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는 예순 넷에야 첫 책 “분서”를 냈다, 30년 넘게 관리를 지낸 그는 쉰 되기까지는 유교 경전을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고 털어놓았다, “쉰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댔다” 그는 노후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자신을 깨부수고 현실을 비판하는 지식인으로서 제2의 청춘을 살았다,
옛날엔 마흔만 돼도 초로라 했지만 요즘엔 노인이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오늘의 그 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성은 쉰에서 예순아홉까지는 알차게 결실을 맺은 연배라고 해서 실년이라고 부른다, 일흔이 넘으면 성숙했다는 뜻으로 숙년이라고 한다, 중국에선 50대가 숙년이고, 60대는 장년, 70대 이상은 존년 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도 노인 대신 ‘더 나이 든 사람’ 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이든 시민’과 ‘황금 연령층’도 노인을 대신하는 말이다, 프랑스에선 예순 넘은 사람을 ‘제3의 인생’이라고 부른 지 오래됐다, 우리 정부도 고용관계법을 고치면서 쉰 넘은 ‘준 고령자’와 쉰다섯 이상 ‘고령자’를 합쳐 ‘장년’으로 바꿔 쓰기로 했다, 국어사전에 ‘오래 산 사람’또는 ‘오랜 세월’이라는 뜻으로 올라 있던 말이다, 서른에서 마흔 안팎까지 힘이 팔팔한 장년과는 다른 호칭이다,
한국인 평균 수명이 남자 일흔 일곱, 여자 여든 넷인 현실에서 장년은 힘이 남아도는 젊은 축에 들어간다, 한창 일할 나이인 베이비붐 세대(49~57세)를 고령자라고 부를 수 없는 세태가 ‘장년’을 사전 바깥으로 불러낸 셈이다. 정부가 ‘고령자’라는 표현을 없애는 것은 이미 퇴직했거나 곧 퇴직하게 될 베이비 붐 세대의 재취업을 북돋우기 위해서다 장년을 고용한 기업은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된다,
장년 근로자는 임금을 덜 받고 덜 일하는 대신 더 오래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심리학자와 뇌 과학자들은 40~60대의 뇌가 청년의 뇌보다 더 똑똑하다는 실험결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기억과 계산 능력은 뒤쳐져도 경험과 전문 지식 덕분에 추론과 판단 능력이 훨씬 앞선다고 한다, 장년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막 지나쳤을 뿐이다, 우리나라 노인 3명 가운데 1명은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 복지포럼 최근호에 따르면 도시와 농촌에 거주하는 61세 이상 노인 1만544명 가운데 34%인 3583명이 농어업이나 단순노동이 필요한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12,7%에 크게 웃돈다, 게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9%나 됐다, 참으로 고단한 노년이요, 빠듯한 인생살이다,
고령자들이 호구지책을 위해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생활비를 버는 노년은 오히려 상당하다, 능력과 건강이 뒷받침돼야 일도 하는 것이다,
일터에서 물러나 은퇴한 노인이 행복하다고 볼 근거도 없다, 기초노령연금 인상, 노인수당 신설 같은 복지를 늘린다고 해서 노인의 빈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저 출산 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 것이란 걱정이 나오는 판이다,
일할 수 있는 고령자들은 더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하지만 일도 일 나름이다, 6070세대들이 대선판 정치판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책사와 멘토를 자처하며 어떻게든 권력에 줄을 대려는 모습이 민망하다,
이미 김종민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같은 원로들을 비롯해 전직 장, 차관 등 관료 출신들이, 대선후보 캠프마다 줄을 서 있다, 현역 시절의 소신이나 가치관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버린지 오래다, 정년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막 지나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