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13건 ]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①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문학예술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①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문학예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①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문학예술]을 시작으로 북한의 [②연극 ③영화 ④음악 ⑤무용 ⑥미술 ⑦문학 ⑧교예 ⑨건축 ⑩가극]을 연재합니다. ‘문학예술(文學藝術)’이란 용어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간행된 사전들은 대부분 《새로 나온 국어대사전》(2001년)의 낱말풀이 “①문학에 관한 예술. ②문학과 예술.”과 유사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큰사전》(1992년)에는 “시․소설 따위, 글로써 나타내는 예술”이라 풀이 했습니다. 《새 우리말 큰사전》(1986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7년) 등 거개의 백과사전들에는 ‘문학예술’이란 용어가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발간된 사전들을 살펴보면, 1962년에 발간된 《조선말 사전》에는 ‘문학예술’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전에는 “문예(文藝)[명]문학과 기타의 예술을 통털어 이르는 말 : 문학을 주로 하여 쓰인다.”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발간된 《조선문화어사전》(1973년)에는 “문학예술[명]《문학과 예술》을 통털어이르는 말.”이라 적고 이어서 김일성의 글인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18페지), 《김일성저작선집》(2권, 579페지), 《김일성저작선집》(3권, 130페지),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57~58페지)를 차례로 인용했습니다. (북한에서 발행된 모든 문헌의 본문 인용 시 띄어쓰기 등 모두를 원문 그대로 합니다.) 이 네 인용문 중 첫번째 ‘사업총화보고’를 보면, “《우리의 문학예술은 참말로 당적이고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예술로 되었으며 근로자들을 공산주의적으로 교양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되고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문화어사전》은 “문예[명]《문학예술》의 준말. 《사람들을 혁명정신으로 교양하는데서 문학, 영화, 연극, 음악, 무용과 같은 문예부문 일군들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우리의 문학예술은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에 복무해야할뿐아니라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전체 조선인민의 투쟁에 복무하여야 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 4권, 144페지)”라는 용어풀이를 수록했습니다. 또한, 1992년 사회과학출판사에서 펴낸 《조선말대사전(1)》의 1,184쪽에는 “문학예술[명]《문학예술은 근로자들의 정신도덕적풍모와 문화수준을 높이며 그들을 투쟁과 혁신에로 고무하는 힘있는 교양수단입니다.》(《김일성저작집》35권, 321페지) 《문학과 예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인간과 생활을 형식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사람들의 정신도덕적풍모와 문화수준을 높이며 그들을 투쟁과 혁신에로 고무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1,187쪽에 “문예[명]《문학예술》의 준말.”이라고 명기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문학예술’에 대한 용어풀이는 1999년 발간된 《조선대백과사전(9)》(466쪽)에 상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전은 “문학예술; 문학, 영화, 연극, 음악, 가극, 미술, 무용 등 인간과 그 생활을 형상적으로 반영하는 사회적의식의 제형태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시대는 끝임없이 전진하고있으며 문학예술에 대한 인민의 요구도 날을 따라 더욱 높아지고있다. 문학예술은 마땅히 시대와 함께 전진하여야 하며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선도하여야 한다.》(《주체문학론》, 3페지) 문학예술은 인간과 그 생활에 대한 형상적 화폭을 통하여 의의있는 인간문제, 사회적문제를 밝혀내며 시대의 선진사상과 사람들의 지향과 념원을 예술적으로 구현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문학예술’을 구체화한 용어가 ‘사회주의문학예술’입니다. 《조선말대사전(1)》에는 “사회주의문학예술[명]로동계급의 혁명사상에 기초하여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에 맞게 창조된 당적이며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예술.”이라고 했습니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문학예술의 력사에서 주체형의 공산주의자의 전형적형상을 창조하고 높은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과 고상한 사상예술성을 가진 혁명적문학예술로,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을 담은 주체적인 문학예술로 되였으며 인민대중을 민족적, 계급적으로 각성시키고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사상적무기로 되였다.”(《조선말대사전(2)》)고 했습니다. ‘우리 식 문학예술’은 ‘우리 식 사회주의’에서 파생된 용어입니다. 구미의 사회주의 뿐 아니라 구 소련과 중국 식 사회주의에서 탈피한 순수한 북한식 문학예술을 지향하겠다는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이 용어는 70년대 말부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혁명과 진실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더욱 철저히 세우며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조국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하여 영광스러운 당중앙에서 제시한 전략적구호.”(《백과전서(6)》,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주체의 문학예술’은 ‘용어풀이’의 핵심입니다. 북한의 ‘조선로동당제5차대회’에서 개정된 ‘조선로동당규약’에 “조선로동당은 맑스․레닌주의와 우리나라 현실에 그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조선로동당’의 공식적 이데올로기가 된 주체사상, 이 ‘유일사상’을 근저로 한 ‘문학예술’이라는 말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19)》를 보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주체의 문학예술은 새 시대의 요구와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는 공산주의적문학예술이다. 》(《김정일선집》 3권, 30페지) 현시대는 위대한 주체시대이다.”, 이 인용문은 김정일이 집필한 《영화예술론》(1973년)의 ‘머리말’에 기술된 말! 그런데 ‘주체의’가 수식하거나 ‘주체’가 복합된 ‘문학예술’이 21세기에 자주 쓰이는 용어입니다. ‘주체의 문학예술’을 거론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용어는 “주체사상‘! ’김일성동지혁명사상‘ 앞에 붙은 수식어입니다. 《조선말대사전》(1992년)을 보면, ‘주체사상’의 뜻풀이를 “사람중심의 완성된 세계관, 가장 완성된 혁명리론과 전략전술, 령도리론과 령도방법을 밝혀주는 위대한 혁명사상, 주체의 사상, 리론, 방법의 전일적체계로서의 위대한 김일성동지혁명사상을 주체사상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개정되었는데, 개정 헌법은 100조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2016년 6월 헌법을 개정하며 신설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이다”라고만 명시했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에나 지금이나 [서문]의 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김일성헌법”라는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아베의 비뚤어진 사무라이 정신과 우리의 선비정신
