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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산책] 박노해 시인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가난과 분쟁 속 평화의 기록"
[전시산책] 박노해 시인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가난과 분쟁 속 평화의 기록"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단순한 살림으로 풍요롭고 단단한 내면으로 희망차고 단아한 기품으로 눈부시게" -박노해 세계를 돌며, 자신이 목격한 노동의 순수함과 그 속의 담긴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있다. 박노해(시인‧사진작가‧혁명가), 그는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가 1991년 안기부에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수가 됐다. 1998년 7년 만에 석방,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리고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이후 전 세계의 분쟁‧전쟁 지역을 돌며 평화운동과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박노해 시인이 설립한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주최‧주관하는 17번째 사진전으로, 8월 30일까지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나눔문화'는 정부후원과 재벌지원, 언론홍보에 의존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며 19년째 후원회비로만 운영하고 있다. 8월 2일 오후 6시 방문한 '라 카페 갤러리', 창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를 좋아하는 기자는 '박노해' 시인의 전시에 종종 방문한다. 오랜만이었다. 며칠간 장맛비로 온 나라가 물에 잠긴 탓인지 밖은 고요했다. 우산을 쓰고 추적이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뉴스엔 연일 폭우로 피해를 입은 뭇 소식들이 들려왔다. 안타까운 사연들. 빠른 복구와 회복을 바랐다. 걱정되는 마음에 고향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본다. 갈색의 화분들이 눈에 들었다. 카페는 온통 초록의 옷을 입었다. 자연의 색(色) 초록, 초록이라는 말은 참 좋다. 발음부터 '록'하고 맑은 소리가 난다. 뒤끝이 없다. 한 여름 장맛비에 씻겨 내리는 묵은 먼지들.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에 묵었던 죄(罪)들도 함께 씻기는 것만 같다. 나눔문화에 따르면, '라 카페 갤러리'는 오직 시민분들의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정부‧재벌‧언론홍보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 이는 단체의 곧은 원칙이다. 박노해 시인이 과거 국가보상비를 거부한 것으로 보아 어떠한 권력과도 하나가 되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가 담긴 듯하다. '한 여인이 돔 형태의 문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박 시인은 지난 20년간 중동‧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등 가난과 분쟁 현장을 다니며 그들의 일상의 삶 곳곳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일부 기득 언론은 왜 이런 가난과 분쟁의 일상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는가. 왜 관심조차 없는가. 자극‧선정적인 담론, 정치 논쟁, 재벌기업 등 돈이 되는 이슈에만 초점을 맞추는가. 물론 그 또한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 중 하나지만, 이슈몰이에만 정신이 팔린 일부 언론의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언론은 시선몰이의 도구가 아니라 사실을 기반으로 진실을 알려 국민의 시선을 더욱 넓고 맑게 만들어주는 푯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옆 설명이 있기에, 아래 작품들의 사진설명은 따로 적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단단하게 단순하게 단아하게'다. 사진 속에는 단단하고, 단순하고, 단아하게 자신들의 삶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분쟁과 전쟁으로부터. '인간의 욕심'이 있는 한 이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있는 한 그를 막기 위한 투쟁 또한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은 다시 일어나 싸우며 이 땅을 지켜왔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저 높은 곳의 사랑이 있는 한 결코 무릎 꿇릴 수 없는 게 인간이기에" -산정의 단단한 집 中, 박노해 시인 마지막 사진과 눈이 마음에 들어온다.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밀러고 떠밀려 마지막으로 모여든 보금자리, 요즘 우리나라의 모습과 닮은 부분도 있다. 매일 신문에 오르는 부동산 이야기. 터무니없어 오른 집들의 가격, 서로 편하게 잘 살겠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하나 둘 쌓아온 칠흑의 건물들. 서로 다투지만 결국 모두가 욕심의 굴레에 갇혀 있는 건 매한가지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누굴 나무랄 것 없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깨끗이 빤 옷차림으로 쌀국수를 대접해 주는 여인은 생활이 고달프다 하여 함부로 살아가면 되겠냐는 듯, 가난과 불운이 마음까지 흐리게 해서야 되겠냐는 듯, 단아한 자태로 꽃 같은 미소를 지어 보낸다." -진창 위의 꽃밭 中, 박노해 시인 어떤 인간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꼭 '어떤 인간'이 돼야 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의 길을 따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수가 따르지 않더라도 '옳은 길'이라면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 말이다. 