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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김정은 ‘음악정치’와 김정일 ‘음악예술’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김정은 ‘음악정치’와 김정일 ‘음악예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최근 한 대학교수가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 후속편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책소개”에서 “우리 당의 친솔악단이며 국보급 예술단체./ 몇 천만 톤의 식량에도 비할 수 없는 거대한 힘./ 김정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모란봉악단은 북한에서 의미 있고 특별한 날에는 어김없이 공연 무대에 오른다. ‘음악정치’라 표현할 만큼 모란봉악단의 위상은 대단하다. 모란봉악단을 보면 분명 김정은이 보인다. 북한판 걸그룹이라 불리며 우리 사회에서도 남다른 주목을 받는 모란봉악단은 공연마다 김정은의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한 일간지는 위의 책을 소개하면서 평양의 한 할머니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평양 서성구역에 사는 한 할머니는 이른 아침 모란봉악단 공연티켓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매표소 현장에 도착해보니 먼저 와있는 사람이 수 십 명이 됐습니다. 할머니는 보급원에게 “늙은이가 언제 또 이런 희한한 공연을 보겠나. 이왕이면 앞좌석의 관람표로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미안합니다. 앞좌석 관람표는 이미 다 나갔습니다”라는 얘기였습니다. 겨우 두 장을 구해 집에 돌아오니 5명이 가족이 저마다 성화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학에 다니는 손녀의 떼질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손녀를 위한 일이라면 늘 극성이던 할머니도 이번만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앞길이 9만리 같은 너희들이야 훗날에도 기회가 있을 터이니, 이번만은 일흔 넘은 이 늙은이가 먼저 가자꾸나”라는 김 할머니의 말에 가족 모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2018년의 한반도 정세(政勢)는 한치 앞을 못 볼 지경입니다. 북한 악단의 역사를 담은 책은 그렇다 치고, 할머니의 얘기는 과거의 신문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기사입니다. 일간지는 북한 관영매체들이 전한 이런 에피소드는 북한에 불어 닥친 악단공연 관람 붐을 엿볼 수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동신문>에 따르면 국가예술공연운영국으로 공연 관람과 관련한 전화가 이어지고, 각 지구보급소 주변은 관람표를 사러 오는 사람들로 이른 새벽부터 흥성인다고 합니다. 이 기사만 보면 평양은 서울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문은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에 따르면 음악단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각별한 관심은 집권 초반부터 나타났으며,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을 출범시켰으며, 부인 이설주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곳도 이 악단 창단 공연자리이며, ‘음악 정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고 했습니다. 책 저자는 ‘모란봉악단과 김정은’의 관련기사만 모아 책으로 만들었지 북한음악의 실체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음악 정치’는 이미 김정일 시대에 존재했습니다. 그래도 저자는 “북한의 악단 정치를 연구하면서 김정은에게 있어 음악은 한 개인을 우상화하기 위한 선전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고 말하고, “김정은의 음악 정치를 그대로 둔 채 그를 평화의 파트너로 미화해서는 안 될 것”이란 주장했습니다. 그래도 책 저자나 신문기자가 북한 ‘음악예술’을 먼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1991년 7월 17일 발표된 김정일의 <음악예술론>이 북한음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김정은 시대에서 똑같습니다. <음악예술론>은 “우리 시대 주체음악의 사명과 역할, 주체음악건설의 필연성과 주체음악의 면모, 주체음악건설과 창조의 근본원칙들을 가장 정확히 밝혀 주고 있는 것으로 하여 현시대는 물론 미래의 력사적 시대에 이르기까지 참다운 음악건설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 주는 위대한 대강으로 된다. 모든 창작가, 예술인들은 주체시대음악의 대백과전서인 《음악예술론》을 확고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21세기 앞에 제기된 시대적과제, 주체의 강성대국건설을 위하여 준마를 타고 힘차게 내달리고 있는 우리 인민의 영웅적 투쟁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주체음악창조에 온갖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나가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음악예술론>에는 “대중음악형식을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하여서는 제국주의자들이 퍼뜨리는 썩어빠진 《대중음악》, 쟈즈나 로크, 디스코 같은 음악의 침습을 막고 저속하고 불건전한 향락과 기형적이고 타락한 취미를 조장시키는 사소한 요소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인민대중의 지향과 감정에 맞고 시대를 전진시킬 수 있는 고상한 대중음악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 음악의 대중성, 통속성은 음악의 사회적본성에 맞게 인민대중의 사상과 감정을 반영하여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에 이바지하는 주체음악의 고상한 사명과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된다. 주체 음악의 대중성, 통속성은 고상한 예술성을 전제로 한다...음악은 인민대중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자기의 몫을 가지고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시기에 와서 전문적인 직업음악은 인민의 사상감정을 완전히 외면하는데 까지 이르렀으며 그 음악언어는 인민의 리해로부터 더욱 더 멀어졌다. 한편 제국주의자들은 교활한 방법으로 인민의 음악적요소를 극단한 반동적 목적에 악용하여 인민대중을 타락시키고 그들의 투쟁의식을 마비시키는 《대중음악》을 퍼뜨림으로써 그것을 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고 노예화하기 위한 도구로 리용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 <음악예술론>은 어제도 오늘도..아마 내일도 북한 ‘음악예술’의 ‘대백과전서’이며, ‘교과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음악예술은 김정일 시대에 “선전선동(宣傳煽動)의 무기(武器)=음악예술” 였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김정은 시대에는?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나 위 신문 기사를 보면 많이 변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지금 북한은 “선전선동의 무기=음악예술”가 아닐까요? 김정은의 ‘음악정치’는 변하고 있지만, 김정일의 ‘음악예술’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북한 <백과전서>에는 음악이 “사회생활과 계급투쟁에서 힘 있는 무기로 된다...시대의 선진적인 사상과 인민음악의 기초에서 리탈된 착취계급들의 퇴폐적이며 기형적인 음악들은 인민들을 염세와 타락, 악에 대한 무저항과 순종에로 이끌어가면서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작용을 한다. 오늘 자본주의나라들과 남조선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음란하고 기괴망칙한 각종 퇴폐적이며 형식주의적인 음악들이 바로 그것을 실증하여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남한 국립국악원의 “북한의 민족가극”과 북한 민족가극
[청로 이용웅 칼럼]남한 국립국악원의 “북한의 민족가극”과 북한 민족가극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대한민국 국립국악원은 2018년 11월 2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과 우면당에서 ‘2018 북한음악연주회 및 학술회의: 북한의 민족가극’을 개최한다고 11월 16일 밝혔습니다. 국악원은 행사에서 북한 가극 <금강산의 노래>에 출연했던 재일 성악가가 학술회의에 참여해서 그 경험을 구술할 예정이고, 음악회 1부에서는 다른 재일 성악가들이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의 노래 등을 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악원 관계자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과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을 기회로 한반도 평화의 기운이 움트고 있는 이 때 남북교류와 통일을 대비한 한민족예술의 발전에 있어서 큰 의미의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2018년 행사는 분단 이후 북한의 민족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를 고취하고 통일 대비 한민족 음악예술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2014년 ‘북한의 민족기악’, 2015년 ‘북한의 민족성악’, 2017년 ‘북한의 민족무용’에 이은 네 번째 행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학술회의는 전석 초대(선착순 무료)로 진행되며 음악회는 국립국악원 누리집의 예약을 통해 관람 가능하며 관람료는 전석 무료이고, 행사 시간은 11월 22일 오후1시(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와 오후 7~9시(국립국악원 우면당)라고 했습니다. 11월 19일 확인해 보니 오후 7시 행사는 취소되어 있었습니다. 