용되는 언어와 표현수단의 특성에 따라 시극, 가면극, 인형극 등으로 갈라 진다. 특수하게 한사람의 연기자가 출연하는 독연극이 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3)>(1996년)은 “극”을 설명하면서, “생활에서 극적인것은 이러저러한 형태로 문학예술에 반영된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는 극적인것을 반영한다. 그것들가운데는 극적인것을 하나의 요소로 반영하는것이 있는가 하면 전면적으로 반영하는것도 있다. 연극은 어느 종류나 할것없이 모두가 극적인것을 형상대상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예술영화와 아동영화가 생활의 극을 반영한다. 그것들가운데서 극적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극, 영화, 가극, 무용극 같은것을 극예술이라고 한다.”(404쪽)라고 기술했습니다. 21세기에 북한 연극에서 공연되거나 평론이 되고 있는 극(劇)은 “경희극”입니다. <문학신문>은 “우리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락천적인 웃음과 투쟁의욕을 안겨 주는 경희극들인 《축복》, 《동지》, 《약속》, 《청춘은 빛나라》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경희극’이 북한 연극의 명백을 이어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경희극의 《희극적》 주인공이 북한 연극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연극예술! 오늘의 북한연극을 직접 관람하거나 그에 관한 글을 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중국, 일본 등지를 통해서 들어오는 서적이 간혹 발견되기도 하지만, 극히 소량이고 영상물은 거의 없습니다. 《조선문학》, 《조선예술》, 《예술교육》, 《문학신문》, 화보《조선》에는 연극 관련 글들이 가끔 실리지만, 《천리마》, 《금수강산》, 《조선녀성》, 《등대》 등 잡지와 일간지 《로동신문》, 《민주조선》 등에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북한 연극의 현주소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靑魯 이용웅 칼럼]통일전략포럼-“북미관계 전망과 남북관계 추진 방향”
[靑魯 이용웅 칼럼]통일전략포럼-“북미관계 전망과 남북관계 추진 방향”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관세)는 2018년 “DMZ평화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강원일보>는 대상 수상기관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가 “올바른 통일 정책 수립을 위해 다양한 관점의 비판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앞장서 왔으며, 연구소를 거쳐 간 인재들은 각계계층에서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핵심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1972년 설립된 이후 한반도 평화와 북한·통일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국내외 담론을 선도하는 동시에 북한대학원대학교(총장 안호영)와의 긴밀한 연구·교육 협력을 통해 바람직한 한반도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 모색에 앞장서왔습니다. 극동문제연구소는 2018년 통일부와 함께 한반도 평화·번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공고화하는 ‘한반도 국제포럼(KGF)’ 사업을 주관하며 6개국에서 7회에 걸쳐 국제학술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학술교류를 통한 연구 증진과 함께 정책 대안 및 전략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국내외 유수의 40여개 대학 및 연구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상호 학술 교류·협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극동문제연구소는 10년 전부터 선정·발표되는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외교·안보 부문’에서 국책 및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며 역량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현재 극동문제연구소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최고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순수 민간 연구기관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올바른 길을 찾고 있으며,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통일 연구의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학계 및 일반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대표적인 [학술활동]은 [학술회의], [세미나] 그리고 [통일전략포럼] 입니다. [세미나]는 1975년 9월 18일 ‘제1회 통일문제세미나’가 최초입니다. 