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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에 희생된 유가족의 아픔을 그린 영화 “동백”
여순사건에 희생된 유가족의 아픔을 그린 영화 “동백”
[선데이뉴스신문=이창열 기자]1948년 이승만 정권 시절,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또하나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 된 여순사건! 근대 역사속에서 여순반란사건이라고 불려졌던 그 사건의 아픔을 담은 영화 “동백”이 2여년의 준비를 마치고 2020년 3월에 크랭크 인 한다. 이 영화는 여수시에서 공모한 작품으로 ㈜해오름이엔티에서 극장 개봉 영화로 제작한다. 그 내용과 배경이 궁금하여 제작사 신준영대표를 만나 봤다 질문1. “동백” 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답변. 네 저희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여수와 순천을 촬영 차 자주 내려 갔었는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인심이 살아있는 반면 역사적인 어두운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어릴 때 역사책에서 배웠던 여순반란사건인데요, 그때 당시는 지금의 여순사건을 반란사건으로 교육 받아서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공산당이나 빨갱이로 인식되어 있었죠. 그런데 우연찮게 여수시 공무원들의 추천으로 민간인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의 기록과 자료등을 검토 해 본 결과 이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많이 죄없는 민간인 희생자들가 발생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관련없이 억울하게 연좌제에 걸려 사회활동도 떳떳이 못해왔던 민간인 희생자 가족이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마음에 전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게된 것이 동기가 되었네요. 질문2. “동백” 제작, 현재 진행 상황은? 답변. 현재 시나리오는 최종 완성 된 상태이고 순천드라마 셑트장을 비롯 1948년대를 조명할 촬영 장소와 현대시대를 배경으로 촬영 할 장소도 이미 선정을 마친 상태입니다. 촬영 시 중간 중간 편집 할 곳도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제공 주기로 했고요 특히나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이 배경이되는 영화로서 여수시,순천시,전라남도등 많은 지역 기업들과 주민들이 적극 후원하고 있으며 권오봉 여수시장님을 비롯한 지자체장, 각 지역 국회의원실, 공기관 공무원들이 모두 협동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에 출연 할 주요 배역엔 주인공 배우 박근형님을 비롯하여 백윤식,고두심, 김보미, 김혜숙,등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을 대상으로 섭외하고 있고 2020년 1월전까지 모든 캐스팅을 마칠 계획 입니다. 질문3.이 영화의 제목 “동백”인데 동백꽃으로 표현 하고자 의미는? 답변.동백꽃은 겨울에도 피는 꽃으로 혹한의 시련을 겪고 살아온 여순사건의 민간인희생자 유가족과 그 당시 피에 물들었던 희생자들의 넋을 붉게 물들고 피고지는 “동백”이란 꽃을 상징적으로 내세워 희생자 유가족의 아픔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표현 해 낼 수 있는 꽃입니다 물론 남도 지역의 상징인 꽃이기도 하고요. 질문4.“동백” 영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메시지와 바램이 있다면?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은 전국민들의 큰 관심속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민간이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위로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순사건은 아직 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데오르기를 이용하여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 해 왔던 구 정권에 의해 여순사건이 많은 부분에서 왜곡 된 상태로 교육되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국민이 “동백” 영화를 통해 진실을 바로 알고 그동안 고통 당해왔던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한, 수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여순사건이 70여년나 흘러왔고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과 억울한 희생자의 숫자조차 어둠속에 묻혀 있는 현실이지만 이제는 화해의 시대로서 희생자의 넋과 희생자가족에 대해 위로하고 사과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하루속히 제정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내년 4월초순까지 모든 촬영을 마치고 6월쯤 여수와 순천에서 시민들에게 먼저 시사회를 진행한 다음 국회에서 시사회를 할 계획이며 전국 극장에서의 상영은 내년 6~8월사이에 개봉 할 예정입니다.