[청로 이용웅 칼럼]아베의 비뚤어진 사무라이 정신과 우리의 선비정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일본 정부는 일본 참의원 선거 고시일인 2019년 7월 4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2019년 7월 21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 때리기’로 표몰이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선거 유세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날 0시부터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동했습니다. 일본 관방부 부(副)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불합리하고 상식에 반한다고 하지만 원래 수출관리제도는 각국이 상대국에 대해 독자적으로 평가해 운용하는 것”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거듭 주장했고, 경제산업상은 전날 “철회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 “수출관리 체제를 계속해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제재 강화 대상 품목의 확대를 내비쳤습니다. 아베 총리는 전날 여야대표 토론회에서 “약속을 안 지키는 나라에 우대조치를 못 한다”고 한국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를 비롯한 일본 개헌 세력들은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려고 발광(發狂),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조차 "아베 정권이 한국에 강경 자세로 임해 보수층에 호소하려는 노림수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눈앞의 인기를 얻고 장기적인 국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는데, 안하무인(眼下無人) 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제90·96·97·98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제21·25대·26대 자유민주당 총재! 대학 졸업 후에는 고베 제강소의 직원으로 일했던 보통사람이었고, 정계에 입문한 이후 비교적 승승장구(乘勝長驅)한 정치가였으며, 2018년 9월 20일에 있었던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3선 연임에 성공해 오는 2021년 9월까지 총리 직을 맡으며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되었는데...문득 <표해록(漂海錄)>이 떠오르는 것은...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에는 비록 살생만하고 표독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도록 했고, 뱀은 간악하나 약제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저놈의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漂海錄> 필자의 일본인들에겐 차마 “표해록”의 ‘왜인’ 얘기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함없이 늘 다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친절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습니다. 칼 같이 질서를 지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무사들은 자신의 과오를 책임질 때 이런 할복으로 대신했습니다. 사무라이 정신! 부정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은 섬나라입니다. 혹자(或者)는 일본인의 섬나라 근성은 일본인을 무기력하게 하고, 독선적이게 하며, 무지하게 하며, 외국을 미워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또 혹자는 일본의 여러 환경 탓으로 일본인의 사상이나 행동은 왜소하고 경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자는 무기력하고, 독선적이고, 무지하고, 외국을 미워하면서도 자기도취에 쉽게 빠져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고도 아직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번 학기에 필자는 사이버강좌 <동북아 역사와 문화>(경남대),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의 이해>(경기대·가톨릭관동대·인제대·안양)를 가르쳤습니다. 이 강좌에서 일본 몫은 3주 9시간입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한·중·일 3개국을 가리키는 말. 넓은 의미로는 몽골, 러시아의 극동 지역 및 시베리아도 포함)의 ‘역사·정세·문화’을 볼 때 비중이 지극히 약합니다. 그런데 2017년 GDP4조 8700억 달러로 세계 3위의 경제국이 되면서 천방지축(天方地軸)! 아베의 망발(妄發)은 참의원 선거 전략일수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그러려면 당국자들이 우선 일본의 ‘역사·정세·문화’ 이해가 아니라 공부해야 합니다! 적을 알아야 합니다! 일하며 싸워야 합니다! 외교부 수장이 미국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는데, <표해록>는 아는지 모르는지...If you do not know, study! 한 우리 국회의원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트와이스, 아이즈원 소속 일본 국적 연예인 퇴출 운동까지 벌어진다고 한다"며 "참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한 배우는 "아베가 날뛰는데 왜 ‘사나’를 퇴출시키나. 토착 왜구를 쫓아내야지"라며 일본 국적 연예인 퇴출 운동을 비판했습니다. 사나(湊崎 紗夏)는 한국의 걸 그룹 트와이스의 맴버인 일본 소녀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한반도에 울려 퍼쳤습니다. 일본은 비뚤어진 ‘사무라이 정신“, 우리의 ’선비 정신(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신‘! 필자가 일본 교토의 한 재래시장에서 본 한국 상품! 거기에선 한국 아이돌과 관련된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본 아이돌들과 관련된 상품들을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일본 국적 멤버 퇴출 운동은 대한민국을 돕는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해롭게 하는 운동"라는 말이 수긍(首肯)이 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기술경쟁력은 곧 국력(國力)’임을 모두 인식하고, 과감한 규제개혁과 경영환경 개선을 통해 기업들이 더 힘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진정한 '극일(克日, over-Japanese)‘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 군인이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면 그들을 미친 놈들이라고 하지만 꼭 같은 일을 미국 군인들이 하면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R.M.허친스 시카고대학교 전 총장 · 1899~1977. / 시카고대학교 평의회에서 한 연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2019년 북한 달력의 7월과 8월, 김일성 사망
[청로 이용웅 칼럼]2019년 북한 달력의 7월과 8월, 김일성 사망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1년 365일을 순서대로 표시한 캘린더는 월 단위로 된 월력이 많지만 하루에 한 장씩 떼는 일력, 3개월 단위로 된 것, 1년을 한 장으로 표시한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탁상형과 벽에 매다는 것 등등...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외국문출판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19년 달력 표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외국문출판사(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DPRK)/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새해를 축하합니다.(Happy New Year.)"/"주체(JUCHE) 108(2019)]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표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홍보 로고(logo)와 악단 지휘자, 장고 치는 여배우, 태권도하는 청년, 5월1일 경기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 위의 글은 필자의 <[청로 이용웅 칼럼] 2019년 북한 달력의 3월과 4월>의 서두(序頭)와 동일합니다. 달력 7월에는 5,6월과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사진과 <빛나는 조국>의 홍보 로고(logo)가 있습니다. 