유목민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갈지 궁금하다. 그들에게 세상은 나그네 길일까. 어떠할까.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 적으니 마음은 편안하죠. 그래도 이 끝없는 초원에 나 홀로인 것 같아 적막해지고 달라이 라마를 생각하다 슬퍼질 때면 말을 타고 달려요. 가슴을 다 열고 초원의 빛과 하늘과 바람에 안기면 내 안의 우울이 다 살라지는 것 같거든요." -티베트의 유목민 中, 박노해 시인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미안함에, 때묻은 손을 잡아야만 하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바닥이 아리다. 자연에서 온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노는 게 좋다. 진정한 고상함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에 있다. 고산지대를 뛰노는 아이들의 미소는 맑다. 맑다 못해 죄 많은 삶이 송구스럽다. "엄마가 알파카 털로 짜준 전통 옷을 차려입고 새벽부터 두세 시간을 걸어 학교에 온 아이들이 친구를 보자마자 빨갛게 언 볼로 신나게 뛰논다. 고원이 단련해 준 강인한 심장으로 고독이 선물해 준 천진한 웃음으로 결핍이 꽃피워준 단단한 우정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고 작은 학교에서 세상에서 제일 크고 환한 웃음소리가 울린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학교 中, 박노해 시인 전시장과 카페가 함께 있다. 2층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1층에서 전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책을 읽는 동선이다. 카페에서는 나눔문화를 후원하거나, 이번 전시과 관련된 기획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박노해 시인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지만 뜻이 있어 아름답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내디딜 그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싶다. 이번엔 성큼 후원지를 쓰지 못했지만, 고민해보고 꼭 좋은 나눔문화를 위한 투자를 해보고 싶다. 한편 이번 전시는 8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린다. 꼭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전시산책] 기산 풍속화를 아시나요? "150년 민속의 길을 다시 걷다"
[전시산책] 기산 풍속화를 아시나요? "150년 민속의 길을 다시 걷다"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자주 들은 문장이지만 의미를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문명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이 문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한다'고 그런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뉴스도 보고, 책도 읽고, 방송도 접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보가 너무 많다. 혼란스럽다. 하루에도 수천 개씩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콘텐츠에 어디서부터, 어떤 것을 접해야 할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예술은 이렇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한 시간에 붙잡아 놓는다. 이번 전시는 100년 전의 풍속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전시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경복궁 내부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에서 2020년 5월 20일(수)부터 10월 5일(월)까지 '가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 측은 "전시는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와 그 속에 기록된 우리 민속의 흔적과 변화상을 찾아보는 자리로, ▲밭 갈고 부종(付種) 하는 모양 ▲여인 방적(紡績) 하고 ▲행상(行喪) 하고 ▲추천(鞦韆) 하는 모양 등의 기산 풍속화와 ‘두부판’, ‘씨아’, ‘시치미’, ‘대곤장’ 같은 민속자료 등 총 340여 점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25일 전시 방문 당일, 날은 흐렸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꼈고 비가 내릴 듯 말듯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경복궁역 5번 출구는 국립고궁박물관과 이어져 있다. 고궁 박물관을 지나 경북궁 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가는 땅은 넓게 펼쳐져 있는데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구불구불했다. 박물관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현대식은 각진 하얀 벽에 대리석 바닥이다. 코로나19로 전시장 입구는 일부만 개방돼 있었다. 마스크를 동여매고 QR코드를 찍었다. K-방역의 일환이다. 요즘은 자기 확인을 하지 않고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 전시장 입구 테이블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잠시 전시 감상을 위해 글자를 접어두고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중간중간에 감상평을 덧붙였다. 사진 밑 작품 설명은 사진 자체에 담겨 있어 생략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 선 기산 김준근 화백, 그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15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예술 활동이 그렇다. 무수한 작품을 남겨도 작품을 담을 창을 만나지 못하면 시간 속에 잊힌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그에 굴하지 않는다. 