[인터뷰]한국뇌융합예술원(KBCAA) & ARTIN gallery 김영화 화백
[인터뷰]한국뇌융합예술원(KBCAA) & ARTIN gallery 김영화 화백
[선데이뉴스신문=이창렬 기자] 01. 문화체육관광부(사) 한국디지털문화진흥회(KAADC) 직속기관인 한국뇌융합예술원 초대원장을 맡으셨는데,한국뇌융합예술원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요? 현 정부가 ‘융합혁명’이라 불리우는 4차산업 혁명을 국가과제로 정하고 매진하는 가운데 뇌과학의 급진에 따른 ‘뇌융합’이란 파트가 주요과제로 부상했습니다. 이에따라 한국뇌융합예술원은 ‘뇌융합’을 과학·기술 분야의 산업화를 뛰어 넘어 문화예술 · 인문 · 사회과학분야로까지 확장해, 나아가 문화산업화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또한, 한국디지털문화진흥회(회장 16대 국회의원 이승철 사회학박사)가 셰계 최초로 연구하여·구축한 ‘뇌융합 문화예술 사회론’을 뿌리로 뇌과학과 문화예술의 접목, 융합을 통해 창의적 뇌연구를 행하고, 이의 실천으로서의 ‘뇌융합예술’을 체계적으로 교육, 관련 전문가와 아티스트를 양성하고 이를 보급하며 미래의 문화예술은 가상(VR) · 증강(AR) · 혼합(AR) 현실 융합형의 디지털아트시대와 뇌융합예술시대가 개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세계를 선도하고자 국가 미래전략 차원에서 설립된 기관입니다. 쉽게 말하면 과학과 예술은 대화가 가능하며 그 속에서 과학과 예술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하고 나아가 한 몸이 될 수 있는 바, ‘과학과 예술 대화시대’를 대비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겠죠. 02.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신비의 대상인 뇌혁명 프로젝트는 미술 분야에서 어떤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시나요? 뇌융합문화예술에서 ‘뇌융합’개념은 광의에서는 앞서 말한 뇌과학과 문화예술분야의 융합을 말하나, 협의에서는 좌뇌와 우뇌의 융합을 통한 뇌의 전체적 활성화를 의미합니다. 한국뇌융합예술원의 ‘뇌융합문화예술론’은1981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로저 스페리( Roger W. Sperry)연구에서 유래한 ‘좌뇌 우뇌이론’을 혁신적으로 개혁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뇌융합문화예술론은 뇌기능이 아무리 편중되어 있다 하더라도 양측은 여전히 함께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뇌과학 실험에 따르면, 언어, 논리, 객관, 분석기능의 좌뇌와 감정, 직관, 주관기능의 우뇌가 명백히 분리되어 각각 따로 가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상호 보완의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양쪽 두뇌가 균형을 이루며 서로 협조해야 즉, 융합해야 적절한 행동이나 감정표현, 예술표현이 온전히 이루어 진다는 점입니다. 뇌융합문화예술론은 여기에 2006년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켄델(E Rric R. Kandel)의 작가의 ‘환원주의’와 감상자 뇌의 ‘하향처리’ 메커니즘이 자아내는 미적 감동에 주목 했습니다.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시대로 전환된 현대미술에 있어 현대미술가들은 능동적 감상자세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른바 ‘감상자의 참여’ 또는 ‘감상자의 몫’을 작품에 남겨 두는데, 이는 다시 말해 좀 더 고차원적인 정신기능인 하향처리를 요구하는 시각정보를 환원적(극단순화)으로 강조 한다는 것입이다. 그것은 모리스 루이스처럼 ‘색’이 될 수도, 몬드리안처럼 ‘선’ 될 수도, 로스코처럼 ‘윤관’ 일 수도, 플록이나 데 쿠닝처럼 ‘질감’과 ‘운동성’일 수 도 있습니다. 각 화가의 환원 요소는 저마다 다르지만 모호한 시각정보를 강조하여 뇌의 하향처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한마디로 뇌융합예술시대는 작가와 감상자가 공동창조작업을 한다는 것입니다.결국 뇌융합 개념은 작가의 뇌와 감상자의 뇌의 융합까지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03. 제4차 산업혁명의 화두에서 핵심중의 하나인 융합(퓨전)이다. 미술과 다른 이종업종에서의 퓨전을 시대사적 흐름에 맞춰 설명 해 주세요? 4차 산업혁명은 다른 말로 ‘융합혁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융합’이라는 것은 단순한 혼합, 하이브리드, 퓨전, 컨버전스 단계를 뛰어 넘는 ‘매쉬 업( Mash-Up)의 초창조적단계와 창조적 파괴단계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뇌융합예술이 추구하는 ’융합‘은 바로 이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초창조의 뇌융합예술은 문화예술분야의 4차산업혁명이고, 그 종주국은 대한민국으로서 세계 문화예술산업을 선도 할 것입니다. 04. 