2018년 11월 22일(목) 오후 1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회의장소를 찾아 헤맸습니다. 담당자한테 전화했더니 회의장이 우면당이라고 했습니다. 학술회의는 “북한 민족가극 창작 방향과 특성: 대본을 중심으로...”, “‘<피바다>식 가극’ 무대미술의 특징과 민족가극 <춘향전>으로의 계승양상”이 핵(核)이었습니다. 발표자들은 아주 열심히 발표준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북한 문화예술을 연구해온 필자는 왜 이런 학술회의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미 사장(死藏)되고 있는 <춘향전>이 학술회의의 핵심이라는 것은 “한민족예술의 발전에 있어서 큰 의미”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술회의는 “민족가극 <춘향전>에서 체현된 무용의 특징>, “재일조선예술인의 가극 전승사”, “학술자료: 북한 민족가극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습니다. 국립국악원장은 “학술회의를 통해 북측 가극의 실제를 살펴보면서 민족음악의 동질성을 향한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길에 국립국악원이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필자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남한의 사전들은 ‘가극’이란 용어를 대부분 ‘오페라(opera)’라고 풀이했습니다. <국어대사전>, <금성판 국어대사전>,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세계대백과사전>(동서문화) 등은 ‘가극=오페라’, ‘가극→오페라’라고 했습니다. <새 우리말큰사전>(“노래와 관현악을 주제로 하는 극. 곧 오페라를 말함.”)이나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오페라. 노래를 중심으로 한 음악극.”)도 유사합니다. <우리말 큰사전>은 “관현악과 더불어 대사를 성악으로 하는 연극”이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가극’의 영문표기를 ‘opera’로 합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은 “가극《문예》 노래와 음악을 기본수단으로 하는 종합적인 무대예술의 한 형태”(3쪽)라고 했습니다. 음악의 종류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1)>은 “대사와 행동을 기본으로 하는 연극과는 달리 작품의 내용이 시종일관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의 흐름속에서 표현되는 극”(43쪽)이라면서 음악, 연극과 차별화했습니다. <백과사전(1)>도 “가사와 음악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여 생활을 극적으로 반영하는 종합예술”(25쪽)이라고 했습니다. <백과전서(1)도 “노래와 음악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여 생활을 극적으로 반영하는 무대예술의 한 형태”(27쪽)라고 했습니다. ‘가극’과 복합된 용어가 ‘민족가극’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10)>은 “매개 나라들에서 민족적인 주제와 자기 민족의 고유한 음악형식으로 창조한 가극.”(68쪽)이라 풀이하고 “우리나라의 민족가극은 판소리에 기초하여 발생한 창극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창극은 해방 후 1950년대 말까지 우리 나라의 유일한 민족가극형식으로 발전해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민족음악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우리 당의 주체적 문예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적극적인 창조활동에 의하여 지난날 주로 전설, 설화 등의 민족고전작품들만을 제재로 하여온 판소리양식의 창극은 근본적으로 개조되여 민요를 바탕으로 하는 인민적이고 통속적인 새로운 현대적양식의 민족가극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 사회주의현실을 주제로 한 《강 건너 마을에서 새 노래 들려온다》(1960년)이다. 그후 현대적 주제의 작품을 위주로 한 민요 바탕의 새로운 민족가극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여 나왔다. 그 대표적 작품으로 항일의 혁명전통을 주제로 한 《녀성혁명가》(1964년), 《무궁화꽃수건》(1966년), 《해빛을 안고》(1968년)와 천리마시대의 현실을 주제로 한 《붉게 피는 꽃》(1962년), 민족고전작품을 주제로 한 《금강산 팔선녀》(1969년) 등을 들수 있다. 1970년대 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정력적인 지도밑에 력사적인 가극혁명이 빛나게 수행되고 인류가극사상 처음되는 주체적인 《피바다》식가극이 탄생됨으로써 우리나라 민족가극은 보다 높은 획기적 발전단계에 올라섰다.”고 했습니다.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 1991년 북한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민족가극 춘향전 종합총보>(총 655쪽)의 발간사를 보면, 김정일이 1988년 8월 <춘향전>을 “민족문화유산계승발전의 본보기 작품으로, 시대의 걸작으로”(1쪽) 만들 구상을 가지고 ‘창조현장’을 찾아 “밤 늦게까지 작품창조사업”(1쪽)을 지도하면서 “작품이 종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본원칙을 명철하게 지도”(1쪽)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그런 언행이 “창작가들이 주체적문예사상에 기초한 혁신적 안목으로 고전문학작품을 작품의 기본 핵에 맞게 형상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수 있게 한 강령적지침”(1쪽)이라고 했습니다. 변형된 <춘향전>은 서장(사랑의 노래), 제1장(광한루의 봄), 제2장 1경(부용당의 봄밤), 2경(시내가), 3경(꽃피는 부용당), 4경(사랑가), 제3장(부용당의 가을), 제4장(남원관가), 제5장(농부가), 제6장 1경(눈물의 부용당), 2경(옥중에서), 제7장 1경(사또생일잔치), 2경(고생 끝에 락이 왔네), 종장(전하리 춘향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태양의서커스와 동춘서커스”와 한반도 곡예와 교예
[청로 이용웅 칼럼] “태양의서커스와 동춘서커스”와 한반도 곡예와 교예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최근 일간지 <중앙일보>에 문화팀 기자가 쓴 “태양의서커스와 동춘서커스”가 실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서커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한국 유일의 서커스단!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일본인의 서커스단 직원이었던 동춘 박동수에 의해 창단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커스단입니다. 2009년 11월 15일 청량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었는데, 서커스단을 살리자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고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그해 12월 16일 문화관광부 전문예술단체로 등록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대부도에 자리를 잡고 이 곳을 기준으로 정기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상당수의 단원이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화팀 기자가 본 캐나다 서커스 ‘태양의서커스’! 10월 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빅톱시어터(첨단 야외 텐트극장)에서 시작된 내한 공연 ‘쿠자’가 개막 전 선(先)예매로만 100억원 어치 티켓을 팔았고, 연말까지 매출 2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연장에서 만난 ‘쿠자’는 “아찔한 공포 그 자체”입니다. 2500여 석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스릴 넘치는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긴장감을 즐겼습니다. 문화팀 기자는 뒤 이어 대한민국의 동춘서커스단을 찾았습니다. 그는 “아홉 개의 곡예 사이사이에 광대들의 코미디와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집어넣은 태양의서커스와 달리 동춘서커스는 18가지 곡예를 마치 학예회 장기자랑하듯 펼쳐놓기만 했다. 무대와 의상·조명·음악 등의 수준 차이는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였다. 똑같은 난이도의 곡예를 보여준다 해도 긴장감·박진감 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썼습니다. 또한, 두 서커스단의 매출 규모 역시 격차가 큰데, 태양의서커스가 1984년 창단 이래 전 세계 450여 개 도시에서 1억9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고 연 매출은 8억5000만 달러(약 9600억원)에 달한 반면에 1925년 창단한 동춘서커스의 연 매출은 9억9000만원(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문화예술 비즈니스 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로 꼽히는 태양의서커스”의 성공에는 본거지인 퀘벡시의 재정 지원도 큰 몫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동춘서커스의 본거지인 안산시의 재정지원은? 필자와 서커스의 만남은? 