유명보다 만족감을 주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밥도 벌어먹어야 한다. 예술도 해야 한다. 무엇이 고귀한가? 무엇을 위한 고귀함일까. 전시설명은 기산 김준근에 대해 "조선시대 대표 풍속화 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나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처럼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 전 분야의 풍속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당시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 등 외국인에게 많이 팔렸으며, 현재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북미 박물관에 주로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사, 민속학 등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관심 대상이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기산 김준근의 존재와 그의 풍속화 세계를 널리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의 모습, 의상, 각종 풍속, 놀이까지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불과 150~200년 만의 일이다. 특히 풍속화에 그려진 전통한복이 인상적이다. 삶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사람들의 욕구는 같았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공부를 하듯, 장원급제를 해 관직에 서기 위해 과거시험을 보러 간다. 생업을 위해 쉼 없이 움직였던 손에는 이제 작은 기계를 하나씩 잡고 있다. 200년 후 오늘날의 사진을 보며 "손에 들고 있는 저게 뭐지?"하며 기이해 할지도 모른다. 전시주최 측은 "사람과 물산(物産)이 모이는 시장과 주막, 그 시장에서 펼쳐지는 소리꾼, 굿중패, 솟대쟁이패의 갖가지 연희와 갓, 망건, 탕건, 바디, 짚신, 붓, 먹, 옹기, 가마솥 만드는 수공업 과정을 볼 수 있다. 또한, 글 가르치는 모습, 과거(科擧), 현재의 신고식과 유사한 신은(新恩) 신래(新來), 혼례와 상·장례 등의 의례, 널뛰기와 그네뛰기, 줄다리기와 제기차기 등의 세시 풍속과 놀이, 주리 틀고 곤장 치는 혹독한 형벌 제도 등이 소개되어, 한 세기 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도 옷이 찢어지거나 단추가 떨어지면 가끔 바느질을 한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옛날에는 집에서 어머니께서 옷을 깊어줬다고 한다. 물론 요즘은 바느질을 볼 일이 없다. 이전에 기차에서 한 젊은 외국인 여자가 찢어진 바지를 어설프게 꿰매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주머니께서 대신 깊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시대도 없었다. 아낙녀들이 개울가에 앉아 수다를 떨며 빨래를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은 세탁기의 버튼 한 번으로 모든 걸 끝낸다. 편리함을 따라 문명은 발전해 왔다. 빨래를 하러 가는 시간조차 무색해졌다. 수많은 여인들은 빨래를 하며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이집저집 시름을 털어놓고, 바깥사람의 흉을 봤겠지 싶다. 농업에 대한 설명에 '씨 뿌리기' 관련 내용에 눈길이 갔다. "쟁기질과 씨 뿌리는 일은 동시에 계속해 나가는데, (중략) 한 남자가 맨발로 새로이 만든 밭고랑을 따라 고랑을 넓히면서 밟으면 다른 이가 낱알을 떨어뜨리면서 비료를 주며, 흙으로 그곳을 덮는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밟는다. 그러니 새들이 낱알을 쪼아먹을 새가 거의 없다." -The Face of Korea ‘조선의 모습(1911)’ E.G 캠프 자연의 이치에는 생명을 기르는 지혜가 담겨 있다. 씨를 뿌리고서는 쟁기질을 계속해 줘야 한다. 흙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비료로 영양을 공급한다. 그리고 땅을 밟아 단단하게 다져 새가 쪼아먹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신앙, 기생, 상장례, 형벌 차례로 전시는 이어진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속세를 떠나고자 했던 이들과 속세를 꼭 껴안고 놓지 않았던 이들이 공존했다. 인간은 본능 아래 움직여왔다. 욕구에 순응하며, 때론 욕구를 부정하며, 존재를 규정하기 위해. 그 시대에 풀리지 못했던 마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진다. 전시주최 측은 "민속은 전승되지만, 또 변화한다. 사람과 사람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면서 민속은 당연히 변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속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며 "2020년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변화시키듯, 한 세기 전을 기록한 풍속의 블랙박스인 기산 풍속화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삶의 변화상을 찾아볼 수 있다. 민속의 변화상을 살펴보면서 ‘민속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며, 현재의 풍속은 어떻게 기록되어 훗날 오늘의 민속으로 소개될지 그려보길 바란다. 아울러 전시 관람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국민들의 일상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역사 속에는 민속이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우리도 민속이 되고,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은 고전이 돼 역사에 기리 남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보며 민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만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 이전에 살아 숨 쉬었던 역사와, 앞으로 숨을 틔울 미래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고로 두 다리를 연결하는 현재(Present)는 우리에게 더욱 뜻깊은 선물(Present)이 아닐 수 없다.
