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김무성 전대표, 최치환 선생 추도식 참석
금암(錦巖) 최치환 선생의 29주기 추도식이 5월 27일 11시에 국립서울현충원 제1국가유공자묘역에서 있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유족인 송효숙 여사, 사위 김무성 전대표와 최양옥 여사, 최양일 변호사, 최양오 박사가 참석한 가운데 김무성 전대표와 박성중 국회의원 당선인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선데이뉴스=신민정 기자]
[선데이뉴스=윤석문 기자]금암(錦巖) 최치환 선생의 29주기 추도식이 5월 27일 11시에 국립서울현충원 제1국가유공자묘역에서 있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유족인 송효숙 여사, 사위 김무성 전대표와 최양옥 여사, 최양일 변호사, 최양오 박사와 가족들 그리고 김장실 의원과 박성중 20대 국회의원 당선인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하였다.
금암 최치환 선생은 1943년 만주군관학교(滿洲軍官學校)를 마치고, 1950년부터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장과 경무과장으로 7년 재직하는 동안 1954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행정과를 수료하였으며, 1956년 서울특별시 경찰국장을 거쳐 1958년 이승만(李承晩)대통령 비서관으로 있었다.
1960년 4·19 전에 제5대 공보처장으로 발탁되어 5·16 때까지 1년 1개월간 집무하는 동안 자유당 이승만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를 지켜보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제5대 민의원선거 때 고향인 남해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하였으며, 이듬해 5·16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조선일보 상담역으로 언론계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1970년 경우회(警友會)를 맡게 되어 『경우신보』 회장이 되었고, 속기협회 회장으로 기자 육성에 주력하였으며, 이듬해부터 1974년까지 경향신문사 사장으로 언론계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1972년 국제신문협회(IPI)회원과 신문협회 부회장을 거쳐 다음해 신문연구소 이사에 추대되었다. 제6·7대 국회의원으로 3선의원이 되었는데, 1965년 민주공화당 당무위원으로 원내부총무가 되었고,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67년 국회건설분과 위원장으로 의정활동에 기여하였으며, 태극무공훈장과 미국은성훈장·미국대통령공로표창을 받은 바 있다.
5선의 국회의원 활동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정치적 지론이었던 ‘평등의 민주정치, 평준의 민생정치, 평안의 민권사회’인 삼평삼민 정신은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들의 가슴에 정치의 근원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금암(錦巖) 최치환 선생의 29주기 추도식이 5월 27일 11시에 국립서울현충원 제1국가유공자묘역에서 있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유족인 송효숙 여사, 사위 김무성 전대표와 최양옥 여사, 최양일 변호사, 최양오 박사가 참석한 가운데 김무성 전대표가 인사말과 헌화를 하고 있다.[선데이뉴스=신민정 기자]
추도식은 20대 국회의원 박성중 당선인의 약력보고와 김장실 국회의원의 추도사 그리고 최양일 변호사, 김무성 전대표의 유족인사와 참석자들의 추모 등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고인의 삼평삼민 정신에 대한 추도사와 정치 철학을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많은 참석자들은 고인이 생전에 추구했던 정치 목표를 이해하고 공감하였다.
사위인 김무성 전대표는 유족인사에서 많은 참석자에게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였으며, 이번 20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성중 당선인에게 축하를 그리고 서초갑에 출마하여 당선의 기회를 놓친 처남 최양오 박사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추도식을 마치고 김무성 전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많은 유공자 및 장군 묘역이 안치된 국립서울현충원 제1국가유공자묘역을 둘러보았다.
금암 최치환 선생이 안치된 제1국가유공자묘역 인근에는 故박정희 전대통령의 운구차량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을 방문한 추모객들의 발길과 시선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