주제는 “민족사적 정통성에 입각한 남북한 가치관의 형성에 관한 비교”였습니다. 2019년 6월 21일 개최된 “하기 해외학자 초빙 프로그램(SSPK) 세미나”의 주제는 “Visualising India and North Korea's Nuclear Tests”로, 지금까지 총 351회 개최되었습니다. 대단한 학술활동입니다. [학술회의]는 1973년 4월 20일과 21일 개최된 “제1회 국제학술회의 한국과 주변강대국”가 최초입니다. 2019년 6월 19일에는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와 공동 주체한 국제학술회의 “Urban North Korea: Changes and Exchanges.(북한의 도시: 변화와 교류)”가 열렸는데, 현재까지 144회 개최되었습니다. [통일전략포럼]은 1995년 10월 19일 “제1차 통일전략포럼”이 최초인데, 주제는 “통일ㆍ안보정책의 회고와 전망”이고, 발표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했습니다. 그리고 “제62차 통일전략포럼”가 2018년 12월 6일 “전문기자들이 보는 한반도 정세: 평가와 전망”라는 주제로 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2019년 7월 24일(수), 오후 2시부터 연구소 대회의실(1층)에서 “북미관계 전망과 남북관계 추진 방향”을 주제로 ‘제63차 통일전략포럼’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는 박재규 현 경남대 총장의 삶과 함께 해 왔습니다. 2017년 발간된 그의 회고록(자서전) <일념, 평화통일 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다음은 "I.평화통일 연구의 시작과 함께 토대 마련에 진력하다"의 서두(序頭)입니다. “북한 및 동북아 연구의 메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설립(1972.9.1.) ; 북한 및 통일문제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미국 뉴욕시립대(CCNY) 대학원에서 수강했던<사회주의 경제학> 강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68년 런던 정경대(LSE)에서 교환교수로 와있던 Peter Wiles 교수의 <소련경제> 강의를 수강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세계적인 사회주의 경제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Wiles 교수는 ‘반드시 북한에 대한 학문적·현실적 요구가 증폭될 것’이라며 한국인으로서 북한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뉴욕시립대 지도교수였던 John H.Herz 교수는 국제정치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2년 9월 1일, 당시의 남북관계와 시대적 상황이라는 엄혹한 현실을 감안할 때, 주변의 우려가 많았지만 평화통일의 길을 닦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경남대학교 통한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1973년 3월 10일, 경남대 부설 극동문제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하고 2대 소장에 취임했다.“ 이번 [제63차 통일전략포럼]의 초대의 글-“한반도에 평화를 더욱 공고하게 정착시키고,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며, 남북관계를 개선·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기 위한 심도 있는 연구에 진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현안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심층연구에 노력을 배가할 것입니다.”-/ 축하(祝賀)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靑魯 이용웅 칼럼]북한 교수의 ‘평양랭면’과 평양,평안도 토배기음식
[靑魯 이용웅 칼럼]북한 교수의 ‘평양랭면’과 평양,평안도 토배기음식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그...저녁에 만찬 거리 얘기를 많이 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랭면을 가지고 왔습니다. 가져오기는 했는데...대통령님께서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4월 27일 10시 16분, 11년 만에 다시 만난 남북 두 정상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테이블에 마주 앉은 자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그후 구미(歐美)의 매체들은 이 '차가운 면 요리’를 “평화의 상징”으로 부르며 그 유래와 제조법을 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 그때 ‘평양랭면’은 서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울에서 이름난 냉면집은 문전성시(門前成市), 장사진(長蛇陣)을 이뤘고, 여기저기서 ‘랭면’ 얘기가 오갔습니다. 그리고 1년 여(餘)...