동춘서커스는 경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캠퍼스와 지척에 있는 마산 앞바다 돝섬에서 처음 대했고, 북한 서커스는 1991년 프랑스 파리7대학 불문학과 교환교수로 있을 때 파리에서 처음 만났고, 중국 서커스는 2013년 북경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 한국곡예협회가 있는데 아직 “곡예(曲藝)”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马戏’, ‘杂技团’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교예’라고 합니다. 북한의 ‘교예’라는 용어의 어원은 중국어입니다. 《漢韓大辭典》(제4권)을 보면, “巧藝 ① 재주. 기예(技藝). 《晉書, 載逵傳》 少博學, 好談論, 善屬文, 能鼓琴, 工書畵, 其他巧藝, 靡不畢綜. ② 세설신어(世說新語)의 편명(篇名)”(945쪽)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발간된 《大漢和辭典》(卷四)도 《漢韓大辭典》과 동일하게 기술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은 ‘교예’를 “육체의 기교동작을 기본적인 형상수단으로 하여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하는 예술. 고도의 부단한 숙련으로 이룩한 기교로써 인공적으로 조성해놓은 장애를 극복하거나 요술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또는 동물을 길들여 재주를 부리게 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최대한의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예술”(642쪽)이라고 했습니다. 월간 <조선예술>에 ‘교예’라는 어휘가 처음 쓰인 것은 1972년 4월호입니다. 이 책의 “어버이사랑의 품속에서 태여난 교예”라는 글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북한에서 쓰인 ‘곡예’나 ‘교예’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똑같이 ‘circus’로 기술했습니다. 김일성은 “우리 교예는 당 정책을 선전하여야 하며 특히 민족적 특성을 살리면서 교예를 세계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간곡하게 교시”를 했습니다. 김정일의 <사회주의적민족교예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평양교예단 료해검열사업에 참가한 일군들과 한 담화 1973년 12월 8일)! 김정일은 교예막간극이 남반부의 부패한 사회현실을 폭로하고 남녘땅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을 내쫓자는 것으로 일관되게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었는데, 많은 막간극들은 당 정책이 구현된 작품들로써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남조선괴뢰들을 조소풍자하고 남조선의 부패한 사회현실을 예리하게 발가냄으로써 사람들을 착취계급과 착취제도에 대한 끝없는 증오의 사상으로 교양’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 자료에는 “교예예술이 인민들을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며 당 정책을 선전하여야 한다는 것은 혁명발전의 매 단계에서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육과 예술을 잘 배합하여 형상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근로자들에게 당의 정책을 해설 침투시켜주는 선전자로, 근로자들을 당 정책 관철에로 고무추동하는 적극적인 선동자로 되여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하며 결국 교예예술이 철저히 당적인 예술로 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라고! 최초의 서커스 공연은 기원전 1세기경 줄리어스 시저의 통치 시절에 세워진 로마의 키르쿠스 막시무스라는 전차경기장에서 열렸으며, 현대식 서커스는 1768년 영국의 한 말타기 곡예사가 빠른 속도로 원형 공연장을 돌고 있는 말 등 위에 서는 방법을 발견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예능인 서커스가 고대부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 왔으며, 국가에서도 서커스 산업을 장려해 2,500년이 넘는 전통을 현재까지 잘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제주도에서는 지금 ‘서커스 월드’라는 곳에서 오토바이쇼, 공죽, 비단천 등 중국 기예단의 아찔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교예의 역사를 기원전 무덤의 그림 벽화에서부터 찾고 있다고 있지만, 김일성이 독재정치 ‘선전자’로 시작한 ‘예능“이었습니다. 이를 김정일이 문학, 음악, 무용 등과 같은 반열의 ‘예술’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은 ‘교예예술’을 ‘체력교예와 요술(妖術,magic), 동물교예, 교예막간극’으로 구분하는데, 남한에서는 요술을 마술(魔術,magic)이라고 합니다. 남한의 한 마술사는 2018년 9월의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 앞에서 마술을 선보였습니다. 현 정부의 폭넓은 문예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동춘서커스단을 아는지 모르는지...현 정부는 한반도 문화예술 공부를 아주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백두산(白頭山)·백두산 밀영(密營)·백두산은 활화산(活火山)
[청로 이용웅 칼럼]백두산(白頭山)·백두산 밀영(密營)·백두산은 활화산(活火山)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발간된 북한 월간 <조선>은 “백두산(2,750m)은 우리 나라의 북부 량강도 삼지연군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이곳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아침 해는 그지없이 황홀하고 매혹적이다. 태양의 끝머리가 보여서부터 그 밑 부분이 지평선우에 솟을 때 까지는 약 7분이다.”(12쪽)라고 했습니다. 제법 잘 이 절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끝은 “백두산은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조선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피어린 항일대전을 벌린 곳이며 김정일령도자께서 탄생하시여 총포소리를 자장가소리처럼 들으시며 자라나신 유서 깊은 곳이다. 하기에 조선인민은 백두산을 가리켜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조선혁명의 뿌리가 내린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이라고 부른다. 오늘 백두산의 해돋이가 그처럼 아름답고 장엄한 것은 이곳 자연이 펼치는 매혹과 함께 그가 담고있는 심오한 의미로 하여 선군조선의 첫째가는 절경으로 되고있다.”고 했습니다. 북한 <조선대백과사전(12)》을 보면 "백두산밀영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조선혁명의 중심적 령도 거점으로 꾸리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활동중심지로 리용하신 비밀근거지이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탄생하신 혁명의 성지. 량강도 삼지연군 백두산기슭 소백수골 안의 대수림 속에 자리잡고 있다. 백두산밀영에는 이 일대의 봉우리들가운데서 주봉을 이루는 높이 1,798메터의 정일봉이 거연히 솟아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같이 교시하시였다.<...소백수골에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꾸려지게 된 때로부터 백두산밀영은 조선혁명의 본거지로, 중심적령도거점으로 되었다. 백두산밀영은 조선혁명의 책원지인 동시에 심장부였으며 우리의 중핵적인 작전기지, 활동기지, 후방기지였다.>(<김일성저작집>49권, 107페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두산밀영=김정일 출생지’입니다. '백두산밀영'은 김정일이 태어났기에 '혁명의 성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백두산 관광은 대부분 '성지 순례'입니다. 그리고 백두산은 김정일을 우상화한 <백두광명성전설>로 덮혀 있습니다. 북한 문학은 백두산밀영에 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로 덮혀 있습니다. 다음은 북한 시인 리영백의 “백두밀영고향집에 흰 눈이 내리네”입니다. “백두밀영고향집에 눈이 내리네 / 송이송이 속삭이며 정답게 내리네 / 향도성 솟아 오른 그날을 못잊어 / 흰 눈송이 내려 앉네 귀틀집 지붕 우에 // 백두밀영고향집에 눈이 내리네 / 송이송이 4기쁨 안고 포근히 내리네 / 조선의 고운 꿈을 키우신 창가에 / 흰 눈송이 내려 앉네 추억을 불러 주며 // 백두밀영고향집에 눈이 내리네 / 송이송이 정을 담아 끝없이 내리네 / 이 강산에 만발한 축원의 꽃인가 / 흰 눈송이 내려 앉네 인민의 마음 안고” 이런 우상화는 민족의 성산(聖山)을 훼손(毁損)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계속 이어 진다면 성산이 노(怒)할지도 모릅니다. 백두산은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산(山)입니다. 대략 1704년경에 폭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산(山)입니다. 그럼 백두산의 폭발 규모를 따져보면 대략 어느 정도 일까요? 실제 화산의 규모를 기록한 자료를 보면, 대략 VEI 6정도의 규모라고 합니다. ‘VEI’는 ‘Volcanic Explosivity Index’라고 하여 간단하게 화산 규모를 수치화한 것입니다. 백두산이 VEI 6 규모로 폭발하였던 것이 10세기 경인데, 그 무렵에 훗카이도에 백두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상당량 퇴적되었다고 합니다. 백두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훗카이도까지 날아갔다는 것은 그만큼 폭발이 엄청났었다는 증거입니다. 바람이 날려주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양이 쌓이려면 보통 규모의 폭발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도 그때 당시에는 한반도 전역이 백두산 화산재로 고생 꽤나 했을 것이라는...