그리고 “초복 7.12/ 중복 7.22”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달력 7월에는 1,2,3,4,5,6월과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홍보 로고(logo)가 있습니다. 7월 사진은 그 무대에 출연한 [천하무적 자위의 국방성새] 여성취주악단의 ‘주지휘수’과 칼을 든 단원들 입니다. 그리고 달력 8월은 민속춤을 추는 남·녀 무용수들의 공연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복 8.11/ 립추 8.8/ 처서 8.23]이라고 적혀있습니다. 7월 달력 : 주체 83(1994).7.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거하시였다./ July 8, Juche 83(1994):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passed away. // 주체 101(2012).7.17.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받으시였다./ July 17, Juche 101(2012): The respected Supreme Leader Comrade Kim Jong Un was honoured with the title of the DPRK Marchal.// 1894.7.10.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께서 탄생하시였다./ July 10, 1894: Kim Hyong Jik, an outstanding leader of the anti-Japanes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in Korea, was born.// 주체 21(1932).7.31.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강반석녀사께서 서거하시였다./ July 31, Juche 21(1932): Kang Pan Sok, an outstanding leader of the women's movement in Korea, passed away.// 7.27.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July 27: Day of victory in the Fatherland Liberation War. 8월 달력 : 주체 49(1960).8.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선군혁명령도를 시작하시였다./ August 25, Juche49(1960):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Jung Il was started the Songun-based revolutionary leadership.// 8.15. 조국해방의 날/ August 15: Day of Korea's liberation. 북한의 7월과 8월! 북한에서 제일 큰 사건은 ‘김일성 사망’ 입니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동지의 질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장혈판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시였다. 겹쌓이는 정신적인 과로로 하여 1994년 7월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였다. 즉식에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쇼크가 증악되여 1994년 7월 8일 2시에 사망하시였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때 ‘국가장의위원회’는 “1.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구를 금수산의사당에 정중히 안치한다.”고 했습니다. 그 의사당이 ‘금수산태양궁전’ 입니다. 세상이 ‘독재자’라고 부르는 김일성이 가고, 그의 아들 김정일도 가고...손자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서문’의 끝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 입니다. 2019년 7월! 6월의 끝에 행해진 한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과 한·북·미 정상의 악수 등으로 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혹자(或者)는 ‘김일성 헌법’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斷定) 짓고 있습니다. 헌법이라는 단어는 주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쓴 《국어》(國語)에 나온 “선한 자는 상을 주고, 간악한 자는 벌을 주는 것이 나라의 헌법”이라는 문장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김일성 헌법’은 어떤 헌법?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판문점(板門店)에서 만난 수장들(문재인·김정은·트럼프)
[청로 이용웅 칼럼]판문점(板門店)에서 만난 수장들(문재인·김정은·트럼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 홈페이지는 “판문점 ; 분단과 대화의 현장. 남북의 대립과 대화가 공존하는 판문점입니다.”라고 전제하고, “판문점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6ㆍ25동란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군사분계선 이북은 북한 측이, 이남은 UN측이 각각 관할하고 있는 특수지역으로 정전협정 이행을 위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개최되는 곳입니다.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상의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을 말하며, 우리 행정구역상 지명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입니다. 정전협정 조인은 현재의 판문점에서 개성 쪽으로 약 1km 떨어진 지점에서 이루어졌으나, 1953년 10월 군정위 쌍방이 군사분계선상에 공동경비구역을 설정하면서 오늘의 판문점이 생겨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2)>은 “판문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개성시 판문군의 동부에 있는 리. 남부는 동창리, 서부는 평화리, 전재리, 북부는 선적리, 동부는 미제강점하의 경기도 파주군 군내면, 진서면과 잇닿아 있다. 리(里)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63(1974년) 7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친히 찾으시여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영광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다. 이 지역은 남반부에 속해 있다가 지난 조국해방전쟁 시기 공화국 북반부에 속하였다. 주체 56년 10월 개성군 판문면 평화리 일부지역이 갈라 져 나와 생긴 리이다...리로(理路)는 평양-서울(남반부) 사이 자동차길이 지난다. 군 소재지 판문까지는 6Km, 개성까지는 10Km, 서울까지는 40Km이다.”(557쪽)-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2)>은 “판문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이 조선인민 앞에 항복하고 군사정전협정에 조인한 력사적인 장소. 판문점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63(1974년) 7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친히 찾으시여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영광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다. 판문점은 판문읍에서 동쪽으로 약 6Km, 개성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다. 판문점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친필비와 정전담판회의장, 판문각, 통일각 등이 있다. 여기서는 조국통일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치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557쪽)- 위 사전(辭典)은 ‘판문점리’와 ‘판문점’을 설명하면서 반복해서 김정일을 우상화하고, 김일성의 ‘친필비’까지 소개했습니다. 또한 ‘판문점공동경비지역’에서 발생한 “판문점 사건”(1976년 8월 8일)과 “판문점 총격사건”(1984년 11월 23일)을 전적으로 미국의 잘못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판문점에 대한 시찰은 천하제일명장의 위인상으로 총소리 한방 없이 적의 아성을 힘 있게 타격한 통쾌한 사변이였다. 적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도사리고 있고 항상 총구를 겨냥한 판문점, 이곳에서 무장충돌과 돌발적인 불상사인들 얼마나 많았는가”라고 했습니다. ‘판문점’은 북한이 ‘선전선동(宣傳煽動)’ 도구로 쓰고 곳입니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취임 후 8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했습니다. 이번 회담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전격 제안하면서 이슈도 자연스레 대북 문제로 쏠렸었습니다. 