김원장께서는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7분의 기적을 말씀하시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요?‘미래는 뇌융합예술시대다!’ ‘뇌가 예술의 본질이다!’라는 기치 아래 미래에는 뇌융합문화예술이 큰 축을 형성할 것입니다. 뇌과학분야의 노벨의학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미술과 과학에서의 ’환원주의‘ (번역본은 ’어쩐지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라는 저서에서 뇌가 예술의 본질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저는 순수예술가로 출발한 융합예술가로서 수 십년 동안 그림을 통한 뇌를 관찰한 바, 뇌가 활성화 되고 융합되면 어렵다고 하는 뎃생조차도 바로 행할 수 있으며 미적 관찰력과 실행력이 생김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뇌혁명 프로젝트로서 기적의 ‘7B Drawing’ 즉 '김영화의 7B'를 체험하면 짧은 시간에 뇌가 활성화 되어 예술행동화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분의 기적’이란 7분 만에 어렵다고만 생각해 왔던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것입이다. 그것은 ‘동반상승작용’ 의한 것으로 서로 상반되거나 유사한 두 가지 작용이 서로 효과를 상승시키는 ‘시너지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그림에 대한 인지와기교는 우뇌에 의해 형성되는데 좌뇌만 쓰는 평소 습관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머리 아픈 과정이요 생각을 떠올리기조차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왼손(우뇌)를 통하여 자신의 손을 그리게 하였더니 차분히 그리고 끝까지 몰입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근사한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것은 쓰지 않던 뇌를 자극해 주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잠재되어 있던 뇌가 활성화됨을 말합니다. 형태감도 정확하며 오른 손(좌뇌)이 두려워했던 부분이 해소되면서 상승작용화 되어 뇌가 활성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불과 7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이라 ‘기적’이란 단어를 쓴 것입니다. 현재 한국뇌융합예술원에서는 김영화의 7B를 통한 미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05. 김원장께서는 골프대회에 이어 배구대회에서도 한국형 도자기로 제작된 트로피 상패를 수여하여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이 둘을 순차적으로 묶어 그간 성과와 반응들을 종합하여 주시면? 저는 십대 때부터 융합의 예술을 실행한 예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4대째 도예 가문인 아버님(무형문화재 사기장 13호 도봉 김윤태)의 권유로 14세부터 아버님의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미술대학 및 대학원에서한국화를 전공하였으며 졸업 후에는 골(뇌)을 활성화 시켜주는 뇌융합예술성 골프그림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여 스포츠와 미술의 융합을 시도하여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하여 왔습니다. 십 수 년 전부터 골프대회에 한국화의 선율이 뇌융합예술적인 환원적으로 녹아있는 골프전경을 도자기트로피에 담에 KLPGA 우수선수들의 트로피로 시상함으로써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올해 국제아시아 배구대회에서도 소문을 듣고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트로피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 김연경을 비롯하여 배구선수들을 넣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한국형 트로피’를 만들어서 배구대회의 시상식에 한국성과 예술성을 융합한 최고의 작품이란 평을 들으니 문화예술인으로서 뿌듯합니다. 06. 