그리고 이 백두산 폭발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두산은 지하에 거대 마그마의 존재가 확인된 활화산입니다. 2002~2005년 사이 천지 근방에서는 화산지진 활동이 3000여회 이상 일어났고, 천지가 부풀어 오르는 등 화산 징후가 관측되기도 했습니다. 2011년 3월 17일. 북한은 지진국장 명의로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현지답사, 학술토론회 등 협력사업을 추진시켜 나가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자고 우리 측 기상청장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북측의 제의에 대해 남북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북측의 제안을 검토해 나갈 것"이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는 아직까지 여전히 지지부진(遲遲不進)... 최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은 북방자원 협력R&D(연구·개발)를 강화하기 위한 ‘북방지질자원연구센터’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방지질자원협력센터는 한국과 북한, 중국, 러시아 연구진이 모여 백두산 화산의 과학적 연구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화산 분화 징후에 대한 화산활동 감시를 공동으로 펼치는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유지하는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그는 또 “남북 연구진이 공동으로 백두산 화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면 화산 재해 피해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남북 협력연구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상청이 백두산에 화산 관측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 중입니다. 최근 기상청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따른 기상·기후·지진 분야 단기 및 중장기 협력 과제'라는 이름으로 백두산에 남북 공동으로 화산 활동을 감시하는 관측소를 구축하는 방안을 세웠습니다. 이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혹시 북한이 백두산 도처에 있는 김일성의 혁명 전적지들과 김정일의 백두밀영고향집이 화산재에 묻혀 버릴까 미리 걱정은 하지는 않겠죠!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임박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게 될 한국영화 <백두산>이 곧 크랭크인(crank in)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사는 극(劇) 중 배우 이병헌이 백두산 폭발을 막으려는 북측 요원으로, 배우 하정우가 남측 요원으로 출연한다고 밝혔습니다. 백두산은 김일성의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이 아니라 한민족(韓民族)의 성산(聖山)입니다. 북녘 땅에 있는 산이지만, 우리 모두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백두산(白頭山)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평양 만수대예술극장-조중(朝中)예술인들의 합동공연
[청로 이용웅 칼럼]평양 만수대예술극장-조중(朝中)예술인들의 합동공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1월 3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방북한 중국 예술단 대표단과 만났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1월 4일 보도했습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조중(朝中)예술인들의 합동공연”을 관람한 뒤 “역사의 온갖 풍파를 이겨온 전통적인 조중 친선은 앞으로 더욱 개화·발전할 것이며 그 밝은 전도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조중 두 나라 인민의 뜨거운 정이 넘쳐흐르는 공연을 보았다”면서 중국 예술인들을 보낸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도 “충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들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11월 2일 방북한 중국 예술인대표단을 위해 평양고려호텔에서 환영 연회를 열었으며, 3일의 합동공연에는 최룡해·리수용 조선로동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박춘남 문화상 등이 함께 했습니다. 극장에서는 중국 예술단 인솔자인 뤄수강 문화여유부장과 왕야쥔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리진쥔 주북 중국 대사 등이 김 위원장을 맞이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친선의 정을 안고 온 중국의 유명한 예술인들의 평양 방문은 우리 인민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고 있다.”고 말했고, 뤄수강 문화예술부장은 북측의 극진한 환대에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 예술인 대표단의 이번 평양 방문이 조중 친선을 보다 활력 있게 전진시켜나가는 데서 의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밝히고, 중국예술인 대표단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연에는 북·중 양국의 주요 가요들이 무대에서 불리워졌으며, 합창 “조중 친선은 영원하리라”로 막을 내렸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김 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중국 예술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공연 성과를 축하했습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예술가들의 첫 합동공연을 관람했으며, 공연 전에 중국 예술가 대표단의 주요 인사들을 접견하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북·중 양국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시진핑 총서기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조선 인민들이 좋아하는 중국 예술가들을 북한에 파견해 우호교류 공연을 하게 해준데 감사했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의 <人民日報>는 11월 4일 북한의 <로동신문>과 같은 날에 공연 소식을 빠르게 보도했습니다. <인민일보>는 “金正恩观看中朝文艺工作者首场联合演出”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揭載)했습니다. 신문은 “演出开始前,金正恩会见了中国文艺工作者代表团主要成员,并同大家合影留念。金正恩对朝中两国关系健康稳定发展予以高度评价,感谢习近平总书记和中共中央派朝鲜人民喜爱的中国艺术家赴朝进行友好交流演出,表示访问将有力促进朝中两国文化艺术领域交流互鉴,增进两国人民友好感情,巩固朝中传统友谊。演出在平壤万寿台艺术剧场举行,中朝两国文艺工作者联袂奉献了两国人民喜爱的歌曲、舞蹈等节目。金正恩全程观看,为中朝两国艺术家的精彩表演不断鼓掌。演出结束后,朝方赠送花篮祝贺演出成功。在全场观众的热烈掌声中,金正恩上台同主要演员一一握手,热情赞扬艺术家们的精湛表演。朝鲜劳动党中央政治局常委、中央副委员长崔龙海,朝鲜劳动党中央政治局委员、中央副委员长李洙墉等参加了上述活动。(文字来源:新华社)”라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의 <인민일보>가 이처럼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이례적(異例的)인 일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북 가능성에 관심이 높은 가운데, 중국 언론의 북·중의 친선 분위기 조성이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더군다나 게재한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사진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습니다. 2018년 4월 13일,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김일성의 106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200명 규모의 예술단을 이끌고 방북했었습니다. 중국 예술단이 탄 중국 국제항공 여객기가 평양 국제비행장에 도착하자 활주로에 모여 있던 환영 인파가 "조중 친선, 조중 친선"을 연호하며 인공기와 오성홍기, 꽃다발을 흔들었습니다.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등이 비행기에서 내린 쑹타오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는데, 북한 소식통은 "해외 정상이 방북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접견과 연회를 통해 이들을 두 차례 만난 것을 비롯, 여동생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은 공항 영접, 숙소 방문, 연회 참석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밀착 수행하다시피 했습니다. 리설주도 남편 없이 간부들을 대동하고 중국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는 등 김정은 일가(一家)가 총동원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정은과 쑹타오의 만남은 4월 1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이뤄졌습니다. 김정은이 3월 5일 대한민국 대북 특사단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조선중앙TV> 보도 화면을 보면, 김정은이 쑹타오를 맞이한 청사 로비는 오성홍기와 인공기, '환영'이라고 적힌 홍등으로 장식됐고, 복도 양옆엔 높이 약 3m, 너비 약 2m의 김정은·시진핑 사진이 마주 보고 걸렸습니다. 