오후 1시 8분에 시작된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국경지역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인공, 한반도의 피스메이커”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국경지역’은 바로 ‘판문점’입니다. [DMZ 남·북·미 정상 회동]트럼프-김정은, 판문점서 53분간 회담!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세 번째로 만났습니다. 트럼프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김정은과 악수를 했습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처음 북한 땅을 밟은 것입니다. 판문점에 동행한 문재인 대통령과 미·북 정상 등 세 사람이 함께 얘기를 나누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화약고이자 남북 분단의 상징이 된 판문점에서 세 정상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하며 세계사를 새로 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뒤 트럼프와 함께 판문점을 방문했고, 평양에서 내려온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8분 정도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 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모습은 한발 물러서 지켜봤습니다. 판문점 남측 지역 '자유의 집'에서 북·미 두 정상이 53분간 회담 할 때, 문 대통령은 다른 방에서 기다렸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정반대이기도 합니다. 북한 매체들은 6월 30일 오전까지도 문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북한 선전 매체 <메아리>는 “현실 감각 상실, 판별 능력 마비, 정말 우려스럽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당시 "북 비핵화에서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실로 어이없고 괴이한 주장",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언론 자유? 그런데 7월 1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6월 30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의 제의에 따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셨다"고 밝혔으며,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 만에 조미 두 나라 최고수뇌분들께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역사적인 악수를 하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졌다"고 했습니다. 이 모두가 국익(國益)때문이 아닐까요? 한편 중국은? <인민인보>는 6월 30일 "현지시간 30일 오후 15시 46분경, 김정은 조선 최고 지도자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한국 비군사구역(DMZ)에 있는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전날, 한국 기업이 소유·관리하던 베이징 창안제(長安街)의 삼성·현대차 광고판 전부가 심야에 사전 통보도 없이 베이징 당국에 의해 기습 철거당했습니다. 혹시 판문점 회담 때문? 물론 아닐 것입니다. 국익(國益)이란? 김정은과 트럼프의 “번개팅”도 국익을 위해? 트럼프가 G20(Group of 20)서 시진핑과 휴전한 것도 국익 때문인데...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만,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청로 이용웅 칼럼]의 시진핑 북한 방문기와 중국몽(中國夢)
[청로 이용웅 칼럼]의 시진핑 북한 방문기와 중국몽(中國夢)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중국 <인민일보>는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의 북한 방문에 대해 대서특필(大書特筆)을 했습니다. 먼저 방문 전날인 2019년 6월 19일에는 “中朝(중조) 수교 70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라는 기사에서 18일 북한 평양에서 촬영한 만수대 의사당, 중·조 우의탑, 김일성광장, 개선문(총 4장)의 사진을 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리는 조선은 아시아 동부 조선반도 북반부에 있고, 북쪽으로는 중국과 이웃하고, 동북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토 면적은 12만 3000㎢며 인구수는 약 2400만 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인민일보>는 올해는 신중국 성립 70주년이며, 중국은 이미 중국 특색 사회주의 새 시대로 진입했고, “전체 중국인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 중앙 주변으로 철저하게 단결해 ‘두 개 100년’ 분투목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중국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새 시대 중국과 조선 관계 발전의 청사진을 그려 반드시 양국 우호의 새로운 미담을 만들어 양국 관계의 새로운 발전을 돕고, 양국 및 양국 국민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 및 번영에도 적극 기여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중국꿈)”! 2019년 1월 20일, <인민일보>는 “조선 로동신문에 발표한 시진핑 주석 기고문”을 소개했습니다. ‘기고문’의 끝은 “우리는 조선 동지들과 함께 전통을 계승하고 새 시대에 미래를 향한 중∙조 관계가 풍랑을 헤치고 힘차게 전진하도록 추진할 것”입니다. 나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중∙조 친선이라는 큰 나무가 반드시 무성한 가지와 잎을 펼치고 영원히 푸르청청하리라 확신“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2019年 6月 21日, <人民日報> “习近平会见朝鲜劳动党委员长、国务委员会委员长金正恩. 中共中央总书记、国家主席习近平在锦绣山迎宾馆会见朝鲜劳动党委员长、国务委员会委员长金正恩”/ “시진핑(習近平) 중공중앙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2019년 1월 21일, <인민일보>는 최고 지도자의 우호 계승과 전략적 지도가 양국 관계의 최대 이점이고, 지정학적 친선과 문화적 유대감이 양국 관계를 잇는 고리라는 것도 깊이 인식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시(習)주석이 “양국 우호가 양국 국민들의 바람에 부합하고 양국의 근본적인 이익, 시대적 발전 흐름에도 부합하며, 양측은 장기적 관점에 따른 전략적 선택에 따라 국제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또 ‘신문’은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며, 전략적 관점과 장기적 각도에서 방향성을 철저하게 파악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철저하게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지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여건을 만들고자 하며, 조선의 합리적 안보와 발전 입장을 위해 중국은 최선의 도움을 제공하고, 조선과 관련 측이 공조를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와 지역 장기 안정에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2019년 1월 24일, <인민일보>는 시진핑 북한 방문기를 접고, 시진핑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초청으로 6월 27일-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제14차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전했습니다. 시(習)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중국꿈)” 입니다. 지금 중국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 ‘일장춘몽(一場春夢)’? 김정은의 꿈도 ‘일장춘몽’? 미아(迷兒)처럼 울면서 혼자 길을 찾아 다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이 사도(邪道)에 빠지지 말고, 정도(正道)를 걸어야만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시진핑(習近平) 오늘 6월20일 북한 국빈방문