대한민국도 경제 강국 패러다임에 이어 이제는 문화 강국을 지향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를 구현할 잠재적 역량이 우리 한국인에게 충분하다는 확신을 갖으려면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요? 한민족은 탁월한 융합능력을 문화유전자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민족을 재미있게 말하면, ‘비빔밥민족’, ‘짬뽕민족’. ‘섞어찌개민족‘이라 할까요? 중국에도 없는 짜장면과 짬뽕을 만들어 오히려 중국인들이 즐겨찾게 하고, 6,25 전쟁 당시 미군들이 먹다 버린 햄을 가지고 부대찌개라는 것을 만들어 미국인들도 입맛을 다시게 하고, 팝송을 비영어권임에도 ’K-팝‘이라는 것으로 재탄생시켜 한류를 일으키고 전 세계를 들썩이게하며 세계음악의 주류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을 보십시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비빔’, ‘짬뽕’, ‘섞어’의 융합코드로 문화강국이 되었습니다. 즉 문화강국의 원동력은 ‘융합능력’이라는 문화DNA적 잠재적 능력의 발현입니다. 따라서 이 융합능력을 배가시킨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의 경제계는 물론 문화예술계를 리드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배가 시켜야 할까요? 그 답은 뇌의 활성화와 융합부터 생활습관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공동참여 창조예술’이라 할 수 있는 뇌융합문화예술의 생활화와 일상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사회가 되도록 각 문화예술주체가 노력해야 합니다. 뇌융합예술은 세상에 창조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문화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뇌융합예술을 영문으로 스토밍 브레인 아트(Storming Brain Art : SBA)라고 명명했습니다. ‘Storming' 이라는 사전 뜻은 ’대단히 감동적인‘,’(창조적)에너지가 넘치는‘ 이란 뜻을 새겨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경영학에서 ’브레인 스토밍‘이라는 창의성 발현기법이 있음을 참고할 만 합니다. 07. 현재 지구촌 우리 세대는 집단이나 개인이나 심한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 힐링의 관점에서 실천 가능한 예술인의 사회적 책무가 있다면? ‘아노미현상’이란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의 붕괴에 따라 초래되는 사회구성원의 욕구나 행위의 무규제상태 내지 혼란의 극치상황을 말하는 사회적 병리현상 중의 하나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이론으로알고 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자살, 우울증, 조현병, 분노조절장애, 잔혹범죄와 비행, 폭동,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죄)등이 그 예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이는 인간 뇌의 문제입니다. 좌뇌와 우뇌의 극단적 불균형에 의한 일탈현상으로 저는 봅니다. 뇌의 정상성, 건전성 회복을 통한 힐링(치유)이 그 솔루션입니다. 한마디로 문화예술적인 치유가 최고의 치유책입니다. 환원처리된 뇌융합예술작품이나 조형물을 바라보면 볼 수록 감상자의 뇌의 하향처리가 전행되면서 미적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데, 이 때 평소에는 안 나오던 유익호르몬인 행복호르몬 도파민, 흥호르몬 세로토닌, 기쁨 건강호르몬 엔돌핀과 더 나아가 극적 감동의 경우에는 엔돌핀의 4000배나 되는 다이돌핀(Didorphin)이 나오게 됩니다. 그야말로 힐링 중의 힐링이지요. 한마디로 뇌융합예술은 예술을 뛰어 넘는 최고의 ‘힐링 마법’, ‘힐링 미러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품)의 감상의 감동은 뇌의 호르몬 작용으로 보는 것이 뇌융합예술의 독창적 접근법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극단성을 지양하고 뇌의 균형과 조화가 생활화된 ‘뇌융합문화예술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뇌융합예술의 기초 구축과 교육, 보급에 앞장섬으로써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해 뇌융합문화예술을 처방전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뇌융합문화예술은 4차산업혁명시대에 인간 고유역량 계발을 이끌고 인간의 온전한 정서를 높이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따뜻한, 착한 미래문화예술체계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뇌과학의 발달에 따른 뇌융합시대의 흐름 속에서 뇌융합예술은 한민족 고유의 정신문화와 ‘선’(善)을 고양시키고, 인간뇌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질인 공감능력을 되살려 사회구성원의 삶을 협력적으로 바꾸고, 능동적 · 긍정적 참여 의지를 고양시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전환 · 전진시키는 나침반과 엔진 역할을 할 것입니다. 08. 