[전시산책] 상상 속의 태아를 보다, 국동완 개인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전시산책] 상상 속의 태아를 보다, 국동완 개인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곽중희 기자, rhkrwndgml@naver.com] 무의식 속에서 태어난 생명인 태아는 인간의 계획이 아니었다. 어떠한 인간도 그 탄생의 신비를 알 수 없다. 신 혹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됐을 뿐이다. 설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생명은 정교하고 치밀하다. 과학은 인체의 역할에 대해서는 설명했지만, 존재의 이유를 규명하진 못했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그것을 찾는 마음은 교만일까? (사진=플레이스막2 입구, 국동완 개인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포스터) 이번 전시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은 국동완 작가의 개인전으로 추성아님이 기획에 협력했다. 전시 장소는 '플레이스막2'이며,2020년 7월 4일부터 26일까지 전시가 진행된다. 이달 플레이스막 전시 관람의 마지막으로 플레이스막2를 찾았다. 요즘은 전시를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평소에 전시 관람을 좋아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보지 못했었다. 취재를 하기 위해 가는 것 같지만, 실로는 전시가 보고 싶어 취재를 가는 것이다. 나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생각한다. 생각의 창과 틀을 연다. 마치 계시(啓示)와 같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서 본다. 이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추성아 전시 협력기획자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번 전시는 두 개의 주축이 되어 작가가 탐험하고 발굴해내는 40주간의 기록을 보여준다"며 "0주에서 40주까지 뱃속에서 성장하는 생명체를 상상하며 한 주엥 한 장씩 하나의 형태를 그려나간 기록들은, 극동완이 '손이 알아서 그리는 것을 보는 일. 손이 그려버리고 만 선과 이미지들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했듯 그의 무의식을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사진=플레이스막2) 아담한 크기의 집들이 바둑판처럼 줄을 선 연희동의 주택가 사이, 플레이스막2가 있다. 전시를 보러 갈때는 아무런 의식 없이, 힘을 빼고 그저 그 공간과 시간에 젖고 싶다. 이성의 끈을 모두 놓아 버리고. 논리의 고리를 모두 부숴버리고. 오직 느낌과 감각에만 의지한 채 말이다. 머리를 넘어서 의식에서 벗어나 가슴으로 단전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사진='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중 일부, 국동완, 한지에 흑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 대한 열망, 욕망, 상상을 손이 가는 대로 써낸, 아니 그려낸 작품이다. 태아의 탄생이란 틀 안에서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미묘하게 응축돼 있는 듯하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라는 음성이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 건 왜일까. 전시에 대한 기록은 "0주에서 40주까지 뱃속에 품고 있는 생명체를 상상하며 한 주에 한 장씩 하나의 형태를 그려나간 기록들은 무차별적이고 유기적인 이미지로 화면의 중앙에 태어나지 않은 이의 초상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관계를 모호하게 드러낸다. 현실에서 아직 마주하지 않은, 다가올 미래에 마주하게 될 생명에 대한 상상은 존재 혹은 주체 이전에 검은색과 하얀색 사이의 추정된 등가성 가운데 순환하는 그 ‘무엇’에 대한 힘 혹은 욕망을 대변한다"고 전하고 있다. (사진='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중 일부, 극동완, 한지에 흑연) 응축된 감정의 일부일까. 아니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일까. 작가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의식과 감정의 세계를 자신만의 감각과 도구로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래 작품의 실타래처럼 얽힌 끈이 슬프게 느껴졌다.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태아는 10달의 시간을 견딘다. 오롯이 엄마라는 모태의 의지에 맞겨진 채. 