[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시진핑(習近平) 오늘 6월20일 북한 국빈방문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인터넷 사이트 인민망(人民網)은 2019년 6월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공중앙 총서기·국가주석이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조선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2019년 6월 20일과 21일에 조선을 국빈 방문한다고 중공중앙 대외연락부 후자오밍(胡兆明) 대변인이 6월 17일 베이징에서 전했습니다. 다음날 18일, <인민망>은 중공중앙 대외연락부가 언론 브리핑을 열고, 쑹타오(宋濤) 중연부 부장, 뤄자오후이(羅照輝) 외교부 부부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공중앙 총서기, 국가주석의 조선 국빈 방문에 관해 소개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중국-조선 우호 증진, 아름다운 내일 공동 개척 - 리진쥔 주조선 중국대사, 시 주석 방문에 평양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의 서두(序頭)는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공중앙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6월 20일과 21일에 조선을 국빈 방문한다. 이번 방문은 양국의 수교 70주년을 맞아 시기적으로 특별하고 의미도 크기 때문에 올해 양국과 양당 및 양국 국민들에게 대사이자 경사이면서 양국 우호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감으로 양국 관계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현재 조선은 손님맞이 준비로 한창이며, 각계에서도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고대해 수도 평양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가득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기사의 끝은 “조선 속담에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고, 중국 옛말에도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양국은 좋은 이웃이면서 좋은 친구이고 좋은 동지다. 조선 주재 중국 대사를 4년간 역임하면서 양국 간 유구하고 뿌리 깊은 우호 전통을 깊이 느꼈을 뿐만 아니라 양당과 양국 및 양국 국민들의 양국 전통 우호 계승 및 발전에 대한 강렬한 소망과 바람도 느꼈다. 양당과 양국 최고 지도자의 적극적인 지휘와 양당, 양국 및 양국 국민의 공동 노력으로 양국 전통 우호 협력 관계를 더욱 지키고 다지고 발전시킬 것이며, 시진핑 총서기의 조선 방문을 계기로 더욱 아름다운 내일이 열릴 것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2019년 6월 20일, 대한민국의 일간지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을 하루 앞둔 19일 북한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과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공동 기고를 통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도록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시(習) 주석은 이 기고문에서 "(중·조의) 우정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전통적 북·중 친선을 수 차례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장(章)'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 '새로운 국면' 등 '새로운'이란 단어를 총 12차례 사용했습니다. 중국은 시 주석의 이번 방북에 대해 지금까지 최고지도자의 방북 때 사용해온 '정식 우호 방문' 대신 처음으로 '국사방문(國事訪問·국빈 방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홍콩의 <명보(明報)>은 "북·중 수교 70주년에 전례 없는 국빈 방문으로 이뤄지는 이번 방북에서 시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과 양국 관계 강화에 대한 새로운 발표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 본 칼럼 서두에 있는 기사 “중국-조선 우호 증진, 아름다운 내일 공동 개척”에서 주목되는 것은 올해가 신(新중)국 성립 70주년이며, 중국은 이미 중국 특색 사회주의 새 시대로 진입했고, 전체 중국인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 중앙 주변으로 철저하게 단결해 ‘두 개 100년’ 분투목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중국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최고지도자로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는 시진핑1 중국 <신화통신>과 <중앙(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를 하고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미국은 325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태도입니다. 여기에 중국의 산업전략 ‘제조 2025’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한 봉쇄전략까지 펴며 중국 경기는 점점 불황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시 주석은 과연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는지...6월 20일의 시진핑을 예의 주시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북·중·미의 삼각 관게는 동북아 뿐 만 아니라 세계의 정세와 직결됩니다. 그의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북한의 “더욱 아름다운 내일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트럼프는 어떻게 ‘요리’할는지..오늘부터 6월 29일까지의 그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중국! “중국 정부가 비록 멸망한 때는 있었으나 그 문화는 우세하다. 정복된 것은 오랑캐지 결코 중국 사람은 아니다.”- 프랑스의 작가·사상가.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볼테르(Voltaire/1694~1778)의 말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리더십 세미나
[청로 이용웅 칼럼]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리더십 세미나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리더십 세미나]가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리더들의 역할”을 주제로 2019년 6월 15일(토) 오후 1시 30분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이 세미나에서 필자는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합니다. 다음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역할”의 전문(全文)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지도자의 회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제2차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개최되었습니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확인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두 정상은 이 ‘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했습니다. 또한 두 최고지도자는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날! ‘2018년 4월 27일’의 선언으로 당장 한반도에 평화 전선이 구축되어 항구적인 평화나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이제 겨우 평화 정착을 위한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다시 찾아온 평화의 봄이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얼마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 정권 이래 MB와 박근혜 대통령의 두 차례의 재임기간 동안 단절되고 폐쇄되었던 남북한 관계가 두 영수들의 줄기찬 노력으로 다시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넘어야 될 산도 많고, 치워나가야 될 장애물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남·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믿음‘에 대한 회의입니다. ‘판문점 선언’ 직전, 남한에서는 ‘포악한 김정은’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의 대남·대외 정책 전환과 김정은의 리더십 재평가’ 보고서에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북 정보 통제와 조작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김정은에 대한 인식은 매우 편향돼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김정은이 매우 미숙하고 포악한 지도자라는 부정적인 인상만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남한 사람들은 얼마나 그 말애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할까요? 