마지막으로 김화백의 2019년 하반기 플랜과 2020년 마스터 플랜의 공적 책무가 있다면 한 말씀? 올 하반기에는 일단 ‘뇌융합문화예술사회’라는 책명으로 뇌융합문화예술을 미래문화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저서 발간을 통해 뇌융합문화예술을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작업부터 착수 하고자 합니다. 이를 기초로 뇌융합문화예술 교육 커리쿨럼의 기초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또한 ‘뇌융합문화예술포럼’을 출범시켜 관심있는 문화예술분야의 교수나 아티스트들의 지식과 지혜를 융합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뇌융합문화예술행사로서 우선 본인의 작품을 비롯한 뇌융합예술파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뇌융합미술전’을 연말에 개최하고자 합니다. 뇌융합예술이 그저 유행이나 바람으로 끝나지 않고, 문화예술의 든든한 뿌리로 근착되도록 본인의 공적 책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향후 뇌융합문화예술에 미래지향 형태로 홍익인간의 평화철학, 융합형 인간 두뇌의 발달원리,창조 · 공감능력 배양의 체험적 문화예술교육 방법론 등을 접목하고자 합니다.
[인터뷰]오시아 쁘아종 대표/가수, 신인가수의 데뷔 무대 ‘쁘아종’
[인터뷰]오시아 쁘아종 대표/가수, 신인가수의 데뷔 무대 ‘쁘아종’
[선데이뉴스신문=이창렬 기자]70~80년대 통기타 가수 송창식, 윤형주 하면 그 시대의 등용문, 추억의 ‘쎄시봉’이 떠오른다. 그 뒤를 이어 DJ 이종환씨가 운영하던 음악다방 ‘쉘부르’를 통해 신인 가수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중가요나 올드팝의 열풍이 불어 닥쳤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과 음악 산업의 글로벌화로 아이돌 댄스가수들이 주축이 된 K-pop 이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추세이다. 이렇듯 K-pop의 위력은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경제기업 및 음반시장에 많은 긍정적 변화와 자극을 가져왔고 앞으로 계속 진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랜 세월을 사이좋게 공존해 온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명이지만 공연계를 세밀히 살펴보면 어쿠스틱 음악과 아이돌 그룹 신드롬이 첨예한 수직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란한 댄스그룹 아이돌을 추앙하는 팬덤(fandom)에 비해 기성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팬 층은 배제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저절로 몸이 그루브를 타게 만드는 재즈선율과 감미로운 올드팝으로 감동을 주는 무대는 과연 어디에 잔존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실정에도 굴하지 않고 가수 오시아가 자신의 라이브 카페에서 7080 유행하던 음악을 피아노 건반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고 하여 그녀가 있는 카페를 찾아가 보았다. 가수 오시아는 올드팝 부문에 있어서 다수 수상하였고 인천 TBN(한국교통방송) ‘오시아의 팝스토리’, 부산 TBN ‘낭만이 있는곳에’, 마포FM ‘오시아의 복고복고’, 국방FM ‘오늘도 좋은 날’ 등 이 외에도 여러 라디오 방송사의 고정 출연을 통해 팝송을 소개하고 라이브를 한 바 있는데 올드팝을 접하게 된 계기와 성장과정, 또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 보았다. ▲ 라이브 카페 운영에 가수활동까지 하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창업해서 10년째 라이브 카페를 운영해 오고 있는데요,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아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더군요. 