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전쟁과 평화, 그리고 2018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기사입력 2018.06.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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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6·25전쟁에 간호장교로 참전한 이후, 지금까지 한 생애를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당시 경기여중에 재학 중이던 박옥선 할머니는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간호장교 시험을 쳤고, 전쟁터로 떠나던 날, 그녀의 아버지는 “가지 마라”, “잘 다녀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뒤돌아서서 눈물만 닦으셨죠, 그 모습이 박옥선 할머니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으로 평생 한으로...박 대위는 “악하게 살아가는 게 전쟁이다. 저 사람을 안 죽이면 내가 죽어야 한다. 그러니까 전쟁은 있으면 안 돼”. 할머니는 전역한 지도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6.25 참전 유공자회에서 일하고, 80대 중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앞장서서 참전 유공자와 그들의 가족을 보살피십니다.“ (KBS 스페셜 <전쟁과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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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참전한 간호장교 박옥선 대위[자료사진]

 

2018년 6월 6일 오전 6시, 필자는 서울 동작구 현충로(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현충원은 1955년에 창설되었으며 143만m2의 대지 위에 17만 1천여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입니다. 맨 먼저 채명신 장군의 묘지를 찾았습니다. 채 장군은 1965년부터 4년 동안 주월한국군사령관을 지냈으며 베트남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2013년 11월 15일 별세했는데, 운명하기 전에 '나를 파월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장성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현충원의 장병묘역에 사병들과 함께 안장시켰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박옥선 대위는 지금 이 시간에도 6.25 참전 유공자와 그들의 가족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채명신 중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현충원 장병묘역의 맨 앞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든 베트남전쟁이든 유공자는 무수(無數)합니다. 참전 유공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있는 사람들과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호국영령(護國英靈)들! 그들은 한반도의 전쟁(戰爭)과 평화(平和)를 잇는 가교(架橋)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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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이용웅 교수]-현충원 육군중장 채명신의 묘.

 

필자는 6.25전쟁, 한국전쟁(북한:조선해방전쟁)을 1950년 6월 25일 경기도 시흥군(현 서울시 금천구)에서 만났고, 베트남전쟁(1955년 11월 1일~1975년 4월 30일)은 1966년 7월 베트남에서 만났습니다. 그 때 채명신 장군을 만났습니다. 정부가 조직한 제1회 파월장병위문단의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표로 맹호부대를 방문했을 때 만난 그는 지체 높은 장군이 아니라 자상한 특무상사처럼 보였습니다. 그 후 귀국해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현충원에 갈 때마다 채 장군을 맨 먼저 만납니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 밑에 주체 39(1950)년 6월 25일부터 주체 42(1953)년 7월 27일까지의 기간에 우리 인민의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하여 미 제국주의를 우두머리로 하는 외래침략자들과 리승만 괴뢰도당의 무력침공을 반대하여 진행한 정의의 전쟁. 조선인민은 조국해방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세계전쟁 력사에서 처음으로 미제에게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았다.”(<조선말대사전>,1387쪽)고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전쟁이란 인종·부족·민족·국가 등과 같은 각종 집단 상호간에 발생하는 무력 투쟁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국가 상호간, 특히 주권국가 상호간에 행해지는 조직적인 무력투쟁을 말합니다. 학자들은 사회과학적으로 전쟁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전쟁을 '사회적으로 용인된 일정한 형식으로 시작하여 계속되는 투쟁, 즉 관습 또는 법에 의해 인정된 형식을 갖춘 하나의 제도'로 파악합니다. 어쨌든 무력투쟁은 전쟁의 도화선(導火線)이 되고, 그 전쟁은 결국 종지부(終止符)를 찍게 됩니다. 하지만 소리 없는 전쟁은 실체가 보이질 않습니다.

 

미국의 전(前) 대통령 J.F.케네디는 “인류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에게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우리는 냉전의 휴지점(休止點)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항구적인 평화가 아니다. 핵실험 중지 조약은 하나의 이정표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상적 시대를 도래시킨 것은 아니다. 우리는 책무를 면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기회와 이 세력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또 만약 우리가 새로 찾아낸 희망과 이해를, 적대적인 새로운 장벽과 병기로 바꾸어 놓는다면, 만약 또 이 냉전의 휴지(休止)가 재개(再開)로 이를 뿐, 그 종식(終熄)에 도달하지 않으면 후세는 우리들 모두를 지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과 트럼프.jpg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과 트럼프[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위 케네디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특히 케네디의 ‘새까만 후배’인 트럼프는 알고 있어야 할텐데...회담도 하기 전에 김정은을 압박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가 하면...6월 7일(현지시각) 그는 종전선언에 관한 질문에 북미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전에 대한 합의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상황을 보면서 북한과 종전선언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으며, 다른 많은 사람들과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이 아니라 ‘한 명의 미국사람일 뿐인데...그런데 그의 말을 김정은의 말보다 더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 남한 사람들은 김정은 위원장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북한을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김정은도 트럼프처럼 ‘북한’이 아니라 ‘한 명의 북한사람’일 뿐! 북한도 헌법이 절대적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입니다. 북한의 ’전쟁과 평화‘의 근저(根底)는 ’김일성헌법‘입니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의 종전과 평화는 북한 헌법의 개정부터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2018년 6월 12일은 분명 역사적인 날입니다. 두 정상이 한반도의 종전(終戰)과 평화(平和)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다음 케네디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나는 희망이나 꿈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것들을 우리의 당면한 유일의 목표로 한다면 부질없이 실망과 회의를 초래할 뿐이다.”(<평화의 전략을 구(求)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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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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