그때 갤럽 조사에선 '김정은에 대한 생각이 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응답이 65%나 됐고,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선 김정은에 대한 신뢰도가 77.5%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솔직담백하고 예의 바르더라"고 했습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현장에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 남한 보수 언론은 “김정은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대며 우리를 '핵 불바다'로 위협했던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2019년 5월 9일 남한의 최고지도자는 '문재인 정부 2년 특별 대담'에서 "남북정상회담, 이제 본격 제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6월 9일 남한의 통일부장관은 4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애정을 천명했었는데...남한의 한 기자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3대 세습에 핵을 가진 독재자가 스스로 바뀌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두 정상의 자질과 인성이 중요합니다. 우리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단 ‘믿음’을 가져 봅니다. 하지만 북한 수장에 대한 ‘믿음’은 아직 확실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한반도 통일과 평화’는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미국의 2대 대통령 애덤즈(John Adams/1735-1826)는 당시의 으뜸가는 정치가로서 사람됨이 성실하고 진지하였으며 열정이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 동안의 대통령 임기는 나의 평생에 가장 비참한 시절”이라는 그의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겼을까요?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리더십 세미나]는 [주최·주관]이 ‘윤일규 국회의원실·조직위원회·국회출입기자클럽·한국언론연합회·선데이뉴스·대한방송뉴스·코리아명사포럼’ 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염원(念願)은 국회의원도 언론인도 보통사람도 매한가지입니다. 세미나에서는 이현희 남북하나예술단 단장(통일부 통일교육원 강사·국방부 안보교육 강사)의 “통일은 우리의 몫”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세미나에 이어서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파워리더 발굴 프로젝트·2019 대한민국 파워리더 대상] 시상식이 개최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대한민국 민족문화추진회와 한 연극계 원로의 문집(文集)
[청로 이용웅 칼럼]대한민국 민족문화추진회와 한 연극계 원로의 문집(文集)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박종화(朴鍾和)·이병도(李丙燾)·최현배(崔鉉培)김동리(金東里)·손재형(孫在馨)·신석호(申奭鎬)·이은상(李殷相)·조연현(趙演鉉)·홍이섭(洪以燮)·김두종(金斗鍾)·김윤경(金允經)·성낙훈(成樂熏)·이숭녕(李崇寧)·이희승(李熙昇)·한갑수(韓甲洙) 등!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학·예술계 원로들입니다. 이들은 민족 문화의 보전·전승·계발·연구를 추진하여 민족 문화의 진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1965년 서울에서 민간단체 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를 발족했습니다. 이 민족문화추진회는 “학문과 예술로 민족 얼을 부흥시켜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게 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크게 민족 문화를 앙양시킨다”는 취지 아래 발족하여, 문화 시설의 확충, 문화 활동 지원, 문화 행정의 일원화를 정부에 건의했습니다. 추진회는 1970년에 독자적인 사업으로 한국 고전의 현대화를 통한 주체와 정통의 확립을 표방하고, 기구를 재단법인체로 개편하여 한국 고전의 국역·편찬과 국역자 양성 등의 사업을 국가의 재정적 지원 하에 추진했습니다. 국역 사업은 <국역 연려실기술>을 필두로 고전적 국역 총서가 1966년부터 출간되어 현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 왕조의 각종 의궤(儀軌)류 등 역사 자료를 비롯하여 일반 문집 등 고전 자료 전반에 걸쳐 700여 책이 국역 간행되었습니다. 아울러 한국 고전 전산화 사업을 추진하여 이미 국역된 <조선왕조실록>, <국역 순암집>, <국역 점필재집> 등을 CD로 간행하는 한편, 국역된 고전과 원전 자료인 <한국문집총간>을 전산화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서적 중 약 반수 정도는 문집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존하는 문집의 숫자도 파악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문집(文集)’만을 대상으로 한 종합적인 연구논문도 없는 실정입니다. 문집이 개인의 모든 저작물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다양한 개인적 체험 자료의 보고(寶庫)이므로 자료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1986년부터 우리나라 문집을 총정리하여 ‘한국문집총간’으로 간행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색인 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이 다양하게 수록된 문집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문집의 목록 작성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다음으로 문집에 수록된 다양한 자료를 분류, 정리함과 동시에 문집의 문화적 의의를 밝히는 것을 당면과제...현 정부의 관계기관들은 문집(文集)이 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아! 알겠죠! ‘문집(文集)’은 개인 또는 여러 사람의 문장이나 시부(詩賦) 등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문집이란 글자 그대로 글을 모아 엮은 책인데, 포괄하는 내용이 다양하여 개념을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문집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중국 양(梁)나라 완효서(阮孝緖)가 <칠록 七錄>을 찬집(撰集)할 때, 그 분류항목 일곱 가지 가운데 ‘문집록(文集錄)’을 설정함으로써 비로소 분류항목의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역대의 예문지(藝文志) 및 목록에 집부(集部)를 세워 문집을 그 속에 분류, 귀속시켰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그것을 준용(準用)했습니다. 문집은 크게 별집(別集)과 총집(總集)으로 나누는데, 어떤 개인의 문장·시부 등을 모아 편찬한 책을 별집이라 하고, 여러 사람의 시부 등을 전부 또는 일부를 적록(摘錄)한 것을 총집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중국에서 쓰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문집이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한 문헌이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집’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한 사람이나 또는 두 사람 이상의 문장이나 시부 등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서, 세고(록)·연방집(고)·합고(집)·유고(집)·일고(집)·전집·전서·대전·실기 등을 포괄하여 일컫는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 ‘문집’ 관련 뉴스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문인 이수광(1563∼1628)과 민우수(1694∼1756)가 남긴 문집이 완역·출간됐다는 소식입니다. 조선시대 백과사전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의 문집의 최초 완역이라는 학문적 성과가 이뤘다는 보도입니다.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는 이수광이 쓴 '국역 지봉집(芝峯集)' 8책과 민우수 저작인 '국역 정암집(貞菴集)' 6책을 완간했다고 2019년 5월 25일 밝혔습니다. 