하지만 태아는 언젠가 다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세대에 존재의 규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추성아 전시 기획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와 같이, 사유에 대한 오작동이 아니라 아무것도 결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언가의 이름이자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것의 이름, 그것은 ‘검정’으로 관철된다. 이처럼, ‘나’라는 여러 분신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마치 악보를 읽는 느낌으로 띄어쓰기는 변칙적이고 당김음이 된다. 문장에서 드러나는 어떤 어조와 어떤 리듬은 시각적인 것을 청각적으로 접근하거나 그 반대가 되기 위해 음 하나하나가 글자의 의미를 서서히 되살린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분신들은 마흔한 개의 드로잉에서도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배경으로부터 떠올렸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하여 등장인물과 상징하는 장면들을 유추할 수 있도록 각각의 프레임 안에 집약된다. 여기서 국동완의 드로잉과 글에 등장하는 ‘모나’의 분신들로부터 특유의 복수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가 “이명(異名)”이라는 발상으로 자신을 일흔 개 이상의 자아-타자로 지칭했던 것처럼, 상상 속의 인물들에게서 이름 외에도 고유하게 갖춘 구체적인 특징들을 분신으로서 동일하게 그려내는 것과 유사하다. " (협력기획자 추성아) (사진=촛농호수, 국동완, 종이와 콜라주 ) (사진=엄...마, 국동완, 종이와 콜라주) (사진=한 다리는 팔이 되어, 국동완, 종이에 콜라주) 작가가 그려놓은 작품들은 사유의 확장을 불러온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호하다. 하지만 선명하다.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모든 걸 수치화하고 형상화하는 이 시대에 '모호함'은 '무기력함'으로 심판 받기도 한다. 하지만 또 자연은 모호함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모호한가, 선명한가. "작가가 파헤치고 분류하는 상상과 기억들은 종이 위에 가득하면서도 공허하다. 그의 손에서 사정없이 그려나가고 적어 내려간 자리들은 무엇을 지키는 자리였을까? 검정을 지키는 자리일지, 검은 무엇을 지키는 자리일지, 검은색의 자리일지, 우리가 부르는 그 자리는, "셋 넷 아니 다섯," 그 이름은 나, 여럿 그리고 검정이다." (협력기획자 추성아) (사진='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중 일부, 국동완, 바운더리북스(2020)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집념에 빠지면 존재의 허무감을 느낀다. 이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죽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살아야지 '세상'의 거품같은 위로에 취한다. 먹고 사는 일이 전부인 양, 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건데 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끝없는 사건 사고에 인간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인간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죽음을 막는 방역을 할 뿐이다. 작가가 끝없는 내면으로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 나는 혼자일 때도 있고 여럿일 때도 있다 나는 열다섯 개가 되어 나는 일곱, 일곱이 살아 있다 여섯의 나는 이상하고 다섯 개의 나는 나는 넷이 되었고 ” (국동완 작가) (사진='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40주, 국동완, 한지에 흑연) 전시에 대한 기록은 "40주라는 긴 시간 동안 베일을 한 겹씩 걷어내어 알고 있는 것과 알고자 하는 것의 불투명함을 헤치고 나아가는 예민하고도 농밀한 감각은, 불확실했던 긴 여행을 거쳐 존재와 사물들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나’이자 ‘여럿’의 몸짓들이다. 작가가 파헤치고 분류하는 상상과 기억들은 종이 위에 가득하면서도 공허하다. 그의 손에서 사정없이 그려나가고 적어 내려간 자리들은 무엇을 지키는 자리였을까? 검정을 지키는 자리일지, 검은 무엇이 지키는 자리일지, 검은색의 자리일지.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 내 이름은 검정이다"로 마무리 된다. 한편 이번 전시의 작품은 플레이스막2 사무실에서 직접 구매가 가능하다.