이곳(청담동)에서만 해도 여러 번 이전 했어요. 누수 피해 때문에 옮기기도 했고 월세를 단 2개월 밀렸다고 명도를 당해 쫓겨나는 신세가 된 적도 있었죠. 눈앞이 캄캄했지만 하루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템페스트 장계현 선배님의 카페에 취직을 하여 노래를 하며 재기를 도모하던 중에 우연히 동아방송 최초 DJ 최동욱 선생님께 발탁이 되었어요. 되돌아보면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아요. 그 후 라디오서울코리아 5주년 개국기념 공개방송에 초대되어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끝에 어렵게 대출을 받아 가게를 다시 얻었고 그때부터 카페 운영과 가수활동을 겸업하게 되었죠.” ▲ 그럼에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굳이 조용한 청담동에 개업을 한 이유는?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는 상대적으로 권리금이 센 곳이 많아요. 그런데 이곳은 발품을 팔다보면 은근히 공실을 발견할 수 있죠. 빈 공간을 찾아 시설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부들을 구해 인테리어 디자인을 직접 했는데 2개월간 공사 하면서 고생한 만큼 이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불황을 겪는 라이브 카페들이 속출하고 있는 요즘 저도 예외는 아니에요. 여기가 고즈넉한 주택가라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간판까지 눈에 잘 띄지도 않으니 자연히 외부 손님은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단골들의 소개로 손님들이 알음알음 찾아 주시고 저와 6년 동안 동고동락한 연주자 후배들이 공연 외 시간에는 자잘한 일손도 거들어 주는 덕분에 꾸준히 유지는 되고 있습니다. ▲ 성장 배경은?그 옛날, 빨래를 널으시면서 ‘탑튠쇼’ 시그널 뮤직 Pipeline을 듣고 시간을 감지하실 정도로 늘 라디오에 귀를 귀울이셨다는 어머니 영향 때문에 자연히 음악이 제 생활 속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어요. 조카들을 양육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중병으로 누워 지내시던 아버지의 병수발에 거듭되는 수술비 마련을 위해 대학 휴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학업도 중단해야 했죠. 그러던 중 운 좋게 재즈계의 거장 이판근 선생님을 만나 사사했고 불혹이 넘은 나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여 재도전한 결과 예술경영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만학의 꿈도 이루어 냈답니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독학으로 대입고시를 패스하신 어머니의 끊임없는 학구열과 독려가 자양분이 됐어요. ▲ 대중가요나 트롯이 아닌 올드팝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팝송이라는 장르가 듣기는 좋아도 원곡을 소화해 내긴 어렵기에 선택 보다는 도전이 되는 일이었어요. 옛날에는 우리가 의지와는 무관하게 라디오에서 디제잉 하는 곡을 들으며 지냈잖아요. 귀에 착 감기는 올드팝 멜로디에 반해 독음을 따서 노래하는 일은 다반사였죠. 사실 우리나라 말도 모르고 케이 팝(K-pop)을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처럼 말이예요.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노래를 하던 제 발음이 서툴렀는지 서서 노려보던 외국인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낯이 화끈거려요.(웃음) 함께 저와 로테이션(rotation)하던 필리핀 듀엣은 저 혼자 받는 급여보다 반이나 적었지만 그들은 영어가 제 2 모국어라 할만큼 노래를 이해하고 부르니까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아하는 장르니까 제대로 파야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일과 병행하며 원격으로 실용영어를 배웠고 틈틈이 발음과 가사 해석을 하며 손님들 신청곡 위주로 연습했죠. 옛날부터 손님이 써주신 신청곡 메모지는 하나도 안 버리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노래 선호도 파악과 복습에 도움이 돼요. ‘올드팝 가수’라는 수식어가 무게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왔지만 맛있는 요리의 레시피를 궁금해 하듯 부르는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부르면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걸 깨달았고 뜻을 앎으로 감정을 더 잘 실을 수 있게 되었어요. ▲ ‘쁘아종’을 찾는 고객층의 연령대는? 