아주 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의 관계기관들은 ‘문집(文集)’이 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아! 알겠죠! 필자는 최근 대한민국 연극계 원로 손진책 님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사 받았습니다. 2019년 6월 5일부터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서 공연되는 창극 <심청가>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나의 ‘연극 동지’, 손진책 원로의 8남매가 “아버지 탄신 100주년을 기리는 헌정문집”을 펴낸 것입니다. 축하의 인사을 보냅니다. 이 ‘문집’의 편집대표인 손봉숙(前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셋째 딸은 “문집을 펴내며” 서두에 “2019년을 맞이하여...기미년을 듣는 순간 아~ 1919년, 우리 아버지가 탄생하신 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나는 곧 장남인 진책에게 전화를 했다. 올해가 아버지 탄신 백 주년인데 우리가 뭔가 아버지를 기리는 일을 준비해야 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엔 아버지, 어머니가 오로지 팔남매 교육에 헌신하신 분들이니 그 배운 능력들을 발휘하여 문집을 한권 만들어 헌정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바로 동의했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이수광의 문집도 중요하지만, 손봉숙 8남매의 문집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문집의 중심에는 효(孝)사상이 존재합니다. 8남매가 하나가 되어 ‘아버지 손봉오(1919~1969)’님과 ‘어머니 황봉한(1921~1989)’님을 기리는 효(孝)의 문집을 펴낸 것만으로도 축하받아 마땅합니다. - “경(敬)으로서 효도하기는 쉽고, 사랑으로 효도하기는 어렵다. 사랑으로서 효도하기는 쉬어도, 부모를 잊기는 어렵다. 부모를 잊기는 쉬어도 부모 때문에 나를 잊기는 어렵다.” 장자(莊子) -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
[청로 이용웅 칼럼]“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조선대백과사전 26>] “안중근(1879.9.21.-1910.3.36) : 일제의 조선 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한 애국렬사.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하는 한편 말타기와 총쏘기를 련습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다. 일제의 조선침략책동이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 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이 극도에 이르러 망국의 위협이 짙어 가고 있던 정세에서 안중근은 나라의 독립을 지켜 싸울 방책을 모색하고 해외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1903년에 중국 상해와 치프 등지를 돌아보았다. 일제침략자들이 1904년 로일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고 1905년에는 침략적인 <을사5조약>을 날조해 내자 애국적 의분을 참지 못한 안중근은 반일구국투쟁에 용감히 나섰다...1909년 10월 26일 만단의 준비를 갖춘 후 일제와 로씨아 군경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환영> 군중 속에 끼여 홈으로 들어갔다. 이또가 예정대로 할빈역에 도착하자 안중근은 권총으로 그자에게 조선민족의 원한이 서린 복수의 총탄을 안기여 사살하였고, 그자를 구원하려고 모여 온 일제의 가와시마 령사, 모리 서기관, 다나까 만철리 사장을 차례로 쏘았다. 그리고 쓰러진 원쑤들 앞에서 통쾌하게 <조선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이상 “청로 이용웅 칼럼-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 2019년 1월 19일 기사) 필자는 위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에 이어 ②하얼빈 역과 안중근”을 집필 중이었는데,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보도자료’ 때문에 <“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를 먼저 적습니다. 기록원은 “2019년 5월 29일(수) 조간.(5.28. 15:00 이후)부터 보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앞 다투어 기사를 올렸는데, 대부분 자료를 설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어떤 신문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보도자료’를 원문 그대로 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다음은 ‘보도자료’입니다. “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기사 수집·공개/ -체포과정, 심문내용, 러시아의 상황인식 등 사료적 가치 매우 높아/ □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일제의 첫 심문부터 사형집행까지 안중근 의사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과 발언 내용 등을 소개한 러시아 언론 보도가 확인되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28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공개한다./ ❍ 공개된 기록물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5년 독립운동과 우리 동포 관련 기록물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대상으로 기획·수집하던 중 발굴된 것인데, 안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안의사 관련 보도이다./ ❍ 그동안 안중근 의사 관련 러시아 신문기사가 단편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으나, 러시아 극동지역 여러 신문의 관련 기사를 망라하여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들 신문에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차이쟈고우에서의 의거 준비, 체포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 ❍ 「달리니 보스톡지(紙)」는 의거일 이틀 뒤인 1909년 10월 28일자에 26일 아침 9시 최전선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공작(당시 조선 통감)은 치명적 총상을 입었고, 조선인으로 밝혀진 범인이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붙임 1 번역문 참조) 「쁘리 아무리예지(紙)」 11월 2일자는 10월 24일 정오, 하얼빈에서 남쪽으로 가는 차이쟈고우의 우편열차 정거장에서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이 내리는 것부터 다음날 아침, 거사를 위해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날 때 서로 눈물을 흘리며 큰 절로 인사하는 장면까지 르포형식으로 게재했다. 아울러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병을 얻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실었다.(붙임2 번역문 참조) / ❍ 「보스토치나야 자랴지(紙)」 11월 4일자는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그대로 실었다.(붙임3 번역문 참조) 신문들은 안중근 의사가 현장을 지휘하는 러시아 장교에 의해 기차역으로 옮겨진 뒤 감옥으로 이송되는 과정도 상세히 보도했다. / ❍ 「쁘리 아무리예지(紙)」11월 6일자는 1일 있었던 이송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차에 오르는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의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안중근은 손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열차에는 마지막으로 안중근이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관한 모습을 보였다고 묘사했다.(붙임4 번역문 참조) 또한 신문은 안중근 의사의 법정진술과 사형선고 당시의 상황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 ❍ 「쁘리 아무리예지(紙)」 1910년 2월 27일자는 사형을 선고한 2월 26일 재판 상황에 대해 보도하였는데, 1시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으며, 안중근의 어머니는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한 것으로 보도하였다.(붙임5 번역문 참조) 특히,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와 관련된 보도기사가 주목을 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지(紙)」 1910년 4월 21일자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하였다.(붙임 6 번역문 참조) 종전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의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공개와 관련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안다.”라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 하고자 공개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남한의 미스트롯, 북한의 대중가요와 작사가 김정일