[전시산책] 七夕:7日밤의 변주, 조은영 작가 “영혼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전시산책] 七夕:7日밤의 변주, 조은영 작가 “영혼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강화도의 잿빛 갯벌을 밟으며 그려 간 '七夕:7日밤의 변주', 플레이스막1서 열려 -조은영 작가, "유년시절 꿈과도 같았던 어둠의 시간을 재현하고 싶었다" [곽중희 기자, rhkrwndgml@naver.com] 달을 눈여겨 본 지 무척 오래됐다. 밤하늘의 달과 별, 이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생각할까. 우수수 비가 떨어지고 나서야 창밖을 보며 "비 온다" 한 마디를 던지고 금새 가상 세계로 자취를 감추는. 우리의 밤은 어디로 떠나 버렸을까. 이번 전시 '七夕:7日밤의 변주'는 지난 플레이스막3에서 열린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관람한 후 '플레이스막'이란 전시공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며 알게 됐다. 조은영 작가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서울 마포구 성마산로에 위치한 동진시장 내 '플레이스막1'에서 7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낮 12시(정오)에서 저녁 7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비가 왔지만 연남동은 온통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거리를 굽이굽이 지나 '플레이스막1'에 도착했다. 전시장 옆에는 시장 컨셉의 악세사리 가게가 있었다. 악세사리 샵에 입장하기 위해선 전시장 앞을 지나쳐 가야 했다. 사람들은 꼭 한번씩 전시장에 눈길을 줬다. 입구에 들어서니 아늑한 공간이 펼쳐졌다. 공간 중앙에는 큰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도착 당시 내부에 관람객은 없었다. 그래서 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시장에 갈 때 특별하고 신선한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전시는 작가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하나의 작품일 뿐, 내 기준에서 어떤 기대를 하고 가면 그 전시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것을 느끼고 싶다면 전시를 꾸린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듣는 정도다. 그래서 꼭 전시를 가면 작가를 찾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전시는 소통의 창이지, 결말이 아니다. 전시에 대해 작가가 기록한 글을 읽어보자. (사진=전시장 내부 사진) "해와 달은 시간의 경계에서 마주친다. 그렇게 마추졌다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을 마주치게 하는 건 중력이 아니다. 광할한 우주속에 흩어진 원자들, 별들이 해와달을 만나게 하는 숨겨진 힘이다.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서로의 시간과 공간은 경계를 허물고 만났다 헤어진다. 그렇게 해와 달은 마주쳤다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다." '능선위의 해와달' 2016년 10월 27일 壬午日 이번 전시는 조은영 작가가 서울에 살다가 강화도로 이주를 하면서, 강화도에서 보고 느낀 밤의 모습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기자의 구체적인 질문에 조 작가는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전시와 작품을 통해 직접 보고 느껴보시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진='7개의 작은 풍경' 조은영) 7개의 작은 풍경은 각각 서로 다른 모습 같다. 하지만 결국은 밤하늘 아래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밤, 시골의 저녁, 밭, 바다, 어머니의 색동 저고리가 생각났다. 인간은 눈으로 하나의 장면만을 보지만, 마음으로는 한 마을과 한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다. 7개의 작은 퐁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진='첫번째 밤' 외 3작품, 조은영) 바다에 비친 네온의 모습일까. 4개의 밤이다. 색연필의 섬세한 선에서 작가의 심혈이 느껴진다. 