김정은은 여기서 쑹타오를 3번 포옹한 뒤 회담장에서 배석자 없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쑹타오가 2017년 11월 시진핑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을 때는 이런 환대를 받지 못했고, 김정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불과 11개월 만에 급변(急變)! 2018년 6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 3차 북중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최근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공식화된 가운데 김정은 과 시진핑의 4차 정상회담 가능성에 이목(耳目)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조중(朝中)예술인들의 합동공연’은 의미가 큽니다. 한 북한학 교수는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생명보험' 같은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며 "회담이 실패해도 중국만 있으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변방 노인의 말이란 뜻의 ‘새옹지마’! “고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등, 변화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새옹득실(塞翁得失). 오늘은 사는 우리 모두가 새삼 새겨볼 말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미술의 세계①-기념비회화와 쪽무이 벽화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미술의 세계①-기념비회화와 쪽무이 벽화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기념(記念)”은 ‘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긴다.’는 뜻으로, 복합 명사는 ‘기념일·기념품·기념주화·100주년기념·기념관·기념행사·결혼기념·기념비·백주년기념“ 등등(等等)...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남녀가 만나 일주일 되었다고 기념 선물을 주고 받고, 거짓 족보 만들어 기념비 세우는 세상! 대한민국에서는 기념비(記念碑)가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의미하지만, 사이비 기념비가 난무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북한도 ‘기념’과 ‘기념비’를 비롯한 복합어는 유사합니다. 하지만 남한 사전에 없는 “기념비 미술 · 기념비 서예 · 기념비 조각 · 기념비 회화”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남한 사전에 있는 용어는 ‘기념비 회화’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명사] 『미술』사회적 의의를 가지는 내용을 담고, 일정한 장소에 고착하여 오래도록 전하기 위한 그림. 기본 형식에는 건축 및 구조물의 벽화, 천장화, 그림 자체를 위하여 세운 탑 벽화 따위가 있다.(북한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는 이 낱말을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북한은 “기념비회화에서는 건축물과 작품의 내용에 따라 쪽무이벽화, 회벽화, 물유리벽화, 색부각벽화, 유리벽화, 유리블로크벽화 등의 형식들을 많이 리용하며 때로는 조선화 채색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색감으로 직접 그려 붙이는 방법도 적용한다. 우리나라에서 기념비회화의 가장 오랜 유물은 고구려무덤벽화들이다. 우리 나라에서 기념비회화의 전면적인 개화는 로동당시대, 주체시대에 시작되였다.”고 합니다. 남북한의 차이는 다음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5)>에는 “회화는 사명과 기능에 따라 기념비회화(벽화, 전경화, 반경화 등), 일반회화, 장식화, 출판화, 무대 및 영화미술 원화 등으로 나누며 묘사대상에 따라 인물화(초상화, 인물주제화, 력사화, 풍속화 등), 자연화(풍경화, 정물화 등) 등으로, 재료와 화법에 따라서는 조선화, 조선보석화, 유화, 수채화, 뗌베라화, 팟슈화, 파스텔화 등으로 구분한다.”(113쪽)고 적혀 있습니다. 위 북한의‘회화’중에서 먼저 [기념비 회화 ·벽화]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대한민국 언론에 소개된 북한의 벽화 중에 평안남도 천리마군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입구에 있는 김일성 부부와 그들의 아들 김정일의 모습을 담은 대형 모자이크벽화가 있습니다, 남한 신문은 북한 매체에 따른다면서 “평남 대흥청년광산, 평양 강동지구 탄광연합기업소, 평북 동창군, 김책제철연합기업소, 평북 철산군, 자강도 혜산시 등 10여 곳에 대형 모자이크 벽화가 잇따라 설치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모습을 함께 담은 그림이나 김일성 부자의 현지 지도 모습,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의 모습 등을 담고 있으나 최근에는 김일성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그린 ’김일성 벽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서양의 교회와 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자이크 벽화에 대해 ’인민 대중을 기만하는 반(反) 인민적 통치수단’이라고 혹평해 왔던 북한이 1천200℃를 넘는 고온에서 구워낸 색 유리와 타일, 천연석 등을 이용한 ’자가당착식’ 우상화물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여기서 북한은 ‘벽화’를 뭐라고 설명하는지를 보기로 합니다. 북한에서 발간된《문학예술의 종류와 형태》는 ‘벽화’를 “건축물의 벽면이나 기둥, 천장들에 그린 그림. 벽화는 건축물의 성격과 사명, 규모와 밀접히 결부되여 창작된다. 벽화는 건축물을 장식하는 기능과 함께 독자적인 인식교양적기능도 수행한다. 벽화는 일반회화와 달리 형상의 기념비성과 재료의 영구성을 필수적 조건으로 한다. 벽화는 오늘 기념비회화로서의 그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심오한 사회정치적 문제를 담은 규모가 큰 미술형식으로, 감상의 폭이 넓고 정서적 감화력이 큰 회화의 한 형태로 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에서 벽화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 밑에 새로운 높은 발전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령도의 현명성, 빛나는 업적을 전면적으로 구현한 작품들 그리고 우리 당과 인민정권이 걸어온 영광스러운 로정을 뚜렷하게 반영한 대기념비적 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함으로써 벽화의 지위를 비상히 높이고 그의 사상교양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평양지하철도벽화, 조선예술영화촬영소벽화, 인민문화궁전벽화 등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벽화는 그려지는 대상에 따라 크게 실내벽화, 실외벽화, 천장화, 탑벽화 등으로, 재료와 제작방법에 따라 쪽무이벽화, 회벽화, 돌벽화, 물유리벽화, 색부각벽화, 유리벽화, 유리블로크벽화 등으로 나누어진다. 유성 혹은 수성 그림색감으로 천에다 그려 벽에 고착시키는 벽화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쪽무이벽화’를 “여러가지 색갈의 돌, 유리, 사기 쪼각을 무어 형상을 창조하는 벽화. 쪽무이벽화는 기념비회화인 벽화의 기본형식의 하나이다. 쪽무이벽화의 제작방법에는 대상에 맞게 쪼각을 적당한 형태로 잘라서 배렬하거나 네모난 일정한 크기의 쪼각들을 무어서 만드는 형식 등이 있다. 색쪼각을 무어붙이는 방법에는 세멘트반죽을 발라놓은 벽면에 미리 소묘를 하거나 색이름을 적어놓고 직접 붙어나가는 방법, 일정한 틀에 고정시킨 원화우에 색쪼각을 골라놓고 세멘트반죽을 부어 판을 만든 다음 뒤집어서 벽면에 조립하는 방법이 있다. 평양지하철도 건국역벽화들은 쪽무이벽화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라고 했습니다. 북한 땅에는 우리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벽화들이 아주 많습니다. 즉 고구려 무덤벽화!....죽은 지 1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속에 살아있는 김일성과 그의 일가를 우상화하는 북녘 땅, 그 땅에서도 벽화는 모든 인간들이 인정하는 벽화였으면 합니다. 그런데 지금 김정은 벽화?...북한 당국이 최근 각 도(道)에 김정은 단독 ‘모자이크 벽화’ 우상화물을 건립할 수 있는 지역을 물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집권 8년차인 김정은이 홀로서기를 통한 우상화 강화에 나설지 주목됩니다. 현재까지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필비는 공개한 적은 있으나, 모자이크 벽화를 공개한 바는 없습니다. 1984년 생(生) 김정은 님! 당신의 ‘벽화’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아니, 지금 랭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갑니까”