[청로 이용웅 칼럼] 남한의 미스트롯, 북한의 대중가요와 작사가 김정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과 신림동,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와 과천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갓뫼, 간뫼, 백호산, 서금강, 소금강이라고도 하는 산! 한남정맥이 수원 광교산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한강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우뚝 솟아오른 산!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은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 관악이라고 했던 산! 관악산입니다. 필자(筆者)는 그 산의 자락에 있는 금천구 시흥동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관악구 남현동에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관악산(冠岳山)은 “자연 여신(女神)의 궁전”이라는 알프스도 아니고, 명산도 아닙니다. 그냥 좋은 이웃 같은 산입니다. 물이 적어 아쉽지만 사계(四季)의 숨은 고운 영상을 간직한 관악산은 훌륭한 서울시민의 안식처입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아주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지하철 2·4호선 사당역 5번 출구에서 오르는 길은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고 사랑하는 등산로입니다. 그 산자락에 있는 “옛날 손 누룽지 집”과 “삼원떡집” 등은 정갈하고 맛깔스런 먹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이 길을 오가다 보면 한 상점 앞에 조그만 실사 현수막(實寫 懸垂幕)이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는 “25년 전통의 맛! 떡의 명가. 효녀가수 미스트롯 김소유. 심금을 울리는 명품 보이스”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대한민국 트롯 열풍에 화력을 더하고 제2의 트롯 전성기를 이끌 차세대 트롯 스타를 탄생시킬 신개념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자랑하는 <조선TV>의 “미스트롯”(방송종료)에서 본선 12명에 든 무명가수 김소유가 주인공입니다. 우승을 차지한 송가인과 김소유는 준결승전에서 ‘정통시스터즈’의 ‘진검승부’, ‘용쟁호투’, ‘맛’을 보여주었다고 박수를 받았습니다. 둘이 부른 “진정인가요”의 원곡 가수 김연자도 극찬을 했습니다. 요사이 본선 12명이 부른 가요는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부른 ‘트롯’은 트로트, 트롯트 등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뽕짝’이라고도 했습니다. ‘트로트(Trot)’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엥카(演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중가요 양식으로, 독특한 5음계를 음악적 특징으로 하며, 일본 엥카의 번역·번안 노래를 거쳐 193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내 창작이 본격화되었고, 1930년대 중반에 정착된 대중가요 양식으로 신민요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양대 산맥을 이뤘습니다. 이 양식은 1920년대 일본 엥카의 번역·번안곡이 인기를 모은 이후, 1928년 문수일 작사, 김서정 작곡의 “세 동무”에 이르러 창작곡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932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일명 “황성 옛 터”)을 거쳐면서 , 이 형태가 확고히 정착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트로트는 단조 5음계로 고착되고 주로 2박자에 특유의 꾸밈음을 지닌 노래로 정착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북한의 단행본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에서 “《픽타》레코드회사 △대표적인 대중가요들/ 황성옛터(荒城의 跡)…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 리애리수 취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대중가요! 북한에서 ‘대중가요’라는 어휘가 가장 많이 쓰인 책이 1997년 8월 15일 발간되었습니다. 평양출판사에서 펴낸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의 차례를 보면, ‘3.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들을 더듬어’(75~192쪽), ‘악보를 통해 보는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285~375쪽)라고 되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대중가요를 소개한 것입니다. 1995년에 출판된 <민족수난기의 신민요와 대중가요들을 더듬어>의 중보판인 이 책자는 한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대중가요의 위상 제고라는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 책의 저자 최창호는 ‘일제시대’에 대중가요가 ‘친일세력들과 부유계층들’의 냉대를 받았는데, “그 리유의 하나는 돈 없는 무산자들, 일자리가 없어서 여기저기에 떠다니는 뜨내기들이 부르는 노래, 다시 말하면 비천한 서민계층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하여 대중가요들을 천대시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이 노래들이 일제의 착취와 그 기반에 시달리며 살아온 눈물겨운 서민대중의 마음을 대변한 시와 음률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민대중을 천대시하는 친일세력들과 유산자들은 이 시기의 대중가요가 자기들의 마음과 기호에 맞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89쪽)라고 했습니다.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는 “민족의 수난기에 대중가요는 사람들 속에서 가장 널리 불리워지면서 음단에서 주류를 이루어왔고 예술가요나 신민요들에 비하여 그 노래의 수가 많다. 대중가요는 비가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황성옛터》, 《눈물 젖은 두만강》, 《진주라 천리길》, 《울며 헤진 부산항》, 《나그네 설음》 등 많은 작품들은 겨레의 마음속에 흐르던 눈물과 그 울분을 담고 있는가 하면 《목포의 눈물》, 《칠석날》, 《애수의 소야곡》 등 련정을 담은 비가들도 있다. 다음으로 《잃어진 고향》, 《타향살이》, 《연자방아》, 《고향설》 등을 비롯한 애향의 주제들도 있고 비가에서 탈피해보려고 시도한 《락화류수》, 《피리소리》, 《망향초사랑》을 비롯한 정서적인 작품들과 겨레의 힘찬 박동을 담은 《감격시대》, 《바다의 교향시》 등과 같은 작품들도 있다.”(75쪽)라고 했습니다. 1970년 11월 6일 김정일은 자기가 친히 창작한 가사를 가지고 창작가들을 찾았다고 합니다. 북한은 그 가사가 바로 ‘대중가요의 본보기’이며, 그 ‘본보기’의 제목이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이라고 합니다. 결국 김정일은 자신이 직접 작사한 대중가요를 ‘대중가요의 본보기’라고 자랑한 셈인데, 어쨌거나 남한 식으로 말한다면 김정일은 대중가요의 작사자가 분명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한반도 대중가요는 남과 북이 함께 공유했습니다. 자료는 북한이 오히려 잘 보존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북한 대중가요는 김일성을 찬양한 <수령님의 높은 뜻 붉게 피였네>와 같은 작품이 많습니다. 우상화...! 음악을 사랑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안을 해 봅니다. -“지금 남한에서는 <내일은 미스트롯>이 전국 순회공연 중! 2019년 6월 30일(일) 안양공연이 마지막인데, 광복절에 평양 공연”을 할 수는 없을까요?”- 당신의 “공화국 인민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