지난 7월 12일 초복(初伏)에 기존의 삼계탕 등은 잘 팔렸지만, 냄면집 얘기는 크게 부각(浮刻)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초밥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후문입니다. 그래도 ‘평양랭면’은 지금, 초복(7.12)과 중복(7.22) 사이가 제격입니다. 여기서 북한의 ‘평양랭면’에 대한 설명을 알아봅니다. 북한의 ‘조선료리협회’가 펴낸 <조선료리전집(1)>의 ’머리말‘을 보면, “<조선료리전집> 1권에는 우리 인민들이 주식으로 리용하고 있는 떡, 국수, 밥, 죽, 지짐, 묵, 만두, 빵 등 600여종의 료리제법을 실었다.”고 했습니다. 이 책에는 정확히 665종의 주식이 수록되어 있는데, 북한은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이 과거에 했던 “평양랭면은 예로부터 이름이 높습니다.”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여기서 남한에 소개되지 않은 북한 장철구평양상업대학 김례용 교수의 글(아래)을 소개합니다. [["민족의 자랑 특색있는 지방음식-평양, 평안도지방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민족음식을 적극 장려하고 발전시키며 지방별특산음식과 인민들이 좋아하는 대중음식들을 찾아내여 식생활에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우리 인민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음식들은 지방별로 자기의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평양, 평안도지방은 조선서해를 낀 해안지대와 열두삼천리벌, 룡천벌 등 벌방지대, 산세가 험한 산간지대를 포괄하고 있으므로 낟알, 고기, 남새, 산나물 등이 풍부하며 음식종류도 많다. 이 지방의 음식은 지나치게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맵지도 않으므로 어느 누구의 구미에도 맞았다. 예로부터 평양랭면,평양온반,대동강숭어국,녹두지짐 등이 유명하였다. 그중에서 평양랭면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평양랭면 : 평양랭면은 순메밀국수 사리에 여러가지 꾸미를 놓고 찬 고기국물을 부어 만든 평양특산음식이다. 평양랭면은 메밀국수오리와 여러가지 꾸미가 가지고 있는 맛이 함께 어울리면서 차고 시원하며 구수하고 질긴 감이 나는 특색이 있다. 음식감(1그릇분): 메밀가루 160g,소고기(정육)55.3g,돼지고기(정육)67.5g,닭고기(지육)40.9g,배추 200g,무우 120g,오이 20g,배 20g,닭알 25g,중조 3g,간장 30g,소금 20g,식초 20g,사탕가루 1g,맛내기 3g,겨자 3g 가루량의 45% 되는 70~80℃의 더운 물에 중조를 풀어 메밀가루를 반죽한 다음 반죽물을 국수분통에 넣고 눌러 끓는 물에 익힌 다음 찬물에 씻어 사리를 만든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찬물에 넣고 삶는다. 다음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버들잎모양으로 썰고 닭고기는 찢는다. 고기를 삶은 국물은 소금, 간장, 맛내기로 맛을 들인 다음 차게 한다. 배추와 무우로는 김치를 만들고 오이와 배는 버들잎 모양으로 썰며 닭알은 삶아 껍질을 벗긴다. 국수그릇에 사리를 담고 그우에 김치, 고기, 오이, 배, 삶은 닭알을 놓은 다음 찬 고기국물을 붓는다.]]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대백과사전(23)>에는 "<동국세시기>의 자료에 의하면 메밀국수를 무우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랭면이라 하는데 관서지방의 국수가 제일 좋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죽지>에서도 평양랭면이 제일 좋다는 기록이 있다. 평양랭면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겉보기와 차림새에도 특색이 있어 조선 국수의 대명사로, 민족음식을 대표하는 우수한 료리“라고 했습니다. 북한 월간 화보 <조선>의 기사 “민족음식 평안도 토배기음식들”을 보면, “조선의 서북쪽에 위치한 평안도지방은 낟알과 고기, 물고기, 산나물이 풍부하여 이 지방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민족음식 종류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게사니구이(아적)/ 찰강냉이떡/ 뱅어탕/ 올챙이국수/ 가막조개전골/ 가지김치/ 토끼고기밤찜/ 뱀장어구이/ 메밀묵.”(사진)이 ‘토배기’라고 했습니다. 이밖에도 “메기장졸임, 정주왕밤태식, 잉어찜을 비롯하여 수백종에 달하는 토배기음식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 책 <조선의 민속전통1-식생활풍습>의 “2.민족음식과 식생활”에서 “(3) 평양과 평안도의 지방음식”을 읽어보면 “평양과 평안도지방의 음식은 맛에서도 지나치게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맵지도 않으므로 누구에게나 구미에 맞는다.”고 했습니다. 남과 북이 아예 외면하고 사는 지금, ‘토배기음식들’을 남·북한 요리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 남북한 주민들에게 대접할 수는 없을까요?...망상일까요? 예! 망상(妄想)!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