[청로 이용웅 칼럼] “아니, 지금 랭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갑니까”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현재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리선권’이 대한민국의 정가(政街)와 언론에 나쁘게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그는 평양 출신으로 추정되고, 나이는 50대 후반~60대 중반까지로 보여집니다. 그는 북한 인민군 출신으로 북한 군부 권력 내 김영철과 더불어 대남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로, 천안함 피격사건의 배후자로 의심을 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리선권은 2006년부터 남북 장성급 회담이나 군사 실무회담의 북측 대표로 나섰고, 2010년 이후에는 개성공단 협의 때 북측 단장을 맡았었으며, 2018년 1월 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을 대표하는 단장 자격으로 판문점에 나타났습니다. 그 뒤 그는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계속 행세했습니다. 2018년 10월 15일 평양 공동선언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판문점 남측 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렸는데, 북측 대표는 여전히 리선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기는커녕 ‘조국평화통일위원회’라는 간판이 부끄러울 정도로 쓸데없는 발언과 행동을 해 왔습니다. 그는 지금 “남한을 우습게 여기고 매너도 형편없는 전형적인 북한관료”로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9월 18일) 직전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외교관 안보 분야에서 눈치만 보고 관행만 답습했다면 역사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4대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 등 경제인이 포함된 수행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그가 비핵화 협상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회담을 본격적인 남북 협력 확대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4대그룹 총수 등 기업인 특별수행원은 17명이었습니다. 청와대의 의중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헌데 리선권은 임종석 실장의 얼굴에 먹칠을 했습니다. 리선권은 옥류관 행사에서 냉면을 먹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에게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기업 총수들은 어이없고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리선권이 상대를 초청한 입장에서 심각한 무례를 저지른 것 뿐 만 아니라, 인성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인물로 부각되었습니다. 특히 그 자리에 있었던 손경식 CJ그룹 회장(1939년 9월 15일 生)의 아들 뻘인 자(者)가 헛소리를 서슴치 않았다니...그의 수장(首長)인 김정은 위원장이 아는지 모르는지... 김정은 위원장은 리선권이 “북한 막장 외교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2018년 6월 1일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해 판문점 남측 지역으로 내려왔을 때는 자신의 언론관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 당시 남한의 한 기자가 민감한 질문을 하자, 그에 대해 적극 반박하면서 무례한 질문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8년 8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골뱅이 갑 속 들어가서' 회의를 하지 말고 완전 공개를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수장으로 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어떤 기관일까요? 1961년 5월 13일 북한의 정당 및 사회단체, 각계인사들을 총망라하여 설립한 단체로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통일전선 형성과 친북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 위원회를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공화국 북반부의 사회주의 역량과 남조선의 각계각층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단합하여 나라의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 층 인사들을 망라하여 조직된 사회단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조선로동당의 통일·대화노선 관철과 정책수행 및 통일전선 형성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그동안 국내인사 및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통일전선 형성, 남한 내 친북 통일여론 조성을 위한 선전공세 등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정세변화와 사건 또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서기국 보도, 고발장, 성명 등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국정감사 당시 한 야당의원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대기업 총수들이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리 위원장이 불쑥 ‘냉면 얘기’를 꺼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명균 장관은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있었던 리 위원장이 그 말을 했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고, 이 말에 대한민국의 야당 지도자들은 격분했습니다. 네티즌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한 블로거는 “먹는 것 앞에 두고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선 내노라 하는 재계 총수들인데, 북한 지도자라는 XX가 대접을 안했다? 그렇다고 재계 총수들이 눈 밖에 난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이런 XXX 짓이라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리선권 앞 세우곤 함께 할 수 있는 이유 없다. 뒤로 빼도록 해야 한다”라고 흥분했습니다. 이런 과격한 말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리석은 자의 입은 자신을 망치게 하고 그의 입술은 자신을 잡는 올가미가 된다. / A fools mouth is his destruction and his lip are the the snare of his Soul.”(구약성서/잠언)라고 했습니다. “입은 마음의 문이니 입을 지킴이 엄밀치 못하면 마음의 참 기틀을 누설할 것이요. 뜻은 마음의 발이니 뜻을 막음에 엄격하지 않으면 마음이 옳지 못한 길로 달리리라.”(채근담/菜根譚)이라고 했습니다. 리선권은 백번 말해줘도 이해 못할 말? 이제 대통령 비서실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가까운 사이니까 그에게 리선권의 망언(妄言)을 알려줘야 되지 않을까요? 11월 1일 <조선일보> 기사! 대한민국 여당 원내대표가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냉면 발언'을 두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재벌총수 3∼4명에게 직접 전화해 확인했지만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고 10월 31일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장이 같은 날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냉면 발언’이 사실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18년 DMZ평화상 大賞에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청로 이용웅 칼럼] 2018년 DMZ평화상 大賞에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강원일보>는 2018일 10월 26(금)일 字 1면에 “DMZ평화상 대상에 경남대 극동문제硏”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를 요약하면, 제14회 DMZ평화상에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와 최재천 (재)생명다양성재단 대표,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선정되었습니다. DMZ평화상 심사위원회는 대상 수상자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를, 학술부문 수상자로 최재천 (재)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각각 선정했다고 10월 25일 밝혔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강원일보>는 대상 수상기관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가 “올바른 통일 정책 수립을 위해 다양한 관점의 비판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앞장서 왔으며, 연구소를 거쳐 간 인재들은 각계계층에서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핵심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습니다. 