제가 주로 올드팝송 옛 가요 위주로 연주하고 신청곡을 받다 보니 아무래도 젊은 세대보다는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에게 더 호응을 얻는 편입니다. 20대 30대에도 귀가 예민한 마니아층이 있는데 꽤 오래된 노래를 신청하기도 해요. ▲ 올드팝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은?팝스 다이알 DJ 김광한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그분의 저서가 진로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어요. 팝스타들의 숨겨진 뒷 이야기‘팝스 비화’란 책인데 아주 흥미진진해서 책이 너덜거려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거든요. 책이 낡아져서 못쓰게 돼 어느 날 만나 뵙고 한 권 더 주십사 부탁드렸어요. 흔쾌히 승낙하시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보로 왕복 30분이나 걸리는 사무실로 가셔서 새 책을 다시 갖다 주셨어요. 그때 받았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신인 뮤지션들의 후진양성에도 힘쓴다고 하던데?“그건 너무 과장된 표현이네요. 저와 함께 공연하는 뮤지션들은 이미 실용음악을 전공한 재원들이에요. ‘쁘아종’에는 파트타임으로 출연하여 공연 하면서 낮에는 작곡, 재즈 피아노를 레슨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하죠. 그런데 자신들의 타이틀 곡이 수록된 앨범을 발표하고도 K-pop 아이돌 대세에 밀려 대중매체의 음악방송에 출연할 기회는 쉽게 닿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단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신예들에게 수시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쁘아종’ 이라는 라이브 무대에서 실력 있는 신인 뮤지션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인터넷을 통한 방송도 시도해 볼 계획입니다. 그건 제가 혼자서 추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서 여러 문화예술계통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라이브 카페 무대에 대한 운영 마인드 및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정겨운 추억의 음악을 연주하던 7080 미사리 라이브 카페 촌이 아쉽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흘러나오던 라이브 무대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씁쓸한 현실마저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든 시기인데요. ‘쁘아종’에서 추억의 올드팝을 그리워 하는 손님들께 지친 심신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편안함을 선사하고 싶어요. 신인 뮤지션들에게는 예능프로에서 비쳐지는 가수들 못지않게 라이브 무대에서 방송계로 활동을 넓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신예로서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음악쟁이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결국은 쟁이의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술과 요리 생음악을 모두 흡족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다시 생겨나서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음악쟁이들과 무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함께 상생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음악은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희망을 주며 때로는 한풀이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7080 세대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줄 음악다방, 라이브 카페가 다시 곳곳에 소생하길 바란다. 앞으로 올드팝 가수들이 활동할 무대와 지원책 또한 많아져서 다양한 스타일의 올드팝과 재즈, 블루스 향기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걸어보길 기대한다.
