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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 김종권 기자] 온 지구가 불타고 있다. 인공지능(AI)들이 국제연합(UN) 의사 결정권을 쥔 미래, UN은 40일째 이어지는 대화재로부터 지구 생명들을 대피시키기로 한다. 모두 선택받을 수는 없다. 생존경기다. 동아시아에서 출발한 대피선 판도(PANDO)호에서 열린 경기엔 한국 과학보육원 '리틀노벨스' 동기생인 노벨상 수상자 물리학자 메이, 식물학자 에이프릴, 미국 공군 악토버가 참여한다. 이들은 인류 운명을 걸고 비버, 고사리, 느티나무 등과 한판 대결에 들어간다.
SF(공상과학) 연극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가 서울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개막했다. 냉소적이고 예리한 질문과 농담을 툭툭 던진다. 환경파괴와 기후위기, AI 진화, 인류세 등 동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 빛난다. 과학자 캐릭터들이 등장해 양자역학, 유전학, 생물학, 물리학 등 과학 이론을 설명한다. 물론 전공자가 아니어도 극 흐름을 따라가는 데 지장은 없다. 김승언, 최희진, 황은후, 김준우 열연이 흥미진진하다. 중간중간 빠지지 않는 언어유희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승무원 로봇 벨보이(권은혜), 캐릭터 인형 미치 마우스(김정화), 반인반로봇 릴리(유다예)까지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드는 배우들 호연도 놀랍다. 세 배우가 몸으로 표현하는 138억 년 전 대폭발(빅뱅)부터 생명 진화 과정은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무대로 삼아 낯설고 불편한 면도 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본질적 가치관을 돌이켜 보도록 이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정진새는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왼손이 왼손을 만난다는 건 다수 종 혹은 우세에 놓인 어떤 존재가 아닌, 열세에 있거나 특이한 종들 간 불편한 연대라고 생각한다. 다수 종들 오만한 화합이 아닌 특이하고 낯설고 귀한 종들 연합도 훈련하고 시도해 볼 때가 아닐까" 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직은 낯설다고 할 수 있는 공상 과학 문법을 주어진 시간 동안 몸에 익혀 소통이 가능한 모습으로 바꾸는 과정은 어렵고도 재미있었다. 기존 연극 관습과 편해진 인간 언어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관객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 상태를 인간 자숙 시간으로 합의하고 그 이후를 모색해 보자는 작가 뜻에 동의해 준 프로덕션 구성원들 엇비슷한 마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라고 밝혔다.
양근애 드라마터그는 이번 연극을 "SF를 부수는 연극적 농담" 이라고 소개했다. "이 농담 같은 연극이 인류세 위기와 인간중심주의를 겨냥한다고 말하면 무척 거창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연극은 오랫동안 인간이 주인 노릇을 해왔던 일들에 의문을 표하고 인간 역시 객체 자리로 돌아와 운일지 확률일지 모를 생존 순간에 비인간들과 나란히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 전했다.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2023: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 마지막 공연이다. 더 많은 관객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전 회차 무대모형 접촉 순회, 음성소개를 제공한다. 7월 7일~9일에는 수어통역, 한글자막, 음성해설을 제공한다. 공연 예매는 두산아트센터 누리집과 인터파크(온라인, 전화)에서 할 수 있다. 7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관객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