심사위원장은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평화 및 DMZ 가치 제고에 기여한 이들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며 “DMZ평화상을 계기로 남북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관세)는 다음과 같은 “2018 DMZ평화상 대상 수상 관련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강원도와 강원일보사는 2005년부터 매년 남북 교류·협력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현저하게 기여한 개인 및 단체를 발굴해 ‘DMZ 평화상’(대상, 남북교류, 학술 등 3개 부문)을 수여하고 있으며, 2018년 대상 수상기관 선정 결과를 10월 26일 발표했습니다. ‘2018 DMZ 평화상’ 대상 수상기관으로 선정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1972년 설립된 이후 한반도 평화와 북한·통일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국내외 담론을 선도하는 동시에 북한대학원대학교(총장 안호영)와의 긴밀한 연구·교육 협력을 통해 바람직한 한반도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 대안 모색에 앞장서왔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2018년 통일부와 함께 한반도 평화·번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공고화하는 ‘한반도 국제포럼(KGF)’ 사업을 주관하며 6개국에서 7회에 걸쳐 국제학술회의를 진행하는 등 지난 46년여 간 총 140회에 달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국내외에서 개최해왔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학술교류를 통한 연구 증진과 함께 정책 대안 및 전략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국내외 유수의 40여개 대학 및 연구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상호 학술 교류·협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10년 전부터 선정·발표되는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외교·안보 부문’에서 국책 및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며 역량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이관세 소장은 “권위 있는 ‘2018 DMZ 평화상’ 대상을 수상하게 돼 큰 영광이다”라며 “2018 DMZ 평화상 대상 수상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에 더욱 정진하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시대적·사회적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DMZ 평화상 대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인물과 기관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2008년), 대한적십자사(2013년) 등 입니다. 2018 DMZ 평화상 시상식은 오는 11월 15일(목), 오전 11시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설악썬밸리리조트에서 열립니다.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최고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순수 민간 연구기관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올바른 길을 찾고 있으며,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통일 연구의 중심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학계 및 일반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남북 경제통합 및 동북아 경제협력시대를 대비한 교육프로그램 <IFES(The Institute for Far Eastern Studies) 통일경제아카데미>도 운영 중입니다. 경남대학교 출판부는 2017년 “일념, 평화통일 길”을 발간했습니다.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이 지난 45년간 평화통일을 향해 걸어왔던 발자취를 돌아본 자서전입니다. 그 자서전의 [제Ⅰ장, 북한·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면, 1960년대 후반, 박재규 총장은 북한·통일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본격 연구하게 된 것을 계기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설립(1972.9.1.), 북한 문제 및 한반도와 공산권 정세 변화 등 당시 다루기 어려웠던 주제로 국내외에서 각종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습니다. 또 수교 이전 중국·소련 방문 및 공산권 체험 교육 프로그램 추진, 경남대 행정대학원 북한학과 개설 및 경남대 북한대학원 개원에 이어 북한전문대학원인 북한대학원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는 박재규 총장이 세우고 지금까지 키워온 자식과 같은 존재입니다. 박 총장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교 캠퍼스와 극동문제연구소가 위치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서울캠퍼스를 바쁘게 오가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노력입니다. 박 총장은 지난 10월 25일에는 '통일과 북한 비핵화의 전망'이란 특강을 했습니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건강이 걱정될 정도입니다. 경남대학교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그리고 북한대학원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만수대창작사의 ‘풍산개’를 통해 본 “조선보석화”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만수대창작사의 ‘풍산개’를 통해 본 “조선보석화”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9일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했습니다. 그 때 문 대통령은 1층 로비에서 ‘예술이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 2018.9.19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방명록을 작성했습니다. 이어 3층으로 이동해 그림, 도자기 등 미술품을 관람했습니다. 거기서 대통령은 평양성을 소재로 한 그림을 보면서 안내자에게 “평양성이 아직 남아있나”라고 물었고, 이에 북측 관계자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해칠보’ 소재 그림 설명을 들으면서 대통령은 “금강산 바깥쪽은 해금강이고 칠보산 바깥쪽은 해칠보구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층으로 이동한 문 대통령은 풍산개 그림 작품을 보면서 “풍산개는 저도 선물받았습니다”라고 말하고, 보석화 기법을 설명 받으면서는 “이쪽에만 있는 기법인가요”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날 북한 <로동신문>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이 19일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하였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남한대통령의 만수대창작사 방문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평양시의 한 소식통은 다음날 “어제 남한의 대통령이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데 대해 주민들 속에서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면서, “만수대창작사가 최상급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기지라기보다는 충성의 외화벌이기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혔습니다. 북한 소식통은 “만수대창작사는 12만 6천여㎡의 부지에 수백 명의 이름난 미술가, 조각가, 도안가(디자이너)들과 수천 명의 창작 역량을 가진 유망 예술인들이 속해있는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의 모체”라며 “이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지사를 두고 예술품 수출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는 장사꾼들”이라고 했습니다. 또 “만수대창작사는 조선화창작단, 유화창작단, 출판화창작단, 조선보석화창작단, 조각창작단, 돌조각창작단, 동상제작단, 벽화창작단, 도안창작단, 미술장식제작단, 모자이크제작단, 수예창작단, 공예창작단, 도자기창작단 등 미술 분야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미술(美術)! 우선 문 대통령이 궁금해 했던 ‘풍산개’, 즉 ‘조선보석화’를 알아보겠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19)> : “조선보석화 “천연보석가루를 기본 재료로 하여 조형적 형상을 창조하는 회화형식.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우리 나라에서 새롭게 창조한 보석화는 형상이 아름답고 정교하여 사람들에게 특이한 정서를 안겨 준다.》(《김정일선집》 12권, 124페지). 조선보석화는 훌륭한 민족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조선화를 토대로 하여 우리 미술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는 과정에 만수대창작사에서 1980년대 후반기에 새롭게 개척한 회화의 한 형식이다. 조선보석화는 여러가지 색갈의 천연보석가루를 안료로 리용하기때문에 그 색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색갈도 다 형상할수 있다. 조선보석화는 조선화의 선명하고 간결한 화법과 민족공예의 정교하고 섬세한 기법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민족적인 특성이 진하게 안겨 온다. 조선보석화는 그 형상이 회화나 공예 작품과 같은 독특한 조형적미감과 아름답고 정교한 느낌을 안겨 준다. 조선보석화는 천연보석 가루나 덩어리를 기본재료로 하면서도 규산염재료와 금, 은을 비롯한 귀금속재료들을 부분적으로 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돋구기도 한다. 아마천, 나무판, 철판 등을 바탕재료로 하며 강한 점착력을 가진 점착제를 쓴다. 조선보석화는 그 재질적 특성과 형상방법의 다양성, 작품보존의 영구성으로 하여 작은 규모의 작품과 기념비건축물의 외부장식벽화 창작에 다양하게 리용된다. 조선보석화의 대표적 작품들로는 《비둘기춤》(1989년), 《눈이 내린다》(1989년), 《등꽃과 강아지》(1989년), 《천산의 아침》(1994년), 《소백수의 겨울》(1997년), 《만경대의 봄》(1997년) 등을 들수 있다. 