[인터뷰]혜화동 대학로 먹거리 명소 ‘대학로족발보쌈' ...20년 봉사활동과 사업 김대연 사장
[인터뷰]혜화동 대학로 먹거리 명소 ‘대학로족발보쌈' ...20년 봉사활동과 사업 김대연 사장
[선데이뉴스신문=이창열 기자] 우리나라에서 문화 예술의 메카를 떠 올리자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를 누구나 연상할 것이다. 수많은 연극 공연 극장과 다양한 버스킹 공간에서 재능을 불태우며 미래의 꿈을 펼쳐가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 혜화동 대학로! 또한 다양한 먹거리와 즐기고 볼거리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혜화동 대학로! 그곳에서 20여년 동안 봉사활동과 사업을 하며 그 중심이 되어 살아 온 대학로족발보쌈집 김대연 사장을 만났다. 개그맨 이봉원과 김수용 사진이 걸린 큰 간판이 눈에 뜨인다. 대학로족발보쌈 이라고 적힌 간판에 재미있는 캐릭터 그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입구에는 다양한 먹거리 안내판이 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식감을 자극한다. Q. 이곳에서 사업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A. 네, 2001년 오픈해서 19년째 되어 갑니다. 이곳에 오시는 많은 분들과 또 주변에 장사 하시는 분들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Q. 그동안 대학로에서 몇 가지 사업은 해 보셨을 것인데 그중에서 가장 자랑거리로 손꼽을 수 있는 사업은 어떤 업종 인가요?A. 네 현재하고 있는 족발집입니다. 물론 음식점이다보니 여러가지 점심메뉴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지만 족발은 오랜 시간 동안 저의 정성이 묻어나야 만들어지는 음식이라 가장 심혈을 기우리고 있기에 풍미를 더 할 실험 과정도 몇 여년 계속 지속되어 왔고 이를 알아주는 단골 고객이 많이 있기에 저의 자랑꺼리 업종이라 자부 할 수 있습니다. Q. 그럼 대학로보쌈족발의 대표적인 메뉴는 어떤 것인가요?A. 저희 메뉴를 주로 족발을 이용하는 것이라 좀 간단합니다. 그냥 본 그대로의 족발을 풍미 하시는 분들은 일반족발로 드시고요, 매운 것을 좋아 하시는 분들은 매운족발, 두 가지 맛을 다 원하시는 분들은 반반족발을 드십니다. 그 외에 보쌈과 함께 족발을 드실 수 있는 메뉴가 있고요 싸이드 메뉴로는 비빔막국수 멸치손칼국수 호박 부추전이 있습니다. Q. 간판이나 액자에 걸린 여러 사진들을 보니 지역 특성 상 주로 연예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것 같은데 일부 연예인들과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요?A. 네,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 연예인이 주축인 스마일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그맨 이봉원씨가 단장을 맡아서 하는 단체인데 그 단체에 탤런트 신준영을 비롯한 개그맨 김수용, 정진수 등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지인들과 오기도 하시고 해오름예술극단/해오름이엔티 등과 같은 극단이나 영화사에서 회식 자리로 많이 이용하시면서 함께 사진도 찍곤합니다. 또, 여러 연예인들 중 김정열,강일홍,손현주,이달형,염동헌,노현희씨등이 자주 찾아 주시곤합니다. Q.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엔 주변 극단 후원과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 후원하신다고 들었는데 한 말씀?A. 부끄럽습니다. 주변에 그런 소문이 나 있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후원이라는게 일부러 찾아다니려면 힘들어서 못 하겠죠. 저는 그저 장사하면서 이곳 특성상 연극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배불리 먹이고자 하는 심정으로 조금씩 음식으로 후원을 좀 했던것인데 그것이 소문이 났나보네요. 이곳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문화예술분야가 우리나라 현실에선 너무 열악한 환경인 걸 더욱 절실히 깨달았거든요. 이외 별도로 종로구 새마을협회 봉사활동과 저희 중학교 동창 12명이 모여서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서 생활이 어려운 후배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하셔서 대답은 했지만 이런 건 누구나 다 하는 것 아닌가요. Q. 앞으로의 바램이 있다면 한 말씀?A. 저도 물론 장사가 잘되어야겠지만 요즘은 일 년이 멀다하고 문 닫는 가계가 너무 많아요. 그 원인은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은 계속 안 좋은데 건물 임대료는 너무 비싸서 계속 채무만 늘어 결국은 파산을 하는 것이죠. 나름 노하우가 있어서 오랫동안 이곳에서 버텨 온 저 이지만 요즘은 저 또한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간절한 바람은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사회. 경제구조가 하루속히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한맘 한뜻이 되어서 실천해 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