조은영 작가는 전시 설명에 "인간의 내면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이미지, '타자'라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멸절될 때 우리는 '상처'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라고 적었다. 작가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타자와 이미지, 그리고 상처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밤에 투영된 마음의 불빛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진='노랑 리본에 의한 변주', 조은영) 노랑리본 하면 세월호가 떠오른다. 컴컴한 진도 바닷속에 잠겨버린 어린 꿈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나풀거린다. 작가는 8개의 자연물을 각 작품에 이름 붙였다. 8괘로 표현된 이 작품은 유난히 밝은 노란색을 띄고 있다. 마치 수많은 '밤'들 속에 빛나는 '8개의 빛' 같다. (사진=일식[오른쪽] 외 1작품, 조은영) (사진='그 밤2', 조은영) 조 작가의 전시에 대한 기록은 "인간에게 예고 없이 찾아오는 희노애락의 첫감정들은 그순간, 우리 스스로가 알아채지 못하고 지난후에야 돌이켜 생각하고 해석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우리안에 언어적 이미지로 자리잡곤 합니다. 때론 예고 없이 찾아드는 슬픔에 붙들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끊임없이 나열하며 중심의 의미를 지우고자 노력하지만 이 의미없는 행위의 중심에는 결락된 유년 시절의 욕망과 꿈, 무의식에 중첩되 있는 우리의 시공간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라고 이어진다. 당시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언어적 이미지로 자리잡는다는 말이 와 닿았다. 시를 쓰는 나로서는 감정과 어린 시절의 여러가지 꿈들이 마음 속 언어로 자리잡는 것이 꾀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진='두 개의 풍경', 조은영) (사진='박이소의 별', 조은영) (사진='무제 untitled', 조은영) (사진=[위쪽]현현, [아래]그밤1, 조은영) 작가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조 작가는 "2년여 시간 동안 작업실 인근의 섬, 석모도의 잿빛 갯벌을 밟으며 오고 갔던 이 정신적 여정, 꿈과도 같았던 어둠의 시간들을 철의 물성과 유년시절 놀이도구였던 색연필을 통해 재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 기나긴 여정은 2016년 7월, 어머니의 젓무덤과도 같았던 능선위에 둥그런 형상 하나를 그려 보여준 어린소년과의 만남으로 부터 시작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하늘의 빛나는 별들에게 이번 전시를 바칩니다"고 기록을 마쳤다. 이 기록은 "서기 2020년 7월 4일 戊申日(무신일) 아침"에 쓰였다. (사진='박명', 조은영) (사진=전시장 내부 사진) 전시관람 후, 조은영 작가에게 연락해 전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질문의 답으로 조 작가는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 기독교 문화권의 역사속에서 관통하는 철학적 주제는 '인간의 영혼의 구원'이라는 명제가 관통한다"며 "하이데거의 저서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를 직접 읽어 보시고 고민해 보시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코로나 사태도,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 같은 사회적 문제도, '코로나 시대의 사랑' 같은 전시도 모두 이 주제(인간의 영혼의 구원)와 연관이 있는 사항이고 우리 모두의 숙제인 것이 지금의 현실 같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영혼의 구원, 이에 대해서는 기자도 자주 생각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더군다나 현대 사회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의 범람에 영혼 마음, 구원 같은 것들을 들여다 보기에는 너무도 혼란스럽다. 한편으로는, 도리어 이런 현실이라 더욱 우리의 마음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시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http://www.placemak.com/board_JLDd49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 음악으로는 '7色의 변주곡'으로 이태훈(작곡‧기타연주)님이 참여했다.