오늘 조선보석화는 만수대창작사 조선보석화창작단을 거점으로 하여 전국의 여러 미술창작기관들에서 활발히 창작되여 근로자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북한 소식통은 “남한의 종교단체들이 성화나 쪽무이벽화를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작품제작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4분의 1 정도로 저렴한데다 작품의 질이 우수하고 제작기간도 매우 짧기 때문에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북한 미술 뿐 아니라 ‘평양성’과 ‘칠보산’ 등도 있습니다. 청와대는 ‘조선보석화’가 뭔지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대통령을 보필하는 일일 것입니다. 대통령을 그냥 따라다녀서는 안 됩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만수대창작사에 걸려있는 “풍산개”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암수 한 쌍이 지금 청와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참고로 북한 <조선대백과사전(23)>의 ‘풍산개’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칼럼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풍산개’를 통해 본 “조선보석화”>를 마무리합니다. “경비 및 사냥에 리용되는 개 품종. 원산지는 량강도 김형직군(이전의 풍산군) 일대이다. 우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풍산개가 아주 유명합니다. 풍산개 순종을 많이 길러야 하겠습니다.⪢ 풍산개는 령리하고 날래며 적수와 만나면 끝까지 싸우는 이악한 개다...풍산개의 새깨 배는 기간은 60일이며 한배에 5~6마리의 새끼를 낳고 45~50일 동안 젖을 먹인다...풍산개는 순수번식방법으로 원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의 옳바른 자연보호정책에 의하여 풍산개를 국가천연기념물로 등록하고 고유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252쪽)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黃菊丹楓의 금수강산
[청로 이용웅 칼럼]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黃菊丹楓의 금수강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중국인들이 흉노(匈奴)라고 부르는, 말 타고 전쟁하는 것이 재주인 터키계(系)의 기마(騎馬) 민족이 있었습니다. 무적을 자랑하는 진시황(秦始皇)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주로 흉노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들의 무용(武勇)이 어떠했다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북쪽의 광대한 들판에서 봄풀, 여름풀을 배불리 먹은 말은 가을에는 살이 쪄서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긴 고사성어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의 ‘천고마비(天高馬肥)’입니다. 과거에는 가을이 되면 먼저 회자(膾炙)되던 ‘천고마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하늘 보고 말(馬)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살찌는’ 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맑고 풍요로운 가을’을 얘기할 때는 더 더욱 외면까지 합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 책을 읽음)도 ‘별로’인 세상입니다. 그래도 구추풍국(九秋楓菊/ 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 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그리고 황국단풍(黃菊丹楓/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등은 거부감이 별로 없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국단풍’은 가을을 상징합니다. 가을! 지금이 가을의 정점입니다. 이때쯤이면 읊조려보는 백거이(772~846/자는 낙천(樂天)의 “가을밤”-“우물가에 오동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 그리고 R.M.릴케의 “가을”을 노래해 봅니다. 그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1875년)하고 스위스 발몽에서 사망(1926년)한 독일 국적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경상북도 양양에서 출생(1920년)하고 서울에서 사망(1968년)한 한국 국적의 조지훈(趙芝薰)은 릴케와 같은 시(詩)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江山)에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매년 시월이면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전통적 생활에 깃든 미의식을 노래한 조지훈을 찾습니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위치한 주실마을은 1630년 호은공 조전 선생이 가솔들을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며, 한양 조씨(趙氏)의 집성촌을 이루게 된 곳입니다. 이 마을에 조지훈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습니다. 필자는 2018년 시월 그곳에서 “민들레꽃”을 만났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럽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냐/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별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2018년 양양의 들녘에는 봄에 피는 민들레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불리는 노란 구절초가 산야(山野)에 곱게 피어있었습니다. 계곡에도 노란 국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특히 예로부터 울진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우는 불영계곡(佛影溪谷)에는 노란 빛 뿐 아니라 붉은 빛도 선명했습니다. 내장산 단풍보다는 못하지만 황국단풍(黃菊丹楓)이 아주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길이가 12m나 되는 기암절벽을 수놓은 황국단풍!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절경이었습니다.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월성정(越松亭)! 봉화군 청량산(870m)에는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 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양군 수비면 신원리의 금강소나무생태경영림과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의 백암온천(白巖溫泉)! 신라 시대에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뒤쫓다가 날이 저물어 이튿날 다시 찾았으나 그 행방이 불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괴상히 여긴 사냥꾼이 그 부근을 탐색하던 중, 발견한 사슴이 누었던 자리의 지하에서 온천이 솟고 있음을 보고 약수탕(藥水湯)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 뒤 백암사(白巖寺)의 승려가 욕탕(浴湯)을 지어 병자를 목욕시켰더니, 그 효험이 현저하였다는 백암온천! 그 외에도 봉화와 울진, 그리고 양양에는 관광자원이 많습니다. 2018년 시월 필자는 관광버스와 함께 했습니다. 필자는 매년 ‘봉화·울진·양양’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곳이 참 많습니다. 경관이 수려한 곳이 일본보다 더 많습니다.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미(美)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봉화 한약우 불고기와 송이버섯, 동해 바닷가 붉은 대게, 산채 비빔밥 등 먹거리가 꽤나 구미(口味)가 납니다. 관광회사의 서비스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곳곳이 한산합니다. 일본(日本)!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차로 산길을 2시간 달리면 나오는 니세코 마을은 인구 감소 등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관광 산업 위기를 맞았지만, 지금은 '롱 스테이(장기 투숙)'의 성지로 꼽히며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의 노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관광청 출범 이후 고령화로 인한 내수 감소를 관광으로 극복하겠다며 각종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한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1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관광 전략 실행 추진회의에서 아베는 회의에 참석한 장관급 20여명에게 "2020년까지 '외국인 여행자 4000만명 방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는 또 "홋카이도 지진 때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재해 정보 안내가 미흡했다. 대책을 강구하라"고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해 두 차례 국가관광전략회의를 열었는데, 회의는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가 주재했습니다. 혁신적인 정책은 없었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우리 강산은 금수강산(錦繡江山)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