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칼럼]권력의 성폭력 일파만파

기사입력 2018.02.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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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나경택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1986년 여름 서울대에 대자보가 나붙었다. ‘‘경찰이 T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만지면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옷을 벗겼다’ 형사가 가슴을 들쳐 보더니 ‘너 처녀냐’ ‘옷을 벗고 책상 위로 올라가라’고 강요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진상을 폭로하는 변호인단의 고발장이었다. 서울대 의류학과를 다니다 부천의 한 공장에 위장 취업한 여학생이 그해 6월 부천경찰서에 연행돼 경찰관에게 성고문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권양’으로만 알려진 여학생이 경찰을 형사 고소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경찰관이 ‘성적 모욕’ 없이 폭언과 폭행만 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곤 위장 취업을 위해 남의 주민등록증을 변조했다며 권양을 구속했다. 좌파 혁명을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고 했다. 공안 기관 위세가 등등하던 시절이었다.

 

검찰은 경찰관을 기소도 하지 않고 묻어버리려 했지만 대법원이 대법원이 나서면서 사건 발생 2년여만에 이 경찰관에게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부천서 성고문 피해자였던 권인숙(54) 명지대 교수가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됐다. 권씨는 사건 후 미국에 유학 가 클라크대학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2년 출간한 책 ‘선택’에서 “내가 여성학을 선택한 것은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수습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권씨는 지난해 여성부 장관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격동의 8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권력의 성폭력 피해자였던 권씨가 법무부의 성범죄 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역사의 반전이다.

 

법무부 처지가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법무부는 최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정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를 묵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 검사가 작년 9월 박상기 법무부장관에게 관련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고 공개한 다음, 법무부가 “받은 적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것도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박 장관은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권씨는 자신이 몸담았던 1980년대 좌파 운동권의 집단주의 문화도 용기 있게 비판했던 연구자다. 그가 밝힌 대로 “권력기관 내의 성차별적 문화를 변화시킬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국민이 많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후 ‘미투’ 물결이 거세다. 직장인들의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박상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승무원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해왔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법체계는 거짓은 물론 ‘사실’을 공개한 데 따른 명예훼손죄도 인정한다.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의 벌칙은 더 세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미투’ 운동이 법조계를 넘어 일상의 일터에서부터 전문가집단 내부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상대로 자행된 성폭력의 과거사가 이렇게 광범위했는지 듣는 이로 하여금 귀를 의심케 한다. 그런 가운데 ‘나는 꼼수다’의 멤버였고 SBS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김어준씨가 최근 자신의 팟캐스트를 통해 미투 운동에 대해 ‘섹스라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로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투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는 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미투”의 외침은 이념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미투에 대한 진영논리식 접근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침묵의 압박’이 될 수 있다. 진영을 떠나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범사회적 차원의 대처 방안을 모색할 때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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