[전시산책]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시각예술에 담다, 전시 '코로나 시대의 사랑'
[전시산책]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시각예술에 담다, 전시 '코로나 시대의 사랑'
(사진=코로나 시대의 사랑 전시장 입구 외부와 내부)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어제 7월 5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는 21만 명이었다. 이로 누적 확진자는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누군가는 이 참혹한 시대를 살아서 목격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지금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겨운 호흡을 내쉬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바꿔놓았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고, 작은 재채기 소리에도 가슴이 떨려온다. 인간의 최대의 생존전략이었던 경제 또한 붕괴되는 동시에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가까스로 붙잡아 온 IT기술이 ‘언택트(비대면) 시대’를 예고했지만, 급작스런 변화에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인간은 가장 힘든 시기에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그를 예술로 승화시켜 왔다. 역사 속 수많은 예술가들이 현실의 아픔을 작품으로 표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게 고장 나버린 이 코로나 시대에도,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이 시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다. 주일 낮 이런저런 머리 아픈 일들을 제쳐두고 한 전시장에 방문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는 주제의 전시였다. 연희동의 좁은 골목을 따라 아주 좁은 듯 끼어있는 입구를 발견했다. ‘플레이스 막3’였다. 잠시 멈칫, 문을 열고 선홍색 계단으로 내려갔다. 전시공간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진=전시장 입구 내부) 전시 입구에서 만난 최재혁 전시 기획자가 마스크는 쓴 채 얼굴로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이라는 외국 소설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며 “큰 전염병의 대유행 이후 바뀌어 버린 우리의 가치관, 관념, 관습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온‧오프라인 통합 전시로 기획됐다"라며 “5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로 전시 주제와 시대에 맞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했다. 아울러 "요즘 전시들을 보면 대부분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부분을 위로하는 것에만 전시내용이 국한돼 있더라"며 “그래서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고, 관객들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사진=인세인박 작가의 작품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미디어는 단연 코로나 시대를 알리는 나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편으론 미디어 공포‧편견을 양성하기도 했다. 1인 미디어로 대중매체의 힘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일부 세대에게는 그들은 ‘신’처럼 군림하고 있다. 인세인박 작가는 “매스미디어를 구성하는 언론들은 정치적 입장에 편향되기도 하고, 유튜브를 플랫폼으로 한 개인방송은 가짜뉴스가 난무한다”며 이는 “바이러스의 ‘전염성’만큼이나 치명적인 공포를 양상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을 뜻한다. 관련 내용을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김가람 작가는 코로나 발생 이후 달라진 일상 속 언어를 수집해, 전시공간을 살균의 방으로 만들었다. 그는 “언어는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담는 창”이라며 “전시공간 내의 푸른빛은 UV 광선으로 푸른빛을 띠며 살균의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 발짝 떨어졌을 때만 작동하는 이번 작품은 언택트(비접촉)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사진=심래정 작가의 작품 '맨 처음에 생긴 것은')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 중 하나였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생애를 표현했다. 심래정 작가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일상과 시체에 침투하는 과정과 면역체계들의 방어 과정을 스토리텔링 해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며 “바이러스의 캐릭터화를 통해 ‘비가시성’이 주는 공포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윤석원, 정지현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 코로나 이후 변해버린 모두의 삶, 그리고 개인의 삶까지. 우리는 두 가지 세상을 보고 있다. 눈으로 보는 외부의 세상과 내 안에서 돌아가는 내면의 세상이다. 윤석원 작가는 “코로나 유행 후 초기부터 현시점까지 관찰해온 지역사회의 모습을 회화와 에세이로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마스크를 쓰고 찍은 결혼식 기념사진이 아주 인상적이다. 정지현 작가는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낸 도시 풍경, 변화될 건축의 속살과 내면을 탐구했다. 그는 “격리 및 외출 자제로 대기 환경이 개선된 듯 보인다”며 “하지만 창밖의 맑은 날씨와는 반대로 실내 공간은 외롭고 공허하다. 내부와 외부의 심리적 온도차는 현시대를 상징하는 풍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을 오가는 이들은 내내 마스크를 쓴 채 작품과 눈을 맞췄다. 조금은 낯선 광경이었지만, 이제 인류는 이 시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 모든 것을 잃을 만큼 나약한 인간, 하지만 그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또한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우리를 어떤 시대로 인도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한편 이번 전시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이달(7월) 30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